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디도서》 1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주제는 ‘거룩한 교회를 세우라’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저는 매우 기이한 일을 발견했습니다. 마귀는 교회를 무너뜨리는 첩보전에 매우 익숙하여, 교회의 장로와 목사 등 이른바 교회를 관리한다는 사람들을 마귀의 일꾼으로 교회 안에 심어 놓았고, 그들이 그레데 사람처럼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레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레데 사람은 항상 거짓말을 일삼고, 악한 짐승 같으며, 탐욕스럽고 게으릅니다. 오늘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거룩한 교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교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만약 제가 더럽고 추악한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여온다면, 저는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왜 주 예수님을 대적하여 더럽고 추악한 교회를 세우겠습니까? 오늘은 한 사람이 암에 걸리고, 얼마 후엔 또 다른 사람이 암에 걸리고, 또 시간이 지나면 또 암 진단을 받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이러면 목숨이 남아나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교회에 가고 싶으십니까? 만약 이런 교회에 가신다면,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그 교회는 육신을 심하게 위하는 교회입니다. 육신을 위하는 것은 사망이며, 결코 곱게 죽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세우는 데 있어 저는 일찍이 한 가지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거룩하고, 하나 되며,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교회를 세우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비전이자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의 도를 전파하는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디도서》 1:1-3)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의 도를 전파하는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육신을 위하는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적이 결코 없습니다. 육신을 위하는 복음은 결코 사람을 세울 수 없으며, 오히려 사람을 부패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의 기준이 여러분의 눈에는 다소 높아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영생의 도라는 기준에 비추어 보면 결코 높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이에 종종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 갈등은 무엇 때문일까요? 여러분이 육신을 위하는 것은 스스로를 망치는 길이지만, 저는 여러분을 세우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유익을 구하고, 여러분 역시 자신의 유익을 구하고자 하지만, 여러분의 방식이 가져오는 결과는 결국 부패와 멸망입니다. 그러니 우리 사이에 갈등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사실 갈등할 것도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유익을 구할 뿐이므로, 여러분에게 유익한 것을 굳이 에둘러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유익한 일이라면 당당하고 분명하게 말하면 그만이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생의 도를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에게 맡기셨으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거룩한 교회를 세워야 하며, 적어도 교회는 깨끗해야 합니다. 교회의 초기 시절부터 우리는 매우 좋은 방향을 잡아왔는데, 그것은 기준을 끊임없이 높여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오면서 기준이 또 좀 높아졌다고 느껴지십니까? 당연히 그렇습니다. 기준은 끊임없이 높아져야 합니다. 왜일까요? 육신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며, 육신이란 것은 너무나 부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저에게 어떤 교회들은 왜 툭하면 많은 성도들이 중병에 걸리는지, 단순한 병이 아니라 왜 중병에 걸리는지 물으신다면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육신을 위하는 목회자가 육신을 위하는 양 떼를 목양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육신을 위하는 목양은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영생의 도를 전하는 책임을 맡기셨는데, 제가 하나님께 죄를 짓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은 하지 않은 채 맡기지 않으신 일만 잔뜩 벌여놓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것은 사서 고생을 자초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도 직장에서 그렇게 일하십니까? 사장이 시킨 일은 안 하고, 시키지도 않은 일만 잔뜩 해놓는다면 나중에 사장에게 어떻게 보고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영생의 도의 책임을 맡기셨으니, 우리는 다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영생의 도를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입니다.
그레데 교회가 참된 도를 버렸습니다
그레데 교회는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거의 전적으로 부패했습니다. 교회의 장로, 책임자, 목회자가 교회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내가 너를 크레타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디도서》 1:5)
그레데 교회 전체가 육신을 위하는 목회자가 육신을 위하는 양 떼를 이끌다 보니, 교회 안에서 온갖 기이한 문제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이 그레데 교회가 과거 우리 주변의 교회들의 모습과 얼마나 닮아 있습니까?
그레데 사람들은 탐욕스럽고 게으르며, 입만 열면 거짓말을 일삼는 악한 짐승과 같습니다. 그레데 사람들의 상태가 어느 지경까지 이르렀습니까? 많은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데, 특히 할례파 가운데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들의 입을 반드시 막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부정한 이익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온 집안들을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크레타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크레타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이 증언이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디도서》 1:12-16)
이것이 바로 그레데 교회의 실상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바울은 그레데에서 하던 사역을 절반쯤 마친 상태에서 더 중요한 사역이 있었기에, 이 그레데 교회를 치리하는 과업을 디도에게 맡겼습니다. 바울이 떠난 후, 비록 신신당부했지만 미처 다 전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기에 《디도서》를 써서 보냈고, 1장에서 바로 그레데 교회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 그레데 교회는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일부 지도자들이 강단을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당신만 올라가서 설교할 수 있나? 왜 나는 설교하면 안 되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이는 심히 부패한 상태입니다. 그레데 사람들의 특징은 항상 거짓말을 일삼고 악한 짐승 같으며 탐욕스럽고 게으른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육신을 위하는 교회를 세운다면 쉽게 세울 수 있을 것이고 교인 수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을 위하지 않는 교회를 세운다면 교인 수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왜일까요? 세상 사람들은 육신을 위하다가 겪는 고통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에, 육신을 위하는 것이 가져오는 부패와 멸망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레데 사람들은 부정한 이익을 탐하여 가르쳐서는 안 될 것을 가르쳐 온 집안을 망쳐 놓았습니다. 그래서 디도는 그들의 입을 막고 강단에 서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러니 기가 막힐 노릇 아니겠습니까? 교회가 이 지경이 된 것입니다.
오래전 교회를 세우며 겪었던 수많은 마음 아픈 일들이 떠오릅니다. 마음 아픈 일을 이야기하면서 제가 왜 웃을까요? 당시의 한 장면이 생각나서 그렇습니다. 어떤 자매가 제게 와서 “목사님, 저 잠시 교회를 떠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어디로 가려고 합니까?”라고 물었더니, 다른 교회를 찾아보겠다고 했습니다. 저를 일종의 보험(스페어타이어)으로 두고 다른 교회를 찾아보다가 마땅치 않으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속셈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게는 안 됩니다. 떠나실 거면 다시는 돌아오지 마십시오.”
얼마 후 그 자매를 다시 마주쳐서 “오셨으니 커피 한잔 사드리겠습니다” 하며 “교회는 찾으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자매는 “교회 하나 찾았어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가보니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참 좋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좋겠지요”라고 했습니다. 그 자매가 찾아간 교회가 어떤 곳인지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교회는 육신을 위하는 목사님이 육신을 위하는 자매님 같은 양을 목양하고 있으니, 자매님에게 아주 딱 맞을 겁니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저에게서 참으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때로는 제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를 섬겼습니다. 그 자매는 공포증이라는 일종의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정신 질환이라는 것은 완전히 육신을 위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제가 그를 섬기느라 녹초가 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가 오늘 당신을 이렇게 섬겼으니, 훗날 당신도 다른 사람을 이렇게 섬겨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기가 막히게도 그 사람이 저에게 “선생님, 저는 선생님처럼은 못 해요. 저는 밤 10시 반에는 자야 하고, 다음 날 아침에 출근도 해야 하거든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시 저도 직장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제가 밤낮없이 섬기면서도 제 출근과 일을 소홀히 한 적이 있었습니까?
자신의 차례가 되니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며 ‘세상에, 이런 사람이 교회 안에 있으면 교회가 얼마나 더러워지겠는가’ 싶었습니다. 교회에 다닌 햇수는 오래되었을지 몰라도 영적인 상태는 여전히 거대한 갓난아이에 불과했고, 극도로 육신적이었으며, 온갖 병과 부정한 질병까지 앓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을 교회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계속 두었다가는 교회 전체가 이런 사람들로 가득 차서 큰일 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보다 훨씬 전에 저는 어떤 목사님이 자신의 교회 지도자에게 법정 고소를 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교회 지도자는 고소한 후에 우울증에 걸렸고, 다른 더 심각한 중병들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 목사들이 강단 아래에서 그를 위해 손을 들고 기도했지만, 저는 솔직히 기도할 마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 일은 깊이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깊이 연구하고 묵상한 끝에 깨달은 결론은, 교회를 세우려면 반드시 거룩한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교구를 세우려면 거룩한 교구를 세워야 하고, 구역(셀)을 세우려면 거룩한 구역을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확신이 있어야 믿음을 세우는 말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을 망치는 것이 바로 ‘육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의 육신을 처리해 주지 않고 그 사람 자신도 육신을 다루지 않으며, 여러분이 그의 세상적인 관점을 깨뜨려 주지 않고 그 자신도 처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를 영생의 도가 주는 축복 안으로 이끌 수 있겠습니까? 그를 영생의 도의 축복으로 인도하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망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귀신은 대단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의 육신의 고집은 대단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그레데 사람과 같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그레데 사람이라면, 그레데 교회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오신 많은 성도님도 처음에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를 안고 오셨습니다. 제가 답을 말씀드리자면, 아주 간단합니다. 바로 거룩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결단과 중심이 있다면 여러분은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여러분 안의 세상적인 것들을 깨부수겠다는 결단이 있다면 여러분은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부르심입니다.
그레데 교회는 참된 도를 저버렸습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이름만 교회라고 해서 다 같은 교회라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곳이 깨끗한 교회인지, 아니면 더럽고 추악한 교회인지 반드시 분별해야 합니다. 저는 교회 안에 암에 걸리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보며 때때로 깊은 탄식을 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암 문제를 해결하는 비결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바로 거룩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거룩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레데 교회가 참된 도를 떠났을 때, 바울은 디도에게 어떤 임무를 주었습니까? 그레데와 주변 도시들에 장로들을 세워 교회를 치리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혼자서 그 모든 일을 다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참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코로나에 걸린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도 코로나에 걸립니까?”라고 묻더군요. 허허, 저는 죄인의 괴수입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저는 의인의 표본이 아니라 죄인의 표본입니다.
제가 코로나에 걸리고 2주쯤 지났을 때, 우리 대화방에 있던 어떤 목사님도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2, 3일 만에 나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분이 나보다 훨씬 깨끗한가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낫고 나서 아주 장문의 글을 쓰며 ‘사랑이 넘치는 교회를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세운 교회가 서로 물고 뜯고 파당을 짓고 다투는 교회였기에 자신의 목회에 대해 몹시 불만족스러워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사랑이 넘치는 교회, 즉 육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가득 찬 교회를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3일 뒤에 소식이 들려왔는데, 그분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코로나 시기에 다 나은 것 같다가 갑자기 사망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영적으로 어떤 일인지 압니다. 갑자기 귀신에게 끌려간 것입니다.
그가 죽고 난 후 저는 생각했습니다. ‘교회를 네가 세운 것 아니냐? 네가 직접 시작한 것 아니냐? 네가 직접 만든 규칙들이 아니냐? 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네게 주신 영생의 도, 그 영생의 도를 전파하는 책임을 다하지 않고 거룩한 교회를 세우지 않으니 한순간에 귀신에게 끌려간 것이 아닌가.’ 갑자기 죽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귀신에게 끌려간 것이며, 회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요?
이 일은 제 안의 생각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이것은 주께서 내게 맡기신 책임이니, 저는 주의 영생의 도를 따라 이 도를 굳게 지키며 주님을 뵈러 가겠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우셔서 제가 세우는 교회가 주님과 동역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주의 영광으로 가득한 교회를 세우게 하옵소서.’ 이것이 당시 제 마음에 깊이 새겨진 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장로들을 세워 교회를 다스리게 할 때, 어떤 지도자가 다스리느냐에 따라 교회의 모습이 결정되고, 어떤 교구장이 다스리느냐에 따라 교구의 모습이 결정됩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우리 가운데 많은 평신도 사역자들과 교구장들, 그리고 수많은 형제자매가 매주 제 성경공부를 듣고 매주 제 설교를 듣는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담당 사역자가 세심하게 챙겨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큰 문제가 없는 것은, 우리가 전파하는 이 영생의 도가 오직 여러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유익을 얻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유익이 우리에게 풍성하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우리 삶 가운데 온전히 성취되기를 원합니다.
핵심은 여러분이 거룩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면의 세상적인 것들을 처리해야 하고, 영생의 도를 따라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면서 행위로는 그분을 부인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만약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행위로는 부인한다면, 그것은 가증한 자요 불순종하는 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길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장로를 세울 때, 장로를 세우는 자격 요건은 무엇입니까?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디도서》 1:6-9)
어떤 사람이 자신의 행위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게으르고 탐욕스러우며, 거짓말을 일삼고 악한 짐승 같은 그레데 사람 같은 자가 교회의 장로가 되고, 감독이 되고, 목사가 된다면 그 교회가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예전에 왜 나와서 교회를 개척했겠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갈 만한 교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일마다 설교를 듣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설교를 들으며 강단 아래 앉아 있다가 때로는 졸기도 했는데, 깨어나서 들어봐도 여전히 성경 말씀에 위배되는 이야기뿐이었습니다. 조금 틀린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빗나가 있었으니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제게 여러분이 있고 여러분에게 제가 있으며, 우리는 함께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교회를 함께 다스려 가고 있습니다. 서로 지도자가 되겠다고 다투어서는 안 됩니다. 왜입니까? 지도자가 되는 것은 겉보기에 화려한 자리가 아니라 막중한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제가 담당하는 교구에서 한 자매님을 맞이했습니다. 몇 달이 지난 후 그들이 저에 대해 평가한 것을 보며 하나님께 참 감사했습니다. 그 자매님이 중병을 앓는 과정에서도 저는 그 자매 안의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끊임없이 무너뜨리도록 도왔습니다. 교회는 권력을 다투는 곳이 아니라 책임을 다투는 곳입니다. 여러분이 제가 어떻게 섬기는지 보셨다면, 여러분도 그렇게 섬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섬기는 이유는 다른 어떤 목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교회는 재정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돈 걱정을 결코 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가 온라인 중심이라 지출이 적을 것 같지만, 온라인 사역에 들어가는 비용은 실로 막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궁핍하게 두지 않으시고, 우리의 모든 필요를 넉넉히 채워주셨습니다.
어떤 교회들은 재정이 부족하면 안절부절못하며 온 교회가 재정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지만 재정만을 위한 기도는 교회 본질과 큰 상관이 없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경제가 다소 어려워지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합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경제가 어려울 때 교회가 영적으로 흥왕합니다. 경제가 좋아지면 다들 돈 벌러 뛰쳐나가느라 예배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예배드릴 시간조차 없다고 합니다.
요즘 경제가 어렵고 마음도 답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럴 때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안의 논리 체계를 어떻게 무너뜨리시는지 아십니까? 육신적인 사람이라도 병에 걸리면 육신을 깨뜨리는 일에 매우 적극적으로 변합니다. 왜일까요? 육신을 깨뜨리는 논리에 따라 기도하면 상황이 호전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취업이 안 되던 사람도 육신을 깨뜨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립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병이 낫고 나면 ‘이제 드디어 다시 세상을 사랑할 자격이 생겼다’며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정말 패망의 길입니다.
교회를 엄격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이 증언이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 (《디도서》 1:13-14)
진리를 버린 자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계명이 있습니다.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계명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지도자를 세운 후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교회를 엄격하게 치리해야 합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엄격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파하라고 맡기신 그 영생의 도를 기준으로 해야 합니다. 육신을 처리하는 일에는 끝이 없습니다!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무너뜨리는 일에는 끝이 없습니다!
사람을 바라볼 때 결코 육신의 논리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육신의 논리로 보면 ‘저 사람은 곧 죽겠구나’ 싶습니다. 사람이 죽어갈 때의 모습이 대개 그러하지 않습니까?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체중은 계속 줄어듭니다. 그러면 수명이 다한 것일까요? 정말 죽을 때가 된 것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아닐 수도 있으며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복음의 능력에 비추어 본다면,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무덤에 있었지만 걸어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여러분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살리시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언제 죽을지 알지 못하며 우리는 점쟁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생의 도는 결코 육에 속한 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는다면, 스스로 세상의 것들을 허물고 육신을 위하는 것들을 깨뜨려야 합니다. 단호해야 합니다! 교회의 치리는 엄격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왜 이렇게 요구 기준이 높습니까?”라고 말합니다. 높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요구 기준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이미 숨이 넘어가던 사람도 다시 살아나서 멀쩡히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다스리는 것은 엄격하고 단호해야 하며, 사람을 엄히 꾸짖어야 합니다. 왜일까요? 이 영생의 도는 육신을 죽이기 위한 것이며, 육신을 위하는 것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위하는 악습을 여전히 품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육신을 위하는 모든 악습은 영혼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뼈가 썩어 들어가는 지경인데도 내면의 문제를 하나도 처리하지 않는다면 뼈는 계속 괴사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선생님, 뼈가 튀어나오고 덧자라났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뼈가 그렇게 덧자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는 그런 병을 보면 머리를 굴리거나 뇌세포를 쓸 필요도 없이, 발뒤꿈치로만 생각해도 단번에 압니다. 바로 육신을 위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제가 가진 온갖 영적 무기를 총동원해야 합니다. 태극권을 쓸 때는 쓰고, 칼을 뽑을 때는 뽑고, 도끼를 들 때는 들어서 육신을 위함, 세상을 사랑함, 선악을 분별함이라는 이 세 가지 악한 요소를 완전히 도려내는 대수술을 집도해야 합니다.
저는 이 수술을 꽤 잘합니다. 여러분도 제게 수술받기를 좋아합니다. 제가 요령 있게 잘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화나게 만들어서 저와 대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술을 받고 나면 영혼이 아주 시원하고 편안해집니다. 어릴 적에 제가 말을 안 들으면 어머니께서 “너 또 혼 좀 나야겠구나?” 하셨습니다. ‘혼난다’는 게 무엇입니까? 매를 좀 맞고 훈육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훈육을 받고 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바르게 됩니다.
오늘 부모 된 여러분, 여러분이 자녀의 육신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훗날 자녀가 여러분에게 어떻게 효도할지가 결정됩니다. 명심하십시오. 자녀의 육신을 처리해 주지 않으면 결국 자식을 망치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이의 성질머리는 점점 더 사나워질 것이고, 그때는 엄한 훈육이 필요합니다. 계속 훈계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아이의 육신은 점점 더 비대해집니다. 이것은 부모가 자식을 응석받이로 망치는 것이며, 자식을 맹목적으로 감싸는 것은 자식을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는 것은 엄격해야 하며, 사람 수나 헌금 액수를 좇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제게 증언해 주시는 바입니다. 저는 돈을 위해 사역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직 섬기기 위해 섬기며, 하나님을 섬기듯 여러분을 섬깁니다. 이것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약속으로 가득 찬 영생입니다! 이 세상 천지에 이토록 귀하고 아름다운 도는 다시없습니다! 저는 이를 위해 살기를 원하고, 이를 위해 죽기를 원하며, 이를 위해 제 자신을 온전히 바치기를 원합니다. 참으로 위대한 진리의 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이생의 논리 체계와 맞서는 것이며, 육신에 속한 백성들과 맞서는 것이고, 뿌리 깊은 세상의 가치관과 맞닥뜨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결코 쉽지 않으며, 종종 외로운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일하시며, 지금까지 승리하지 못한 적이 없습니다. 저의 바람은 여러분 모두가 영적 유익을 얻는 것이니, 참된 유익을 얻기 원하신다면 제가 선포하는 이 영생의 도를 따라 힘차게 달려가십시오.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파하라고 하신 영생의 도를 굳게 지키십시오
우리가 이성적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권면을 받아야 합니다. 권면하고 훈련하는 과정 가운데 주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참으로 우리와 함께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와, 정말 놀랍다!”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교회를 세울 때 결코 귀신이 함께하는 교회를 세워서는 안 됩니다. 교인들이 검사만 받으면 중병이 나오고, 또 검사하면 또 중병이 나오는 그런 비참한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 우리 교회는 그런 일로 분주하지 않을까요? 제가 육신을 이토록 엄격하게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하나님 은혜로 우리 성도님들은 병원비를 엄청나게 아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병상에서 고통당하는 시간도 엄청나게 줄였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제 말씀을 들으셨다면, 이제 굳은 결단을 내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영생의 도의 길을 지치지 않고 힘차게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사도 바울의 권면을 따라 거룩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교회를 함께 세워갑시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