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推荐评论
命定神学 关闭
【설교】- 복 있는 사람!

2025-08-03 2,539 有福系列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과 나눌 말씀의 제목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번 주일부터 우리는 《시편》을 본문으로 삼아 설교를 전하면서 동시에 《시편》 강해도 함께 진행하려고 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시편은 거의 다루지 않았고, 성경공부를 이리저리 하면서도 시편까지는 미처 닿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성경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공부하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는데, 이제 거의 다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시편 1편의 제목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 시는 다윗이라는 복 있는 사람이 쓴 것입니다. 이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가 얼마나 복을 받았느냐 하면, 평생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었고, 훗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며, 그의 인생은 너무나도 찬란했습니다. 그는 군사를 이끌고 전쟁에 나갈 때마다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진정한 상승장군(常勝將軍)이었고, 그가 행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였으며, 그가 계획한 일 중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경험을 총결하여 쓴 것이 바로 시편 1편입니다.

어떤 자매님이 제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제가 말했습니다. “지혜롭고 똑똑해야 합니다. 그렇게 미련해서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자매가 다시 물었습니다. “목사님, 그럼 어떻게 해야 지혜로워질 수 있나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그건 쉽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다윗이니 다윗을 배우면 됩니다.” 그렇다면 다윗을 어떻게 배울까요? 예전에는 《사무엘기》를 읽었지만, 지금은 《시편》을 읽으면 됩니다. 시편의 많은 시를 다윗이 썼고, 제1편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이 평생 복 없이 사는 것은 아주 흔한 현상입니다. 복을 받는 것은 쉽지 않지만, 복 없이 사는 것은 보편적인 일입니다. 평생 저주 가운데 살면 누리지 못할 복은 많아도, 겪지 않을 고난은 없습니다. 어젯밤에 우리 사역자가 한 자매님을 섬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자매는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사진을 보내왔는데, 제가 보기에 복 있는 사람의 모습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 자매는 말레이시아 사람인데, 싱가포르에 온 지 어느덧 5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대만에서 10년 동안 있었는데, 찢어지게 가난했고 어느 교회를 다녔지만 축복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어찌 된 영문인지 저를 찾아오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싱가포르로 와서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생활이 점점 나아지자, 사람이 어리석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어리석어졌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흥미를 잃고, 섬김에도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찢어지게 가난할 때도 사람들을 양육했는데, 지금은 양육을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되었고 양육하면 오히려 더 엉망이 되었습니다. 월급도 오르고 직장도 좋아지니 하나님께 대한 관심이 사라진 것입니다. 저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어리석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셨는데, 결국 기도하는 데는 흥미가 없고, 말씀을 읽는 데도 흥미가 없으며, 건강보조식품만 잔뜩 먹다가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 것입니다.

어제 기도하면서 그 자매를 보는데 마음이 너무나 답답하고 아팠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사람을 축복 안으로 인도하여 복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어찌 이리도 어려운가? 사람이 어찌 이토록 하나님의 행하심을 깨닫지 못하고, 복을 받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가?” 사람이란 영적인 일을 너무 모릅니다. 두드러기가 영적인 문제일까요? 영의 문제입니다. 누가 불러들였을까요? 자기 자신이 불러들인 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한 자매님이 자기 친한 친구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 친구도 교회 성가대에서 봉사하던 사람이었는데, 건강보조식품을 먹다가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경련이란 곧 간질 발작입니다. 우리 공동체에서 기도받고 나아서 거의 다 회복되자 떠나버렸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복 받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람을 지혜롭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정말 고된 일입니다.

사실 목회를 하다 보면 여러분의 고생을 저도 절반은 짊어집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어찌 마음이 힘들지 않겠습니까? 특히 아직 일이 터지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패망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는 것을 볼 때가 그렇습니다. 선지자도 필요 없고 예언도 필요 없이, 패망을 향해 질주하는 모습이 빤히 보이는데, 기가 막히지 않겠습니까? 건강보조식품이 영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건강식품 사 먹을 돈은 있으면서 기도할 시간은 없습니까? 그래서 저는 언제부턴가 ‘복을 받고 못 받고는 각자의 몫에 맡기자’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지혜로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윗이 그중 한 명이고, 나머지는 열 발가락까지 갈 것도 없이 열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성도님들이 축복된 삶을 살고 영적 세계에 대해 눈을 뜨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결국 선택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길, 축복받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축복의 길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다윗이 전하는 시편 1편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님은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암에 걸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말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수술 한번 하고 약 좀 드시면 낫습니다.” 어머니가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나요?”라고 묻자, 의사는 “아닙니다, 전혀 필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말의 꿍꿍이가 들리십니까? 바보나 그 말을 믿습니다. 요즘 의사들도 상술과 화술이 아주 뛰어납니다. 다 병원 과장들이 가르친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훈련하듯이, 그쪽 과장들도 그들을 그렇게 훈련한 것입니다.

수술비가 얼마 안 드니 감당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수술이 끝나자 의사가 말합니다. “주사를 더 맞으셔야 합니다.” “약만 먹으면 끝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으면, “이 주사를 안 맞으면 수술한 게 헛수고가 됩니다”라고 합니다. 세상에! 한 대에 4천 위안씩 하는데, 계속 맞다 보면 인테리어 업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6만 위안짜리 인테리어가 10만 위안이 되고, 10만 위안짜리가 15~16만 위안이 되는 식입니다. 이게 다 영업 기술 아닙니까? 하지만 그 사람들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밥벌이를 하니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 있는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일어나지 않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애초에 암에 걸리지도 않는데, 무슨 주사를 맞고 무슨 수술을 하겠습니까? 축복의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은 귀신에게 속을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속습니다. 귀신에게 농락당하고 사람에게도 휘둘리니 참으로 고달픕니다. 요즘 시대에는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가짜를 살까 봐 늘 경계해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참 좋습니다. 집 인테리어도 직접 하고, 소프트웨어도 직접 개발하고, 병도 스스로 다스리며, 학문도 스스로 가르치니 남들이 저를 속일 수가 없습니다. 기껏해야 생필품이나 조금 사는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복 받는 길을 알지 못합니다. 저주의 길은 하늘 끝까지 널려 있어서,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 모든 길이 저주의 길로 통합니다. 그러나 복을 받는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최근 뉴스를 보면 참 흥미롭습니다. 재앙은 늘 사람이 가장 잘나갈 때 갑자기 닥쳐옵니다. 어떤 유명한 스님이 있었는데,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중 노릇이나 잘할 것이지, 절을 운영하다가 무슨 CEO가 되어 가난한 절을 수백억, 수천억 규모의 비즈니스 제국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저는 그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여자를 얼마나 거느렸는지, 아들을 몇이나 낳았는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그가 도대체 뭘 먹었길래 몸이 그렇게 건강했는지가 궁금할 뿐입니다. 농담입니다.

재앙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바로 돌발적이라는 점입니다. 모든 재앙은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옵니다. 어떤 분이 댓글로 부자 몇 명이 투신자살했다는 글을 올렸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고 뉴스도 보지 않았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돈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재앙은 항상 돌발적입니다.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지 않고, 단순히 조문이나 규례로만 지킨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깨달은 바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마음의 감정이어야 하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무언가 빠진 것 같고, 말씀을 읽지 않으면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어야 합니다.

어떤 성도님들은 모임에는 꼬박꼬박 참석합니다. 그래서 제가 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저 규칙을 지키듯 자리를 채우지 마십시오.” “저도 모임에 나왔는데 나더러 어쩌란 말입니까?”, “저도 성경공부 했는데 뭘 더 바랍니까?”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말씀을 읽을 때 짜증이 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피곤할 수는 있을까요? 피곤할 수는 있어도 기쁘고 자원하는 마음이 듭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습니다. 마작을 좋아하는 사람은 밤을 새워 쳐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PC방에 처박혀 밤새 게임을 해도 피로를 모릅니다. 그러나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면 반드시 지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어떤 목회자가 사역을 그렇게 힘들어하는 이유는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라는 단어가 매우 중요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사랑에 빠져 뜨겁게 연애한다면 피곤하겠습니까? 뜨거운 사랑을 할 때는 피곤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라는 것은 너무나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행하는 수많은 일은 다 헛수고에 불과합니다.

가끔 우리는 참 이상하게 여깁니다. 그 사람도 모임에 나오고, 필기도 열심히 하고, 이것저것 다 하는데 매사에 너무 힘들어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불의의 사고를 당합니다. 귀신이 그런 사람을 안 건드리면 누굴 건드리겠습니까? 아침에 산책 나갔다가 달려오는 전동 스쿠터에 치이는 것은 다 귀신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뜨거운 사랑이 있는가 하면 차가운 사랑도 있고, 미지근한 사랑도 있습니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현대 가정의 20%가 극심한 불화 속에 산다고 합니다. 오래전 통계라 지금은 숫자가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략 20%는 지옥 같은 불화 속에 살고, 80%는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저주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다윗은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다윗이 왜 그렇게 많은 것을 보았을까요? 본인이 겪은 것도 많고 목격한 것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왕이었기에 큰 송사는 다 다윗에게 와서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직접 판결한 재판이 부지기수였는데, 이리저리 관찰해 본 결과 사람들이 너무나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날 다윗이 재판하고 있는데, 한 여인이 남의 집 소에 받혔다며 다윗에게 고소를 하러 왔습니다. 다윗이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소가 너를 받았겠느냐? 시어머니와의 관계는 어떠하냐?” 시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여인은 신이 나서 시어머니 흉을 이래저래 늘어놓았고, 다윗은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또 다윗이 판결한 유산 상속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모가 죽자 자식들이 유산을 차지하겠다고 피 터지게 싸웠습니다. 판결하면서 사정을 들어보니 과거의 케케묵은 온갖 이야기들이 다 쏟아져 나왔습니다. 법에는 법의 규정이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사람의 도리와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도리는 사람의 도리일 뿐이고, 하나님의 도리는 하나님의 도리입니다.

재판이 끝난 지 2년 만에 또 소송이 붙었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한 자매님 말로는, 자기 아버지의 후처는 평생 소송질로 먹고사는 사람인데, 형제자매 간에도 소송하고 무슨 일만 있으면 소송을 건다고 합니다. 다윗이 보니 그 사람이 또 온 것입니다. 지난번에는 이득을 보더니 이번에는 손해를 보았습니다.

다윗은 수많은 사례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의 눈에는 이득을 본 것 같아도 하나님 앞에서는 손해를 본 것이고, 사람 앞에서는 손해를 본 것 같아도 하나님 앞에서는 유익을 얻은 것이다.” 사람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을 모으고 관찰하여, 복 있는 사람이란 과연 어떤 사람인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은 ‘자기 자신대로 살려는 것’입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살겠다. 내 인생의 방식이 있다.” 하지만 여러분의 방식은 결코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의 방식이 아닙니다. “내 길을 가겠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 나는 나답게 살겠다”라고 하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육체의 소욕을 따라 행하고, 이 세상 풍조를 따르며,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면 결국 찾아오는 것은 패망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머릿속에 날 때부터 자리 잡은 생각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을 복되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사람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결코 제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로 좋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도 우리 머릿속에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다 타락하고 부패한 것들입니다.

왜 하나님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까? 왜 오직 여호와의 율법만을 즐거워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율법에는 두 가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저주이고, 다른 하나는 축복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바로 축복과 저주입니다. 저주 가운데 산다면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십시오. 평생 아무리 애쓰고 아무리 많은 돈을 모아도, 결국에는 패가망신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비참하기 짝이 없게 끝납니다.

사람이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아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할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은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이런 열정을 품고 계십니까? 제가 처음 교회에 발을 들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와, 이 하나님은 정말 좋으신 분이구나! 내가 그분께 드린 것도 없는데 나를 도와주시는구나.’ 내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려야 하나님이 내게 주시고, 내가 또 드려야 또 주시는 그런 관계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필사적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아주 작은 경험을 통해서도 이것이 보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저의 일과는 남들이 퇴근할 때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밤 8시까지 일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일을 좀 더 하거나 공부를 하다 보면 밤 11시나 12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성경을 읽고 잠자리에 든 뒤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아주 기이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주님을 믿지 않고 제 자신을 믿었으며, 제가 꽤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에 납덩이를 얹어놓은 것처럼 무거웠습니다. 셋방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기만 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버스를 타고 겨우 사무실에 들어가면, 이미 일할 기운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사장이 그런 직원을 보면 속이 터지지 않겠습니까?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믿고 난 후, 제게는 샘솟는 힘이 생겼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지치지 않는 힘이 있고 피로감을 느끼지 않으며, 걸음걸이가 젊은이들보다 더 가볍습니다. 만약 이것이 보물인 줄 몰랐다면 미련하게 건강보조식품이나 챙겨 먹었을 텐데, 제 머리가 나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엄청난 보물임을 알았기에 필사적으로 구했습니다.

그 후 제 연봉은 매우 빠르게 올랐고, 10년 만에 10배로 뛰었습니다. 10배가 되었다는 것은 평범한 축복이 아니라 진짜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 뜻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리라.’ 여러분, 복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너무나 좋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축복과 저주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줍니다. 이후 저는 많은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했는데, 그중에는 저희 어머니가 할아버지를 어떻게 돌보셨는지에 대한 일도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1962년에 돌아가셨는데, 어머니는 2천 위안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한 달 월급이 20위안이었으니, 한 달에 5위안만 저축해도 대단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해에 빚을 다 갚았을 뿐만 아니라, 저라는 아들까지 낳으셨습니다. 어머니에게 저라는 아들이 없었다면 정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저는 중국어 성경 세 권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습니다. 페이지가 다 떨어져 나갈 지경이 되면 새 성경으로 바꾸었습니다. 영어 성경도 한 권을 닳도록 읽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축복의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성경만 읽으면 졸리고 돈 벌 때는 눈이 번쩍 뜨입니다. 설교를 들으면 졸리고 휴대폰을 볼 때는 쌩쌩합니다. 영의 양식을 먹을 때는 하품이 나오고 양고기 샤브샤브를 먹을 때는 밤을 샙니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쓸데없는 수다를 떨 때는 졸리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때는 어김없이 졸음이 쏟아집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사랑하는 마음이 1백만 위안, 1천만 위안, 1억 위안을 사랑하듯 간절하다면, 진작에 열심을 내어 성경을 읽었을 것입니다. 저주받는 일에는 졸리지 않고 복 받는 일에는 졸리다는 것이, 얼마나 악하고 기괴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무엇을 사랑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는지 깊이 상고하십시오.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우리 내면에 당연하다고 여겼던 굳은 생각들을 깨부수십시오. 우리를 저주로 이끄는 거짓말들을 모조리 쳐부수고,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며 날마다 그릇된 생각들과 싸우십시오. 이것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

사람 안에 자리 잡은 자기주장은 너무나 완고합니다. 초창기 우리 교회는 주일 예배와 금요 소그룹 성경공부만 있었습니다. 현장 교회까지 택시로 한 시간이나 걸리는 것을 보며 성도님들이 너무 고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수요일에 셀리더들과 신약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수요일에 성경공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성도가 다 모여들었습니다. 오겠다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으니 수요일 성경공부, 금요일 성경공부,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기도가 필요한 성도들이 너무 많아져서 화요일 밤 기도회를 추가했더니 다들 또 참석했습니다. 그 후 토요일 모임이 생기고, 목요일 모임이 생기고, 월요일 모임까지 더해졌습니다. 우리 교회는 월요일부터 주일까지 매일 모임이 있어서 헛소리하고 노닥거릴 시간이 아예 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일에 차질이 생겼습니까? 아무런 지장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복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본문 말씀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1-6)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 일인지 깨닫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우리 마음 깊이 깨닫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가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의 말씀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시간을 구별하여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며 참으로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 안에 있는 저주받을 요소들을 다 제하여 주시고, 오직 주의 말씀 가운데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는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사랑하여 복 있는 자가 되게 하시고, 진지하고 엄중한 태도로 주야로 묵상하며 주의 말씀에 담긴 비밀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배경

시편 1편에는 언제 기록되었는지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쓴 시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왕이 되기 전 13년 동안 쫓겨 다니며 숨어 지내야 했고, 사울 왕이 그의 목숨을 끊임없이 노리는 고난을 수없이 겪었기 때문입니다.

왕위에 오른 후 그는 스스로를 경계했습니다. 왕의 자리는 너무나 바빴습니다. 도망자로 살 때보다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야 하는 왕의 자리가 훨씬 더 바쁘고 고단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한 가지를 깊이 생각했습니다. 자신 안에도 매우 강력한 육신의 성향들이 있음을 발견했고, 만약 그 길을 걷게 된다면 저주 가운데 빠질 것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편 1편을 써서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1-3)

다윗은 전쟁에 매우 능한 상승장군이었으며 결코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지난 세월 겪었던 수많은 경험을 잘 정리하여 시편 1편이라는 짧고도 명확한 좌우명으로 남겼습니다. 악인의 꾀를 따르려 할 때 좌우명을 보고 즉시 멈추었고, 죄인의 길에 서려 할 때 좌우명을 보고 즉시 돌아섰으며, 왕이 되어 교만해질 만한 위치에 섰을 때 오만한 자리에 앉으려 하다가도 좌우명을 보고 자기를 쳐서 복종시켰습니다.

그는 무엇을 했습니까?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했습니다. 그가 왜 이렇게 썼을까요? 국정으로 이리저리 바쁘다 보니 성경을 읽을 시간이 점점 부족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저처럼 아침 조회를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젯밤에도 저는 새벽 2시 반까지 말씀을 읽었는데, 여러분에게 나누고 싶은 것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참으로 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왜 분주하기만 할까요? 다윗이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복 있는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들은 항상 여유롭고 침착하게 살아갑니다. 머리 없는 파리나 목 잘린 닭(headless chicken)처럼 허둥대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파리의 머리를 떼어놓으면 이리저리 정신없이 날아다니고, 닭의 목을 치면 죽지 않고 사방으로 날뛰는 것처럼 정신없이 헤맵니다.

다윗이 돌아보니 자신도 가끔 어리석은 짓을 하여 이것저것 일을 그르칠 때가 있었는데, 그렇게 되면 얼마나 괴롭고 피곤하겠습니까? 집 인테리어에 비유해 봅시다. 방수 공사를 잘못해서 아래층으로 물이 새면, 위에서 샤워할 때 아래층 사람도 물벼락을 맞고, 위에서 변기를 쓰면 아래로 오물이 흘러내립니다. 남의 집을 망쳐놓았으니 물어줘야 하고, 자기 집 화장실 바닥을 다 뜯어내고 다시 공사해야 하니 얼마나 번거롭습니까? 보통 골칫거리가 아닙니다.

다윗도 분명 그런 괴로운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지난 몇 달간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았더니 변기가 막히고 배수관이 터지며, 이 사람 저 사람이 병들고 고통을 겪는구나.” 상황이 꼬이는 것을 보고는 문제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일깨우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고,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다짐한 것입니다. 이것은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결론이며, 다윗은 이를 기가 막히게 요약했습니다.

사람이 부주의하여 저주받을 짓을 한 번 저지르고 나서 “회개합니다”라고 하면 해결될까요? 회개는 유익합니다. 죽을죄는 면할 수 있어도 치러야 할 대가는 피하기 어려우며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깨닫고 주야로 묵상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옥상에 서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방심하고 바라보다가 정욕이 발동하여 저주받을 짓을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했습니다. 순간의 생각 차이이지만, 주야로 묵상하지 않으면 그 찰나의 생각 때문에 뼈아픈 고통을 당하게 되며, 결국 칼이 다윗의 집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현실을 돌아보십시오. 큰 절의 주지승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누구를 막론하고 반드시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을 조심해야 합니까? 저주를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겪는 일 중에 억울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순간의 그릇된 생각 때문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배경이며, 다윗은 복 있는 사람이 되는 법칙을 매우 명확하게 요약해 주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저주를 멀리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지금 악인입니까, 죄인입니까, 아니면 오만한 자입니까? 그렇게 살고 나면 어떻게 될까요? 대단한 일은 안 일어나고 그저 저주를 좀 받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별일 없는데요, 괜찮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런 상태에서는 헤어나오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여러분을 누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받을 자에게는 단 하나의 복도 빠뜨리지 않으시며, 저주받을 자에게는 단 하나의 저주도 빠뜨리지 않고 내리십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남는 장사이고 무엇이 밑지는 장사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사람의 눈에는 이득처럼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빚 2천 위안을 내어 시아버지의 병을 치료해 드린 것은 축복받을 결단이었습니까? 손해였습니까, 이득이었습니까? 오늘날 이런 며느리가 있다면 참으로 복을 받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여러 계명 중 하나일 뿐이므로, 한 가지 계명을 지켰다고 해서 다른 계명을 무시해도 된다거나 하나의 선행이 모든 허물을 덮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당시 어머니는 시아버지를 봉양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하셨습니다. ‘내가 이 남편에게 시집왔으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라고 여기셨던 것입니다. 훗날 예수를 믿고 나서야 저는 어머니가 매우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 앞에서는 손해를 본 것 같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시골 마을의 당 지부 서기로 발령받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당시 대대 당 지부 서기는 그 지역의 절대 권력을 쥔 최고 책임자였고, 저는 바로 그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사람의 꾀로 득실을 따진 것이 아니라, 어머니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 기쁜 마음으로 하겠다”라고 행하셨던 것입니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는 시신을 직접 업고 이발사를 찾아가 머리를 깎이고, 옷을 단정히 입혀 깨끗이 수습한 뒤 장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당시 어머니는 20대 초반이라 힘이 넘쳤습니다. 아무리 힘이 좋아도 시신을 업는 것은 몹시 무거운 일입니다. 저는 어머니의 담대함과 결단력을 깊이 존경합니다.

그것이 남는 장사였습니까? 엄청난 유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머니를 후대하셨고, 어머니는 평생 큰 고생 없이 사셨으며, 저를 따라 예수를 믿은 지난 수년 동안은 말년의 큰 복을 누리고 계십니다. 세상의 논리는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지만, 다윗의 논리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압살롬이 왕위를 찬탈했을 때도 그는 악으로 갚지 않았으며,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암행을 나온 황제와 마주친 적이 있었습니다. 6품 관원의 하인이 길에서 무소불위로 거만을 떨었습니다. 6품 관원이 황제 앞에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인은 그가 황제인 줄도 모르고 “우리 주인이 6품 나으리시다!”라며 으스댔고, 황제는 헛웃음을 지었습니다. 그 뒤의 이야기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말할 필요도 없이, 황제에게 밉보이고 무사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결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마십시오.

다시 정리해 봅시다. 우리는 교만할 자격도 없고, 악인이 될 자격도 없으며, 죄인의 길에 설 자격도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여러분의 말이 결정권을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이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앙이 언제 닥칠지는 여러분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누구의 손에 달려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감히 힘자랑을 하시겠습니까? 결코 하나님을 대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 영원히 굳게 서 있고, 내 말은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들이니,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과 죄인이 되지 않습니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시편 1:4-5)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이나 죄인이 되지 않습니다. 악인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지 않으며, 자기 안에 자기만의 저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저울은 남에게 손해를 입히고, 결국 자기 자신에게는 저주를 불러옵니다. 그래서 악인은 겉보기에 이득을 취한 것 같아도, 결국에는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흩어지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입김 한 번만 부시면 다 날아가 버립니다. 아무리 대단한 기업의 CEO라 할지라도, 사업을 아무리 크게 벌여 놓았더라도, 하나님이 바람 한번 불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인이 의인의 모임에 들지 못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나는 승리하는 교회에 속해 있다”라고만 말하지 마시고, 여러분 자신이 진정 ‘승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내가 승리하는 교회에 다니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통하지 않습니다.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역사합니다. 악인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입니다. 죄인이 누구입니까? 육체를 따라 살아가는 자가 곧 죄인입니다. 우리가 축복받는 사람, 복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악인과 죄인의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합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데, 만약 이 율법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면 그래도 즐거워하겠습니까? 무익한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화인명정신학(華人命定神學)이 분명하게 증명한 사실 하나는,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자는 진정으로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무엇을 해결합니까? 저주와 축복의 문제를 해결하고,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십시오. 저주받을 짓은 하지 말고, 복 받을 일을 많이 행하십시오.

제가 언급한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은 바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당황해합니다. 왜 그럴까요? 무엇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인지 알지 못해서 제게 묻습니다. “제가 이렇게 해야 합니까, 저렇게 해야 합니까?”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습니다. 양심이 무너졌는데 어떻게 여호와의 율법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왜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해야 합니까? 그것이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어르신들이 무엇이든 넣기만 하면 쏟아져 나오는 화수분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면 참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나서 보니, 여호와의 율법이야말로 진정한 화수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여호와의 율법을 보물로 여기지 않지만, 진심으로 고백하건대 제가 이것을 화수분으로 여기지 않았다면 어떻게 새벽 2시까지 성경을 읽을 수 있었겠습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자가 참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보물이다. 내 손에 이런 보물이 쥐여졌는데 그것도 모른다면 내가 바보가 아닌가?’ 이 점에 있어서 저는 지혜로웠습니다. 평생을 성경 읽기에 매진해 왔고, 눈 깜짝할 사이에 수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열심히 읽어도 온전히 깨닫지 못했는데, 목회자가 되어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며 하나하나 연구하다 보니 점점 더 밝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말씀은 보물입니다! 여러분은 보물을 원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이 포르쉐보다 좋지 않습니까? 포르쉐보다 훨씬 좋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좋은 집이나 부동산보다 낫지 않습니까? 부동산보다 훨씬 낫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권세보다 좋지 않습니까? 권세보다 뛰어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은 돈보다 훨씬 귀하며, 인생의 모든 필요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온전히 채워집니다. 평생 아무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으며, 그저 복 있는 사람이 되기만 하면 부자가 되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습니다.

사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여전히 벼락부자 같은 천박한 사고방식에 갇혀 있습니다. 일본에 가서 “나 돈 많다”라고 자랑하면 비웃음을 삽니다. 일본 사회는 이미 변해서 지식을 귀하게 여기는데, 돈 자랑을 하면 촌스럽다고 여깁니다. 지식도 있고 돈도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무지에 돈만 있고 거기에 교만함까지 더해지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미성숙한 단계에서 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재물이 좀 있다고 거들먹거리는 분이 계십니까?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복 있는 사람은 주야로 묵상합니다

왜 주야로 묵상해야 할까요? 말씀을 읽어도 잘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밤낮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사실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은 마음의 태도 문제입니다. ‘말씀을 반드시 온전히 깨닫고야 말겠다’는 태도입니다. 여러분이 우리 공동체에 와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많이 경험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이곳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여러분이 아직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제는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설교를 듣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이해될 때까지 파고드는 것입니다. 지극히 단순한 일이며, 이것이 바로 엄중하고 성실한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물을 주셨는데 사용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보물이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치유와 축사 사역은 성경에 너무나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만, 막상 읽어보면 그리 쉽게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저는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읽고 묵상하며 깨달음을 얻었고, 그 결과 《예수님처럼 치유와 축사 사역하기》라는 책을 썼으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102 과정》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깊은 연구와 탐구, 그리고 주야로 묵상한 끝에 나온 열매입니다. 우리의 《101 과정》을 위해 저는 3개월간 주야로 묵상했고, 《201 과정》을 위해서도 3개월 동안 밤낮으로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그 3개월 동안 말씀을 깨닫지 못해 참으로 답답하고 힘들었습니다. 성경은 한 번 읽는다고 바로 깨달아지는 책이 아닙니다. 최근에 《에베소서》와 《스가랴서》를 읽을 때도 온전히 이해되지 않아 밤낮으로 깊이 묵상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 아이가 참으로 기특하구나. 이토록 간절히 구하며 밤낮으로 묵상하니, 저녁 8시 성경공부 전인 7시 반에 깨닫게 해 주어야겠다’ 하시며 지혜를 열어주셨습니다. 이것은 진리를 구하는 태도의 문제이므로 우리는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주야로 묵상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매일 거짓과 유혹에 직면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이러한 도전을 마주하는데 어찌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일은 행해서는 안 되고, 저 일도 해서는 안 되며, 이런 짓을 하는 자는 악인이다.’ 많은 거짓말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단 하나의 거짓말에만 걸려 넘어져도 저주를 받기에 충분하며, 수많은 거짓에 빠지면 완전히 파멸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밤낮으로 말씀을 묵상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 명하셨습니다. “여호수아야,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라. 그리하면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라.” 그러므로 율법의 말씀이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강해하는 것만 듣지 마시고 반드시 성경 본문을 직접 읽으십시오. 원문을 수십 번 읽는 것은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3)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우리의 입에 머물러야 하며, 우리는 끊임없이 그 말씀을 깊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10년 전에 《창세기》를 읽으며 깨달은 것이 있었고, 9년 전에 다시 《창세기》를 읽으며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8년 전에도, 5년 전에도 읽었고, 올해도 다시 《창세기》를 읽을 것입니다. 읽을 때마다 언제나 새로운 은혜를 얻는데, 어찌 그 영혼이 메마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적으로 메말라가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의아합니다. 여러분도 이런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사역하는데 너무 메마릅니다.”, “신앙생활이 너무 무미건조합니다.”, “영혼이 너무 갈급하고 메마릅니다.” 성경을 항상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결코 메마를 수 없습니다. 제가 떠먹여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저 자신의 경험과 다윗 왕의 경험을 통해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아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원하신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복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이 행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관심을
关闭
暂无评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