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你解决了很多问题,从你平时的言语中流露出自豪感和成就感,但是你怎么做到不骄傲的呢?怎样平衡成就感和骄傲?
都不是我做的,都是神做的。我可知道我这两下子。人得知道自己,一个血肉之躯能成就啥呢?我不过是被神所使用,而且我只不过是愿意被神使用,仅此而已。如果说有成就感,那是真的。其实最重要的感,还是一个感恩,因为神竟然能够使用我。我是啥呀?啥也不是。
大家可能会觉得:老师,你以前是学霸,你怎么说自己就这两下子?我告诉你,学霸倒霉的时候还是一样倒霉。我都总结出来,我以前对自己的评价甚高。基本上我读中学的时候,从来没有读到屁滚尿流的样子,我真的不是说很用功,有大的压力,啥也没有;读大学的时候也没有。就是像日常生活,其实后来我就觉得我挺厉害。
但是倒霉的事临到的时候啥都不行。神就激动我,让我学会敬畏神,然后开始寻求神,后来信了主,才知道自己半斤八两。后来发现不是八两,只有五两。
Q2:老师,我帮一个姐妹问个问题,她结婚十几年没有孩子,她也祷告,她是没有信心,还是其他原因?
如果没有的话就别要了,没有就算了,别整一个欠债的来讨债。很多时候我们人不知道自己在干啥。我可得告诉你,我亲眼见证了一件事,我以前教会的一个弟兄夫妻俩,有了一个孩子以后,就再也生不了第二个。然后就去到医院做试管婴儿,生出俩个有点毛病的孩子之后,就倾家荡产了。房子也卖了,值钱的东西都卖了,为给孩子治病。你说这不是没事找事吗?我就在想这是在干啥呢?
人以为养一个孩子挺好,当这小孩小的时候,你还不觉得怎么样。等他长大了,哎呦,我的天,人家都上大学了,他上不了大学,闹心不闹心?闹心;人家一学就会,他一学都不会,又给他找补习老师。这顿折腾,闹心不闹心?闹心。
后来这孩子去了美国,她本来是个女孩,又带另外一个女孩回来了。闹心不闹心?闹心!我有个同学说:哎呀,我儿子去美国读书,别带回一个小黑子回来就行了。你就告诉她,神拦阻她,不让给他一个讨债的。
Q3:老师,不要惧怕,是有真信心。我对于真信心和假信心的区别,还是不太明白。
真信心是建立在神的话上,假信心是建立在一个感觉上。神的话怎么说,就会怎么成就,你要了解神的话。我知道,我们当中很多弟兄姐妹,特别喜欢凭自己的感觉,感觉那东西不叫做信心,听明白了吗?
Q4:老师,你看到人不亨通的时候会怎么说?分不认识神的人和基督徒?
我看到基督徒倒霉的,我告诉你,一定是得罪神、不敬畏神的人。所以,不亨通要小心。为什么?他以他自己的逻辑为逻辑,以他自己的标准为标准,以他自己的判断为判断。但是人其实只有一个标准,就是神的话,人不敬畏神是个悲剧。大家得知道,不敬畏神的人,不管他信主也好,不信主也好,都是很要命的。
那么什么叫做敬畏神?要知道,神的话你不相信,就是对神很大的羞辱。《圣经》上白纸黑字写的,只要你稍微好好读一下,你就知道他说的啥,不用那么深,不用好像是要怎么着似的,就能知道。但是很多人就明摆着就是要违背神。
我给你举个例子。有一个牧师,标榜为自己是一个福音派牧师。那福音派牧师最典型的是对神的话要认真,结果他在教会里头挂了一个大横幅:禁止方言祷告。哎?你在《圣经》里头,稍微读一下,你就知道这话不对。后来怎么着?他因贪腐被抓,所以这就是不亨通。
Q5:老师,请问如何才能对付家族背后的鬼?一方面是最近经常被搅扰得厉害,另一方面是担心下个月过年回家,如何面对父母。
其实我想,这个人被搅扰,你千万不要以为是被家族的鬼搅扰,是被你里面的那套逻辑搅扰。我不觉得你过去那些年是一个爱神的人,我也不觉得你被鬼搞得很惨,你突然间回来了,你就成为一个爱神的人,没有这回事。
记住,我给大家解决所有问题的关键,最关键的就是爱神!在十诫里头怎么写的?说恨神的,神必追讨他的罪,自父及子三到四代;爱神的人,神必向他守约施慈爱,然后怎么着?直到千代。大家明白这话吗?神向你守约施慈爱,因为什么?因为你爱神。真正解决问题的关键就叫做爱神。
一个人不爱神,爱世界,我给你讲,考虑问题没有几个事儿不是照着人的逻辑考虑的,都是那点屁事儿,男生女生谈恋爱就是卡巴裆那点事儿,整的那些乌烟瘴气的东西,然后把自己整得很惨。为什么?因为人不知道什么叫做爱神。结果一爱,爱上一个渣男。
我得告诉你,人不用害怕家中背后的鬼,那个东西没有神厉害。因为神是全能的,祂掌管一切。我们若是依靠神,就没有任何黑暗的权势可以胜过我们。为什么最近你彰显被搅扰得很厉害?脑子里的根还在,你还是属于他们的。不是我要把你往那里推,是把你从那里往外拽,要爱神!
怎么爱神?我问你,波斯王尚且被掌管在神的手里,你爸你妈算个什么呢?怕什么呢?你回家该说的说,不该说的不说。
Q6:老师,您讲得太棒了,我感受到神借着您这个忠心的仆人向我说话,竟然在您的讲道中,间接地解答了我的情感问题、情绪问题、职场问题。神太伟大了!
我刚才讲的爱神也是跟你讲的,好好地爱神。我深深地知道,如果能够好好爱神,那是你的造化。有的人怎么都转不过这个弯来,如果能够听我的劝,我查《圣经》,你再查考《圣经》的原文,你看我说的是与不是。如果我说的是《圣经》这个意思,那不是这个意思是什么意思?你一定会走上亨通的道路,多好!我巴不得弟兄姐妹都有很多亨通的见证。
愿神祝福大家!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이어서 《에스라》 5장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주제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는 자는 반드시 형통하리라”입니다. 비록 사람마다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는 사람은 반드시 형통합니다!
먼저 여러분께 이야기 하나를 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이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해 전에 한 자매님이 우리 교회에 왔습니다. 그때는 그래도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조금 있어서 제가 직접 세례를 베풀고, 성전을 건축하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 달 뒤에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돌아왔는데, 돌아와서는 겉보기에 아주 “영적인” 사람처럼 변해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무슨 일이 있긴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나도 불통(不亨通)했습니다. 300만 위안을 들여 집을 샀는데 아파트 공사가 중단되어 흉물이 되었고, 대출금은 그대로 갚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집은 날아갔고, 그 일로 그저 그렇게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생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데 어떻게 형통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손 아래 있을 때 형통하다는 것을 그녀는 몰랐던 것입니다.
최근에는 또 외국인 남자친구를 사귀었는데, 그 남자친구에게 12만 달러를 사기당했습니다. 그 12만 달러를 송금할 때 은행에서 차단당했는데, 송금이 안 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소송에 휘말리게 되어 지금 그 소송을 처리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왜 다시 우리 교회에 왔을까요? 우리가 이 소송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 배후에는 귀신이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사람이 이것들이 영적 세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정말 비참해집니다. 만약 여러분의 머릿속에 여전히 그 하찮은 일들만 가득 차 있고, 세상에서 그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간다면, 그것은 분명 저주를 받은 것이며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 저주받았다는 걸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병원에 가보시면 알게 됩니다. 언제 그런 일이 누구에게 닥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는 자는 반드시 형통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번 장의 주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무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사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게 하시다
《에스라》 4장에는 고레스 왕이 갑자기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고레스 왕을 몇 년 더 살게 하셔서 성전을 다 짓게 하지 않으셨을까요? 사실 하나님은 그 일 자체에 관심이 있으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그런 마음이 있는지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고레스 왕에게는 캄비세스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캄비세스가 뒤를 이어 페르시아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때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성전을 건축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와서 방해하며 캄비세스에게 상소문을 올렸고, 결국 왕이 성전 건축을 중단하라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고레스 왕은 하나님을 경외했고 그 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있었지만, 캄비세스에게는 그런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는 “내가 왜 돈을 들여 이런 것을 지어야 하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성전 건축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 공사를 멈추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는 것은 사람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행정 명령이 내려오자 왕의 뜻을 거역할 자가 아무도 없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공사를 멈추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16년이 지난 후 다리오가 왕이 되었습니다. 다리오는 캄비세스의 매형으로, 이전에 고레스 왕의 휘하에 있다가 고레스 왕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많은 고증이 있습니다. 결국 이 매형이 처남인 캄비세스를 처단해 버렸습니다.
이것은 참 신기한 일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캄비세스를 제거하시고 다리오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리오 왕이 유대인들의 성전 건축을 지지하는 왕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일에만 바빴고, 하나님도 그들을 감동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때가 이르자 하나님의 영이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그리고 유대 백성을 감동시키셨고, 동시에 선지자 학개로 하여금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감동시키셨을까요?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학개》 1:1-6)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감동시키시는지 보셨습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키십니다. “너 좋은 세월 보내고 싶지? 그렇게 못 살게 해 주마! 네가 번 돈을 구멍 뚫린 전대에 넣게 만들겠다!”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짧은 이야기 역시 바로 이런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학개》 1:7-9)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하는 모든 수고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 (《학개》 1:10-11)
제가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은 이 일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만약 자신이 하는 일마다 형통하지 않고 늘 가로막히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우리가 자기 자신만 돌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만 돌보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감동시키십니다. “너 이거 귀하게 여기지? 네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적게 얻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마셔도 흡족하지 않게, 즉 너희가 신경 쓰는 그 모든 것을 내가 불어 없애 버리겠다.”
그렇다면 이 일이 무엇과 관계가 있습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것저것 온갖 것은 다 두려워하면서 하나님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어디 두고 보십시오! 이러한 일들이 반드시 여러분에게 임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정말 그 성전이 필요하셔서 그러셨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셨고, 스룹바벨도 감동시키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까요? 스룹바벨이 유다 총독으로 있을 때 왕에게 “왕이여, 올해 우리에게 흉년이 들었으니 구제금을 좀 주십시오”라고 상소를 올린다면, 왕은 “내가 너한테 돈을 바라고 있는데 내가 어디서 돈을 마련해서 너한테 주겠느냐? 그건 네가 할 일 아니냐?”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러니 스룹바벨의 직무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선지자 학개가 이렇게 말하자, 왕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라는 조서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비록 캄비세스 왕이 일찍이 그들에게 건축하지 말라는 조서를 내렸지만,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를 제거하시고 다리오 왕을 일으키셨습니다. 사실 듣기에는 안 좋을지 몰라도, 다리오가 비록 고레스 왕의 딸과 결혼했다 할지라도 어떤 면에서는 찬탈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하나님의 역사인데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왕을 바꾸셨을 뿐만 아니라,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도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로 바꾸셨습니다. 그렇다면 스룹바벨이 총독으로서 그들과 교류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분명 교류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 16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과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결코 잊은 적이 없었으며, 그곳에서 자신들의 믿음을 연단했습니다.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는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 기간 동안 늘 사람들을 이끌고 기도했고, 그 후 캄비세스는 흐지부지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전에 잘못을 저지른 방백과 서기관들을 향해 하나님은 다리오 왕을 통해 “이 녀석들이 부패했으니 잡아들여라!” 하고 조서를 내리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새 왕이 올라와 옛 왕을 처단하고, 새 총독이 옛 정치인을 대신했으니 정치적 투쟁이 매우 치열했던 것입니다.
다리오 왕 제2년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학개에게 계시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라. 그들이 겪은 이 모든 일은 사실 내가 이스라엘 백성과 스룹바벨을 감동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스룹바벨은 생각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사람만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가! 하나님께서는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하는 모든 수고에 한재를 들게” 하실 수 있는 분이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복을 받는 관리가 그 지역을 다스리면 그 지역에 많은 기회가 생기지만, 저주받은 관리가 다스리면 그 지역에는 많은 재앙이 임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억울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사실 불운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자리에 부임하자마자 전염병이 터졌다면, 그것이 총독이나 서기관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전염병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결국 왕은 그를 면직시켰습니다. 스룹바벨도 하마터면 면직당할 뻔했습니다. 왕이 “네가 거기서 총독 노릇을 하는데 왜 전염병과 가뭄과 기근이 생기느냐? 그를 파면하라!”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말씀드리지만, 많은 일이 이렇게 돌아갑니다.
제가 예전에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관리들이 어떻게 평가받는지 아십니까? 갑자기 어느 지역의 현장이나 시장으로 파견될 때, 사실 당신이 이것저것 무엇을 했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곳에 간 후 경제가 살아나는지 살아나지 않는지를 봅니다.”
사실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당신이 무엇을 했는가와 상관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복을 받은 사람이라면 복된 관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불운한 관리인지 아닌지를 시험해 봅니다. 불운하면 쓸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이 프로젝트 저 프로젝트를 벌이는 것을 지켜볼 여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프로젝트 하나를 시작했더니 중단되고, 또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했더니 또 중단된다면, 당신은 재수 없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무리의 마음을 감동시켜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스룹바벨에게는 정말 이런 담력이 없었을 것입니다. 스룹바벨은 생각했습니다. ‘내가 성전을 짓지 않고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나 역시 망하게 될 것이다. 하는 일마다 형통하지 못할 테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이 자리에 세우셨고, 고레스 왕이 나를 유다 총독으로 파견한 때부터 지금까지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들의 동패들은 다 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것은 하나님 덕분이다. 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 하나님께 감동을 받겠다.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겠다. 복을 받는 총독이 되겠다!’
다리오 왕 원년부터 그들은 이러한 일들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다 겪고 난 후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은가,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니 무슨 말인가?’ 백성들에게 성전을 지을 마음이 있었을까요? 제가 보기에 그들은 자기 집을 꾸밀 마음은 결코 식지 않았고, 그 어떤 것도 그 마음을 꺾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캄비세스가 성전 건축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려서 천만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집은 여전히 황폐했을 것이고, 우리는 스룹바벨을 따라 쓸데없이 무슨 하나님의 성전이나 짓고 있었을 텐데!’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여전히 황폐해 있으니 사람이 복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복된 삶을 살게 되었다면 여러분은 저에게 정말 큰 빚을 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경제 환경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여러분의 경제 상황이 점점 좋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신기하지 않습니까? 며칠 전 어떤 자매님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회사에서 감원을 했는데, 저는 오히려 월급이 올랐어요.” 남들은 잘렸는데 그녀는 월급이 올랐으니, 이런 일을 어디 가서 설명하겠습니까?
재작년에 제가 어떤 자매를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하나님을 섬기는 데 매우 열심이었습니다. 이전에는 공사 원가관리사 시험을 아무리 쳐도 합격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우리가 계속해서 그녀를 자유케 해 주고 지각(悟性)을 열어주며 조금씩 조정해 나갔더니 결국 합격했습니다. 지금 건설업계가 얼마나 황폐합니까? 부서 인원 14명 중 13명이 감원되었는데, 오직 그녀 한 사람만 남았습니다. 여러분에게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다면 어찌 형통하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형통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기억해야 합니다. 종교적 냄새만 가득하고 발을 땅에 딛지 못한 채 구호만 외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많이 일하고 많은 것을 바랐는데 얻은 것이 너무 적구나,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여러분이 아직 하나님께 감동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일어나 하나님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우두머리들과 장로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건축하기 시작하다
백성들은 이러했습니다. 서넛씩 짝을 지어 모여 앉아 술을 데워 마시고 완두콩 한 접시를 차려놓고 한담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이 말합니다. “《학개서》에 나오는 말이 진짜일까?” 다른 사람이 말합니다. “내 생각엔 진짜 같아. 그가 말한 게 얼마나 정확한지 봐. 우리가 많이 얻기를 바랐는데 다 불어 날아가 버렸잖아.” 또 다른 사람이 이어서 말합니다. “하나님도 참 대단하시네.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데, 그래도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야지.”
“사람이 자기를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멸한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의 이기심을 이용하시지 못하겠습니까? 이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본성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스룹바벨과 그의 부하 관리들은 생각했습니다. ‘올해도 또 힘들겠구나. 작년에도 황제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었지. “너희는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거냐? 왜 다른 지역에는 재난이 없는데 너희 쪽에만 재난이 나느냐? 저기 사마리아는 멀쩡한데 왜 너희 쪽에만 재앙이 생기는 거냐? 다 같은 팔레스타인 땅 아니냐?”’ 아, 스룹바벨이 황제에게 어떻게 답장할 수 있었겠습니까? 상소문을 쓰기가 너무 힘듭니다. 자기가 재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답이 안 나옵니다!
스룹바벨이 부하들과 상의하여 말했습니다. “우리가 자리를 지키려면 성전을 지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지 않는다면,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처럼 제거당하고 말 것이다. 비록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 사이에 여전히 정치적 암투가 존재하지만, 그 배후에는 보이지 않는 손, 곧 하나님의 손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
누군가 묻습니다. “그럼 총독이 와서 캐물으면 어떻게 합니까?” 스룹바벨이 말했습니다. “괜찮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목이 달아나는 것은 마찬가지다.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는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가로막다가 저주를 받아 제거되었다. 그러니 그냥 하자! 위험을 평가해 보자. 만약 어명도 없이 함부로 하면 목이 달아나겠지만, 나를 이곳에 보내 성전을 짓게 한 것은 고레스 왕이었다. 비록 캄비세스 왕이 공사 중단 명령을 내렸지만, 캄비세스는 이미 죽었으니 그를 들먹여서 무엇하겠는가? 고레스 왕이 나더러 성전을 지으라 했는데 내가 지금까지 다 짓지 못했으니, 꺼낼 말은 꺼내고 꺼내지 말아야 할 말은 꺼내지 말자!”
스룹바벨과 백성들이 강건해졌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무턱대고 바보같이 강건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다 계산하고 따져본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지 못하겠습니까? 지켜주십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저에게는 거대한 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에게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하나님과 맞서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맞서면 하나님께서 마음먹고 치실 때 여러분은 끝장납니다. 그러니 절대 하나님의 눈 밖에 나지 마십시오!
학개가 옆에서 말합니다. “맞습니다! 맞아요! 여러분 말씀이 참 맞습니다.” 스가랴가 말합니다. “스룹바벨, 당신의 말을 들어보니 총독 자리는 보전할 수 있겠군요.” 이 사람들은 참 재미있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세세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들이 스룹바벨과 일상의 이야기를 나눈 것은 저의 추측이지만 대체로 이런 뜻이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백성과 지도자, 장로들의 마음이 다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럼 하자! 무엇이 두려운가?’ 결국 그들은 이듬해에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사역은 결코 장난이 아닙니다. 이것은 종교적으로 구호나 외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실전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를 가로막던 세력들은 다 하나님에 의해 꺾이고 쓰러졌습니다. 비록 방해로 인해 우리가 사역을 펼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우리 안의 중심만큼은 꺾일 수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때 귀신은 반드시 방해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안의 이 마음은 하나님께 일일이 자극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애초에 이것을 위해 사는 자들이며,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이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 온 땅의 만국 만민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스룹바벨이 이렇게 말하자 모든 사람의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마음이 오락가락 불안했는데, 이제는 위로를 얻은 듯했습니다. 이때가 다리오 왕 제2년 6월 24일이었습니다. 참으로 좋습니다. 그들은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장로들을 돌보시다
이 일은 자칫 잘못하면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와서 물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니나 다를까,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의 동관들이 무리를 이끌고 와서 말했습니다. “누가 너희에게 조서를 내려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스룹바벨과 유다 장로들이 은밀히 말했습니다. “과연 며칠 전 우리가 회의할 때 말했던 그대로구나. 이제 우리가 해야 할 말을 그에게 다 전하자.” 그리하여 스룹바벨이 말했습니다. “내가 이 지역의 총독이 된 것은 고레스 왕이 나를 파견했기 때문이며, 원래 성전 안에 있던 귀한 금은보화와 그릇들을 다 가지고 왔다. 내가 바로 그 세스바살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돌아가 페르시아 왕의 보물전각을 조사해 보아라. 이런 기록이 있는지 없는지.” 알고 보니 정말로 그런 기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예전에 건축되었던 성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이는 본래 이스라엘의 큰 왕이 건축하여 완공한 것이었으나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갈대아 사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이 성전을 헐며 이 백성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겼더니
그러나 바벨론 왕 고레스 원년에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성전을 다시 건축하게 하고 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금, 은 그릇을 옮겨다가 바벨론 신당에 두었던 것을 고레스 왕이 그 신당에서 꺼내어 그가 세운 총독 세스바살이라고 부르는 자에게 내주고 일러 말하되 너는 이 그릇들을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 성전에 두고 하나님의 전을 제자리에 건축하라 하매 이에 이 세스바살이 이르러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 지대를 놓았고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건축하여 오나 아직도 마치지 못하였다’ 하였사오니 (《에스라》 5:11-16)
얼마나 훌륭한 대답입니까!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사사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건축하게 한 것입니다. 고레스 왕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고레스 왕은 바벨론 왕을 멸망시키고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다 수긍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가 르훔과 심새의 일을 알았을까요? 알았습니다! 불과 몇 년 전 일입니다. 이전의 방백과 서기관은 모두 체포되어 수감되었습니다. 닷드내와 스달보스내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우리 괜히 이 일 건드리지 말자. 우리는 하늘의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종들을 감당할 수 없다. 황제에게도 이 일은 굳이 보고하지 말자.”
그러니 사람이 말을 할 때 수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언급하지 말자. 황제에게서 편지가 와서 당장 그들을 멈추게 하라고 하든 말든 우리는 알 바 아니고, 이 일에 손대지 말자. 그들이 하고 싶으면 하게 두자. 우리마저 르훔과 심새처럼 하나님께 호되게 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정치가들이 영적 세계를 알았을까요?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다! 어떻게 돌보셨습니까?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의 마음에 이런 생각을 품게 하심으로써 유다의 장로들을 돌보신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이 잘나서 그런 것입니까? 당신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이것을 말할 수 있고 저것을 말할 수 없고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총독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아야겠다’는 작은 지혜를 갖게 하셨다는 점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어떤 사람들은 비록 하나님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모독하고 저주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다가 결국 묻힐 곳도 없이 비참하게 죽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어디 하나님과 맞서 보시겠습니까? 목숨이 아깝지 않습니까? 그래서 총독은 그들의 공사를 중단시키지 않았습니다. 공사를 중단시키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었지만, 핵심은 사람의 생각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형제자매들은 사장은 몹시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사장이 그를 볼 때마다 껄끄럽게 여기고 전혀 귀하게 보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성전을 건축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실 터인데, 사장이 여러분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이겠습니까?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정말로 형통하며, 하나님께서 정말로 돌보십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것과 돌보지 않으시는 것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시면 귀신이 여러분의 일을 망치지 못하게 막아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지 않으시고 귀신 몇 놈을 보내 여러분을 치게 하신다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 새로운 총독은 매우 영리했습니다. 여러분은 교훈을 얻으셨습니까?
그들이 은밀히 알아보니, 르훔과 심새는 유대인들에게 공사를 중단하라고 명령했다가 얼마나 비참해졌는지 모릅니다. 한 명은 암으로 죽고, 한 명은 체포되어 감옥으로 끌려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벼슬하는 사람이 비리 한두 번 안 저지르나? 그렇게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성전 건축을 가로막던 세력이 다 사라졌고, 성전 건축을 방해하던 방백과 서기관도 사라졌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관리 노릇도 그런 영적 실력이 없으면 해낼 수 없습니다.
원수들도 사람이 일할 때 형통한지 아닌지를 살필 줄 안다
그 글에 일렀으되 “다리오 왕은 평안하옵소서 왕께 아뢰옵나이다 우리가 유다 도에 가서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가 본즉 성전을 큰 돌로 세우며 벽에 나무를 얹고 부지런히 일하므로 공사가 그 손에서 형통하옵기에 (《에스라》 5:7-8)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는 유대인들이 그곳에서 열정적으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보고 이 일이 형통함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관찰해야 합니까? 바로 이 일이 형통한지 아닌지를 관찰하는 것이며, 관찰해 보니 그 배후에 그를 돕는 영이 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원수들조차 사람이 손으로 하는 일이 형통한지 아닌지를 살필 줄 아는데, 하물며 우리이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은 형통한지 아닌지를 살피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일을 하면 할수록 점점 쪼그라들고 메말라간다면, 그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제가 말씀드리지만, 제가 사람들에게 일하는 법을 가르쳐 줄 수는 있어도 복을 받는 것은 결국 사람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당신은 과연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형통하게 하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원수들도 관찰해 보고 대단하다고 느껴서,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스룹바벨을 건드리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간들 방해를 받지 않겠습니까? 다 받습니다! 만약 영적 세계가 우리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세상을 아주 사랑하는 교회를 세운다면 귀신은 방해하지 않겠지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스룹바벨을 본받으십시오. 그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 (《학개》 1:12-13)
그러므로 절대로 하나님의 임재는 없고 귀신만 함께하는 교회를 세우지 말고,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실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여러 왕국들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의 동무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학개》 2:20-23)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저는 참으로 깊은 감회를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대에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으며,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반드시 형통하게 될 것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다시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개》 2:6-9)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이러한 마음을 주셔서 모두가 형통한 삶을 살아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비록 당신의 능력이 부족할지라도 당신은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기로 선택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그분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할 때, 이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찰 것이며, 그 나중 영광은 이전 영광보다 더 클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임재는 앞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나타내실 임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현재에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훨씬 더 클 것입니다! 추구를 멈추지 마십시오. 형통하다고 해서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결코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한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만약 자신이 이미 마음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아직 덜 다한 것이고,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온 마음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전을 짓는 자로 삼아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는 자는 반드시 형통합니다!
이번 성경공부는 여기까지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