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神的荣耀到底是什么?永恒的生命到底有多好?神的祝福到底有哪些东西?
这是很好的问题。有一个人眼睛是瞎的,耶稣一弄,就好了。有一些人就问:这个人眼瞎,是他父母的罪呢还是他的罪?很多人的眼光放在谁的罪上了。耶稣说:不是,是为了神的荣耀。(参《约翰福音》9:1-3)透过这个故事,我们能够解释啥呢?神的荣耀到底是什么呢?
如果一个人眼睛本来是瞎的,突然间能看见了,值多少钱?如果有人肝坏了,一祷告,好了,值多少钱?如果有人肾坏了,一祷告,好了,神给你一个新的肾,值多少钱?老多钱了。如果耶稣开个医院,肯定可以上市。那我问你,神的荣耀值钱还是不值钱?当然值钱。瞎眼的能看见,瘸腿的能走路,大麻风的得洁净,死人从死里复活。耶稣去参加婚宴,酒没了,耶稣用水变了三缸好酒,三缸的茅台!值老多钱了。这是不是神的荣耀?神的荣耀值钱还是不值钱?比钱还值钱。
咱们当中祷告好的病有多少?老些个了。前两天我还在跟我的同工分享。2014年,有个姐妹,她是个忧郁症患者,很难受、很辛苦,因为一直解决不了忧郁症的问题,半夜发了个电邮给我,我在一、两个小时之内就回复了她,并且到今天都在一直服侍她。转眼十多年过去了,她越过越好、越兴盛。你说神的同在值多少钱?神的同在是无价的。大概十多年前,有一个重度忧郁症患者,又要割腕,又要跳楼。他妈带他来找我,现在完全正常,而且成了一个很优秀的老师。所以永恒里的盼望多好!
Q2:老师,我想问一下,工作忠心怎么理解?跳槽是不忠心吗?
跳槽或者不跳槽都可以是忠心,也可以是不忠心,其实跟忠心不忠心的关系不大。忠心是好好干。跳了槽以后还是要好好干。咱们大家有些东西真的需要调整。跳槽跟忠心没关系,别问这种没关系的问题。
Q3:老师,我们每天都在讲要有永恒的盼望。在生活当中,该怎么看才能看到永恒的盼望?
雅各怎么看的?他能看到永恒的盼望吗?什么人能看到永恒的盼望?就是对生活里的事情不那么在乎的人。人家减你的薪水,你不用那么在乎;遇到什么事,也不用那么在乎。为啥?因为有永恒里的盼望。所以,你问我有永恒里的盼望会有什么反应?很多事会变成小事。
Q4:老师,我在和别人搭档工作的时候,有的时候任务完成了,工做完了,没有用了8小时,我给他算8小时。这是不是没有主人心态呢?我是不是应该只给他算实际的小时呢?
一听这种问题,我就觉得大家的脑子好像不是特别好使。这是个啥问题?我让你有主人心态不是让你给人算小时去了,而是算你的小时。你觉得这些事跟忠心不忠心有关系,而我是让你去开始解决问题,把业务、生意、工作做得越来越好。算8个小时或7个小时,算完了,跟人家斤斤计较,你说好还是不好?不可能好!重要的不是计较一个小时还是两个小时。做主人,不是你给别人怎么做,而是你自己能不能成为一个有价值的人。
Q5:我的一位要好的同事,性格很容易焦虑,又很容易被卷。我和她聊天时,经常会跟她讲一些案例和故事,再总结一些属灵的规律。她说受我的影响很大,觉得受益匪浅。但是,她骨子里却还是很属世界的,也不寻求神。那我还有必要再这么消耗时间和她聊天吗?
如果大家中午都在一起吃饭,你在那儿说几句也就ok了。如果单独拿时间来跟她说这件事,我看你还是干点使自己成长的事吧。因为做了也没什么太大益处。有的时候说教没什么用。
Q6:老师,既然钱财是不义的钱财,我们还要拼命做工赚钱吗?
这个问题很有意思。如果你是为了赚钱,那就麻烦了。钱财既然是不义的钱财,为什么神还要我们用一锭银子赚两锭,两锭银子赚四锭,五锭银子赚五锭?其实不是钱财的问题,而是忠心的问题。如果你在这世上,把神交付你的东西好好管理,那叫做有忠心,因为将来要派你管理很多东西。不是把眼睛放在钱上,但是在赚钱的过程当中,使你得着造就,可以实践信心,这才是关键。你现在不管,将来你到神那里你干啥去?
Q7:老师,雅各真的在地上的日子没有得到很多的钱、地位、尊荣,但他所相信的天上的祝福,这个天上的祝福到底是什么?神让我们追求,那个到底是什么东西?
这个问题很好。我问你:人活着到底是怎么一回事?我告诉你:人活着是人的灵住在人的身体里面活着。那人死了呢?是人的灵离开了人的身体。那人死了以后,人的灵去哪儿了?你可以不关心,但这是一个真实的事情。千万不要等到那一刻,牛头马面架着你就走,然后油锅都支好了,火也烧着了,把你放在炉子上烤。但是问题在哪儿?有的人就觉着活着活着就死了,死了就没什么事了。这是没有逻辑,也没有理由可以支撑的。神让我们看见这地上的事是非常属灵的,所以我们得知道灵界是非常真实的。
我曾经服侍过一个人,她的怀孕反应非常的严重,我带她祷告好了。好了以后她也没当回事,人家以为那不是你应当做的吗?我也觉得是我应当做的。后来她有流产征兆,又打电话给我,我又带她祷告,又好了。这些事情都证明了这个世界是个属灵的世界。让人活着的乃是灵,让人死了的也是灵,灵界是非常真实的。你不追求那就是你的造化,我追求那是我的造化。所以说,我们人的眼光放远一点,长一点就知道这些事情是怎么一回事。
Q8:我不想看重世界,可是在工作中和解决问题去学习时,又容易被带偏,这个该怎么处理呢?
怎么带偏了?好好解决问题叫看重世界?不好好解决问题叫不看重世界?是这样的逻辑吗?如果容易着急、难受、有压力、有情绪,那叫没有信心,不叫看重世界。但是一个有信心的人,一定会把问题解决得不错的。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30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장부터 《창세기》 전체가 점차 절정을 향해 나아가며, 말씀이 전개될수록 점점 더 흥미진진해집니다. 야곱의 이야기는 이삭의 이야기보다 흥미롭고, 이삭의 이야기는 비록 분량은 많지 않지만 아버지 아브라함의 이야기보다 흥미롭습니다. 요셉에 이르면 그의 이야기는 야곱의 이야기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합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이처럼 흥미진진한 이유는 모두 믿음을 실천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며, 믿음의 실천이야말로 《창세기》의 핵심 축입니다. 우리 사람의 눈에는 좋아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모두 선하고 좋은 것입니다.
믿음을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매일 밥이나 받아먹고 편안하게 안주하며 사는 삶은 쉽고 믿음의 실천이 필요 없습니다. 오래전에 한 원로 목사님이 제게 말씀하시기를, 교회가 《창세기》를 제대로 공부하면 다 부흥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그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금 제게 다시 물으신다면 저 역시 《창세기》를 공부하면 모두 부흥한다고 말씀드릴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창세기》를 열심히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종말론처럼 잘못 읽으면 곤란합니다. 다 읽고 나서 마지막 때가 왔으니 윈난에 가서 방주를 지을 장소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선전하며 사방에서 방주 입장권을 팔면 많은 사람이 진짜로 살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세상 끝'이라는 말만 들으면 정신을 못 차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방주는 짓지도 못하고 돈만 날리며 사기꾼이 되고 맙니다.
오늘날 믿음의 실천은 그리스도인 삶의 핵심 축이 되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이 우리 교회에 속해 있든 아니든, 저는 항상 사람들의 믿음을 세워 주는 나눔을 합니다. 저는 사람들의 믿음을 세우는 데 있어서는 확실한 전문가입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헛된 희망을 준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진실로 믿고 있습니다. 다만 믿는 과정에서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 때로는 조금 어렵게 느껴질 뿐입니다. 오늘 30장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야곱을 번성하게 하시고 크게 흥왕하게 하시다》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 제목이 참 좋다고 느끼실 것이고, 마음속으로 흥왕하고 번창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90세가 넘어서야 비로소 생육하고 번성하며 흥왕하게 하시기 시작하셨는데, 바로 이것이 핵심입니다.
1. 하나님의 임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져오며, 야곱이 믿음을 실천하는 길을 매우 의미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은 도대체 무엇을 믿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이 장차 백만장자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물론 지금은 백만장자도 별 의미가 없으니 천만장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천만장자도 의미가 없어지면 억만장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억만장자가 되어 무엇을 하려느냐?"라고 물으실 때, 그저 눈만 껌벅이며 하나님을 쳐다보고 정작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면 하나님께서 굳이 그것을 주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하신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과 함께하실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처럼 믿음이 있는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공부하며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믿음을 명확하게 깨닫고 전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하셨지만, 그가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미 90세 무렵이었습니다. 야곱의 평생 향년은 147세였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갔을 때가 75세였습니다. 요셉을 낳았을 때의 구체적인 나이는 정확히 단정하기 어렵지만, 요셉이 17세에 애굽으로 팔려 가고 30세에 총리가 되었으며 39세에 아버지 야곱을 애굽으로 모셔왔습니다. 계산해 보면 야곱이 요셉을 낳았을 때는 대략 90세쯤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전혀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걸핏하면 조급해하는데, 조급해지면 문제가 생깁니다.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창세기》 30:25-26)
야곱은 요셉을 낳은 후 외삼촌 라반에게 떠나겠다고 사직을 청했습니다. 이때 야곱의 나이는 이미 적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조급해지면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며, 자주 조급해하는 사람은 결코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여러분에게 조급해하지 말라고 말씀드립니다. 조급해하면 믿음도 사라지고 하나님의 임재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믿음이 대단한 이유는 에서의 축복을 얻기 위해 75세까지 기다렸다는 점입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도 오랫동안 돈을 벌지 못하고 90세가 넘기까지 기다렸으며, 훗날 외삼촌의 집을 떠날 때는 이미 나이가 지긋하여 거의 100세에 가까웠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과만 함께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믿음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제가 사역할 때 종종 사람들이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습니까?"라고 묻는 것을 듣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아, 하나님의 임재를 놓쳐버렸구나' 싶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왜 이러시냐고 묻는다면, 하나님께서도 도리어 여러분에게 왜 그렇게 묻느냐고 되물으실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렇게 만드신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갈, 롯, 라반, 혹은 아비멜렉처럼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어떻게 함께하시는지를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라반은 야곱이 처음 왔을 때 자신이 그다지 부유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그를 위해 일해 준 여러 해가 지나서야 비로소 심히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으로 인하여 라반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라반의 눈은 돈에만 머물러 있었지만, 야곱의 눈은 사명에 있었고 그의 마음과 생각은 온전히 하나님께만 향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라반은 야곱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았고, 그저 야곱에게서 약간의 이득과 돈을 얻기만을 바랐습니다. 이 차이는 매우 크며, 사람의 그릇과 안목이 단번에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그릇과 안목은 도대체 얼마나 큽니까?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서 저와 어떻게 함께하시는지 보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자신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지난 몇 년간 저는 이른바 '영적 대가'를 찾아다니듯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났습니다. 먼 길을 찾아왔으니 대접은 해 주지만, 입을 열어 하는 말 중 제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습니다. 제 설교를 듣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마치 그 사람이 제 설교를 좋아해 주는 것이 제게 무슨 유익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또 굳이 곤란한 질문을 던지는 성격이라 "어제 들은 설교는 어떤 편이었고, 거기서 무엇을 들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그는 말문이 막혀 한참 동안 횡설수설합니다. 제가 듣고 싶은 말은, 여러분 스스로 야곱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고, 저와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함께 세워가기를 원한다는 고백입니다. 자신에게 이토록 큰 은혜가 임하여 저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갈 수 있게 된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바로 야곱과 같은 자가 되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이곳이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번번이 그렇지 못합니다. 그들은 제가 행하는 표적이 천지를 뒤흔드는 것을 보면서도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남아 있는 자들이야말로 정금 같은 사람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안목이 과연 하나님의 임재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함께하신 뒤에 따르는 가치만을 소중히 여기는가? 이 두 가지 관점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함께하신 뒤에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만 마음을 둔다면 큰 문제입니다.
제가 하나님께서 야곱을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시며 흥왕하게 하셨다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오직 '흥왕'이라는 말만 듣고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결과를 좋아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임재 자체를 사모합니까? 결과만 좋아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절대로 하갈, 아비멜렉, 라반, 롯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그저 육신의 눈으로만 본들 무엇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라반은 자기 집의 소와 양만 바라보았고, 그저 야곱이라는 청년이 쓸모 있다는 것만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고, 자기 누이 리브가가 낳은 아들이 훌륭하다고 여겼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하나님의 임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입니다. 결코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야곱을 번성하게 하시고 흥왕하게 하셨다는 말을 듣고 머릿속에 온통 '부자가 되는 것'만 떠올려서는 안 됩니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하시다》를 나누었고, 그 전 장에서는 《이곳은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다》라는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처소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2. 야곱의 두 아내가 다투는 것도 다 좋은 일이다
야곱의 두 아내가 다툰 것이 좋은 일이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다툼을 통하여 야곱을 번성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두 아내가 다투는 것을 보면서도 좋은 일이라 여기며, 방으로 돌아가 속으로 웃으며 "다툴 테면 다투라지" 하고 넘겼습니다.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창세기》 30:1-2)
사실 라헬의 언니 레아가 많은 자녀를 낳은 것은 라헬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고 언니 레아는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며 야곱이 편애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한 번은 제가 이 성경 구절로 나눔을 인도할 때, 어떤 사람이 왜 일체일부가 아니냐고 물은 적도 있습니다. 4천 년 전으로 돌아가 일부일처제로 개혁이라도 하자는 말입니까? 일부일처냐 일부다처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번성하게 하시고 흥왕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일부일처인지 일부다처인지를 문제 삼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은 두 아내가 다투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도 마음속으로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괘념치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을 사람이 억지로 뜯어고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라헬이 이르되 내 시녀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창세기》 30:3-6)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창세기》 30:8)
이것은 결코 진정한 승리가 아닙니다. 라헬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런 생각뿐이었고, 야곱은 날마다 이러한 분쟁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영어로 말하면 'face the music'입니다. 야곱은 집에 돌아올 때마다 원치 않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결코 유쾌한 음악은 아니었지만, 그것 역시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이 일을 이루고 계셨다는 점이며, 야곱은 그 모든 것을 선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옛날에 사라에게는 오직 한 아이만 낳게 하셨는지 의아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매년 한 명씩 낳게 하실 수는 없었을까요? 아브라함 시대에 매년 한 명씩 낳아서 곧바로 12지파가 이어졌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지만 사실 그때 아브라함의 믿음은 야곱의 믿음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야곱의 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12지파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삭의 대에 이른 믿음으로는 겨우 두 아이, 곧 에서와 야곱을 낳아 두 민족이 다투었을 뿐입니다. 야곱의 믿음은 참으로 위대하여 생육하고 번성하게 되었으니, 이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께 "왜 이렇습니까?"라고 묻지 않는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왜 이러시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옛날 리브가는 뱃속에서 두 아이가 서로 싸우자 너무 괴로워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했습니다. 만약 리브가가 야곱이 겪은 이 수많은 골치 아픈 일들을 보았다면 어찌 되었을지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 혹은 이삭과 리브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야곱의 대에 이르러서야 12지파를 낳게 하신 이유입니다.
3. 하나님이 야곱을 번성하게 하시다
자손이 번성하면 문제도 그에 따라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저조함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더니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으매 레아가 이르되 복되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레아가 이르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 (《창세기》 30:9-13)
밀 베는 때에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레아가 이르되 내가 내 시녀를 내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의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 레아가 다시 임신하여 여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레아가 이르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 (《창세기》 30:14-20)
야곱이 레아와 동침하기만 하면 임신이 되자, 어떤 사람들은 레아의 가임 능력이 왜 그렇게 뛰어난지 궁금해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신하게 하시면 임신하고,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면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야곱을 번성하게 하시고자 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닌 것처럼 느끼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레아가 단숨에 여섯 아들을 낳은 후에야 비로소 라헬이 요셉을 낳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입니다. 요셉은 참으로 어렵게 태어났습니다. 레아가 여섯 자녀를 낳는 동안 라헬은 줄곧 임신하지 못했으니, 실로 '간절히 부르고 기다린 끝에 겨우 나온' 느낌입니다. 훗날 우리가 알게 되듯이, 요셉은 비록 이 세상에 어렵게 태어났지만 세상 가운데서 지극히 큰 영광을 이루어 내며 하나님의 임재를 온전히 성취했습니다. 야곱은 겉으로 보기에 형과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명분을 얻었지만, 요셉의 위에는 열 명의 형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팥죽이 얼마나 많아야 그 열 명의 형들을 다 구슬려 장자의 명분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성경 이야기의 묘미가 바로 이런 데 있습니다. 요셉은 종으로 팔려 감으로써 도리어 자기 가문의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4. 라반이 야곱으로 인해 부유해지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하시는데 정작 혜택은 라반이 얻는 것을 보며 의아해합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신 것일까요?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 (《창세기》 30:27)
라반은 자신이 누리는 부유함이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하시기 때문임을 아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명확히 보고 야곱의 하나님이 참으로 좋으신 분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은 야곱의 하나님을 얻으려 하지 않고 오직 야곱이 쳐 주는 양 떼에만 마음을 두었습니다. 라반은 야곱으로 인해 부유해졌기 때문에, 야곱이야말로 돈이자 자산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여러분은 자산과 부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돈을 낳는 것을 자산이라 하고, 돈을 까먹는 것을 부채라고 합니다. 야곱이 자산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신 이유는 야곱의 내면에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아브라함과 이삭으로부터 이어받은 믿음이 있었는데, 그것은 영원 안에서의 영광을 추구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야곱이 자산인 것만 바라보지 말고, 우리 자신도 자산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올바른 자산이 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야곱이 자산이 된 것은 그가 이 세상의 재물을 중히 여기지 않고 영원한 영광을 중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제가 영원한 영광에 대해 수없이 말씀드렸지만, 여러분이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여전히 여기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저 믿음으로 그것이 각자의 그릇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한 영광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건만, 늘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밥을 먹여주느냐고 의심합니다. 밥 먹는 일이 그렇게나 중요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야곱으로 인하여 라반을 부유하게 하셨지만, 야곱은 자기가 외삼촌 라반을 부유하게 해 주었음에도 라반이 재산을 나누어 주지 않는다고 해서 조급해하거나 불만을 품지 않았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야곱의 처지였다면 분명 불평을 터뜨리고 억울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 일에 전혀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돈에 집착하면, 남에게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다 주고도 정작 자기 몫은 하나도 챙기지 못했다고 속이 뒤집힐 것입니다. 야곱 자신은 자산이었고 외삼촌에게 막대한 재물을 벌어다 주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은 조급해해서는 안 됩니다. 야곱은 1년에 외삼촌에게 수십억을 벌어다 주었지만 라반은 털끝 하나 내주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인색하기 짝이 없는 주인을 매우 성실하게 일하는 야곱이 만남으로써, 야곱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으로 빚어졌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극히 드물지만, 여러분이 이런 사람이 된다면 모든 일은 순조롭게 풀릴 것입니다.
5. 남의 것에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너희의 것을 주신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누가복음》 16:10-12)
남의 것에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속한 것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오래전에는 저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법칙을 깊이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하신 것은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재물에 충성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외삼촌이 자신을 박대한다고 해서 돌아와 양들에게 분풀이를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가 화가 난다고 양을 발로 찼다면 훗날의 재물을 다 걷어차 버렸을 것입니다. 사람은 재물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충성된 사람이 되기 어렵습니다. 스스로가 자산이 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자신을 자산으로 빚어가야 합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양을 칠 때 지극히 충성스럽게 일했고, 하나님께서는 그가 영원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셨습니다. 영원 안에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미래의 재물을 한순간의 화풀이로 걷어차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일할 때 충성스러워야 합니다. 저 역시 과거에 일할 때 매우 충성스러웠고 단연코 훌륭한 직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늘날 저에게 속한 것을 제게 주신 것입니다.
오늘 한 자매님이 예전 교회의 담임목사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20대부터 교회에서 사역해 왔고, 수십 년이 흘러 이제 60대가 되었는데, 그의 기억 속에 교회는 늘 암투와 파벌 싸움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세우면서도 누군가 자신과 권력 다툼을 벌일까 봐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재작년에는 어떤 목사님이 임종 직전에 글을 남기며 교회의 암투와 분쟁에 대해 깊은 탄식을 토로했습니다. 저는 의아했습니다. 교회를 본인이 세운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그런 다툼의 온상으로 만들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우리 교회에도 그런 권력 다툼이 있는지 묻습니다. 답은 '전혀 없다'입니다! 오직 용을 치고, 사탄을 치고, 마귀를 대적하는 싸움만 있을 뿐, 사람끼리의 암투는 없습니다. 다툼이 있는 교회의 사람들은 저마다 충성심이 부족합니다. 남의 일에 충성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어찌 여러분의 것을 주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일할 때 야곱의 믿음과 충성이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일할 때는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과거에 제가 직장 생활을 할 때 비록 고용된 입장이었지만, 결코 "나는 월급쟁이에 불과하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업무 중에 발생하는 문제가 제 소관이라면 해결하는 것은 당연했고, 제 소관이 아닐지라도 눈에 띄면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마치 사장처럼 일했습니다. 그렇게 일했기에 지난 수년 동안 탁월한 능력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충성입니다. 언제나 '일개 직원'이라는 마인드에 머물러 있지 마십시오. 며칠 전 마케팅을 하는 한 사람이 제게 전화를 걸어왔는데, 자기는 그저 월급쟁이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투가 참 이상하게 들렸지만, 양육 관계가 아니었기에 직접 지적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지난 세월의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어느 것 하나 진실하게 충성해 본 적이 없었고 결국 자신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 자신이 사업을 하다가 많은 돈을 날렸는데, 이것이 무엇을 증명합니까? 남의 일에 충성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어찌 너희의 것을 주시겠습니까? 결국 파산한 것은 자업자득이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회사를 도산하게 만든 것은 사람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책임을 감당할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그대로 보여준 셈입니다.
일할 때 여러분은 사업가적인 관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고용된 일꾼의 관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비록 남의 일을 하고 있을지라도 사업가적인 관점으로 생각할 때 여러분은 주인입니다. 반면 고용된 일꾼의 관점으로만 생각하면 여러분은 삯꾼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도 삯꾼의 태도로 섬긴다면 결코 안 됩니다. 그것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 아니라, 충성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은 악한 종이 되는 길입니다.
6. 하나님이 야곱을 심히 부유하게 하시다
그 날에 그가 얼룩무늬 있는 숫염소들을 솎아내고 점 있고 얼룩무늬 있는 암염소들을 솎아내고 흰 바탕에 섞인 것들을 솎아내고 검은 어린 양들을 도려내어 자기 아들들의 손에 맡기고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 떼를 치니라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야곱이 어린 양들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을 라반의 양과 서로 마주보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튼튼한 양이 새끼 벨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 떼의 눈 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이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창세기》 30:35-43)
불과 몇 년 만에 하나님은 야곱을 심히 큰 부자로 만드셨습니다. 이 성경 구절을 읽을 때 야곱이 양들이 교미할 때 나뭇가지를 세워 놓는 장면을 보며 그를 생물학자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생물학의 문제가 아니라 신학의 문제입니다. 결코 생물학적 관점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오늘날 여러분도 가축 몇 마리를 데려다가 나뭇가지 껍질을 벗겨 놓아 보십시오. 결국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나뭇가지에 소망을 두지 말고 야곱이라는 사람에게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 나뭇가지를 놓은 사람이 바로 야곱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그렇게 놓았을 때, 앞서 정한 대로 점 있는 것, 얼룩진 것, 검은 것이 다 야곱의 차지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점 있는 것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생물학도 아니고 유전공학도 아닌, 바로 신학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아내들이 어떻게 아이를 낳아 야곱을 번성하게 할지를 주관하셨을 뿐만 아니라, 야곱이 치는 양 떼가 번성하는 것 또한 주관하셨습니다. 이전에는 외삼촌을 위해 양을 쳤지만, 이제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지극히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합법적인 방식으로 되찾아 야곱에게 주고자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법을 어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도덕경의 하나님은 아닐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지극히 합리적이신 분입니다.
이제 야곱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정당한 거래를 했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팔았고, 야곱은 팥죽을 에서에게 주었으니 이는 거래의 이행이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의 눈이 어두워진 것은 야곱이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축복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으니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합법적이었고 일종의 계약과 같았습니다. 라반의 집에 가서도 야곱은 속이지 않았습니다. 라반이 점 있는 것, 검은 것, 얼룩무늬 있는 것을 다 가져가고 남은 것은 흰 것뿐이었으니, 이제부터 태어나는 얼룩무늬와 줄무늬, 검은 것들은 온전히 야곱의 몫이었습니다. 흰 양이 어떻게 그런 새끼를 낳았는지 보통 사람의 안목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워 기이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외삼촌 라반이 흰 것을 다 가져가고 앞으로 나오는 흰 것만 야곱의 것이라 했다면, 태어나는 족족 다 흰 양이었을 것입니다. 나뭇가지를 거기에 세워 두었어도 여전히 흰 양만 태어났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여러분이 부유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달려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임재가 가장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가난하거나 빚을 진 분들은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야곱과 아브라함과 이삭을 본받기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유하게 하시는 것은 지극히 쉬운 일이지만, 문제는 우리가 충성된 사람인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 성도들 중 어떤 분들은 집을 판 뒤에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립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남는 일이라 생각합니까, 아니면 손해라 생각합니까? 많은 사람이 그것이 은혜이자 복인 줄 알지 못해 마음속으로 몹시 아까워하고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소유한 사람이라면 그 십일조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어떤 사람이 기도하기를, 하나님이 1천만 위안을 주시면 5백만을 헌금하겠다고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돌아서서 생각하더니 "하나님, 차라리 그 5백만은 하나님이 가지시고 제게 그냥 5백만만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실제로 1천만을 주어도 5백만을 헌금하지 않을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잔꾀를 부린 뒤에 혹독한 저주를 받는다면 결코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감히 하나님을 속이려 들다니,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실로 이 세대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임재를 점차 깊이 깨닫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기를 권면합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손에 쥐고 있는 주식을 처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마음속에 온전한 헌신의 중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심히 부유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크게 부유하게 하시기를 바란다면, 먼저 야곱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이 원리를 깨달으셨습니까? 특히 우리 가운데 작은 사업이라도 하시는 분들은 결코 착각하지 마십시오. 눈을 돈에 두지 말고, 내가 과연 야곱과 같은 사람인가에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