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사야서 55장은 하나님의 말씀이 결코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 장은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54장의 내용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결코 헛되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근거이며, 평생 찾아야 할 핵심입니다.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주의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는 공학을 전공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이론적인 뒷받침 없이 단순히 하기만 한다면 분명 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최근에 우리 사무실을 인테리어하면서 수영장을 하나 만들려고 했고, 배경은 문화석으로 꾸미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공사할 때 이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그 위치에 스위치를 계획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문화석이고 물이 흘러내리는 곳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런 곳에 어떻게 스위치를 설치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설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잘 계획해야 합니다. 비행기를 만들 때처럼 반드시 각 부분을 미리 계획해야 합니다. 모든 것에는 기준과 표준과 이론이 있어야 합니다. 일을 하는 것도 그러한데,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떻게 기준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비극은 자신이 왜 살아가는지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논리 체계는 잘못된 이론입니다. 오늘 우리는 뇌물을 받고 법을 어기다가 결국 몰락한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이 정말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을까요?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계속 달리고 또 달립니다. 절벽까지 달려가서 결국 떨어지고 맙니다.
우리가 살아가려면 반드시 지침서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지침서는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기초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왜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는지는 제 자신의 계산 때문이 아닙니다. 만일 제가 병을 고침받았기 때문에, 또는 제 사업이 잘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긴다면 저는 결코 계속 걸어갈 수 없습니다. 저는 망하고 말 것입니다.
작년에 한 형제가 제 사무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많은 것을 주셨기 때문에 저는 매우 감사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싶습니다.” 그때 이 형제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집에서 돈을 받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고 있었습니다. 생활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작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당시의 형편을 떠올리며 매우 감사해했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님, 감사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긴다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다행히 이 형제는 매우 지혜로워서 곧바로 고치고 바로잡았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거래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으니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직 온전히 알지 못할 때부터 그분의 사랑을 경험한다면, 우리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더욱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섬김이 은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로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반드시 번성하는 사람이 됩니다.
55장은 하나님의 말씀이 결코 헛되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이 장은 처음부터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우리 형제자매들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내면이 목마른 상태에 있으면 매우 힘들고, 그런 상태에서는 마음에 확신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이런 상태에 있습니다. 사실 여기서 물은 하나님의 도,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갈망이 핵심이다
갈망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사람이 언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합니까? 바로 그때가 성장의 시작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왜 살아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왜 제가 이 교회에서는 이렇게 큰 대가를 치러야 합니까? 다른 교회에서는 찬양만 부르면 됐습니다.”
당신이 사업을 위해 살아간다면 사업을 잘하십시오. 가정과 자녀와 일을 위해 살아가고, 그것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소소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위해 살아갈 때 마음속에는 계속 공허함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돈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부모님이 학업을 지원해 주셨기 때문에 부모님께 감사하기 원한다면,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거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거래하지 말고 갈망하십시오.
왜 너희는 배부르게 하지 못하는 것을 사는 데 돈을 쓰느냐?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는 ‘나는 돈을 벌어야 해!’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그렇게 많은 돈이 왜 필요합니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주시고, 우리를 배부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왜 양식이 되지 못하는 것을 사는 데 돈을 씁니까? 어찌하여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사람을 배부르게 하지 못하는 것을 삽니까? 저는 매우 안타깝습니다!
오늘 한 자매가 제게 자신의 목장에 있는 한 자매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그 자매는 하나님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자기 힘으로 돈을 벌며 살았고, 삶이 전혀 좋지 않았습니다. 두 번 결혼했는데,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국 물음표 하나가 남았습니다. 그 자매의 물음표가 우리를 안타깝게 하고, 우리의 물음표가 그 자매를 안타깝게 합니다. 그 자매의 물음표는 이것입니다. “다른 교회 사람들은 잠깐 앉아 있다가 집에 가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하고 모여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그 사람들은 잠깐 앉아 있다가 집에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형제자매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그런 갈망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부족함입니다. 많은 사람이 수고합니다. 사실 수고는 저주입니다. 많은 사람이 돈을 벌고 또 벌다가 한 번의 재앙으로 모든 돈을 의사에게 지불하고, 돈은 여전히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사람은 배부르게 하지 못하는 것을 사는 데 돈을 씁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 집 근처에 큰 교차로가 하나 있는데, 사고가 나면 사람이 죽곤 합니다. 어느 날 뉴스에서 쓰촨의 한 부자가 죽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는 매우 매우 부자였고, 천만 위안이 넘는 스포츠카를 몰고 한 여성을 태운 채 새벽 네 시에 클럽에 가다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교통사고로 서른 몇 살의 나이에 죽은 것입니다.
사람은 필사적으로 수고하여 돈을 벌고, 배부르게 하지 못하는 것을 사는 데 돈을 씁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사람이 죽게 되면 그 사람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단번에 꿰뚫어 볼 수 있고,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돈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깨닫지 못합니다. 죽기 전에 가장 좋은 약을 사려고 돈을 씁니다. 가장 좋은 약을 사지 않으면 며칠 더 살 수도 있는데, 가장 좋은 약을 사면 오히려 더 빨리 죽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선지자는 이렇게 탄식합니다. “너는 도대체 왜 사느냐? 어찌하여 돈을 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너를 배부르게 하지 못하는 것을 사느냐?” 여기에는 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는데도 그것은 원하지 않고, 돈을 써야 하는 것은 기어이 가지려고 합니다. 협화병원의 연간 수입은 1,700억 위안이고, 하루 평균 4.5억에서 5억 위안을 벌어들입니다. 하루에 5억 위안이 어디에서 옵니까? 환자들에게서 옵니다. 그들은 어떤 환자들입니까? 수고하여 돈을 벌고, 배부르게 하지 못하는 것을 산 사람들입니다.
사실 그것이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도 못하는데, 왜 그렇게 합니까? 이렇게 하면 죽음의 순환에 들어갑니다. 돈을 벌고, 돈을 쓰고, 돈을 벌고, 돈을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더 좋은 길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돈을 쓰지 않고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돈을 쓰지 않고 치유받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매우 놀라운 일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돈을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제 저는 매우 외진 곳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어렵게 차 한 대를 잡았는데, 뜻밖에도 전기차였습니다. 그런데 곧 배터리가 다 될 것 같았습니다. 기사님은 처음부터 길 한가운데서 멈출까 봐 매우 걱정했습니다. 당시 YX 자매와 XY 자매도 차에 타고 있었습니다. 기사님은 우리를 태우고 계속 달렸습니다. 내리기 전에 그가 제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정말 신기한 사람입니다.” 그분은 전날에도 한 사람을 태웠는데 역시 배터리가 거의 다 된 상태였습니다. 그 사람을 태우고 마지막까지 갔을 때 200미터를 가다가 차가 멈췄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했습니다. 또 200미터를 가다가 멈췄고, 다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차를 탔을 때에는 무사히 집에 도착했을 뿐 아니라, 그 후 기사님도 집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좋은 것을 먹게 된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왜 배부르게 하지 못하는 것을 사는 데 돈을 씁니까? 이것은 선지자 이사야의 탄식이자 하나님의 큰 탄식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이사야가 탄식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주님을 믿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들은 주님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의 형제자매들도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생각과 뜻이 바뀌지 않습니까? 왜 반드시 돈을 벌기 위해 수고하고, 돈을 쓰고,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 빠져야 합니까? 이것은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영이 이사야를 감동하여 말씀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으면 좋은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으면 좋은 것을 먹고 기름진 것을 즐기며 마음이 기뻐집니다(《이사야서》 55:2). 알고 보니 우리에게는 지침서가 필요합니다. 바로 이 《성경》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사람이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지, 어떻게 맛있고 배부르게 먹으며 아름답고 기쁘게 살 수 있는지를 알려 줍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 오늘 다시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으면 좋은 것을 먹게 됩니다.
본래 당신은 수고하여 돈을 벌고, 배부르게 하지 못하는 것을 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좋은 것을 먹고 기름진 것을 즐기며 마음이 기뻐집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좋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오늘 당신이 제게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도 이루어질까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100퍼센트 이루어진다고 말하겠습니다. 당신이 갈망하기만 하고, 믿기만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그분의 율례와 법도와 계명을 지켜 행하면 좋은 것을 먹고 기름진 것을 즐기며 마음이 기뻐집니다.
지금 저와 함께 전임 사역자로 섬기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마윈의 팀을 보십시오. 마윈은 학력이 높지 않았지만, 그 아래에 있던 팀이 그와 함께 애썼고 그를 매우 잘 따랐습니다. 그런데 그 팀원들이 책을 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무리는 원래 O가 하나도 없었는데, 이제 마윈을 따라 모두 O를 갖게 되었다.’” O는 이사급을 의미합니다. 즉 그들이 CFO나 CTO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얼마 전에는 제 동역자들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을 따랐더니 우리는 원래 O가 하나도 없었는데 모두 O를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를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O를 갖는 정도가 아니라 K를 갖게 됩니다. 왕자와 공주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으면 양식으로 삼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매우 좋은 것을 먹을 수 있습니다. 몸의 필요와 영혼의 필요가 채워집니다. 입으로 좋은 음식을 먹고 마음에는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입으로 음식을 먹는데 마음에는 오히려 근심이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살아가는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미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죽음의 길로 몰아간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에게 대가를 치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다윗에게 약속된 은혜를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에 굳게 세워져 있다는 것을 정말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게로 가까이 나아와 귀를 기울여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이사야서》 55:3).
오늘 형제자매들은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하나님도 당신에게 가까이 나아오십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아십니까? 모든 결정권이 당신의 손에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는지,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경험할 수 있는지, 이 세상에서 참된 생명을 살아낼 수 있는지는 모두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은 모든 필요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고, 다윗에게 약속하신 은혜를 얻어야 합니다.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내가 또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니 세상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이 되리라”(《사무엘하》 7:8-9).
이것이 다윗에게 약속된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왜 다윗에게 이러한 은혜를 약속하셨습니까? 다윗에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갈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운데 은혜를 얻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를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갈망을 품으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내가 또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니 세상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이 되리라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들을 심고 그들이 자기 곳에 거주하게 하여 다시 옮겨 가지 않게 하며 악한 사람들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리라 내가 또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사무엘하》 7:9-13).
이 말씀이 얼마나 좋습니까? 당신이 이러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자녀의 문제도 해결됩니다. 얼마나 많은 부모가 자녀의 문제를 걱정합니까? 당신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라면 자녀의 문제를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은혜를 다윗에게 약속하신 확실한 은혜 안에 포함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인생에서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치유와 해방을 통해 치유의 문제를 해결했고, 교회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을 통해 사람의 생각과 뜻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후손에 대해 많은 염려가 있다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움으로 다윗에게 약속된 확실한 은혜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돌아가면 긍휼을 입는다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음이니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이사야서》 55:4-5).
이 말씀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은 이미 우리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고, 우리를 영화롭게 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영광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큰 이름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번성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이 모두 당신에게로 나아올 것입니다. 당신이 부르면 올 것이고, 부르지 않아도 당신에게로 나아올 것입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는 당신이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으며, 위에 있고 아래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영광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약속하셨으니 우리 가운데서도 반드시 그렇게 이루어질 것을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곧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돌아가라는 뜻입니다――“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이사야서》 55:6-7).
우리 자신이 너무 불쌍하고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고 느낀다면, 제가 말하겠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보물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갈망하는 마음을 품으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반드시 복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면 우리 하나님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십니다. 우리의 많은 문제가 생각과 뜻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또 많은 문제가 우리의 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죄를 지으면 마귀와 원수가 당신의 생명 가운데서 마음대로 파괴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당신의 죄를 용서하시면 마귀와 원수는 더 이상 당신을 파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당신이 사업을 한다면 가장 두려운 일은 무엇입니까? 마귀가 와서 방해하는 것입니다. 어제 저를 태우고 돌아온 기사가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정말 필요합니다. 지난 사흘 동안 계속 재수가 없었습니다. 첫날에는 새 전기차를 몰다가 200위안의 벌금을 내고 면허에서 2점이 감점되었습니다. 둘째 날에는 차를 몰다가 도로 턱에 부딪혀 타이어가 터졌습니다. 얼마나 재수가 없습니까? 셋째 날에도 또 벌금을 물었습니다.” 그가 “저는 사흘 동안 계속 재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하기에,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축복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살면서 재수 없는 날을 만나면 너무나 비참합니다. 왜 사람에게 이런 불행이 닥칩니까? 한 가지 이유뿐입니다. 귀신이 그와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왜 복을 받습니까?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은 매우 큰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너그럽게 용서하십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씻으시면 마귀는 더 이상 합법적으로 당신을 공격하거나 문제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축복을 흘려보낼 수 있고 자신도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의 생각으로 삼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르니라 하늘이 땅보다 높은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서》 55:8-9).
오늘 우리는 한 가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우리는 분별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당신이 회사의 이사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며, 그저 헛되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에 굳게 세워져 있으며 결코 헛되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그 말씀이 아무리 이해하기 어려워도 말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베푸는 것이 더 복되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확실합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우리가 그대로 행하면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오늘 간증한 자매는 집세를 낼 수 없는 상황에서도 헌금을 드렸는데, 결국 집세도 내고 돈도 남았습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우리의 생각보다 높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을 버리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안의 생각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든 모두 합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제 어머니는 제 고모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제 어머니는 제 고모를 이를 갈 정도로 미워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고모 이야기만 나오면 매우 화를 내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병에 걸리신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모두 어머니가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어머니는 겨우 스무 살이 넘었고, 죽은 사람을 본 적도 없었습니다. 돈이 부족했지만 돈을 빌려 할아버지를 돌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특히 여러 딸들을 보고 싶어 하셨는데, 그중에는 제 고모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온돌 바닥에 깔개를 깔고 잤는데, 할아버지는 고모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손으로 깔개를 움켜쥐어 손가락이 모두 피가 날 정도로 베였습니다. 어머니는 전보를 보냈습니다. 당시에는 전보가 매우 비싸서 한 글자에 1위안이었습니다. 한 통, 두 통, 세 통을 보냈지만 아무 소식도 없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치료비가 필요했지만, 고모들은 어머니와 함께 부담해야 할까 봐 답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가난했지만 어머니는 혼자 그 일을 감당했습니다. 돈이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할아버지를 치료했고, 결국 다른 사람에게 2천 위안의 빚을 졌습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큰 손해를 본 것입니다! 1961년의 2천 위안은 천문학적인 금액이었습니다! 당시로는 5년 치 월급에 해당했을 것입니다. 먹지도 않고 쓰지도 않고 5년 동안 모아야 하는 돈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백만 위안에서 수백만 위안에 해당합니다. 할아버지가 반년 동안 병을 앓았는데, 당시에는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평생 갚아도 갚기 어려운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어머니는 매우 지혜로운 선택을 했습니다. 오늘 영상에서 여러분이 제 어머니가 무대에 올라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비록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지만 컴퓨터를 사용해 우리와 이야기하고 타자도 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머니가 젊었을 때 심은 은혜를 거두어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것을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당시 제 어머니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지만 놀랍게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할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어머니는 도시에서 농촌으로 내려가기로 선택했습니다. 도시에서는 공산당의 기층 간부였지만, 농촌에서는 당 지부 서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어머니에게 2천 위안을 지급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면, 저는 바로 어머니가 농촌으로 내려가셨을 때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가 복을 받았기 때문에 저라는 아들을 낳게 된 것입니다. 일부러 저를 하나님께 드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정에 임했습니다. 오늘 제가 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것도 모두 은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자세히 돌아보면, 어머니는 고모보다 훨씬 잘 사셨습니다. 다섯 자녀를 키웠고 모두 잘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는 것은 겉으로는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은혜를 받는 일입니다. 우리가 아직 모든 것을 꿰뚫어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한다면, 병든 시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백만 위안을 빌리겠습니까? 물론 지금은 우리 교회에 있으므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돈을 빌릴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로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과 뜻입니다. 아무리 큰 어려움에 직면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기 원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지침서이며 생명의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경험하고도 다시 하나님을 떠납니다. 어떤 사람은 직접 하나님을 경험했지만 대가를 치러야 할 때 망설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면 그것이 축복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으면 저주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의 생각으로 삼아야 합니다.
오늘 ZH 형제는 저와 함께 부동산을 보러 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HF 형제와 WC 형제는 목사님을 따라 많은 은혜를 받았네요.” 그것은 제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굳어진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왜 우리 교회는 계속해서 선악을 분별하는 것을 대적합니까? 선악을 분별하는 것은 우리 안에 굳어진 인간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용의 영이 능력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사람 안에 굳어진 생각이 매우 견고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매우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더 이상 사람의 논리와 사람의 생각에 따라 행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행한다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살아내지 못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에 굳게 세워져 있고,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헛되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길이 우리의 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길은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열어 주신 은혜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낮추어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해 모든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바울은 “나는 내 육체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운다”고 말했습니다(《골로새서》 1:24). 이 말씀은 매우 강하게 들리지만, 바울은 실제로 예수님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이사야서》 53:4-5).
이것이 하나님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죽게 하셨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사랑의 길이며, 베푸는 길이고, 자신을 드리는 길입니다. 당신의 머릿속에 이기적인 생각만 가득하다면 평생 매우 비참할 것입니다. 제가 당신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사랑하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길을 걷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이 되게 해야 합니다.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이사야서》 55:10-11).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마에 인두로 목사라고 새기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새긴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무엇이 유익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면 이러한 결과가 있고,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받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에서 반드시 형통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그저 해 보는 말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된 후 우리에게 행하라고 주어진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성경공부를 듣고, 히말라야의 생방송을 듣고, 또 여러 웹사이트를 찾아 듣습니다. 우리 웹사이트에도 들을 것이 많아서 몇 달 동안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듣고 또 들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무엇을 하라고 보내셨습니까? 사로잡힌 자를 자유롭게 하고 억눌린 자를 해방시키기 위해 보내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하루 종일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형제자매가 있다면, 그는 말씀을 듣는 데만 능한 사람입니다.
한 형제가 제게 말했습니다. “어떤 치유 전도집회가 있다고 해서 저는 곧바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돌아오고 나니 문제가 더 심각해졌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귀신’입니다. 전도집회의 귀신인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는 것이 근본이고,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근본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의 생각으로 삼고, 하나님의 길을 우리의 길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면 여러분은 반드시 기쁨으로 애굽에서 나오고, 이 세상에서 나오며, 억압에서 나오고, 얽매임에서 나오며, 문제에서 나오게 됩니다.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이사야서》 55:12-13).
어떤 자매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기쁘지 않고 너무 얽매여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하라고 보내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역을 하러 간다면 반드시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받게 될 것입니다. 산들과 언덕들이 당신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입니다.
여기서 선지자 이사야는 의인법을 사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이사야가 환상 가운데 실제로 산과 언덕들이 노래하는 것을 보았을 수도 있고, 들의 나무들이 손뼉 치는 것도 보았을 수 있습니다. 잣나무가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고, 화석류가 찔레를 대신하여 나는 것도 보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해야 합니다.
이번 주일에 저는 여러분과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는 주제로 나누려고 합니다. 겉으로는 매우 지혜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도가 영원히 남는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도를 버리고 자기 뜻대로 살아간다면 재앙과 얽매임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말해 주지 않았다고 하지 마십시오. 제가 여러분을 겁주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남고,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영원히 남습니다. 영생을 추구하고 이 헛된 인생에서 나와 영생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당신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세상에서 살아갈 날은 하루하루 줄어듭니다. 저는 제게 아직 30년이 남았다면 만 일이 조금 넘는다는 계산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만 일이 9,999일이 되고, 다시 9,998일이 됩니다. 사실 만 위안도 한 위안씩 쓰면 아주 빨리 없어집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1킬로미터씩 달리다 보면 만 킬로미터도 금방 갑니다. 사람이 영생에 대한 관념이 없다면 비극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생명 가운데 두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영생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이 현세의 욕망을 가지고 자신에게 나아오는 것을 보셨을 때, 그들은 떡을 구하고 배를 채우기 위해 온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나를 먹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말씀을 하셨지만 사람들은 듣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왜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르지?”
그들에게 자기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조화를 이룰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생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그들은 모두 현세의 일만 말했습니다. 당신이 현세의 일만 생각하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왜 잘 살지 못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한복음》 6:67-68).
오늘 당신에게도 이러한 생각이 있습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헛되고 헛된 것임을 알고 있습니까? 사람의 일생은 헛된 것 가운데서 쫓아다니다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갑니다. 당신은 무엇을 붙잡을 수 있습니까? 제가 영구 토지계약이 있는 부동산을 산다고 해도 그 계약이 1,000년 동안 유효한 것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 1,000년은 저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사실 99년 토지계약도 저와 큰 관계가 없습니다.
천지가 모두 없어질 것이고 우리의 몸도 모두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히 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과 제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한 결코 헛되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늘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면, 이 말씀이 바로 당신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당신의 일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지 말고 내려놓기 시작하십시오. 우리도 사업을 하지만 사업이 우리의 생명은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가장 번성한 이스라엘 왕조를 세웠습니다. 그가 쌓은 금과 놋은 역사상 가장 많았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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