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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면

2023-06-04 6,265 耶和华是我的牧者 疾病 财务 灾祸 咒诅 听从神的话 属灵的眼光

《答疑解惑》

1.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저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는 주제에 대해 전하고자 합니다. 이 충격적인 제목은 바로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면》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합니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자신에게 임해 있는 저주를 보면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축복을 받은 간증보다 저주를 받은 간증을 훨씬 더 많이 보았습니다.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저는 복을 받은 간증보다 저주에 관한 간증을 정말 많이, 상상 이상으로 많이 보았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내면에 수많은 혼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 의자에 앉아서 "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습관이 있습니까? 저에게는 없습니다. "그냥 그렇다"니, 도대체 어떻다는 것입니까? 저는 남들이 말하는 대로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성경을 아주 꼼꼼하게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성경을 꼼꼼히 읽으시는 분이 계십니까? 만약 계신다면 축하드립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시간조차 없는 사람이 어떻게 어느 말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고 어느 말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닌지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성경을 꼼꼼하게 읽기 때문에, 강단에서 목사님들이 설교하시는 내용을 성경과 대조해 보며 어떤 것이 성경에 부합하고 어떤 것이 성경에 부합하지 않는지 아주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터무니없는 엉터리 설교를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 안에서 훈련을 받는다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도 대략 1년 정도만 훈련받고 나서 다른 사람들의 설교를 들어보십시오. 설령 그 사람이 아주 유명한 목사라 할지라도, 듣자마자 "이것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저것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네"라는 것을 바로 알게 됩니다. 많은 내용이 성경에 나와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도저히 들을 수가 없는 지경입니다. 이런 현실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위험한 일입니까?

하지만 저는 한 사람의 평범한 성도로서 밑에 앉아 설교를 들을 때, 저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도 굳이 소란을 피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왜 성경에 맞지 않는 말씀을 전하십니까?"라며 남을 방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부합하는 말씀이라면 잘 듣고 철저히 실행에 옮기지만, 성경에 맞지 않는 말이라면 그냥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말을 꺼내면 혼란만 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목사들이 강단에서 얼마나 엉터리 같은 소리를 하는지 아십니까? 어떤 목사는 "사람을 위해 치유와 축사 기도를 해줄 때 그 사람에게 손을 얹지 마십시오. 손을 얹으면 귀신이 여러분에게 옮겨붙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헛소리입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성경에 맞지 않는 엉뚱한 것들을 붙들고 있는지 보면서 저는 깊은 탄식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아주 뚜렷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제게는 축복받을 만한 성격이 있었고, 저는 우리 형제자매님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는, 이러한 복된 성격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정경(성경)을 지극히 존중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느 정도로 경전을 존중하는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오늘날 저는 그리스도인이고 제 경전은 성경이기 때문에 성경을 아주 깊이 파고들며 읽습니다. 여러분이 제가 성경공부 인도하는 것을 자주 들으셨다면, 이 사람이 성경을 정말 깊이 읽고 파고든다는 것을 발견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불교도였다면 불경이 제 경전이었을 것이고, 만약 공산당원이었다면 공산당의 요구에 철저히 맞춰 공산당원답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기준이자 경전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뜻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제가 만난 사람들을 보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답지 못하고, 불교도는 불교도답지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에게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의 종교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불교도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럼 불경 한 구절만 외워보세요"라고 하면 한 구절도 외우지 못합니다.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오늘 불교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지 제대로 된 진짜가 되라는 권면을 드리는 것입니다. 회계사를 하려면 제대로 된 회계사가 되고, 변호사를 하려면 제대로 된 변호사가 되며, 공무원을 하려면 제대로 된 공무원이 되십시오.

그래서 오늘 제가 전하는 주제가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면》입니다. 뒷부분의 말씀은 제가 다 읊지 않았지만 이미 성경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입술에 항상 머물기를 바랍니다. 비록 듣기에 끔찍하고 달콤한 말은 아니며, 여러분을 두렵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미안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여러분은 두려워해야 마땅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삶을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주 때문입니다! 저주에 빠져 들어가는 것은 결코 가벼운 장난이 아닙니다.

이 세대 속에서 저주는 결코 비껴가지 않으며, 단 하나도 빠짐없이 임합니다. 저주받은 자들, 곧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단 하나도 누락되지 않고 임할 것이니 두고 보십시오! 우리 어릴 적 표현으로 하자면 "두고 보자!"입니다. 어디 한번 두고 봅시다. 사람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축복의 말씀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저주의 말씀 또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저에게 "신약 시대에는 저주가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소리입니까? 여러분도 이런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신약에는 저주가 없다고 누가 그럽니까? 성경을 제대로 읽지도 않는 사람들입니다. 딱 보면 성경의 기초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하며, 축복도 그러하고 저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늘 제 자신에 대해 두려워하고 떱니다. 아십니까? 무슨 일만 생기면 저는 즉시 제 자신을 철저히 돌아보고 반성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고난과 고통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제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 거의 죽을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혹시라도 내가 잘못한 것이 있는지 두려워하며 제 자신을 돌아보느라 분주했습니다.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면 즉시 알아차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 목사님은 왜 코로나에 걸리셨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나는 저주의 표본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지만, 저주 아래 놓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즉시 반응하여 서둘러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돌아와 순종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 그냥 그런 거지 뭐" 하며 안일하게 넘어가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축복받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 중에 축복을 받는 사람보다 저주를 받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저 교회에 출석하는 것만으로 만족해합니다. 대체 무엇이 좋다는 말입니까?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 "참 좋다, 다 은혜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다"라고 안주하는 사람들에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는 은혜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자기 뜻대로 교회를 세우다가 결국 저주 속으로 교회를 끌고 들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다시 한번 경고합니다. 저는 늘 제 자신을 위해 가슴을 졸이며 식은땀을 흘리고, 여러분 형제자매님들을 위해서도 늘 가슴을 졸입니다. '하나님, 부디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얼마 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입니다. 한 형제가 심각하게 육신의 생각을 좇으며 살아서 우리가 그를 양육하고 있었습니다. 그 형제는 혈변을 보고 주기적으로 신장결석을 앓았습니다. 신장결석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정도로 끔찍합니다. 얼마 전 또다시 결석이 도져서 우리 교회의 사역자들이 그를 섬기며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고통도 거의 없이 아주 커다란 결석이 몸 밖으로 배출되었습니다. 그 결석 사진은 지금도 남아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 형제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사진을 보니 테슬라 자동차 엠블럼처럼 아주 뾰족하고 날카롭게 생긴 결석이었습니다. 사진은 여전히 남아 있는데 사람은 세상을 떠나고 없었습니다. 혈변, 실신, 결석, 성인병까지 겪고도 저주가 부족했던 것입니까? 여전히 육신을 따르고, 하는 일마다 육신의 생각만 좇다가 병이 좀 나으면 다 잊어버리고 다시 자기 길을 걸어갔습니다. 저는 그저 "행운을 빕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그 사람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 사람이 듣든 안 듣든 간에, 우리가 이 말씀을 들었다면 이러한 저주가 도처에 널려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목사들은 늘 거짓말을 지어내어 사람의 비위를 맞추고 교인들을 속이며 "그것은 변장된 축복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좋은 축복이라면 그 목사에게나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가끔 농담 삼아 이렇게 묻습니다. "암이 축복이라면 당신에게도 그 축복을 좀 나누어 줄까요?" 그러면 "아니요, 사양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성도들에게는 그런 소리를 합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것입니까? 로봇보다도 못한 사고방식입니다!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이 고쳐주셨다면 잊지 마십시오. 재앙 가운데서 건져주셨다면 잊지 마십시오. 질병에서 고침을 받았다면 잊지 마십시오. 중병에서 치유함을 받았다면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전하는 이 말씀은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하는 말씀입니다! 저는 예전에 성도로 신앙생활을 할 때 교회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왜냐하면 장례식에 가면 정신이 번쩍 들기 때문입니다. 관 옆에 서서 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외쳤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마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반드시 순종해야 한다!" 제가 주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교회 사람들과 겨우 얼굴을 익혔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 교회의 영어부 목사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다른 차가 와서 들이받은 것이 아니라, 본인이 운전하다가 도로 살수차 밑으로 그대로 돌진한 것입니다. 스포츠카였는데 스포츠카라고 해서 차 밑으로 들어가면 살 수 있습니까? 즉사했습니다.

저는 그 목사를 잘 알고 있었기에 관 옆에 서서 제 자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왜 죽은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느냐"고 묻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이름을 불러봤자 소용없고 다시 살아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이름을 부르며 다짐했습니다. "너는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마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사람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다시 장례식에 갔습니다. 관의 유리 너머로 보니 얼굴을 온통 바늘로 꿰매어 놓아 참혹하고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저는 또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왜 남의 이름을 부르지 않느냐"고 하시겠습니까? 죽은 자의 이름을 불러서 무엇하겠습니까? 저는 제 이름을 부르며 "나는 반드시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리라!" 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결단했습니다.

교회 안에는 참으로 기이하고 해괴한 일들이 많습니다. 예전에 제가 알던 어떤 목사는 우리 교회의 집사 부부를 가로채 빼앗아 갔습니다. 교인도 빼앗아 갈 수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빼앗아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목사는 심각한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교회를 세운다면서 스스로 중증 우울증에 걸리다니, 그 저주가 얼마나 깊은 것입니까! 참으로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또 제가 아는 다른 목사의 교회는 교인을 검사할 때마다 암 환자가 나오고, 얼마 지나면 또 다른 암 환자가 나와서 목사가 심방하느라 녹초가 되었습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이것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변장된 축복입니다"라고 위로합니다. 그러다 또 다른 암 환자가 생기면 또 "변장된 축복입니다"라고 합니다. 언제 자기 자신에게 그 축복(?)이 닥칠지는 알지도 못한 채 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러한 현실을 보십시오. 제가 이런 일들을 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씀이 바로 《신명기》입니다. 신명기는 이 모든 것을 '축복'이 아니라 '저주'의 영역에 두고 있습니다. 축복에는 이런 것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제가 오늘 이 말씀을 전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목사가 저를 찾아와 자기 교회의 웹사이트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 교회에 교인이 그렇게 많은데 왜 그들에게 시키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들은 안 하려고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교인들이 안 한다고 해서 저보고 해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게으르고 무능하며, 육신의 생각을 좇는 목자가 육신을 따르는 성도들을 양육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어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참된 양육을 하리라. 성도들을 제대로 양육하는 교회를 세우고, 사람들을 게으르지도 않고 무능하지도 않으며 육신을 따르지도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드러내는 자들로 훈련시키리라!'

생각해 보십시오. 게으르고 무능해서야 누구를 양육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여러분의 성장을 독려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여러분이 성장하지 않으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양육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반드시 힘써 성장해야 하며, 장차 하나님께 쓰임 받아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고 돌보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게으르고 무능하며 육신에 속한 목자가 되어, 육신에 속한 무리들을 키워내는 자들을 결코 본받지 마십시오. 오늘날 많은 성도가 먹고 마시고 즐기며 희희낙락하고 있습니다. 대체 무엇이 기쁘다는 말입니까? 신장결석으로 죽을 만큼 아플 때도 기쁩니까? 그렇게 계속 살다가는 저주가 더해지고 또 더해져서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될 뿐입니다! 제 말을 알아들으셨습니까? 그래서 저는 쓰레기를 걸러내는 일련의 거름망을 만들었고, 오직 거룩한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류 목사님, 당신 교회에는 이런 문제가 없습니까?" 저는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그런 문제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또 "그럼 저런 문제는 없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저는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그런 문제가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수년 전 우리 교회가 아직 연약했을 때조차도 일반적인 교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10년 전에는 모든 금식기도회에 전 성도가 전원 참석했습니다. 장난인 줄 아십니까? 오프라인 모임 때도 전원 참석했고, 싱가포르의 모든 공휴일은 전부 금식기도회로 모였습니다. 놀러 갈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놀러 갈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해온 목회는 다른 목사들은 감히 흉내 내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 목사들이 "당신 교회에는 이런 문제들이 정말 없습니까?"라고 묻길래 저는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파벌 싸움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지저분하고 어지러운 문제들이 전혀 없습니다. 오직 질병의 치유와 회복만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와 귀신을 쫓아내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어떤 사람이 저에게 "목사님, 그런 일들을 보면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무엇이 흔들린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 영원히 굳게 서 있는데 제가 왜 흔들립니까? 말씀대로 살지 않아 저주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그런 현상들을 보면서 결코 미혹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불순종하여 교회 안에서 저주를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강력히 경고합니다. 결코 저주 가운데 머물러 살지 마십시오.

어떤 목사는 우리가 진행하는 문서 사역이 매우 훌륭한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전한 메시지를 전부 녹취하여 글로 정리하는 사역인데, 사실 저는 원래 제 원고가 다 있습니다. 다만 손으로 썼을 뿐이고, 성도들이 제 설교를 듣고 다시 타이핑을 치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여러분이 이 문서 작업을 꼭 해주지 않아도 제가 직접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일을 맡기는 이유는, 문서 사역을 하는 성도들이 작업을 하면서 말씀이 깊이 각인되어 깊은 배움의 시간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목사는 이것을 보고 교회로 돌아가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문서 작업을 시키려 했지만 아무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교회의 교인들에게 돈을 주며 녹취록을 작성하라고 해도 아무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교회가 제대로 세워지겠습니까? 우리 교회는 참으로 훌륭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의아해하며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교회를 저렇게 세웠는가?"라고 묻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웠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눈에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우리는 그대로 행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성격이 보이십니까? 확고한 성격을 가진 목사가 확고한 성격의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에 영원히 서 있는데 '불가능'이 어디 있습니까?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다면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당신처럼 교회를 세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아무도 저처럼 교회를 세우지 않는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저는 그대로 행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는 오직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수년 전부터 제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목표가 다르고 방법이 다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아내를 위해 살며, "Wife happy, life happy(아내가 행복해야 인생이 편하다)" 같은 운율이나 맞추며 살아갑니다. 목표가 다른데 어떻게 결과가 같을 수 있겠습니까? 방법 또한 다릅니다. 저의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문제로 가득 차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교회를 세운다면, 제가 왜 그런 헛된 짓을 하겠습니까? 제가 바보입니까?

저는 과거에 수많은 목사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만약 우리의 사명 신학(命定神学)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면, 오직 성경의 신학대로, 사도 바울의 신학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교회를 세우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불가능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그들이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저주가 임하고, 몸에는 온갖 질병의 저주가 가득하며, 재정에도 저주가 임하고, 사람들에게 억울하게 짓밟히며, 자녀들에게도 저주가 임하고, 불행과 재앙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신명기 28장 15절부터 68절에 나오는 '저주의 대조표'를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제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잘해서가 아니라, 저는 늘 제 자신이 잘못하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라?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말씀하셨나? 아닌 것 같은데? 저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저는 늘 제 자신을 '회개의 표본', '저주의 표본'으로 여깁니다. 이 말이 조금 낯설고 당황스럽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혼란스러워하지 마십시오. 저는 아직도 온전히 바로잡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무언가 잘못되었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잘못된 결과를 보게 하십니다. 프로그래밍 코드가 틀리면 프로그램이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저는 끊임없이 제 자신을 점검하고 수정해 나갑니다.

최근 여러분과 함께 사도행전을 묵상하면서 이전에 나누었던 사도행전 강해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느끼셨습니까? 제가 영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기에 저는 과거에 전했던 제 자신의 얕은 이해를 과감히 깨뜨리고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알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10년 전, 5년 전의 설교 원고를 그대로 가져와 다시 읽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원고, 새로운 버전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아이폰4를 준다면 쓰시겠습니까? 쇠붙이 덩어리 같아서 창피해서 쓰지도 못할 것입니다. 아이폰5를 줘도 안 쓸 텐데 지금은 벌써 아이폰15가 나오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은 축복과 저주의 원리를 깊이 깨닫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게는 저주의 대조표가 있기 때문에, 제 삶에 저주의 징조가 나타나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아, 이것이 잘못되었구나' 싶으면 즉시 바로잡습니다. "잘못되었지만 그냥 이대로 살지 뭐" 하는 미련한 자들과는 다릅니다. 영적으로 아주 민감하고 예리한 사람이 되십시오!

헌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헌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만약 교회가 돈이 필요해서 헌금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것이 아닙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이 헌금했다고 해서 저에게 감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헌금할 수 있는 믿음의 마음을 주신 것에 대해 스스로 감사해야 합니다. 교회는 돈이 부족한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부족한 곳입니다. 어떤 목사들은 "돈이 없는데 어떻게 교회를 세웁니까?"라고 말합니다. 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그런 소리를 하니 저주를 받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입니다. "사람이 없는데 어디서 돈이 나옵니까?"라고도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를 공급하지 못하신단 말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공급하십니까?"라고 묻습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우리 가운데 큰 복을 받은 한 자매님이 계십니다. 이 자매님에게는 탁월한 영적 지도자들의 권면을 듣고 그대로 철저히 순종하는 아주 뚜렷한 특징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선전(Shenzhen)의 부동산 가격을 아십니까? 돌아보면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2019년에 제가 선전에 있는 그 자매님의 집을 방문했는데, 당시 집값이 700만 위안이 넘었습니다. 자매님이 집을 팔아야 할지 물어보길래 제가 "팔아도 좋고 안 팔아도 괜찮습니다"라고 모호하게 대답했는데, 결국 팔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21년에 그 집을 팔았는데 가격이 수백만 위안이나 폭등한 상태였습니다! 지금 팔려고 하면 팔리지도 않고 손해를 보았을 텐데, 역사상 최고점에 매도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자매님은 헌금에 있어서도 정말 확실하게 드렸습니다. 헌금을 교회를 위한 '기부'나 '공헌'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큰 '은혜와 복'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이러한 축복의 간증이 얼마나 많습니까? 재정적인 축복의 간증이 얼마나 많습니까? 정말 많습니다! 어떤 자매님들은 헌금을 드릴 때 마음이 아릴 정도로 아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합니다. 마음이 아릴 정도로 드리는 것이 진짜 헌금입니다. 팁을 주듯이 쥐꼬리만큼 드리는 헌금은 아깝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 팁을 던져주듯 헌금하면서 저주를 받지 않기를 바라십니까? 마음이 찔리고 아까운 생각이 들 정도로 철저히 헌신했을 때 놀라운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정과 육체의 건강은 영적 상태를 측정하는 온도계와 같습니다. 저주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저주를 측정할 수 있는 온도계, 진단 키트를 하나 선물해 드리고자 합니다. 코로나 검사 키트처럼 여러분이 지금 저주 아래 있는지, 영적으로 양성 반응이 나왔는지를 점검해 보십시오. 제가 가끔 강하고 무거운 말씀을 전하지만,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전하는 것입니다. 성경 신명기 28장 15절을 다 함께 펴겠습니다.

2. 본문 말씀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신명기 28:15)

3.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주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마음을 부어 주옵소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이 우리 안에서 이루실 구원의 역사를 온전히 이루어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주님의 말씀을 우리의 심비에 새겨 주시고, 축복과 저주를 우리 마음에 분명히 두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은 복도 주시고 저주도 내리시며, 화평도 창조하시고 재앙도 내리시는 절대 주권자 하나님이심을 온전히 깨닫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의 영혼을 일깨워 주시고, 우리의 심령이 다시 살아나 주님의 음성을 듣고 모든 저주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본문 배경

모세는 신명기 28장을 기록할 때 성령의 감동을 받아 1절부터 14절까지 축복의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더 강력한 감동으로 저주의 말씀을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그 분량이 실로 엄청납니다. 15절부터 시작하여 68절까지 거침없이 써 내려갔습니다. 30절에 이르러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썼으며, 40절에서도 멈추지 않고 50절까지, 50절에서도 멈추지 않고 68절까지 기록했습니다. 모세는 참으로 대단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모세는 축복과 저주를 명백하게 선포하여 후대 사람들이 이 기준표를 보고 스스로를 대조해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제가 왜 어떤 이들이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는다고 말하겠습니까?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글만 읽을 줄 알아도 성경에 명백히 기록된 흑백의 글자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전하지 않고 엉뚱한 헛소리를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불순종하여 저주 가운데 살게 될 것을 미리 내다본 것입니다! 오늘날 이 경고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교회 안에 다단계(네트워크 마케팅)가 얼마나 성행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교인들이 모여 있으니 다단계 판매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듭니다. 사람들은 돈 앞에서는 눈이 번쩍 뜨이면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눈이 흐리멍덩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이스라엘의 모습이자,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비참한 현실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저주받을 영적 상태를 예언한 말씀이 오늘날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습니까? 어떤 분이 메시지로 제보를 주셨는데, 어떤 그리스도인이 건강보식품을 팔면서 "내가 그리스도인인데 당신을 속이겠습니까?"라고 한답니다. 심지어 "내가 당신의 목자인데 당신을 속이겠습니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발 그런 감언이설에 속지 마십시오! 우리 성도님들은 저와 함께 이러한 다단계 상업 행위를 단호히 배격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다단계 판매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에게 즉시 알려주십시오. 단 1분도 교회에 머물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는 단 한 가지 이유만 있으면 되지만, 순종하지 않는 데는 만 가지 핑계와 이유가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가 왜 이렇게 어렵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순종이 어렵습니까?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순종하지 못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믿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왜 이렇게 가혹하십니까?"라고 불평합니다. 이렇게 엄하게 다루셔도 회개하지 않는데, 엄하게 하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회개하겠습니까?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셨습니까?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가 반드시 끝까지 뒤따라올 것이며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모세는 이 사실을 매우 생생하게 선언했습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신명기 28:15)

저주가 당신을 끝까지 쫓아다니며 숨 쉴 틈 없이 따라붙는다는 뜻입니다! 당신이 어디로 도망치겠습니까? "성읍에서 저주를 받으면 시골로 가면 되지"라고 생각하십니까? 시골로 도망친다고 해서 저주가 따라가지 않겠습니까? 저주는 끝까지 뒤따라와 시골에서도 저주를 내릴 것입니다. "그럼 다시 성읍으로 가야겠다" 해도 소용없습니다.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며, 당신이 완전히 멸망하여 속히 망할 때까지 저주가 그림자처럼 붙어 다닐 것입니다. 하수구 속으로 숨어 들어간다고 해서 못 찾을 줄 압니까? 기필코 찾아냅니다.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 여호와께서 네 원수들 앞에서 너를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그들을 치러 한 길로 나가서 그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네가 또 땅의 모든 나라 중에 흩어지고 (신명기 28:23-25)

얼마나 무서운 저주입니까! 결국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와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정독하십시오. 제가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설명해 드릴 수는 없지만 여러분은 말씀을 읽고 분명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저주의 징조가 나타났다면 지체하지 말고 즉시 회개하십시오. 제 말을 알아들으셨습니까?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욥을 들먹입니다. 욥의 이야기를 핑계로 삼는다고 해서 본질이 달라집니까? 멸망에 이를 때까지 핑계 대며 미루지 마십시오.

5. 사람은 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가?

사람들이 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지 저는 참으로 기이하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은 결코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입니다. 제가 성도들을 섬기며 사역할 때 화를 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인정하면 될 텐데, 온갖 변명을 늘어놓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영적인 일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참으로 이상하게 행동합니다. 저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논리적 오류를 금방 짚어냅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습니다"라고 지적하면, 자기가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를 구구절절 변명합니다. 그런 구차한 변명을 왜 늘어놓습니까? 천 가지, 만 가지 핑계를 댄다고 해서 잘못된 것이 옳은 것이 됩니까? 사람들은 늘 이런 식으로 합리화하기를 좋아합니다.

며칠 전 어떤 사람이 집을 구하러 방을 보러 다녀왔습니다. 제가 "그 집이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읍내(타운)에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읍내에 있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라고 되물으니 "그냥 읍내에 있다니까요"라고 했습니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군청 소재지 시내 안에 있다는 말입니까, 시 외곽 시골에 있다는 말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시내 중심가에 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시내 중심가에 있으면서 왜 읍내에 있다고 합니까? 지적을 하니 그 지역 이름이 '무슨 무슨 진(鎭)'으로 되어 있어서 그랬다며 끝없이 핑계를 댔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요점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스스로 어리석은 자가 되는 데 있어서 언제나 핑곗거리를 찾아낸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유소(기름 넣는 곳)'가 아니라 '이유소(이유와 핑계를 파는 곳)'를 차려야 할 지경입니다. 모든 일에 핑계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면 "제가 너무 바쁩니다!"라고 답합니다. 돈을 잃느라 바쁘고, 저주를 받느라 바쁘며, 재앙이 닥치기를 기다리느라 바쁩니까? "지금은 아무 일도 없지 않습니까?"라고 합니다. 오늘은 아무 일이 없을지 몰라도 진짜 재앙이 닥치고 나면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사람들은 늘 이런 거짓에 속아 살아갑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 같습니까?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들도 너무나 잘 압니다. 알면서도 왜 그럴까요? 그 내면에 인간의 얄팍한 논리와 궤변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육신적 논리는 곧 사탄의 논리입니다. 사람의 생각을 따르고 육신을 위하는 것이 곧 사탄입니다. 제 말이 이해가 되십니까? "왜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못했습니까?" 물으면 "고객을 만나야 해서요", "왜 말씀 노트를 작성하지 않았습니까?" 물으면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어서요"라며 핑계가 끊이지 않습니다. 핑계가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도 되는 것입니까? 온당한 이유가 있으면 불순종해도 된다는 논리는 저는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설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라는 안일한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저는 하나님을 정말 사랑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라고 물으면 눈만 껌벅이며 저를 쳐다봅니다. 스스로 거짓 속에 갇혀 살면서도 "저는 지금 돈도 잘 벌고 사업도 잘됩니다"라고 합니다. 돈을 잘 벌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도 됩니까? 참으로 해괴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왜 순종하지 못합니까? 말씀대로 행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가복음 14:26)

이 말씀을 온전히 감당할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우리 중에도 아직 이런 말씀 앞에서 넘어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본인이 직접 저에게 묻지는 못하고 GPT에게 몰래 물어봅니다. 누가 물어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군가 이런 질문을 올렸다는 사실은 알 수 있습니다.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축복을 받는 것이 그렇게 어렵고, 저주를 받는 것은 그렇게 쉽단 말입니까?

6. 이 말씀은 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요, 네 마음에 있으며 네 입에 있느니라

모세는 신명기에서 저주받는 말씀과 순종하여 복을 받는 두 단락의 말씀을 모두 기록한 후, "이 말씀은 결코 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요, 심히 가까워서 네 마음에 있으며 네 입에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믿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렇게 행하면 복을 받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입니다." 이 말이 그렇게 이해하기 어렵습니까?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유익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가장 큰 손해로 여깁니다. 말씀을 따르는 것은 손해 보는 것 같고, 세상의 잔꾀를 부리는 것은 이득을 보는 것 같아서 기를 쓰고 세상의 이익을 좇아갑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요 여호와의 음성을 거역하는 죄인 줄도 모른 채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이미 잘못된 저울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신명기 28장 1절부터 14절의 축복의 말씀을 참으로 사모합니다. 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말씀입니까? 가장 크고 확실한 영적 이익을 얻는 길이 어찌 어렵단 말입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를 신실하게 먹이십니다. 제가 성전 건축 헌금에 대해 가볍게 한마디 권면했을 뿐인데, 지금은 제발 더 이상 헌금하지 말라고 말려야 할 정도로 넘쳐났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를 공급하고 계십니다! 사람에게는 영적인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과 불신은 바로 여러분의 마음과 입술에 달려 있습니다.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결코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자는 현세에서 백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마가복음 10:29)

저에게 묻는다면 저는 단호히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선하시며,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귀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가장 최고입니다! 저는 결코 인간의 얄팍한 논리를 따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만을 붙들고 나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서 있기 때문입니다!

7. 저주의 징조 1: 질병

신명기 28장 15절부터 68절까지의 말씀을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저주의 첫 번째 명백한 징조는 바로 '질병'입니다. 질병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질병이 닥쳤을 때 그것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몸에 병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저주'의 역사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어떤 성도들은 뇌 속에 저주받을 세상 지식만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건강보조식품을 먹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영양제만 잘 챙겨 먹으면 저절로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는다면 큰 착각입니다. 몸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도 깊숙이 파고드는 저주의 역사를 막지 못해 무너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질병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내게 아직 끊어내지 못한 저주가 남아 있구나" 하고 겸손히 인정해야 합니다. 귀신도 사람을 잘못 짚지 않고, 하나님께서도 결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귀신은 기가 막히게 정확하게 틈을 타고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저 자신을 포함하여 누구라도 몸에 질병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이것은 저주의 문제이다"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자복해야 합니다. 10년 전에 암에 걸렸다가 최근에 아내마저 암에 걸린 어떤 교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이것은 가문의 저주입니다"라고 말해주었더니, 그 사람은 대단히 화를 내며 "당신이나 저주를 받으시오!"라고 쏘아붙였습니다. 병에 걸린 현실은 부정하지 못하면서도 그것이 저주라는 말에는 분노를 터뜨립니다. 영적으로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네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그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던 애굽의 모든 질병을 네게로 가져다가 네 몸에 부속시키실 것이며 또 이 율법책에 기록하지 아니한 모든 질병과 모든 재앙을 네가 멸망하기까지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실 것이니 (신명기 28:58-61)

이 말씀을 똑똑히 들으셨습니까? 질병이 저주입니까, 아닙니까? 명백한 저주입니다! 앞서 22절에서도 분명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학질과 한재와 풍채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하게 할 것이라 (신명기 28:22)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질병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선물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야곱도 병이 들지 않았습니까?"라고 변명합니다. 야곱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을 폐할 수 있습니까? "바울에게도 육체의 가시가 있지 않았습니까?"라고 핑계를 댑니다. 바울의 가시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까? 그 어떤 인간의 경험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8. 저주의 징조 2: 재정

우리가 먹고사는 데는 돈이 듭니다. 반죽 그릇과 양식 창고, 여러분의 은행 계좌와 통장 잔고, 창고와 곳간이 곧 '재정'입니다. 저주 아래 놓인 사람은 재정에 있어서 결코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몸의 질병에 재정적인 파탄까지 겹친다면 인생은 처참하게 무너집니다. 한 가지 실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예전에 대만에서 온 한 자매님이 교회를 찾아와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질병의 고통과 함께 극심한 재정 문제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시작하자 하나님께서 "이 여인은 저주 아래 있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제가 "자매님의 삶에 저주가 임해 있습니다"라고 직언하자, 자매님은 몹시 불쾌해하며 화를 냈습니다. 저는 "저주라는 단어를 듣기 싫어하시는 줄 알지만, 자매님은 실제로 저주 속에 살고 계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자매는 금융 투자 상품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규정을 어긴 불법적인 방식으로 자금을 굴리다가 고객들에게 고소를 당해 재정적으로 큰 곤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게다가 매입한 아파트의 위층 주인이 리모델링을 하면서 안방 바로 윗부분을 화장실로 개조하는 바람에, 밤에 침대에 누워 있으면 위층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십일조를 도적질하고 있었습니다. 십일조를 드렸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사실은 길거리의 걸인들에게 몇 푼 던져준 것을 십일조라고 합리화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재정에 극심한 저주가 임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체가 건강하고 재정이 풍성하다면 축복의 열매일 수 있지만, 재정이 늘 쪼들리고 몸에 질병이 끊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저주의 열매입니다.

9. 저주의 징조 3: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

어떤 사람들은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만 하면 말아먹고 빚을 집니다. 얼마 전 한 자매님이 어떤 사람이 사업을 하다가 100만 위안을 날렸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100만 위안을 벌기는 피땀 흘려 어렵지만, 날리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여러분이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대해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감찰하시는 분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는 일이 완벽하다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완전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제가 하는 일에 장애물이 생기고 삐걱거리기 시작하면, 저는 즉시 '내가 또 하나님 마음에 합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가?'를 깊이 돌아봅니다. 화인 사명 신학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을 받기 시작하면,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놀라운 형통의 축복이 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최근 우리 교회의 한 자매님은 작은 회사의 미숙한 초보 회계사에서 재무 책임자로 승진하더니, 급기야 회계법인의 당당한 파트너(공동대표)로 세워졌습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손으로 하는 일마다 복을 받는 것입니다. 겉으로 거룩한 척하며 "할렐루야"를 크게 외치지 않더라도, 삶 속에 저주의 징조가 있는지 축복의 열매가 있는지는 열매를 보면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10. 저주의 징조 4: 원수 앞에서 패함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과 삶의 터전에서 여러분의 손으로 하는 일이 경쟁자들 앞에서 늘 패배하고 있습니까? 경쟁할 때마다 남에게 패하고, 패하는 것으로 모자라 평생 남의 밑에서 종노릇하며 섬겨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까? 부유함을 얻었을 때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는 너를 치러 보내신 원수를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은 채로 섬기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원수 앞에서 패망하는 저주입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세계 만민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지만, 그리스도인이면서도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을 멸시하고 불순종한다면 모든 민족의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11. 저주의 징조 5: 재앙과 재난

사람들에게는 끊임없이 크고 작은 재앙이 닥쳐옵니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예기치 못한 재난에 휘말리는 것은 명백한 저주의 역사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러한 불행을 겪으면서도 깨닫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이 모든 저주가 임하는 이유는 단 하나,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것이라면 대체 무엇 하러 주님을 믿습니까? 저주를 받으려고 믿는 것입니까? 신명기의 무서운 저주는 불신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을 향해 기록된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영적 진단 키트를 손에 쥐고 스스로를 엄밀히 측정해 보아야 합니다. 축복과 저주를 가르는 유일한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는가, 행하지 않는가',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는가, 불순종하는가'뿐입니다. 이제 분명히 깨달으셨습니까? 이제는 깨닫고 돌이켜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십시오. 불순종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다. "목사님, 저를 위해 축복 기도를 해주십시오"라고 쉽게 말하지 마십시오. 불순종하는 자에게 무슨 축복을 빌어준단 말입니까? 축복과 저주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 것입니다.

12. 결론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불순종의 길로 들어서면 그 끝은 결국 '완전한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신명기 28장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말씀마다 "네가 멸망하기까지, 네가 멸망하기까지!"라는 무서운 경고가 반복됩니다. 발견하셨습니까? 못 보셨다면 제가 짚어 드리겠습니다. 61절 "네가 멸망하기까지", 51절 "마침내 너를 멸하시며", 48절 "마침내 너를 멸하실 것이니", 45절 "마침내 너를 멸하리니", 24절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 22절 "너를 진멸하게 할 것이라", 20절 "네가 멸망하여 속히 망하게 하실 것이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들리십니까?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납니까? 저주는 방치할수록 점점 더 깊어지고, 저주가 깊어질수록 사람의 마음은 더욱 완악하고 강퍅해지기 때문입니다. 저주를 받을수록 심령은 돌처럼 굳어집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전합니다. 사람은 저주 아래 놓이게 되면 극도로 완고해집니다.

어찌하여 그토록 완고해집니까? 축복을 누릴 때도 하나님을 거역했던 자들이, 저주가 임해 고통당할 때 더욱더 하나님을 원망하고 거역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주시며 경고하고 또 경고하십니다. 그럼에도 끝끝내 저주 가운데 머물러 고집을 부린다면 결국 멸망에 이르는 것 외에 무엇이 남겠습니까? 오늘 이 말씀은 저주받을 자들을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참된 복을 받을 자들을 깨우치기 위해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마음이 찔리고 부드러워지는 자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저주 가운데서 멸망해 가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한 자들의 당연한 귀결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십시오. "어떻게 해야 순종할 수 있습니까?" 영적인 눈을 열어 세상의 70~80년 안개 같은 육신의 삶에 미혹되지 않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육신의 안위만을 목적으로 삼는 자는 결코 저주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영원하고 지극히 크고 썩지 아니할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를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영적인 가치를 가장 귀히 여기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찬양을 부르며 결단의 예물을 올려드리겠습니다. 헌금의 영적 의미를 온전히 깨닫지 못하신 분은 제발 헌금하지 마십시오. 헌금의 의미도 모른 채 드리는 것은 복이 되지 못합니다. "헌금을 안 해도 저주를 받습니까?" 억지로 드리거나 불신으로 드려 돈은 돈대로 잃고 저주까지 받는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헌금의 참된 의미를 깨달으십시오. 교회는 돈을 긁어모으는 곳이 아니라 하늘의 축복을 흘려보내는 통로입니다. 교회는 여러분이 진정으로 복 받기를 원하며, 저 또한 여러분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찬양 《오직 주님만 얻기를 원하네》를 부르며 준비하신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오늘 전한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을 깨웠습니까? 선악을 분별하지 말라고 하셨으면 더 이상 선악을 분별하려 하지 마시고, 육신의 생각을 따르지 말라고 하셨으면 육신을 좇지 마십시오. 자기 뜻대로 살다가 인생이 무너졌다면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더 이상 완악하게 굴지 마십시오. 구차한 변명과 이유를 늘어놓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인생의 첫 자리에 두지 않는 자는 지극히 어리석은 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심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운명이 자기 손에 달렸다고 믿는 자는 반드시 망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의 물질이 아니라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축복의 대로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온전히 올려드리는 최고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중심과 헌신을 하나님께서 기찰하셨습니다. 다 함께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겠습니다. "주 예수님, 내 삶을 온전히 주님께 산 제물로 올려드립니다. 이제부터는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살겠나이다. 이것이 내 평생의 유일한 목표입니다. 사람의 눈에 아무리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나는 오직 주의 말씀만을 의지하여 주의 뜻 안에서만 행하겠나이다! 하나님, 나의 삶을 기쁘게 흠향하여 주옵소서.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나 나의 모든 생명을 주께 드리오니, 주께서 내게 주시고자 하는 영원한 기업을 얻게 하옵소서!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만을 바라보며 나아갑니다. 주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 주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를 갈망하오니, 나와 영원히 함께하사 나를 주의 축복을 흘려보내는 거룩한 통로로, 온 땅의 축복의 근원으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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