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사실 요한이 표현하고자 했던 중심 사상입니다. 그는 《요한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특별히 부각하여 기록했습니다.
**그들이 조반을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하시니라(《요한복음》 21:15-17). **
이 이야기를 통해 사도 요한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가 사랑의 관계임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사랑은 매우 놀라운 것입니다. 사람이 평생 사랑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줄 수 없다면 비참한 삶을 살게 됩니다. 반대로 마음속의 사랑을 실천하면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바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매우 비참하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실제로 주고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핵심 가치 체계에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는 매우 중요한 관념이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매우 이기적인 사람 중에 잘 살아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음을 살펴봅시다. 우리 안에 사랑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랑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면, 그는 기본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랑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매우 멋진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성경 본문의 배경
베드로는 예수님을 매우 사랑했고, 예수님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셔서 따르게 하셨을 때, 그들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마태복음》 4:20 참조).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님,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고 했습니다(《요한복음》 6:68 참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사십 일 동안 계실 때, 이것은 세 번째로 나타나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날들 동안 베드로는 매우 낙심했고, 어쩔 수 없이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습니다(《요한복음》 21:3 참조). 사람의 마음이 좋지 않으면 물고기도 잡히지 않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고기를 잡는 데 매우 능숙한 사람이었습니다.
날이 새어 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리더라(《요한복음》 21:4).
요한이 왜 베드로가 벌거벗고 있었다는 일을 기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베드로의 마음이 매우 괴로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날들을 보내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해 본 사람은 모두 알 것입니다. 한때 주님을 사랑했던 사람이 주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게 되면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저는 날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주님이 없는 날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는 고기를 잡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꼈고, 자기 안에 있는 것을 풀어 놓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옷을 다 벗고 화를 내며 소리쳤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내렸습니다(《요한복음》 21:7 참조).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세 번째로 그들에게 나타나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삼 년이 넘도록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시지 않게 되었고, 주님을 사랑하면서도 예수님을 볼 수 없으니 그들의 마음은 매우 괴로웠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마음속의 느낌을 매우 잘 아십니다. 마음속으로 주님을 사랑하면 매우 만족하게 됩니다.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고, 피를 흘리더라도 그 만족감은 매우 훌륭합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모두 이것을 깨닫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주도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길 때 삶은 매우 멋지게 흘러갑니다.
제 말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지 마십시오. 우리 가운데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자녀들이 몇 명 있는데, 그중 한 자매는 몇 년 동안 매우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백만을 썼지만 아무 학위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자매에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괴로워하고 슬퍼하면서도 아무 맛도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제부터 베푸는 것을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우리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사랑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고기잡이 전문인이었고, 고기잡이를 매우 좋아했으며, 그것은 그의 생계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한복음》 21:15)
오늘날 우리가 일을 사랑하더라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 우리를 억압하고 지배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을 지배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셨을 때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눈으로 본다면 그들은 베드로 같은 사람을 가정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최근 싱가포르에서는 가정을 우선시하는 관념이 제시되었지만, 《성경》에는 그런 가르침이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버린 베드로의 관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 예수님께 베드로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요한복음》 21:15 참조).
선전에 있을 때, K 목회구의 목회자들이 신부전증을 앓는 한 형제를 위해 필사적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매우 큰 감동을 받았고, 그들에게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장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성숙하지 않은 어린 양과 같아서 사람의 사랑과 돌봄이 매우 필요합니다. 그중 MW 자매의 아이가 밤에 기침을 해서 자매는 밤새 쉬지 못했는데, 다음 날 아침 다시 일어나 이 형제를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또 몇몇 형제자매들은 그 형제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투석을 받게 했고, 교대로 당번을 서며 많은 것을 헌신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 목회구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를 직접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하나님께서 이 형제를 우리 가운데 보내신 것은 우리에게 한 가지 공과를 배우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세상의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어린 양은 우리 가운데서 사랑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삶에 필요한 것들을 더 사랑한다면,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 자체가 문제가 됩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마태복음》 10:37).
우리가 주 예수님을 사랑할 때에만 우리의 부모와 자녀도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는 과연 무엇인가?
다시 말하면,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을 먹이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약 “저는 어떻게 목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배우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목양해야 할지 모르고, 자신을 성장시켜 목양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목양하게 됩니다. 레이크 조너 목사님의 책에서 표현한 내용은 요한의 신학적 관념과 비슷합니다. 요한은 사랑이 가장 지고하다고 말했습니다. 레이크 조너의 책에서는 사람들이 오르는 산의 정상에 아버지의 사랑의 동산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의 동산에는 생명나무가 있고, 생명나무의 열매는 마음껏 먹을 수 있습니다.
알고 보니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고, 병을 고치고 해방시킬 수 있다 해도, 치유와 해방은 믿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마음속에 사랑이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알지 못하십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늘을 찌를 듯한 능력과 엄청난 믿음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가장 좋은 길을 보이리니, 그것은 사랑의 길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믿음, 소망, 사랑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잃어버리면 믿음이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호와의 산 정상에는 아버지의 사랑의 동산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대가를 치르고 자신의 생명을 바쳐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고 먹이는 것입니다. 장차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우리가 섬긴 열매를 판단하실 것이며, 섬긴 열매는 우리와 함께 하늘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괜찮아요. 하늘에 가서 다시 섬기면 되죠”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섬길 수 없고, 이 땅에 있을 때만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섬길 시간이 없다면 하늘에서는 기회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두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살아 내고, 그것을 나누어 이 세대를 섬기며, 하나님의 양 떼를 잘 목양하고 하나님의 어린 양을 먹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다
하나님의 양을 목양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 후,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요한복음》 21:18-19).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 예수님의 죽음을 본받고, 주 예수님처럼 자신을 완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알고 보니 우리 생명의 본래 의미도 바로 이와 같습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자신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을 섬길 때에야 자신의 생명을 얻을 수 있고, 자신의 삶이 번성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것은 우리 교회의 핵심 가치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을 본받고자 한다면 주님의 죽음을 본받고, 자신을 완전히 드려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자기 생명을 보존하려는 사람은 오히려 자기 생명을 잃게 됩니다.
스스로를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마음속에 매우 이기적인 마음이 있다면 평생 반드시 비참하게 살게 됩니다. 잘 살고 싶습니까, 아니면 매우 비참하게 살고 싶습니까?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본받으면 지극히 높은 곳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201과정에서 죽기까지 순종하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회에서 무엇을 전합니까? 교회에서 전하는 것은 어떻게 아름다운 삶을 살아 내고,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 내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논리 체계에 의지한다면 결코 잘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양 떼를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 떼를 섬기는 것은 생명을 드리는 것이고,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만났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곧바로 묻습니다. “몇 년도에 구원받으셨습니까?” “아, 저는 몇 년도에 구원받았고, 몇 년도에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그가 누구를 따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마귀를 따르는 것 같습니다. 온몸에 문제가 가득한데도 이렇게 말합니다. “왜 이렇게 문제가 많을까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것인가 봅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따르지도 않고 예수님을 본받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을 따르십시오. 그것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면 반드시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 예수님 안에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 살아도 영생이 없고 지옥으로 향한다면, 그의 일생은 공허하고 정말 무력한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을 본받는 것이 곧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집중하여 주님을 따르기
마지막 만찬을 드실 때 베드로는 몸을 돌이켜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제자는 요한이었습니다. 그는 주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입니까?” 베드로는 그를 보고 주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이 사람은 장차 어떻게 됩니까?” 그 말의 속뜻은 아마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왜 저에게는 주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시면서, 저 사람에게는 따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매우 훌륭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요한복음》 21:22)
쓸데없는 일을 묻지 마십시오. “주님, 저 사람은 장차 어떻게 됩니까? 저 사람도 주님을 따를까요?” 사실 그가 따르든 따르지 않든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않는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누군가 주님을 따르더라도 그 사람이 제가 목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저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제게 “싱가포르에 다른 용을 쫓아내는 교회가 있습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저와 상관없는 일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양들에게만 관심을 두고, 그들을 잘 목양하며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를 힘씁니다. 저는 그저 주님을 잘 따릅니다. 주님을 잘 따르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저는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어릴 때 공부를 잘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상관없는 일은 거의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마작을 하든 담배를 피우든 그것이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반드시 집중하십시오!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저는 우리 가운데 부지런한 한 아이를 좋아합니다. 그 아이는 매우 사랑스럽고, 걸핏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제가 커피 한 잔 타 드릴까요?” 저는 큰 위로를 받습니다. 제가 매우 힘들게 섬기고 있을 때 누군가 커피 한 잔을 가져다주면 정말 좋습니다. 저는 “자매님, 정말 고마워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본 어떤 사람은 매우 불쾌해합니다. “목사님, 왜 그 자매를 그렇게 좋아하세요?” 제가 좋아하는 것이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 그들은 쓸데없는 일을 만들어 내는데, 자신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자신과 관계있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야 합니다. 자신과 관계없는 일을 왜 신경 씁니까? 여러분은 주님을 따르십시오! 주님을 본받으십시오! 주 예수님께서 대가를 치르라고 하시면 대가를 치르십시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는 여러분과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목양하는 양이라면 잘 목양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목양하는 양은 그 사람이 목양하는 것입니다. 자기 포도원은 잘 돌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포도원을 살피고, 자기 포도원의 포도는 먹지 않고 다른 사람의 포도원 포도를 먹으며 자기 집 포도는 시고 다른 사람의 집 포도는 달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 세대에는 다른 사람의 자녀를 부러워하는 일이 많습니다. 나중에 저는 “남의 집 아이”라는 뜻의 성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이가 더 좋아 보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집중해야 합니다. 저는 집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가 쓴 책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고, 제가 만든 웹사이트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제가 하는 섬김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제가 세운 교회가 가장 하나님 마음에 합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아세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저를 간섭하지 말고, 저도 여러분을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집중입니다.
저는 우리가 만든 노래가 가장 듣기 좋은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소식을 하나 전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노래를 듣고 YX를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전문적인 팀이라면 저희를 위해 한 곡 창작해 주실 수 있나요?” 우리가 전문적인 팀이 된 것입니다! 물론 저는 우리 팀이 정말 전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팀이 전문적인지 아닌지는 제게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집중하는 사람이고 개성이 뚜렷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집중하여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매우 작았고 일곱 식구가 함께 살았습니다. 이웃들이 우리 집에 오면 제가 자주 벽 모퉁이에 작은 의자를 놓고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이 녀석이 말은 없지만 생각이 깊고 주관이 뚜렷하네!” 그들이 하는 말을 저는 다 들었습니다. 저는 주관이 뚜렷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끼리 이야기하고, 저는 저와 상관없는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수학, 물리, 화학을 잘 배우면 온 세상을 다닐 수 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오늘날 주 예수님을 잘 따우면 온 세상을 다닐 수 있습니다.
잘 집중하십시오. 집중하는 것은 한 사람의 성품입니다. 예를 들어 FF가 집중력을 훈련하기 시작하면 《창세기》 1장을 다 읽지 않았습니까? 계속 읽으면 2장, 3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한 사람이 뿌리 없이 떠돌아다니며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은 성품의 문제입니다.
어제 한 자매가 제게 말했습니다. “뉴질랜드와 호주의 복지가 매우 좋아서 학위를 하나 취득하고, 그 나라의 거주 허가를 신청해 주민이 되고 싶어요.” 저는 생각해 본 후 그 자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전부 이기적이네요! 왜 그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 기여할 생각은 하지 않습니까? 그 나라의 복지를 당신이 만든 것도 아니잖아요.” 제가 말한 문제의 핵심은 여러분에게 가치를 창출할 능력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한 가지 성품을 갖는 것이며, 그 성품은 바로 집중하는 것입니다. 자매는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런 말을 해 주신 분은 목사님밖에 없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겼을 거예요.” 그러나 그 자매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다른 나라의 복지가 여러분에게 이익을 챙기라고 있는 것입니까? 늘 이익을 챙기려고 하면 계속 챙기지 못해서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저는 다른 사람의 이익을 차지하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제 생명을 드려 이 세대의 축복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요한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말을 자세히 묵상해야 합니다. 왜 집중하여 주님을 따라야 합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집중하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집중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라면, 이러한 집중하는 성품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멋진 일생을 살아 내게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 삶의 전부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여러분 삶의 모든 필요는 근본적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아침 기도로 인도할 때 한 자매가 제게 물었습니다. 마사지를 배웠는데 최근 주님의 뜻을 구하고 있지만 아무런 계시도 없습니다. 마사지 가게를 열어도 될까요? 저는 《성경》에 그런 일은 한 번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바울은 누군가에게 “사업을 해도 될까요?”라고 기도해 준 적이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며, 그 밖의 모든 것은 너희에게 더해진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는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 시대에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꿈에 그에게 나타나 물으셨습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을 잘 다스릴 지혜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셨고, 그에게 지혜뿐 아니라 존귀와 부요도 주셨으며 그가 구하지 않은 것들도 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지혜가 있으면 다른 것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런 관념을 가질 수 있습니까? 우리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안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믿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믿습니까? 정말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다섯 떡을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너희가 주워 모은 조각이 몇 바구니에 찼더냐? 이르되 열두 바구니니이다. 또 일곱 떡을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너희가 주워 모은 조각이 몇 광주리에 찼더냐? 이르되 일곱 광주리니이다.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마가복음》 8:19-21)
오늘 이해했습니까? 떡은 어디에 있습니까? 떡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빵은 어디에 있습니까? 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축복 안에 있습니다! 우유도 있을 것이고, 빵도 있을 것이며, 물고기도 있을 것이고, 떡도 있을 것입니다.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변에 서 계시다가 제자들이 올라와 보니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떡과 생선을 굽고 계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까? 떡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생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예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떡 한 자루와 생선 한 자루를 메고 오셨을 리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존재하게 되고, 명령하시면 세워집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 일상생활의 모든 필요가 있다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정상적인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생활 속에서 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자주 섬깁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들의 생명이 해방되고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자신의 일들로 바빠집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떡도 있고 생선도 있으며, 자신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이런 일을 금광을 발견한 사람이 작은 금 조각 하나를 줍고는 곧장 도망가는 것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그 작은 금 조각을 꼭 쥐고 달아나느라 그 금광 안에 금이 5톤, 10톤, 100톤이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계속 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라면 금광을 발견했을 때 굴착기를 사고, 금광을 개발할 장비를 사서 계속 캘 것입니다. 1톤, 2톤, 3톤, 5톤, 100톤까지 계속 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많은 보물이 있습니다. 제가 1991년 말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1992년에 세례를 받은 후, 보물을 찾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보물이다. 나는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집중하는 성품으로 인해 저는 매우 큰 은혜를 얻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매우 풍성한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축복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큰 나라로 세우시며 우리의 이름을 크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커진다면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작은 인플루언서도 이름이 그다지 크지 않은데 1년에 300만 위안을 벌고 있습니다.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장차 우리 교회는 반드시 큰 나라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이름을 크게 하실 것이며, 우리를 높이셔서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다른 사람의 축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도 기꺼이 그들을 축복하기 원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땅의 모든 나라와 민족의 축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삶으로 실천해 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생활에 필요한 것이 여전히 문제가 되겠습니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MW 자매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몇 년 동안 일을 쉬었다가 다시 일자리를 구했는데, 단번에 관리직을 얻었습니다. 이것을 어디 가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화가 날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생활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건강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부요함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번성하는 삶을 사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멋진 삶을 사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찾으려고 합니까? 우리의 유익은 주님 밖에 있지 않습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어디에서 찾으려 합니까! 세 걸음 가고 세 번 뒤돌아보며 어디를 바라봅니까? 세상에는 좋은 것이 없습니다. 더 살펴볼 필요가 없습니다. 계속 살피다가는 자신이 어지러워질 뿐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계속 우리에게 물으시는 질문입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였고, 보리떡 일곱 개와 물고기 네 마리로 사천 명을 먹였는데, 너희는 사실의 본질을 아직도 보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떡 몇 개와 물고기 몇 마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모든 필요에 대한 답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결론: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 안에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고, 무궁한 보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천국의 열쇠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열쇠는 권세를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천국의 열쇠를 들고 싶습니까? 천국의 보물을 열어 이 땅의 모든 필요를 채우고 싶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부요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결핍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면서 숫자 하나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153입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이 153이라는 숫자가 매우 놀라운 숫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153마리의 물고기는 실제로 베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사실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물을 한 번 던져 그렇게 많은 물고기를 잡았고, 물고기가 너무 많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습니다. 장차 우리도 베드로처럼 올바른 곳에 그물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가 던지는 그물은 베드로의 그물이 아니라 ‘인터넷’입니다. 이 ‘인터넷’이라는 그물을 던지면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어찌 153마리의 물고기뿐이겠습니까? 장차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크게 일으키셔서 우리 교회가 사람을 낚는 어부와 같은 교회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먹이고 목양하는 일이 있으며, 완전한 목양 체계가 있습니다. 이 목양 체계는 물고기가 빠져나가지 않는 그물과 같아서 반드시 모든 물고기를 건져 올릴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완전한 목양 체계를 세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고기를 건져 올릴 준비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찢어진 그물이 아니라 완전한 그물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이 세대를 섬기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은 결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부터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고, 함께 사람을 낚는 어부의 길을 달려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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