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모스> 7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아모스> 7장은 아주 훌륭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선지자와 왕의 어용 선지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앞선 몇 장에서 아모스는 많은 말을 전했는데, 과연 그가 전한 말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일까요?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할 수 있습니다. 7장은 하나님의 선지자는 어떤 모습이며, 사람의 어용 선지자는 어떤 모습인지를 명확히 보여 줍니다. 이는 우리가 깊이 묵상해 볼 필요가 있으며, 참으로 곱씹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어떤 교회에 간 적이 있었는데, 저를 맞이한 분이 차로 저를 3천만 위안을 들여 지었다는 대형 식당으로 데려갔습니다. 그 안에는 한 무리의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그 식당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그 식당의 어용 중보기도자들이었습니다. 만약 그런 방식이 효과가 있었다면 진작에 효과가 났어야 했고, 나중에 그 가게 주인이 비참하게 파산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참 많습니다. 저는 왜 이 시대에 이런 일들이 이토록 많은지 참 의아합니다. 한번은 어떤 다단계 판매원이 제가 잘 모르는 유명 인사를 언급하며, 제가 그 사람의 병을 고쳐 주면 많은 사람이 따라와 주님을 믿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병을 고쳐 주었음에도 아무도 주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 다단계 판매원이 건강식품을 팔려고 그 유명 인사를 알게 되었는데, 그 사람을 제게 소개해 준 후 그의 건강식품 사업이 완전히 망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건강식품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으로는 사람의 병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람 속은 매우 더럽습니다. 쓰레기를 치우지 않으면 제대로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그 사람들은 돈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주변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모여든 것일까요? 그녀 곁에 있는 사람들도 결국 그녀의 돈을 바랐을 뿐입니다. 나중에 제가 그녀를 섬기러 갔을 때에야 그녀의 집이 거대한 저택이고, 그 안에서 백여 명의 목회자들이 예배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남의 저택에서 예배 의식을 치르면서도, 정작 그 저택 여주인의 문제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런 가식적인 것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거기서 그저 찬양만 부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우리 교회도 찬양을 부르고, 찬양 곡들을 만들어 주신 분들께 감사하지만, 저는 오직 사역에 전념합니다. 섬김을 받던 그 부유한 분은 제게 그 많은 사람이 그곳에 있었지만 아무도 자기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저만이 자기 문제에 관심을 가져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사람을 죄 가운데서 끌어내야 하는 사람이지, 사람의 어용 선지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깊이 안다
여러분은 사람에게 있는 모든 문제가 스스로 저주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차피 하나님의 저주이니 저주 속에서 그냥 살면 된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은 소목자이든 교구장이든 다른 누구이든 간에,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이 세대를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 불을 내려 이 세대를 불태워 멸해 달라고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재앙 내리기를 기뻐하지 않으시며, 도리어 이런 사람들에게 떠밀려 재앙을 내리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섬길 때 여러분의 병이 낫는 것은 여러분이 변화되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죽고 하나님을 위해 살기를 각오한 사역자가 하나님 앞에서 "이 형제가 너무 연약합니다"라고 부르짖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재앙을 면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치유를 받은 뒤에 또다시 같은 죄를 짓는 것은 제가 사역하면서 매우 답답해하는 부분입니다. 사람은 몇 번이고 거듭 하나님께 죄를 짓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그것을 은혜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선지자나 심지어 예수님이 곁에 계신다 해도 도울 수가 없습니다. 한번은 외부 사역을 나간 적이 있는데, 그 교회의 목사님이 제 친구였습니다. 그는 자기 힘으로 감당이 안 되니 교회의 온갖 해결하기 힘든 난제들을 저에게 가져와 해결해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사역하고 있을 때 우리 중의 한 형제가 찾아왔는데, 이 사람은 온갖 문제가 많았고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음성을 듣고 환상 보기를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사역을 받는 사람에게 안수하며 기도하면서 자기가 보니 예수님이 바로 그 사람 뒤에 서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섬김을 받던 청년이 그를 째려보며, 만약 예수님이 자기 뒤에 서 계셨다면 자기가 오늘날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섬김을 받는 자의 뒤에 예수님이 계신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취할 태도가 아니며, 그저 신비주의적으로 그럴듯하게 꾸며대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깊이 아는 사람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메뚜기를 지으시매 메뚜기가 그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아모스》 7:1-2)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지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이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지 보십시오. 땅의 권세 잡은 자들은 위에서 횡포를 부리고, 곡식을 추수하면 왕실에 바쳐야 합니다"라고 고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 장에서는 권세와 지위를 가진 자들이 헛된 것과 권력을 좋아하고, 높은 자리에 앉거나 상아 침대에 누워 마사지나 받는 등의 일을 즐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런 방식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백성이 뽑은 선지자들조차 이에 동조합니다. 그들 모두가 왕에게 빌붙어 먹고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메뚜기를 지으셨을 때, 하나님의 선지자는 메뚜기가 온 땅의 농작물을 다 갉아먹는 것을 보고 그 땅을 위해 중보했습니다. 하지만 이 선지자에게 감사하기는커녕 많은 사람이 그를 배척하고 싫어하며, 심지어 선지자가 어서 예루살렘으로, 유다 땅으로 쫓겨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고 이곳에 머물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이 선지자는 그 땅을 위해 간구했습니다. 그의 중보기도가 없었다면 그 지역은 메뚜기 재앙으로 멸망했을 것입니다. 메뚜기는 겨울이 되어야 없어지고 이듬해 봄이 되면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어 백성들의 삶은 극도로 비참해졌을 것입니다. 사람은 왕실에 식량을 바쳐야 하지만, 왕실이 사람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사람을 먹여 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선지자도 그곳의 백성들이 분명 지긋지긋하고 보기만 해도 답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깊이 알았기에 하나님 앞에서 그곳을 위해 간구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 이 세대를 멸해 달라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하나님의 긍휼이 없다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이에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아모스》 7:4-5)
여기서 뜻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계속 이렇게 다루시면 전부 바비큐처럼 타 버릴 텐데,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까맣게 타 버린 것을 좋아하실 리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이 재앙도 면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재앙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를 짓는 어리석은 지구인들에게 떠밀려 재앙을 내리시게 됩니다. 메뚜기와 불의 징벌을 겪고서도 아모스의 기도 덕분에 회개했다고 말한 백성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거듭 경험하고도 도무지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섬길 때 우리의 마음은 참으로 괴롭습니다. 그들의 완악하고 어리석은 마음을 보고 있으면 하늘에 부르짖어도 대답이 없고 땅에 호소해도 소용이 없는 지경입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기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고유한 기준이 있으시며, 사람이 거룩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려면 마음고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섬기는 이 지구인들의 뼛속에는 어리석음이 깊이 박혀 있어서, 섬김을 다 마치고 나면 마치 쇠똥구리를 억지로 삼킨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퀴벌레를 먹는 것과는 다릅니다. 바퀴벌레는 구워서라도 어떻게든 먹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쇠똥구리는 노린재를 먹는 것과 같아서 손에 한번 닿기만 해도 그 냄새가 오래도록 가시지 않는데, 먹는다면 얼마나 더 역겹겠습니까? 쇠똥구리를 먹는 느낌이란 과장이 아니라 정말 그런 답답하고 비참한 느낌입니다. 어떤 사람은 극도로 어리석어서 빚더미에 올라앉았는데, 제가 지어낸 온갖 표현을 다 갖다 붙여도 부족할 지경입니다. 머리에 오물이 찼는지 멍청하기 짝이 없고, 속은 좁쌀만 하고 머리는 호두알만 합니다. 이런 사람은 마귀가 속이면 바로 넘어가고, 목회자가 훈계하면 곧바로 선악을 분별하며 시험에 드니 참으로 기괴합니다. 언제쯤 빠져나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그저 그 안에 머물게 둔 채 계속 빚 속에서 간신히 살아가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다 속이 타고 어떻게 권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을 아무리 잘한다 한들, 온 힘을 다 쏟아부어도 그 머릿속의 오물을 치워 내지 못하니 참으로 대단합니다.
선지자가 되기는 쉽지 않으니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한번은 어떤 형제에게 어서 저주와 불운에서 벗어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한사코 싫다고 하며 자기가 왜 나가야 하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거듭 하나님께 죄를 짓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선지자는 모두를 위해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을 막아서야 합니다. 사실 저는 이런 일이 정말 싫습니다. 쇠똥구리를 한 마리씩 계속해서 억지로 삼키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을 볼 때 이생의 위로를 얻습니다. 그들은 돈을 위해서도 아니고 다른 무엇 때문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니 진정한 하나님의 선지자들입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소목자들을 칭찬합니다. 그들은 마음과 힘을 다해 섬기며 자신의 쾌락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들도 가만히 숏폼 영상이나 보며 쉴 수 있지만 여러분을 섬겼는데, 여러분은 여전히 그들과 선악을 분별하며 시험에 드니 참으로 마음이 씁쓸합니다. 사역자가 되려면 상처받지 않고 어떤 칼과 창도 뚫지 못하는 단단한 뚝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선택한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선지자는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심판을 선포한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심판을 선포합니다. 아모스가 기도로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선 것이 이미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아모스에게 더 이상 막아서지 말라고 하시며, 주께서 정말로 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가지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파괴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 (《아모스》 7:7-9)
여로보암은 왕이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감히 왕 앞에 서서 말할 수 있겠습니까? 미국에서는 대통령을 욕할 수 있고, 길거리에 서서 아무리 욕해도 아무도 제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선지자로서 심판을 선포한다면 어느 나라에서든 눈엣가시가 되어 진짜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다림줄은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본래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성전을 건축해야 하며,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건축된 예루살렘 성벽이자 여호와의 성전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다림줄로 재어 보니 이리저리 기울고 완전히 잘못 지어졌습니다. 장차 다림줄로 재어 보면 끝장납니다. 전부 자기 뜻대로 성전을 건축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뜻대로 성전을 건축하면 하나님께서 다림줄로 재실 때 큰 곤욕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의 기준과는 절대 타협할 수 없으며, 반드시 하나님의 기준에 맞춰 정확히 세워져야 함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여기서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칠 것이라는 심판을 선포하고 있음을 주의 깊게 보십시오. 여로보암은 그 지역의 황제와 같은 존재였는데, 지방 군수에게만 대들어도 가만두지 않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셔서 이러한 직분을 감당하게 하실 때, 목숨을 바칠 각오 없이 수많은 계산과 염려만 품고 있다면 이 일은 결코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재앙 내리기를 썩 기뻐하지 않으시지만, 그렇다고 산타클로스 같은 분도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일단 재앙을 내리시기로 결정하시면 선지자라도 막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대단한 영적 거장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저는 대단하기는커녕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며 단지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어떤 이는 이미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재앙이 임했는데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거두시면 사람은 다시 죄를 짓고, 하나님은 또 재앙을 내리시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여러분은 결코 하나님께서 손을 대시도록 몰아붙여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왕을 모독하는 일이며, 하나님의 기준은 결코 타협될 수 없습니다. 최근 저는 '좀 타협하고 느슨하게 가야 하나' 고민해 보았습니다. 오래도록 씨름하다가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전히 정예 용사의 수준으로 세워 나갈 것이며, 떠날 사람은 떠나야 합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을 도와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이 하나님의 큰 진노를 사는 일임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짓밟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겪은 고난으로도 부족합니까? 여전히 그렇다면 더 큰 곤욕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권면해도 듣지 않으니 마음이 아플 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조만간 이런 사람들에게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속히 회개해야 합니다. 수년 전 저는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는 법을 잘 몰랐을 때에도, 하나님을 돕겠다고 나서는 것이 저주받을 짓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를 도와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는데, 사실 그것은 하나님을 돕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당치 않은 말입니다.
여러분이 와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은 여러분에게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으시고, 저 역시 사람의 도움이 별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와서 양육을 감당한다면, 비록 힘들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기에 여러분이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사역하는 것이 비록 힘들지라도 그것은 은혜이지 결코 여러분의 공로가 아닙니다. 섬김을 통해 여러분이 성장하고, 은혜를 입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로 이러한 인식을 세워야 합니다.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아모스》 7:14)
선지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물고기를 잡으면 어부라 하고, 양을 치면 목자라 하며, 농사를 지으면 농부라고 부릅니다.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아모스》 7:15)
선지자가 되는 것은 백성들과 떼를 지어 다니며 왕에게 아첨하거나 권세자들에게 잘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양 떼를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목사는 형제자매들에게 무조건 양 떼를 따라가라고 가르치다가 결국 다 바보로 만들었습니다. 가서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부르심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조금 더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왕을 거스르고 어용 선지자를 거스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남의 돈줄을 끊는 것은 부모를 해치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어용 선지자를 거스르는 것은 부모를 해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을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3. 주님의 행하심을 알아야 한다
주님의 행하심은 한두 번 은혜를 베푸시고, 어쩌면 세 번, 네 번까지도 주실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두 번만 주시고 곧바로 재앙을 내리실 수도 있고, 세 번일 수도 있으니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상대로 도박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서너 번 재앙이 없었다고 해서 안심하지 마십시오. 다섯 번째에는 재앙이 임합니다. 최근에 아무 일 없이 평안하다고 해서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상처가 아물자 아픔을 잊어버린 것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행하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언제 여러분 위에 나타날지 모릅니다. 조심하십시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때 저는 막을 수도 없고 막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이미 쇠똥구리를 삼킬 만큼 삼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징계와 질병과 재앙을 겪었는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으며, 한 번 더 반복되면 끝장날 수 있습니다. 아모스의 이야기에서도 단 두 번뿐이었고 곧이어 재앙이 임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습니다. 여러분은 긴 시간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매우 짧습니다. 만약 10년 뒤에 거둘 저주를 심는다면 그 재앙은 매우 가혹할 것입니다. 사흘이나 닷새 만에 거두는 저주는 콩나물 같아서 해결하기 쉽지만, 40년 뒤에 거둘 저주를 심는다면 그것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며, 맺히는 열매는 오랜 시간 응축된 무서운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토록 많은 일을 겪고도 여전히 하나님의 행하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광야에서 죽어 간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머리는 엉덩이에 달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힌 천하의 진풍경이었습니다. 60만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광야에서 죽어 버렸고, 아주 좋은 패를 쥐고서도 완전히 망쳐 버린 것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입만 열면 귀신의 말만 쏟아낸다면 정말 조심해야 하며, 날마다 경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로 아마샤와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참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왕의 어용 선지자에 불과합니다.
4. 왕의 어용 선지자가 하나님의 선지자를 고발하다
이 시대가 참 흥미롭다는 것을 느끼지 않으십니까? 가인이 아벨을 죽였듯이, 역대 이래로 늘 거짓 선지자가 참선지자를 고발해 왔습니다. 지난 수년간 교회를 개척하고 세워 가는 과정에서 저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저를 대적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운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제가 그릇된 길로 갈까 봐 저를 위해 필사적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저를 변화시켜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이 길을 가고 있으니 그들이 계속 기도하게 내버려 두십시오. 교회의 사람들이 떠나고 또 떠나기를 반복했고, 떠날 때마다 그들은 저에게 온갖 그럴듯한 조언을 해 주어서 제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었습니다. 저더러 조심하라고 권면했지만, 사실 저는 소심한 사람도 아니고 믿음이 작은 자도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왕의 어용 선지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큰 확신을 가지고 자기가 선지자라고 여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깨닫지 못합니다.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보내어 이르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반역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 (《아모스》 7:10)
만약 아모스가 거짓 선지자라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늙은 농부가 공원에서 몇 마디 소리친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들 역시 아모스가 한 모든 말을 이 땅이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믿었지만, 그것을 결정하는 분이 하나님이 아니라 아모스라고 착각했습니다.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일입니다.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 하고 (《아모스》 7:11)
왕의 어용 선지자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고발하며 왕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를 죽일 수 없습니다.
5. 왕의 어용 선지자는 입에 풀칠하기 위해 일한다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아모스》 7:12)
왕의 어용 선지자는 하나님의 선지자도 예언을 통해 입에 풀칠하고 먹고사는 줄 압니다. 어떤 사람은 벽돌을 깔거나 미장일을 해서 먹고살고, 어떤 사람은 코딩을 하거나 막노동을 해서 먹고살지만, 하나님의 선지자는 그런 것으로 입에 풀칠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하나님께 바쳐 드린 사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면 먹고사는 문제 따위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처럼 살면 얼마나 좋습니까? 정 먹고살 길이 막히면 금식기도를 하면 됩니다. 열흘 금식기도로 해결되지 않으면 40일 금식기도를 하고, 40일로도 해결되지 않으면 80일 금식기도를 하면 됩니다. 그때가 되면 눈앞에 분명 별이 번쩍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죽음을 하찮게 여기며, 먹고사는 문제는 더 이상 그들의 추구나 목표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극히 사소한 일에 불과합니다. 왕의 어용 선지자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왕을 죽이려 한다고 고발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역자들이 행하는 이 모든 일의 목적은 하나님을 위해 죽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단번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입장권을 얻는 것입니다. 왕의 어용 선지자는 모든 선지자가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난 수많은 자칭 선지자들도 참으로 입에 풀칠하기 위해 일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입에 풀칠을 못 하면 안 하면 그만이고, 비싼 음식을 먹지 못하면 안 먹으면 되며, 비싼 물건을 쓰지 못하면 안 쓰면 됩니다. 어차피 일찍 죽으면 그만입니다. 사후의 재산이야 가져갈 사람이 가져가면 될 일이지만, 왕의 어용 선지자의 마음과 생각에는 오직 먹고사는 일밖에 없습니다.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아모스》 7:12)
이곳은 우리가 먹고사는 밥줄이니, 여기서 우리의 돈줄을 끊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의 재물을 막는 것은 부모를 죽이는 것과 같으니 어서 떠나 다른 곳에 가서나 예언하라는 뜻입니다.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 (《아모스》 7:12-13)
이 말씀들을 곰곰이 묵상해 보십시오.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하나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자 하는 자는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믿음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써 지금까지 수많은 재앙을 막아설 수 있었습니다.
6. 왕의 어용 선지자가 신경 쓰는 것은 왕의 성소와 왕의 궁궐이다
사람의 안목이란 실로 놀랍습니다. 며칠 전 저는 이미 제외된 한 자매를 섬기게 되었는데, 그녀가 여전히 필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한 번 더 섬겨 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녀에게 《창세기》를 다시 읽어 보라고 권하자, 그녀는 이미 세 번이나 읽었지만 이번에 다시 들으니 완전히 새로운 말씀을 듣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의 관점을 전혀 듣지 못했는데, 이제 자신의 미래가 하나님과 같은 관점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가 드디어 진리를 조금 깨달은 것 같아 축하해 주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왕의 궁궐과 왕의 성소를 보며 대단히 웅장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사실 이스라엘 왕의 궁궐은 형편없었습니다. 작은 나라의 사신들이 중국에 와서 보고는 자신들 왕의 궁전이 자금성의 한구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이 중국에 조공하러 올 때 자금성의 천안문으로 들어가면 천안문 뒤에 단문이 있고, 단문 뒤에 오문이 있으며, 오문 뒤에도 또 문이 있어서 매 문을 지날 때마다 한참을 걸어야 해 두 다리가 부러질 지경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의 에어컨, 음향 장비, 조명을 보며 남의 교회가 좋다고 부러워하는데, 신경 쓰는 것이 고작 이런 것들이라면 그것은 멸망할 자의 안목입니다.
7. 하나님의 선지자는 왕의 어용 선지자의 심판을 선포했다
많은 목회자가 어용 선지자라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습니다. 그가 율법의 어느 조항을 어겼는지, 아니면 수많은 조항을 어겼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결국 아래의 본문에서 말씀하는 것과 같은 심판에 처하게 됩니다.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네가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경고하지 말라 하므로 (《아모스》 7:16)
말하든 말든 그것은 당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며, 전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당신의 권한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가운데서 창녀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네 땅은 다림줄을 띄워 나누어질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의 땅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 (《아모스》 7:17)
아내가 창녀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수치입니다. 제가 알기로 어떤 목사는 매우 부유한 사람을 섬기며 매일 그 부자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 부자가 보기에 무언가 이상하여 목사에게 나를 섬기듯 도움이 필요한 다른 형제자매들도 섬겨 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매우 타당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는 당신을 섬기듯 다른 형제자매들을 섬기다가는 자기가 죽고 말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결국 그 부자를 목숨 걸고 섬긴 것은 그의 돈을 노리고 혜택을 얻고자 한 것뿐이었으니, 그 결과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그런 부자들은 누가 자기 돈을 탐내는지 속으로 다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사람은 참으로 악합니다. 많은 목회자가 교회 안에서 부자를 보면 거의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인데, 이것이 어찌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상황은 결코 소수가 아닙니다. 비굴하게 아부한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을 어찌 심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과연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8.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행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성경》에 있는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 안에서 근거를 찾아야 하며, 문맥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의 뜻을 붙잡을 수 없으며, 단편적으로만 성경을 해석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달아야 비로소 중보기도를 통해 재앙을 막아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면 사람을 거스르고 거북하게 만들 수밖에 없으며, 사실 사람의 비위를 거스르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용서하지 않으실 때가 반드시 오며, 그때는 우리가 간구해도 소용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 되겠습니까? 왕의 어용 선지자가 되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겠습니까? 아모스가 기록한 이 말씀은 참으로 강력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땅에는 어용 선지자가 넘쳐났고,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어용 선지자는 부지기수입니다. 예전에 어떤 사업가가 "영광으로의 복귀"라는 말을 지어냈는데, 사업에 무슨 영광이 충만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런 재물을 불의한 재물로 여기시는데, 거기에 무슨 영광이 있단 말입니까?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경고합니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과 같습니다. 짊어진 짐이 너무 커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돈이 너무 많아 우리의 마음을 옭아매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하나님의 선지자와 왕의 어용 선지자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제 차근차근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히 깨달아 알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