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推荐评论
命定神学 关闭
【성경공부】유다서 1장 - 성도에게 전해진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우라

2026-04-08 1,168 犹大书

相关经文

犹大书01章-假教师的刑罚
  • 1 耶稣基督的仆人,雅各的弟兄犹大,写信给那被召、在父 神里蒙爱、为耶稣基督保守的人。
  • 2 愿怜恤、平安、慈爱多多地加给你们。
  • 3 亲爱的弟兄啊,我想尽心写信给你们,论我们同得救恩的时候,就不得不写信劝你们,要为从前一次交付圣徒的真道竭力地争辩。
  • 4 因为有些人偷着进来,就是自古被定受刑罚的,是不虔诚的,将我们 神的恩变作放纵情欲的机会,并且不认独一的主宰、我们(或译和我们)主耶稣基督。
  • 5 从前主救了他的百姓出埃及地,后来就把那些不信的灭绝了。这一切的事,你们虽然都知道,我却仍要提醒你们。
  • 6 又有不守本位、离开自己住处的天使,主用锁链把他们永远拘留在黑暗里,等候大日的审判。
  • 7 又如所多玛、蛾摩拉和周围城邑的人,也照他们一味地行淫,随从逆性的情欲,就受永火的刑罚,作为鉴戒。
  • 8 这些作梦的人也像他们污秽身体,轻慢主治的,毁谤在尊位的。
  • 9 天使长米迦勒为摩西的尸首与魔鬼争辩的时候,尚且不敢用毁谤的话罪责他,只说:“主责备你吧!”。
  • 10 但这些人毁谤他们所不知道的。他们本性所知道的事与那没有灵性的畜类一样,在这事上竟败坏了自己。
  • 11 他们有祸了!因为走了该隐的道路,又为利往巴兰的错谬里直奔,并在可拉的背叛中灭亡了。
  • 12 这样的人在你们的爱席上与你们同吃的时候,正是礁石(或译:玷污)。他们作牧人,只知喂养自己,无所惧怕;是没有雨的云彩,被风飘荡;是秋天没有果子的树,死而又死,连根被拔出来;
  • 13 是海里的狂浪,涌出自己可耻的沫子来;是流荡的星,有墨黑的幽暗为他们永远存留。
  • 14 亚当的七世孙以诺曾预言这些人说:“看哪,主带着他的千万圣者降临,
  • 15 要在众人身上行审判,证实那一切不敬虔的人所妄行一切不敬虔的事,又证实不敬虔之罪人所说顶撞他的刚愎话。”
  • 16 这些人是私下议论,常发怨言的,随从自己的情欲而行,口中说夸大的话,为得便宜谄媚人。
  • 17 亲爱的弟兄啊,你们要记念我们主耶稣基督之使徒从前所说的话。
  • 18 他们曾对你们说过,末世必有好讥诮的人随从自己不敬虔的私欲而行。
  • 19 这就是那些引人结党、属乎血气、没有圣灵的人。
  • 20 亲爱的弟兄啊,你们却要在至圣的真道上造就自己,在圣灵里祷告,
  • 21 保守自己常在 神的爱中,仰望我们主耶稣基督的怜悯,直到永生。
  • 22 有些人存疑心,你们要怜悯他们;
  • 23 有些人你们要从火中抢出来,搭救他们;有些人你们要存惧怕的心怜悯他们,连那被情欲沾染的衣服也当厌恶。
  • 24 那能保守你们不失脚、叫你们无瑕无疵、欢欢喜喜站在他荣耀之前的我们的救主独一的 神,
  • 25 愿荣耀、威严、能力、权柄,因我们的主耶稣基督归与他,从万古以前并现今,直到永永远远。阿们!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다서》를 살펴보겠습니다. 유다서의 주제를 한참 찾아보았는데, 도대체 유다가 무엇을 말하려 한 것일까요? 그는 한 가지 주제를 부각하고자 했는데, 바로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참된 도를 위하여 힘써 변론하라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낳고, 그 후에 야고보와 유다를 낳았는데, 제가 보니 유다는 분명 공부를 그리 잘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일까요? 유다는 성도에게 전해진 참된 도를 위해 힘써 변론하겠다고 하면서, 본문 전체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보아도 도대체 무엇을 두고 변론하는지 알 수 없고, 그 참된 도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했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 제 논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약 제가 그림을 이렇게 그려야 한다고 가르친다면, 우리는 제대로 바르게 그리기만 하면 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그리면 틀렸고, 저렇게 그리면 틀렸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잘못 그리는 방식은 수천수만 가지나 되기 때문에 그렇게 가르쳐봤자 헛수고입니다.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그릴 수 있는지만 가르치면 끝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옳은 것은 단 하나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유다가 편지를 쓴 목적

유다가 편지를 쓴 목적은 성도에게 전해진 참된 도를 위해 힘써 변론하려는 것인데, 사실 그는 이 참된 도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누가 이 참된 도를 명확하게 설명했느냐고 물으신다면, 바울이 명확하게 설명했습니다. 유다는 도대체 무엇을 하려 했던 것일까요? 저는 도무지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이 읽어내셨다면 제게 알려주십시오. 제가 허세를 부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글을 읽는 일에 있어서 저는 매우 진지합니다. 성경뿐만 아니라 어떤 책이든 아주 진지하게 읽습니다. 이 일은 여러분께 마중물이 되어, 저자가 쓰고자 했던 바를 제대로 읽어내는 법을 배우게 하려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자면, 유다가 쓴 글이든 베드로가 쓴 글이든, 그들은 온갖 말을 잔뜩 늘어놓았지만 정작 참된 도가 도대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변론하겠다는 것입니까?

유다가 이 편지를 쓴 목적은 무엇일까요? 저는 두 가지를 판단합니다. 첫째, 이 편지를 쓴 목적이 도대체 무엇인가? 둘째, 편지를 쓴 목적을 달성했는가? 오늘 제가 여러분과 함께 유다서를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유다서》 1:1-3)

제가 보니 이 일이 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지키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과 변론하겠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뭔가 잘못이라도 한 것입니까?

몰래 들어온 자들이 있음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유다서》 1:3-4)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들어왔을까요? 창문으로 뛰어넘어 들어왔을까요? 몰래 들어왔다고요? 이 사실이 저를 몹시 당혹스럽고 이해할 수 없게 만듭니다. 제가 왜 이해하지 못할까요? 교회는 유다 당신이 세운 것인데, 만약 유다가 이 교회를 세웠다면 어떻게 몰래 들어오는 사람이 생길 수 있습니까? 당신이 분별하지 못한 것입니까, 아니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어떻게 그런 자들을 들어오게 내버려 둔 것입니까?

오늘 제가 여러분께 조금 거만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을 하자면, 만약 오늘 동방번개 같은 자들이 우리 가운데 들어왔다고 칩시다. 묻겠습니다. 그들이 우리 가운데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들이 몰래 들어와서 뭘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그들의 말을 듣겠습니까? 제가 강단을 그들에게 내주겠습니까? 저는 그러지 않습니다. 그들이 여기에 와서 101 과정을 듣고, 만약 다 잘 해낸다면 그건 좋은 일 아닙니까? 그리고 《창세기》를 공부하고, 《전도서》를 공부하고, 수업을 듣고, 필기를 하다가 끝까지 버텨낸다면 대단한 것입니다. 만약 버텨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몰래 들어오겠습니까?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변론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치리가 매우 엉망이라는 문제입니다.

한때 몇몇 목회자들이 "목사님, 조심하세요. 많은 동방번개 사람들이 싱가포르로 들어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내가 뭘 조심해야 하지? 그들이 나를 조심해야 맞지 않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오면 제가 그들을 축사해 줄 텐데요. 그러니 변론한다고 교회의 문제가 해결됩니까?

제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 몸이 몹시 쇠약했지만 그래도 핸드폰은 볼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데, 저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코로나에 걸린 한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이삼 일 지나서 자신이 다 나았다고 하면서 편지를 한 통 써서 올렸습니다. 뭐라고 썼을까요? 교회가 사랑으로 충만해야 한다고 하면서, 지금 교회 안에 수많은 암투와 분쟁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저는 의아했습니다. 당신이 세운 교회인데, 어떻게 교회를 그 모양으로 세워놓을 수 있습니까? 그 글을 읽고 나서 저는 그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교회를 세우기 전에, 저는 학구파라 연구하는 것을 좋아해서 남들이 어떻게 교회를 세우는지 여기저기 둘러보며 천천히 연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잘 모른다는 것을 알았기에 천천히 고쳐나갔습니다. 교회 안의 많은 문제를 연구 과제로 삼고, 연구가 끝난 후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우리 소그룹을 포함해서 우리는 다른 곳을 베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베껴야 합니다. 그가 쓴 암투 운운하는 글을 보자마자 저는 알았습니다. '이건 내가 이미 연구해 본 것인데, 교회를 제대로 세우지 못했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유다가 쓴 이 내용도 사실 교회를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 목사님은 비록 코로나 검사에서 양성에서 음성으로 바뀌었지만,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버렸습니다. 이삼 일 지나 비보가 전해졌는데,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고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아이고 맙소사, 저는 속으로 '그가 나았다면 참 부러웠을 텐데, 나는 아직 낫지도 못했는데 그는 죽어버렸고 오히려 내가 나았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조금 상처가 될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변론하겠습니까? 내가 세운 교회인데, 내가 누구와 변론하러 가겠습니까?

이런 자들이 몰래 들어온다는데, 몰래 들어올 수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게다가 몰래 들어온 자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경건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저는 참 이상합니다. 들어와서 온종일 어떤 자매가 예쁜지나 쳐다보고 있다면,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 하면 그만 아닙니까? 물론 현장 교회는 오는 사람을 막기 어려워 조금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경우는 너무 쉽습니다. 계정을 차단해 버리면 끝납니다. 제가 의아한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를 당신이 세웠는데, 왜 사람들이 몰래 들어오는 것을 용납합니까? 교회의 치리가 엉망이어서 정리해야 할 자들을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 아닙니까?

그러므로 교회는 걸러내야 합니다. 저는 성경에서 한 가지 원리를 찾았는데, 그물을 쳐서 끌어올린 후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이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데, 우리가 이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자멸을 자초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더럽고 추악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이런 자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까? 웃기는 일 아닙니까?

무엇을 변론합니까? 이것은 변론할 사안이 아니며, 애초에 문제거리도 아닙니다. 묻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문제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사도 베드로, 야고보, 유다가 예루살렘에 세운 교회가 이 모양이었습니다. 그들의 말에 권위가 서지 않았던 것 같고, 바리새파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을 통제하지도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유다서》 1:1-3)

다 읽고 나서 저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유다 이 사람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이렇게 쓴 것이 성령의 계시란 말입니까? 성령께서 이렇게 계시하실 수 있습니까? 저는 그의 말이 영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저더러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관두라고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성경으로 인정한다 할지라도, 저는 인정하지 않으며, 성경을 편집한 사람들이 잘못 수록했다고 말하겠습니다. 어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이라면, 만약 사도 바울이 성경을 편집해서 이런 서신들을 수집했다면, 저는 사도 바울이 이런 서신을 수록했을 리 없다고 믿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학식이 뛰어났습니까? 400년이 지난 후에 사람들이 함께 모여 논의하다가 성경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왜 로마 가톨릭이 생겨났겠습니까? 로마 가톨릭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베드로입니다. 왜 베드로를 좋아할까요? 머리가 베드로와 같은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예루살렘에 세워진 교회가 결국 통제가 안 되고 교회 치리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과거에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이러한 교훈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저는 예전에 소그룹 리더 훈련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서너 명씩 한 조를 이루어 함께 토론했습니다. 토론 중에 한 리더가 "아, 우리 소그룹에는 문제가 너무 많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무슨 문제인지 말씀해 보세요"라고 하자, 그는 "제가 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해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럼 그 사람들은 뭘 하는데요?"라고 묻자,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교구장님은 알고 계십니까?"라고 묻자, "알고 계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럼 교구장님은 어떻게 조치하십니까?"라고 물으니, "아무런 조치도 안 하시고 그냥 그대로 놔두세요"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뭡니까? 지금까지도 저는 소그룹이 이런 식이 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잡담이나 나누러 온 것입니까? 제가 이런 사람들을 둬서 뭐 하겠습니까? 제가 "당신 소그룹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대학교수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대학교수들이니 말은 기가 막히게 잘하겠네요. 차라리 그 대학교수를 리더로 세워서 그 소그룹을 맡기고 제대로 관리하게 하세요, 안 그렇습니까?" 완전히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제가 짐작건대 유다나 베드로가 해놓은 것도 대략 이런 수준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이런 식으로 교회를 세우면 교회가 무너지고, 회사를 세우면 회사가 망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못 합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일을 하려면 도(원리와 체계)가 있어야 합니다. 몰래 들어온 자들이 있다는데, 어떻게 들어왔는지 저는 당황스럽기 짝이 없고, 게다가 들어온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가 어떻게 교회 안에 있을 수 있는가?

제가 말씀드리지만, 제가 교회를 세운다면 저는 거룩하고, 하나 되며,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교회를 세울 것입니다. 난장판이 된 교회의 이유는 간단합니다. 교회가 사람 수에 연연하고 헌금에 연연하기 때문입니다. 제게 물으신다면, 저는 숫자에도 연연하지 않고 헌금에도 연연하지 않으며, 오직 여러분의 성장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헌금하고 싶어도 제가 기회를 줄지 안 줄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교회는 돈을 걷는 곳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가 어떻게 교회 안에 있을 수 있습니까?

만약 유다가 제 앞에 서 있다면, 저는 그를 정말 호되게 훈계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교회를 돌보는 겁니까? 뭐 하는 사람입니까?" 물론 제게 자격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동생이자 육신의 아우이고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해서 대단한 줄 압니까? 뭘 잘났다고 뽐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런 식으로 세우는 겁니까?" 제가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저는 우리 하나님을 믿습니다.

교회를 이따위로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교회를 허물어버리신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가난해진 것이 마귀 때문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니 '아이고 맙소사, 무슨 짓을 해놓은 거냐? 작은 일 하나 맡겨놨더니 쩔쩔매며 엉망으로 해놓았구나. 누가 너더러 그렇게 하라고 했느냐? 내가 언제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더냐?' 하신 것입니다. 그러고는 유다서라는 편지 한 통을 써서 성경에 넣어두었습니다. 다행히 오늘날 이 시대에 여러분이 저를 만났기에 제가 짚어내는 것입니다. 비록 유다는 이미 이 세상에 없지만, 성경에 수록되어 있다고 해서 저를 속일 수 있겠습니까? 화인명정신학(Chinese Destiny Theology)에는 체계가 있으므로 결코 속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경을 편집했다면 분명 이런 글은 수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를 수록하도록 허락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 하셨다는 점입니다. 참된 도를 위해 힘써 변론한다면서 고작 이런 것을 변론합니까? 이것이 참된 도입니까?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천사들이 흑암에 결박되어 있는가?

오늘날 마귀 사탄이 버젓이 활보하고 다니는데, 어디 흑암에 갇혀 있습니까? 언제 구금되었으며, 언제 쇠사슬에 묶였습니까?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유다서》 1:6)

우리가 쫓아내는 귀신 중에 흑암에 갇혀 있는 귀신이 어디 있습니까? 쇠사슬에 묶여 있는 놈이 어디 있습니까? 유다 이 사람은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한 이런 것들이 유대인의 전설이나 신화, 설화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내용이 《모세오경》에 나옵니까? 안 나옵니다. 《구약성경》에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만약 흑암에 갇혀 있다면, 이 세상에서 이런 짓을 하고 다닐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런 마귀들이 정말 필요합니다. 어떤 분은 "왜 마귀가 필요합니까?"라고 묻습니다. 마귀가 얼마나 유용한데요! 사람이 죄를 짓고 저주를 받으면 마귀가 반드시 그를 괴롭히고, 그러면서 사람 마음속의 것이 드러납니다. 어떻게 드러납니까? 귀신이 들쑤셔 놓으니까 드러나는 것 아닙니까?

《출애굽기》를 보면 죽음의 영이 거리를 지나가며 집집마다 장자를 쳐서 죽였습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바로 죽음의 영입니다. 그 죽음의 영이 쇠사슬에 묶여 있었습니까? 그런 것을 묶어서 뭐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들이 묶여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승리하겠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세우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세워진다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며, 우리는 음부의 권세를 짓밟을 수 있는데, 언제 흑암에 갇혔다는 말입니까? 터무니없는 헛소리 아닙니까? 만약 유다가 내 앞에 서 있다면 저는 "당신이 보았소? 보지도 못했으면서 헛소리를 하는 거요?"라고 할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도를 위해 힘써 싸우는 것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상관도 없는데 이런 것을 왜 써서 사람을 현혹합니까?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이 제 설교를 들으실 때 제가 꽤 격앙되어 있다고 느끼실 것입니다. 제가 흥분한 것이 아니라 유다가 정말 헛소리를 썼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귀신을 쫓아내는데, 사람 몸에서 쫓겨난 귀신이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나는 라오마다, 너의 교회 개척을 돕고 있다." 제가 "네가 나를 어떻게 돕는데?"라고 묻자, 그 귀신이 "이 사람, 저 사람 다 내가 데려갔다"라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쓰레기 수거반이었던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타락한 천사들을 지으신 것은 어떻습니까? 때를 따라 아름답게 쓰시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워 원수 마귀를 이기면, 마귀는 내 안에서 아무 권리도 갖지 못하고 도리어 돕는 자가 됩니다. 제가 "그럼 네가 무슨 일을 했느냐?"라고 묻자, "누구누구 다 내가 데려갔지"라고 했습니다. 이름까지 정확히 대더군요. 제가 "그럼 다음에는 누구를 데려갈 거냐?"라고 묻자, "그건 천기누설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저는 단번에 마귀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귀신과 대립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귀신과 대립하는 것입니다. 귀신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무겁고 큰 질병과 오래 지속되는 재앙을 내리실 때, 귀신은 그 더러운 일을 수행하는 도구입니다.

우리에게 하수인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무엇을 하는 존재입니까? 더러운 일을 대신해 주는 존재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 관리가 직접 손을 대서 할 수 없는 일을 뒤에 있는 하수인들이 대신 처리하면, 일이 끝난 후 관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매우 보편적이며 아주 더러운 일입니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천사들에 대해 뒤이어 뭐라고 합니까?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 땅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유다서》 1:5-7)

저는 이 내용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는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들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유다서》 1:8)

이것이 진리를 위한 변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심지어 소돔과 고모라 같은 자들까지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는 말입니까?

소돔과 고모라 같은 자들이 어떻게 교회 안에 있을 수 있는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교회와 털끝만큼의 상관도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롯과 상관이 있지, 아브라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이것이 성도에게 전해진 참된 도를 위해 힘써 변론하겠다는 그의 주제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소돔과 고모라 같은 자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니, 교회를 도대체 어떻게 세운 것입니까? 어떤 교회들은 다단계 판매장이 되고, 보험을 팔고, 다단계 상품을 팔고, 사업을 하고, 소규모 친목 모임을 만든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무엇을 변론하겠다는 것입니까? 소돔과 고모라 같은 자들이 기어들어왔다니, 당장 집어치우십시오! 제가 유다를 만난다면 "교회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당장 그만두시오! 이리로 와서 내게 다시 훈련을 받으시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고도 참된 도를 위해 힘써 싸운다고요? 참된 도가 무엇인지 정말 알기나 합니까?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정말 알기나 합니까? 온갖 사람을 다 받아들여 놓고는 스스로 사랑이 넘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라는 이 두 글자가 너무나 변질되었습니다. 왜 소돔과 고모라 같은 자들을 받아들였을까요? 언젠가는 이들도 주님을 믿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소돔과 고모라 사람이라면, 당신 갈 길이나 가십시오,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던지는 질문들이 몹시 날카롭지 않습니까?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천사들이 쇠사슬에 묶여 흑암에 갇혔다니, 이게 도대체 뭘 하자는 것입니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입니까?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육체를 더럽히고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 자들이라니요. 제가 보기에 유다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것 같습니다. 그 집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독보적인 존재 한 분만 나왔고, 나머지는 머리가 좀 둔했던 모양입니다. 저는 어떻게 이런 서신이 성경에 수록되었는지 참으로 의아합니다. 성경이 이런 것까지 계시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모두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인데, 하나님께서 이런 것까지 감동으로 주셨겠습니까? 앞뒤 말의 논리가 전혀 맞지 않습니다.

모세의 시체를 두고 변론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유다서》 1:9)

저는 기가 막혔습니다. 유다가 한 말에 정말 어안이 벙벙해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본인도 어안이 벙벙하면서 어떻게 우리를 이끌고 성경공부를 하느냐?"고 하실지 모릅니다. 유다의 말이 너무 황당해서 그의 글을 더 자세히 읽어보니, 그가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라는 말을 인용했습니다. 마귀를 향해 "물러가라!"고 하지 못하고 이렇게밖에 말하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왜 그렇게 말하지 못합니까? 저는 참 이상합니다.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며 이런 식으로 교회를 세우니 온갖 잡다한 자들이 다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빕니다.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니, 저더러 말하라면 훨씬 간단합니다. 사실 미가엘이 마귀와 모세의 시체를 두고 다퉜다는 일 자체가 매우 기이하며, 참된 도와는 손톱만큼의 상관도 없습니다! 참된 도가 시체를 두고 다투는 일입니까? 유다가 어디서 이런 말을 주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아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입니까?

우리 가운데 대만 출신 형제자매님들이 계십니까? 대만 분들은 도덕적 교양이 높아서 평소에 험한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대만 분들이 하는 가장 심한 말이 "나더러 더 어쩌란 말입니까?" 정도입니다. 저는 이런 태도를 취하지 않습니다. 제가 말하면 간단합니다. "당신 뭐 하는 거요? 여긴 하나님의 교회니 여기서 수작 부리지 마시오. 당신이 여기 있겠다면 내가 나가겠소." 이것이 제 성격입니다.

교회에서 엉터리로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목회자들을 온통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나 읊조리는 유약한 사람들로 훈련시켜 놓다니요. 집어치우십시오. 아무것도 못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이런 식의 태도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왜 베드로든, 야고보든, 유다든 교회를 대승불교처럼 변질시키는 문을 열어놓아 대승불교 짝으로 만들어 버렸습니까? 바로 이런 태도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너희가 할례를 지키겠다고? 그렇게 할례를 받고 싶으면 아예 생식기를 다 잘라내고 수술해서 여자가 되어 버려라" 하는 식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어조로 말했습니다. 교회를 세울 때 단호하고 강력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나더러 더 어쩌란 말이냐"고요? 내가 당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인 줄 아십시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울 때는 강력해야 합니다. 물론 강력함에는 도(진리의 체계)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형제자매들이 온순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런 태도를 취할 필요가 없습니다. 잘 성장하고 자신의 악습을 철저히 처리해 나간다면 어쩌고저쩌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귀가 모세의 시체를 빼앗으러 왔는데도 여전히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하고 있으니, 아이고 맙소사.

저는 유다든 야고보든 베드로든 그들이 기독교를 대승불교로 이끌었다고 봅니다. 유다는 도덕적 기준이 극히 높아서 저처럼 거칠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제 도(진리)는 조잡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세울 때 강력하지 않고서야 세울 수 있겠습니까? 거룩한 교회를 세울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세운 교회에 소돔 사람도 오고 고모라 사람도 오며, 롯도 의인이 되고 천사도 대단해지며, 결국 교회가 뭐가 되었습니까? 쓰레기장이 된 것 아닙니까? 그러면서 모세의 시체를 두고 변론이나 하고 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비방하지 말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마귀가 무슨 높은 지위에 있습니까? "썩 물러가라, 하찮은 놈아!" 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교회를 세우고자 한다면 거룩하고, 영광스러우며, 하나 되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워야 하며, 이것이 핵심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제대로 성장하고자 한다면 그 길은 얼마든지 넓게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서 엉뚱한 수작을 부리고자 한다면 어림도 없습니다. 저만 이렇게 단호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는 단호한 분들이 많습니다. 모세의 시체를 두고 다툰 일에 대해 마치 자기가 직접 본 것처럼 말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그저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풍문이나 옮기는, 전혀 도리에 맞지 않는 사람입니다.

가인, 발람, 고라를 두고 힘써 변론할 필요가 있는가?

가인, 발람, 고라를 두고 힘써 변론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것이 참된 도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만약 이런 자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온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가인이 들어오고, 발람이 들어오고, 고라도 들어오는데, 유다처럼 교회를 세우면 그들이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베드로, 야고보, 유다처럼 교회를 세우면 난장판이 되어 온갖 것들이 다 섞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번은 제가 귀신을 쫓아내며 "나가라"고 하자, 귀신이 "갈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갈 곳이 없다고? 저쪽에 나이트클럽이 있으니 거기로 가라"고 했더니, 귀신은 "나이트클럽에는 안 간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럼 어디로 가려느냐?"고 묻자, "교회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귀신이 교회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이해하십니까? 제가 "그럼 저 교회로 가라"고 했습니다. 물론 저는 이런 말을 하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안 간다"고 했습니다. 제가 "왜 안 가느냐? 거기도 교회 아니냐?"고 묻자, 귀신은 "거긴 다 농민들뿐이라 시시하다. 지식인들이 있는 교회, 사도 바울 같은 교회를 찾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왜냐?"고 물으니, "여기서 승리하고 돌아가면 큰 영광이지만, 그곳에서 승리하고 돌아가면 도리어 비웃음만 사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 말을 듣고 "그런 일도 있나?" 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사실 우리의 싸움은 이 어둠의 세상을 지배하는 마귀들과의 싸움이며, 하나님과 마귀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와 마귀의 싸움입니다. 가인, 발람, 고라 같은 자들이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런 자들과 변론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다 듣고 나니 유다가 정말 허황된 소리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참된 도가 무엇인지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모세의 시체니 뭐니 하는 온갖 기괴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지 않습니까?

유다가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의 말을 인용한 것은 무엇을 설명하려는 것인가?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을 심판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토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유다서》 1:14-16)

저는 유다가 베드로와 비슷해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끌어모아 글 한 편을 짜깁기한 것 같다고 느낍니다. 그렇게 글을 짜깁기해 놓았는데, 수많은 성경학자들이 꽤나 허황된 글을 아주 진지하게 읽고 연구합니다. 제가 여러 자료를 모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강해하는지 살펴보았는데, 데이비드 파우슨이라는 사람이 이 유다서를 가지고 40분 동안 장황하게 설명하더군요. 다 듣고 났지만 그 사람도 유다서를 제대로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데이비드 파우슨의 팬들은 "어떻게 감히 데이비드 파우슨을 비판하느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리자면, 그들의 뼛속 깊은 곳에는 '이것이 성경에 들어있으니 무조건 옳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가 정말 제대로 읽고 이해했을까요?

여러분이 저를 차단하거나 팔로우를 취소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신경 쓰지 않으며 그런 것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읽으실 때 정말 명확히 이해하고 읽으셨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이해하셨다면 아담의 칠대 손이 한 이 말을 인용해서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제게 설명해 주십시오. "보라, 주께서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셔서 심판을 행하신다." 무엇을 심판합니까? 경건하지 않은 것? 스님들이 일반 그리스도인보다 더 경건하지 않습니까? 무엇을 경건하지 않다고 합니까? 마귀를 꾸짖는 것이 불경건입니까? 교회 안의 더럽고 추악한 것들을 청소해 내쫓는 것이 불경건입니까? 사랑이 없다는 뜻입니까? 야고보처럼 무릎에 굳은살이 박여 낙타 무릎이 되어야 경건입니까? 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를 세우려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제대로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도무지 듣지 않습니다. 야고보가 예수님의 동생이라고 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었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흔적을 보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들었단 말입니까? 그물을 쳐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라는 말씀을 들었습니까? 듣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문을 닫게 된 데는 그의 몫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살 정도로 엉망으로 세웠으니, 하나님께서 그곳을 치셔서 흩어버리신 것 아닙니까?

본래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이방인의 사도로 택하셨으나 결국 그는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바울을 택하셔서 이 직분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말한다고 해서 도(진리의 체계)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때로 분노하고 욕을 하기도 했지만 괜찮았습니다. 그에게는 도(진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은 거칠지언정 이치는 명확했고 참된 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세우는 일에 대해 아주 명백하게 설명했습니다.

경건하지 않음이란 무엇인가?

경건하지 않음이란 무엇입니까? 사실 '경건'이라는 도덕 규범은 사람을 꼼짝 못 하게 옭아맬 수 있습니다. 엄한 말 한마디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을 경건이라고 부릅니까? 두 손을 모으고 "주여 긍휼히 여기소서" 할 바에는 차라리 "나무아미타불"이나 외우십시오.

그러므로 유다는 사실상 도덕적인 것에 얽매여 있었으며, 도(참된 진리의 원리)가 없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형이었을지라도, 그가 전한 내용과 그가 세운 교회를 보면 그는 완전히 사리에 어둡습니다. 교회를 이런 꼴로 만들어 놓는다면 우리 하나님께서도 하늘에서 눈물을 흘리시지 않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경건하냐 경건하지 않으냐가 아니라 교회를 어떻게 치리하느냐입니다. 교회를 해이하고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도 그것을 경건이라 착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어떤 사람들은 "아, 내가 다 양보하고 참아주었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상태입니까? 하나님께서 맡기신 책임을 자신이 짊어지지 않고 다시 하나님께 떠넘겨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도록 우리를 택하시고 직분을 맡기셨는데, 우리는 우리의 직분을 다시 하나님께 떠넘긴다면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입니까? 그저 사람 좋은 척하겠다는 것입니까? 긍휼의 마음을 어리석은 동정심으로 전락시키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유다서》 1:20-23)

그럴듯하게 옳은 말 같지 않습니까? 하지만 《유다서》의 문맥 안에 들어가면 문제가 됩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이렇게 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하니 많은 사람이 저를 보고 '사랑이 없다'고 비판합니다. 사실 제가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제게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변론하지 않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저는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러 온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여러분께 이런 말씀을 드려도 저를 탓하지 마십시오. 제가 여러분을 섬길(감당할) 수 없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시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소그룹 리더가 감당하지 못하는 자는 교구장에게 넘기고, 교구장이 감당하지 못하는 자는 제게 넘기며, 제가 감당하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께 넘기면 됩니다. 제가 다 불쌍히 여겨 품을 수는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없는 일은 제가 못 한다는 것을 압니다. 저에게는 그런 도(역량)가 없으며, 소돔 사람을 변화시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만큼 한가하지도 않습니다. 제게 어디 그런 한가한 마음이 있겠습니까? 저는 이런 자들을 하나님께 넘겨서, 라오마에게 끌려갈 자들은 속히 끌려가게 하고, 저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자 추구하는 자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교회를 함께 세워나가면 얼마나 좋습니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유다가 쓴 이런 문제들이 우리 가운데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도 바울의 논리에 따라 교회를 세우면 유다가 세운 교회와 같은 모양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는 유다가 세운 교회임이 분명합니다. 당시 사람들도 유다서를 읽고 맞는지 틀리는지 분간하지 못해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어쨌든 예수님의 동생이 쓴 글이니 전해오다가 400년 후에 성경에 수록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눈을 밝히 뜨기 시작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성경을 읽는 논리 체계를 반드시 세워야 합니다. 본문의 말들이 앞뒤가 맞지 않지 않습니까? 유다가 한참을 논했지만 정작 그 참된 도에 대해 무엇을 변론했는지는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제게 명확히 설명해 주실 수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유다서》에서 그는 전혀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좋습니다, 오늘 《유다서》 성경공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关闭
暂无评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