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神造的都是有生命的,都是活的!关于这个主题,大家肯定会有一些困惑。我不是在讲脱口秀,而是要让大家明白这里面的真理,经过琢磨以后做一个选择。我们大家一起来探讨,慢慢就可以把事情琢磨明白了。我是属于学院派的,我做事、查《圣经》都有专业的态度,咱懂的就说懂,不懂的就说不懂,一件事、一件事去整明白,照着神的话去做。比如我做项目管理,做企业管理,做软件开发,我都整出一套逻辑,这些都需要经过验证的。
我想问问大家,什么叫做活着?活着是咋回事?这些都需要我们去整明白的。如果人不知道活着是咋回事就是悲剧!如果人一到清明节就想起死去的妈,然后还在朋友圈里发一发,你说招不招鬼?这不是要命吗?全都是属肉体的看见。
叫人活着的乃是灵,肉体是无益的。我对你们所说的话就是灵,就是生命。(《约翰福音》6:63)
神造的是有生命的、都是活的,所以,我们首先得解决活着是怎么一回事的问题。如果用属肉体的眼光去看,活着就悲剧了!
Q1:我有个姐妹参加了特会,然后妇科病就彻底好了,再也没复发。但是,我在听老师带领祷告说有人好了以后,鬼又回来了,疾病又复发了。那《圣经》里那些得耶稣医治的人也没复发,怎样能够可以疾病不复发,彻底好了呢?
你用这个例子来证明,是因为你活得不够久,你就认为她不会复发。我给大家举个例子,有一个人得了心脏病,他到医院去做了手术,心脏病确实好了。过了没多久,一检查得了癌症。大家知道发生了什么事吗?那个死亡的灵又转变成癌症了。鬼干活你以为像你那么干吗?鬼干活有鬼的一套逻辑,要知道癌症的灵是非常邪恶的东西,你不碰还好,一碰一割就会立刻扩散,就会疯狂生长,因为这就是一个邪灵!
后来去做手术,鼓动我们一起为他祷告,我们也的确为他祷告,他也去做化疗,结果病也好了。表面上看去是好了,但是,那个鬼出去了没有呢?鬼应该没有出去。因为我们还活得不够长,否则你就不会问这种问题了。有人就会反问那些耶稣医病医好的,怎么病又回来了呢?你哪来这么大的胆量,哪来得这么大的信心问呢?
耶稣却回答说:经上记着说:人活着,不是单靠食物,乃是靠神口里所出的一切话。(《马太福音》4:4)
神的话进到人里面去了吗?如果人听进去的话,早就跟着耶稣了。后来我发现跟着耶稣的只有五百人,再后来在马可楼祷告的只有一百二十个人,其他人都到哪去了?都回家该干嘛干嘛去了。他们在乎神的话了吗?在乎神的灵了吗?没有。
以前不听从、不明白神的话,找耶稣祷告病得医治好了,好了以后又继续不明白神的话,继续这么整会怎么样?结局想都不用想。人活着就是靠神口里的一切话,人如果违背神的话,就是咒诅,谨守遵行神的话就是祝福!所以,华人命定神学就相信一句话:你如果明白神的话,谨守遵行必蒙祝福。
Q2:能否请老师分享一个癌症不信主的见证?一个前同事得了癌症,很年轻,几年前就跟他分享过福音。他家拜偶像很厉害,他脖子上戴一个吊坠,我和他说:那是偶像。他就跟我说:自从他摘了吊坠以后,他女儿就开始生病。就是不信耶稣,不悔改。老师,能不能讲一个见证呢?
其实不管信不信主,只要违背了神的话,违背神创造生命的规律全受咒诅。神创造生命的规律是有章可循的。我替一些其他的宗教信仰说一句公道话,比如佛教宣扬的有些东西还是看得比较透彻的。像稻盛和夫,这个和尚的书中所说的一些东西,和我讲得很像。其实生命的规律都差不太多。
人违背了生命的规律就会受咒诅,顺从了就蒙祝福。我见过很多不信主的人活得挺好,信主的活得很糟,这样的状况可太多了。你困惑吗?为什么信主不信主都有癌症的和没得癌症的?医院里有治好病的,也有没治好的?举完了这些例子,也说明不了任何问题,我想一个人最好是把活着的这事研究透!
我做为一个基督徒,我把《圣经》里的看法分享给大家,大家琢磨是不是这么回事。你要问我哪来的底气?我只能说我也没有那么大的底气,因为我是一个基督徒,我得读《圣经》啊!我不说了我是学院派吗!假如回到三十年前我做了一个和尚,我也会把《佛经》研究得很透。
最后还是得回到活着这件事到底是怎么一回事?我们不要除掉人外面的偶像,要除掉人心里的偶像,人靠着肉身活着毫无意义。人如果用属肉体的眼光看,所有的事都变得毫无意义!我一下子把这个问题给否定了,我也不知道回答到点子上没有?一个人活着必须要知道,让人活着的乃是灵,肉身是无益的。我是从另外一个角度回答的,就是悔改不悔改,悔改了以后,如果还是不好好谨守遵行神的话,也没有啥用。
Q3:老师,如何种下祝福的种子?是不是给出去,成为别人的祝福?
人种祝福的种子就是照着神的话去活。首先你得是一个蒙祝福的人,你得有蒙祝福的那套思想体系。人如果没有那套思想体系,然后就以为给出去就是蒙祝福了,那就是很扯了。我想鼓励大家,一定要开始把神的话读明白。神的话怎么说的,咱就怎么去落实。
基督徒自私的是很多的,我见过人家台湾的庙里,做慈善比基督徒做得多得多啊!那也是给出去啊。咱们既然做一个基督徒,我鼓励你要做一个响当当的基督徒。如果咱都不明白活着是咋回事,就想着种祝福的种子,好像还有点距离啊!
Q4:老师,如果生病了去教会聚会,唱赞美诗歌的时候身体发抖是邪灵吗?
不一定哦!发抖有的时候是圣灵,有的时候是邪灵,倒下有的时候是圣灵,有的时候是邪灵,咱别照这个逻辑走,我鼓励你还是好好读神的话吧!在悟性上满心认识神!然后很多问题都能够迎刃而解。有人拿录像给我看,里面有人只要看见某某牧师来了,一祷告那两条腿就开始抖得厉害。让我解释解释这是咋回事?把我难倒了。
我经常讲一句话:so what?把人噎得够呛啊!我经常看到有人在祷告以后病还在;有的人一祷告就倒下去,在地上躺十几分钟,后来爬起还是那个样!我告诉大家,这东西不是咱华人命定神学要去关注的。
你整个的逻辑体系还是要改变,你整个东西还是要回到一个最根基性的事实,你是否照着神的话活?假如你是佛教徒你就好好照着《佛经》活,你是穆斯林教徒,你就照着《可兰经》活。
Q5:谁能保证永远不犯罪呢?我们每个人都会犯罪,亚伯拉罕还撒谎,保罗难道他就不生气吗?老师难道也不犯罪么?感觉信主信的也太小心翼翼了。人不可能保证一辈子不犯罪,那一犯罪疾病就复发,岂不是没完没了,不得医治了?
弟兄姐妹要知道,神是鉴察人心的神。神怎么鉴察?神鉴察你是否愿意尽心竭力?你用一点的劲和用好多的力气,难道神不知道吗?神肯定知道。那个病回来还是不回来,难道神说得不算吗?神绝对说得算!所以华人命定神学讲的是一生竭力追求。你刚刚信主的时候你身上一大堆的疾病,但是只要你竭力追求神就会恩待你,那是给你的恩典。等你好一点的时候,就不竭力追求了,神一看:小样的,再给你来点病吧!
神关心的不是你关心的,你关心的神也不关心。神只关心一个人是否在祂眼里是个宝贝!人都不傻,如果一个人相信神的话,相信这是一个祝福,你一定会照着祝福这个路走,你如果相信这是一个咒诅,你肯定会远离这个东西,因为你知道不能干吃亏的买卖。听明白了没有?那如果人非要干这吃亏的买卖,非要跟神杠一杠,那你肯定活不好!所以要知道神是鉴察人心的神。一个人没有一个悔改的心,总想在这世上能得着点啥,到最后啥也得不着,得着的就是灭亡。
在神的眼里,十岁病、二十岁还是几十岁病死的都一样,神不在乎!神在旷野里击杀了以色列人六十万人,你以为神很在乎吗?你以为神很在乎你的病又回来了吗?神不在乎。因为我们里面装的那套东西是属人的东西,才会问出这样的问题。华人命定神学讲的是什么?是神怎么看这事、神怎么说这事、怎么照着神的话走。至于我们怎么看不重要。就算我得癌症死了,那是我罪有应得。能怎么样?能否定神的话?不能。神的话立定在天,愿意信就信,不信就祝你好运!你在世上还没有吃够亏啊?
你的那套逻辑不是不好使吗?换成神的逻辑怎么就这么难呢?你那套好使就不用来我这里了。你愿意怎么活就怎么活,愿意生病就生病,愿意死就死,你改变不了神的旨意。我强调的是,神在每个人身上都有美好的旨意。
Q6:老师,什么是做事情的节奏?各按其时、各从其类,让我们看重作息吗?有时候熬夜很疲倦,这是魔鬼的谎言还是破坏了神创造的规律?
我们做事要有节奏,其实我的作息时间非常没有规律,因为我不知道什么时候就有服侍。有时候我刚要睡觉,电话就打进来了,赶紧起来接电话。死不了!无论如何我们要有一种观念,你心里、头脑里不是一种混乱、慌乱、忙乱的状态,不要把自己整得太僵化。我们是靠着神的灵活着。你如果顺从神的灵,你里面是平静安稳。
你们得救在乎归回安息,你们得力在乎平静安稳。(《以赛亚书》30:15)
你要知道叫你活着的是神的灵,是神的灵决定我们所有的事情,我这三十几年几乎没有休息过,礼拜天几乎都是在教会里过的,小组查经我没有落下一课,祷告聚会我没有一次翘课,我在牧师眼里绝对是个好信徒,虽然我对他们有意见。我死了吗?我很难死掉的。我在过去这么多年做工都很卖力。
我刚参加工作就发现,我要去的那个岗位,都是刚刚创建的,技术也不行,语言也不行,特别辛苦,但是我干着干着又升级了,又新开始一堆新的挑战,一直到现在。后来又开始建教会,那时候不会建教会,压力山大。但是我里面很安息,我对神有信心。工作六天休息一天,那一天不是休息,是叫你来亲近神的。
千万不要把亲近神、爱神、顺从神的旨意、明白神的话的时间给整没了,我看见得脑瘤的牧师在抱怨:我是牧师,我一个礼拜只能休息一天。我都不太理解,还要休息几天?人最需要的不是休息,是安息。安息就是恢复在耶稣基督里的力量,让神的灵再次充满。让我们从劳碌中走出来,让我们的灵靠着神的灵重新得力,让我们充满了灵感。
Q7:老师,工作六天休息一天的效率比工作七天的效率高,但现在很多国家把工作时间都改为工作五天休息两天,说这样的休息时间比工作六天休息一天的效率更高,这个如何理解?
你如果是在农耕的时代,六天肯定比五天干得多。但是我们现在是一个靠创意、靠知识、靠灵感的时代。你要是有灵感一天可以干六天的活。没有灵感六天干不了一天的活。有的编程人员几个月干不出活来,有的一天就干人家三个月的活。弹性太大了。有的人灵感来了,一下就写很多东西,而且写得还非常好;没有灵感就和电脑屏幕相面,一相面就三个小时什么也干不出来,所以往里砸时间是很愚昧的。
Q8:老师,有个姐妹说我一直都遵行神的话,神不能因为我不讲方言就不医治我的病,很多人不讲方言不是病也好了吗?我该怎么回答?
叫他继续试,一个人自以为是到什么地步了!你就顺着她说,告诉她说得都对,在耶路撒冷都找不到你这么大信心的人。方言祷告这么小的恩赐要它干什么?你有这么大恩赐,这点病不算什么,也许你身上的病是保罗身上的那根刺呢?
Q9:老师,什么状态才是真的看透人生?感觉有时候明白,有时候不明白,有时候吃苦头感觉自己被磨炼,人怎么能看明白?
你不是想看明白吗?你早晚有一天会死,是不是?你在自己家的地板上用胶条做一个棺材,想象一下明天就要死了,躺在里面想一想,如果死了,这世上的事自己说的都不算了。什么叫看透的状态?就是能管的管,尽责任去管,不能管的就算了吧!
如果你愿意被我牧养,别告诉我应该怎么做,我有我的做法,那是我当尽的责任,只要在我的下面,我一定好好管你!如果不想被我牧养,那我就轻松了。该我管的我一定管好,我不该管的我绝对不管。如果你不想让我管你了,那我就躲得远远的。这样的状态就是真正看透人生。
不要老去管管不了的事,更何况你那个管法很烂,管完以后也没有果效。有的人跟人吵架怄气,最后该讨的钱也拿不回来;有的人把孩子管得更加体贴肉体,更加糟糕,还自以为是伟大的父母。当我们坐在那里啥事不干的时候,你觉得自己好像看透了,但是一遇到事就又不明白了,又变得抓狂。那是因为我们里面在乎这些事的根没有除去。
不管一百年前、两百年前,还是一千年前、两千年前的人都在乎过,但是今天都已经成灰了。这些历史上的人物,秦始皇、诸葛亮、吕布都已经灰飞烟灭了。你把自己想象成已经成灰了,你能明白吗?如果你看万事都是虚空的虚空,你还会跟人较劲吗?遇到这样看不透,喜欢较劲的人,我只能转身离开,该吃吃,该喝喝,留下一句话给他:傻不拉叽的。
我常常被人逼着看透,人一定要知道活着是虚空的虚空,只有神的话是实在的。各人有各人的命,纠不纠结都改变不了,连自己的命运你都决定不了,那你较什么劲?我妈和我爸特别喜欢去开我的家长会,别人都会很羡慕,其他家长都会来问他们如何教育我的。我妈说:教育啥?我都不管!我妈经常跟我说:孩子,学习别累着了,别学了。啥人啥命,纠结啥啊?很多到我这个年龄的都死了。
我去参加同学聚会,正在吃饭,其中一个同学接了一通电话,看他脸色就不对了。他说有个同学因为胃癌,本来手术很成功,可是刀口不愈合,今天胃穿孔,胃液倒灌,住进了加护病房。我们赶快去看看,可是医院不让进,只能在外面跟他太太聊了几句。第二天就通知大家去殡仪馆,见他最后一面。我特别喜欢参加葬礼,一看就明白人活着就是虚空的虚空,就清醒了。
大家知道我为什么活得好了吗?因为我对活着这事没有太多奢望,不在乎有没有名。很多牧师喜欢把自己打造成世界名牧,还问我为什么没有这样的想法?我弄那些东西干啥?我的手不想伸那么长,耶稣有12个门徒,我有6个就好!我也不想做首富,只想看好神给我的小园子。
愿神祝福大家!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2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창세기》를 가르치는 일은 정말 사람을 흥분하게 하는 일입니다. 《창세기》는 참 좋습니다! 제가 《창세기》 1장을 네 번에 걸쳐 강의했습니다. 원래는 《창세기》 2장도 두세 번 정도면 전부 다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이해해서, 우리 모두가 같은 관점을 갖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질문을 해 봅시다. 《창세기》 1장을 다 마쳤는데, 《창세기》 2장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지난 이틀 동안 깊이 생각한 끝에, 저는 마침내 2장이 1장에서 창조하신 세부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신비를 이해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2장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이 생명이 있고 살아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앞으로 공부할 주제입니다.
천지의 창조된 내력은 이러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내력이니 (《창세기》 2:4)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생태계를 창조하셨습니다. 매우 유기적인 유기체를 만드신 것입니다. 유기체란 무엇일까요? 생명이 있고 스스로 살아 있는 생태계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훗날 경영의 원칙을 배우면서 생태계라는 말을 알게 되었습니다. 애플 휴대전화가 왜 그렇게 잘 팔릴까요? 애플 휴대전화의 생태계를 구축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소프트웨어 회사와 하드웨어 회사가 그 생태계에 기대어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구글도 하나의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남고 싶다면 그 생태계 안의 산업 사슬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안에 들어가는 사슬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우 큰 생태계를 창조하셨습니다. 나무, 숲, 산, 골짜기, 물, 강, 하천, 바다…… 이 생태계 안에서 각 생물은 자기의 본분을 다하고 있으며, 많은 것들이 매우 유용합니다. 까마귀에게는 까마귀의 용도가 있고, 독수리에게는 독수리의 용도가 있으며, 심지어 쇠똥구리에게도 쇠똥구리의 용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생태계를 세우셨습니다. 그 모든 것은 살아 있고, 살아가기 위한 기본 법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모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한 학설 가운데에는 살아 있는 일은 연구하지 않고, 오히려 죽은 뒤의 일을 연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뒤의 일은 연구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남아 있는 주요 의학은 서양 의학과 중국 의학입니다. 각각 무엇을 연구할까요? 최근에 저는 《인체 사용 설명서》라는 책을 한 권 샀습니다. 읽고 나서 아주 흥미로운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중국 의학은 살아 있는 사람을 연구하고, 서양 의학의 기초는 해부학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해부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모두 시체를 대상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중국 의학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를 연구 대상으로 삼고, 서양 의학은 사람이 죽은 뒤를 연구 대상으로 삼습니다. 이것이 편협한 것인지 전면적인 것인지는 일단 따져 보지 않겠습니다.
기독교라는 것은 참 흥미롭습니다. 저는 죽기 위해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을 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생각을 말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죽은 사람을 연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천국은 어디에 있습니까? 서쪽입니까, 동쪽입니까? 여러분은 서쪽 천국에 갑니까, 동쪽 천국에 갑니까? 그런 확신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저는 이 일이 참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인 사명 신학은 《창세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창세기》를 읽으면서 많은 의문이 생겼고, 그래서 중국인 사명 신학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중국인 사명 신학이 연구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의 일입니다.
여러분이 잘 살고 싶다면 중국인 사명 신학이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만일 “잘 살든 잘 살지 못하든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으면 됩니다”라고 말한다면, 중국인 사명 신학은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닙니다. 중국인 사명 신학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의 일을 연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며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사실 중국인 사명 신학의 강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중국인 사명 신학을 세우기 시작한 과정에서 사람이 죽은 뒤 천국에 가는지에 대해서는 연구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도 천국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설령 한 번 갔다고 해도 돌아올 수 없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 이것은 연구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 후 저는 《창세기》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읽고, 원래 우리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의 일을 연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어떻게 살아 내는지를 연구합니다. 그러니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제가 섬기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배우는 법을 모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선생님, 선생님은 공부를 아주 잘하셨지만 우리는 선생님과 다릅니다.” 사실 공부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모두 생명이 있고 살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안식이 필요합니다. 로봇은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것을 보았지만, 사람이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이 잠을 자지 않으면 정신병에 걸리고, 주사를 맞아야 하며, 안정제를 먹고 한참을 고생한 뒤에야 겨우 잠들게 됩니다. 안식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나 안식은 잠자는 것과 같은 일이 아닙니다. 휴식조차 말할 수 없는 상태라면 안식은 더더욱 말할 수 없습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안식이 필요하다
안식이라는 말은 영어와 중국어로 번역했을 때 의미가 매우 다릅니다. 하나는 안식이고 다른 하나는 휴식이라는 뜻이지만, 영어로는 모두 rest라는 단어입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세기》 2:1-3)
하나님께서 안식하셨습니다! 안식이라는 말을 깊이 연구해 본 적이 있다면, 안식할 줄 아는 사람은 매우 리듬 있게 살아간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쉴 때가 되면 안식하고, 일할 때가 되면 일하며, 삶 전체가 매우 질서 있고 리듬이 있습니다. 반대로 안식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일을 매우 혼란스럽고 정신없이 합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면 정신없이 몰두합니다. 중국 의학의 전문 용어 하나를 여러분에게 설명하자면, “심주신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완전히 어지러워지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마음이 분주한 상태는 마음이 죽고 망한 상태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에게 안식이 매우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제게 “저는 매일 안식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라고 하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정말 칠 일 내내 안식하고 싶다면, 관 속에 눕고 싶다는 목표를 이루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그것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완전히 안식하게 될 테니까요.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안식은 실제로 일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도 연구된 사실이며, 이러한 개념도 성경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일에는 긴 주말과 짧은 주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묻겠습니다. 사람이 칠 일 연속으로 일해서 만들어 내는 가치가 더 높습니까, 아니면 엿새 일하고 하루 안식해서 만들어 내는 가치가 더 높습니까? 연구해 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엿새 일하고 하루 안식하는 것이 칠 일 내내 일하는 것보다 더 높은 가치를 만들어 냅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이지 죽은 사람이나 로봇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름을 넣고 전기를 충전하면 일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기계라 해도, 예를 들어 자동차라 해도 일정한 정도로 사용하면 정비소에 들어가 기름을 넣고 수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운전하다가 갑자기 불이 날 수도 있습니다.
자동차를 샀는데 한 번도 정비하지 않다가 불이 났다고 해서 자동차 회사를 고소한다면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자동차도 안식을 취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적 관리에 대해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그것을 매우 깊이 연구했고, 저의 관리 이론도 과학적 관리라는 기초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이미 너무 졸려서 견딜 수 없는데도 운전을 시킨다면, 그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의 관리 방식은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고 싶지 않을 때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기업에서 저 같은 사장을 만난다면 정말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저와 같은 관리 방식이 만들어 내는 가치가 높습니까, 아니면 하기 싫을 때에도 반드시 일을 해야 하는 방식이 만들어 내는 가치가 높습니까? 사람은 하고 싶을 때 일할 때에만 높은 가치를 만들어 냅니다. 저는 사람이 안식을 매우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깊이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우리에게 아직 오프라인 교회가 있었을 때, 제가 강단에서 설교하다가 누군가 매우 졸려 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몹시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멈추고 그 사람에게 “졸리면 편안하게 주무세요”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앞으로 교회 좌석을 모두 일등석 의자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교회 모임에 와서 눕고 싶으면 눕고, 서고 싶으면 서며, 각자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안식은 중요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안식 가운데 편안히 잠들어 모임이 끝날 때까지 자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기운을 내어 나가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살아 있는 존재이므로 사람이 살아가는 법칙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며, 이것도 안식일의 법칙입니다. 일할 때는 잘 일하고, 절대로 자신을 로봇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규례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일해야 할 때는 일하고, 안식해야 할 때는 안식하십시오. 우리는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매일 안식하거나, 반대로 매일 일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안식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무나 좋으십니다! 우리를 로봇이 아니라 사람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씨앗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씨앗을 창조하신 것은 너무 번거롭습니다. 사람은 또 농사를 짓고, 수확하고, 씨앗을 가라지에서 골라내야 합니다. 남은 것은 맷돌로 갈아 가루로 만들어야 하고, 만두를 먹으려 해도 먼저 반죽하고, 채소를 썰어 고기와 섞고, 다시 만두피를 만들어 싸야 하니 얼마나 번거롭습니까? 그냥 모든 것을 배 속에 넣고 섞으면 되지 않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만두를 만들어 주셨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마늘빵이나 피자 같은 것도 직접 만들어 주셨다면 얼마나 편했을까요. 비가 올 때 달걀과 빵이 바로 내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금은 너무 번거롭습니다. 심고 또 거두어야 하니까요.
사람을 만드실 때 배에 기름 주입구 같은 구멍을 내고, 사람마다 안에 기름통을 하나씩 넣어 주셨다면 어떠했을까요?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가득 채우기만 하면 에너지가 충전되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아니면 큰 배터리와 플러그를 달아 주셔서 꽂기만 하면 급속 충전이 되게 하셨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저는 늘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창조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그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빵이 나오지 않으면 곤란할 테니까요. 씨앗은 좋은 것입니다. 씨앗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씨앗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 무(畝)의 땅에서 씨앗을 거두면 내년에는 열 무의 땅에 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씨앗을 창조하셨기에 모든 사람이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빵을 내려 주셨는데 그 빵이 일억 명이 먹을 만큼밖에 없다면, 십억 명은 먹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씨앗은 참 흥미롭습니다. 누군가 씨앗을 심어야 하고, 사람들이 엿새 동안 바쁘게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는데, 봄에 텔레비전을 보고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린다면 가을에는 풀만 거두게 됩니다. 수확할 때가 되어 “하나님, 왜 이렇습니까? 왜 풀입니까?”라고 외친다면, 하나님께서 씨앗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일하지 않고 월요일부터 주일까지 전부 안식했다면, 지금은 안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을이 되어 흑곰이 겨울잠을 잘 때 여러분도 겨울잠을 자면 됩니다. 가을에 풀씨 한 자루를 거두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빵을 먹고 피자를 굽고 만두를 빚을 수 있지만 여러분은 집에서 풀을 싸야 합니다. 소는 풀을 먹고 우유라도 만들어 내지만, 여러분이 풀을 먹으면 소화와 배설조차 어려울 것입니다.
씨앗은 살아 있습니다. 한때 어떤 사람이 피라미드 안에서 밀 씨앗 한 알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요셉 시대의 씨앗으로, 지금으로부터 삼천 년도 더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밀 씨앗을 심었더니 놀랍게도 싹이 났습니다! 씨앗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축복의 씨앗을 심으면 축복을 거두고, 저주의 씨앗을 심으면 저주를 거둡니다. 오늘 여러분이 무엇을 심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허리 통증을 심으면 허리 통증을 거두고, 두통을 심으면 두통을 거둡니다. 두통과 다리 통증으로 걷지 못해 제게 기도를 받으러 올 때면, 저는 여러분이 좋지 않은 것들을 많이 심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저의 논리 체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씨앗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거나 암에 걸린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얼마 전 저는 한 암 환자를 섬겼습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목사님은 저를 정말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제 참된 사랑이 그 사람의 거짓된 사랑으로 돌아왔으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 참된 사랑이 거짓된 사랑으로 돌아왔으니 거래에서 큰 손해를 보셨네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제가 참된 사랑을 심었으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도 참된 사랑입니다. 이 암 환자는 조금 게을렀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주 편안하게 안식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자신을 암 속으로 안식시켜 버렸습니다. 이제 완전히 안식하게 될 것을 눈앞에 두고, 저는 그가 조금이라도 바른 일을 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엿새 동안 일하고 하루 안식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은 칠 일 내내 놀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하루 종일 어슬렁거리며 아무 가치도 없는 일만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주면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글을 쓰는 사역 같은 일을 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고기만두를 개에게 던진 것처럼, 한 번 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컴퓨터와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전도서》 11:1)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제가 늘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 제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영적인 세계에 축복의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큰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손해를 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을 가득히 얻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편》 126:6)
하나님께서 씨앗의 법칙을 창조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이런 것들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과거에 심은 축복의 씨앗을 통해 얻은 것은 모두 백 배의 보상이었습니다. 하나님, 저를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언젠가 제 영적인 자녀들이 온 땅에 가득한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언젠가는 제가 수고하여 맺은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기를 더욱 소망합니다.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아직 나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음이라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세기》 2:6)
씨앗이 땅속에 있을 때에는 아직 자라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안개가 올라와 온 땅을 적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닭이 먼저입니까, 달걀이 먼저입니까? 분명히 씨앗이 먼저입니다! 씨앗이 있으면 달걀도 씨앗과 같습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일단 제쳐 두더라도, 분명히 씨앗이 먼저 있었습니다. 첫 번째 닭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반드시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하나의 줄기세포를 만드셨고, 그 줄기세포가 서서히 닭으로 자라났을 것입니다. 그 세포가 장차 닭이 될지 오리가 될지를 결정합니다. 생물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분명 제 관점에 동의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물학 전체의 법칙에 따라 창조하셨고, 그 종에는 씨앗이 생겼습니다. 그다음부터 닭은 닭을 낳고 오리는 오리를 낳습니다. 다만 이것이 씨가 없는 것이면 곤란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씨앗이며,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최초의 유전자와 염색체가 그 종의 모습을 결정합니다. 종의 번식은 매우 신비로운 일입니다. 많은 종이 암컷과 수컷으로 나뉘어 교배하고 후손을 번식시킵니다. 어떤 씨앗에는 세포와 염색체가 절반만 들어 있고, 수컷과 암컷이 결합하면 유전자 속 코드가 그 후손의 모습을 결정합니다. 정말 흥미롭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 씨앗이므로, 우리는 이 씨앗의 법칙을 이해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어떤 사람이 자신이 참외를 심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쓴 오이가 자라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왜 자신의 삶은 이렇게 고달픈지 의아해합니다. 여러분이 씨앗의 법칙을 이해했다면 축복의 씨앗을 많이 뿌려야 합니다. 바람을 심으면 폭풍을 거두게 됩니다. 저주와 축복 모두 씨앗 때문입니다. 제가 연구한 결과는 이렇습니다. 오늘 저주의 씨앗을 심었다고 해서 내일 당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으니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씨앗이 아직 자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심은 것이 열매를 맺기까지 십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십 년 뒤에 자라나면 이미 끝난 것입니다. 보응이 없는 것이 아니라 때가 아직 이르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이 씨앗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하고 오늘 심으면 내일 거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씨앗의 법칙이 아닙니다. 오늘 축복을 심었는데 내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만두자. 다시는 심지 않겠다!”라고 하면 곤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법칙을 모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것은 무엇이든 반드시 자랄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을 품은 뒤에야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심고 내일 거두거나, 일 초 전에 심었는데 다음 순간 바로 태어난다면 그것은 요괴가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머릿속에는 이런 개념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것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이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과 과정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축복의 씨앗을 뿌리면 결국 축복을 거두고, 저주의 씨앗을 뿌리면 결국 저주를 받게 됩니다. 물론 과거에 저주를 많이 심었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여전히 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과거에 몇 년 동안 심었든 그 저주를 모두 깨끗이 없애 주십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주님을 믿은 뒤에도 계속 저주를 심는 것입니다! 절대로 무지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무엇을 심고 있는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저주를 심어 놓고도 축복을 심었다고 생각한다면 비극입니다. 씨앗을 심었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수확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영이 있는 살아 있는 존재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그 이름은 아담이니라 (《창세기》 2:7)
사람은 영으로 살아갑니다. 영이 있는 살아 있는 사람과 영이 없는 살아 있는 사람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입니다. 살아 있는 것은 반드시 영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코에 숨을 불어넣으시자 영이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기가 떠나면 겉으로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믿는 과정에서 늘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몸을 다시 살게 하십니다. 아담 시대에 아담은 선악을 분별하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죽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지면 죽을 수밖에 없는 몸이 다시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있는 삶에 대한 관념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6:63)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 육체이고 사람을 죽게 하는 것도 육체라고 생각한다면, 행운을 빌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른 채 죽게 될 테니까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입니다. 때로 제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라고 하면, 뜻밖에도 말씀을 읽다가 압박감을 느끼게 됩니다. 며칠 전 우리 형제자매들이 한 암 환자를 섬기고 있었는데, 그들은 왜 섬김을 받던 사람이 무너졌는지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해서 압박감이 너무 커진 것일까요? 저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데 어떻게 압박감이 생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읽지 마십시오. 약을 먹어도 좋고, 전기 치료나 화학요법을 받아도 좋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라고 하면서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영이라고 말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도 않고 오히려 부담스럽다고 느낀다면 다른 것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도 영이고, 사람을 죽게 하는 것도 영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지지 못한다면 비극입니다. 왜 암의 영이 사람의 몸에 들어옵니까? 사람이 육신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부담감의 문제인지 아닌지를 떠나, 사람이 사물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으로 산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원래 온몸에 힘이 없던 사람이 제가 인도하는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지면 힘이 회복됩니다. 그런데 사람은 돌아서자마자 다시 약에 의지하려고 합니다.
영이 있는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이고, 영이 없으면 죽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죽었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어떻게 떠났습니까? 사람이 선악을 분별하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씨앗이므로, 사람은 무엇을 심고 무엇을 거두는지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반드시 믿음을 가지고 걸어가야 합니다. 영이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은 반드시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영이 있는 살아 있는 사람 안에는 영감이 충만하고, 영적인 관점으로 살아 있다는 일을 바라봅니다. 여러분이 입을 열 때마다 육신에 속한 말만 한다면, 저는 마음속에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을 느낍니다. 그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흐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죽음을 자초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떠나보내고 죽음의 길에서 힘껏 달리면 됩니다. 예전에 우리가 잘 살지 못했던 것은 하나님의 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그렇게 산다면, 여러분에게 행운을 빌 수밖에 없습니다. 영이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은 일하고, 일을 처리하고, 배우고, 사람답게 사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에서 오는 능력에 의지합니다. 사람이 진리를 알지 못하고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우리 가운데 글쓰기 사역을 하는 팀이 있습니다. 한 목사님도 우리 교회처럼 녹음 파일을 글로 바꾸는 일을 배우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안에 있는 비결을 알지 못해 돈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돈을 주어도 사람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돈을 주지 않아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서로 하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얼마나 잘 말하는지는 일단 제쳐 두더라도, 제가 전하는 내용은 정말 사람을 세워 주기 때문입니다. 글쓰기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듣고, 기록하고, 연구합니다. 몇 시간 동안 사역하고, 반복해서 여러 번 듣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영적으로 매우 배부르게 먹었다고 느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여러분은 곧 잠을 많이 자든 적게 자든 별문제가 없고, 아무 일도 지체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제게 간증하기를, 이 글쓰기 사역을 하면서 복을 받아 사업도 좋아졌다고 합니다.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이 사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업을 하는 것과 돈을 버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예를 들어 가게 문을 열고 장사를 하는데 하나님의 임재가 없으면 손님이 걸어가다가 옆 가게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면 손님이 여러분의 가게로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면 형통하게 됩니다. 병에 한 번 덜 걸리기만 해도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으니, 빚을 진 사람들보다 훨씬 나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영이 있는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에게 행운을 빌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늘 압박감을 느끼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예전에 병들었을 때 부담감이 없었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영 없이 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 자체가 비극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하나님의 영을 의지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영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께서 그를 영생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영이 있는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살아 있는 사람이 될 것인지 죽은 사람이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사람의 영이 메마르면 늘 어리석은 일을 하게 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어야 합니다. 사람은 병원이나 직장, 친척과 친구에 의지해서 사는 것이 아니며, 세상에 대한 미련에 의지해서 사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을 섬기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섬김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을 섬기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영적인 원리를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영이고, 사람을 죽게 하는 것도 영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영적인 세계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원리입니다. 많은 사람은 제가 자신을 섬기는 것을 제게 베푸는 작은 은혜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세상에서의 길을 되도록 빨리 달려 마치고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갑니다. 제가 살아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살아갈수록 더욱 형통해지고, 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 할수록 오히려 떠날 수 없게 됩니다. 사람은 살아 있다는 일을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하지 못하고 흐릿하게 살아가면 오늘은 다투고 내일은 화를 내며 아무런 가치도 없이 살다가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것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때로는 병원이 우리를 죽였다고 말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그 병원에 들어가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병원에 계실 때, 저는 사람들이 죽어서 들려 나가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엄마, 우리는 이곳에서 살지 맙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도 동의하셨고, 우리는 퇴원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머니는 마지막에 마침내 깨달으셨습니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영입니다. 제가 하는 말이 육신에 속한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사과하겠습니다. 제가 잘못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영적인 사람들에게 저는 여러분이 이 말씀을 잘 듣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2장 말씀
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졌느니라.
2: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이날에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음이니라.
2:4 천지의 창조된 내력은 이러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내력이니라.
2:5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아직 자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음이라.
2: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그 이름은 아담이니라.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2:10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그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2: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2: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2: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2: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여자라 부르리니 이는 남자에게서 취하였음이라 하니라.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