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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요한계시록 7장 - 대환난 전에 하나님은 승리할 백성을 예비하신다

2026-06-03 63,879 启示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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启示录-以色列人十四万四千被印
  • 1 此后,我看见四位天使站在地的四角,执掌地上四方的风,叫风不吹在地上、海上,和树上。
  • 2 我又看见另有一位天使,从日出之地上来,拿着永生 神的印。他就向那得着权柄能伤害地和海的四位天使大声喊着说:
  • 3 “地与海并树木,你们不可伤害,等我们印了我们 神众仆人的额。”
  • 4 我听见以色列人各支派中受印的数目有十四万四千。
  • 5 犹大支派中受印的有一万二千;流便支派中有一万二千;迦得支派中有一万二千;
  • 6 亚设支派中有一万二千;拿弗他利支派中有一万二千;玛拿西支派中有一万二千;
  • 7 西缅支派中有一万二千;利未支派中有一万二千;以萨迦支派中有一万二千;
  • 8 西布伦支派中有一万二千;约瑟支派中有一万二千;便雅悯支派中受印的有一万二千。
  • 9 此后,我观看,见有许多的人,没有人能数过来,是从各国、各族、各民、各方来的,站在宝座和羔羊面前,身穿白衣,手拿棕树枝,
  • 10 大声喊着说:“愿救恩归与坐在宝座上我们的 神,也归与羔羊!”
  • 11 众天使都站在宝座和众长老并四活物的周围,在宝座前,面伏于地,敬拜 神,
  • 12 说:“阿们!颂赞、荣耀、智慧、感谢、尊贵、权柄、大力都归与我们的 神,直到永永远远。阿们!”
  • 13 长老中有一位问我说:“这些穿白衣的是谁?是从哪里来的?”
  • 14 我对他说:“我主,你知道。”他向我说:“这些人是从大患难中出来的,曾用羔羊的血把衣裳洗白净了。
  • 15 所以,他们在 神宝座前,昼夜在他殿中侍奉他。坐宝座的要用帐幕覆庇他们。
  • 16 他们不再饥,不再渴;日头和炎热也必不伤害他们。
  • 17 因为宝座中的羔羊必牧养他们,领他们到生命水的泉源; 神也必擦去他们一切的眼泪。”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요한계시록 7장을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이 장은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승리'라는 맥락을 따라 실마리를 풀어가면 그 주제는 "대환난 전에, 하나님께서 승리하는 그분의 백성을 예비하신다"가 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 땅에 임할 때, 누가 능히 서리요?

이전 장 끝부분에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누가 설 수 있는가는 결국 여러분이 하나님께 속해 있는지, 아니면 이 세상에 속해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세상에 속해 있다면, 서기는커녕 엎드려 있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주제는 이전 장에서 이어지는 것으로, 바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이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예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비하실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 장에서 하나님은 첫 번째 나팔을 불고 일곱째 인을 떼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첫 번째 나팔이 불릴 때 여러분이 이 땅에 있다면, 세상에! 그날들은 결코 살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이 단지 땅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능히 설 수 있겠습니까? 바로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마지막 날들의 재앙을 사람이 일으킨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도 치실까요?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여러분을 치지 않으실 거라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여러분이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을 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자신이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매우 위태롭습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결코 "주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말한 적이 없으며, 그런 일은 결코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성경 말씀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는 "여러분이 이러저러할지라도 구원에 가까울 뿐이다"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전체적인 논리 체계는 사실상 힘써 좇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구원이란 무엇일까요? 구원과 승리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이는 매우 혼란스러운 개념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구원과 승리를 분리하지 않습니다. 구원이 곧 승리이고, 승리가 곧 구원입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승리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도 모릅니다. 성경에는 승리한 결과가 어떠한지는 매우 명확하게 계시되어 있지만, 주님을 믿은 후에 승리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우리는 광야에서 죽어간 자들을 봅니다. 그러니 다들 '구원은 받되 승리는 못 해도 된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아이고, 난 구원만 받으면 됐지, 승리하지 못해도 괜찮아"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특히 지금 이 세대에는 승리하지 못하여 이 세상에 버려진다면, 그 재앙은 너무나 치명적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승리하도록 예비하십니다. 여러분이 승리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지 않으셔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받아들이기만 하면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 안에 있는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반드시 힘써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온종일 세상의 하찮은 일들만 생각하고, 머릿속에 육에 속한 논리 체계만 가득하며, 세상의 것들만 좇고 있으니 어떻게 승리하겠습니까? 여러분, 재앙이 닥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승리를 떠올리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께 권면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승리하십시오! 하나님의 진노가 이 땅에 임할 때, 누가 능히 서겠습니까?

땅과 바다를 해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요한계시록》 7:1)

하나님께서는 땅 사방의 바람을 주관하는 네 천사를 예비하셨습니다. 지금 바람이 여러분에게 불지 않고 있어서 그렇지, 불어닥치면 여러분이 버틸 수 있겠습니까? 최근 동북 지역에 큰 모래폭풍이 불어 닥쳐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지붕이 날아갔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세상에! 정말 끔찍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얼빈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놀라지 않았는지, 다치지는 않았는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들은 그날 정전이 되어 출근하지 않아서 괜찮았다고 했습니다. 영상을 보니 파괴력이 엄청났습니다.

그러니 누가 능히 설 수 있겠습니까? 나무조차 버티지 못하는데 여러분이 설 수 있겠습니까?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어떻게 태풍이 하얼빈까지 불어 닥칠 수 있겠습니까? 해안 지역에나 태풍이 오는 법인데 하얼빈에 웬 태풍입니까? 저도 참 의아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구가 둥글다"고 하고, 마작을 할 때도 '동서남북'을 따지지만, 하나님께서는 땅의 사방의 바람을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네 천사가 권세를 받아 땅과 바다를 해합니다. 땅과 바다가 무엇입니까? 온 지구를 말합니다. 온 지구상에 온전한 곳이 없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남풍이 불고, 때로는 북풍이, 때로는 동풍과 서풍이 불 텐데, 몇 등급의 바람이 불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데 여러분이 설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피할 수 없으며, 그 바람은 참으로 악할 것입니다.

영적 세계의 무서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많은 일에 혼란을 겪습니다. 며칠 전 누군가 사진을 보냈는데, 주차타워 출구에서 차 한 대가 바퀴 네 개를 하늘로 향한 채 뒤집혀 있었습니다. 어떻게 뒤집힌 걸까요? 참으로 의아합니다! 그러나 많은 영상의 이면에는 영적 세계의 역사가 보입니다. 어떤 승합차가 교차로를 지나가는데 아무 일도 없었는데 차가 공중으로 붕 떠올랐습니다.

무신론 속에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논리에 갇혀 있어 이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매우 강력한 영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면 쉽게 이해되지 않겠습니까? 영적 세계의 존재가 한 사람을 해치려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7주기 되던 날, 제 남동생이 운전하다가 절벽으로 굴러 떨어졌는데, 본인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후에 제가 귀신을 쫓아낼 때 그 귀신이 말했습니다. "네 동생 교통사고 난 거 아냐?" 제가 "안다, 누가 그랬냐?"고 묻자 귀신이 웃었습니다. 그 웃음소리가 너무 기괴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 귀신이 말하길, "내가 거길 지나가다가 네 동생이 운전하는 걸 보고, 차를 향해 입김을 '훅' 불었더니 차가 데굴데굴 절벽 밑으로 굴러 떨어졌지"라고 했습니다. 귀신은 참으로 악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 제조사들도 억울할 때가 있습니다. 자율주행도 귀신은 막지 못해서 '훅' 불어버리면 굴러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분 그 입김이 바로 요망한 바람이 아니겠습니까?

땅과 바다를 해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가 말(馬)과 관계가 있을까요?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여러분이 영적 세계를 조금이라도 연구하고 안다면 아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귀신에게 당하고, 어떤 사람은 귀신을 제압할까요? 그것은 여러분이 승리하는 자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승리하지 못하면 귀신은 반드시 여러분을 칠 것입니다. 그러니 그저 구원받는 것만 좇지 말고 승리함을 좇으십시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았는지만 묻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자신이 승리했는지를 진지하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귀신에게 당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귀신을 제압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땅에 그분의 진노를 쏟아부으실 때, 여러분은 능히 설 수 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중에는 참 묘한 고집을 부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 예수님을 힘입어 넉넉히 승리합시다. 이 네 천사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으로 우리 이마에 인치실 것이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요한계시록》 7:2-4)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이마에 인을 치실 때, 여러분이 승리하도록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수호전》에서도 이마에 낙인을 찍지만, 그것은 좋은 낙인이 아니라 누가 봐도 죄수임을 알게 하는 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낙인을 찍으시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인장을 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인을 칠까요? 성경 구절들을 연결해 보면, 성령으로 우리에게 인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사람에게 성령의 인치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인을 치면 어떻게 승리하게 될까요? 이 인치심에는 능력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구약과 신약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에는 성령의 인치심이라는 것이 없었지만, 신약에서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믿는 과정은 이러합니다. 첫째는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잘못 살았으니 목을 곧게 하여 회개하지 않는 자가 되지 말고, 회개하는 자와 회개하지 않는 자, 자신이 틀렸음을 아는 자와 옳다고 여기는 자를 분별해야 일이 풀립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과거에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돌이키는 것이며, 이전에는 자신을 의지했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단계에만 머물러 있는데,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넷째는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능력 없는 복음으로 믿는 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을 받으면 반드시 방언을 해야 하느냐고 묻고, 또 자신에게 '성령 내주'가 있으면 된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절대적인 진리를 가졌다고 여기는데,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굳이 입씨름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을 믿는 '4종 세트'는 바로 이것입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세례를 받고, 성령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이 인치심과 관련이 있을까요? 《에베소서》에서는 성령으로 우리에게 인치셨으니 이것이 성령의 보증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되면 여러분 안에 성령이 거하시게 되는데, 이 일에 대해서도 논쟁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큰 환난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반드시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대환난의 날에 하나님의 진노가 이 땅에 쏟아질 텐데, 그때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예를 들어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것은 달걀을 던지는 수준이 아니라 핵폭탄을 투하하는 것이며, 방사능 오염이 닥칠 텐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구상의 핵폭탄은 지구 전체를 몇 번이고 파괴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대화가 하나 있습니다. 저우언라이가 총리 시절, 미국 측 인사가 "저우 총리님, 우리 미국의 핵폭탄은 지구를 열 번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라고 하자, 저우 총리는 "우리의 핵폭탄은 단 한 번만 멸망시키면 충분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열 번이나 한 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내주'와 '성령 충만'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는 독소를 배출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방언 기도를, 영으로 드리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저희의 《고린도전서》 성경공부를 참고해 보십시오. 방언 기도는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며 성령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시는 것이라 나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도 방언 기도를 하지 않으면서, 이것은 방언이고 저것은 아니라고 말하는데, 이는 헛소리입니다! 성경에는 그런 가르침이 없기 때문입니다. 방언 기도와 성령 충만은 순전히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저는 많은 방언 기도가 사람에게 큰 유익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주님을 믿을 때 능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으로 우리 이마에 인치셨지만, 그 인침을 받은 자의 수는 14만 4천 명으로 매우 제한적입니다. 왜 14만 4천 명이냐고 논쟁하지 마십시오.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한 가지 아는 것은, 승리하는 사람의 수는 적다는 사실입니다. 승리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마지막 때에 큰 재앙이 닥치기 전, 《요한계시록》 7장에 이르러 승리하는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 승리하는 자는 정말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중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총 60만 대군이 계수되었으나, 결국에는 무효가 되고 말았습니다. 왜일까요?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두 광야에서 죽었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 비율은 60만 대 2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있어야 14만 4천 명의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사람들을 뽑아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승리하는 자가 적다고 해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몇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제가 명확하게 풀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왜 열두 지파입니까? 유다 지파, 르우벤 지파, 갓 지파, 아셀 지파 등이 있습니다... 이런 글자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지파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 이들 지파로 구성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군대가 애굽 땅에서 나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에서도 지파별로 계수되었는데, 이는 오합지졸이 아니라 군대의 편제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 장의 지파는 육적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하나님의 군대 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계수될 때, 여호와의 군대로서 지파와 종족을 따라 계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군대의 편제였으며, 오늘날 교회의 하나님의 백성 역시 군대의 편제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계시를 줍니다. 여러분은 편제 안에 있습니까, 편제 밖에 있습니까? 이해가 되십니까? 만약 여러분이 편제 밖에 있으면서 "목사님, 저는 교회가 없고 그냥 밖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매우 위태로운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느 지파냐고 묻는다면 어떤 사람은 "저는 미디안 지파입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여호와의 군대 편제가 아닙니다. "저는 아말렉 지파입니다"라고 한다면 끝장난 것이며 하나님의 편제에 속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소속 편제는 어디입니까? 여러분은 해방군에 속해 있습니까, 국군에 속해 있습니까? 괴뢰군입니까, 일본군입니까?

《요한계시록》 1장부터 7장에 이르기까지, 앞에서 왜 승리하는 교회에 대해 말씀하셨을까요? 교회는 곧 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정예 군사가 되기를 권면합니다. 화인 사명 신학이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정예 군사의 문제이며, 승리의 문제입니다!

열두 지파 중에 단 지파가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하셨습니까? 단 지파는 요단 저편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에 이를 때 단 지파는 사라지고 에브라임도 사라져 요셉의 이름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여기에 매우 미묘한 계시가 있습니다. 출애굽 때에는 단 지파가 있었으나 《요한계시록》에 오면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이 지파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열두 지파 중에서 싸울 수 있는 자라야 인정받고, 승리할 수 있는 자라야 인침을 받아 영적 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예 군사가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정예 군사 교회를 세워야 할까요?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고, 승리해야 약속의 땅에 들어가 편제에 속한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으로 이 지파들을 치셨는데, 지금은 몇 지파나 남아 있을까요? 참으로 알 수 없으니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승리의 개념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인을 치시는 것은 무엇과 관련이 있을까요? 여러분의 믿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믿음의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지, 결코 자기 자신의 생각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온갖 조잡한 숏폼 영상들을 믿기 좋아하는데, 그런 짧은 영상들이 여러분을 승리하게 해 줍니까?

많은 형제자매들이 숏폼 영상에 '좋아요'를 누릅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좋아요'를 누른다는 것은 그것에 동의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그것은 자기 생각이며 자기 뜻에는 맞아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의 뜻에 부합합니까? 그것이 여러분을 승리하게 합니까?

때때로 그런 짧은 영상들을 보면 제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그것들이 전달하는 가치 체계는 짐승의 가치 체계이거나 사탄과 마귀의 가치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영상들이 하나님의 가치 체계를 전달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영상들을 좋아할 수도 있지만, 좋아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무것도 의미하지 못합니다!

승리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승리하겠습니까? 비록 여러분이 그 짧은 영상에 깊이 공감한다 해도 그것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여러분, 사람이 영적으로 얽매이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숏폼 영상을 통해 공감을 얻고 인정받으려 하다가 결국 자신을 파멸시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인치심은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인치셨으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끊임없이 회개하며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주인이 되시고 왕 노릇 하시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만의 사사로운 영역을 남겨두지 마십시오. 사사로운 영역을 남겨두는 만큼 승리하지 못하게 되며,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으로 살겠다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으로 살면 5천 년에 한 번 나올 법한 사람이 될지 모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5백 년에 한 번 나올 만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5천 년에 한 번 나오는 것이 얼마나 독특하고(unique) 유일해 보이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어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을 치셔서 이 큰 환난과 하나님의 진노를 뚫고 지나갈 수 있도록 예비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 세상에 임하여 이런 재앙들을 겪게 될 때, 이는 일곱 나팔에 불과하며 아직 일곱 대접은 시작도 안 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감당하기 벅찬데, 일곱 대접은 사람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일곱 나팔의 시기를 거칠 것이며, 일곱째 나팔이 불릴 때에야 비로소 공중으로 끌어올려져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겨진 자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직 한 가지 길, 순교뿐입니다!

역대 승리한 백성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요한계시록》 7:9-12)

사도 요한은 환상 가운데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오는 것을 보았는데, 아무도 능히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하지만 앞에서는 14만 4천 명뿐이라 하여 턱없이 적었는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실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역대 모든 세대를 거치며 큰 환난을 통과하여 승리한 백성은 매우 많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었고, 어린 양의 피로 자기 옷을 씻어 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세대에는 14만 4천 명뿐입니다. 다만 이 숫자는 정확한 수치라기보다는 하나님의 군대 편제를 상징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14만 4천 명은 그리 많은 수가 아닙니다. 이는 우리에게 반드시 그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절박한 계시를 줍니다!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손에 종려 가지를 든 것은 승리를 의미하고, 흰 옷을 입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었으며 어린 양의 피로 우리의 허물이 씻겨졌음을 의미합니다. 결코 승리를 스스로 쟁취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하나님께서 여러분 앞서 싸워 승리하셨기에 여러분은 그저 뒤따라왔을 뿐입니다!

승리란 채식을 하고 불경을 외우며 도를 닦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지, 숏폼 영상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여러분이 짧은 영상을 좋아하고 그 내용에 공감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며 어쩌면 귀신의 소리일 수 있습니다.

역대 승리한 자들은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쓸 때 하나님께서 이것을 보여주신 이유입니다. 역대 승리한 백성들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힘입어 우리는 이미 넉넉히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습니다. 즉, 우리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승리하는 자로 만드실 것이며, 이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려운 것은 사람이 믿고 의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믿고 의지하는 일이 어렵기도 하고 어렵지 않기도 한데, 왜 어려울까요? 그것이 우리 안의 논리 체계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고, 예수 그리스도로 살아야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역대 승리한 백성은 매우 많으며, 그들은 이미 우리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훌륭한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그들에게 인을 치셨을까요? 틀림없이 치셨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인을 치시는 것은 장차 올 대환난을 예비하기 위함입니다.

이들은 큰 환난을 겪고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다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되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요한계시록》 7:13-14)

이 장로도 참 흥미롭습니다. 그가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어디서 왔느냐?"라고 묻자, 요한이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장로가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환난을 겪는 것은 매우 유익합니다. 환난을 겪지 않으면 싸움도 없고 승리도 없습니다. 사람이 이러한 것들을 겪으면서 어린 양의 피로 옷을 씻어 희게 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환난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키고 통과해 낸 사람은 분명 영원한 영광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만약 큰 환난을 겪으면서도 눈이 여전히 이 땅의 사소한 일에 머물러 있다면 통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속한 것들을 계속 무너뜨려야 합니다.

왜 어린 양의 피로 씻어 옷을 희게 했을까요? 그것은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을 겪는 것은 지극히 큰 은혜이며, 환난 중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환난이 없을 때 사람은 어리석어집니다. "우환 속에 살고 안락 속에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귀신이나 마귀가 사람을 좀 흔들어 놓아야 비로소 고생을 겪으며 자신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사람이 스스로를 의지하여 자기의 의를 세우는 순간 끝장납니다. 자기의 의를 세우는 사람은 참으로 비참합니다.

제가 매우 안타까운 일을 보았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아주 유명한 사람이 림프암, 대장암에 걸리고 심혈관 및 뇌혈관 질환까지 앓게 되었습니다.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다 겪은 것 아닙니까? 그렇게 많은 일을 겪었으면서도 그는 결코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늘 자신이 절대적인 진리를 가졌다고 여기며 엉터리로 해석해 댑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애굽인들에게 내리신 질병이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제가 동역자들과 이 이야기를 나누면 동역자들은 말합니다.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말해도 소용없을 뿐더러, 말하고 나면 그가 목사님을 미워할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것을 저주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왜 이런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을까요? 자신이 절대적인 진리를 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스스로 옳다 여기며 자기의 의를 세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하며, 그것을 일컬어 어린 양의 피로 옷을 씻어 희게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의를 세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들 자기가 진리를 가졌다고 여기고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목회할 때 그런 부분을 건드려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건드리지 않으면 형제자매로 남을 수 있지만, 건드리는 순간 칼날이 오가는 싸움이 벌어지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므로 큰 환난을 겪고 승리하는 것은 곧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연약함과 허물이 많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더 이상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자기의 의를 세우지 마십시오. 어떤 때에도 자신의 재주로 존재감을 드러내려 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존재감을 드러내십시오!

어떤 분은 "목사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근간이 되게 하십시오. 존재감을 드러내려거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십시오. 사실 목회자들이 더 심각합니다. 자기 의를 세우기를 유난히 좋아하며 자신이 절대적인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목사님이 절대 진리를 가지신 것 같네요!"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늘 제 자신이 아홉 마리 소의 털 한 가닥, 바닷물의 한 방울에 불과하다고 느끼며, 결코 제가 절대 진리를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질병이 많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징계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많은 신호를 주셨는데도 여전히 자기 의를 세운다면,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진노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은혜라고 여기는데, 그렇다면 실컷 더 겪어 보십시오! 하지만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그런 '은혜'는 적을수록 좋습니다.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진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 의를 세우며 자신의 옷이 희다고 착각합니다. 사실 필요한 것은 자기 의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마음입니다.

승리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그를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요한계시록》 7:15-17)

승리한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살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온전한 하나님과의 연합입니다! 육적인 안목으로 바라보면 무엇이 보이겠습니까?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왜 승리하지 못한 저런 사람들도 잘 먹고 잘사는지 의아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멀리 보지 못하고, 길게 보지 못하며, 깊이 보지 못하기 때문이고, 영적으로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깊이 들여다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승리한 것이 아니라 가인과 라멕의 논리로 승리한 자들의 결말이 얼마나 비참한지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큰 집을 사고, 잘 먹고 잘 사는 겉모습만 보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어떤 사람들에게 쏟아질 때, 그것이 좋아 보이겠습니까? 자세히 관찰해 보거나 그곳에 가서 한번 둘러보면,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복된 것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며, 이 땅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그를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왜 눈물이 남아 있을까요?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눈물 없이 승리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환난을 겪지 않은 사람의 믿음은 가짜처럼 보입니다. 아무 일도 없이 삼시 세끼 배불리 먹고 편히 자며 잘 지내는데 무슨 승리가 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을 치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져야 하며, 이 믿음이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을 치사 승리하도록 예비하시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께 권면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연약하고 무너져 있을지라도 믿음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취하십시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왜 승리해야 합니까? 승리해야만 환난을 뚫고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승리는 언제나 최고의 선택입니다! 이번 성경공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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