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3월 01일 나눔 녹음
하나님의 군대가 되기
지난 강의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길은 두 다리로 걸어서 나온 길이었습니다. 하루를 걷고 또 하루를 걸으며, 가족들을 데리고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사용할 것들을 짊어지고 가야 했으니 정말 매우 고된 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평생 걸어가는 길은 쉬운 길입니까? 노예 상태에서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행진한 방식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을 치라고 하시면 진을 치고, 진을 거두라고 하시면 진을 거두었습니다. 쉬지 않고 계속 걸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분명 마음속에 불평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애굽에서는 먹을 것도 있고 마실 것도 있었는데, 이게 애굽에서 노예로 사는 것보다 나은 게 뭐야? 차라리 노예로 사는 게 낫겠다! 이렇게 짐을 메고 계속 가는데,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백성과 군인은 생각이 다릅니다. 백성의 생각은 그저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약속의 땅이 정말 그렇게 좋은 곳일까? 그렇게 좋다면 당장 그곳에 도착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그러니 걸으면 걸을수록 불평이 더 많아졌습니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출애굽기》 15:22-24)
이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다면 우리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을 것입니다. 정말 너무 힘든 일입니다. 모세에게 불평하며 또 사흘 동안 광야를 걸었고, 물도 다 마시고 음식도 거의 다 먹었습니다. 물을 마시지 못하면 큰일입니다. 삼백만 명이나 되는 노인과 아이들이 물을 찾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너무하신 것 아닌가?’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불평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마십니까? 애굽에는 죽을 곳도 없었습니까? 왜 광야에서 죽게 하십니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출애굽기》 15:25-26)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군대”라니요. 언제 군대가 되겠다고 약속했습니까? 군대가 없는데 어떻게 땅을 차지하여 기업으로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저 맞기만 기다리는 것 아닙니까? 애굽에서 왜 노예가 되었습니까? 그들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대로 노예로 살고 싶지 않다면 일어나 하나님의 군대를 세워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은 사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힘든 데에 머물러야 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군대를 세우는 일이 힘든 데에 머물러야 합니까? 시야를 멀리 본다면 겪는 고난을 따지지 않고 일어나 군대를 세워 땅을 기업으로 얻으며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는 선한 계획이 있습니다. 어떤 계획이든 한 걸음씩 실현해 가야 합니다. 시야가 멀리 있다면 사흘을 걷는 것이 무엇이 문제입니까? 석 달을 걸어도 괜찮습니다. 이 시대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승자는 왕이 되고 패자는 도적이 됩니다. 역사 기록은 모두 승리한 사람들이 기록합니다. 승리한 후 나라를 세우고 이전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계속 걸어가느라 매우 힘든 때가 있었습니까? “물”이 없고 “양식”이 없는 상태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갈 때 한 걸음씩 걸어갔고, 똑같이 고생했습니다. 자기 집에 사는 것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집에서 떠나게 하시고 동요하는 날들을 겪게 하셨습니다. 그런 불안정한 날들을 견뎌 낼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하나님을 마주할 때 나타나는 반응은 일치합니다.
시험을 이기고 은혜를 보다
이스라엘 백성은 왜 괴로워했습니까? 그들의 생각이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고, 사물을 그렇게 꿰뚫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불평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시험하고 계신다는 것, 자신들이 복 받은 백성이 될 수 있는지를 시험하고 계신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니 우리는 마땅히 복을 받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데에는 조건이 없지만, 복을 받는 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복 받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어느 정도 어려움을 감당해야 합니다. 곧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때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한 것은 아주 정상적인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게 하셨습니다.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모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출애굽기》 15:23-25)
그들에게는 장기적인 계획이 없었고 그저 오늘을 잘 보내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정말 비슷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이루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무를 물에 던지라고 하셨고 물이 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도 시험을 겪고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됩니다!
불평과 육체를 돌보는 것은 모두 악습이다
사람은 평생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길을 걷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망을 가지고 걷는 것과 소망 없이 걷는 것은 다릅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은 일을 만날 때 하나님이 계십니다. 불평하려고 하면 불평할 일이 아주 많지만, 불평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원망하는 것은 참 이상한 일입니다. 원망하면 한평생 원망 때문에 인생이 망가집니다. 원망한다는 것은 비전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없고, 그저 작은 일상을 살아가고 싶어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수고와 슬픔과 고통입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너무나 험난했습니다. 우리가 형제자매들에게 이렇게 요구하는 것을 보고 형제자매 몇 명이 하나씩 교회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잘 사는 것이 좋은지 싫은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좋아하시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려고 한다면 문제가 정말 커지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이 길을 눈물과 땀으로 걸어왔습니다. 이것은 약속을 얻는 날들입니다. 우리가 이 길을 걸어온 결과는 좋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병이 있는 사람이 기도하면 나았습니다. 한 연로한 자매님은 몸에 통증이 있었는데, 제가 함께 기도해 드리자 십여 분 만에 나았습니다.
우리는 싸워서 승리하는 백성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질병이 낫습니다. 저는 정말로 나의 하나님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와 같이 영광의 길을 걷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전에 우리 교회를 떠난 자매들은 우리를 떠난 뒤에도 작은 일상을 잘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다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작은 일상만을 살아가는 사람은 잘 살지 못합니다. 작은 일상만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것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정예병이 되기로 뜻을 정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릴지라도 기쁨으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잘 살고 싶다면 한번 그렇게 살아 보십시오. 그 결과는 세상의 노예가 되는 것이며, 매우 힘들게 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간 길도 매우 힘든 길이었습니다. 한순간에 한 달을 걸었고, 한 달 반이 지나도록 너무 힘들게 걸으니 또 애굽에서의 삶이 얼마나 좋았는지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예전 생활이 좋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를 이런 곳으로 데려오셨습니까?” 사람이 작은 일상만을 살아가려는 것이 결국 배불리 먹고 맛있는 것을 먹는 일 아닙니까?
처음에는 좋은 날들을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더 고생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가려내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위해 고난을 받고 불평하지 않는 사람, 어려운 환경을 이겨 내는 사람만이 약속을 얻습니다. 백성은 매일 나가서 매일의 몫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하늘에서 음식이 내렸고, 그것을 거두면 먹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들이 거둔 것이 만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한 가지 요구를 하셨습니다. 안식일에는 나가서 거두면 안 되었습니다. 주일에는 전날 남겨 둔 것을 먹었습니다. 만나는 매우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만나를 먹는 날들을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같은 것을 먹으면 분명 싫증이 납니다. 매일 같은 음식을 먹으면 일주일만 먹어도 충분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한 병을 앓았는데, 어릴 때부터 옥수수빵을 먹다 보니 다시는 옥수수빵을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십여 년 동안 먹고 나니 더 이상 옥수수빵을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가난한 사람들은 잡곡을 먹고 부유한 사람들은 흰쌀을 먹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날마다 만나를 먹었고, 같은 것을 사흘만 먹어도 맛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질리도록 먹었다고 느끼자 또 불평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만나만 주셨습니다. 메뉴를 바꾸지도 않으셨으니 이스라엘 백성은 또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른들은 먹지 않아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안 됩니다. 날마다 만나만 먹게 하다니, 아이들이 여러분에게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애굽에서는 밥을 먹지 못했습니까? 애굽에서는 세 끼를 모두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별로 이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이것은 제가 생각한 것입니다. 양념한 쇠고기나 통닭, 햄 소시지 같은 것을 주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왜 꼭 이렇게 하셔야 합니까? ‘하나님은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각대로 하셨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저도 예전에 시험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양념한 쇠고기나 통닭, 햄 소시지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갖게 해 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 자신을 아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말을 들으신 후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셨습니다. 어떻게 진노하셨을까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진 사방에 이슬이 내리더니,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출애굽기》 16:11-15)
이 일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만나를 사십 년 동안 먹었습니다. 메추라기를 먹은 일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형제자매가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에게 있는 많은 질병과 문제는 먹는 것에서 생긴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옥수수빵을 너무 많이 먹어서 질렸지만, 병에는 거의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는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으면 아주 희귀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암과 당뇨병이 많습니다. 모두 먹는 것에서 생긴 것입니다. 조금 덜 먹어도 괜찮습니다. 많이 먹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관찰한 이상한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중국인에게 병이 많은 것은 생활이 나아진 뒤에 무엇이든 먹기 때문입니다. 먹고 또 먹다 보니 병이 생긴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조금 고생하고 간단한 음식을 먹는 것이 오히려 좋습니다. ‘애굽 사람에게 내린 질병’을 받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받고 싶다면 마음껏 먹으면 됩니다. 우리는 문제가 도대체 어디에서 생기는지 자세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당시 아담과 하와도 먹는 일에서 죄를 지었습니다. 사람이 먹는 것을 좋아하면 정말 큰일입니다! 나중에 저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많은 문제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회복하고, 사람이 왜 사는지 알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은 기뻐하기가 더 쉽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사람에게 내린 질병에 걸리지 않았던 것은 음식에 있어서 애굽 사람들보다 단순하게 먹었기 때문입니다. 몸을 아주 건강하게 하고 싶다면 음식에 주의하는 것이 중요한 한 가지 방법입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님은 하루에 한 끼만 먹습니다. 처음에는 가난했기 때문이지만 거의 병에 걸리지 않았으니 매우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나중에는 형편이 좋아졌는데도 여전히 하루에 한 끼만 먹었습니다. 때때로 제가 그 자매님에게 “와서 점심 드세요”라고 하면 자매님은 “저는 하루에 한 끼만 먹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아주 잘 지냈습니다. 나중에 제가 발견한 것은 이렇습니다. 이렇게 살면 아침을 요리해서 먹고, 점심을 요리해서 먹고, 저녁을 요리해서 먹고, 저녁을 먹은 뒤에는 텔레비전을 보고 잠을 자야 합니다. 먹고 나면 설거지도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왜 이렇게 번거롭게 살아야 하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루에 한 끼만 먹는 것이 아주 좋습니다.
설날이 되면 많은 사람이 저를 찾아와 제 집에 머뭅니다. 손님들이 왔으니 한 끼만 대접할 수는 없어서 저는 그들에게 두 끼를 대접합니다. 어떤 사람은 “원래 하루에 한 끼 먹는다는 것이 이렇게 먹는 것이군요”라고 말합니다. 사실 밤에 먹는 것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밤에 먹는 한 끼는 여러분이 왔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이 형제자매들이 떠나고 나면 다시 하루에 한 끼 먹는 생활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시간도 많이 절약됩니다. 많이 먹으면 병이 나서 괴로울 뿐 아니라 병원비도 써야 합니다. 돈을 다 쓰면 다시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합니다. 보십시오. 많이 먹고 많이 마시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합니까!
‘병은 입으로 들어온다’는 말은 제가 한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건강한 삶을 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천천히 배우십시오. 먹기 위해 살지 마십시오. 먹기 위해 살면 먹고 난 뒤 매우 힘들어집니다. 얼마나 의미 없는 일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어 무엇을 위해 사는지 분명히 알면 불평도 줄어듭니다. 불평은 먹고 마시는 것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사람이 불평을 적게 하면 병도 적게 걸리고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는 일도 줄어듭니다.
우리는 사람이 먹기 위해 얼마나 무거운 대가를 치르는지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중에 불평했던 사람들과 감히 전쟁에 나가지 못했던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정말 약속의 땅을 얻기 위해 달려가는 목표가 있다면, 조금 고생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