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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전도서 5장 - 수고하는 가운데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몫이다

2018-11-30 58,649 传道书 顺服 喜乐 言语 敬畏神 神的供应 神掌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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传道书05章-不可随便许愿
  • 1 你到 神的殿要谨慎脚步;因为近前听,胜过愚昧人献祭(或译:胜过献愚昧人的祭),他们本不知道所做的是恶。
  • 2 你在 神面前不可冒失开口,也不可心急发言;因为 神在天上,你在地下,所以你的言语要寡少。
  • 3 事务多,就令人做梦;言语多,就显出愚昧。
  • 4 你向 神许愿,偿还不可迟延,因他不喜悦愚昧人,所以你许的愿应当偿还。
  • 5 你许愿不还,不如不许。
  • 6 不可任你的口使肉体犯罪,也不可在祭司(原文是使者)面前说是错许了。为何使 神因你的声音发怒,败坏你手所做的呢?
  • 7 多梦和多言,其中多有虚幻,你只要敬畏 神。
  • 8 你若在一省之中见穷人受欺压,并夺去公义公平的事,不要因此诧异;因有一位高过居高位的鉴察,在他们以上还有更高的。
  • 9 况且地的益处归众人,就是君王也受田地的供应。
  • 10 贪爱银子的,不因得银子知足;贪爱丰富的,也不因得利益知足。这也是虚空。
  • 11 货物增添,吃的人也增添,物主得什么益处呢?不过眼看而已!
  • 12 劳碌的人不拘吃多吃少,睡得香甜;富足人的丰满却不容他睡觉。
  • 13 我见日光之下有一宗大祸患,就是财主积存资财,反害自己。
  • 14 因遭遇祸患,这些资财就消灭;那人若生了儿子,手里也一无所有。
  • 15 他怎样从母胎赤身而来,也必照样赤身而去;他所劳碌得来的,手中分毫不能带去。
  • 16 他来的情形怎样,他去的情形也怎样。这也是一宗大祸患。他为风劳碌有什么益处呢?
  • 17 并且他终身在黑暗中吃喝,多有烦恼,又有病患呕气。
  • 18 我所见为善为美的,就是人在 神赐他一生的日子吃喝,享受日光之下劳碌得来的好处,因为这是他的分。
  • 19  神赐人资财丰富,使他能以吃用,能取自己的分,在他劳碌中喜乐,这乃是 神的恩赐。
  • 20 他不多思念自己一生的年日,因为 神应他的心使他喜乐。

【2018년 11월 30일 나눔 녹음】

서론

《전도서》 5장의 주제는 수고 가운데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몫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살다 보면, 때로는 왜 사는지를 잊어버립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질문은 제가 주님을 믿고 하나님을 알게 될 때까지 계속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제야 사람이 사는 것은 이 세상에서 수고하며 즐거워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 답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에게 “잘 살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민할 때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고민할 때마다 ‘나는 왜 이 세상에 왔을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몫은 무엇일까? 어떻게 살다 보니 그것을 잊어버렸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 즐거워하기 위해 왔는데 말입니다! 제가 고민에서 벗어나 다시 즐거워하게 될 때면 이미 이삼 일이 지나가 버립니다. 시간만 헛되이 흘려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이삼 개월, 이삼 년, 이삼십 년을 보내고, 심지어 관에 들어갈 때까지도 분명히 깨닫지 못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는 반드시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날마다 이리저리 애쓰고, 매일 고민하고 낙심하며,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는 것은 이 문제를 분명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잘 보고 잘 들으십시오. 제가 말하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며, 고등 교육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어렵게 이 세상에 왔는데, 온종일 일하고 돈을 버는 데 바쁘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정말 삶의 의미란 말입니까?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고민할 때는 이유가 매우 충분해 보이지만, 고민은 사람을 관 속으로 들어가게 할 뿐입니다. 정말 하늘에 영혼이 있다면, 하늘에서 사람들이 이런저런 일로 계속 고민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의아해할 것입니다. 사람이 평생 사는 목적이 고작 고민하기 위한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아주 분명하게 살아갑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즐거워합니다. 그는 즐거워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 있는 기쁨을 절대로 잃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을 믿은 것이 헛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제단 앞에 나아오는 것은 우리를 즐겁게 하시는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영적인 위인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성경》을 읽다 보면 성경 인물 가운데 특별한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은 원래 생활을 꽤 잘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른 곳으로 이주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정말 일어나서 떠났고, 고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도착한 뒤에는 기근도 만났지만, 그 기근도 아브라함 마음속의 기쁨을 빼앗지 못했습니다.

또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의 삶도 매우 복잡하고 평생 고생스러웠습니다. 네 아내가 날마다 서로 질투하고 다투었지만, 그는 마음속의 기쁨을 잃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오면, 좋아하든 싫어하든 모두 수고하게 됩니다. 그러나 즐거워할지 즐거워하지 않을지는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시대에 이르러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지만 여전히 기쁨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 네 세대의 사람들은 모두 수고 가운데 즐거워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몫입니다. 사람이 평생 어떤 일을 만나든 즐거워할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아무 일도 만나지 않았는데도 고민하고 낙심하고 괴로워한다면, 그것은 단지 어리석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평생을 살며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평생의 날 동안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수고하여 얻은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몫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재물과 부요를 주셔서 먹고 쓸 수 있게 하시며, 자기 몫을 받을 수 있게 하시고, 수고 가운데 즐거워하게 하셨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다. (《전도서》 5:18-19)

사람이 살아가면서 즐거워하지 못하는 것은 기쁨의 은사가 마귀에게 도둑맞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렵게 이 세상에 한 번 왔는데, 수십 년의 삶을 수고와 근심과 고민과 낙심으로 보낸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런 일들을 꿰뚫어 보고, 살아 있는 기쁨을 마귀의 손에서 되찾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한 아이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와서 자기 아이가 간질을 앓고 있으며 발작할 때마다 매우 고통스러워한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의 치유를 구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왔지 가나안 사람들을 위해 온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왔지 개들을 위해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상황을 만났다면,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개라고 욕하셨다고 생각하여 왜 예수님을 찾아왔는지를 잊고, 자신이 개인지 아닌지를 두고 예수님과 논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과 다투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결과 그 여인의 믿음으로 아이가 치유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자신이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수고 가운데 즐거워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몫입니다.

가까이 나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너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가라. 가까이 나아가 듣는 것이 어리석은 자들이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낫다. (또는 어리석은 자의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낫다.) 그들은 자기들이 악을 행하는 줄도 알지 못한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으니, 네 말은 적게 할지니라. (《전도서》 5:1-2)

가까이 나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의 견해를 급히 표현하려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안에 있는 생각은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을 붙잡으면 우리의 생각은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어리석은 사람은 제사 드리기를 좋아합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 가운데 다른 사람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저도 이런 요청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중보기도라는 일을 매우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중보기도라는 현상을 어떻게 보실까요? 구약성경에서는 중보기도를 본 적이 없고, 신약성경을 찾아보아도 중보기도에 대해 자세히 논한 내용을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찾아와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면,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보기도가 효과가 있습니까? 많은 사람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도 상관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중보기도를 요구합니다. 한 자매가 늘 저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저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다 성경의 한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위선으로 소를 잡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는 것과 같으며, 예물로 드리는 것은 돼지의 피를 드리는 것과 같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하는 것과 같다. 이 사람들이 자기들의 길을 택하며 마음으로 가증한 일을 기뻐하니라. (《이사야》 66:3)

기도는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눈에는 사람을 죽이는 것 같고, 개의 목을 꺾는 것 같고, 돼지의 피를 드리는 것 같으며, 우상을 찬송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훨씬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중보기도를 미신적으로 믿습니다. 중보기도를 부탁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들은 중보기도를 매우 신령한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중보기도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큰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수천, 수만 명의 중보기도 용사를 찾으신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런 일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 목회자가 강단에서 설교하는데, 화면 뒤에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능력 있게 설교하는지 아십니까? 뒤에서 많은 사람들이 저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실제로 나오며, 많은 사람이 바울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중보기도가 매우 유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저를 찾아와 중보기도를 부탁하지만, 그것이 효과가 있는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까이 나아가 듣고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먹고 마시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오는 것입니다. 지키고 행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며 세상의 많은 일을 꿰뚫어 보게 된다면, 즐거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수고 가운데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몫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급히 표현하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저는 원래 그 사람을 세워 주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그가 먼저 반박하거나 논쟁을 벌여 사람을 몹시 곤란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계속 말하다 보면 정말 개의 목을 꺾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제사를 드리는 사람을 그토록 싫어하실까요?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제사를 드립니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정말 중요합니까? 사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기쁨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자가 반드시 기쁜 것은 아니며, 기쁜 사람이 반드시 돈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돈이 기쁨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붙잡으려 하지만, 사실 돈과 기쁨은 큰 관계가 없습니다. 수고 가운데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몫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붙잡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뒤에도 여전히 자기 생각을 고집하고 있습니까? 자기 길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과연 더 나아지겠습니까?

모든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제가 어렸을 때의 기억에 한 배우가 황스런 역을 너무 잘 연기해서, 연기가 끝난 뒤에도 감히 거리로 나가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거리로 나가면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때리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백모녀》에 나오는 황스런이 너무나 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때로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릅니다. 황스런은 아주 악하고 양바이라오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이 양바이라오처럼 비참하게 사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결말도 다르다고 불평합니다. 어떤 연구가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어 컴퓨터를 다시 시작하듯 모든 사람의 출발점을 똑같이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결과 10년 뒤에는 부자는 다시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다시 가난해졌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이 그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또는 네 마음을 지극히 지키라.) (《잠언》 4:23)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도 그렇게 됩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선택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땅에 있고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땅에서 살면서 구름 속과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분명히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므로 모든 것을 분명히 아십니다. 사람의 높이가 그의 견해를 결정합니다. 땅에서는 반드시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다만 내가 이 산중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사실의 진상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것은 세상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쉽게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에 서서 영생을 바라본다면 단번에 깨닫게 됩니다. 높은 곳에 서야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게 되고, 수고 가운데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몫임을 알게 됩니다.

며칠 전 1970년대 대학 입시에 관한 글을 보았습니다. 한 13세 아이가 중국과학기술대학교 소년반에 합격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매우 부러워하며 ‘이 아이는 정말 대단하다. 13세에 대학에 가다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소년반에 처음 합격한 사람들의 나이는 11세에서 14세 사이였고, 모두 11명이 합격하여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40년 뒤 다시 조사해 보니, 이 신동들은 출발점은 매우 높았지만 그 후 뛰어난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좋은 출발점이 반드시 평생을 잘 살게 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 소년반 학생들의 결말은 모두 좋지 않았고, 사람들이 기대한 것처럼 비범한 성취를 이루지도 못했습니다. 이 소년들은 운명에게 농락당한 것입니다. 사람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출발점이 높아도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사물을 바라보는 높이를 높이기 시작해야 합니다.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의 이런 일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얼마 전 한 형제가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빚지고 매우 불안해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갚을 수 있으면 갚고, 갚을 수 없으면 빚진 채로 있으라고 했습니다. 빚진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초조해지기 시작합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초조해할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 관점에서 보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초조해합니까?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빚진 것이지,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빚진 것이 아닙니다. 그 빚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길 필요는 정말 없습니다. 우리는 원래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이 세상에 왔고, 죽을 때도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것들을 붙잡는 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어떤 일이 여러분의 기쁨을 빼앗는다면, 그 일은 여러분에게 저주가 됩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수고 가운데 즐거워하는 법을 배우고, 해야 할 일을 하면 됩니다. 정말 돈을 갚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빚을 갚지 않는 것은 도덕적이지 않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이 광활한 세상과 지난 5천 년의 역사를 바라보면,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넘어가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많은 일을 하고 많은 말을 하지만, 자주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수고 가운데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몫입니다. 기쁘고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많은 일이 왔다가 가고, 빠르게 왔다가 빠르게 지나가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몫, 곧 수고 가운데 즐거워하는 기쁨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자주 기도를 인도하고 성경공부를 인도합니다. 때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잊어버려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내가 무엇 때문에 걱정하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시니, 저는 매우 노력하여 즐거워하려고 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일을 돌아보면 조금 후회가 됩니다. 왜 형제자매들에게 그렇게 큰 압박을 주었을까?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면 이야기하면 되는데, 왜 사람을 꾸짖기까지 했을까? 저는 정말 사람들의 세상에서의 기쁨을 빼앗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살아 있는 동안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기쁜 일을 하게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대화 때문에 사람을 또 꾸짖는다면, 여러분은 제게 이 성경공부를 다시 들어 보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집을 부리지 말라

일이 많으면 꿈을 꾸게 하고 말이 많으면 어리석은 것이 드러난다. (《전도서》 5:3)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힘써 행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자기 생각을 고집하며 기쁨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이것을 주시면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은 서원하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 그 후에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네가 서원한 것을 갚으라. (《전도서》 5:4)

어떤 사람은 서원한 뒤에 자신은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말하고 행한 것을 영계에서는 모두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서가 팥죽 한 그릇을 원했을 때,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자신에게 주면 팥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한 말과 서원한 것은 영계에서 인정됩니다. 많은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것도 원하고 저것도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셔서 그것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서원한 사람이 한 말은 번복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쁨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허상 속에서 살지 말라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전도서》 5:7)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말이 많고 꿈이 많으며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것은 사실 매우 허망합니다. 귀신은 여러분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하나님께서도 아십니다. 사탄이 던지는 미끼를 여러분은 쉽게 물게 됩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나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이 여러분의 기쁨에 실제로 큰 도움을 주지는 않습니다. 세상에는 허상적인 일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자주 바람을 잡고 그림자를 쫓는 일들을 붙잡으며, 심지어 모든 대가를 치르려고 합니다. 너무 원하기 때문에 마음속에 허상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자주 허상만 가져오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업을 하라고 계시하셔서 했는데 나중에 손해를 봤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기도할 때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저를 막지 않으셨습니까?” 여러분이 그렇게 제멋대로이고 욕심이 많은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막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허상 속에서 살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기 시작하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떨도록 하십시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다 이루어졌느니라. 그러나 내가 돌보는 자는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라. (《이사야》 66:2)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으므로 완전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걸러 내어 모으시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은 걸러 내십니다. 제가 처음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을 때 돈과 힘을 쏟는 일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집을 빌리는 일로 집주인과 갈등이 있었고, 직장을 구하는 데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으며, 교회 안에는 혼전 임신과 같은 문제도 있었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힘들게 하실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그런 상황에서도 저는 수고 가운데 즐거워해야 한다는 사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몫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기쁨을 잃지 않았습니다. 직장에서 강등을 겪었지만 괜찮았습니다. 강등되면 어떻습니까? 제 기쁨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해 주십니다. 그 복잡하고 엉킨 문제들도 모두 해결될 것입니다. 사방에서 환난을 당하던 그때에도 저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교회를 세우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그 몇 년 동안 직장에서 저는 몇 차례나 강등되었습니다. 올라가다가 다시 내려오는 것은 매우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기쁘게 출근하고 퇴근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저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하며, 다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더해 주신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좋은 일입니다.

젊은이들이 사회에 처음 나가면 집을 구하고, 직장을 구하고, 배우자를 찾는 등 여러 복잡한 일을 만나게 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매우 속상해하고, 고민하고, 무너집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승리하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로 뜻을 정한다면 이런 일들이 여전히 그렇게 중요하겠습니까? 저는 이런 하찮은 일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저도 소용없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허상 속에서 살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떨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처럼 성경공부를 많이 하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거의 빠져 있을 정도입니다. 이틀 동안 계속 고민하다가 갑자기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은 절대로 제멋대로 굴거나 자기 생각을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날 가난한 사람이 억압받는 것을 보고, 여러분 곁에서도 양바이라오와 백모녀 같은 사람이 억압받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합시다. 불공평하다고 느껴 불평하고, 불의를 보면 나서서 해결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양바이라오가 그런 모습으로 살게 된 것도 결국 그 자신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사람의 일생의 결과는 마음에서 나오며, 마음으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의 일생도 그렇게 됩니다. 우리는 마음속의 쓰레기를 하나씩 제거해야 하며 자기 생각을 고집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지혜로워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은 곳에 두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당신은 내가 겪은 일을 겪어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내 고통을 알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이 겪은 그 일이 요셉이나 예수님께서 겪으신 일과 비교하면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고 나중에는 감옥에 보내졌습니다. 하루 종일 울고불고 불평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 일생의 몫은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수고 가운데 즐거워하게 하신 것입니다. 노예로 사는 것도 괜찮고, 감옥에 보내져도 괜찮습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며 말할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사실 이것이 바로 도입니다. 감옥에 보내질지 말지는 여러분이 결정할 수 없지만, 기뻐할지 기뻐하지 않을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결정할 수 있는 일입니다. 소송에 휘말릴지 말지는 통제할 수 없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기뻐할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

너는 어느 지방에서든지 가난한 사람이 학대받으며 정의와 공의가 시행되지 않는 것을 보거든 그 일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높은 자보다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도 있음이라. 땅의 이익은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며 왕도 밭의 소산으로 공급받느니라. (《전도서》 5:8-9)

여러분은 반드시 우리 하나님께서 지극히 공평하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땅의 이익은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고, 땅의 왕도 밭의 소산으로 공급받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불운한 일이 닥치고, 귀신에게 억압받는 일이 닥쳤다면 누구를 탓해야 합니까? 우리 자신을 탓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무엇을 하러 왔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런 불공평한 일을 보았다고 해서 우리가 온 이유를 잊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는 불의를 보면 대신 해결해 주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있습니다. 이 땅에서 모든 사람이 받는 몫은 공평합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 기뻐할지 기뻐하지 않을지는 자신이 결정합니다. 우리의 기쁨을 빼앗는 것은 많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하나는 만족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중국의 최고 부자든 세계 최고의 부자든 하루에 먹는 양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하루 만에 1조 위안이 증발한다면 세계 최대의 첨단기술 회사라도 파산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이렇게 한 세대씩 지나가는데, 사람에게 무엇을 더해 줄 수 있겠습니까? 지나가는 연기와 구름에 불과합니다. 완다에 집이 그렇게 많다고 해서 여러분은 만 제곱미터짜리 침실에서 자고 싶습니까? 차라리 톈안먼 광장에서 자는 것이 낫겠습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사실 아주 아담한 공간에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위로 1미터 정도 높이가 있고 아래에는 침대가 있어서, 일어나 손을 뻗으면 천장에 닿는 공간이 꽤 안정감을 줍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도 많아지나니 그 소유주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 눈으로 보는 것뿐이로다! 수고하는 자는 먹는 것이 많든 적든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그 부요함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전도서》 5:10-12)

많은 사람은 가난할 때 부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부자가 된 뒤에는 갑자기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재물을 관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잘 관리하지 못하면 정말 문제가 생깁니다. 부유한 사람이든 수고하는 사람이든 한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 세상에 왔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몫은 수고 가운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서》를 기록한 전도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을 보았나니 곧 재물이 그 소유주를 해치는 것이라. 재난을 만나면 그 재물이 없어지고, 그 사람이 아들을 낳아도 그의 손에 아무것도 없느니라. (《전도서》 5:13-14)

부유함도 하나의 시험입니다. 재물을 쌓아 두다가 결국 자신의 기쁨을 빼앗긴다면, 그것은 자신을 해치는 일이 아닙니까? 사람의 평생은 먹고 마시고 자는 정도의 아주 단순한 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셔서 자기 몫을 누리게 하시고, 수고 가운데 그 재물을 관리하며 기쁨을 얻게 하셨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재난을 만나 재물을 잃고, 큰바람에 날아온 것이 다시 큰바람에 날아가 버렸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것도 정상입니다. 사람이 어머니의 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으니, 벌거벗은 채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일들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바람을 위하여 수고한들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가 나온 모습 그대로 그가 돌아가니 이것도 큰 폐단이라. 바람을 위하여 수고한들 무슨 유익이 있으랴. 일평생을 어두운 데서 먹고 마시며 많은 근심과 질병과 분노가 그에게 있느니라. (《전도서》 5:16-17)

늘 기뻐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많은 병이 생길 수 있습니까? 욕심이 많지 않다면 어떻게 그렇게 많은 근심이 생기겠습니까? 자족한다는 것은 오늘 내가 노예라 해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노예도 수고 가운데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수고 가운데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몫입니다. 양바이라오도 기쁨이 있는 양바이라오가 될 수 있습니다. 황스런의 집에서 일을 잘하고, 하루 종일 반란을 일으킬 생각만 하지 마십시오. 그러다 보면 언제 양요셉이 될지 모릅니다. 요셉처럼 수고 가운데 즐거워하면 주인이 많은 것을 맡겨 관리하게 할 것입니다.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내려놓으십시오.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사는 동안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든 누릴 수 있습니다. 중국에는 ‘샤오쯔’라는 말이 있습니다. 커피를 마셔도 아주 비싼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저는 길거리 노점의 커피를 마십니다. 그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수는 18위안짜리도 있고 9위안짜리도 있습니다. 저는 9위안짜리 국수를 먹어도 산해진미와 똑같이 맛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평생의 날을 수고 가운데 누리며, 해 아래에서 수고하여 얻은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몫입니다.

저는 그런 고급 음식이 정말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기름진 음식을 먹고 지방간과 고지혈증에 걸린다면, 괜히 일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까? 굳이 그렇게 비싼 음식을 먹어야 합니까? 어떤 사람은 한 끼에 1만 위안을 쓰지만, 결국 많은 문제만 일으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즐거워하라

정말 깨어나야 합니다! 모두가 취해 있을 때 나만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즐거워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즐겁게 하셨기 때문이며, 그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몫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과거의 역사를 자주 되뇌지 않습니다. 가끔 조금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을 세워 주기도 합니다. 얼마 전 한 자매가 자신의 과거에 있었던 원한과 갈등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자매는 70대에 림프암에 걸렸고, 저는 원래 그 자매와 함께 기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7시간이 지나도록 기도를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7시간 내내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잘못했는지에 대한 오래된 일들을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사람이 매우 괴로웠습니다. 그 자매는 날마다 그런 일을 이야기하는데 괴롭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동역자에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자매에게 직접 말하십시오. ‘자매님, 저는 자매님과 함께 기도하여 자매님이 기뻐하게 하려고 온 것이지, 자매님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계속 이야기한다고 기뻐질 수 있겠습니까? 평생 다른 사람의 악을 기억한다면 암에 걸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평생 어둠 속에서 먹고 마시며 병 때문에 분노하고, 과거의 쓰레기만 계속 이야기합니다. 어머니가 저에게 과거의 쓰레기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저는 중단시킵니다. 우리는 미래를 더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살며, 믿음으로 미래를 창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여러분에게 한 가지 권하고 싶습니다. 밤이 깊도록 잠이 오지 않을 때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하나님, 제 일생이 수고 가운데 즐거워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몫입니다.” 있든 없든 그렇게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있어야 할 것은 여전히 있을 것이고, 없어야 할 것은 없어도 괜찮습니다. 어떤 상황도 제 기쁨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제가 어렵게 이 세상에 왔을 때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몫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 구절

Ecc 5:1 너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가라. 가까이 나아가 듣는 것이 어리석은 자들이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낫다. (또는 어리석은 자의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낫다.) 그들은 자기들이 악을 행하는 줄도 알지 못한다.

Ecc 5: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마음이 조급하여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으니 네 말은 적게 할지니라.

Ecc 5:3 일이 많으면 사람이 꿈을 꾸게 되고 말이 많으면 어리석음이 드러난다.

Ecc 5:4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네가 서원한 것을 갚으라.

Ecc 5:5 서원하고 갚지 않는 것보다 서원하지 않는 것이 나으니라.

Ecc 5:6 네 입으로 네 육체가 죄를 짓게 하지 말며 제사장 앞에서 “잘못 서원했습니다”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시게 하며 네 손으로 한 일을 무너뜨리게 하겠느냐?

Ecc 5:7 꿈이 많고 말이 많으면 그 가운데 허망한 것이 많으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Ecc 5:8 네가 어느 지방에서든지 가난한 사람이 학대받으며 정의와 공의가 시행되지 않는 것을 보거든 그 일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높은 자보다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도 있음이라.

Ecc 5:9 땅의 이익은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며 왕도 밭의 소산으로 공급받느니라.

Ecc 5: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Ecc 5:11 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도 많아지나니 그 소유주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 눈으로 보는 것뿐이로다.

Ecc 5:12 수고하는 자는 먹는 것이 많든 적든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그 부요함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Ecc 5:13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을 보았나니 곧 재물이 그 소유주를 해치는 것이라.

Ecc 5:14 재난을 만나면 그 재물이 없어지고 그 사람이 아들을 낳아도 그의 손에 아무것도 없느니라.

Ecc 5:15 그가 어머니의 태에서 벌거벗고 나온 것처럼 반드시 벌거벗은 채 돌아가리니 그가 수고하여 얻은 것을 손에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라.

Ecc 5:16 그가 나온 모습 그대로 그가 돌아가니 이것도 큰 폐단이라. 바람을 위하여 수고한들 무슨 유익이 있으랴.

Ecc 5:17 일평생을 어두운 데서 먹고 마시며 많은 근심과 질병과 분노가 그에게 있느니라.

Ecc 5:18 내가 보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평생의 날 동안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수고하여 얻은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몫이다.

Ecc 5:19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재물과 부요를 주셔서 먹고 쓸 수 있게 하시며 자기 몫을 받을 수 있게 하시고 수고 가운데 즐거워하게 하셨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다.

Ecc 5:20 그는 자기 생명의 날을 많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이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시기 때문이라.

Ecc 6:1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폐단을 보았나니 사람에게 무겁게 임하는 것이라.

Ecc 6:2 곧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주셔서 그의 마음이 원하는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지 못하게 하시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누리게 하시니 이것은 헛된 것이며 큰 폐단이라.

Ecc 6:3 사람이 자녀를 백 명이나 낳고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마음이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장사되지 못한다면 내가 말하건대 낙태되어 때가 되기 전에 떨어진 아이가 그보다 낫다.

Ecc 6:4 그 아이는 헛되이 와서 어둠 속으로 가며 그 이름이 어둠에 덮이느니라.

Ecc 6:5 햇빛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지만 그 아이가 그 사람보다 더 평안히 쉬느니라.

Ecc 6:6 그 사람이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해도 행복을 누리지 못하면 모든 사람이 한곳으로 가지 아니하느냐?

Ecc 6:7 사람의 모든 수고는 그의 입을 위한 것이나 그의 마음은 만족하지 못하느니라.

Ecc 6:8 그러면 지혜로운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가난한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안다고 해서 무슨 유익이 있으랴?

Ecc 6:9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방황하며 생각하는 것보다 낫다. 이것도 헛된 것이며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Ecc 6:10 이미 있는 것은 오래전에 이름이 붙여졌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알려졌나니 그는 자기보다 강한 자와 다툴 수 없느니라.

Ecc 6:11 헛된 것을 더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

Ecc 6:12 사람의 평생의 헛된 날이 그림자처럼 지나가는데 누가 그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알겠으며 누가 그가 죽은 뒤 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그에게 알려 주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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