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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시편 34장 -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025-08-24 1,421 诗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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诗篇-颂赞 神的美善
  • 1 我要时时称颂耶和华;赞美他的话必常在我口中。
  • 2 我的心必因耶和华夸耀;谦卑人听见,就要喜乐。
  • 3 你们和我当称耶和华为大,一同高举他的名。
  • 4 我曾寻求耶和华,他就应允我,救我脱离了一切的恐惧。
  • 5 凡仰望他的,便有光荣;他们的脸,必不蒙羞。
  • 6 我这困苦人呼求,耶和华便垂听,救我脱离一切患难。
  • 7 耶和华的使者在敬畏他的人四围安营,搭救他们。
  • 8 你们要尝尝主恩的滋味,便知道他是美善;投靠他的人有福了!
  • 9 耶和华的圣民哪,你们当敬畏他,因敬畏他的一无所缺。
  • 10 少壮狮子还缺食忍饿,但寻求耶和华的,什么好处都不缺。
  • 11 众弟子啊,你们当来听我的话!我要将敬畏耶和华的道教训你们。
  • 12 有何人喜好存活,爱慕长寿,得享美福,
  • 13 就要禁止舌头不出恶言,嘴唇不说诡诈的话。
  • 14 要离恶行善,寻求和睦,一心追赶。
  • 15 耶和华的眼目看顾义人;他的耳朵听他们的呼求。
  • 16 耶和华向行恶的人变脸,要从世上除灭他们的名号。
  • 17 义人呼求,耶和华听见了,便救他们脱离一切患难。
  • 18 耶和华靠近伤心的人,拯救灵性痛悔的人。
  • 19 义人多有苦难,但耶和华救他脱离这一切,
  • 20 又保全他一身的骨头,连一根也不折断。
  • 21 恶必害死恶人;恨恶义人的,必被定罪。
  • 22 耶和华救赎他仆人的灵魂;凡投靠他的,必不致定罪。

서론

이번에는 이어서 여러분과 함께 《시편》 34편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목은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다"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몇 가지 아주 훌륭한 결론을 얻었는데, 이는 모두 교회 안의 그리스도인들의 행동과 그들이 겪은 일들을 관찰하면서 도출해 낸 것입니다.

첫 번째 결론은, 나는 사람이고, 매우 보잘것없는 사람이며, 내 힘으로는 안 되고 내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논리는 매우 간단합니다. 우리는 정말로 재앙과 내일 중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매우 훌륭한 결론이며, 우리 중 많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너무나도 필요합니다. 제가 만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면 곧바로 반박하고, 영계에 대해 이야기하면 또 반박하곤 했습니다. 마치 자기가 대단한 것처럼 굴지만, 사실 그는 전혀 대단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나는 그분으로부터 좋은 것을 받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무슨 유익을 드리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며, 특히 우리 사역자들에게 중요합니다. 왜 저는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피곤함을 느끼지 않을까요? 결코 탈진(번아웃)되지 않을까요?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좋은 것을 얻기 때문이지, 하나님께 무슨 유익을 드리러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린 적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하나님, 보세요. 제가 소그룹도 다 참석했고, 주일 예배도 왔고, 기도회도 왔는데, 저한테 도대체 뭘 더 바라십니까?" 이것은 대만 사람들이 가장 잘 쓰는 말 중 하나입니다. "나더러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저는 감히 하나님께 이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논리가 틀어지고, 그러면 큰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좋은 것을 얻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 너무 기복적이고 계산적인 것 아닙니까?"라고 말합니다. 하, 그분은 나의 하나님이시고, 저는 그분에게서 좋은 것을 얻습니다. 이게 무슨 문제입니까?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분께 아무것도 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기쁘고 즐겁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 하나님께서도 제가 그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좋은 것을 누구에게 줄까? 아, 저 사람이 참 좋구나, 저 사람에게 주자'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저는 바로 그런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세 번째는, 내 운명은 내 손에 있지 않으며, 나는 재앙이 어느 날에 닥칠지 통제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우리 중에 반신불수가 되신 분들, 여러분이 그것을 통제할 수 있었습니까? 통제할 수 없다면 통제하려 들지 마십시오. 사람이 죽는 것? 통제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를 종합해 보면,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찾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평생 어떤 좋은 것에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제가 이 결론을 어떻게 얻었는지 아십니까? 벽에 부딪혀 봐야 압니다. 제 머리가 벽보다 단단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벽에 부딪혀 코가 깨지고 얼굴에 멍이 들고 나서야 결국 제 자신감이 완전히 깨져버렸습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자신감'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완전히 다른 두 종류의 믿음입니다. 하나는 자신을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나중에 저는 믿음이라는 것이 매우 신기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는 힘이 나지만, 자신을 의지할 때는 문제가 생깁니다. 아직 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하셨다면,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 참 똑똑하시네요"라고 말하는데, 그 생각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제가 대단하다고 한다면, 네, 저는 정말 대단합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저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한 사람을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목사님, 또 자기 자신을 말하려는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다윗을 본받으십시오. 다윗은 저와 같고, 저 역시 그를 본받은 것입니다.

만약 스스로가 아직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자신이 아직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주님을 믿는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자신이 정말로 안 된다는 것을 깨닫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왜 제가 하나님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까? 제게 다른 선택지가 있습니까? 여러분, 제게 다른 선택지가 있겠습니까? 아, 나중에 저는 주님을 믿는 것이 정말 좋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절대로 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믿기 때문에 대단한 것입니다.

사람이 왜 주님을 믿으러 올까요? 자신에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걸을 때마다 반신불수의 모습으로 절뚝거리고, 다리도 펴지 못하며, 팔도 안 되고, 무릎도 안 됩니다. 골반도 안 좋아지고, 뇌도 안 좋아지고, 심장도 안 좋아지고, 간도, 신장도, 담낭도 안 좋아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한 사람에게 이 모든 것이 다 안 좋아졌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면 끝장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왜 주님을 믿으러 오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대단해, 난 주님 안 믿어, 난 무신론자야" 한다면, 어디 계속 벽에 부딪혀 보십시오. 실컷 부딪히고 나면 자신이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의지하겠다면 의지해 보십시오. 행운을 빕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자신이 좀 안 된다 싶어서 "나 불면증에 걸렸으니 사명 신학을 찾아가야겠다"고 합니다. 그러다 결국 불면증이 나으면 "바이바이" 하고 떠나버립니다.

그럼 나중에 또 불면증에 걸리고 기억상실증까지 걸리면 어쩌겠습니까? 불면증은 차라리 낫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리면 자기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됩니다. 그러면 큰일 나는 것 아닙니까? 환경이 좋아지면 끝장입니다. 또 자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참 기이한 일입니다. 특히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일수록 늘 자기가 꽤 대단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의 대단한 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가 십 대 시절에 쓴 시를 예순 살 된 우리가 읽어도 여전히 깊은 감동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십 대 어린아이가 참으로 대단합니다. 사실 그가 그렇게 대단했던 것은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대단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골리앗은 몸무게가 300킬로그램이 넘었고, 아마 그 이상, 대략 1톤 가까이 되었을 것입니다. 겨우 60~70킬로그램 정도 되는 다윗이 1톤이나 되는 골리앗을 쳐부순 것입니다.

다윗은 십 대 소년이었고, 이 시를 쓸 때는 대략 열일곱 살, 그러니까 아직 대학 입시도 치르지 않을 나이였습니다. 그가 뭐라고 말합니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로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너희는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34:1-10)

이것은 다윗이 광야의 버려진 동굴에서 쓴 시입니다. 저는 이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 봅니다. 피난길에 방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왔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겪었을까요? 제가 이야기를 좀 들려드릴 테니, 좀 부족하더라도 격려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싸움을 아주 잘했습니다. 혼자서 블레셋 사람 200명을 죽일 수 있었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 결과 나중에 왕의 사위가 되었고, 왕의 아들 요나단과도 절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마음이 좁아서 항상 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말 한마디를 듣고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부를 게 없어서 하필 그런 노래를 부릅니까. 다윗은 "부르지 마세요, 부르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안 통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사울은 그 소리를 듣고 속이 뒤집어졌습니다. "네가 만만을 죽였다고? 이 맹랑한 놈, 내 너 하나를 죽여버리겠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결국 다윗은 사울에게서 목숨을 걸고 도망쳤습니다.

사울은 그를 기필코 죽이려 했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인가?" 다윗은 어리둥절했습니다. "내가 뭘 했다고? 길거리에서 여인들이 '다윗,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고 몇 마디 외쳤다고 나를 죽이려 하다니." 사실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합니다. 당신은 정말로 그 골리앗을 당해내지 못했으니까요. 그 골리앗을 내가 대신 없애주지 않았습니까? 다윗은 여전히 의아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급박해지자 다윗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쳤습니다. 정말 땀이 비 오듯 쏟아질 정도로 지쳤습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다윗은 제사장이 있는 곳으로 도망쳐서 골리앗의 칼을 챙겨 들고 계속 도망쳤습니다. 도망치다 보니 머릿속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열일곱 살 아이인데, 생각해 보십시오. 요즘 열일곱 살 아이들이 뭘 알겠습니까? 너무 힘들고 긴장한 나머지 정신이 혼미해진 것입니다. 어디로 도망쳤을까요?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가버렸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에 대해 아주 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 이 사람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그 다윗 아니야?"

"이 사람 우리 거인 골리앗을 죽인 그 다윗 아니야? 복수할 때가 왔다. 아기스 왕에게 알리자." 참으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보십시오, 다윗은 허리에 여전히 골리앗의 칼을 차고 있었습니다.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격입니다. 결국 사람들이 다윗을 아기스 왕에게 끌고 갔습니다. 아기스 왕이 말했습니다. "그를 죽여라, 이자가 바로 그 다윗이다." 다윗이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정말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그때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필 도망쳐도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도망치다니요. 얼마 전에 골리앗을 죽이고, 블레셋 사람 200명을 죽인 뒤 그들의 양피(포피)를 베어왔습니다. 이 양피는 양의 가죽이 아니라 생식기의 가죽입니다. 이 일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그 200명의 군사들 중에는 양피만 잃은 게 아니라 다윗에게 목숨을 잃은 자들도 있었으니, 그 집안의 아내와 자식들이 다윗을 얼마나 증오했겠습니까?

이곳에서 다윗은 속으로 '끝났다, 끝났다,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끝장난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너무나도 뼈저린 느낌이었습니다. '끝났다, 이번엔 내 목숨이 끝났구나. 내가 여길 왜 왔을까? 내 머리가 어떻게 됐지,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후회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가 이곳으로 도망쳐 온 것은 잘못된 것 아니겠습니까? 사울도 그를 죽이려 하고, 블레셋 사람들도 그를 죽이려 합니다.

그런데 그가 미친 체를 하자,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사실 아기스 왕이 그때 머리가 좀 복잡했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을 일단 감옥에 가두고, 내 머리가 맑아지면 처리하자'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아기스 왕의 머리를 멍하게 만드셨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미치광이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썩 물러가라! 미친놈을 데려와서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다윗을 쫓아내 버렸습니다. 다윗은 성문을 나서자마자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내달렸습니다. "오 하나님,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로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나중에 아기스 왕은 실제로 다윗을 거두어 주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다 하나님의 신비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으며, 오직 영원한 이익만 있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실 이 말도 맞지 않습니다. 진짜 맞는 말은 무엇일까요? 세상에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으며, 세상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다스리시며, 아기스 왕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천군천사를 보내사 내 사방에 진을 치고 나를 보호하시며 건지시니, 다윗은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아이들이 길을 갈 때 깡충깡충 뛰며 달리는 것을 아십니까? 영어로는 'gallop'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펄쩍펄쩍 뛰면서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목숨을 건졌습니다!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렇게 목숨을 건져 도망쳐 온 곳이 바로 아둘람 굴이었습니다. 와서 보니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여기는 편의시설도 없고, 주택 단지도 없구나.'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곤 그저 동굴 하나뿐이었습니다.

어디 가서 뭘 좀 먹을까? 하이난 치킨라이스를 먹을까, 하이디라오 훠궈를 먹을까? 동굴 안에서 건져 먹어봤자 뭘 건질 수 있겠습니까? 냉장고도 없고, 생수 한 모금 마시려 해도, 시원한 물 한 잔, 코카콜라 한 캔도 없습니다. '내가 여기 뭐 하러 왔나?' 만약 그가 산시(陕西) 사람이었다면 로우지아모(고기빵)도 없고 뱡뱡면도 없었을 것입니다. 뱡뱡면은커녕 사실 아기스의 손에 죽을 뻔했는데, 다행히 여호와 하나님께서 건져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기스 왕의 손에서 건져내실 수 있다면, 골리앗의 손에서 건져내실 수 있다면, 사울의 손에서 건져내실 수 있다면, 이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실 수 있다면, 로우지아모나 뱡뱡면, 하이난 치킨라이스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편의시설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광야 한가운데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나를 위해 길을 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놀라운 분이십니다.

나중에 다윗은 동굴 속에서 이 시편 34편을 썼습니다. 여러분은 이 동굴 안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직 하나님의 임재만 있으면 됩니다. "아, 내가 비록 새도 똥을 싸지 않는 척박한 곳, 아니면 새똥밖에 없는 곳으로 도망쳐 왔을지라도 나는 상관없다. 나는 나의 하나님을 찾을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에 이르러 바비큐도 없고 꼬치구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여러분은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이 바라본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자의 손에서 건지시고 사울의 손에서 건지셨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이 황량한 곳에 있을지라도 나는 여전히 나의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여전히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저는 이 다윗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이랬을 것입니다. "이게 무슨 몹쓸 곳이야? 하나님, 뭔가 착오가 있으신 거 아닙니까? 하나님, 실수하신 거 아니에요?" 하나님이 실수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어디 가셨습니까? 왜 이런 일이 내게 닥치게 하셨습니까?" 당신이 도대체 뭐길래 그렇습니까? 자신이 그렇게 완벽하다고 생각합니까? 지혜로운 사람의 입에서는 악한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의 입에서 악한 말이 나오는 순간, 악한 말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말인데,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끝장입니다.

입으로 믿지 않는 말을 뱉으면 끝장이라는 이 말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런 식으로 자신을 망칩니다. 예를 들어 제가 기도를 해줄 때, 그는 기도해 주는 목사가 큰 기름부음과 능력이 있어서 손을 얹으면 '팍' 쓰러지고,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을 느끼며 넘어져서 병이 순식간에 낫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금방 낫지 않으면 묻기 시작합니다. "왜 이렇게 더디죠? 왜 아직도 안 낫는 거죠?" 이 말을 들어보십시오. 나중에 제가 하나의 법칙을 발견했는데, 사람의 입이 사람을 유독 심하게 망친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면서 "어떻습니까?" 하고 물으면 "그대로예요, 여전히 아파요, 아직도 아파요. 왜 이렇게 오래 걸려도 안 낫죠?" 합니다. 제가 그를 위해 한 시간 동안 기도해 주었는데, 그 사람의 "왜 아직도 안 낫죠?"라는 한 마디에 끝납니다. 그 한 시간이 0으로 리셋되어 버립니다. "왜 아직도 안 낫죠?"라는 말이 리셋 버튼을 누른 것입니다. 한 시간이 허사가 되었습니다. 정말 꿀밤이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습니다. 이 입술이 문제인 것입니다.

제가 또 한 시간을 기도해 주었는데, 또 "왜 아직도 안 낫죠?"라고 합니다. 두 시간이 허사가 되었고, 0으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세 시간을 기도해 주었는데 "왜 아직도 안 낫죠?" 하길래 제가 말했습니다. "제발 부탁인데, 그런 귀신 같은 소리 좀 안 하면 안 됩니까?" 끝났습니다. 세 시간이 허사가 되었습니다. 제 소중한 세 시간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도 풀이 죽어 돌아가는데, 도대체 뭘 바라고 그러는 것입니까? 사람의 이 입술은 너무나도 사악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하며, 자신이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자신이 매우 보잘것없는 존재이며, 하나님과 흥정할 방법도, 자격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야말로 스스로 화를 부르는 자입니다.

우리는 다윗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그는 동굴로 도망쳐서 이제 아무런 소망이 없게 되었습니다. 유일한 소망은 오직 "항상 나의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를 찬양하는 말이 항상 내 입에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이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저는 그에게서 배웠다고 말씀드립니다. 저는 일하면서 교회를 개척했고, 돈을 내고 힘을 쏟으며 단 하루도 쉬지 않았습니다. 주중에 바쁘게 일하고 주말에는 모임을 인도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사역하다가 결국 직장을 잃고 실직하게 되었습니다.

오 하나님, 정말 뼈저리게 고통스러웠고 속이 타들어 갈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왜일까요? 주택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데, 수입이 없는데도 대출금을 갚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싱가포르는 올해에 작년 치 세금을 냅니다. 올해 수입이 없어도 작년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다윗을 떠올렸습니다. 다윗이 뭐라고 했습니까? 혀를 지켜 악한 말을 하지 말며, 즉 불신의 말을 하지 말고,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장담하건대, 저를 때려죽인다 해도 저는 "하나님, 제가 돈도 내고 힘도 쏟았는데 왜 저를 이렇게 대하십니까?"라는 말은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를 그렇게 대하신들 어떻습니까? 문제가 됩니까? 아무 문제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대하시든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털끝만큼의 잘못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처지에 놓이든 우리의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다윗이 무엇을 통회했겠습니까? 사실 딱히 통회할 만한 것이 없지 않습니까? 다윗이 슬퍼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슬프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왕궁에 있을 때는 얼마나 좋았습니까? 아마 변기도 금으로 되어 있었을지 모릅니다. 물론 그 시대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겠지만요. 아둘람 굴에 오니 볼일 보기는 참 편했습니다. 가릴 것도 없이 그냥 보면 되니까요.

그러므로 사람이 일평생 살아가면서 반드시 이런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환경이 어떠하든 내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태도입니다. "내가 그분을 찾되 아직 충분히 찾지 못했고, 아직 하나님을 충분히 알지 못하지만,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며, 나의 복이 주 밖에 없나이다."

그리하여 다윗은 시를 써서 그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머릿속으로 온통 그때 어떻게 아기스의 손에서 벗어났는지만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당신이 나를 아기스의 손에서 건져내실 수 있었다면, 그 어떤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수 있습니다. 내 평생에 원수가 내 앞에 능히 서지 못하리니,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모든 것이시며, 내가 평생 주께 피하리이다. 주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어디서요? 아둘람 굴에 있는 것이 복이란 말입니까? 그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런 말을 하지 않으면 더 낙심하게 됩니다.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속에서 힘이 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사람들은 종종 그 못된 입을 놀립니다. '푼돈짜리 주전자처럼 주둥이만 살았다'는 말이 있는데, 입조차 제대로 건사하지 못합니다. 다윗은 머릿속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만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골리앗을 죽이게 하셨고, 전쟁터를 누비며 보호해 주셨고, 아기스 왕의 손에서 도망치게 하셨다면, 내가 아둘람 굴에 있을지라도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해 주실 것이다.'

형제자매 여러분, 감히 이렇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인격과 성품이 형성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굳건한 성품을 가질 수 없습니다. 훌륭한 성품을 가진 사람은 다윗과 같은 사람이며, 그에게는 반드시 미래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미래는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품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미래는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믿음 속에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젊은이들을 보면 사실 적지 않은 나이인 서른 살 안팎인데도, 무슨 일을 하든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몸 쓰는 일을 하자니 힘이 없고, 기술적인 일을 하자니 학습 능력이 없으면서도, 여전히 자기 자신을 꽤나 의지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정말로 미래가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매우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제가 한 일 중 용두사미로 끝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경영한 프로젝트들은 모두 매우 훌륭하게 잘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고난에서 건져내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한 말입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다윗은 이때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저는 그가 분명 《창세기》를 읽었을 것이라 믿으며, 요셉의 이야기를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요셉은 열일곱 살에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 갔지만, 나중에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아, 나도 열일곱 살이구나. 나도 열일곱 살에 사울에게 쫓기고 아기스 왕의 손에 죽을 뻔했구나. 큰 재앙에서 살아남았으니 반드시 큰 복이 있을 것이다. 나도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이 항상 내 입에 있을 것이며, 악인의 말은 결코 내 입에서 나오지 않게 할 것이다."

이어지는 믿음은 다윗으로 하여금 아둘람 굴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도록 격려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나 혼자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데 저쪽에서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다윗, 우리가 당신과 함께 일하러 왔소." "무슨 일을 한단 말이오? 내겐 아무런 자원도 없소." "우리에게는 인적 자원이 있소. 다윗, 당신이 우리의 인사 총괄이 되어 주시오." 며칠 지나 또 몇 사람이 오고, 또 몇 사람이 왔습니다. 빚진 자, 환난당한 자, 방화범, 지명수배자 등 온갖 사연을 가진 자들과 아내에게 쫓겨난 자들까지 모여들었습니다.

그 결과 아둘람 굴에서 사람들을 모아 군대를 이루었는데 600명이나 되었습니다. 600명을 거느리는 게 쉬운 일인 줄 아십니까? 혼자 먹으면 온 가족이 배부르지만, 600명이 먹어야 온 가족이 배부릅니다. 600명이 한 사람당 1근씩만 먹어도 하루에 600근인데, 그 많은 양식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하물며 1근으로 끝나지도 않았을 텐데요.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공급자이시다. 하나님은 나의 공급자이시며 나의 모든 것이시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양식이 끊어지는 이 환난에서 나를 건져주실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가 왜 궤사한 말을 하지 않았는지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 보세요,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로 하나님과 논쟁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사울이 왜 나를 죽이려 합니까? 고소하겠습니다." 무엇을 고소하겠습니까? 누구를 고소하겠습니까? 당신의 사건을 처리해 줄 법정조차 없는데 말입니다. 이어서 《시편》 34편 말씀을 읽겠습니다.

본문 말씀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찬양하는 말이 항상 내 입에 있으리로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듣고 기뻐하리로다 너희는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무릇 그를 앙망하는 자는 광채가 있고 그들의 얼굴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주의 은혜의 맛을 보아 그가 선하심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의 성도들아 너희는 그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34:1-10)

평생 어떤 좋은 것에도 부족함이 없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다 함께 저를 따라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에게 다윗을 본받는 마음을 주시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의 그 믿음을 본받게 하옵소서. 환난 중에도 여전히 주의 이름을 선포하며 여전히 주를 찬양하게 하옵소서. 주의 이름이 광대하시니 우리가 함께 주의 이름을 높입니다. 이제 우리가 주를 찾습니다. 우리 마음에 비록 많은 의문과 혼란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오직 주님만을 찾고자 합니다. 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을 주시고, 이러한 성품을 주시며, 다윗이 받았던 그 기름부음을 우리에게도 부어 주옵소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생각을 지키고 우리의 입술을 제어하게 하옵소서. 오직 우리의 하나님만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영원토록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반드시 우리 삶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찾을 때, 어떤 형편에 처해 있든지 주께서 우리를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실 것입니다. 하나님, 주님은 우리의 공급자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기르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시며,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피난처이시며,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모든 것이십니다. 하나님, 내가 평생토록 주님만을 굳게 따르며 끊임없이 주를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주의 은혜와 복이 우리에게 넘치도록 임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평생에 주 밖에는 아무런 복이 없게 하옵소서. 평생토록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배경

"목사님, 방금 말씀하신 그 수많은 배경 이야기는 이미 다 들었습니다"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제 설교를 들어보시면 매우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하게 될 텐데, 제 설교에는 반복되는 내용이 비교적 많다는 것입니다. 이 반복의 유익이 어디에 있을까요? 반복되는 말은 모두 중요한 말이기 때문에 잊어버리지 않도록 다시 한번 반복하는 것입니다. 다윗, 아기스, 사울, 가드 왕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으니 사실 참 좋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이런 결론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사람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며 세심한 실제 경험을 거치고 나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기스 왕의 사건을 통해 어떤 결론을 얻었습니까? 불가능한 일이 가능한 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원래는 제 발로 그물에 걸려 들어갔다가, 나중에는 제 발로 그물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걸어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이끌고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다루시고자 하면 얼마나 대단하신지 모릅니다. 아기스 왕의 머리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지 않습니까? 아기스 왕의 머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안에서는 구슬 하나에 불과하여, 돌리고 싶은 대로 돌리실 수 있습니다. 다윗이 도출해 낸 이 결론은 실로 대단한 것이며, 환난 가운데서 얻어낸 결론입니다. 한 가지 일을 겪으면서 하나의 법칙을 정리해 낸 것입니다. '와, 내게 미래가 있구나! 그렇지 않은가? 내게 미래가 열렸구나. 세상일이란 본래 이런 것이고,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시는구나.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그 모든 고난은 믿음을 실천할 기회이기 때문이구나.'

형제자매 여러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작은 고난에서 큰 고난까지, 작은 문제에서 큰 문제까지 겪게 됩니다. 그렇다면 의인에게 왜 고난이 많아야 할까요? 이해가 되십니까? 의인은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작은 시험을 주십니다. 그가 믿음을 가지면 승리하게 되고, 하나님은 그에게 조금 더 큰 시험을 주시며, 그는 또 믿음을 갖고 승리하여 더 큰 은혜를 얻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성장하는 믿음이었고, 끊임없이 자라나는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이르러 기근을 만났을 때, "아니, 왜 또 기근이야?"라고 불평했을까요? 아브라함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람이 사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믿음이 보배이며, 믿음이 미래를 창조할 수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을 겪었을 때 믿음의 신비를 깨달아 정리할 수 있습니까?

어떤 일을 겪은 후, 여호와께서 우리를 모든 고난에서 건지신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까? 물론 고난 중에는 죄를 지어 당하는 고난도 있는데, 그것은 아무런 영광도 되지 않습니다. 어떤 고난은 믿음을 훈련하기 위한 고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난을 겪고 나면 믿음을 버리는데, 그는 자신의 고난을 그저 고난으로만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습니다.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고난 속에서 믿음을 훈련하고 하나님을 의지했으며, 심지어 영적으로 깊이 통회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다윗이 내린 이 결론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결론을 내려야만 미래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믿음이 미래를 창조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자녀를 볼 때 속이 터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일까요? 그 아이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라나는 과정에서 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없는데 어디서 성품이 나오겠습니까? 성품이 없는데 어디서 끈기가 나오겠습니까? 끈기가 없는데 어떻게 일을 성사시키겠습니까? 여러분, 다윗은 겨우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누가 그에게 이런 것을 가르쳤겠습니까? 이것은 타고난 운명이 아니라, 믿음의 훈련을 통해 형성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내 아들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결정할 수 없고, 내 아버지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도 결정할 수 없지만, 나 자신이 믿음의 사람이 될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의인에게 왜 고난이 많은지 기억하십시오. 의인은 믿음의 훈련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만났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슨 공로를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순수한 도움을 얻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필수 요건(절대적 필요)입니다. 이런 일을 겪을 때 절대적인 필요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저의 절대적인 필요는 사울 왕에게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를 지켜주옵소서." 정말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기도했습니다. 이러한 실제적인 과정 속에서 고난은 믿음에 대한 절대적인 필요를 창조해 냅니다.

이런 일을 겪는 것이 합리적입니까? 비합리적입니다. 비합리적이라 해도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제가 신경 쓰는 것은 이 일을 통해 내 믿음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일단 믿음이 훈련되고 나면, '오 하나님, 나의 하나님은 정말 최고이십니다!' 하게 됩니다. 제가 실직했던 그 해에, 미래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해 마음이 극심하게 고통스럽고 매우 힘들었습니다. 돈은 곧 바닥날 것 같고, 대출금은 갚지 못해 집이 경매에 넘어갈 판이었으니 참으로 처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1년 뒤에 저는 제가 재정적 자유를 누리는 사람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세입자를 보내주셔서 제 집을 임대하게 하셨는데, 그것도 아주 높은 가격으로, 이웃집보다 50%나 더 비싸게 세를 놓게 하셨습니다. 이웃집은 4천 달러도 받지 못하는데, 우리 집은 5천 몇백 달러, 거의 6천 달러에 세를 놓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묻겠지만,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일이 그렇게 풀렸습니다. 너무나도 신기하게 저의 재정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었습니다. 임대할 수 있는 공간이 다 임대되었으니 무슨 문제가 더 있겠습니까? 그 임대 수입이 제 월급과 비슷했으니, 그것이 재정적 자유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 일을 겪고 나니 하나님을 향한 엄청난 믿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 믿음은 정말 다윗이 고백한 것과 같았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찬양하는 말이 항상 내 입에 있으리로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듣고 기뻐하리로다 너희는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여러분이 이 말을 깨달으셨다면 축하드립니다. 이 말씀대로 행하십시오.

다윗은 바로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둘람 굴로 피신하여 굴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동굴에 사람이 모여들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찾아오자 다윗이 그들을 보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왔군요. 여러분과 나는 마땅히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분의 이름을 높입시다." 그들이 높이든 말든 상관없이, 다윗은 반드시 그분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니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는 것은 모든 문제의 근본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이 땅은 누가 다스립니까? 마귀가 다스립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도 다스리십니다. 마귀가 다스립니까, 하나님이 다스립니까?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도대체 누가 다스린다는 말입니까? 사실은 여전히 하나님이 다스리시며, 하나님께서 인간의 나라를 다스리십니다.

이 일은 사실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다니엘 시대에 다니엘이 바빌론의 총리로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 왕을 마음대로 다루셨습니다. 바빌론 제국도 참으로 대단했지만, 하나님께서 바빌론 왕을 다루시는 것은 구슬 하나를 가지고 노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다니엘서의 주제는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나라를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흥망성쇠와 세우고 폐하심이 모두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이런 믿음이 없다면, 마귀가 이 일에서 더 크다고 생각하게 되어 완전히 잘못 짚게 됩니다. 하나님이 마귀와 대적하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마귀와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에서 종종 말씀하십니다. "이 작은 귀신아, 가서 저 사람 좀 흔들어라. 꼬리가 길어졌으니 좀 잘라버려야겠다. 우쭐해하고 있구나."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우쭐대겠습니까? 여호와는 광대하십니다. 이것이 근본입니다. 우리는 항상 그분의 이름을 높이고, 그분의 행하심을 인정하고 구하며 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핵심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평생 하나님과 다투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저는 아주 잘 정리해 두었습니다. 제 권면을 들으신다면, 하나님과 다투지 마시고 하나님께 "왜 그렇습니까?"라고 따져 묻지 마십시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신다는데 여러분이 무슨 상관입니까? 이 모든 것을 그분이 지으셨는데 그분이 어떻게 하시든 무슨 자격으로 따지며 무슨 자격으로 묻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의 권리만 있을 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좋은 것을 구하는 것이며, 그분 안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분을 찾는 자는 어떤 좋은 것에도 부족함이 없으니, 그분의 행사를 온전히 알아가십시오.

그가 나를 모든 두려움에서 건지셨도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시편》 34:4)

두려움이라는 것은 참으로 기이합니다. 우리 중에도 공포증을 앓았던 분들이 있습니다. 초기에 교회가 아직 영적 승리를 온전히 거두지 못했을 때도 공포증을 치료하는 데는 꽤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지금 비록 교회를 떠났고 살도 포동포동하게 올랐지만, 당시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반 친구가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의심하며 매일 극심한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 두려움의 느낌은 너무나도 생생했습니다.

공포증은 귀신입니다. 결과가 어찌 되었을까요? 제가 그의 공포증을 쫓아내 주었는데, 나중에 그 사람도 저를 쫓아내 버렸습니다. 제가 그를 내보낸 것이 아니라 그가 저를 차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 누구를 찼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사람을 두려움에서 건져내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가운데 공포증이 치유된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공포증이 나은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떠나갔고, 어떤 이들은 계속 주님을 찾아 나아가며 더 많은 유익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미래를 두려워하고, 살아가는 이 사소한 일들을 두려워합니다. 만약 살아가는 이 모든 일이 온전히 하나님의 손안에 있고, 여호와께서 광대하시며, 이 땅의 모든 일을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인간의 나라를 통치하신다면,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두려움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런 감정은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쳐부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면 그런 두려움의 감정은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온종일 먹고 마시고 노는 것만 찾는 사람은 두려움이 닥쳐올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찾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으며, 하나님을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유익은 그분이 우리를 두려움에서 건져내신다는 것입니다. 싱가포르에는 'Kiasi'라는 단어가 있는데, 복건어로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면 사람이 늘 두려움 속에 사는데, 그렇게 해서 잘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두려움에서 건지십니다. 아기스 왕이 다윗을 죽이려 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까?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통제하실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은 통제하실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탈출한 후에야 비로소 "그가 나를 모든 두려움에서 건지셨도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복을 여러분은 원치 않으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며 수억 개의 은하계를 다스리시는 분 같습니다. 우리는 천문학을 잘 몰라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없지만, 은하계 하나만 해도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크신 하나님께서 우리 몸에 일어나는 이 작은 일들을 다스리실 수 없겠습니까?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다스리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마음에 두려움이 있고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이제 하나님을 힘써 알아가기를 시작하십시오. 지각(이해력) 안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충분한 믿음을 가지면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두려워하고 두려움의 영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그분은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를 어떤 환난에서 건지셨습니까? 5절부터 8절까지 보겠습니다.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34:5-8)

이 말씀이 얼마나 좋습니까! 내가 주를 앙망하니 내 얼굴에 광채가 납니다. 주를 앙망하면 얼굴에 빛이 나지만, 주를 앙망하지 않으면 쓴 오이처럼 얼굴을 잔뜩 찌푸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를 바라보면 광채가 나고 그들의 얼굴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보십시오. 그리고 곤고한 중에 내가 부르짖으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나를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 말씀을 반드시 마음속 깊이 새겨들으십시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역사하십니다. 나중에 중화권 신학에서 한 가지 신비를 발견했는데, 왜 많은 곳에서 기도가 역사하지 않을까요? 제가 자랑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이 주제를 깊이 연구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교회를 세웠기 때문인데, 거기서 무엇을 부르짖겠습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건축되지도 않은 교회를 세워놓고 부르짖어 보십시오. 목이 터져라 외쳐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울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성전을 지을 때는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지어야 하고, 성막을 지을 때는 하나님의 식양대로 지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고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면 기도는 반드시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곳에서 부르짖고, 그곳에서 주를 알아가기를 힘쓰며, 주를 앙망하고, 마음속으로 여호와가 광대하심을 알며, 그분이 인간의 나라를 다스리심을 알 때, 우리는 그분이 우리를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실 것임을 알게 되고, 결국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비록 제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왔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물론 저는 다윗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를 경외하고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시편》 34:9-14)

이 말씀이 이렇게 명백한데 제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이때 다윗은 이미 한 무리의 무리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열일곱 살 소년이 서른 살, 마흔 살, 쉰 살 된 사람들을 이끌며 뭐라고 말합니까? "너희 자녀들아(아이들아)." 열일곱 살 소년이 스승 노릇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참으로 그럴 자격이 있었습니다. 왜일까요? 그들 중 누가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었습니까? 아무도 골리앗을 쓰러뜨리지 못했지만 다윗은 쓰러뜨렸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다윗은 매일 아둘람 굴에서 그들을 데리고 무술을 연마하고 훈련을 시켰습니다. 제식훈련을 시키고, 매일 아침 일어나면 아침 체조를 하고, 저녁 체조를 하고, 체조 전에는 훈시와 훈련을 진행했습니다.

열일곱 살짜리 준수하고 말 잘하는 청년이 말합니다. "너희 무리들아, 다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를 너희에게 가르치리라. 너희가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를 누리며 아름다운 복을 받기를 원한다면, 좋은 것을 얻고자 한다면,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내지 말고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지어다." 다윗에게 찾아온 사람들이 어떤 자들이었는지 아십니까? 빚진 자, 마약에 손댄 자, 살인자, 방화범, 쫓기는 자 등 온갖 인간들이 다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늘도 땅도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하고 흉악한 무리였습니다. 그러니 쫓겨 다니지 않았겠습니까? 다윗은 그들을 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열일곱 살 이야기는 양을 치던 일, 사울의 군대에서 군사로 있을 때 골리앗을 죽인 일, 도망치던 일들을 들려주며, 아주 강하신 하나님이 계셔서 그 하나님이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실 수 있음을 그들에게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왜 시를 썼을까요? 사실 이 시들은 그 사람들을 훈련하기 위한 교재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도록 훈련하기 위해 많은 시를 쓴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이 부족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데 어떻게 좋은 것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분을 찾고 그분을 경외하는 자는 어떠합니까? 그분을 경외하는 자는 부족함이 없고,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도를 알아야 하며,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여행이 사람을 자유롭게 할 수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여행이 사람을 자유롭게 합니까? 여행이 무슨 대수입니까? 사실 하나님을 찾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어떤 자매가 공포증이 있어서 기도를 받고 두려움이 많이 좋아졌는데, 여행을 한 번 다녀오더니 두려움이 다시 도졌습니다. 저는 이 사람이 왜 스스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지 안타까웠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여러분은 환난을 겪어서 마음이 상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십니다. "아, 내가 수년 동안 내 자신에게 빚을 졌구나. 아, 지난 50년 동안 내 자신에게 너무나 큰 손해를 입혔구나." 왜일까요? "여호와께서 광대하심을 알지 못했고, 그분이 나를 두려움에서 건지실 줄도 몰랐으며,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실 줄도 몰랐고, 그분을 경외하지도 찾지도 않아서 수많은 좋은 것들을 놓쳐버렸구나" 하며 마음이 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신다는 것은 바로 이런 상한 마음을 뜻합니다. 남이 내 돈을 떼먹고 갚지 않아서 속상하고 후회하는 것, "그때 왜 돈을 빌려줬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실망시켜서 상한 마음이 아니라, 과거에 이곳에 이런 좋은 것이 있는 줄 알지 못하여 너무 오랫동안 내 자신에게 손해를 입혀온 것에 대한 상함입니다.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그다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이전에는 우리가 육에 속한 사람이었고 분별없는 사람이었는데, 이제 착한 사람이 되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분을 경외하고 그분을 찾아 여호와 하나님의 좋은 것을 얻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우리 영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수많은 일을 그르쳤고,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는데도,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좋은 것들을 놓쳐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하며, 그분을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언제 찾아야 합니까? 바로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 그때입니다.

고난 가운데 있을 때 비로소 찾을 줄 알게 됩니다. 사람이 잘 먹고 잘살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으며, 할 일 없이 한가할 때 하나님을 찾겠습니까?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코가 깨지고 얼굴에 멍이 들고 나서야 "내가 하나님을 믿어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순간 의인이 됩니다. 의인이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의인입니다. 과거에는 잘못 생각하여 내게 믿음이 없었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바로잡아 의인이 되어 믿음의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앞으로의 날들 동안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손안에서 그분의 은혜를 입고 그분의 보호하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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