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
Q1:以前有纹身,有些面积,需要洗掉吗?因为现在只能用激光洗,会很痛,还是要根据图案来抉择?
我看洗不洗都行,如果你看着它比较闹心,可以洗掉;如果你看着没有什么事情,就开始学习做一个得胜的基督徒,这比洗掉更加重要。洗掉还花钱,不花钱能够整的话就整,但是如果你每次带着都有阴影,那你就给整掉,如果没有阴影,就这样吧,最后还是要在灵里得胜,这更加重要。其实很多问题,都是在我们蒙昧无知的时候做的,不过耶稣基督的宝血照样可以涂抹。
Q2:精神有问题是不是父母犯罪导致的?
其实人很多问题是自己犯罪导致的,只有一小部分是祖先犯罪导致的,精神有问题大多不是生下来就有问题,通常都是后来才有的。生下来精神就有问题,肯定是父母导致的。孩童如果有问题,通常跟父母紧密相关。对于这个问题,是谁导致的,我们千万不要瞎说。然后,每个事情都有自己的背后属灵的原因。
Q3:残疾的人还能服侍神吗?
残疾的人照样可以服侍神。在旧约里,他们把残疾人跟属灵的事情挂在一起,我们今天也是。问题是我们的耶稣已经受死埋葬,第三天从死里复活,胜过了阴间的权势。就算是残疾人,我们的耶稣基督也已经诚然担当了我们的咒诅,担当了我们的忧患。所以,服侍神一点问题也没有。
Q4:老公每年都要回老家祭一下去世的亲人,我该做些什么?
他爱做什么就做什么,你就不要做了。你给他面子,就是不给神面子;你给神面子,就不要给他面子。其实我们的神不太在乎我们去不去整这些,但最后整完以后,我们自己会出事倒霉啊!神却一点也不受影响。祭拜死人,我们就说自己有自己的祭拜方式。你用你的方式祭拜,怎么说都行,这件事情我们大家都可以琢磨一下,要有点智慧。
Q5:广东这边都有习俗在清明节去祭祖,那我们基督徒去还是不去呢?
我觉得你自己做选择,想去就去,不想去就不去。如果去了以后有倒霉的事情发生,你就不要再去了。然后你就跟家里人说:每次我去就倒霉,或者我去了家里不知道谁就会倒霉。有的时候,这些事情你摸索出规律出来,他们还是接受的。我不希望家里有人倒霉,听起来好像还挺顾及他们的。
Q6:老师说的婚姻很属灵这个能理解,但让我不解的是,人如果不结婚,那人怎么往下传宗接代?那神造人的意义在哪里?
我没有说人不能结婚,你想结婚就结婚,不想结婚就不结婚。千万不要以为人都不结婚,有的人不结婚也生了很多孩子。所以,大家不用操心,肯定有人结婚的。
Q7:祭司的女儿辱没了神,现实中作为祭司应该怎么解决处理呢?
这是一个很好的问题,但是你不能把她给烧死,烧死你还要偿命呢。大家要知道,就算你生了孩子,你说了也不算。如果你像那个大莲的爸爸妈妈一样,拿皮鞭子沾凉水抽,结果孩子跳了清水河了,那不是闹心吗?所以,还是算了吧!
Q8:老师,我们家老人不信主,腿痛喝的一种中药,有一个成分是百花蛇,会不会有问题?
人家那么多人喝也没事,那就没事。我没喝过,咱们可以喝一点试试看,如果喝完了以后腿不疼了,那就喝。因为人喝了以后,不管好没好,最后都归到一个地方去了。
其实大家都相信灵界。我们当中的弟兄姐妹要知道,有一些人你一跟他讲耶稣,他说他是无神论,一不跟他讲耶稣,他就有神了,可有意思了。那算命啊,烧纸啊,解个梦啊,这些事老多了。所以说,人都是相信灵界的,大家好好地使用这些资源。其实,我们基督徒要知道灵界是真实的,如果一个基督徒都不知道灵界是真实的,那这基督徒是咋做的呢?
Q9:怎么知道富有的城市不是所多玛?
富有的地方是经济非常发达的地方,也一定是属世界的文化体系非常强盛的地方,所以说我们怎么知道富有的城市不是所多玛?其实,富有的城市都是所多玛。那为什么还去所多玛呢?不管是所多玛还是巴比伦都是属灵的事。
今天基督徒不管是在山上,是在所多玛,还是在撒玛利亚山上,又或者是在耶路撒冷的圣殿敬拜神,今天我们是用我们的心灵和诚实敬拜神,其实你在哪儿并不重要。如果你爱世界,你在很偏僻的乡村也照样爱世界;如果你爱神,在所多玛城里也照样可以爱神,所以这事不太重要,重要的是所多玛的罗得是丧失了命定,大家千万别读错了《圣经》,所多玛城里的罗得是丧失了命定去爱世界了。
Q10:家里亲人过世,作为基督徒的我们可以做些什么,不可挨近死尸,怎么理解?是触碰吗?
其实自己的亲人该处理后事,就去处理。你要守《利未记》的规条话,咱就白信耶稣了,听明白了吗?我们要知道《利未记》讲的是属灵的事,家里的人过世,你不整,谁整啊?整了也没关系,难道耶稣的宝血不能够遮盖吗?能遮盖!大家别把这事整的好像是要守《利未记》的规条,如果你活在《利未记》的规条当中,你要不要守割礼啊?那要做的事多了,要不要守安息日啊?要不要过逾越节啊?献祭怎么献啊?就没法整了!所以,大家要读出神的心意。
Q12:小孩出生身上带有黑色胎记,是属灵的事吗?
这东西我不知道,胎记就是胎记,小孩生下来,就像有些小狗生下来黑毛里带着白色的斑点,有的小狗生下来有白色的毛上带着黑点,大家千万别整到这来,不然就没法活了,理解了吗?咱们要抓住重点!重点是啥?重点就是我们要想居上不居下,神会对我们有一个更高的要求。
Q13:有个人说:我们家孩子4岁前胳膊摔骨折了,现在又摔了胳膊骨折了,胳膊骨折完全断了,手术不知道是怎么回事?是祖宗的咒诅?还是魔鬼攻击我们?
我告诉你所有的问题都跟得胜不得胜有关,咱们弟兄姐妹能不能够开始学习得胜的观念,得胜的观念多重要啊!做基督徒就做一个得胜的基督徒,你看有的人做基督徒以后,识别善恶非常厉害,不知道吃了识别善恶树的果子会死吗?知道为什么还继续吃啊?
我说亚当、夏娃吃了一个,每个人也就咬了一口,就咬出今天的苹果公司来了,你都吃了好几箩筐了,也没咬出苹果公司来,是吧!所以,我想今天吃识别善恶树的果子,一箩筐一箩筐的吃,那不是往死里吃吗?所以要得胜啊!一定要养成得胜的观念。
弟兄姐妹,做基督徒就做一个得胜的基督徒;要做基督徒,就做一个蒙祝福的基督徒;要做基督徒,就做谨守遵行神的话的基督徒。其他的事,比如什么胎记、骨折,这些问题就都迎刃而解了。很多时候问题都是我们自己造成的。
你看有的人给孩子传递的观念全都是要活得严谨,但就在神的话上不严谨,那不要命吗?把活着的这事看透它,争战得胜很多问题会明显的消失,比如说爱面子,爱面子干啥啊?被鬼整吗?有的人就整天想着:钱啊,钱啊。结果钱没赚到,赚到了一大堆的债务;有的人就想活得好,但结果却活不好;有的人说要喜乐,要喜乐,结果却没有喜乐,其实都是整错了。
愿神祝福大家!
성경공부: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다시 여러분과 함께 《레위기》를 공부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제가 《레위기》를 공부하기 전에 기도 가운데 아주 분명한 계시를 받았는데, 바로 《레위기》가 많은 사람에게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레위기》가 도대체 어떻게 사람에게 자유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 이것은 제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난 여러 해 동안 《레위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레위기》가 무엇을 말하려는지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레위기》 21장까지 공부하게 되었으니, 만약 《레위기》 성경공부 교재에 이름을 붙인다면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일은 여러분이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레위기》 성경공부 목록을 보면, 각 장에서 다루는 내용이 모두 거룩함과 죄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레위기》는 누구에게 쓰인 책일까요? 제사장들에게 쓰인 책입니다. 《신명기》는 누구에게 쓰인 책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에게 쓰인 책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레위기》와 《신명기》를 읽을 때 깨닫게 되는 것은, 사실 이 말씀들이 모두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 다섯 권의 책을 모세오경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의 시작은 《창세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실 기독교든 유대교든, 그때는 모두 아브라함의 몸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위에 있고 아래 있지 않은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레위기》와 《신명기》에서 말하는 몇 가지 일은 오늘날 우리가 앓는 질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의 질병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우리의 질병은 모두 거룩하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제가 사역하면서 발견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병에 걸리면 치료하기도 어렵고 기도하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인이 병에 걸리면 오히려 더 쉽게 치유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주셨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알면서도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레위기》 21장을 자세히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기준을 높이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이며, 제사장은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이므로 거룩해야 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사람이므로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앞 장과 비교해 보면, 앞 장에서는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말했지만, 21장에 이르러서는 제사장 자체에 대해 말하기 시작합니다.
제사장은 백성의 어른인즉 자신을 더럽혀 속되게 하지 말지니라. (《레위기》 21:4)
제가 이 장에 이름을 붙인다면, 이 장의 성경공부 주제는 《하나님께서 제사장에게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하신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그렇다면 제사장이 되지 않으면 되겠네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백성 가운데 우두머리가 되고 싶습니까? ‘백성 가운데 우두머리가 된다’고 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함께 모여 누가 큰 자인지 논쟁하다가 얼굴이 벌겋게 되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것은 제가 추측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두고 논쟁했을까요? 누가 더 큰 자인지 논쟁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일할 때 무엇을 두고 다툴까요? 누가 더 높은 월급을 받는지를 두고 다툽니다. “내가 돈을 좀 줄 테니 해결되는 것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가장 낮은 일을 하라고 하면 하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직장에서 매우 진지하게 경쟁하며 얼굴이 벌겋게 될 정도로 다툽니다. 왜 그럴까요? 아무도 아래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아래에 있고 싶습니까? 아래에 머물고 싶습니까? 아래에 있으면 누구나 여러분을 부릴 수 있습니다. “가서 물 한 잔 떠 와!” “가서 내 발 좀 씻겨!” 아이고, 생각만 해도 마음이 괴롭습니다.
왜 하루 종일 직장에서 서로 암투를 벌일까요? 그곳은 수많은 군대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경쟁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위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어떤 때는 자신이 맡은 일자리를 다른 사람이 빼앗을까 봐 두려워하고, 회사에서는 자원을 다른 사람이 빼앗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판매자 중심의 시장이고 자원이 부족할 때는 물건이 잘 팔리지만, 정작 팔 물건이 없습니다. 물건이 인기 있고 잘 팔리는데 여러분이 물건을 확보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물건을 확보했다는 것은 곧 돈을 벌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집을 사려고 할 때 여러분에게 매물이 있습니까? 집이 사방에 넘쳐날 때는 오히려 사람들이 집을 사려고 하지 않습니다. 결국 집을 손에 쥔 채 팔지 못하게 됩니다. 집을 마련하는 것은 쉬워졌지만 고객이 사라지고, 고객이 희소한 자원이 됩니다. 그러면 또 고객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툽니다. 평생 이렇게 빼앗고 또 빼앗습니다. 이것을 빼앗지 않으면 저것을 빼앗습니다. 정말 얼마나 고달픈 삶입니까! 고객이 있으면 물건을 구할 수 없고, 물건이 있으면 고객이 없습니다. 장사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원도 여러분의 손에 있고 고객도 여러분의 손에 있으며 물건도 여러분의 손에 있다면, 여러분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기업 안에서 많은 자원을 여러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그때 여러분의 연봉은 얼마일까요? 연봉이 수백만, 심지어 수천만 위안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깁니다. 여러분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위에 있어야 합니다! 그 일을 해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사람들에게 밟히기 위해 사는 것입니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이 위로 올라가려면 압박이 상당히 큽니다. 그런데 위로 올라가고 싶으면서도 아래로 내려가고 싶지는 않고, 올라가면 압박이 큰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우리가 말한 것처럼 제사장은 백성 가운데 우두머리입니다. 여러분은 위에 있고 아래에는 있지 않기를 원합니까? 원합니다. 그렇다면 기준을 좀 높여도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렇다면 왜 여러분이 위에 있고 다른 사람은 아래에 있어야 합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위에 있고 아래에는 있지 않은 사람이다.” 아래에 있는 것보다 위에 있는 것이 분명히 낫습니다. 아래에 있으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위에서는 요구하는 기준이 너무 높아요!” 기준이 높아도 괜찮습니다. 아래에 있는 것보다 낫기만 하면 됩니다. 아래에 있으면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게 요구하지만, 위에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요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위에 있어도 우리에게 요구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오직 한 가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마음이 무엇입니까? 바로 위에 있고 아래에는 있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루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루저는 모든 백성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모든 백성 아래에 있다면, 이 말을 듣기만 해도 마음이 답답합니다. 얼마나 고생스럽겠습니까? 그러므로 온 세상 모든 백성 위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압박이 크더라도 많은 사람이 우리를 밟고 올라서는 압박보다는 그 압박이 훨씬 작습니다.
여러분은 온 세상 모든 백성 위에 있을 때의 압박이 아래에 있을 때보다 작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 위에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1년 동안 다른 사람이 10년 동안 벌 돈을 번다면 1년 벌고 9년을 쉴 수 있습니다. 1년 동안 다른 사람이 평생 벌 돈을 번다면, 우리가 1년 벌고 아래에서는 평생 돈을 벌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위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아주 건성으로 삽니다. 특히 어떤 루저 목회자들이 전하는 내용은 듣기에 매우 이상합니다. “나는 위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아래에 있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이름을 아주 잘 지은 사람도 있는데, 이름이 ‘거상’입니다. 누가 지어 준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제 설교를 많이 듣고 지은 이름일 것입니다. 위에 있는 것, 곧 위에 있고 아래에는 있지 않는 것입니다. 일본식 이름으로 짓는다면 ‘거상불거하’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결코 아래에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주 밑바닥에서 고생하는 대중의 삶을 경험해 본 적이 있습니까? 80퍼센트의 사람들이 20퍼센트의 자원을 서로 빼앗는 삶입니다. 들어 본 적 있습니까? 세상에서 부유한 20퍼센트의 사람들이 자원의 8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80퍼센트의 사람들이 남은 20퍼센트의 자원을 서로 빼앗습니다.
아이고, 남은 자원이 20퍼센트밖에 없는데도 서로 빼앗고 또 빼앗습니다. 그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모릅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답답합니다. 우리는 이제 고생하는 대중에 속한다고 할 수 없지만, 그런 곳에 가 보면 얼마나 치열한지 알게 될 것입니다. 중국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가난한 산과 척박한 땅에서 못된 백성이 나온다.” 가난하고 척박한 곳에서 나온 사람들이 모두 선한 사람일 것이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곳 사람들은 모두 미친 듯이 서로 빼앗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원이 너무 적고 모두가 굶주리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저는 중국에서 가난한 곳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장쑤·저장, 선전처럼 부유한 곳에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부유한 곳의 사람들은 적어도 그렇게 악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돈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쑤·저장, 상하이, 선전, 광저우, 항저우의 현지 사람들은 대부분 억만장자라서 그렇게 악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많이 말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에 있고 아래에는 있지 않게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원합니까, 원하지 않습니까? 원한다면 요구되는 기준도 높습니다.
어떤 못된 목회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많은 사람이 선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럴까요? 많은 사람이 선생이 되면 더 무거운 심판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양을 목양해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제가 선생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양을 목양하겠습니까? 저는 선생이 되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의 양을 목양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요구하시는 기준은 높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내버려 두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게는 많은 죄의 흔적과 징계의 흔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채찍질하시면 그 흔적은 영원히 남습니다. 저는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건 어떻게 된 일입니까?”라고 물으면, 그것은 죄의 흔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체면을 지킬 필요도 없습니다.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
사흘 동안 매를 맞지 않으면 지붕을 뜯어 고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정직하게 행해야 합니다. 요구되는 기준이 높더라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위에 있고 아래에는 있지 않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저는 아래에 머물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위로 올라가 온 세상 모든 백성 위에 있고 싶습니다. 제사장은 백성 가운데 우두머리이므로 더 무거운 징계와 더 엄격한 요구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좋습니다! 오십시오. 우리 그렇게 합시다.”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 여러분, 높은 기준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백성 가운데 우두머리가 되기를 원한다면 어느 정도 징계를 받는 것은 정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지 않으시면 되겠습니까? 징계하지 않으시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사람들의 헛된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자매가 다른 교회에서 왔기에, 저는 그녀에게 일어나서 섬기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녀는 “그럴 수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왜 그럴 수 없습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제가 전에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많은 사람이 선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더 무거운 심판을 받기 때문이래요”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받게 하시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사실 우리가 더욱 거룩한 삶을 살게 하려고 하십니다. 나중에 저는 온갖 노력을 다해서야 그 사람의 머릿속에 있던 생각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래에 있고 위에 있지 말라는 설교를 하고, 어떤 사람은 위에 있고 아래에 있지 말라는 설교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눈을 똑바로 뜨고 잘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래에 있고 위에 있지 말라는 설교만 전문적으로 합니다. 그 결과 그 설교자는 설교할수록 점점 더 가난해집니다. 어느 정도로 가난해질까요? 저는 가난한 설교자들을 만나면 제 돈을 좀 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줄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도와서는 안 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의 머릿속이 너무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입을 열어 하는 말은 모두 가난한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돈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까? 죽도록 사랑합니다. 돈이 없어서 고생하면서도 매우 영적인 척합니다. 성경공부만 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부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부자가 당신에게 무슨 해를 끼쳤습니까? 저는 한가하게 부자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부유한 사람에게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사실 부유한 사람 가운데는 영적인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 매우 부유하면서도 하나님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짜내어 하나님을 섬깁니다. 어떤 형제는 아침에 한 형제를 한 시간 반 동안 섬겼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 형제가 자기 일도 다 끝내지 못했을 텐데 한 시간 반을 내어 섬겼다는 생각에 마음이 감동되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감동했느냐 하면, 때로는 저도 그의 일을 좀 도와주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도 도울 수가 없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위에 있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래에 있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사장이 평민보다 당연히 낫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우두머리가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제사장이 되기를 갈망하기 시작하라고 격려합니다. 요구되는 기준이 조금 높아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가장 좋은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이 말을 들으면 힘이 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당당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딱!” 하고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물고, 발을 구르면서라도 당당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압박이 어떻고 기준이 어떻든, 요구되는 기준이 높아도 괜찮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어떠하든, 화인명정신학이 말하는 것은 승리의 신학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높은 기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발바닥으로 밟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우리도 올라갑시다! 모두 함께 올라갑시다. 얼마나 힘이 납니까? 듣기만 해도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와, 하늘에 영광의 면류관이 나를 위해 예비되어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충성되고 선한 종이라고 부르실 것입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 성읍을 다스리게 하실 것입니다. 열 회사가 아니라 열 성읍입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다섯 성읍만 주셔도 좋습니다! 세상의 일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면 하늘의 일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전도서》는 세상이 가장 좋은 시험장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시험이라면 우리는 아주 잘 치러야 합니다. 작문을 써야 한다면 좋은 글을 쓰고, 대학입시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며, 변호사가 된다면 훌륭한 변호사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여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수 없겠습니까? 반드시 도우실 수 있습니다.
제사장이 처리할 줄 알아야 하는 몇 가지 일: 죽음, 결혼과 장애
하나님께서 기준을 높이 요구하신다면 우리도 받아들입시다. 제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이 직분이 제게 맡겨졌다면 잘 감당하겠습니다. 마귀와 싸우는 것이라면 크게 한판 싸웁시다. 마귀의 생일이 되면 마귀의 생일 선물을 빼앗아 옵시다. 우리는 모두 양산박의 호걸들인데 마귀를 무엇이라고 두려워하겠습니까? 두려워하지 맙시다.
우리는 제사장이 처리해야 할 몇 가지 일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첫째는 죽은 사람에 관한 일입니다. 죽은 사람 때문에 어떻게 자신을 더럽히게 되는지 아십니까? 죽은 사람에 관한 일은 참 골치 아픕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친한 친구가 죽었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제사장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만지면 자신을 더럽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을 더럽히게 되는 것일까요? 죽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볼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죽은 사람이 매우 영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육체가 죽으면 영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 죽은 육체를 중심으로 죽음의 영들이 가득하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백성 가운데 죽은 사람으로 인해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죽은 사람 주변에 많은 죽음의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기의 골육지친인 부모, 자녀, 형제, 혹은 아직 시집가지 않은 처녀인 자매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죽은 사람이 골육지친이라면 만져도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이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괜찮습니다. 가족이 죽었을 때 죽음의 영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그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제사장은 백성 가운데 우두머리이므로 속된 사람과 같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요구되는 기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습니까? 제사장이 생사조차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설교자가 생사조차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무슨 설교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이 생사 문제를 꿰뚫어 보기만 하면 모든 일이 쉽게 해결됩니다. 꿰뚫어 본 후에는 이렇게 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의 하나님을 섬기고, 더 높은 거룩함의 길을 가겠다.”
중국인의 장례식이 매우 성대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인의 장례식이 성대한 것은 사실 매우 영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현세의 풍속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현세의 풍속 가운데는 매우 중요한 몇 가지 절차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죽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일을 기념하고 축하하기를 좋아합니다.
얼마 전에는 정말 큰일을 일으킨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현세의 풍속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지 백 일이 되자 잔치를 열었는데, 그 자리에서 한 사람이 술에 취해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고 결국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무 이유 없이 그 유가족에게 십만 위안을 배상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현세의 풍속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현세의 풍속을 따르지 말고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마십시오. 수염 가장자리를 깎지 말고, 머리를 대머리처럼 밀지 말며, 칼로 몸을 베어서도 안 됩니다. 이런 일들은 모두 영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칼로 몸을 베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이 일이 문신과 관계가 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자매가 종아리와 발목 사이에 용 한 마리를 문신으로 새겼습니다. 그 후 이 자매는 무슨 일을 하든 매우 운이 나빴습니다. 어느 날 그 자매가 제 맞은편에 앉아 있었고, 그때 그 자매의 어머니도 함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저는 그 자매의 다리에 새겨진 용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용이 입체적으로 변해, 그곳에서 몸을 흔들며 꼬리를 휘두르는 한 마리의 용이 보였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세상에, 이건 귀신을 불러들이는 물건이구나!” 몸에 이런 용을 지니고 있는데 어떻게 평안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칼로 몸을 베는 것이 문신을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이 매우 영적인 문제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둘째는 창녀나 더럽혀진 여자를 아내로 맞아서는 안 되며, 이혼당한 여자도 아내로 맞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결혼은 매우 영적인 일입니다. 왜 이런 여자를 아내로 맞아서는 안 되는지 아십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계산을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제사장에게 요구되는 기준은 원래 높지만, 사람은 육체에 속해 있습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로마서》 7:18)
육체에 속한 것은 통제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결혼하자마자 문제가 생깁니다. 여러분이 조금만 알아보아도 결혼한 남자가 목사가 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위에는 하나님이라는 상사가 있고, 옆에는 또 한 명의 상사가 있으며, 여러 명의 상사가 있는 셈입니다. 아이까지 낳으면 아내도 상사이고 아이도 상사이며 하나님도 상사입니다. 도대체 누구를 섬겨야 할지 알 수 없으니 정말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과 결혼하느냐가 거룩함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모두 영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가 말하는 것이니,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사람에게는 모두 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을 집으로 데려오는 것은 단지 한 여자를 아내로 맞는 것이 아니라, 그 여자에게 있는 많은 악령도 함께 데려오는 것입니다. 그 후 두 사람이 한 몸이 되면 그 영이 여러분을 통제하고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매우 영적인 일입니다.
물론 우리 가운데 있는 자매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영원 가운데 살고 있다면 성별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는 성별의 문제가 없습니다. 사람에게 붙어 있는 악령과 이런 것들이 알 수 없이 여러분에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부부 관계는 매우 친밀한 관계이기 때문에 악령은 결혼을 통해 사람을 해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서른 대에 이르는 조상들과 자신의 육체를 짊어지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아내를 맞았는데, 아내에게도 많은 악령이 붙어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를 들어 창녀에게 많은 저주가 붙어 있는 만큼 많은 악령도 붙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삶을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그러므로 이것은 매우 영적인 일입니다.
육체에 속한 관점으로 보면 이 일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이혼당한 여자를 데려와 영웅처럼 미인을 구해 주겠다고 생각한다면, 결국 많은 악령에게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을 보십시오. 그는 자신이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하여 후궁과 첩을 아주 많이 두었지만, 결국 정말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결혼하고 시집가고 장가드는 일이 매우 영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사장의 딸이 행음하여 자신을 속되게 하면 그의 아버지를 속되게 함이니 그를 불사를지며. (《레위기》 21:9)
최근에 저는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청수하를 찾아서》라는 노래는 한 소녀에 관한 노래입니다. 곱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열여섯 살 소녀가 청춘이 지나가면 젊은 남자를 어디서 찾을까 생각하다가, 결국 젊은 남자를 찾는다는 생각으로 ‘여섯째 오빠’라는 남자를 만들어 냅니다. 열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이런 일을 벌이기 시작했으니, 조금 더 자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중에 부모가 물에 적신 가죽 채찍으로 그녀를 때리려 하자, 그녀는 강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딸을 키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딸의 정욕이 일단 발동하면 통제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청수하에 뛰어들게 됩니다. 이 소녀가 뛰어내리자 여섯째 오빠도 악령에게 지배되어 결국 강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이 이야기가 《청수하를 찾아서》라는 민요로까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딸이 행음하는 배후에는 악령이 있습니다. 불에 태운다니, 얼마나 엄격합니까!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가 매우 엄중합니다! 그렇다면 태우지 않으면 안 됩니까? 이 일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이든 제사장이 아니든, 거룩한 직분을 이어받고 거룩한 옷을 입었다면 한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죽은 사람에 관한 일, 시체로 인해 자신을 더럽히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대제사장에게 요구되는 기준은 더욱 높습니다. 죽은 사람에 관한 일은 안 되고, 자기 부모를 위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법의학자가 되거나 경찰이 되어 날마다 영계와 상대해야 하는데, 이 일은 하기 어렵습니다! 아내를 맞고 자녀를 낳는 일과 죽은 사람에 관한 일은 모두 매우 영적인 일입니다. 자신을 쉽게 망가뜨릴 수 있고, 쉽게 자신을 더럽힐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제사장의 후손 가운데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요? 제사장에게서 태어난 장애인은 가까이 나아올 수 없습니다. 제물은 먹을 수 있지만 제물을 하나님께 드릴 수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앞선 사람들이 자신을 더럽혔고, 그 결과 후손이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가 저지른 일이라고 해도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 왔다면 이 세상의 영적인 일을 알아야 합니다.
장애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장애가 있는 사람을 더욱 불쌍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실 그는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야 더욱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을 더럽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제사 음식은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도 없이 거룩함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우리가 이 거룩함의 길에서 계속 성장하고 계속 위로 올라가기를 원합니다. 계속 위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요구도 끊임없이 높아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욱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 사실 평범한 사람들도 많은 가정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에게 장애가 있으면 조상에게서 더러움이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제사장뿐만 아니라 우리 가운데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영적인 법칙은 똑같이 작동합니다. 주님을 믿지 않고 제사장이 되지 않으면 요구되는 기준도 높지 않아서 오늘은 이것을 하고 내일은 저것을 하며 곳곳에서 더러움에 물들어도 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제사장이 되었다면 온 세상 백성 가운데 우두머리가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두머리가 되지 않으면 되잖아요?” 우두머리가 되지 않아도 좋아지지 않습니다. 죽음의 영은 여전히 그곳에서 활동하고 악령은 여전히 이런 일을 통해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영적인 눈을 뜨면 영계의 실상을 보게 되고, 이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게 됩니다.
결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힘써 추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자
오늘 하나님께는 풍성한 긍휼과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상 거룩한 삶을 살기로 작정합시다. 과거의 일은 예수님의 보혈이 아주 쉽게 지워 주셨습니다. 이것은 좋은 소식이니 우리가 받아들입시다. 한 번에 다 해낼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평생 힘써 추구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서 있는 그 단계에서 위로 올라가고, 또 조금 더 위로 올라가십시오. 계속 올라가기만 한다면 서서히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고생하면서 사는 것도 삶이고, 기쁨으로 사는 것도 삶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악령에게 말합시다. “너는 이미 내 몸 안에서 불법이다.” 이 악령이 어느 세대에서 들어왔든, 오늘 우리 몸 안에서는 모두 불법 거주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것을 쫓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것은 하지 못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오히려 하게 되는 것은 악령이 저지르는 악한 일이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좋은 소식이 아니겠습니까? 악령을 한 걸음씩 제거해 나가면, 우리는 모든 백성 가운데 으뜸이 되고 백성 가운데 위에 있으며 아래에는 있지 않게 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조금 고생해도 괜찮습니다. 육체를 죽이는 일이 조금 힘들어도 괜찮습니다. 조금 덜 먹고 조금 덜 마셔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직분을 감당하기 시작합시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얻고, 많은 사람이 이 땅에서 우리를 통해 복을 받게 합시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됩니다. 이 땅에서 저주 가운데 살고 억압 가운데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우리의 섬김의 대상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셔서 위에 있고 아래에는 있지 않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계속 강해지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악령은 조만간 여러분에게서 쫓겨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이 무너져도 변하지 않을 큰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