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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인가를 먹는다고 하나님처럼 지혜로워질 수 있겠는가?

2023-10-22 4,442 胜过撒但系列 吃什么 一下子 弃绝谎言 发现问题 解决问题 信心是根基

《答疑解惑》

1.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과 새로운 주제로 나누고자 합니다. 이 주제는 정말 좋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최근에 연구한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무엇인가를 먹는다고 하나님처럼 지혜로워질 수 있겠습니까?》라는 제목입니다. 사람들이 종종 제게 묻습니다. “선생님, 어쩜 그렇게 똑똑하세요? 어릴 때 뇌 영양제라도 드셨나요? 아니면 은이라도 드셨나요?” 그것은 중금속이라 먹으면 바보가 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그렇게 똑똑하셨나요?”라고 묻습니다. 그 질문을 들으면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저는 날 때부터 이랬고, 자기는 날 때부터 그렇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오늘 산부인과에 가서 갓 태어난 포동포동한 아기들을 한번 보십시오. 갓 태어난 아이들은 다 똑같습니다. 남자아이도 그렇고, 여자아이도 그렇고, 다 똑같습니다. 그렇다면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글자 하나라도 압니까? ‘사람 인(人)’ 자를 어떻게 쓰냐고 물어보면 압니까?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울 줄만 압니다. 그러다 “맘마 먹자” 하면 나중에 ‘맘마’라는 말을 배우게 됩니다. 저도 태어났을 때는 여러분과 똑같았습니다. 그저 피부가 좀 까매서 사람들이 저를 ‘까망이’라고 불렀는데, 자라면서 점차 하얘졌을 뿐입니다.

저는 어릴 때 웃지 못할 일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첫 시험에서 ‘길 로(路)’ 자를 써야 했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책가방에서 책을 꺼내 베껴 쓰려고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베끼면 안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쓸 줄 몰라요”라고 하니, 선생님은 “쓸 줄 몰라도 베끼면 안 돼, 빈칸으로 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싫어요, 베껴 쓸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이건 시험이야”라고 하셔서, 제가 “시험이 뭔데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멍해졌습니다. 시험이 뭔지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시험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그 후 시험을 볼 때 ‘내가 글자를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들어 낸 글자에는 전부 붉은색 X표가 쳐졌습니다. 왜일까요? 제가 발명한 글자는 전부 저만의 오답(틀린 글자)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선생님께 “저는 왜 글자를 만들면 안 되나요?”라고 묻자 선생님은 당황하셨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 글자를 만들어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실 우리가 태어나서 갖게 된 모든 것은 다 배움을 통해 얻은 것입니다. 살면서 발견한 것은, 내가 창조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틀린 글자만 창조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수학이든, 국어든, 영어든 전부 남에게 배운 것입니다. 저는 ‘다 배우는 것이구나, 참 좋다’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다릅니다. 글자를 발명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더 이상 글자를 만들지 않았고, 시험에서 베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시험의 규칙을 지켰습니다. 살아가면서 깨달은 것은 사람이 사는 것 자체가 배움이라는 사실입니다. 배우지 않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무엇이든 다 배워야 합니다. 그 결과 저는 어릴 때부터 배우다 보니 배움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늘 단번에 배우려고 합니다. 세상에 어떻게 단번에 배우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다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에 올라가고,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단번에 5학년으로 건너뛰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은 신동(神童)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니 신동들은 나중에 발육이 불완전하고 마음과 생각이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8살, 10살짜리 어린 꼬마가 18, 19세 대학생들과 어울리며, 때로는 대변을 보고 뒤처리도 제대로 못 하면서 대학에 다닌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난 세월 동안 저는 실제로 영재반 출신의 직원을 채용한 적이 있는데, 다 자란 후에는 그저 평범했습니다. 대단히 뛰어난 것이 아니라, 어릴 때 갑자기 몇 가지를 일찍 깨우쳤을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늘 단번에 똑똑해지려 하고, 단번에 하나님처럼 되려 하며, 단번에 부유해지려 합니다. 그러다 단번에 되지 않으면 두 번째 시도는 하지 않습니다. 단번에 안 되면 평생 안 되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왜 이렇게 흥분해서 말씀드리는지 아십니까? 사람이 어떻게 똑똑해지는지 연구하려면, 먼저 사람이 어떻게 멍청해지는지부터 연구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멍청해집니까? 늘 ‘단번에’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는 《서유기》처럼 ‘후’ 하고 입김을 한번 불면 짠 하고 나타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저도 어릴 때는 그러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왜 멍청해집니까? 늘 단번에 하려 하고, 단번에 배우지 못하면 아예 배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멍청해지지 않겠습니까? 저 같은 사람은 단번에 안 되면 두 번 하고, 두 번 해서 안 되면 세 번 합니다.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입니다. 어떤 수학 문제 하나를 두 달 동안 붙잡고 틈만 나면 풀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단번에’ 되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나중에 약간의 끈기 있는 성격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어른이 된 후 어릴 적을 떠올리며 ‘그때 내가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제 머릿속에는 ‘단번에’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집에는 책이 없었습니다. 그 시절 꽤 두꺼운 자습서 전집이 있었는데, 신화서점 문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샀습니다. 우리 집은 줄을 서서 살 사람도 없었고 돈도 없었습니다. 책이 꽤 비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빌렸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도 꽤 짓궂어서 오랜 시간 빌려주지 않았습니다. 사실 자기 집에 두어도 읽지도 않으면서 저에게 딱 2주만 빌려주었습니다. 그 2주 동안 어떻게 했을까요? 저는 베껴 썼습니다. 결국 3분의 2를 필사했습니다.

훗날 직장에 다니면서 ‘그 아이 참 흥미롭네’라고 생각했습니다. 단번에 될 수 있습니까? 오늘 여러분에게 수백 쪽짜리 책을 복사기 위에 올려놓고 한 장 한 장 복사하라고 해도 그런 인내심이 없을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틱톡 숏폼 영상을 보면서 30초도 참지 못합니다. 이제는 20초로 바뀌었고, 20초도 못 기다려 10초로 줄어들었습니다. 사람의 인내심이 고작 이 정도입니다. 늘 단번에 되기만을 바라니 사람이 이렇게 멍청해지는 것입니다. 숏폼 영상으로 공부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이미 중학교 3학년 과정을 다 끝냈습니다. 저는 분명 한 장 한 장 읽었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휙 넘기며 보지 않은 것처럼 읽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로 다 읽어냈습니다.

제 안에는 ‘조급함’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제가 교회를 세우는 것을 보시면서 제가 조급해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천천히 하는 것입니다. 왜 그리 조급해합니까? 조급해하면 일을 그르칩니다. 단번에 하려 하다가 단번에 안 되면 그 뒤의 기회는 사라집니다. 기억하십니까? 제가 사람들을 섬길 때, 한 번 기도(안수)해서 안 되면 열 번을 하고, 열 번 해서 안 되면 백 번을 하고, 백 번 해서 안 되면 만 번을 합니다. 이것이 저의 성격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성격이 있다면 반드시 똑똑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번에 좋아진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사람은 조급해지면 실수를 저지르고, 조급해지면 일이 너무 많다고 느끼며, 일이 많다고 느끼면 ‘이걸 언제 다 끝내나?’ 하고 근심합니다. ‘이렇게 두꺼운 책을 언제 다 읽나?’ 하다가 결국 안 읽고 끝납니다. 사실 단번에 다 깨닫는다는 것은 완전히 마귀의 거짓말입니다. 우리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 ‘단번에’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똑똑해졌고, 여러분은 ‘단번에’라는 개념이 있어서 단번에 멍청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똑똑해지기를 원한다면, 먼저 이 근본적인 원인부터 처리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단번에’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하와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아, 이 열매를 먹으면 단번에 하나님처럼 되겠구나.’ 그러나 결과는 하나님처럼 된 것이 아니라 마귀처럼 되었습니다. 열매 하나를 먹는다고 똑똑해질 수 있습니까? 저는 믿지 않습니다. 저는 단번에 어떠한 상태로 변한다는 따위의 말을 결코 믿지 않습니다. 제 안에는 오직 ‘열심히 배우고, 날마다 향상하며, 날마다 조금씩 배운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단번에’는 마귀의 거짓말입니다. 사람이 처음부터 단번에 되는 것을 좋아하면 반드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평생 망가지게 됩니다!

수많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매우 똑똑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단번에 되기를 원했습니다. 진시황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진시황은 서복(徐福)에게 불로초(장생불로약)를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서복은 봉래선도(蓬萊仙島)까지 갔습니다. 사실 서복은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먹으면 죽지 않는 불로초를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진시황은 오늘날의 산둥반도(교동반도)로 동쪽 순행을 떠났는데, 아마도 서복을 찾으러 갔을 것입니다. 서복은 불로초를 찾고, 진시황은 서복을 찾는 논리였습니다. 결국 진시황은 50세에 죽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진시황이 그 불로초를 찾지 않고 성실하게 발을 땅에 딛고 살았다면 70, 80세까지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진시황이 얼마나 똑똑한 사람입니까? 그 시절 넓은 영토에서 기차도 없고 비행기도 없던 때에 전국칠웅을 모두 굴복시키고 중원 대륙을 통일한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도 몇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50세에 죽었습니다. 그는 영원히 50세라는 나이에 박제되었으니 ‘장생불로’하긴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일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가 불로초를 찾지 않았다면 더 오래 살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당연히 그랬을 것입니다.

또 한 명의 흥미로운 인물이 있습니다. 여불위(呂不韋)는 원래 상인이었습니다. 그가 돈을 벌었습니까? 벌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이것이 좋지 않다고 여겨 ‘일본만리(一本萬利: 적은 밑천으로 큰 이익을 봄)’라는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일본만리의 이야기는 《여씨춘추》에 나오며, 여불위는 오늘날 상인들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일본만리가 무엇입니까? 그는 토지 정책을 장악했는데, 오늘날의 매판(정경유착 매개자)과 같습니다. 토지 정책을 쥐고 흔들면 반드시 큰돈을 벌어 일본만리가 됩니다! 결국 그는 정경유착의 논리를 만들어 냈고, 오늘날 정치경제학의 시조가 바로 여불위입니다. 그러나 여불위는 자신이 만든 일본만리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의 집에는 식객이 3천 명이나 있었고 그들에게 많은 급여를 주었는데, 식객들이 각자 조금씩 글을 써서 완성한 책이 《여씨춘추》입니다. 기회가 되면 《여씨춘추》를 한번 읽어보며 식견을 넓히시기 바랍니다.

이 문제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위대한 영도자 모택동 주석도 이것을 없애려 했으나 결국 없애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늘 단번에 되기를 원합니다. 가장 나쁜 것은 무엇인가를 먹고 단번에 하나님처럼 되려는 것입니다. 선악을 분별한다는 말은 우리가 가장 먼저 연구한 것입니다. ‘선악을 분별함’이라는 주제는 우리 화인 사명 신학에서 매우 오래된 주제입니다. 우리는 선악을 분별함에 대한 우리의 발견에 매우 만족하고 있지만, 여러분의 이해가 충분합니까?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요? ‘무엇인가를 먹으면 똑똑해지는가? 무엇인가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지혜로워지는가?’ 이것이 바로 사람을 멍청하게 만드는 근원입니다! 결국 먹었고, 먹고 나서 망했습니다. 이 논리를 가진 자는 누구든 매우 비참해질 것입니다. 바로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하이난항공(HNA)의 회장이 바로 이 길을 걸었는데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매우 처참했습니다!

모든 것은 한 걸음 한 걸음 깨달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오늘 새로운 발견이 있다면 저는 “하나님, 주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제게 또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하셨군요”라고 말합니다. 마치 만한전석을 먹은 것처럼 또 한 번 흥분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정말 너무하십니다. 왜 이렇게 오랫동안 끌다가 이제야 계시해 주십니까? 진작에 이 모든 것을 단번에 알려주셨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단번에 알려주시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조금씩 알려주시는 것이 좋겠습니까? 당연히 조금씩 알려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고 생각이 다릅니다. 제 안에는 ‘단번에’가 없기 때문에 여러 번 시도하길 원하며, 여러 번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을 알아가고, 한 걸음 한 걸음 진리를 알아가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저도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저는 어떤 일을 하든 다 이런 태도를 지닙니다. 조급할 게 무엇입니까? 조급해해 봤자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데 무엇을 바라고 그러겠습니까?

2. 본문 말씀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세기 3:1-7)

3.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주님의 뜻이 어떠한지 알게 하옵소서. 아담과 하와가 그 당시에 어떻게 마귀에게 속았는지 알게 하옵소서. 그들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기 전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했는지를 깊이 깨닫게 하옵소서. 또한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생각을 완전히 제하여 버리게 하셔서, 주님 앞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앞에서 주님의 은혜와 긍휼을 끊임없이 공급받으며, 이 영적인 길에서 주님을 더 많이 알아가기를 끊임없이 추구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이 무지한 어리석음에서 건져주옵소서. 이러한 어리석은 망상에서 건져주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주님의 뜻이 어떠한지 알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본문 배경

중국인들은 참 흥미롭게도 무엇인가를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 이걸 먹으면 머리가 좋아져.” 우리 중에 대학 입시를 치르면서 뇌 영양제를 먹어본 사람이 있습니까? 먹고 똑똑해졌습니까? 똑똑해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 입으로 무언가를 먹으면 어떤 신기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착각합니다. 《서유기》를 보면 선도(천도복숭아)를 먹고, 인삼과를 먹습니다. 중국인의 논리 체계 속에서는 진시황과 《서유기》뿐만 아니라 당, 송, 원, 명, 청 역대 왕조에 이르기까지 이 입이 대단한 역할을 했습니다. 수많은 것을 먹는 것과 연결해 발명해 냈습니다. 병을 치료할 때 무엇을 합니까? 약을 먹습니다.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 다 먹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요괴들도 무언가를 먹으려 하며 삼장법사의 고기를 먹으려 하다가 결국 손오공에게 박멸당했습니다.

오늘날 이에 대한 우리의 깨달음은 실로 놀랍습니다. 성경에는 이미 ‘먹는다’라는 단어가 계시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누가 기록했습니까? 창세기 3장은 모세가 산 위에서 하나님과 대면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사실 아브라함 시대에는 아브라함이 이 일을 알지 못했고, 아브라함 이전 시대에도 이 일을 알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한 것은 아브라함 이후 400여 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400여 년 전의 사람에 대해 쓴다면 어디서 그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알 길이 없습니다. 모세가 아담과 하와에 대해 쓴 것은 거의 2,000여 년 전의 일입니다. 물론 이것은 과학이 아니라 신학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이것을 받아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동산을 돌보며 열심히 일하고 조금씩 배우고 성장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동산을 돌보다가 이것이 비효율적임을 발견하고 바퀴를 발명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문 닫고 수레를 만든다(밀실에서 혼자 연구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제는 거리에 바퀴가 넘쳐납니다. 아담과 하와 시절에는 바퀴가 있다는 것을 몰랐고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맨발로 걷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바퀴를 만들고 길을 닦았습니다. ‘부자가 되려면 먼저 길을 닦아라’라는 논리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꽤 힘든 일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문제를 해결할 때 늘 단번에 무언가를 먹어서 해결하려 한다면 망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하와를 창조하셨는데,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기 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제가 꽤 깊이 연구했는데, 오늘 저의 추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때때로 제가 어떤 사람이 입에서 난잡하고 불평 섞인 말을 내뱉는 것을 보고 “여자(계집) 같다”고 말하는데, 듣기 좋은 말은 아닙니다. 사실 이러한 연약한 태도는 하와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그 여자가 선악과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여자는 어떻게 먹기 시작했을까요? 먹기 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속으로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정말 나쁘셔. 먹지도 못하게 하시고. 왜, 내가 먹고 당신처럼 되면 안 돼? 내가 경쟁자가 되어 투표로 당신을 끌어내릴까 봐 두려운 거야? 그래서 못 먹게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목양할 때, 목양하는 자와 양 사이의 관계가 바로 여기에 다 들어 있습니다. “내 목회자는 왜 저런 말을 하지? 뭐야? 겁나나? 저것도 못 하게 하네. 난 기필코 할 거야!” 하면서 힘겨루기를 하는 것입니다.

‘아, 하나님은 정말 못됐고 쩨쩨하셔. 나더러 일만 시키시고, 얼마나 힘들어. 날마다 배워야 하고 성장해야 하니 얼마나 번거로워.’ 번거롭습니까? 늘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먹기만 하면 즉시 하나님처럼 된다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집에서 뇌 영양제 좀 먹고 대학에 합격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일하고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번거롭겠습니까? 어떤 어머니들은 참 우습게도 문수보살에게 절을 하면 아이가 대학에 붙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둘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거기 가서 절 좀 하고 중얼거리면 아이가 대학에 붙습니까? 우리 중국인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런 것뿐이니 얼마나 악합니까! 무슨 일을 하든 성실하게 발을 땅에 딛지 않고, 그저 단번에 중얼거려서 이루어지기만을 바랍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기 전, 사실 그들의 생각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나쁘다고만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한순간은 ‘하나님이 왜 이렇게 나쁘시지?’ 하다가, 또 한순간은 ‘사실 하나님은 좋은 분이셔’ 하며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제가 섬기는 사람들도 종종 혼란 속에 빠집니다. 한순간은 ‘선생님이 참 좋은 분이야’ 하다가, 한순간은 ‘선생님이 참 나쁜 사람이야’ 합니다. 속으로 ‘나한테 함정을 파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함정을 팝니까? 혹까지 달아주는데 말입니다! 사람이 혼란해지면 마귀가 보고 ‘요 녀석 봐라, 기회가 왔구나!’ 하고 당신을 속여 넘기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기 전에 사람들은 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할 일 없이 그따위 것을 왜 먹겠습니까? 사업을 하기 전에는 돈 벌 생각만 하지 손해 볼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P2P 금융에 돈을 넣고, P3P, P4P에 넣으면 결국 허망한 방귀(P)가 되어 헛수고만 하게 되니 큰일입니다! 사람 안에 곤혹과 혼란이 있습니다. 왜 혼란스럽습니까? 일하기 싫기 때문입니다. 일을 제대로 해내고 싶지 않고, 성실하게 한 걸음씩 성장하고 싶지 않으며, 그저 한 번 먹고 불로장생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무언가를 먹고 나면 화장실에 빠질 텐데 그것이 불로장생하게 해 줍니까? 헛된 짓입니다!

남자는 왜 먹었습니까? 아내 말을 들으면 부자가 된다고 생각했고, 아내가 먹은 후에도 죽지 않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속으로 ‘아, 하나님이 헛소리하셨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악과를 먹기 시작하기 전에도 이런 논리를 가집니다. 속으로 ‘죽지 않겠지? 저 사람도 먹고 안 죽었잖아’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가장 자주 듣는 말입니다. “나도 잘못했고 그 사람도 잘못했는데, 괜찮지 않나요!” 무언가를 먹고 하나님처럼 되기를 바랐지만, 여자는 먹고 난 후 하나님처럼 되었는지는 잊어버리고 오직 그 열매만 보았습니다.

훗날 모세는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창세기를 가르쳤을까요? 모세는 광야에서 그 많은 세월 동안 날마다 그들에게 창세기를 가르쳤고,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보다 창세기를 더 잘 성경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은 이랬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나쁘셔. 우리를 광야로 끌고 나와 죽이려 하시는구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여기로 데려왔는가?” 보셨습니까? 즉, 이스라엘 백성은 창세기를 다 읽고도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창세기를 깨닫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이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한다면 완전히 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이 성경 구절을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제가 오늘 연구한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은 선악과를 먹기 전에 사실 다 아름다운 소망을 품고 먹었다는 것입니다. P2P에 돈을 넣을 때도 다 아름다운 소망을 품고 넣습니다. ‘아, 마윈의 기업이 얼마나 좋은데, 어떻게 돈을 떼어먹겠어?’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운 소망을 품고 마귀 같은 꼴로 변해갑니다. 처음에는 사람다운 꼴이었는데, 먹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먹고 나니 마귀 같은 꼴이 되었습니다. 원래 사람다운 꼴이었을 때는 하나님처럼 될 기회라도 있었는데, 마귀 같은 꼴이 되었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골치 아프게 된 것입니다!

5. 사람이 멍청해지는 근원

사람이 어떻게 멍청해집니까? 이것이 선악을 분별함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입니다. 사람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 하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제가 길게 설명한 그것이 바로 사람이 멍청해지는 근원입니다! 어떻게 멍청해집니까? ‘나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지혜를 얻고 싶어, 똑똑해지고 싶어, 단번에 무언가를 먹어서 말이지.’ 무엇을 먹든 그것은 반드시 대변(똥)이 됩니다. 이것이 제가 드리는 말씀의 뜻입니다. 머릿속에 온통 묽은 똥만 가득한 것입니다. 나중에 사람들이 저를 비판하기에 제가 순화해서 ‘순두부’라고 말했지만, 사실 진짜 똥입니다. 먹고 나면 대변이 된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확실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반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무언가를 먹고 단번에 부유해지고, 단번에 소망을 얻기를 바랍니다.

그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군가 제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듣자마자 사기꾼임을 알았습니다. 그 사람은 ‘단번에’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단번에 된다는 것은 전부 사기입니다. 참 흥미로운 것은, 마귀가 바로 이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귀가 왜 여러분을 공격합니까? 사람이 왜 멍청해집니까? 바로 마귀 때문입니다. 마귀가 사람을 멍청하게 만듭니다. 마귀는 당신 안의 이 혼란스러운 논리를 끊임없이 강화하고, 틈을 보아 당신을 패망하게 만듭니다. 마귀가 당신을 패망하게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마귀야, 가서 저 자를 망하게 하라!”고 하실 것입니다. 분명 이렇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참 못되셨네요”라고 하겠지만, 하나님이 못되신 것이 아니라 이 원리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얼마나 못됐습니까? 형편없는 회사를 하나 차려놓고, 이리 포장하고 저리 포장하여 똥 한 덩어리를 그럴듯하게 싸서 상장시킵니다. 상장한 후에 무엇을 합니까? 돈을 사기 치는 것입니다! 개미 투자자들을 다 속여서 투자자들을 몹시 비참하게 만듭니다! 어떤 부자가 산 주식이 나중에 깡통 주식(동전주)이 되어 한 주에 수백 위안 하던 주식이 몇 푼짜리가 되었고, 수십억 위안이 몇천 위안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얼마나 악합니까!

우리 중의 한 교우는 늘 유니콘 기업을 세우고 싶어 하며, 서둘러 포장해서 상장시키려고 안달이 났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왜 그래, 사기 치려고? 정부가 가만둘 것 같아?”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 등이 이런 사기꾼들을 해결하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감독 기관들마저 이들과 한패가 되어 투자자들을 속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비참합니다! 역시 모택동 주석이 현명했습니다. 진작에 이런 정경유착 논리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치명적인 것이며,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사람이 멍청해지는 근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중국인들에게는 그래도 복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등소평이 충격 요법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충격 요법의 길을 걸었습니다. 즉, 전체 시스템을 단번에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부유해지면 국가를 위해 생각할 줄 알았습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일단 돈이 자기 것이 되면 그것은 진짜 자기 돈이 되는 것입니다. 자본가는 미국에 있든 러시아에 있든 어디에 있든 다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다 아름다운 소망을 품고 단번에 국가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자원이 지극히 풍부한 러시아라는 국가는 단번에 쇼크(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개인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려 하다가 단번에 멍청해진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논리입니까? 바로 ‘단번에’의 논리이며, 늘 순간적인 변화만을 바라는 것입니다.

등소평이 참 말을 잘했습니다. ‘돌다리를 두드리며 건너듯(摸着石头过河)’ 한 걸음 한 걸음 가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사람이 멍청해지는 근원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제게 묻습니다. “선생님, 어릴 때도 그러셨나요?” 제가 말합니다. “저는 어릴 때도 이랬습니다.” 왜일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발을 땅에 딛고 시험을 한 번 한 번 성실하게 치렀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금 제가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본다면, 저는 분명 여러분보다 문제를 더 많이 풀어볼 것입니다. 제가 필기시험을 보러 갔을 때 감독관이 제게 말했습니다. “됐습니다, 제출하세요.” 제가 “아직 다 안 풀었는데요?”라고 하니, 그는 “91점이나 100점이나 똑같습니다. 만점 맞으려고 그러세요?”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제가 91점까지 풀었을 때 틀린 문제가 하나도 없이 다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시험지를 제출하라고 재촉하기에 제가 “이러면 합격인가요?”라고 물었고, 그가 “합격입니다”라고 해서 저는 조기 제출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제가 일하는 방식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멍청해지기 싫어서 성실하게 발을 땅에 딛는 것입니다. 어제 제가 작업한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인테리어라면 저는 두 달 전부터 도면을 그립니다. 그리다 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리다 보면 수정이 시작되어 더 좋은 버전이 나옵니다. 그렇게 해도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머리를 대충 굴려서(拍脑袋)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분명 똥 같은 생각만 나올 것입니다. 여러분이 단번에 하려고 하니 멍청해지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멍청해집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 제게 지혜와 총명을 주옵소서”라고 바라지만, 주셔도 받지 못합니다. 왜입니까? 여러분에게 그런 성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성격입니다!

늘 단번에 하려 하니 결과가 어떻습니까? 30세부터 40세까지 일해도 원점으로 돌아오고, 40세부터 50세까지 일해도 원점이며, 50세부터 60세가 되면 남는 것 없이 마이너스로 떨어집니다. P2P를 하다가 P3P, P4P가 되니 결국 방귀(허망한 것)가 된 것 아닙니까? 그러니 단번에 하려다 끝장나는 것입니다! 40대 중반의 어떤 형제에게 제가 발을 땅에 딛고 성실하라고 말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늘 단번에 대박 날 생각만 하니 마귀가 당신을 공격하지 않고 누구를 공격하겠습니까? 제가 당신의 앞날을 점쳐보자면, 당신의 장래는 대단히 비참할 것입니다! 왜입니까? 멍청하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당신을 보고도 손을 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매우 부도덕한 일입니다. 상인이 돈을 벌지 않는 것이 부도덕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멍청해지는 근원을 제가 찾아냈습니까, 못 찾아냈습니까? 확실히 찾아냈습니다. 여러분이 어릴 때 학교 다닐 때도 그랬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계획 세우는 것을 유난히 좋아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무엇을 할지 연구하고, 어떻게 할지 연구합니다. 저는 머리를 툭 쳐서 즉흥적으로 내는 아이디어가 없습니다. 제 손을 거쳐 관리된 일은 분명 엄청난 공을 들인 것임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저는 어떤 사람들처럼 널빤지를 쾅 박았다가 다시 뜯어내고, 뜯어내서 쓰레기로 버리고, 다시 박았는데 또 잘못 박아서 다시 뜯어내는 짓을 하지 않습니다. 지금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쓰레기를 제조하는 것입니까? 머릿속에 쓰레기가 가득하니 쓰레기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가 만든 것은 한 번에 제대로 만들어지고 완성되니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은 만들고 나서 실패하고, 만들고 나서 또 실패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30세에도 못 이루고, 40세에도 못 이루고, 50세에도 못 이루니, 만약 성이 이(李) 씨라면 ‘이자성(李自成)’이라 부르지 말고 ‘이불성(李不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함)’이라 불러야 합니다.

6. 똑똑하고 지혜로워지는 길

무엇인가를 먹어서 해결하려 하지 마십시오. 무언가를 먹는 것은 문제 해결의 열쇠가 아니며, 먹어봤자 똥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땅에 사람을 지으신 후, 에덴동산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왜 먼저 에덴동산을 다스리게 하셨는지 아십니까? 원래는 온 땅을 다스리게 하려 하셨지만, 하나님께서 먼저 원을 하나 그리셔서 작은 환경을 먼저 주신 것입니다. 마치 옛 지도자가 먼저 원을 하나 그리고 그 구역을 잘 정돈한 후, 그 경험을 전국으로 확대하여 개혁개방을 한 것과 같습니다. 똑똑해지고 지혜로워지는 것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 동산이 얼마나 컸을까요? 어떤 사람의 동산은 단독 주택 하나 정도의 크기일 것입니다. 단독 주택 하나도 관리하지 못하면서 아파트 단지 하나를 관리할 수 있겠습니까? 아파트 단지 하나도 관리하지 못하면서 도시의 한 구(區)를 관리할 수 있겠습니까? 한 구도 관리하지 못하면서 도시 전체를 관리할 수 있겠습니까? 도시 하나도 관리하지 못하면서 한 성(省)을 관리할 수 있겠습니까? 한 성도 관리하지 못하면서 한 국가를 관리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발을 땅에 딛고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것을 여러분이 관리할 수 있습니까? 사실 관리하지 못하고 뱀에게 관리당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사역을 맡기면 사역에 휘둘리고, 목양을 맡기면 목양에 휘둘리며, 성장을 맡기면 성장에 휘둘립니다. 이것이 다 거꾸로 된 것 아닙니까? 이러고도 똑똑해질 수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흥미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이라는 특구를 지정하시고, 여러분을 그 안에 두어 다스리게 하셨는데 결국 여러분은 잘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사람 안에 멍청해지는 요인, 멍청해지는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동산 안에서 다스리며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셨습니다. 동물들이 온종일 똥을 싸대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금의 도시처럼 소 떼나 말 떼가 지나가며 온 거리에 똥을 싸고 도시 전체에 악취가 진동한다면 견딜 수 있겠습니까?

얼마 전 제가 차를 몰고 어느 고속도로 휴게소에 갔는데, 들어가자마자 악취가 코를 찔렀습니다. 제가 “이곳 사람들은 너무 지저분하구나”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관리가 안 되었다는 뜻입니다.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가 많습니다. 왜 관리하지 않습니까? 멍청하기 때문입니다. 휴게소에 온 사람들이 대소변을 보고 악취를 풍겨대니 얼마나 역겹습니까! 그러므로 어떤 곳에 가면 ‘이곳 사람들은 관리를 못 하는구나’ 알 수 있고, 어떤 곳은 관리가 잘 된 것을 봅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데 있어서, 문제를 발견하는 데는 안목이 필요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반드시 생각과 배움과 탐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문제를 하나씩 해결할 때마다 매우 기쁩니다. 저를 보십시오. 제가 목사로서 사역하면서 점점 더 흥분되고 날마다 새로운 발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까? 사실 여러분에게도 장점이 많습니다. 머릿속으로 깊이 생각한 것은 다 옳게 해냈습니다. 한 버전을 틀리게 했다가 결국 옳게 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단번에 하려 하면 반드시 멍청해집니다. 어느 영역이든 단번에 좋아지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분명 게으르고 멍청한 것입니다. 사람이 왜 멍청해집니까?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왜 게으릅니까? 멍청하기 때문입니다. 프로그램을 짜다가 무한 루프에 빠져 수많은 뇌세포를 태워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일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속으로 ‘이걸 어떻게 해? 못 하겠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상황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문제 위에 문제가 쌓여 더럽고 냄새나는 휴게소 꼴이 됩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아, 내가 단번에 하나님처럼 지혜로워지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합니다. 결국 또 무언가를 먹고, 먹고 나면 똥이 되니 분명 악취만 풍길 것입니다. 많이 먹을수록 많이 싸는 법입니다. 여러분 말이 맞습니다. ‘잠깐 쉬어야지’ 하고 일주일을 쉬었는데, 일주일 뒤에 문제는 더 많아지고, 문제가 많아지니 더 괴롭습니다. 그러고는 “선생님, 말씀이 틀렸어요. 왜 저는 하나님처럼 되지 않죠?”라고 합니다. 일주일을 쉬면서 먹기도 많이 먹고 싸기도 많이 쌌으니, 더럽고 냄새나는 휴게소는 아마도 이런 사람들이 만든 것일 것입니다.

그러니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이 늘 단번에 하려 한다는 데 있습니다. 창세기가 얼마나 잘 기록되어 있습니까? 첫째 날에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습니까? 둘째 날에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셋째 날에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단번에 하신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 같은 사람이라면 분명 하나님 앞에 달려가 “하나님, 이건 별로예요. 입김 한번 ‘후’ 불어서 ‘탁’ 하고 다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아요? 왜 이렇게 번거롭게 첫째 날, 둘째 날 하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세요? 단번에 하시면 좋잖아요”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좋지 않다고 하십니다.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믿음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믿음이 기초입니다. 왜입니까? 저의 환상(비전) 속에서 이 집은 이런 모습으로 인테리어가 될 것이고, 이 소프트웨어는 이런 모습으로 짜일 것이며, 이 교회는 이런 모습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저의 믿음 안에서, 제가 섬기는 이 사람은 이런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 중에 제가 수년 동안 섬겼는데도 여전히 그대로인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저의 믿음 안에서 그는 이미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으로 보입니다. 단번에 되지 않는다고 해서 두세 번 해보고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을 하기 전에 저는 이 일에 대한 판단을 내립니다. ‘나의 미래는 이러한 모습이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 안에서 여러분 자신의 자화상을 그릴 수 있습니까? ‘나의 미래는 이러한 모습이며, 나는 한 걸음씩 쌓아 올릴 것이다!’

제가 예전에 성경공부를 인도하며 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한 흑인 아이가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폭 5미터, 높이 3미터의 벽을 쌓으라고 했습니다. 벽돌이 얼마나 많이 필요하겠습니까? 십 대의 어린아이가 방과 후에 집에 돌아와 벽돌을 쌓았습니다. 나중에 아이는 한 가지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벽을 바라보며 ‘아, 이렇게 큰 구멍을 언제 다 채우나?’ 생각하면 끝장이고, ‘벽돌 한 장을 보고 한 장을 쌓고, 또 한 장을 보고 또 한 장을 쌓자’고 생각하면, 믿음 안에서 그 벽이 세워지는 것을 보게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1년 후에 아이는 그 벽을 다 쌓았습니다.

믿음 안에서 여러분 자신이 이미 총명한 사람이 되었음을 보십시오. 믿음 안에서 여러분 자신이 이미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음을 보십시오. 믿음 안에서 여러분 자신이 마귀가 아니라 하나님을 닮아가기 시작했음을 보십시오. 믿음 안에서 여러분 자신이 부유한 사람이 되기 시작했음을 보십시오. 믿음 안에서 단번에 개미 투자자들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들을 부유하게 이끄는 사람이 되십시오. 쓰레기 회사를 만들어 투자자들을 속이려 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속일 수도 없고, 요즘 시대에는 쉽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 안에서 에덴동산이 이미 아름다운 동산으로 변화된 것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다스림으로써 배출된 배설물이 관리되고, 쓰레기 소각장이 세워지며, 에덴동산 안에 생태계가 구축되어 질서정연하게 관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시며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일들을 질서정연하게 처리하게 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은 “좋다, 에덴동산이라는 특구를 해제하니 온 세상이 다 너희의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7.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사람이 멍청해지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며,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데 어디서 소망이 나오겠습니까? 사람의 믿음이 무너지면 그 내면은 반드시 극도로 혼란한 상태가 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 어떻게 그렇게 즐겁게 사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제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저는 혼란을 해결하는 사람이지 혼란을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낡고 거친 골조 아파트도 제 손에 들어오면 아름답게 변합니다. 무엇이든 제 손에 들어오면 반드시 점점 더 좋아집니다!

기초가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여러분이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분명 쓸모없는 인간이 될 것입니다! 미래가 믿음을 통해 창조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속에서 반드시 조급해집니다. 믿음이 없으면 반드시 원망하게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반드시 선악과를 따먹게 됩니다. 소망이 없고 미래가 없으니 무언가를 먹고 즉시 하나님처럼 되기를 바라지만, 먹고 나면 한 무더기의 똥이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믿음이 없고 소망이 없어서 오직 ‘단번에’만을 바라는 것, 이것이 바로 근원입니다!

오늘 저의 논문 같은 설교가 얼마나 훌륭합니까? 사람 내면의 곤혹은 다 불신앙에서 시작됩니다. 마귀는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달려들자마자 단숨에 싸움을 끝내버립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여러분에게 계획서를 쓰라고 독려했습니다. 썼습니까? 도면을 그렸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아, 도면 그리는 거 귀찮은데, 남들이 이미 그렸으니 난 안 그려도 돼”라고 합니다. 남이 그린 것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은 여전히 그 한심한 모습 그대로이지 않습니까? 제가 훈련을 다 시켜놓았는데도 마지막에 여전히 그 한심한 모습으로 남아서 남들이 단번에 해주기만을 바란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린 도면을 보면 문이 개구멍 같아서 이게 개가 드나드는 문인지 사람이 드나드는 문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내면의 상태는 너무나 부패하여, 그저 단번에 하와처럼 되려고만 합니다. 여러분은 하와보다 더 깊은 웅덩이(窪)에 빠져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저지대가 되어 단번에 푹 꺼져버렸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사람의 하드웨어는 다 똑같습니다. 대중목욕탕에 가보셨습니까? 동북 지역의 대중목욕탕에 가보면 서 있는 사람들의 몸은 다 똑같습니다. 만약 다르다면 당신이 탕을 잘못 들어간 것입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목욕탕은 만두를 솥에 넣은 것처럼 바글거려서 정말 답답했습니다! 하드웨어는 다 똑같지만,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가가 관건입니다! 어떤 분이 채팅창에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도 목욕탕에 가면 다 똑같다’고 썼습니다. 맞습니다. 목욕탕에 가면 당신이 돈이 있는지 없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제가 드리는 말씀의 뜻은, 내면을 새롭게 빚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회복하고 더 이상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예비하신 계획이 가장 좋습니다! 일 처리를 반듯하게 하고, 제대로 계획하고 깊이 생각하십시오. 계획이 있어도 잘해낼까 말까인데, 계획조차 없다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갈 것입니다. 저에게는 태블릿 PC가 있는데, 그 안에 수많은 도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저는 무엇이든 도면을 그리며 깊이 연구합니다. 저는 소프트웨어를 포함해 많은 도구도 만들었습니다. 제 나이가 이렇지만 제가 짠 소프트웨어는 정말 훌륭합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실행하기 전에 ‘나는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다’고 믿음이 제게 말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오직 한 가지 차이뿐인데, 그것은 바로 믿음일 것입니다. 저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할지를 모두 계획합니다. 남들이 TV를 보고 있을 때 저는 책을 필사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믿음의 사람이라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이 세상은 여러분에게 합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일까요? 이 세상은 온통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8. 거짓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라

하나님을 닮아가는 길은 결코 무언가를 먹어서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받아 한 걸음씩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단번에 하나님처럼 되려 하고, 특히 무언가를 먹어서 불로초를 먹는 것처럼 되려 한다면 일을 그르치게 되며 반드시 마귀처럼 될 것입니다! 제가 영적 고지를 오르며 영적 진리를 조금씩 깨달아갈 때, 저와 함께 걸어온 사람들은 다 압니다. 제가 101 양육 과정을 작성하는 데 석 달이 걸렸습니다. 저는 날마다 미간을 찌푸린 채 이리저리 서성였고, 사람들은 제가 마음에 큰 근심이 있는 줄 알았지만 저는 필사적으로 깊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첫날 무릎 꿇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모든 것을 계시해 주시기를 바라지 않았겠습니까? 바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해 주시지 않는다면 괜찮습니다. 저는 다음 날까지 계속 구했습니다. 결국 석 달 뒤에 우리의 101 과정이 나왔습니다. 그 후 두 번째 개정판을 만들 때는 훨씬 쉬웠습니다. 이미 뼈대가 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201 과정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언가를 먹고 즉시 기분이 좋아지기를 바란다면 마약을 하십시오. 그것은 단번에 쾌감을 주지만, 사람의 성품을 빚어낼 수 없고 사람의 영적 높이를 형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사람들이 여호와의 산에 오르고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도록 일부러 설계하셨습니다. 그 높은 산은 바로 이렇게 오르는 것입니다. 어렵습니까? 어렵습니다. 힘듭니까? 힘듭니다. 그러나 흥분됩니까? 당연히 흥분됩니다! 그러므로 내면에 이러한 성품을 형성하고,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여 끊임없이 위를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본래 그러합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제가 목양하는 사람이 제게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헛소리를 하면, 저는 그가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하게 반박할 수 있습니다. 제가 묻습니다. “당신이 한 말 중에 어느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단 한 구절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다 자기가 지어낸 헛소리입니다. 그러니 망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의 말만 잔뜩 늘어놓는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것 아닙니까? 다 사람의 생각뿐이라면 완전히 망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십시오. 당신이 불교도라면 《불경》을 의지해 살아가고, 이슬람교도라면 《코란》을 의지해 살아가십시오. 그러나 당신과 나는 그리스도인이니, 마땅히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9. 결론

선악을 분별하는 근원은 바로 높은 산을 오르는 이 길을 걷기 싫어하면서 단번에 하나님처럼 되려는 데 있습니다. 진보가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자리에 너무 오래 서 있으면 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무릎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늘어진 손을 다시 들어 올려 끊임없이 위를 향해 올라갑시다. 우리가 정상에 오른다 해도 우리의 공로가 아니요,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반영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돕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눈 이 내용은 참 좋았고 저 역시 매우 흥분됩니다. 어제 저는 새벽 4시까지 사람들을 섬겼고 온종일 바빴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설교 원고를 써야 했고, 이렇게 제 상상을 뛰어넘는 설교가 나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앞을 향해 달려갑시다. 아멘!

찬양 한 곡을 부르며 오늘의 헌금을 준비하겠습니다. 만약 헌금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신다면 헌금하지 마십시오. 마귀는 몹시 분해합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단번에’를 제하여 버렸고, ‘단번에’가 더 이상 우리 안에 없기에 우리는 성실하게 발을 땅에 딛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앙망하기 시작하여 이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게 하기를 원합니다! 제 안에는 지극히 큰 소망이 있습니다. 바울 이후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역대 어느 누구도 우리 화인 사명 신학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깊고도 명쾌하게 선포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황인이든 우리는 그들 모두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중국인들이 바울이 짊어졌던 그 사명을 짊어지고, 이 세대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릇이 되어 복음을 명백하게 전파하여 모든 사람이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합시다! 이것이 저의 소망이며, 형제자매 여러분의 소망입니다. 오늘 형제자매들은 더 이상 헌금하는 것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고 그것이 은혜임을 알며, 헌금은 우리의 본분입니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인간적인 도리를 따지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말하며, 이제부터는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려 하지 말고 성실하게 하나씩 해결해 나갑시다. 그러면 사람은 점점 더 흥왕해지고 점점 더 건강해질 것입니다!

손을 들고 제가 고백하는 말을 한마디씩 따라 하십시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립니다! 하나님, 저는 믿음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저는 더 이상 단번에 되는 것을 좇지 않고, 성실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발자국을 내딛으며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우셔서 주님이 저의 힘이 되시고, 저의 구원이 되시며, 주님의 얼굴을 뵈올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진리를 끊임없이 알아가도록 저를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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