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大家好!今天讲的这个特别好,我特别喜欢讲。为啥?因为死人复活、这荣耀盼望的福音是我所追求的。我所追求的就是这个,谁也别拦着我。为什么保罗说:嫁人的好像没有嫁的,娶妻的好像没娶的,因为这事不重要啦。是不是?得着这荣耀的盼望是何等美好的盼望!我教你好好把家庭经营好,不是经营经营把这盼望给经营没了。昨天晚上我在服侍一下我们当中的一个小牧者真的很开心,过去这些年他走过来的路不容易,受了很多的逼迫。一开始很软弱,现在他终于看透了夫妻关系到底是咋回事。然后有的人说:他离婚了?没有。他看透了,所以他就把这事经营好了。这回大家明白吧?
所以我想我们今天在这地上,几乎所有的婚姻都是两个自私的人自己为自己然后弄到一起。她妈生了他,你吗生了你,然后两人走到一起,就是这么回事。她妈不是你妈,你妈也不是她妈。是这么回事不?虽然一声一声的妈叫着,其实那不是。所以我们今天要学会看透这些东西,一个人如果没有属天的盼望一定是个自私的人,没有属天盼望的人一经历逼迫一定会垮掉。好吗?我想今天咱们弟兄姐妹你要是看透了,还在乎这个?所以我巴不得咱们当中的弟兄姐妹都能够蒙祝福,但是蒙祝福你得在这个根基之上。接下来是咱们答疑解惑时间:
【问题】1:老师,为什么对付自己的问题那么难? 怎么弄都没有用。会想:神为什么没有那么“神”,跟不信主的人去对付一样困难,神怎么不能赐给我一个好习惯、好性格?
答:很好的问题。因为我们在对付的时候,我告诉你,我们的根基是出了问题的呀。为什么我们对付自己的问题那么难?其实我们自己对付我们自己的问题这本身就是一个迷思,《圣经》从来没有让我们自己对付我们自己的问题。你说:不是让我们自己对付我们自己吗?因为是让我们靠着耶稣基督从死里复活的能力去对付。你说:怎么就是靠着耶稣基督从死里复活的能力?第一首先在悟性上我们真的得相信这个,得相信耶稣基督从死里复活的这种福音。第二当我们知道耶稣基督从死里复活升天之后,第一件事就是圣灵降临,圣灵降临然后我们就必得着能力。如果你打开这个《使徒行传》,耶稣讲得很清楚,你们要在耶路撒冷等候,别自己瞎玩,这是耶稣说的。然后怎么说呢:
耶稣和他们聚集的时候,嘱咐他们说:不要离开耶路撒冷,要等候父所应许的,就是你们听见我说过的。(《使徒行传1:4》)
但圣灵降临在你们身上,你们就必得着能力;并要在耶路撒冷、犹太全地和撒玛利亚,直到地极,作我的见证。”(《使徒行传》1:8)
我想这事你可以试一试,你如果每一天在那里大量的方言祷告,很简单:莎啦啦吧、西克拉吧、莎啦啦。你试试看,你可能一开始坚持不了五分钟;后来你就发现你可以坚持十五分钟;后来你就可以坚持一个小时;后来你就可以坚持两个小时;你就发现你里面有得胜的力量。因为圣灵是治死我们肉体恶行的圣灵。我们用肉体对付肉体怎么弄都没用,这回清楚了吗?当我们在圣灵里面不断的操练,你会发现你的力量超出常人。然后我告诉你,你不但得着能力可以对付自己,你还会得着能力你发现你还可以赶鬼,你会经历我所经历的那些事。
然后你就会发现你赶了鬼以后,我的天呐!那单就好像雪片一样飞过来的。这就是关键,所以人靠着神的灵做事是何等简单,要不然你试试。在我们当中做销售的,你们都要养成一个赶鬼的习惯。今天我们当中的一个姐妹,其实她是一个餐馆的服务员呢还是什么的服务员,那这个餐馆的服务员她在一个群里头为一个姐妹祷告,因为那鬼来了嘛,她的牧者在地铁上坐车回家没办法。所以她就在那里祷告,我一看我也进来了,我就觉得这小家伙挺厉害呀。咔、咔、咔,把鬼给干趴下啦。
我问你圣灵的能力厉害吧?圣灵的能力超厉害了!所以说这个所有的这一切,都可以见证我们主耶稣基督从死里复活的大能,圣灵要降在我们身上。她带祷告挺有样:来姐妹,跟着一起我在灵里祷告,哦,啥个喇叭、啥个喇叭,挺有意思,哇!有摸有样。我告诉你,很快就有福啦!所以我想今天神要赐给你一个好习惯,最好的习惯就是依靠圣灵。阿们!因为很多事不是靠着我们能力成就的,都是靠着神的恩典。所以他说:老师,靠着神对付自己,是不是就是信心、悟性、祷告,然后安心地一点点脚踏实地的去做事?你的解释太好了就是这样。哎呀,死都不在乎了做这点事算个啥呢?是不是?
【问题】2:老师,罪的权势就是律法,是什么意思?
答:就是我们一直要知道一件事,靠着律法你不能够成就律法。你看规条一旦给你了,你去守着,你守不到的。靠着什么呢?靠着律法就掉到坑里了,靠着耶稣基督从死里复活的能力就成全了律法。所以耶稣来是成全律法,不是废弃律法。人靠着律法却做不到,但是人靠着耶稣基督就成全了律法。这事也很简单,我不用耶稣基督的大道理来做比喻,我用小道理来做比喻:你看这个单位他说,你早上八点上班,晚上六点下班。然后人就守着,八点上班,六点下班。那我问你:你到了上班以后,你不爱做工,你坐在那块如坐针毡。守得难受不难受?难受。为啥?不是来想把事做好。来了就是为了守住那个八点到六点,然后人家给你发钱,等人家给你发钱的时候因为你没做啥工,就是来了早八点到六点这十个小时在哪愣挺。哎呀!这个难受啊!老难受了。为了守住那个点,你说领导说你不行吧,也不是,你真来了,说你没来吧,你真来了,你干啥了?你没干啥。但是你来了就得给钱呐,所以就很辛苦。
但是如果这个企业请了一个非常爱做工的人,早晨八点上班他六点就来了,干到晚上八点也不觉得累。你要知道过去这些年,我一般的时候是到点就下班了,但是我离开办公室的时间都是晚很多。我老板很少管我上班时间下班时间,我可自由了。中间有几个小时,我跟我老板说:我要出去办点事,老板说去去去,没事。那别人跟我老板说:我要出去办点事,办什么办?为啥?因为他整天在那守律法。我呢,是甘愿守律法,他是被迫守律法。所以罪的权势就是守律法。罪的权势是律法,这话挺难理解。罪就是因为你自私的动机引导你去守了一个律法。人带着一个献上自己的动机,你还用守律法吗?超越律法。所以人守了律法,就掉到律法的坑里。就是这意思。
神说你要守安息日,哎呀!那个痛苦啊!然后守着守着忘了守安息日是讨神喜悦了。结果羊掉到坑里那不能碰,我要守安息日,最后就被鬼骗了。罪的权势就是律法,罪就是守啊守啊守,然后守完了就讨了神的愤怒。所以律法不是给人守的,律法是给人靠着耶稣基督超越的。就是这么个逻辑,所以鬼就这么干的。
【问题】4:老师我们不是都要睡觉,乃是都要改变,是什么意思?
答:睡觉就是死了,就是人经常喜欢说死了,这多难听啊!他死了不说死了,说他离开了,他走了。然后皇上叫驾崩,大臣叫啥来着,有一大堆的词,就是不说死,说睡觉,睡什么觉。但是他这个睡觉的意思比较深,就是人死了,其实就是睡了,就是睡了一个很长很长的觉。所以有的人就说孩子他爸死了以后,不跟孩子说他死了,出远门了。
【问题】5:老师,我偶尔的时候心里会很累,觉得什么都没有意义,就不想往前走,有时候巴不得躺下了就不起来了,里面就不想有啥盼望,巴不得这一生过完就算了,也不想有任何盼望,因为觉得都没有什么意思,对啥都没追求,老师,我该怎么有盼望呢?
答:当人在这世上活着活着人在这世上有了盼望。然后人在这世上有了盼望以后,就变成挫败,就丧失了盼望,就开始有点绝望。最早的阶段属世界的人他一定是在这世界里头摸爬滚打,然后就没了盼望。因为这世上也真的没有盼望,因为最后就是死了,然后最后就是吃喝等死。这是一个典型的状态,这个状态其实不是一个理想的状态。
那最理想的状态是啥?因为我们在这世上没有指望,所以我们寻求一个永恒里荣耀的盼望,这是个寻求。当人不寻求你就会发现里面没有力量,当然这种感觉很正常我也经常有,这种感觉很正常什么人都有,但是这是一个谎言。人以为死了就吹灯拔蜡就完蛋了,其实不是。为什么人要探索去寻求呢?只要你稍微一寻求就知道人活着是属灵的事。这种感觉是典型的死亡的灵的工作,死亡的灵就是这么工作的,让人变得这样。要么就把活着抓得紧紧的,要么就万念俱灭,这不是耶稣基督的福音。
耶稣基督的福音是啥?让人得着从死里复活的盼望。让人能够得着这荣耀盼望,能够进到永恒里,好像我们将来要给神交差一样。将来到了与耶稣基督交账,你不怕,我怕呀!我是很在乎这件事的,将来交账我怎么交账啊,我就天天想着我怎么交账。所以说怎么有荣耀的盼望?要开始探索了解。其实我告诉你,做这个牧师,做传道人这活我做得淋漓尽致,那真是特别的好啊。但是我见过很多牧师跟我传讲,他说做牧师是最痛苦的行业。我寻思着,服侍神怎么成了最痛苦的行业?我就很诧异!原因就在这,我带着永恒里荣耀的盼望向前奔跑,不辞劳苦。辛苦在我面前根本谈不上什么了不起的事。为啥?我里面带着盼望活着。
人没有盼望一定要找一个盼望,哪怕是一个虚假的盼望,都比没有盼望强。比如说:六十年代,七十年代,那时候的人活得可有盼望了,活得也挺兴奋,因为他里面有一个盼望。虽然那个盼望是个虚假的盼望。但是今天我们寻求各种盼望,考察了以后,现在说,啊!服侍神,听明白了吗?我们因为自私,所以就爱自己,然后爱到绝望,爱到没有盼望了。
【问题】6:老师,你说:靠着圣灵做事,怎么分的清是圣灵,还是知识的道理?
答:这不用分,因为我们这些人,为啥活着这事必须回答,你为啥活着?如果你为了活着而活着,圣灵没有办法在你身上做工。如果你整天就是为了神而活,神的灵怎么可能不在你身上。虽然圣灵在你身上,你不是还得学习啊?很多人就以为圣灵在我身上,我就不用读《圣经》,哪有这回事。圣灵在我身上,我就不用学数学,数学奥赛我就可以考第一名?哪有这回事。所以说该有知识必须掌握知识。但是盼望和能力是从神而来。
今天咱们的答疑就到这,愿神祝福大家!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고린도전서> 15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사랑이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과 은사 등 앞에서 다룬 모든 내용을 명확히 설명해 줍니다. 우리는 많은 일을 해야 해서 겉보기에는 무척 피곤해 보일 수 있지만, 화인 사명 신학에 오면 참으로 보람차고 알찬 삶을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매일 필기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타자를 칠 줄 모르면 타자를 배우고, 글을 모르면 글을 배우며, 병음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전담하여 병음을 가르쳐 주며 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한 가장 큰 은사인 사랑, 영적 은사,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 등을 배워야 하는데, 피곤하다고 느껴지십니까? 어떤 이들은 '도대체 이런 것들을 해서 무엇을 하려는 건가?'라며 마음에 의문을 품기도 합니다. 세상에서도 이미 극심한 경쟁(치열함) 속에서 살아가는데, 화인 사명 신학에 오니 더 치열하게 훈련시킨다고 느낍니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소망이 있고, 영광스러운 소망의 복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장차 지극히 큰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이토록 수고를 아끼지 않고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의 가장 큰 슬픔은 살아가다가 아무런 소망도 없이 그냥 죽는 것입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지능이 가장 높았던 때는 대입 시험을 치를 때였고, 두 번째로 높았을 때는 대학원 시험을 볼 때였으며, 그 후로는 매일 그저 되는대로 살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심지어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도 결국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소망을 갖기 어렵기 때문에 그저 먹고 마시며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먹고 마시며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참으로 끔찍하다고 느꼈습니다. 병원에 가서 임종을 앞둔 사람을 볼 때 묻는 것은 늘 무엇을 먹고 마시고 싶은지뿐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 마치 지금 먹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멸망해 가는 사람을 볼 때 그에게 먹고 마실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소망을 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살아갈 때 반드시 소망 가운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잠시 논외로 하더라도, 이 영광스러운 소망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죽은 자의 부활, 영광스러운 소망의 복음"입니다. 오늘 우리가 힘써 주의 일을 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이러한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며, 이 수고의 열매가 우리를 따라 영원까지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소망이 없으면 참으로 비참합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는 기숙사, 강의실, 식당만을 오가는 단조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그런 삶에 정말 아무런 소망이 없었고, 완전히 살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나중에 제가 주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영광스러운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사람은 죽음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 후로는 매우 보람차고 알차게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은, 저 같은 사람은 몇 년 동안 쉬지 않아도 지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내면에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참으로 기쁘고 통쾌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소망이 없어지면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1. 우리가 전하는 것은 죽은 자의 부활의 복음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제가 전하는 것은 커리어 설계도 아니고, 여러분이 매일 멍하니 살아가게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전하는 것은 죽은 자를 살리는 부활의 복음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린도전서> 15:1-4)
우리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치유를 받은 이유는, 바로 우리가 전하는 것이 죽은 자를 살리는 부활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죽은 후에 천국에 가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여러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우리 손에 있는 강력한 무기(보물)입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없다면, 이 세상에 살면서 온갖 일에 휘둘리고 방해를 받게 됩니다. 입만 열면 다른 것은 할 줄 모르고 잔소리만 늘어놓거나 말에 가시가 돋쳐 모자 관계마저 극도로 긴장되게 만듭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든 문제는 세상일을 너무 무겁게 여기고, 이 영광스러운 소망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데서 비롯됩니다. 우리에게 이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는 것이 단지 천국에 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다리를 저는 사람이나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을 만져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곧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뜻입니다. 한 무리의 군사들이 겹겹이 포위되어 곧 전멸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갑자기 외부에서 구원병이 왔다고 해봅시다. 원래는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살아났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라는 개념은 사복음서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신 것,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되며, 고린도 사람들은 바울을 통해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문제가 우리 가운데서 해결되었다면, 그것은 이곳에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것을 믿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기 때문에 우리는 이 복음을 힘입어 구원을 얻고, 이 복음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큰 능력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본래 쓰러질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굳게 서게 되었고,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다시 강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성경공부 직전에도 저는 한 자매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최근 그녀가 공부하도록 독려했더니, 어제 배운 내용이 있어서 꽤 흥분하고 좋아하더니만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는 온몸이 쑤시고 눈꺼풀이 뻣뻣하며 온몸에 한기가 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귀신이 사람이 배우는 것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귀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먹고 마시며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죽은 후에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우리가 다시 강건해지고 굳게 일어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가 기도를 인도하는 것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토록 많은 귀신을 쫓아냈으니 분명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쫓아내다가 결국 자기 자신까지 떨어져 나가 버립니다. 그 속에 이 영광스러운 소망이 없기 때문이며, 이는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고린도전서> 15:5-6)
바울은 여기서 베드로를 조금 비판하기도 하고 때로는 야고보를 언급하며 그들의 방식을 다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사실만큼은 모든 사도가 인정하고 전파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명백한 증거가 있는 사실입니다. 일찍이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본 사람이 500여 명이나 되었고, 그중 대다수가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왜 세상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보이지 않으셨느냐고 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오직 그분의 제자들에게만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여러분이 참된 제자가 되면, 여러분 또한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음을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전하고, 이처럼 믿으며,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합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육안으로 본 적이 없지만, 매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큰 능력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 안에는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으며, 이것이 바로 제 안의 힘입니다. 이것은 헛된 것이 아니며, 제가 진실로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사람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는 복음을 참으로 믿는다면, 여러분은 분명 힘을 얻을 것이며 기꺼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드릴 것입니다. 아멘?
2.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믿는 것은 헛됩니다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고린도전서> 15:11-18)
고린도 사람들은 한 가지 잘못을 범했는데, 바로 복음 전하는 것만을 지나치게 좋아하여 무분별하게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아마도 베드로에게서 이 방식을 배웠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고린도에 와서 자신이 복음을 전할 때 설교 한 편에 5천 명이 주를 믿고, 기도 한 번에 3천 명이 주를 믿어 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헌금이 넘쳐났다고 간증했을 것입니다. 제 짐작으로는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고린도 사람들은 바울이 매우 옹졸하여 온종일 이리저리 트집을 잡고 다른 사람들은 다 틀렸고 자기만 옳다고 여긴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제 성경공부와 설교를 자주 듣는 사역자들이 있는데, 제가 여러분에게 좋은 권면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돌아가서 <성경>을 깊이 상고하며 예수님께서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보십시오. 베드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려 했지만, 예수님은 그것이 온전치 않다고 보셨기에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보시며 오히려 마음이 무거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이 생명의 떡이며, 자신의 살을 먹고 자신의 피를 마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듣는 이들은 사이비 종교인 줄 알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밖에서 사람들에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듣고 이단인 줄 알 것이며 완전히 모든 것을 망치고 말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사람들은 몹시 혼란스러워했고, 그 결과 많은 사람이 물러갔습니다. 교회를 세울 때는 반드시 사람을 걸러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은 이 논리를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베드로의 논리를 전하며 입으로는 대부흥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참된 부흥이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1904년에 교회의 대부흥만을 강조했던 것과 같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서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 생긴 것은, 갑자기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을 분별없이 다 교회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며, 이는 매우 그릇된 길로 간 것입니다. 이 길은 베드로가 열어놓은 길이었을지 모르나, 예수님이 여신 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여신 길은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끌어올린 후,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내버리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누구를 내버려야 할지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제가 누군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 누구도 필요하지 않으며, 오직 제게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만을 필요로 합니다.
교회를 세울 때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방식대로 세워야지, 결코 베드로의 방식으로 세워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세우고 난 후에 큰 문제가 생깁니다.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에게 편지하며 악한 동무들을 사귀지 말라(滥交)고 한 것은 성적인 문란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분별없이 친구를 사귀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교회에 오는 사람들을 잘 선별하여,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회 안에서 "죽은 자의 부활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하는 자들은 내버려야 합니다.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아까워하다가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함께 설교를 듣고 나와 근처 훠궈 집에 가서 몇몇이 둘러앉아 양고기를 먹으며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고 해봅시다. 아무도 부활을 직접 본 적이 없으니, 그런 의구심을 듣자마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이런 말은 사람의 믿음을 심각하게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우리 목회자들에게 종종 가르치기를, 누군가 여러분에게 그런 말을 하면 "맞아, 아무도 못 봤지"라고 맞장구쳐 주라고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속마음을 다 털어놓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런 일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이런 행동을 자주 한다면 저는 다 꿰뚫어 볼 것이며, 분명 여러분을 먼저 바깥에 둘 것입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만약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당장 먹고 마시며 죽을 날이나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양고기를 먹고 술 한잔 기울이며 다 함께 잔을 들고 무척 즐거워하겠지만, 소망이 없는데 어떻게 진정한 기쁨이 있겠습니까? 다음 날 귀신이 와서 여러분을 억압할 것이며, 처음에는 즐거움을 주다가 결국에는 파멸로 끝납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린도전서> 15:19)
사람이 이생에만 소망을 둔다면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합니다. 그의 모든 소망이 이생에만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나누는 이야기란 온통 이생의 일뿐입니다. 예를 들어 좋은 투자 기회가 있으니 100만 위안을 투자하면 연말에 300만 위안을 주겠다고 하면서, 무엇인지 묻지도 못하게 하고 목회자의 이름을 빙자하여 신뢰하게 만듭니다. 연말이 되면 10만 위안은커녕 단 1원도 남지 않게 됩니다. 이런 일을 당했을 때 목회자에게 속았다고 놀라지 마십시오. 그런 자는 목회자가 아니라 교회에 기어든 마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조심해야 합니다. 만약 교회에서 온종일 이생의 일만을 꾀한다면, 제가 경고하지 않았다고 탓하지 마십시오. 제가 여러분을 치리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다루실 것입니다.
죄를 짓지 마십시오. 사람에게는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죄를 짓는 이유는 그 안에 이기심이 있고, 자신이 아주 오래 살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지만 사실 몇십 년에 불과합니다. 이리저리 아등바등 살다가 게임 오버(game over)가 될 때, 이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이생에만 소망을 둔다면 모든 사람 가운데 더욱 불쌍한 자이며, 사람에게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소망이 없다면 참으로 가증한 사람입니다. 세상적인 소망을 품고 사는 것은 대단히 비참한 일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복음 진리를 품고 이런 소망을 가질 때, 장차 우리는 썩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수고를 아끼지 않고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평소 우리가 하는 말을 돌아보십시오. 열 마디 중 몇 마디나 세상적인 소망을 담고 있습니까? 사람에게 세상적인 소망이 들어가면 수많은 문제가 생겨납니다. 바울은 자신이 믿는 바를 증명하기 위해 날마다 죽음의 위험을 무릅썼습니다. 만약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왜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며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섬기겠습니까? 그냥 먹고 마시며 즐기지 않겠습니까?
또 우리가 어찌하여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고린도전서> 15:30-32)
우리 형제자매들이 연구 기관에 있든, 학교에 있든, 작은 가게를 운영하든, 농사를 짓는 농부이든, 제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살아가면서 영광스러운 소망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치명적인 일입니다. 사람이 영광스러운 소망을 잃어버리면 눈앞의 일에만 매달리게 되고, 바쁘게 살다가 죽거나, 아니면 병이 나서 저를 찾아와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바쁘게 살다 병이 나는 것은 귀신이 와서 여러분을 억압하기 때문이니, 여러분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은혜를 경험했더라도 바쁘게 살다 보면 잊어버리고, 잊고 나면 눈앞의 사소한 일만 보게 되는데, 그것은 실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소한 일에 가득 찬 소망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무지한 것이니, 자신을 잘 훈련하여 바로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원 속에 있는 영광스러운 소망을 늘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바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을 원형 투기장에 던져 넣었을 때 그는 어떻게 살아서 걸어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여러분 같았으면 분명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해하지 못할지 몰라도 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주님을 믿은 첫날부터 이 영광스러운 소망을 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세상일이 별 의미가 없다고 여겼으며,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 하듯 하였고, 제가 행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무엇도 저로 하여금 하나님을 내려놓게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걸어온 길입니다. 저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이생에만 소망을 둔다면 모든 사람보다 더 불쌍한 자입니다. 오늘 자신을 이 세상의 얽매임에서 잠시라도 건져내 보십시오. 짧은 시간이라도 좋습니다. 그러면 영광스러운 소망을 품기 시작할 것입니다. 가정의 관계도 회복되고 많은 것이 변화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광스러운 소망을 품게 되면 많은 세상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됩니다. 예를 들어 공직 시험을 준비할 때도 긴장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담담히 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포기하고 무기력하게 주저앉는(躺平) 것이 아니라, 발을 땅에 딛고 성실하게 행하며 뼛속 깊이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증명할 때 우리가 전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고, 목숨으로 믿음을 증명할 때 여러분이 믿는 바가 지극히 큰 은혜와 영광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늘 여러분 몸에 머물고, 부활의 능력이 늘 여러분 몸에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바울이 투기장에서 살아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바울을 보호하셨기 때문이며, 투기장 안에서도 어떤 맹수도 그를 해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일찍이 거구의 두 사람을 섬긴 적이 있습니다. 한 명은 100kg의 태권도 유단자이자 무술 코치였고, 다른 한 명은 150kg의 스모 선수였습니다.
이 스모 선수의 손가락은 당근처럼 굵어서 정말 위압적이었습니다. 오자마자 손이 통제가 안 되어 자꾸 사람을 때리고 싶다며 빨리 도와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 손으로 때렸다가는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지경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직장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우리 학교의 한 학생에게 회의실을 하나 구해달라고 한 뒤 그를 데리고 들어가 강력하게 기도하여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기도하는 도중에 그 귀신이 커다란 두 손을 뻗어 저를 붙잡으려 했지만 닿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그가 바닥에 쓰러졌고, 2분 뒤에 깨어나서는 귀신이 나갔으며 이제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기도할 때 속의 귀신이 그의 손으로 저의 목을 졸라 죽이려 했으나 아무리 해도 손이 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제 믿음이 크게 솟아올랐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이토록 놀라운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100kg이 넘고 키가 190cm인 태권도 고수가 손을 뻗어 저를 치려고 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주먹이 올라오기도 전에 강력한 힘이 그를 몇 미터 밖으로 밀쳐냈고,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나뒹굴었습니다. 제 사무실 안이었기 때문에 다치기라도 하면 곤란하여 서둘러 다가가 다치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아무런 상처도 없었습니다. 저는 투기장에서도 아마 이와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 위에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또 동작이 번개처럼 빠른 사람을 섬긴 적도 있습니다. 우리가 앉아서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영께서 제게 물러서라고 하셔서 뒤로 1~2미터 물러났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순식간에 제 앞으로 달려들어 손톱으로 할퀴려 했고, 깜짝 놀란 와중에 제가 그의 두 손을 낚아챘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섬기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참으로 놀랍고 은혜롭다고 느꼈습니다. 결코 어떤 것도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목숨을 하나님께 바쳐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간증이며, 여러분에게 이런 경험이 없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기억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도 반드시 은혜를 베푸셔서,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원수 마귀를 짓밟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귀신을 쫓아내는 자가 되고, 원수 마귀를 짓밟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분명 이 기이한 일들을 행할 수 있습니다. 비록 가까이서 직접 섬기지 못하더라도, 원거리에서도 동일하게 원수 마귀를 짓밟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영광 가운데서 주님과 하나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의 영광스러운 칭찬을 받으며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될 것입니다.
3. 사망은 아담으로 말미암았고, 죽은 자의 부활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20-22)
우리는 흔히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지만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담이 죽었을 때 여러분도 아담이 아니었지만, 아담이 죽었기에 여러분도 함께 죽어야 했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기에, 한 사람의 부활로 모든 사람이 부활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논리입니다. 하나님의 영원 속에는 한 가지 계획이 있는데, 바로 이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을 가려내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이래의 영원한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려는 뜻을 이미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우리 또한 만물을 발아래 짓밟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관문은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를 멸하는 것입니다. 즉 죽음에 대한 이해와 부활에 대한 이해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사망은 단순한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의 영이 사망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만 소망을 품고 영원 속에 소망을 두지 않으면, 죽은 후에 사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사망이 그 사람 위에서 왕 노릇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위에서 왕 노릇 하실 때, 우리의 육신은 비록 죽더라도 우리는 영원 속에서 살아 있게 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며, 우리의 육신 또한 부활하여 영광스러운 몸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입니다. 마지막에 멸망받을 원수가 바로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망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육체적 죽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망의 영을 뜻하며, 곧 사망의 영을 완전히 멸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이기셨는데, 여러분은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하십니까? 그분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그 사흘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것이 치열한 영적 전쟁이었음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승리하셨기에 사망의 권세는 우리에게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합니다. 오늘 저는 담대히 여러분에게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분을 힘입어 사망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모든 치료비 걱정에서 벗어나십시오. 치료비는 여러분을 연명하게 하다가 죽음에 이르게 할 수는 있어도 영원히 살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잔병은 다스릴 수 있을지 몰라도 큰 질병 앞에서는 무력합니다.
영원한 소망을 품은 우리들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업이든 직장이든 그 무엇도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믿는 것을 가로막을 수 없으며,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는 것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해서 돈을 벌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가장 강력한 원수인 사망마저 이겼다면, 이기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직장 때문이고, 사업 때문이며, 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완전히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사망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죽음을 막을 수 있다면 우리 모두 돈을 벌러 갔을 것입니다. 돈으로도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 왜 목숨 걸고 돈만 벌려 합니까? 60세 전에는 목숨을 바쳐 돈을 벌고, 60세 후에는 돈으로도 목숨을 바꾸지 못하니, 이것이 바로 무지함입니다. 반면 섬김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미 여러분에게 그 증거를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사망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왔으나, 죽은 자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으며,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이 그에게 복종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5:23-28)
4. 부활한 몸은 썩지 아니합니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고린도전서> 15:35-54)
이 말씀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일찍이 나사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무덤 밖으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부활은 단지 육체의 소생에 불과했고, 훗날 나사로는 다시 죽었습니다.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깊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사로의 소생과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전혀 다른 차원의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영광 가운데 부활하셨으나, 나사로는 병들어 죽었다가 이전의 육체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를 보면 그분은 벽을 통과하여 들어오실 수 있었으며, 잠긴 문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을 가둘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여전히 몸을 지니셨지만, 그것은 썩지 아니하는 영광스러운 몸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이성적 이해를 뛰어넘는 것이지만 괜찮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믿는 복음이 바로 이러한 부활의 복음이지, 나사로처럼 잠시 연명하는 부활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중병에 걸렸을 때, 우리는 기도를 통해 그가 그저 육신으로 계속 살아가기만을 바라곤 합니다. 제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기도해서 그저 고통스럽게 연명하게 하는 것은 고난의 연속일 뿐이니, 차라리 평안히 주님 품에 안기도록 돕는 편이 낫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제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약 그런 지경에 이른다면 저를 평안히 주님께 가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육신에 매여 사는 것은 참된 의미가 없습니다. 나사로도 사실 참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죽음의 고비를 두 번이나 넘겨야 했으니 말입니다. 숨을 거두는 과정은 영혼이 육신의 껍질을 벗는 것 같아서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육신으로 그저 살아남는 것에만 소망을 두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는 그저 육신으로 연명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열납해 주시기를 갈망하는 것이며, 그리할 때 영원한 영광의 소망을 얻게 될 것입니다. 때로 죽기 싫어하며 육신에 집착하여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볼 때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혈과 육의 몸으로는 영원한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더 이상 소망을 두지 말고, 영원 속에 소망을 두십시오. 이 영광스러운 소망을 품고 세상에서 발을 땅에 딛고 성실히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고린도 사람들처럼 벽을 통과하는 능력을 얻어 남의 물건을 훔치면 얼마나 편할까 하는 식의 헛된 생각을 품지 마십시오. 그것은 근본적으로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에 불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몸은 썩지 않는 몸이지만, 나사로의 몸은 결국 썩어질 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 가운데 연명하는 것에 더 이상 소망을 두지 마십시오.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영원한 소망을 품게 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여전히 육에 속한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의 치유와 사역이 마귀보다 1분 더 버텨서 사람을 며칠 더 살게 하는 것인 줄로만 아는데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모든 것을 영적으로 꿰뚫어 보아야 한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사람이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 먼저 믿음의 정리를 잘 해주고, 죽음을 앞둔 사람도 세상을 초연하게 바라보고 주변에 살아 있는 사람들도 영원한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돕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역입니다.
본문에서 마지막 나팔이 불린다는 것은 <요한계시록>의 일곱 번째 나팔이 울려 퍼지는 것을 뜻합니다. 일곱 번째 나팔이 울릴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고, 살아 있는 우리는 공중으로 들림 받아 주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올라가지 못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반쯤 올라갔다가 합당치 않음이 드러나 다시 내던져질 것입니다. 즉 형제자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죽은 자의 부활과 영광스러운 소망의 복음을 얻기 위해 힘써 사모하고 달려가야 합니다.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 몇 가지 중대한 일이 일어납니다. 온 세상이 두 사역자(두 증인)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볼 것이며, 며칠 지나지 않아 길거리에 누워 있던 시체가 홀연히 살아나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든 백성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할 것이며, 살아 있는 자들도 공중으로 들림 받아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변화되어, 썩어질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때가 되면 모두 열여덟 살의 젊은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말하는데, 여러분은 여전히 육신의 얼굴에만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그 열여덟 살도 결국 썩어질 육체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몸을 주실 때 여러분은 벽을 통과할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벽을 통과하는 목적이 도둑질을 하기 위해서라면, 올라가다가도 들림 받지 못하고 다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한 가지 사실, 곧 주 예수님을 힘입어 승리해야 함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5. 주 예수님을 힘입어 승리함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린도전서> 15:55-57)
주 예수님께서 행하신 대로 우리도 행하고, 주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우리도 걸어갑니다. 주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은 율법에 얽매인 길이 아니라 자신을 온전히 바치신 길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린다면 율법은 아주 기초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율법의 차원을 완전히 뛰어넘었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율법을 폐하려 하심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고, 이 영광스러운 소망을 품으며, 이생을 살아가는 이기심을 완전히 벗어버릴 때 사망을 넉넉히 이기게 될 것입니다.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니, 우리는 율법을 초월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 예수님을 힘입어 승리한다는 것은 주 예수님처럼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이 영광스러운 소망을 품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믿음을 품고 나아가면 결코 영적으로 죽지 않습니다. 비록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힘써 주의 일을 더 많이 감당해야 합니다.
6. 소망을 품고 힘써 주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58)
우리에게 이 영광스러운 소망이 없고 장차 주 예수님 앞에 나아가 결산할 일도 없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마음껏 먹고 마시며 즐겨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게는 노는 것도 아무런 참된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저는 수많은 곳을 다녀보았지만 전 세계의 시골도 다 비슷하고 도시도 다 비슷하여, 둘러보아도 참된 만족이 없었습니다. 저는 일하며 섬기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합니다. 결코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제 안에 이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어서, 장차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저의 가장 훌륭한 답안지를 주님께 올려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주님, 제가 왔습니다"라고 아뢸 때, 하나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들어와 네 주인의 영광에 참여할지어다"라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힘써 주의 일을 더욱 많이 감당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제가 너무 치열하게 일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억지로 떠밀린 경쟁이 아니라 제가 기쁨으로 자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내몰리는 경쟁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괴롭게 합니다. 저 같은 사람은 남에게 휘둘리거나 쫓기지 않으며,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영적인 도전을 줄 뿐, 헛된 경쟁에 치일 시간조차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온종일 세상 상사의 통제를 받고 실적 평가에 시달리며, 동료가 만든 자료가 자기 것보다 뛰어나면 괴로워하고, 남의 실적은 올라가는데 자신의 프로젝트는 줄줄이 무산되는 것을 보며 불안에 떱니다. 그런 세상적인 경쟁에 내몰려 괴로워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저는 영적으로 앞서 나가며 남들에게 거룩한 도전을 줄 뿐 세상 경쟁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전심을 다해 일하며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 하듯 충성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오해하지 마십시오.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는 세상의 치열한 경쟁에 짓눌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먹고 마시며 안일을 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의 거룩한 열망이 있으니, 맡겨진 일을 탁월하게 완수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결산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 직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아니냐고 핑계를 댑니다. 일을 충성스럽게 하라는 것은 결코 예수님을 내팽개치라는 뜻이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세상일에 파묻혀 결국 예수님을 저버리고 맙니다.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저의 힘이시요 지혜의 근원이십니다. 육신의 생각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이며,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입니까?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있고, 우리 내면에 부활의 산 소망이 넘쳐나서, 이 영광스러운 소망을 품고 이 땅에서 힘차게 달려갈 때 참으로 복되고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비할 데 없이 좋습니다! 사람의 일생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큰 능력입니다. 이 능력이 있으면 늘 하나님을 풍성히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앞에 이미 영광스러운 길을 열어 놓으셨으며, 여러분을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하늘의 영적 능력을 지닌 자로 세우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여러분 위에 임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이러한 산 소망이 있기 때문이며, 사망조차도 우리 발아래 짓밟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몇만 위안, 심지어 몇십만 위안을 사기당한 이들도 있는데, 이는 모두 이생의 헛된 소망에 사로잡혀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앞부분에 기록된 여러 지침들은 실제적인 실행 방법에 불과하며, 그 모든 것의 뿌리는 바로 오늘 나눈 이 장에 있습니다. 곧 우리가 죽은 자의 부활의 소망을 굳게 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 영광스러운 소망을 풍성히 부어주시기를 원하며, 여러분 모두에게 크신 은혜와 축복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