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我洋洋洒洒地讲了一个多小时。有的人就讲:老师,你太厉害了,也就22节的经文,一张A4的纸都写不满,可是到了你的口里却可以讲一个小时。我就觉着这道挺深的,也不知道有没有讲清楚?但是有一点肯定讲清楚了,你和我都有王的命。别做个笔记跟像杀猪似的,笔记都不会做,咋做王呢?
所以我巴不得大家都预备好自己,成为一个做王的人。不管你多大岁数,你还是一个做王的命,你要养成一个好习惯,管理好神交托给你的事情。人有了异像,有了梦想,有了操练,不管你是七十,还是八十,在永恒里你还是一个婴孩,在永恒里才刚刚开始。在永恒里做王,前面还有很长的路。神是万王之王,我们就是那个万王,这件事肯定没有整错。这个听起来是不是很给力?
如果大家没有问题,我给大家带来点疑惑。你说大卫做王是预定的吗?那扫罗也是被预定的吗?你说,他们没有选择,就是那样的。我告诉你,我们的神不是把你卡死在那,是神预先知道你的选择。神其实看着很无奈。所以大家千万不要甩锅给神,认为是神把我造成这样的。我给大家一个建议:把我们一生活着的这点事看透,看成虚空,你就会追求永恒里的荣耀。人里面的选择,一定会跟你的悟性紧密相关。先对付我们的核心利益,把今生活着的事都看透了,就会看见活着的那些事都不重要了,神的话最重要。
可是我整天呼天喊地的跟大家讲,虽然耳朵也都听出茧子来了,可就是听不进去!一碰到钱,你就难受,为啥呢?因为那是真金白银!如果你把它当成冥纸,你就不会抢了。最后还是要把这事看透了,看明白了,心里就能清清楚楚。如果遇到事你就慌乱,就难受,赶紧回到最初的那个点,就是这些事都不重要。两眼一闭,两腿一蹬,什么事都和你没有关系了。
我们人就是认为老公,孩子,钱、工作,生意很重要,其实这些都不重要。所有这些事能不能用来操练我们的德行、心思意念和价值体系?如果还没有看明白,跟《道德经》里的老子比还差很远,赶紧悔改,别在那坚持自己的那一套看法。扫罗虽然什么都明白,但是一到关键时刻又开始坚持自己的那一套看法。
大家千万不要因为神的拣选,甩锅给神。神其实拣选了很多人,但是很多人都掉链子了。神本来给你安排了做王的命,是你自己掉链子了。扫罗完全可以选择不这么干,应该带着大卫回家,告诉大卫:我继续做王,神什么时候取我的命,你什么时候接替我做王。结果告诉大卫将来必做王,还要大卫善待自己的后裔。
如果是我会告诉大卫:你来做王吧,我不行,我不想再招鬼了,不想再难受了。可是扫罗没有,最后他自己溜了,让大卫在外漂泊,后来又去追杀大卫。你说扫罗这是什么脑子?如果我们像扫罗一样把王位看成了我们的核心利益,就会有时候明白过来一点,感谢一下人家不杀之恩,可是回头又去追杀别人。所以要对付我们里面的核心利益。如果你认为今生全是虚空的虚空,很多事就不会计较。所以人的高度不够,胸怀不够宽,人在永恒里的根基就不牢,就会产生很多麻烦。人一旦追求永恒里的事就好办了。
Q1:老师,为什么大卫走到扫罗面前,扫罗没觉察有人来过了呢?
他在专心拉屎,啥也听不着了。咱们问这问题挺有意思。人有三急。急着拉屎就啥也听不见了,这是客观原因。还有一个不是那么客观的原因,是耶和华神将他交在大卫手里,神使他听不见。难道神让你听不见很难吗?神要堵住你的耳朵让你听不见,不是一件很难的事儿。大卫即使跟他底下的人在那儿嘀咕要不要杀他,他还真就听不见。
Q2:老师,我是不是应该把每个人都看成是神的受膏者,像大卫对扫罗一样,只是尊重,不抱怨、不加害?
因为扫罗是大卫的上司。撒旦是怎么来的?就是违背了上面的权柄。所以,一个人最重要的关系就是跟上面权柄的关系。很多基督徒跟上面权柄的关系搞得一塌糊涂,下面的牧养还挺用心。跟上面杠的时候,本事老大了;牧养下面的时候是为父为母慈爱的心。有的时候,我说:你把为父为母的心用在我身上一点好不好?别整天让我难受。这是啥意思呢?就是很多人把关系搞错了。
一个十字架有上、下、左、右,跟上面的关系是最重要的关系,别搞错了。不是我需要你,而是你需要我。对于我来说,我跟神的关系最重要,你们都不重要。我一点儿也不夸张。有的人在我这里杠啊杠,我会说:你要想跟我好好干,就好好干;不想跟我好好干,现在就滚蛋。原因很简单,我靠的是我的神。你以为我靠你?你想走就走。啥没有都行,只要有神。
我鼓励大家要整对跟你上面的关系。但是有些人傻成什么样呢?不搞好跟上面的关系,反而跟旁边、左右和下面的关系都搞得都挺好。只要跟上面的关系没搞好,全都完蛋。大卫非常清楚这事,他把关系全部搞得板板正正。大卫绝不会把下面的人当做神仙似的给供起来,没有惯着这回事;旁边的、跟他同一个级别的人,也绝对不会瞎搞、把他们供起来。
人际关系的定位非常地重要。千万别把所有的人都当做你爸,别把所有的人都当做神仙供上。你上面的就是你上面的,你下面的就是你下面的。有的人把妈妈做成了三孙子,儿子做成了老爷子。这不乱套了吗?提这个问题是悟性不通的状态。
Q3:老师,如果父母把钱给另一个儿女,需要自己养老,这种也是要不在乎是吧?
一些做儿女的看到自己的父母把钱给了另外一个儿女,心里头就会说:养老,就自己养吧。是这意思吗?如果是这意思,你要改。因为养老人是恩典。我们以为那是个负担,你就搞错了。我可得告诉你,那是祝福。我妈妈养我爷爷,就是她老公公,天底下应该很少有这样的儿媳妇了。养完了以后,我妈这一辈子可蒙祝福了。我妈照顾我爷爷,我爷爷死的第二年我出生。我妈有我这个儿子挺好啊。我妈的钱都是我给的,唯一遗憾的就是不能老跟我住在一起。如果把这些事搞反了,就把老人往外推;如果搞对了,就是给你钱还是不给你钱都不要紧,就把老人接到自己家里来。
Q4:老师,侵略别国的士兵,听命于上司杀了人,这是好的吗?
你这问题挺厉害,这事不归我管。如果你是被送到战场上的那个兵,你不去就被军法处置,你就好好去。我们经常问这些稀奇古怪的问题,也不知道是为了要把我难倒,还是真想知道。你去当兵了?还是你儿子去当兵了?还是谁也没去,而是别人的儿子去了乌克兰?弟兄姐妹们,千万别再给我整这些稀奇古怪的问题。别再问,为什么世界不和平?为什么轰炸伊拉克?为什么占领叙利亚?为什么占领阿富汗?为什么神允许这些?
Q5:老师,在工作中,领导人明明得了好处,嘴巴说话还伤人,怎么相处?
有两种选择:一种是你好好的干下去;另外一种就是不干了,换一个地方。如果你还需要奶粉钱,你就在那儿好好干;如果你不需要奶粉钱,你看着不顺眼,你想干嘛就干嘛去。如果你换了一个地方,发现天下乌鸦一般黑。那为什么天下乌鸦一般黑呢?问题就在你自己,倒霉啊!那别人怎么就碰不上呢?别人碰上了,但是人家学习大卫,神就祝福他,就不再碰上这悲惨的事了。
Q6:老师,那要是不能生孩子,怎么给祝福?
这是啥话?你祝福人是生了孩子以后祝福自己的孩子,还是生了自己的孩子把孩子送给人,用孩子祝福别人?我想应该不是第二种。认为不能生孩子就不能给祝福,可能《圣经》你没读好。《圣经》说得很明白,那不怀孕不生养的比能怀孕生养的儿女还多,因为让人活着的乃是灵,所以属灵的儿女就是儿女。从肉生的是肉身,从灵生的就是灵。你应该是个基督徒,但我想你应该没整明白神的话,离神的话还有点距离。
Q7:老师,赡养老人和体贴老人的肉体怎么鉴定?
这有什么难鉴定的?老是觉得赡养老人就得体贴老人的肉体,体贴肉体就叫赡养老人。我是不理解你们为什么有这样的困惑。你赡养老人,但如果老人整天在那闹事,你不管吗?比如某人的爸爸得了老年痴呆,整天全屋子到处翻。然后有一天拿着一张银行卡到复印店复印了一百多份,他以为复印了卡就复印了那么多钱。你看我的卡上有一百块,我复印了一百份,我应该有一万块呀。傻掉了,银行里还是那一百块。后来这个老人经常闹,拿剪刀要戳人。那怎么办?我告诉那人修理他。修理完了以后老人好了,不闹了、乖了。所以赡养老人和体贴老人的肉体一点关系都没有。
Q8:老师,大卫割扫罗衣服,他为什么自责?
他觉着这不是什么太地道的事。其实不需要割扫罗的衣服也能让扫罗知道自己在洞里差点杀了他。为什么非要割了衣服出来告诉扫罗呢?不需要,有点Low。难道非要割点衣服来证明吗?大卫自责就是觉着自己做的有点Low。
Q9:老师,人在国外,父母不在身边,怎么做才是最好呢?
如果你是一个有命定的人,你是一个合神心意的讨神喜悦的人,就算父母不在身边你都能成为他们的祝福。这祝福是个属灵的事,不是住在身边不住在身边的事。你如果能够合神的心意,难道神不能看顾你的妈妈吗?绝对能。所以我感谢神,因为我的缘故,神怜悯我妈妈。我的妈妈一辈子挺好,一有病,在电话里带她祷告就好了。最重要的是,你是不是一个蒙祝福的人?是不是一个合神心意的人?这就是为什么我们一直把大家往命定里推。成为有命定的人才是最重要的,有命定的人就是为神而活,是好得无比的。
Q10: 我之前跟婆婆在一起住,她总是喜欢挑拨离间,我该怎么赡养她?
因为人没有智慧啊。如果有智慧,会这样吗?我鼓励大家要不断地提升自己的水平,提高自己的智慧,别要知识没知识,要年龄一大把。人有的时候太愚蠢了,所以很多事处理不了。你让我处理,我给你处理得老好了,因为我知道咋处理。你得慢慢学,千万别丧失信心,能学一点是一点,难的处理不了,简单的还能处理,以后难的也会处理了。
1. 서론
- 덕이 두터워야 만물을 감당할 수 있고, 만물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덕행이 낮은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 우리는 모두 하나님 나라의 왕자들입니다. 왕이 되려면 왕다운 덕행이 있어야 하고, “노자”를 넘어 《도덕경》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2. 왕이 되려면 왕다운 도량이 있어야 한다
- 사울은 덕행이 부족하고 속이 좁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왕의 자리가 그의 평생의 올무가 되었습니다.
- 왕다운 도량이 있으면 왕의 자리가 사람의 올무가 되지 않습니다! 다윗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원수가 바로 눈앞에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왕다운 도량입니다.
3. 사람이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 비극의 근원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바로 “덕이 없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바로 “덕”입니다! 다윗의 논리 체계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 하나님과 원수가 된 사람은 늘 괴로워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만 생각하기 때문에 늘 자신이 손해를 보았다고 여기고, 늘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4. 왕의 품성
- 다윗은 평생 편안하게 살았습니다. 그의 깨달음이 매우 투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을 개 한 마리, 벼룩 한 마리로 여겼고, 한 번도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 사람에게 왕의 품성이 있으면 늘 자신이 빚진 사람처럼 느끼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괴로워하지도 않습니다. 거저 받은 것을 거저 내어 줍니다.
5. 결론
- 그리스도인에게는 왕이 될 사명이 있지만, 왕다운 덕행도 있어야 합니다! 깨달음이 분명해야 합니다. 이기적이 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됩니다.
- 당신과 나에게는 모두 왕이 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왕이 될 것이고, 나라도 반드시 견고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다운 도량과 덕행을 갖추도록 자신을 준비해야 합니다!
핵심 단어
- 왕의 덕행
- 왕다운 도량
- 덕이 두터워야 만물을 감당함
- 하나님과 원수가 됨
- 깨달음이 투명함
-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
- 늘 빚진 사람처럼 느낌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무엘상》 24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처음에는 제목을 “왕다운 도량”이라고 정했다가 나중에 “왕의 품성”으로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이 표현들은 이 장에 나오지 않습니다. 각 장의 제목은 역시 그 안에 있는 가장 좋은 문장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하고, 그러면 와서 “시비를 걸” 사람도 많이 줄어들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저는 이 장의 주제를 “너도 반드시 왕이 될 것이며, 나라가 네 손에서 견고해질 것이다”로 정했습니다. 사실 이 말은 사울의 입에서 나온 말이며, 사울이 다윗을 평가한 말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을 죽이려는 사람이 여러분을 이렇게 평가한다면, 여러분은 단지 대단하다는 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내가 이제야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라.(《사무엘상》 24:20)
어떤 기업들은 사람을 360도, 사각지대 없이 평가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평가할 때 여러분과 원한이 있는 사람은 가장 낮은 점수를 줍니다. 여러분에게 잘못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서너 명이 낮은 점수를 주기만 해도 총점은 더 이상 높아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원수, 심지어 여러분을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여러분을 칭찬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경쟁자가 이미 여러분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목을 “너도 반드시 왕이 될 것이며, 나라가 네 손에서 견고해질 것이다”로 정했습니다.
지금 문제는 여러분에게 왕다운 덕행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다윗 안에 담긴 것들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의 품성과 도량은 완전히 ‘덕이 두터워야 만물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에 어울렸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덕행이 낮으면 무언가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때로 저는 어떤 사람의 덕행이 어떻다고 불평하기 시작하면 마음속으로 선악을 분별하게 됩니다. 그러나 매번 자신에게 선악을 분별해서는 안 된다고 일깨워야 합니다. 다윗과 비교해 보면 저는 정말 너무 부족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정말 대단한데, 사람은 왜 평생 제대로 배우지 못할까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모두 너무 부족합니다. 본받는 길은 아직 멀고, 정말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한번은 마음이 조금 혼란스러웠습니다. 다른 사람이 제게 잘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 그렇게 잘해 주었는데 그가 제게 잘해 주지 않으니 마음이 조금 혼란스러웠습니다. 생각해 본 뒤에도 역시 제 덕행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괴로워지면 《도덕경》을 찾아보게 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인 제가 노자만도 못하고 손자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고, 결국에는 “삼손자”가 되어 버립니다. 노자를 반드시 뛰어넘겠다는 결심으로 《도덕경》을 펼쳤는데, 그 안의 한 문장이 저를 단번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게 했습니다. “도는 만물을 낳고 덕은 만물을 기른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뜻은 “도”가 만물을 낳았다는 것, 곧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그 덕행이 없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사무엘상》 24:14)
저는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이 형편없는 사람아, 네가 이런 덕행을 가지고 화인명정신학을 세우고, 날마다 성경공부를 하며 《창세기》와 《사무엘상》을 공부한다고?” 그러나 때로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들개 한 마리나 벼룩 한 마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면 저는 큰 위로를 받고, 함께 깨닫게 됩니다. 사실은 제 덕행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늘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괴롭습니다. 오히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잘못했다고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렇게 은혜롭고 후하게 대해 주셨는데도 제가 이런 덕행밖에 없다면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중국 사람들이 “덕이 두터워야 만물을 감당할 수 있다”라고 한 말은 정말 잘 요약한 말입니다. 한 사람이 평생 살아 내어 나타낸 결과를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스무 살이 넘은 아들을 둔 한 어머니가 제게 아들의 덕행을 위해 빨리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아이의 문제가 곧 어머니의 문제라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받아들이지 않고 먼저 아들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만 했습니다.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들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메시지를 보내서 저와 제 동역자들이 모두 가서 자기 아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가 돈을 낸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다.” 사실은 역시 제 덕행이 부족한 것이지, 그 사람의 덕행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입을 열어 말하기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사람은 평생 아주 이상한 일들을 자주 만납니다. 그러나 이런 이상한 일들은 거울처럼 자신의 덕행을 비춰 줍니다.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한번은 “기네스 세계 기록”을 만들어 낸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어느 날 우리 가운데 박사과정에 있는 사람이 왔습니다. 여자친구와의 관계 때문에 상처를 받아 귀신에게 눌렸고, 철로에 누워 자살하려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나중에 제가 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자 회복되어 정상적으로 박사과정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가 혼자 밖에서 집을 빌려 사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와 함께 살면 월세를 밖에서 내는 것보다 약 3분의 1 저렴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 월세를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고, 그가 일부만 부담하면 우리도 그를 도와주는 셈이었습니다. 나중에 모두 의논하여, 어차피 다 같이 화장실을 사용하니 각자 휴지를 따로 가져올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100위안씩 내서 샴푸와 휴지 등 생활용품을 사고 함께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박사는 그 말을 듣자 자신은 100위안을 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가끔 자신이 조금 사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공짜로 이득을 보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목회자로서 그가 이 돈을 내지 않는 것을 따지지 않을 수는 있지만, 목양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목양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사실을 알려 주어야 했습니다. 곧 그가 매우 인색한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기네스 세계 기록을 단번에 깨뜨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인색하기는 하지만 상하이 남자들 가운데서는 가장 통이 큰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덕행으로 평생을 살면 망한 것이 아닙니까? 그가 왔을 때부터 이런 덕행을 가지고 있었고, 사실 이사 갈 때까지 화장지와 샴푸를 한 번도 사지 않았습니다. 모두 제 것을 공짜로 사용했습니다. 이런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제가 그와 같은 수준으로 다툴 수는 없습니다. 저는 《도덕경》의 노자가 가진 수준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그런 사람 때문에 화를 내거나 괴로워하지 않았습니다. 100위안 때문에 괴로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집 안의 어떤 것도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며, 모두 우리가 슈퍼마켓에 가서 사 온 것입니다. 화장지와 샴푸 외의 물건도 그가 마음대로 사용하게 했습니다. 우리의 수준이 비록 노자만큼은 못 되어도, 그래도 소자와는 비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도덕경》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뛰어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저는 사람이 왕이 되려면 왕다운 덕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의 덕행을 손가락질하며 멸시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제게는 사치스러울 정도로 큰 소망이자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우리 가운데 모든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왕자들이 되고, 모두 왕이 될 사명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제 손에 맡기신 것들이 모두 견고해지고, 우리가 관리하는 모든 것이 잘 다스려지는 것입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분 모두가 《도덕경》 속의 노자를 뛰어넘기를 바랍니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좇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더이다 하니 사울이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사무엘상》 24:1-2)
앞 장에서는 사울이 다윗을 없애려 했고, 거의 다윗을 만두소처럼 포위할 뻔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방해하자 사울은 방향을 돌려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러 갔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을 몰아낸 뒤 돌아와서 다시 다윗을 쫓았습니다. 사실 사울 같은 사람은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보다 조금 낫습니다. 적어도 사울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블레셋 사람들과 싸웠고, 실제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일도 그럭저럭 잘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문턱 원숭이”, “집 안에서만 큰소리치는 사람”, 혹은 “아랫목의 왕” 노릇만 합니다. 밖에 나가면 아무것도 아니면서 집에 돌아오면 아주 대단합니다.
길 가다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마음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라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사무엘상》 24:3-4)
이 장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이 정말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사울이 들어간 동굴이 바로 다윗이 숨어 있던 동굴이었습니다. 다윗 곁에 있던 사람들은 이 기회에 사울을 죽이라고 다윗을 부추겼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미 사울을 다윗의 손에 넘겨주신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때 사울이 다윗에게 죽임을 당했다면, 큰일을 해결하지도 못한 채 죽은 것이니 그 장면을 생각만 해도 역겹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사울을 죽이자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다만 숨을 죽이고 조용히 가까이 가서 사울의 겉옷을 베었습니다. 본문에는 사울이 볼일을 본 뒤에 엉덩이를 닦았는지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부적절한 일을 하고도 뒤처리를 하지 않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몰래 먹었으면 입도 깨끗이 닦아야 합니다. 사울의 겉으로 드러난 위생 습관이 어떠했는지는 잠시 제쳐 두더라도, 그의 생각과 마음속에 있는 것들은 매우 더러웠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사울처럼 생각과 마음이 더러운 사람이 배출한 대변은 매우 지독하고, 아주 오래된 말똥처럼 냄새가 납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마음속 위생을 청소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 후에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므로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그 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이르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뒤를 돌아보매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니라(《사무엘상》 24:5-8)
다윗이 사울의 겉옷을 벤 뒤 사울도 몸이 한결 가벼워진 듯 동굴 밖으로 나왔습니다. 사울이 앞서 가고 다윗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다윗은 먼저 신선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뒤 사울을 불렀고, 그를 자신의 주인이자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사울의 생각과 마음이 아무리 더럽다 해도, 그때의 그는 여전히 왕이었습니다. 다윗의 왕이자 장인이었고, 나이와 서열로 보아도 어른이었습니다. 사울은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다윗은 몸을 굽혀 땅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사울은 그 모습을 보고도 자신이 빚진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방금 전의 냄새는 조금도 낭비되지 않고 모두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들이마셨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사람의 말을 들으시고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시나이까 보소서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나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사무엘상》 24:9-10)
다윗은 한 번도 정신을 잃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사울에게 왜 다른 사람들의 험담을 듣고 다윗이 자신을 해치려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사실 다윗을 죽이려 한 사람은 사울 자신이었고, 험담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윗은 동굴 안에서 사울을 충분히 죽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다윗의 손에 넘기셨지만, 다윗은 사울을 아껴 자신의 주님인 사울을 해치려고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논리는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사울이 여호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감히 손을 들어 해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때 사울의 반응도 꽤 감동적입니다. 아마 곧바로 다윗을 끌어안고 감격하여 울었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사울은 울기는 했지만 다윗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뒤에서 칼에 찔릴까 걱정했던 것입니다.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옷자락인 것을 보라 내가 내 옷자락을 베었으되 너를 죽이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악이나 반역이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라 내가 왕에게 범죄하지 아니하였거늘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이다(《사무엘상》 24:11)
이것이 바로 덕행이며, 덕이 두터워야 만물을 감당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나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판결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신원하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사무엘상》 24:12-15)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오늘 네가 나를 선대함을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보내겠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네가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라 그런즉 너는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라 내 후손을 끊어 버리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하겠다고 하니 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성으로 올라가니라(《사무엘상》 24:16-22)
사울은 마음속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이 닥치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사람은 원래 그렇습니다. 어느 때는 분명히 알고 있다가도 어느 때는 혼란스러워집니다. 사울과 같습니다.
왕이 되려면 왕다운 도량이 있어야 한다
저는 형제자매들에게, 특히 제가 목양하는 사람들에게 다윗 왕처럼 왕다운 도량을 가지라고 자주 권면합니다. 사울 왕처럼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덕이 두터워야 만물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은 중국 사람들이 정리해 낸 말이지만, 사실 성경도 그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속이 좁은 사울 왕에게 왕의 자리는 사울 왕의 올무가 되었습니다. 왕이 되지 않았다면 그나마 괜찮았을 것입니다. 오늘은 나귀를 찾고 내일은 양을 찾는, 대략 그런 나귀와 양을 찾는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거나 갈등하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악한 영을 보내지도 않으시며, 정신병에 걸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결국 사울은 왕이 된 후 그의 평생이 왕의 자리로 인해 망가졌습니다.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범하게 한평생 사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수백 개의 체인점을 열고 싶어 하고, 누가 더 많은 가게를 열었는지 다른 사람과 비교합니다. 그때는 아직 오프라인 매장이었는데, 감옥에서 나온 뒤에는 이미 온라인 매장이 되어 있었고, 이미 아주 좋은 기회를 놓쳤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의 지위가 사람의 올무가 되는 경우가 많구나.
사람의 도량이 부족하고 덕행도 부족하면 저처럼 됩니다. 많은 사람이 “저런 사람이 어떻게 화인명정신학을 만들어 낼 수 있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서둘러 확장하고 다윗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다 보니 사울처럼 되고, 왕의 자리가 사울의 올무가 됩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러는 것입니까? 차라리 평생 평범하게 사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므로 왕이 되려면 왕다운 도량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왕의 자리에 의해 망하게 됩니다. 목회구역장이 되려면 목회구역장다운 도량이 있어야 합니다. 조금만 일이 생겨도 속이 좁아져서 속 좁은 사울 왕이 되거나, 속 좁은 목회구역장과 소그룹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분 아래 있는 자리는 왕의 자리뿐이며, 여러분에게 다른 자리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더 이상 안 되면 장차 하늘에 올라가 청소하는 일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저는 말합니다. 하늘은 이미 깨끗하고, 그런 사람이 쓸면 오히려 더러워집니다. 하늘에는 유리 바다가 있는데, 그런 사람의 덕행으로는 청소도 할 수 없습니다. 왕의 자리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왕이 될 사명이 있는지에 대한 답은 사실 분명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왕이 될 사명이 있을 때, 사울 왕이 될 것인지 다윗 왕이 될 것인지입니다. 다윗 왕이 되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식가 왕이 되면 좋겠다.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까”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위가 작아서 꼬치구이를 먹으러 가도 몇 꼬치 먹지 않아 배가 부릅니다. 입은 더 먹고 싶고 눈으로 맛있는 음식을 보고 있으면 아직 부족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런 대식가가 아니라 다윗이라는 왕, 이스라엘 왕이었던 다윗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왕다운 도량이 있어야 합니다. 왕다운 도량이 있으면 왕의 자리가 여러분의 올무가 되지 않습니다. 큰 부자의 도량이 있으면 큰 부자의 자리가 여러분의 올무가 되지 않습니다. 목회구역장다운 도량이 있으면 목회구역장의 자리도 여러분의 올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다윗이 얼마나 대단한지 생각해 보십시오. 아직 왕이 되지 못하고 비참하게 도망 다니던 때에, 원수가 아무런 방비도 없이 그의 앞에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대목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울을 죽이면 다윗은 곧바로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개혁하여 가장 강한 왕국으로 만들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사울을 죽이면 그 역사적 기록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했다면 왕위를 찬탈하여 왕이 되었고, 왕을 죽여 자신이 대신 왕이 된 사람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사무엘이 이미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으니 다윗은 어차피 왕이 될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말해도 다윗이 왕위를 찬탈한 것은 사실입니다. 게다가 남의 위급한 상황을 이용하여, 큰일을 해결하고 있던 전임 왕을 죽이고 왕위를 얻은 것이니 듣기만 해도 역겹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위를 찬탈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왕위를 찬탈한 사람이 왕이 되면 명성이 매우 나빠지고, 덕행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울은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였습니다. 누가 감히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죽이고도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하겠습니까? 다윗이 왕위를 전임 왕을 죽여 찬탈해서 얻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왕의 자리를 너무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훗날 누군가도 그의 위급한 상황을 이용하여 똑같이 그를 죽일 수 있으니, 생각만 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이스라엘 왕다운 풍모가 있어야 했습니다. 훗날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히실 때, 평생 이런 오점을 남겨서는 안 되었습니다. 다윗은 왕다운 덕행과 넓은 도량을 가져야 했고, 이스라엘 가운데 남의 위급한 상황을 이용했다는 이야기를 남겨서는 안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좋은 평판을 남기고 싶습니까? 날마다 닭을 훔치고 개를 훔치는 것 같은 일을 생각하면서 좋은 평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평판은 매우 중요합니다. 평범한 백성으로 살면 아무도 여러분의 과거를 샅샅이 파헤치지 않지만, 왕이 되면 반드시 사람들의 검증을 받게 됩니다. 왕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만 해도 조상 삼 대까지 파헤쳐지고, 과거에 했던 일이 모두 드러납니다. 만일 다윗이 길을 가는데 사람들이 그를 보고 수군거리며 웃는다면, “저 사람이 바로 사울 왕이 급한 일을 보던 틈을 타 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다윗이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다윗이 그 말을 듣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불안해질 것입니다. 세상에는 더 많은 소문이 퍼지고, 심지어 점점 더 듣기 힘든 이야기로 전해질 것입니다. 다윗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다행입니다. 나중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이후에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사실 왕의 자리는 정말 올무입니다. 특히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반드시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 비극의 근원이다
다윗 안에는 하나의 완전한 논리 체계가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도를 거역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대단해도 하나님의 도를 거역하면 결말은 비참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도가 자기 안에 있게 해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것을 이기적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과 원수가 된 사람은 늘 괴로워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에는 왕과 같은 존귀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얼마 되지 않는 돈 때문에 여러분과 얼굴을 붉히며 다투지 않으십니다. 십억, 백억이라 해도 하나님은 여러분과 다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는 가진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만물을 우리에게 주시고, 사람에게 생명의 호흡을 주셔서 살아 있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모두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모욕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단번에 죽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보통의 후함을 가진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덕”이 없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는 것이 “덕”입니다. 이것은 제가 정의한 덕입니다. 사람이 괴로워하는 것은 우선 “덕”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나쁜 일을 하고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 안에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패한 관리가 사람을 죽게 했다면, 그의 마음은 불안하고 괴로울 것입니다.
얼마 전 한 형제가 아픈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천 리 길을 날아갔지만, 도착하기도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느 날 열이 나고 괴로워서 목회자의 섬김을 받으러 왔는데,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원인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자신의 계좌에서 수백만 위안을 이체했는데, 그 돈의 행방을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형제는 속으로 ‘그 돈이 이체되지 않았다면 모두가 조금 더 나누어 가질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괴로움의 근원은 거기에 있었고, 그 후 열이 났던 것입니다. 사실 그 돈은 원래 그의 돈도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누구에게 주든 그것은 아버지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아버지의 돈을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이것을 말로 표현하면 너무 부족해 보이고, 말하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계속 의심이 생깁니다. 이 말이 여러분의 마음을 찌르지 않습니까? 제 추측으로는 우리 가운데 이런 사람이 한 명만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사람이 괴로워하는 원인을 특별히 연구해 왔습니다. 사람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사실 자신이 손해를 보았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빚을 졌다고 해서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빚진 것을 괴로워한다면, 노자보다 더 노자 같고 하나님처럼 대단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마땅히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익이나, 가져서는 안 되는 이익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이 문제는 제가 아주 깊이 연구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마음이 괴로워하자 주변의 형제자매들이 몰래 제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일을 잘하지 못해서 모두에게 미안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일을 잘하지 못해서 괴로운 것이라면 해결하기 쉽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지금 괴로운 이유는 우리가 모두 자기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자신이 우리에게 미안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저도 여러분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제게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괴롭지만, 제가 여러분에게 미안하다고 느낄 때는 오히려 마음이 편합니다. 이기심이라는 것은 정말 사람을 망가뜨립니다.
사울은 왕의 자리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잘 지켜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사실 왕의 자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그의 능력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갑자기 돈을 벌고도 겸손해지지 않습니다. 날마다 목청을 높여 자신이 가진 모든 돈이 자신의 피와 땀으로 바꾼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치 그 돈이 자신의 능력으로 번 것처럼 말입니다. 정부의 정책이 좋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도 북한에 있었을 것입니다. 언제 그 차례가 왔겠습니까? 여러분은 절대로 이런 것을 자신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누구를 상대하겠습니까? 여러분을 교만하게 만들고, 모든 돈을 여러분이 벌었다고 했으니, 이제 여러분이 번 돈을 모두 토해 내게 할 것입니다.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늘 자기 자신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개혁개방의 총설계자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가 개혁개방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여러분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모른 채 매우 이기적이 되어 늘 자신이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
우리는 겸손해야 할 뿐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고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걸을 수 있는지도 마음으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는 거역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왕이 될 사명이 있지만, 왕다운 덕행도 갖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왕이 될 사명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이미 만물 가운데서 여러분을 택하여 하나님 나라의 왕이나 왕자, 공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덕행을 보십시오. 동북 지방 말로 하면 “소변 한 번 보고 자기 모습을 비춰 보면서 자신의 덕행이 어떤지 보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깨달음은 투명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기적으로 된 뒤에 잘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기적이 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자기 이익만을 위해 살 수 없습니다. 왕다운 덕행과 도량을 가져야 합니다.
왕의 품성
이것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제 자신에게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저는 다윗이라는 사람이 정말 대단했고 평생 편안하게 살았다는 것을 늘 자신에게 일깨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평생 편안하고 기쁘게 살고 싶다면 다윗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그의 깨달음은 매우 투명했습니다. 자신을 그저 개 한 마리, 심지어 벼룩 한 마리로 여겼습니다. 자신을 왕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개똥 덩어리처럼 본다면 마음이 분명 괴로울 것입니다. 사람들이 날마다 여러분에게 별명을 붙이고, 여러분은 자신이 왕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여러분을 “똑똑한 척하는 사람”이라고 비웃습니다. 자신은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아무것도 잘 모르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개 한 마리나 벼룩 한 마리로 여겼기 때문에 마음이 괴롭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별것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내가 어떻게 왕이 될 차례가 되었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대대로 이어져 온 기독교의 신학 체계를 보면서 저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제가 화인명정신학을 세우고 사도 바울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복음을 회복하는 일을 맡게 되었을까요? 제가 무슨 덕과 능력이 있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화인명정신학은 미래의 세대에 깊은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독교 신앙 안에 있는 많은 핵심 개념과 정의를 마침내 정리했고, 성경에 더욱 부합하는 신학 체계를 세워 가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고, 저 역시 그저 개똥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제가 왜 행복하게 사는지 묻는다면, 자신이 개똥 덩어리라고 느낄 때는 행복합니다.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이렇게 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할 때는 괴로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정말 자신을 스스로 일깨우고 위로해야 합니다.
왕의 품성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거역할 수 없고,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변론해서도 안 됩니다. 다윗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평소에 훈련한 오합지졸 같은 부하들이 전쟁을 다른 사람들보다 잘할 뿐 아니라 모두 앞장서서 싸웠습니다. 가장 많은 일을 하고 머리도 가장 영리하며 무예도 가장 뛰어나고, 전쟁에서 적을 죽이는 일도 가장 잘했지만, 마지막에 모두가 똑같이 나누어 가져도 한 번도 자신이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다윗이 늘 자신이 손해를 보았다고 여기고 6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면, 그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600명도 그를 진심으로 따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600명은 직접 한 가지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들의 왕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는데도 죽이지 않았으니, 다윗은 분명 자신들을 해치지도 않을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단번에 자신의 이미지를 세웠고, 나중에는 아무도 다윗을 몰래 해치거나 암살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그를 매우 존경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태복음》 26:52)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칼을 드는 사람은 칼로 죽습니다. 상사를 해치는 사람은 부하에게도 해를 입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군사를 이끄는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다윗은 매우 충성스러웠고 결코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상사를 매우 존귀하게 여겼습니다. 자신의 상사가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와도, 자기 이익을 위해 사울 왕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왕의 품성은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여러분이 어떤 품성을 가졌는지에 따라 어떤 사람들을 이끌게 됩니다.
저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걸어오면서 다윗을 생각할 때마다 그와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사람은 정말 대단해서 원수들조차 그를 칭찬했습니다. 저도 조금만 제 자신을 칭찬해 보겠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별로 대단하지 않게 여기지만, 교회를 떠난 사람들 가운데에도 나중에 저를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가 저에게 아무리 잘못해도 저는 그를 해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사람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축복하기에도 바쁩니다.
늘 빚진 사람처럼 느끼고, 늘 손해를 보았다고 느끼지 마십시오. 이기적인 사람은 늘 자신이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하지만, 왕의 품성이 있으면 늘 자신이 빚진 사람처럼 느낍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왕으로 삼아 이 땅을 다스리고 이 땅의 축복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축복은 내어 주는 것입니다. 거저 받은 것을 거저 내어 주는 사람이 바로 왕입니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왕이 되고, 그의 손에 있는 나라도 반드시 견고해질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에게 왕이 될 사명이 있다 해도 왕다운 덕행과 도량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정말 그것이 있다면, 저는 여러분에게 대담한 예언을 하나 선포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왕이 될 것이며, 나라가 여러분의 손에서 견고해질 것입니다. 훗날 어느 날 우리가 하늘에 이르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면 하늘의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도 우리의 손에서 견고해질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