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어서 《느헤미야》 9장을 함께 상고하겠습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며, 신실하신 하나님과 언약을 맺다”입니다.
우리가 당한 큰 환난은 모두 우리가 지은 죄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한 큰 환난은 모두 우리가 지은 죄 때문이라는 이 논리를 반드시 세워야 합니다. 이는 조상의 저주 때문도 아니고, 조상의 조상의 저주 때문도 아니며, 이런저런 이유 때문도 아니고, 마귀가 대단해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원수의 손에 넘기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이러한 개념이 없다면 끝장난 것입니다. 죽기 살기로 기도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재앙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자,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는데 곧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사 그것의 열매를 먹고 그것의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보소서, 우리가 종이 되었나이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왕들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그들이 우리의 몸과 가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가 큰 환난을 당하였사오며 (《느헤미야》 9:36-37)
그렇다면 우리의 관점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마귀가 하나님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에 불과합니다!
본문 말씀은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이전에 우리가 죄를 지었고, 지금 우리는 종이 되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로 인해 열방을 보내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셨고, 그들이 우리의 몸과 가축을 임의로 관할하여 우리가 큰 환난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병에 걸려 암, 루푸스, 우울증, 가난이라는 질병에 걸렸다면, 사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누구에게는 죄를 지을지언정, 하나님께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 형제자매들에게는 저주와 문제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아주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큰 환난을 당한 것은 모두 우리가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나중에 제가 발견한 인간의 아주 이상한 특징 하나는, 다들 자기가 꽤 괜찮다고 여긴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자기가 한 일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이한 일일 것입니다! 자기가 한 일이 다 옳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회개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자기가 잘못했다고 인정하면 일은 쉽게 풀립니다.
사람이 회개하는 것은, 사실 하나님께서 귀신을 통해 사람을 하나님의 나라로 몰아넣으시는 것입니다. 사는 게 아주 평안하고 좋은데, 할 일 없어서 주님을 믿으러 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할 일 없어서 예배할 신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이번 장을 통해 여러분에게 소망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하자, 하나님은 그들을 공격하는 원수들의 손에 넘기셨고, 그들은 고통을 당하고 큰 환난을 겪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느헤미야 시대에 이르러 이스라엘 사람들은 또 하나의 순환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로 큰 환난을 당하고, 다시 돌아와 하나님께 부르짖는 순환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을 떠났다가 큰 환난을 당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켜 부르짖을 때마다 하나님은 매번 구원해 주셨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소망을 줍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이 어떤 병에 걸렸든, 아무리 힘들든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치유받게 될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신실하신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주님과 언약을 맺습니다. 제가 회개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겠습니다.” 《느헤미야》 8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듭 들었고, 날마다 읊조리고 날마다 읽었지만, 여전히 죄를 짓는 전형적인 순환 속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죄를 지을까요? 배부르고 몸이 편안해지니 하나님이 계신 줄을 잊어버리고, 죄를 짓고 하나님께 범죄하여 큰 환난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은혜를 쏟아부어 주시고, 사람은 다시 좋은 날을 누리게 됩니다.
그 후 그들은 또다시 하나님을 잊고 떠나 범죄하며,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원수의 손에 넘기시고, 사람은 또다시 큰 환난을 당하여 부르짖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바로 이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큰 환난을 당할 때, 그것이 모두 우리가 죄를 지어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임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절대로 자기 자신의 기준에 맞추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야 합니다. ‘이 일도 내가 잘못 처리했구나, 저 일도 잘못 처리했구나, 이것도 내가 틀렸고 저것도 내가 틀렸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란 자신이 스스로에게 몹시 미안한 짓을 했음을 명확히 알고, 자신이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었음을 깨달아 돌이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돼지 잡듯 꽥꽥 소리만 지르는데,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과거에 내가 나 자신을 너무 학대했으니, 이제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겠다’라는 태도입니다.
느헤미야 시대에 그는 백성을 이끌고 성벽을 완공하고 문짝을 단 후, 이스라엘 백성을 도심 광장에 모아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처한 형편과 결부시켜 보니, 아니나 다를까 위의 순환과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여러분도 이 장을 듣고 나서 “아, 나에게도 딱 들어맞는구나”라고 말할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십시오.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며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절대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토록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이런 작은 일로 따지시겠습니까?
물론 사람이 회개하지 않은 채 여전히 죄를 지어 하나님께 범죄하면서 속으로 ‘하나님은 위대하시니 내가 지은 죄 따위는 따지지 않으실 거야’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여러분이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따지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저희가 섬긴 몇몇 분들이 계십니다. 공포증이 있는 분, 암에 장폐색까지 겹친 분, 수십 년 동안 시력을 잃으신 분들이었는데, 목회자들은 열정을 다해 그들을 이끌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언약을 지키시며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 안에서 그들은 이미 치유를 받았습니다. 하루 만에 낫든, 열흘 만에 낫든, 백 일 만에 낫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채찍에 맞으셨고, 그분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들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그리고 약속 가운데로 다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암에 걸린 사람이 나을 수 있습니까? 꽂는 관은 점점 늘어나고, 극심한 통증 하나만으로도 죽을 지경이 되니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당한 큰 환난은 모두 우리의 죄 때문임을 말씀드립니다.
“목사님, 저는 크리스천인데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다 바르게 행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도 다 크리스천과 같은 자들이었지만 모두 그릇되게 행했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이라는 세 글자나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이름이 여러분이 고난을 당하지 않도록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신실하신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아브라함의 길을 걷는다면, 그것은 결코 이러한 고통의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자신과 조상의 죄를 자복하다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이 날의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느헤미야》 9:1-3)
얼마나 훌륭한 말씀입니까! 하루 24시간 중 4분의 1은 6시간입니다. 6시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6시간 동안 자신의 죄를 자복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는데, 그 말씀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떠나고 거역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고난을 당하고 다시 하나님께 돌이켜 부르짖었는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고 부르짖지도 않은 채 죽음을 향해 내달린 자들도 있었으니, 자업자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성경》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많은 경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사물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 크리스천이 저와 얼굴을 붉히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논쟁을 벌였습니다. 제가 “저주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라고 하자, 그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으셨군요”라고 하니, 그는 몹시 격앙되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결코 우리를 저주하지 않으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이런 논리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성경》 전체 어디에도 그런 논리는 없습니다. 《신약》에서도 저주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바울 서신에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하였고, 《갈라디아서》에는 “다른 복음을 믿거나 전하면 저주를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때로는 참으로 깊은 탄식이 나옵니다. 기독교계의 ‘유명 인사’라 해도 소용없고, 팔로워가 10만 명이라 해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말씀하시든 우리는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설교를 자주 듣는데, 듣고 나면 ‘이건 엉터리가 아닌가? 명백히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말씀에 따라 하나님을 알아가야지 자신의 느낌에 따라 알아가서는 안 됩니다. 저주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는다면 어디서 온다는 말입니까? 귀신에게서 온다고 한다면, 귀신에게 사람을 저주할 그만한 능력이 있습니까? 참으로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시지만, 내 믿음은 더 커졌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엉터리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데 어디서 소망이 생기겠습니까? 이 시대에 복음을 잘못 믿고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인연이 닿아 여러분이 제 설교를 듣고 계시지만, 사실 저는 여기서 《성경》을 읽고 있을 뿐이며, 《성경》이 말씀하는 바를 그대로 전할 뿐입니다. 때로는 제가 전하는 말도 다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강단에 서서 여호와 하나님께 크게 부르짖는 것입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날에, 죄를 자복하고 부르짖는 것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예수님께서 참으로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채찍에 맞으셨으며, 그분의 채찍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맹인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게 되는 복음입니다.
어떤 이는 “영적인 눈먼 자가 보게 되는 것이지, 육체는 계속 눈먼 상태로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도대체 《성경》을 어떻게 읽은 것입니까? 《성경》에 “예수께서 날 때부터 맹인 된 자를 보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는 “우리가 예수는 아니잖아요!”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핵심은 그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승불교처럼 아무런 능력이 없는 복음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헛소리를 절대 믿지 마십시오. 저는 감히 이런 자들의 말을 반박합니다.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온 자들은 다 고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들의 영적 상태가 고침받기에 합당할 만큼 훌륭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 은혜가 있고 긍휼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치유를 받았다면, 다시 돌아가 죄를 지어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관점을 확립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이 고생만 부르고 은혜도 약속도 없는 것이라면 왜 그렇게 살겠습니까? 그럴 바에는 집어치우십시오.
만약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이 수지맞지 않는다고 생각된다면,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중심으로 삼고 원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으십시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이 신실하시며, 언약을 지키시고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신합니다. 그분은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채찍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는데,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셨습니까? 맞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고침을 받겠습니까? 받습니다! 우리가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질병을 두려워하지 말고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비록 환난을 당하는 것 자체에는 영광이 없지만, 한 가지 유익은 적어도 여러분이 회개하게 되고 자신이 잘못 살았음을 깨닫게 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은 절대적으로 남는 장사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사도 바울이 매우 고생스럽게 살았다고 여깁니다. 많은 이들이 “목사님, 밤에도 안 주무시는데 그 시간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간과 폐와 장을 돌보아야 할 시간인데 몸을 잘 돌보지 않으시네요”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귀신을 쫓아내어 사람들이 암에서 놓임받고, 우울증에서 놓임받고, 온갖 질병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사람이 기꺼이 이 일을 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바울이 불행하게 살았다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보기에는 힘들어 보일지 몰라도, 바울 자신은 마음속에 기쁨이 넘쳤으며 언제 어디서나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읽고, 자신과 조상의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자신 안에 조상의 그림자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머니가 어떠했는지 보면 당신도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어머니의 딸이기에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친자식이 아니라 할지라도 온종일 함께 생활했다면 그 사람의 나쁜 습관을 어느 정도는 물려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자신의 죄를 자복하며,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면 살맛이 나겠습니까?”라고 묻겠지만, 당사자만이 얼마나 기쁘게 사는지 압니다! “사는 게 힘들지 않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고역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들은 정말 힘들게 삽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돈과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갈수록 삶이 피폐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몇몇 작은 귀신을 보내어 그를 괴롭히십니다. 작은 귀신으로 안 되면 중간 귀신을 보내시고, 중간 귀신으로도 안 되면 큰 귀신을 보내어 죽기 살기로 짓누르십니다. 느헤미야가 살던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이러한 비참한 세상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자신과 조상의 죄를 자복하십시오. 첫째, 우리가 당한 큰 환난은 모두 우리의 죄 때문이며, 죄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후 말씀에 비추어 자신과 조상의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자복한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맺으신 약속의 언약 안으로 다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느헤미야는 한 가지 핵심을 붙잡았는데,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즉 약속의 언약입니다. 아브라함 시대에 맺어진 이 약속의 언약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구약》이 폐해졌으므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도 폐해졌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그의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의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니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 (《느헤미야》 9:6-8)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아브라함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믿음의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지 율법의 조상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은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율법서라 부르는데, 율법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마음이 진실하였기에 본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씀드리자면, 아브라함은 남동생이 죽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남동생의 아들이 롯인데, 그가 왜 롯을 거두었을까요? 남동생을 지극히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동생을 향한 형의 사랑은 참으로 진실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동생이 위중한 병에 걸렸을 때, 그는 의사에게 “동생만 고쳐 준다면 얼마든지 돈을 주겠소”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고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충격을 받고 날마다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살다가 결국 이렇게 죽는구나.’
아브라함의 동생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 사람들도 오늘 한 사람 죽고 내일 한 사람 죽는 등 죽음은 늘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저희 집 아래에도 큰 정자가 하나 있는데, 사람이 죽으면 그곳에서 장례를 치릅니다. 그곳에서는 화환과 관, 그리고 ‘영생불멸’, ‘죽어도 살겠고’, ‘나무아미타불’ 같은 추모 현수막을 자주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런 일에 별 감흥이 없을지 모르지만, 아브라함은 깊은 고뇌를 느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큰일이구나, 산다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죽음을 기다리며 산다면 이 얼마나 소망 없는 인생인가?’ 그래서 아브라함은 깊이 고뇌했습니다. ‘세상에 하나님이 계실까? 인간은 이토록 절망적인 존재인가?’
우연의 일치인지, 중국에는 아브라함이 없었지만 손오공이라는 인물이 나왔습니다. 비록 원숭이지만 많은 사람보다 낫습니다. 영생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원숭이 세계의 ‘아브라함’이었으니, ‘아브라함 손’이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 손은 한 원숭이가 죽는 것을 보고 몹시 슬프게 울었습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원숭이의 삶이 참으로 소망이 없구나. 살다가 결국 이렇게 죽고 마는구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손오공은 스승을 찾아가 영생의 도를 구했습니다.
손오공이 서천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며 깨달음을 얻는 길은 온갖 고난과 산전수전, 수많은 세월의 고통으로 가득 찼지만, 오직 불로장생의 도를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에게 아브라함의 언약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끝장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쓰레기 같구나’ 하시면 끝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아브라함과 같다면, 성이 유 씨든 장 씨든 이 씨든 손 씨든 모두 아브라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크리스천이 되었다면 ‘아브라함 손’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것은 그가 마음이 진실하여, 자신에게 소망이 없음을 인정하고 세상에서 사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사역할 때, 큰 병이든 작은 병이든 자주 아브라함을 언급하며 인생은 헛되고 헛된 것임을 가르치는 이유입니다. 이토록 무의미하고 소망 없는 길을 따라 죽음을 향해 내달리는 것에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어떤 이는 90세, 80세, 70세에 죽는데, 결국 다 그렇게 끝나는 것인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제 말은, 황천길을 가는데 무엇이 그리 급하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조급해하지 않는 것을 보지만, 제가 정말 조급하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제가 조급해하는 일과 여러분이 조급해하는 일이 다를 뿐입니다.
죽으러 가는 길, 황천길에 대해서는 조급하지 않습니다. 제가 조급해하는 것은 어떻게 아브라함의 길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의 길은 황천길이나 어둠의 길이 아니라 영원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큰 환난을 당했을 때 ‘아이고, 닷새밖에 안 남았네. 아이고, 나흘밖에 안 남았네. 아이고, 사흘 남았네…’ 하며 날수를 셀 때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하지만 사실 여러분은 날수를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람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이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에게는 놀라운 힘이 있어서,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저주를 내리시고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복을 내리십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런 아브라함이 된다면 얼마나 엄청난 일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내가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네 후손으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참으로 대단합니다!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고,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리라.”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땅의 만국과 만민의 복이 되었고,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진실하게 하여, 우리 일생을 아브라함이 구했던 그 길의 기초 위에 다시 세워야 합니다. 즉, 인생은 헛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마음이 진실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아브라함의 길을 알지 못하기에 죽을 때가 되어도 인생이 헛되다는 말을 감히 하지 못하고 고작 이런 말만 합니다. “먹고 싶은 거나 실컷 먹고, 마시고 싶은 거나 실컷 마셔라.”
저에게는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 듣기 싫어서 크게 꾸짖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다른 사람을 위로한답시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마시고 싶은 거 다 마셔라”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곧 죽을 거라는 말인데, 어찌 그런 말을 위로라고 합니까?
그러므로 사람이 아브라함과 같이 되면 대단한 일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저는 아브라함의 이 길을 사명의 길이라 부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태어나며, 하나님을 위해 죽고, 하나님을 위해 이 세상에 왔다가, 하나님을 위해 영생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사람이 영생의 도를 구하지 않고 온종일 복근이나 단련한다면, 그 복근이 무엇을 지켜 주겠습니까? 사람들은 죽음이 늘 곁을 스쳐 지나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 사실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아브라함 손’도 될 수 없으며, 하물며 아브라함이 될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사람은 이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일까요? 장례식에 자주 가는 사람이 지혜를 얻습니다. 훗날 그곳에 누워 있을 사람이 예외 없이 언젠가는 자기 자신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진실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가나안 땅, 곧 지금의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땅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을 기어이 그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이것을 약속의 언약이라 부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은 약속의 언약입니다.
《구약》의 약속의 언약이 폐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폐해진 적이 없으며, 오히려 완성되고 성취되었습니다. 약속의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신약》의 한 구절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제가 묻겠습니다. 질병이 치유되고, 맹인이 보며, 다리 저는 자가 걷고, 암이 낫고, 우울증에서 해방되며, 포로 된 자가 자유케 되고, 눌린 자가 해방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하심으로 우리가 부요하게 되는 것, 이것들이 약속이 아닙니까? 이것들이 《성경》 말씀이 아닙니까?
그 약속의 언약이 바로 여러분과 저의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은 바로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왜 죄를 짓습니까? 육신의 삶을 중심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육신의 삶을 중심으로 살아봤자 결국 죽는데, 그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허무합니까?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토록 많은 고난을 겪고도 여전히 깨닫지 못합니다. 저와 함께 뜻을 맞춥시다. 특히 고난을 겪고 있는 분들은 우리 안의 세상적인 논리 체계, 이 세상의 삶을 근본으로 삼는 그 논리 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영원 속에 살아가십시오.
그 영원한 언약, 약속의 언약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발붙일 곳조차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논리를 무너뜨린다고 해서 쪽박을 차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무너뜨릴 때 비로소 아브라함의 약속의 언약을 상속받게 되는 것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의 여정은 말하자면 눈물겨운 이야기입니다.
모세가 애굽에 들어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내려고 했지만,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아브라함 같은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다들 힘을 쓰거나 멍에를 메기만 하면 주저앉아 맥을 못 추는 나약한 자들이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소나 말이 멍에를 메자마자 설사를 만난 듯 맥을 못 추며 수레도 끌지 못하고 버티지도 못해 아무 쓸모가 없어진 꼴이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때, 하나님의 진노는 계속해서 참고 계시는 중이었습니다.
이 무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 몰랐습니다. 늘 애굽의 바로왕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툭하면 이생의 삶에 얽매여 죽기를 무서워하며 살았기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고 말았으니 인생의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 세대는 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신 자들이었다”고 말씀합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주께서 우리 조상들이 애굽에서 고난 받는 것을 감찰하시며 홍해에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이적과 기사를 베푸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나라 백성을 치셨사오니 이는 그들이 우리의 조상들에게 교만하게 행함을 아셨음이라 주께서 오늘과 같이 명예를 얻으셨나이다 또 우리 조상들 앞에서 바다를 갈라지게 하사 그들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 같이 통과하게 하시고 쫓아오는 자들을 돌을 큰 물에 던짐 같이 깊은 물에 던지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이 행할 길을 그들에게 비추셨사오며
또 시내 산에 강림하시고 하늘에서부터 그들과 말씀하사 정직한 규례와 진정한 율법과 선한 율례와 계명을 그들에게 주시고 거룩한 안식일을 그들에게 알리시며 주의 종 모세를 통하여 계명과 율례와 율법을 그들에게 명령하시고
그들의 굶주림 때문에 그들에게 하늘에서 양식을 주시며 그들의 목마름 때문에 그들에게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또 주께서 옛적에 손을 들어 맹세하시고 주겠다고 하신 땅을 들어가서 차지하라 말씀하셨사오나
그들과 우리 조상들이 교만하고 목을 굳게 하여 주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거역하며 주께서 그들 가운데에서 행하신 기사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나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또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이르기를 이는 곧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한 신이라 하여 크게 모독하였사오나
주께서는 연하여 긍휼을 베푸사 그들을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이 그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길을 인도하며 밤에는 불 기둥이 그들이 갈 길을 비추게 하셨사오며 또 주의 선한 영을 주사 그들을 가르치시며 주의 만나가 그들의 입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그들의 목마름을 인하여 그들에게 물을 주어 사십 년 동안 들에서 기르시되 부족함이 없게 하시므로 그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사오며 (《느헤미야》 9:9-21)
이 얼마나 놀라우신 하나님이십니까! 솔직히 제게 물으신다면, 저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배우기 위해 아직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섬김을 받는 사람들 중에는 참으로 괘씸한 사람들도 있어서, 정말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이 무리처럼 고약한 고집을 부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을 이렇게 대하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시고 긍휼이 넘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이시며,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사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지은 죄와 하나님께 범한 잘못들은 모두 멸망받아 마땅하지만,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사 진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악인을 보며 “하나님, 왜 저 사람을 진멸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인들 그 악한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분을 알기를 어찌 바라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거슬린다고 해서 한 사람을 멸하시고, 또 거슬린다고 다른 사람을 멸하신다면, 온 세상에서 하나님 앞에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출애굽 한 그 세대의 사람들은 생각이 온통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버릇이 들어 자유인으로 사는 법을 알지 못하고 노예 노릇밖에 할 줄 몰랐습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 중 무리가 우두머리를 세워 광야에서 자신들을 다시 애굽으로 데려가 종노릇하게 하려 했습니다! 돌아가서 “바로왕이여, 내가 종노릇하러 왔습니다”라고 하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 형제자매 중에도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있으면서도, 어두운 세상을 주관하는 자들을 따르며 “내가 종노릇하러 왔습니다”라고 합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자유인으로 살지 않고 기어이 노예가 되려 하며, 노예 노릇에 익숙해져서 그것을 아주 능숙하게 해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기어이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이끄십니다. 이 패역한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으니 참으로 가증합니다! 송아지를 향해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다”라고 말했으니, 도대체 무슨 해괴한 논리입니까? 뼛속까지 썩어 문드러졌지만, 우리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기에,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기억하사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과 같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손해 보는 일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날마다, 달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이 불치병에 걸려 죽음만을 기다리는 상태에 놓이고 극심한 고통이 밀려올 때, 저는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그들이 자신을 망치는 그 노예 근성을 완전히 깨뜨려 버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람이 왜 세상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종노릇하며 살아야 합니까? 애굽에서 나오고, 세상에서 나와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죽더라도 하나님의 정병이 되어 죽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니, 여러분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하나님은 반드시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형제자매들이 목회자의 이 애타는 심정을 알아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며칠 전 목회자들이 암에 걸린 자매님을 붙들고 날마다 10시간 넘게 교대로 기도해 주었습니다. 통증이 밀려올 때 그 자매의 모습은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이라는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십시오. 애굽은 이 세상을 예표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야 하며, 결코 광야에서 죽어 나가는 쓰레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이가 제게 묻습니다. “목사님,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치신 그 사람들은 천국에 갔습니까?” 제가 대답했습니다. “천국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가지 마십시오. 거길 왜 갑니까?” 다들 믿음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무너뜨려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서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하나님께 무언가를 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주께서 여러 나라들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시매 그들이 시혼의 땅 곧 헤스본 왕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하였나이다 주께서 그들의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고 옛적에 그들의 열조에게 들어가서 차지하라고 말씀하신 땅으로 인도하여 이르게 하셨으므로
그 자손이 들어가서 땅을 차지하되 주께서 그 땅 가나안 주민들이 그들 앞에 복종하게 하실 때에 가나안 사람들과 그들의 왕들과 본토 여러 족속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임의로 행하게 하시매
그들이 견고한 성읍들과 기름진 땅을 점령하고 모든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과 판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허다한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찌고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 뒤에 던지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주를 크게 모독하였나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사 그들이 곤고를 당하게 하시매 그들이 환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에게 구원자들을 주어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
그들이 평강을 얻은 후에 다시 주 앞에서 악을 행하므로 주께서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 버려 두사 원수들에게 짓밟히게 하시다가 그들이 돌이켜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여러 번 주의 긍휼로 건져내시고 다시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경계하셨으나
그들이 교만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에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어밀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나 주께서 그들을 여러 해 동안 참으시고 또 주의 영으로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들을 경계하시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열방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고도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느헤미야》 9:22-31)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입니다! 저는 ‘내가 얼마나 큰 은혜와 긍휼을 입었는가!’를 진심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훌륭해서라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처음 사역을 시작했을 때는 참으로 저주받아 마땅한 모습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이끄시니 내가 그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하면 다 나를 따라 믿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통닭, 오리구이, 소고기 장조림 복음이라는 것을 고안해 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단계를 둘로 나누어, 첫 단계로 맛있는 음식을 미끼로 교인들을 끌어모았습니다.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팔듯 통닭, 오리구이, 소고기 장조림을 내걸어 사람들을 유혹했지만, 모여든 사람들은 다 쓸모없는 밥벌레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사역을 마치고 났을 때 오직 한 사람만 남았기에 저는 그 한 사람을 꽤나 아꼈지만, 결국 저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마귀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대단하신 분이며, 하나님께서 나를 원수의 손에 넘기셔서 고통과 큰 환난을 당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하여 제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은 풍성한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통닭과 오리구이로 예수님을 대신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높이 들리셔야 만민을 그분께로 이끄시는 것이지, 통닭과 오리구이를 높이 든다고 만민이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통닭, 오리구이, 소고기 장조림이 무엇을 끌어올 수 있겠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웃음거리지만, 당시에는 아주 진지하게 웃음거리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높이 들리실 때 진정으로 만민이 그분께로 돌아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능력이시며, 참으로 우리를 해방하사 아브라함의 약속의 언약으로 들어가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거듭해서 그렇게 엉망으로 살 때, 저는 “하나님, 주님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저 같았으면 진작에 다 멸해 버렸을 텐데 말입니다. 이게 뭡니까? 집어치우시지요!”라고 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우리 중 어떤 목회자들은 사역하면서 양들과 선악을 분별하기 시작하고, 선악을 분별하는 함정에 빠져 버립니다. 그것이 어찌 하나님의 형상이겠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은 은혜와 긍휼이 충만합니다.
물론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한번 흔들리면 죽어 한 줌 흙이 되어 회개할 기회조차 잃는 이들도 있으니, 그런 자들은 갈 길을 가라 하십시오.
우리가 돌이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신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께 범죄하고 큰 환난을 당했다가도, 돌이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언제나 들으셨습니다. 이것이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한 말씀이며,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여 큰 환난을 당했을 때,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너희가 언제든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에게로 돌이키실 것이다”라며 믿음을 심어 주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재정이든 육체의 질병이든 환난을 당하고 있는 형제자매 여러분, 믿음을 일으켜 세우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보좌에 계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잘못을 인정하며, 과거에 그릇되게 살았음을 알고, 영적 ‘삼고(고혈압, 고혈당, 고지혈증)’에 걸렸던 것을 깨닫고 이제 믿음을 일으켜 세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분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암이나 루푸스에 걸리는 것을 원치 않으시며, 치유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마다 은혜를 얻게 하셨으니, 이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 사랑입니까!
하나님의 그 넓고 길고 높고 깊은 사랑, 우리의 생각과 간구를 뛰어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을 떠올릴 때마다 저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을 멈출 수 없습니다! 제가 무엇이관대 감히 택하심을 받아 그분을 섬기게 되었겠습니까? 제가 제대로 섬기지 않는다면 참으로 제 자신에게 면목이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저의 기쁨으로 삼습니다. 아멘! 여러분도 하나님을 여러분의 기쁨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배불리 먹어 살이 찌고 그것으로 마음 즐거워하다가, 몸만 둔해지고 머리까지 미련해져서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사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여, 주는 언약을 지키시며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다시 구원하소서
“우리 하나님이여 광대하시고 능하시고 두려우시며 언약과 인자하심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조상들과 주의 모든 백성이 앗수르 왕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당한 모든 환난을 이제 작게 여기지 마옵소서
그러나 우리가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주는 진실하게 행하셨사오나 우리는 악을 행하였음이니이다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조상들이 주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며 주의 계명과 주께서 그들에게 경계하신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아니하고
그들이 그 나라와 주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큰 복과 자기 앞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아니하며 악행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는데 곧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사 그것의 열매를 먹고 그것의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보소서, 우리가 종이 되었나이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왕들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그들이 우리의 몸과 가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가 큰 환난을 당하였사오며 (《느헤미야》 9:32-37)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며 인자를 베푸시는 분이시기에,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우리 안의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무너뜨리십니다. 여러분이 아무 근심 없이 편안하고 넉넉하게 살고 있다면 환난이 무엇인지,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진리로 여겨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말합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언약을 지키시며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큰 환난을 당하였사오니, 과거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듯이 지금 우리를 다시 구원하소서.” 그들은 또다시 하나의 순환, 거듭되는 순환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 세대에 이르러서는 이 악순환에 마침표를 찍고, 평생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안에 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 믿음이 일어나십니까? 하나님이 계시면 인생은 참으로 단순해집니다. 결코 자기 생각을 따르지 말고, 육신을 따르지 말며, 세상의 논리 체계를 따르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다시 언약을 맺다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 (《느헤미야》 9:38)
이제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맺은 그 언약에 여러분의 이름을 서명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저는 이 시대의 아브라함이 되겠습니다. 약속의 언약 안으로 다시 들어가겠습니다. 하나님, 주님은 제게 언약을 지키시며 인자를 베푸시고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니, 이제 제가 주님과 언약을 맺습니다.
그러나 제가 무엇이관대 주님 앞에 나아와 언약을 맺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하늘과 땅의 하나님이시며,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제가 무엇이관대 감히 주님과 언약을 맺는단 말입니까? 하나님, 주께서 이토록 보잘것없는 나와 언약을 맺으시는데, 제가 어찌 이 언약에 서명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이 바로 그 아브라함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보좌에서 아래를 굽어살피시며 깨닫는 자가 있는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지를 찾고 계십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분은 반드시 내려오셔서 여러분과 언약을 맺으실 것이며, 여러분은 이 시대의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되어 땅의 모든 족속이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멘!
어서 서명하십시오. “하나님, 주님은 제게 언약을 지키시며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저는 주님 중심의 삶을 살겠습니다. 주님께로 돌이키겠사오니, 저를 다시 구원하여 주옵소서. 아멘!”
우리 하나님이 이토록 좋으신 분임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뛰고 벅차오릅니다. 그렇기에 저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불치병에 걸린 형제자매들을 이끌고 기도합니다. 제 믿음 안에서, 하나님은 반드시 언약을 지키시고 인자를 베푸시며, 여러분이 주께로 돌이키기만 하면 여러분의 질병은 이미 치유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성경공부는 여기까지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