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又要嘱咐他们行善,在好事上富足,甘心施舍,乐意供给人’。老师,请讲讲乐善好施,为什么是属世界的逻辑?保罗这里的教导不是乐善好施的意思吗?
你说这个乐善好施,是属世界的逻辑。这话你得这么看,咱们教会不太喜欢做慈善。比如说什么地震、洪水,我们不太做这方面的慈善。我们也不做像什么社区一类的。为什么呢?因为我们的乐善好施,就行在我们眼前的这些人身上。
比如说一个癌症患者来了,我们怎么办?我们真的是不分黑白的服侍。什么时候找我们,我们都服侍,我们什么时候都不拒绝,即使是夜里也没关系。我自己是这样,我的牧者同工也都是这样。那你说,这算是善吧,这是乐善好施吧。我看这个善,比那个善还好。
有一些人眼前的善不行,跟自己的父母关系搞得很僵,跟自己的公公婆婆搞得很僵。你怎么不乐善好施呢?如果乐善好施的话,你跟你公公婆婆关系能这么差吗?答案肯定是不能。
那为什么这个乐善好施是属世界的逻辑?我给你举个例子,大凉山是中国很穷的地方。就在新加坡我认识很多基督徒都喜欢到那儿去撒钱。他去撒钱、给钱、做慈善。但是,做完了慈善,那个地方有的人就在收钱。有的人在这儿收完钱到那儿去发,然后一半留在自己口袋里。最后,那个地方的人就开始变懒了,就等着这些人来发钱。你说,这是做了一件好事儿?还是做了一件坏事儿呢?
经过这样的慈善,就把那个地方的人心里面贪婪的本性给勾起来了。所以,脱贫都不能这么干。给钱脱贫,是根本脱不贫的。想要脱贫,就要把他们管起来,让他们不再体贴肉体、好好干活。
所以,这个施舍乐意供给,很多时候他到底是祝福人还是败坏人,我们得研究清楚。如果,有人来跟我说到大凉山去发钱,去做慈善,我不捐钱,我也不干这事儿,我还是做点实在的。乐善好施,好善乐施,不是非得去张罗,眼前的事儿不好好做,非得到大老远、八竿子打不着的地方去乐善好施。那就叫扯淡。想要做,咱们就好好做,落实到实处。
Q2:老师,听你祷告常常说断开女人生产的咒诅。我想应该不是字面上的意思,我猜和识别善恶带来的咒诅有关系。
因为你没读《创世记》,所以不太理解。女人吃了识别善恶树的果子,还让他丈夫吃,所以神说你要受咒诅,受生产的咒诅,女人生产必多受苦楚,这是从这里来的。所以说断开女人生产的咒诅,就是断开识别善恶。
Q3:老师,比如我在属灵的追求上有十分的力气,我用十分,之后我就会感觉自己做得不错。当我用七分力的时候,我会知道自己做得还不够,也挺喜乐的。所以我的问题是第二种情况算是竭力追求吗?
这种就不算是了。我给你举个例子,如果你接了一单生意,接了这单生意,需要加班加点儿才能给人家生产出人家要的东西。可是,你如果一天工作八个小时,充其量只能完成工作的一半,那到时候就交不上货了。你就算一天工作十二个小时,也充其量只能完成工作的四分之三。那你该怎么办?
你就会一天拼命地工作,十六个小时你也在所不惜。为什么?因为你拿到了那个单,你如果一天干八个小时,最后你就不能交货,交不了货,就赚不了钱。看过的生意人,没有不加班加点儿赶生产的。这其实就叫尽力了。
那我们怎么就没有这样的干劲儿去抓紧追求属灵的福气呢?而且,对自己有益的事儿,为什么脱脱拉拉?这不应该的,只是我们可能在悟性上还不知道这是一个福气。
Q4:老师,我经常看到菜场门口,很多残疾人在那里要饭。要不要给他钱呢,还有给多少,给多给少都有点纠结。
这个问题你别问我。你想想这些残疾人是怎么来的,你最好先打听一下,免得给了他们钱,也解决不了他们的问题。他们是不是被人安排来的?这钱到了他们手里,还是没到他们手里都不知道。今天很多人可坏了,为了挣钱,就把人给弄残了,然后,往那儿一放。
Q5:老师,我女儿问黄皮子的脸给人带来什么?
黄皮子的脸给人带来的是宗教味儿,让人喜欢拜拜。这个黄皮子的灵,还可以给人一些启示,比如告诉人,干这个赚钱,干那个不赚钱。在我们东北叫做黄大仙儿,还是挺厉害的。
我见过这些,在东北的几大仙儿,狐仙和黄仙,这都是跟动物有关的。狐仙儿是狐狸,黄大仙儿是黄皮子,就黄鼠狼。这玩意儿挺厉害。他真的能够给人带来一些东西。比如说你很爱钱,很多种黄皮子可以给你运作一番。可能我这么一讲,大家会摩拳擦掌、跃跃欲试。
可是,问题来了。你有钱了以后怎么办?这些灵界的东西,他不是要造就人,他是要败坏人的。所以,黄皮子的东西给人带来灾祸。黄皮子给人带来的是爱钱、爱世界,然后,带来各样的灾祸。
Q6:老师,我耳根子比较软,特别容易被别人的想法动摇,该怎么办?
为什么会软呢?因为没有悟性。那为什么没有悟性呢?因为不太喜欢追求悟性。我鼓励大家在悟性上不断地提升,别傻乎乎的。听人说这个挺有理的,听人说那个也挺有理的,但是到底哪个有理,你也不知道。如果你不知道,你就给他弄知道了。这个的根基就在神的话里。
Q7:老师,城里的先知都说攻不破耶路撒冷,都说一定得胜,还以为是为神做工,却不知道已活在神的愤怒之下。为什么会这么笃定他自己也遭罪呀?是因为里面的私欲,还是虚假的信心,或者根本不知道神的心意瞎说。
这个原因好像有点深。我到现在也整不明白为什么他们会这样。圣经清清楚楚写的字,非得断章取义。结果就不成体系。我猜应该是这个人他里面追求的根基出了问题。
人为什么而活,这是个根基。大家要知道为什么而活是个根基。你如果为神而活,你还怕死吗?你不怕死。还怕遭罪吗?不怕遭罪。怕升不了官发不了财吗?不怕,因为那东西我不要。所以说根基这东西很要命。
人如果就是为了活着,就是为了活着这点事儿,总觉着自己能活到很远,活得很久很久很久,所以就需要很多的钱。我相信这些先知都活在今生的逻辑体系里。这些祭司先知都活在属世界今生的逻辑体系里。因为他们不知道有一天会死。
等神的愤怒降下来的时候,他们还很诧异为什么会临到他们。他们不会做觉着自己做错了事。其实,人都不会做自己觉着错的事儿。他这么做就有他自己的逻辑。所以说,这个逻辑是非常败坏的,而属世界的逻辑听起来还特别的合理,直到今天我们悟性还的远远不够。
属世界的逻辑体系就是很要命的。最后会怎么样?最后的结局就会很惨。今天很多牧师说从今以后我要好好的爱你们,然后我要爱我的家庭,爱我的孩子。但是,这些都不是神的话,这都是属世界的逻辑体系。
Q8:老师,被别人说的时候只知道哭,嘴巴说不了话,是不是瑕疵?
这可能不是瑕疵,这是人身上的恶习。人脑子不好使就会这样。所有的问题就是人在悟性上不知道。被人说,然后就受委屈。为什么觉着委屈?因为觉着自己没有错,而别人又说我们,我们又没有错,然后里面就开始较劲,这一较劲,嘴巴就说不了话了。
如果你觉得你做错了,人家说你,你就说"哎呀我没整对",你不就好办了吗?你回答"对对对,你说的太对了"。这就啥事都没有,肯定能说话。
Q9:老师,竭力追求,是不是要以喜乐为前提?
竭力追求跟喜乐还真的拉不上关系。我问你竭力追求累不累?肯定是累的。辛苦不辛苦呢?是很辛苦的。那有没有点喜乐呢?胜过去了是有喜乐。但是没胜过去肯定很辛苦的。
서론
이번 주에도 이어서 《예레미야애가》를 나눕니다. 애가가 울려 퍼지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아시겠습니까? 듣기만 해도 참 괴롭습니다.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애가를 누가 듣고 싶어 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어떤 사람이 "아, 잠이 안 오네, 애가나 좀 들어볼까" 하는 것을 보신 적 있습니까?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아무도 듣기 싫어합니다. 우리 중에 잠이 안 와서 애가를 듣는 분이 계십니까? 만약 있다면 정말 특이한 사람일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4장은 참 좋습니다. 밤에 애가가 없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사람이 평생 매주 《예레미야애가》를 듣는다면 정신이 번쩍 들 것입니다. "아이고! 이거 큰일 났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상황에 대입해서 보아야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기시감이 들 것입니다. 모든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트래픽(조회수)을 얻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트래픽을 다투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제가 《예레미야애가》를 설교하니 큰일 났습니다. 원래 있던 트래픽마저 사라졌습니다. 누가 이런 것을 듣고 싶어 하겠습니까? 트래픽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들으려는 자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우선 수많은 재앙을 피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인생은 재앙 한 번이면 옛 시절로 돌아가고, 재앙 두 번이면 천지창조 이전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얼마 전에 한 자매님이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본 재앙을 자신의 목회자에게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전에 보았던 이런 류의 재앙도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수없이 많습니다.
그 자매에게 아주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몹시 안 좋은 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병명은 말해주지 않고 계속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저는 대략 암이거나 암과 같은 중병일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건 제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제 마음속에서 매우 영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늘 환상과 꿈을 이야기했고, 환상과 꿈 사역을 시작하여 전 세계 곳곳에 기도 제단을 세웠습니다. 저에게는 영적 선배 격이었습니다.
수년 전 베이징에서 주님을 믿었고, 그 후 제가 당시 다니던 전통 교회에 온 지 며칠 안 되어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교회를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마침 제가 물어보았더니 그녀는 "교회에 있을 수가 없어요. 목사님이 사람을 너무 통제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리둥절해서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당시 제 상태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자매가 저에게 자주 전화를 걸어와 점점 친해졌고, 함께 《성경》도 공부했습니다. 저는 그녀와 함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녀는 자주 꿈을 꾸고 환상을 보았는데, 저는 그것이 몹시 부러웠습니다. 우리는 그 사역 단체에 한동안 함께 있기도 했습니다. 저도 다른 교회들에 가보았지만, 어디를 가도 제 아들의 야뇨증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화인 사명 신학 교회에 오게 되었는데, 불과 몇 주 만에 아이에게 뚜렷한 호전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문득 '오직 화인 사명 신학 교회에만, 이곳의 하나님만이 진짜이시구나'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때부터 정착하여 어느덧 수년이 흘렀습니다. 이것은 제가 스스로 어느 교회에 갈지 결정한 첫 번째 경험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남들이 어디가 좋다고 하면 그곳에 머물곤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자매는 여러 곳을 다녔고, 저에게 자주 자신이 꾼 꿈을 이야기하며 어디를 가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공동체 안에 온갖 시기와 분쟁이 일어난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녀의 그런 이야기들을 점점 듣기 싫어졌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그곳에서 나오라고 권면했고, 화인 사명 신학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30분 정도만 들을 수 있었고, 더 많이 들으면 견디지 못했습니다. 강사님의 설교 중 많은 부분이 꽤 혈기적이고 다소 거칠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최근에 그녀가 병에 걸려 저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저는 망설이다가 제가 본 바를 이야기해 주며, 지난 수년 동안 자신이 무언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 볼 수 없겠냐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몇 번을 돌려서 완곡하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몹시 화를 내며 제 말이 자신에게 덕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얼른 입을 닫고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그녀의 혈액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이 자매가 묘사한 이런 이야기는 제가 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사역도 해보았습니다. 그렇게 섬기고 난 뒤에 보면, 아이고 세상에, 저주 가운데 살 수는 있어도 본인에게 저주 가운데 살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기가 막힐 노릇 아닙니까? 자신에게 덕이 되지 않는다니요. 덕을 세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덕을 세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셔야 합니다. 정말로 여러분을 저주에서 해방시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 자매님은 사실 소목회자이기도 한데, 그 병의 근본 원인을 분석했습니다. 병의 근원은 바로 극단적인 선악을 분별함, 극단적인 이기심, 극단적인 세상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모르고, 우리는 압니다. 만약 그것을 말해준다면 분명 그녀를 실족하게 만들 것입니다. 사실 그녀도 주님을 꽤 사랑하고 자주 회개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병이 난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일을 하여 저주를 불러왔기 때문입니다. 허구한 날 환상을 보고, 허구한 날 꿈을 꾸는데,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분명 다른 사람이 암에 걸리면 그녀 역시 그 사람을 위로해 주었을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상대가 이미 암에 걸렸으니 자극하지 말자면서요.
아이고, 제가 보기에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 없이 공부하고, 하나님의 뜻과 행하심을 알지 못하며,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들을 수없이 행했습니다. 선악을 분별하고, 자신이 받은 깨달음과 꿈에만 집착하며, 심지어 결단코 돼지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이슬람교도입니까? 저는 이런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체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상을 보고 꿈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공부하는 데 공을 들이기 어렵습니다. 여러분, 알고 계십니까? 방언을 말하고 통역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깨닫기 싫어서 지름길로 가려는 방식들입니다.
그리고 저와 제 남편이 그녀를 보러 갔을 때, 그 자매는 평소에 우리를 잘 챙겨주지 못했다며 사과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제발 그만둬라, 챙겨주기는커녕 우리까지 백혈병에 걸리게 하려고 그러나' 싶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앞으로는 우리를 잘 사랑하고, 자기 가정과 아이들을 사랑하겠다고 했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여전히 그 방식 그대로입니다. 어떻게 변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을 하든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다 완벽하다고 여깁니다.
그녀는 또 우리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자며, 자신이 꿈을 꾸었는데 우리와 함께 교회를 세우자고 했습니다. 이 땅에 실재하고 실질적인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 있는 교회를 세우자고요. 이 이야기를 저에게 몇 번이나 꺼냈는데, 저는 그때마다 얼버무리며 넘겼지만, 이번에는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읽어드린 그 자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화인 사명 신학 안에서 잘 성장해야 하며, 스스로 무슨 교회를 세울 만한 역량이 전혀 되지 않습니다.
나중에 저는 유튜브에서 조회수가 매우 높은 영적 전쟁 기도 녹음본을 그녀에게 보냈습니다. 그녀는 일이 있을 때 화인 사명 신학을 듣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전하는, 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치는 설교를 듣는다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모든 사람이 화인 사명 신학 목사님의 설교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사명(운명)일까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할 수는 없습니다. 그녀와 제가 선택한 길 중 오직 하나만이 옳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더욱 바짝 정신을 차리고 지각 안에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배우며 제 육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이 세대의 비극입니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다가 갑자기 재앙이 닥칩니다. 정말로 순전한 복음을 전한다면 병원에 가서 확진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하나님이 최고의 의사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죽을 때까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시대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들은 예레미야서를 읽지 않고, 읽어도 깨닫지 못하며, 사람이 늘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 그런 위로형 메시지를 믿지 마시고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예레미야 시대에 겪었던 일들을 아십니까? 겉보기에는 다들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만나면 "아이고, 널 정말 사랑해"라고 합니다. 그러다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오자 자기 자식을 카레 인육으로 만들었습니다. 누가 만들었습니까? 자기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자기 자식을 삶아 먹었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그 비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참으로 탄식하고 또 탄식합니다. 이런 일들을 볼 때 제 마음은 늘 슬픔으로 가득 찹니다. 제 친구인 한 목사님은 4개월 동안 호스를 꽂고 있었는데, 나오는 소변이 전부 소금물 같았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너무나 큰 고통을 겪었고 온몸이 다크초콜릿 색으로 변했습니다.
관 속에 누워 계실 때 제가 찾아갔습니다. 그전에는 찾아갈 기회가 없었습니다. 말씀드리자면, 그분은 신부전이 아니라 코로나였는데 치료받다가 신부전이 된 것입니다. 제가 관에 누워 계신 그분을 보러 가서 그 사모님께 여쭤보았습니다. "피부가 왜 이렇게 미라처럼 까맣게 변했습니까?" 그러자 사모님이 "약물 치료 때문에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저보다 1년 늦게 코로나에 걸렸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참으로 깊은 탄식이 나왔습니다. 병원에 4개월 동안 있으면서 총 40만 싱가포르 달러가 넘게 들었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이 말을 귀담아듣기를 간절히 바라고, 형제자매들이 재앙 속으로 걸어 들어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 당장 괜찮다고 해서 결코 안심하지 마십시오. 오늘 괜찮은 것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단지 하나님의 진노가 아직 임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자기가 괜찮은 줄 알고 있는 것, 그것이 정말 치명적인 일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왜 전력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지 말입니다. "당신 너무 자만하는 것 아니오?"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아닙니다. 제가 온 힘을 다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도 여전히 부족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이것이 최고의 길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저는 늘 제 자신이 아직 부족하다고 느끼고, 아직도 한참 멀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제게 진리가 다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비록 화인 사명 신학을 창립하고 하나의 체계를 세웠지만, 목양의 길에서는 아직도 한참 부족하며 마음은 원이로되 역량이 턱없이 모자랍니다.
제 앞에 놓인 해야 할 일들 중에는 우리 소목회자들을 훈련하고, 사역 조교들을 훈련하며,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을 훈련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리새인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이고, 말씀드리자면 수많은 난제가 첩첩산중입니다. 최근에 약간의 위로를 얻었는데, 해외에서 조금씩 조금씩 확장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
여호와께서 분을 내시며 그의 맹렬한 진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지르사 그 터를 사르셨도다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예레미야애가》 4:11-13)
이 말씀은 참으로 귀합니다. 이런 말씀이 있어도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는데, 이런 말씀마저 없다면 언제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기도
하나님, 저희로 하여금 주님 앞에 경외하는 마음을 품게 하옵소서. 하나님, 주님의 분노에서 저희를 구원하시고, 주님의 맹렬한 진노에서 건져 주옵소서. 하나님, 교회를 세울 때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세우게 하옵소서. 주께서 불을 지르사 시온의 기초를 사르셨습니다. 하나님, 주님만이 우리의 기초이시니, 이제부터 우리는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주님의 분노에서 우리를 건져 주옵소서.
하나님, 교회 가운데 주의 말씀을 끊임없이 선포하게 하옵소서. 그 말씀이 무겁든 가볍든, 듣기 좋든 듣기 싫든, 우리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행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형제자매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셔서 주님을 경외함을 알게 하시고, 주의 분노 가운데 사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알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배경
당시 예레미야가 무엇을 보았는지 아십니까? 예레미야가 예루살렘 거리에서 문을 열었을 때, 아이고 세상에! 아이 엄마가 자기 아이를 삶고 있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오늘은 카레 고기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아이고 세상에,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예레미야였다면 어떤 기분이었겠습니까? 저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엄청난 충격입니다.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겹겹이 포위했습니다. 전해지는 바로는 1년 4개월 동안 물 샐 틈 없이 에워싸서 쥐 한 마리도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만약 쥐 한 마리가 성 안으로 들어갔다면 분명 카레 쥐고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의 진노가 예루살렘에 쏟아졌는데도 바벨론이 즉시 함락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차라리 즉시 함락되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렇죠? 칼에 맞아 죽는 것이 굶주림에 죽는 것보다 나은 법인데, 결국 1년 4개월이나 끌었습니다.
몸이 숯처럼 타들어 가듯 그 참상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성 안의 사람들도 바벨론을 물리칠 수 없었고, 바벨론도 1년 4개월 동안 성벽을 뚫지 못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준엄하신지 아시겠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 속에 있는 그 악함을 완전히 밖으로 끄집어내신 것입니다. 예전에는 겉보기에 참 좋아 보였는데, 세상에, 자애로워 보이던 여인이 제 아이를 삶아 먹고 있습니다. '이 여자가 내가 알던 그 여자가 맞나? 전에는 하얗고 곱상하며 금과 은으로 치장했었는데, 지금은 새까맣게 변했구나.' 이것이 예레미야가 직접 눈으로 본 광경입니다.
이 성 안에서 예레미야만 "항복하십시오"라고 말했을 뿐, 다른 선지자들은 "함락되지 않습니다. 이곳은 우리 위대한 왕의 성이요, 우리에겐 성전이 있고, 언약궤가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 앗수르 시절에도 언약궤를 메고 나갔다가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선지자들은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그리스도인들을 보신 적 있습니까? 늘 "나는 승리하리라, 나는 승리하리라, 나는 승리하리라"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저는 "제발 그만하십시오. 당신 모양새를 보니 승리할 사람 같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그늘 아래, 덮으심 아래 있으므로 열국 중에서 살아남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니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으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에게 주신 말씀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알아야 합니다. 최근 우리 가운데 몇몇 중병에 걸린 분들이 오셨는데, 사실 다들 주님을 믿는 분들입니다. 그들은 듣기 좋은 말에만 익숙해져 있어서 차라리 믿지 않는 편이 나았을 정도입니다. 이 질병들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 진노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쏟아부으신 진노와 거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선지자와 제사장이 진실을 말하면 사람들은 듣지 않고 오히려 핍박하고 심지어 죽였습니다. 예레미야가 바로 그 예입니다. 예레미야는 진실을 말한 대가로 매우 혹독한 값을 치렀고, 참혹했습니다. 예레미야도 고통을 겪었습니다. 성 안에 먹을 것이 없는데 예레미야는 무엇을 먹었겠습니까? 예레미야는 기도로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습니다. 거짓을 말하는 선지자와 제사장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고 해를 입지도 않았으며 승진하고 출세했습니다. 거짓말도 자꾸 하다 보면 스스로도 그것이 거짓인 줄 모르게 됩니다. 이런 상태는 정말 수습하기 어렵습니다.
이때는 이미 결말이 닥친 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새롭게 알아야 하고, 자신을 새롭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목사님, 싱가포르의 미래가 어떨 것 같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허! 제가 "진실을 말할까요, 듣기 좋은 거짓말을 할까요? 싱가포르의 미래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의 화려함을 보지 마십시오. 우리는 《예레미야서》의 말씀대로 보아야 합니다.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속된 것들에게 고난의 잔이 반드시 전달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평안하다, 평안하다" 할 때 재앙이 갑자기 닥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 누구라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뿐만 아니라 에돔 사람, 즉 세상에 속한 자들도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의 진노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을 듣고 나면 제 마음이 너무나 무겁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진노를 쌓아 올렸을 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에게 예레미야는 뭐라고 했습니까? "너의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했는데, 사람이 70년을 몇 번이나 살 수 있겠습니까?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스무 살이었다면 70년 뒤에는 아흔 살입니다. 그 세대는 이미 다 지나갔는데, 다시 사로잡혀 갈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럴 필요도 없이 바로 끝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면 여러분의 세대가 몹시 비참하게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 시온의 아들들이 고귀하여 순금에 비길 만하더니 어찌 그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광야의 타조 같도다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전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던 자들이 이제는 거리에 멸망하였으며 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자라난 자들이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았도다 전에 손을 대지 아니하여도 순식간에 무너진 소돔의 죄악보다 내 백성의 죄가 더 크도다 전에는 존귀한 자들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들보다 붉어 그들의 윤택함이 다듬은 청옥 같더니
이제는 그들의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들의 가죽이 뼈에 붙어 막대기 같이 말랐으니 어느 거리에서든지 알아볼 사람이 없도다 칼에 죽은 자들이 주려 죽은 자들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그들은 찔림을 받은 자들처럼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 딸 내 백성이 멸망할 때에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 (《예레미야애가》 4:1-10)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바로 이 땅의 선지자들의 죄악과 제사장들의 죄 때문이며, 그들이 성 안에서 의인의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말씀드리자면, 동업자가 원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참선지자였고, 거짓 선지자들에게 참선지자는 원수였습니다. 묻겠습니다.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해를 입는 일이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 체제를 한번 건드려 보십시오. 아주 비참하게 죽게 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남들이 들으려 하면 듣는 것이고, 저는 남의 문을 차거나 남의 도장을 깨러 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배짱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대는 예루살렘, 예레미야의 시대와 얼마나 닮아 있는지 모릅니다. 모두가 "평안하다, 평안하다, 평안하다"를 외치지만 재앙이 홀연히 닥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성 안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구를 섬긴다고 생각했습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예루살렘 성을 지켜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지금도 그리스도인들이 국가를 위해 기도합니다. 당시에도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사람들을 모아 함께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모았습니다. 지금도 미국을 위해 기도하고, 싱가포르를 위해 기도하는 모임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시키신 일입니까? 전부 자기들의 사욕을 따라 행한 것입니다. 아이고, 그들에게 진실을 말하면 그들은 당신을 죽이려 들 것입니다. 이것이 예레미야가 당시에 보았던 상황이며, 이 애가의 배경입니다.
황금으로도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없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는고. 황금이 그때가 되면 광채가 있겠습니까? 광채를 잃습니다. 당신 손에 빵 한 덩이가 있고 내 손에 황금 한 덩이가 있을 때, 내 황금과 당신의 빵을 바꾸자고 해보십시오. 어림도 없습니다. 황금이 쓸모없어졌기 때문입니다. 황금은 정말 곡식 한 줌보다 가치가 없어집니다.
과거 기근의 시대를 겪었던 제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인데, 돈 한 포대를 가져가도 빵 한 봉지를 바꾸지 못했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돈은 가치가 없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은 '돈이 있어야 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돈으로도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이 황금의 광채를 잃게 하시고 순금의 색을 변하게 만드십니다. 묻겠습니다. 순금이 어떻게 색이 변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색을 변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황금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머릿속에서 돈에 대한 태도를 다시 바로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늘 "아, 투자해서 부자 되자! 새해 복 많이 받고 부자 되세요!"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때 황금이 소용있겠습니까? 황금은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초를 다시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야 합니다.
이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황금을 중히 여겼습니다.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죄악을 저지르고 의인의 피를 흘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 돈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왜 황금을 쥐고 있으려 합니까? 다 먹고살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당신에게 "내일 당신은 끝납니다"라고 한다면 당신의 돈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아이고 바쁘다" 하며 부랴부랴 변호사를 찾아 유언장을 쓰고 정리를 하겠지요.
사람이 재물 위에 믿음을 두고, 황금과 순금과 은 위에 믿음을 두는 순간 끝장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막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진노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 설교를 듣지 못합니다. 듣고 나면 숨이 막히는 설교라 생각하고, 듣고 나서 정죄하는 소리가 너무 강하다고 여깁니다. "나는 이런 정죄하는 설교 안 들어."
성전으로도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없다
여러분은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그 성전은 여호와의 성전이었고, 솔로몬과 다윗이 수많은 재물을 들여 건축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거하지 않으시며 성전으로도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없습니다.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성전을 보며 얼마나 위대하다고 여겼는지 아십니까? "우리에게 성전이 있고, 성전 안에 언약궤가 있으니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승리하겠습니까? 참으로 부패했고, 너무나 부패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세우는 사람치고 부흥하는 교회를 세우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기초가 과연 하나님의 불을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진노를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견뎌내지 못한다면 차라리 세우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바벨론 군대를 이끌고 오셔서 이 성을 멸하시고 이 성전을 파괴하시려는 것인데, 견뎌내지 못하면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만 격발할 뿐입니다.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세운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을 두고 "화인 사명 신학이 승리하는 교회다"라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것에 큰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우리 마음에 그분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신분으로도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없다
시온의 아들들이 고귀하여 순금에 비길 만하더니 어찌 그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예레미야애가》 4:2)
보셨습니까? 바로 시온의 고귀한 아들들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외쳐보십시오. 하늘이 무너지도록 외쳐도 소용없습니다. 그 사람들 모두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여겼습니다. 저는 몇몇 절친한 친구들을 떠나보냈는데, 하나둘씩 연이어 떠나갔습니다. 아이고, 장례식을 한 번 또 한 번 참석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다들 자기가 하나님의 선민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렇게까지 되겠습니까?
생명책에 아주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은 전부 저주입니다. 말씀드리자면, "내가 2012년에 구원받았으니 이제 더 이상 구원받을 필요가 없다"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소용없습니다. "나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다" 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선지자들, 제사장들과 똑같습니다. 그들은 이 신분이 얼마나 존귀한 줄 알았지만, 사실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선지자들의 죄악과 제사장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이 선지자들이 "우리는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의 자녀다. 이곳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다"고 말할지라도 하나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십니다.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 아닙니까?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니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제발 그만두십시오. 차라리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그렇지 않습니까? 속으로는 온갖 추악한 짓을 생각하면서 입으로는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해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내면을 정리하고, 우리 안에 도대체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온에 불을 지르사 시온의 기초를 사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를 세울 때는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 노릇을 하려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엄청난 진노를 불러오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만 앞세우지 마십시오. 그런 말을 해봐야 소용없으니 차라리 실질적으로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십시오. 결코 재앙이 이미 닥친 뒤에야 위로의 말이나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전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붉은 융단을 덮던 자들도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없다
저는 사업이 잘된다고 자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내가 사업이 이렇게 잘되는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았겠어?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았다면 내 사업이 이렇게 잘될 수 있겠어?" 저는 이 말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사업이 당신보다 훨씬 더 잘됩니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에서의 사업이 야곱의 사업보다 훨씬 컸습니다. 그러니 그런 것으로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가난한 것은 분명 좋지 않으며, 가난한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 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복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질병이 있는 사람도 영적인 사람이 되기 어렵고,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당신에게 병이 없다고 해서 그것이 무엇을 증명합니까?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병이 없는 많은 사람은 단지 하나님의 진노가 아직 임하지 않았을 뿐이고, 부유한 많은 사람 역시 하나님의 진노가 아직 임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예루살렘 성안에서 바벨론 군대가 오기 전에는 전부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술을 마시고, 진미를 먹었습니다. 양꼬치에 맥주 두 병 마시듯이요. 잠잘 때는 붉은 융단, 붉은 요를 덮고 잤습니다. 붉은 요는 귀족들이나 덮고 자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때는 참 잘 살았습니다. 선지자가 "당신들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살고 있습니다"라고 하면, "제발 그만하시오. 우리 집을 보시오, 내가 뭘 먹고 어떻게 자는지 보시오. 부럽소? 우리 집 매트리스가 얼마짜리인지 아시오? 보통 매트리스가 아니라 10만 위안짜리요"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없습니다. 단지 당신이 잘 먹고 잘 잔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지, 머릿속은 멍청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돈을 잘 번다는 것은 단지 돈 버는 재주가 있고 세상에서 그럭저럭 잘 나간다는 뜻일 뿐입니다. 잘 나간다는 것이 무엇을 증명합니까?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이 개념을 혼동하지 마십시오. 단지 재앙이 아직 닥치지 않았을 뿐입니다.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물 샐 틈 없이 에워쌌을 때, 예전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붉은 보석을 두르던 사람이 밖으로 나왔을 때는 숯불에 탄 것 같고 탄광에서 석탄을 캐다 나온 사람 같았습니다. 시커먼 사람이 나오니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안락하고 화려한 삶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결코 착각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3만 위안짜리 매트리스를 사고도 여전히 불면증에 시달려 잠을 못 잡니다. 매트리스가 너무 좋아서 오히려 불면증이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안락한 삶을 핑계로 자신이 영적인 사람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다 소용없습니다.
귀족들의 아름다운 용모로도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없다
전에는 존귀한 자들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들보다 붉어 그들의 윤택함이 다듬은 청옥 같더니 이제는 그들의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들의 가죽이 뼈에 붙어 막대기 같이 말랐으니 어느 거리에서든지 알아볼 사람이 없도다 (《예레미야애가》 4:7-8)
당신이 앞으로 잘 먹어서 포동포동하고 희고 깨끗하게 살이 찌고, 화장까지 곱게 하고 다닌다 한들, 결국에는 숯을 굽다 나온 사람처럼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런 것들 때문에 회당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다 "아이고 왕 형제님, 이 형제님, 장 형제님 안녕하십니까" 하며 회당에서 존경을 받고 번듯해 보입니다. 돈이 있고 지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선지자와 제사장이 눈여겨보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큰 문제이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자들을 향해 하나님은 일부러 그들의 얼굴을 숯보다 검게 만드시고, 가죽이 뼈에 달라붙게 하셨습니다. 이전에는 호의호식하며 살았으니 이제 가장 참혹한 현실을 맛보게 하신 것입니다. 누가 그런 것들을 영적이라고 여기라 했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괜찮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 여러분도 아셔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선지자들의 죄악과 제사장들의 죄 때문입니다. 장담하건대 위로형 메시지나 전하는 교회는 분명 번성할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를 설교하는 교회는 결코 잘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애가》를 설교하는 교회에는 분명 참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경외하는 자들이 모일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무너뜨리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지난 몇 년간의 전염병으로 수많은 교회가 무너졌고, 최근에도 계속해서 교회를 허물고 계십니다. 계속해서 부수고 계십니다. 허무신 뒤에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려거든 교회의 기초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 위에 세우고, 하나님의 진리 위에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불을 내리셔도 불타지 않고, 영원히 거하는 것은 반드시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 절대로 풀이나 나무나 짚으로 교회를 세우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불을 견디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불로 한 번에 태워버리시면, 그런 교회를 세운 사람들에게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선포하는 내용들이 하나님의 말씀도 아니고 체계도 없다면 누가 당신을 믿겠습니까?
결론
비참한 결말은 모두 선지자들의 죄악과 제사장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불을 통해 기초를 사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불을 통해 성전을 허무실 것입니다. 거짓 믿음을 전하는 것은 그저 위로형 메시지에 불과한 믿음일 뿐이며, 세상 나라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우스 땅에 사는 딸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려무나 잔이 네게도 이를지니 네가 취하여 벗으리라 (《예레미야애가》 4:21)
여러분, 이 말씀을 깨달으셨습니까? 에돔은 세상을 대표하며, 세상을 사랑함을 대표합니다. 애굽도 세상을 대표하고 에돔도 세상을 대표합니다. 세상에 속한 자들이여, 서두르지 마십시오. 이 고난의 잔은 반드시 당신에게도 이를 것입니다. 장차 이 세대에는 부정한 사람을 보면 피하며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여 결국 만인의 혐오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곳에 머물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노하사 그들을 흩으시고 다시는 돌보지 아니하시리니 사람들이 제사장들을 존경하지 아니하며 장로들을 대접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우리가 사람의 도움을 바라므로 눈이 상하기까지 바라보았으나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았도다.
그들이 우리의 걸음을 엿보니 우리가 거리마다 다 다닐 수 없음이여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들이 다하였으며 우리의 종말이 이르렀도다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하늘의 독수리들보다 빠름이여 산꼭대기까지도 뒤쫓으며 광야에서도 우리를 잡으려고 매복하였도다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그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 (《예레미야애가》 4:18-20)
그들이 거짓말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름 부음 받은 자라 여겼고, 자신들의 코로 호흡하는 숨결이 다 아브라함의 호흡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함정에 빠져 붙잡힌 신세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그늘 아래서 열국 중에 살 것이라 여겼으나,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 보응과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 것입니다.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이 이 말씀을 듣고 나서 이러한 일들이 여러분에게 닥치기 전에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께로 돌이켜 그분을 온전히 경외함으로 이 재앙 속에 빠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번 설교는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