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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요한삼서 1장 -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들을 영접하라

2024-01-24 4,383 约翰三书 约翰三书01章 约翰三书第一章 凡事兴盛 身体健壮 灵魂兴盛 不占人便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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约翰三书01章-问候
  • 1 作长老的写信给亲爱的该犹,就是我诚心所爱的。
  • 2 亲爱的兄弟啊,我愿你凡事兴盛,身体健壮,正如你的灵魂兴盛一样。
  • 3 有弟兄来证明你心里存的真理,正如你按真理而行,我就甚喜乐。
  • 4 我听见我的儿女们按真理而行,我的喜乐就没有比这个大的。
  • 5 亲爱的兄弟啊,凡你向作客旅之弟兄所行的都是忠心的。
  • 6 他们在教会面前证明了你的爱;你若配得过 神,帮助他们往前行,这就好了。
  • 7 因他们是为主的名(原文是那名)出外,对于外邦人一无所取。
  • 8 所以我们应该接待这样的人,叫我们与他们一同为真理做工。
  • 9 我曾略略地写信给教会,但那在教会中好为首的丢特腓不接待我们。
  • 10 所以我若去,必要提说他所行的事,就是他用恶言妄论我们。还不以此为足,他自己不接待弟兄,有人愿意接待,他也禁止,并且将接待弟兄的人赶出教会。
  • 11 亲爱的兄弟啊,不要效法恶,只要效法善。行善的属乎 神;行恶的未曾见过 神。
  • 12 低米丢行善,有众人给他作见证,又有真理给他作见证,就是我们也给他作见证。你也知道我们的见证是真的。
  • 13 我原有许多事要写给你,却不愿意用笔墨写给你,
  • 14 但盼望快快地见你,我们就当面谈论。
  • 15 愿你平安。众位朋友都问你安。请你替我按着姓名问众位朋友安。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가 《요한삼서》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요한일서》와 《요한이서》를 다 공부했습니다. 《요한삼서》는 단 한 장으로 되어 있으며, “진리를 위해 함께 일하는 자를 영접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더러 저를 대접하라고 권면하는 것이 아니며, 저는 딱히 그것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진리를 위해 함께 일하는 자를 영접하라”는 이 말씀 안에는 매우 흥미로운 논리가 담겨 있으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중점적으로 나눌 부분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제가 여러분에게 대접받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제가 여러분을 섬기고 대접하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삼서》 1:2)

이 세상에는 참으로 하나님을 위해 일하며 모든 대가를 치른 사람들이 있는데, 이치대로라면 그 사람은 당연히 부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어떤 단계에서는 사역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재정적 후원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장은 바로 그 가이오를 시험해 보려는 것입니다. 가이오가 영접해야 할 그 사람이 돈이 있든 없든, 가이오가 영접하든 안 하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실 수 있습니다.

편지를 쓴 목적

《요한이서》에 기록된 내용은 적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를 잘못 영접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조심하다 보니 마땅히 영접해야 할 사람까지 영접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영접해야 하고, 언제 영접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나온 편지가 바로 《요한삼서》입니다. 저희 시대에는 ‘추천서(소개장)’라는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의 파송을 받아 왔는지를 알려주는 편지가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분명 사도 요한이 몇몇 동역자를 어떤 지역으로 섬기러 보냈는데, 마침 가이오가 있는 곳을 지나가게 되어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간단히 편지를 썼을 것입니다. 가이오에게 쓴 이유는 그가 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예비하신 시험으로, 돈이 생긴 후에도 여전히 돈이 부족하다고 느끼는지를 보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이 생겨도 늘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돈이 없을 때는 50제곱미터짜리 작은 아파트에 살다가, 돈이 생기면 100제곱미터짜리에 살기를 바라는데, 그러면 돈은 당연히 부족합니다. 100제곱미터에 방 3개, 화장실 2개, 거실 2개 있는 집에서 살게 되면 또 안 되겠다 싶고 여전히 작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대형 평수 아파트나 빌라, 심지어 대저택을 사고 싶어 합니다. 이런 사람은 평생 가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사고 나면 또 저것을 사고 싶어 하니,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늘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다 비행기까지 사고 싶어지면, 그 돈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사람이 가난한지 아닌지는 다 상대적인 것입니다. 이 가이오도 돈이 좀 있었지만, 비행기를 사려고 한다면 턱없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요한삼서》 1:5-8)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편지를 쓴 것은, 진리를 위해 함께 일하는 이들을 가이오더러 영접하라고 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종종 거꾸로 행동합니다. 마땅히 영접해야 할 때는 안 하고, 영접하지 말아야 할 자는 영접합니다. 이런 일은 꽤 흔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깨닫게 되는 것은, 설령 잘못 영접하여 그들에게 돈을 좀 썼다고 해서 여러분이 가난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가난한지 아닌지는 마음이 가난한가 아닌가에 달려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 편지를 쓴 것은 가이오에게 재정적으로 후원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만약 잘못 후원하면 어떡합니까?”라고 묻습니다. 틀릴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이미 검증을 거친, 진리를 위해 함께 일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위해 함께 일하는 자를 영접함

영접하는 사람이 진리를 위해 함께 일하는 자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마에 “나는 진리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고 쓰여 있는 것도 아니고, “진리를 위해 일함”이라는 마크가 붙은 모자를 쓴 것도 아닙니다. 천사가 준 모자라고 스스로 자랑하며 천사가 증언해 주니 자기가 진리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 모자가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렇다면 진리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러분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진리를 위해 함께 일하고 하나님을 함께 섬기는 사람은 부족함이 없을 텐데, 왜 여러분의 후원이 필요할까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시험하시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이 후원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다른 사람이 후원할 것이며,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섬기고 영접하는 사람의 입장이 있는가 하면, 영접을 받는 사람의 입장은 또 다릅니다. 영접을 받는 사람이 ‘당신이 뭔데 나를 대접하지 않느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생각한다면 큰일입니다. 사실은 대접하는 사람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생각하여 마땅히 대접해야 하는 것이고, 대접을 받는 사람은 ‘저 사람이 무슨 이유로 나를 대접하겠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즉, 대접을 받는 사람의 내면에는 아무것도 취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요한삼서》 1:7)

여러분이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려 한다면,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자기 주머니에 넣으려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주머니를 털어내려는 마음을 가지면 길가의 개도 알아채고 공중의 참새도 그 소리를 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취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만약 우리 동역자들을 대접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 동역자가 여러분에게서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지, 아니면 무언가를 주고자 하는지를 잘 관찰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비교적 엄격한 규칙이 하나 있는데, 성도들의 것을 탐내거나 이득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대접한 사람이 오자마자 가방에서 다단계 제품을 꺼내놓는다면, 알고 보니 다단계 판매원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물건을 주고 여러분 주머니의 돈을 가져가려는 속셈입니다. 이것은 진리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단계 판매일 뿐입니다. 다단계 판매원들도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그 사람이 과연 여러분에게서 무언가를 바라는지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요? 말씀드리자면, 우리 공동체 사람들 모두가 사심이 전혀 없다고는 장담할 수 없고, 어쩌면 디오드레베 같은 사람이 몇 명 나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대다수가 남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 않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과 함께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바랄 뿐이라는 점입니다. 제가 잘난 척하며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제가 한 형제를 심방했는데, 그가 저를 아주 극진히 대접해 주었습니다. 제가 그를 데리고 나가 식사를 대접하려 했더니, 그 형제가 앞다투어 밥값을 냈습니다. 저는 그 지역 언어가 통하지 않아 현지인들이 영어도, 중국어도 쓰지 않았습니다. 제가 무슨 말인지 채 알아듣기도 전에 그가 이미 결제를 끝내버렸습니다. 나중에 제가 그 돈을 다 송금해 주었더니, 그는 아예 계좌를 막아서 제가 돈을 보내지 못하게 만들었고, 저는 그 일로 그를 한바탕 혼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이 대접할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여러분에게서 어떤 이득을 취하려 하는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우리는 남에게서 무언가를 얻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평생 《요한삼서》 같은 책을 다시 쓸 일도 없을 것이며, “사랑하는 형제 가이오여, 내가 아무개 동역자를 그대에게 보내니 그를 영접해 주십시오”라고 말할 기회도 없을 것입니다. 동시에 여러분더러 우리 동역자를 대접하라고 할 일 역시 일어날 확률이 극히 희박함을 확신합니다.

사도 요한 시대에는 타지로 나가는 것이 매우 고된 일이었습니다. 그 시대뿐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50년 전만 거슬러 올라가도 먼 길을 떠나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구형 완행열차에 빽빽이 끼여 타 보았거나, 기차표를 구하려고 인산인해를 이룬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 시절에는 기차 한번 타려면 보름치, 심지어 한 달치 월급이 날아갈 정도로 고생스러웠습니다. 가이오에게 편지를 쓴 것은 사도 요한 시대의 일이었고, 지금은 비행기 타는 것도 매우 저렴해졌습니다.

아무것도 취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사역하는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위해 일하는 자들이며, 오직 성도들이 함께 복음의 유익을 얻기만을 바랄 뿐, 여러분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규칙이 있는데, 헌금도 자격이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교회의 이러한 구조를 꽤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설명하지 않았는데, 새로 오신 분들은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여러분도 기이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년 전 제가 관찰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교회를 개척하던 초기였는데, 다른 교회에서 저를 초청해 설교를 부탁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잘 몰라서 설교를 마치고 그냥 가려고 했는데, 그쪽에서 소위 ‘사랑의 헌금(사례비)’이라 불리는 봉투를 건네주었습니다. 다른 목사님들께 물어보니 “참 좋네요, 그 사례비가 생겼으니 주말에 근사한 식사를 할 수 있겠네요”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뭔가 이상했습니다. 다른 목사님을 우리 교회로 초청해 설교를 맡길 때도 그분께 ‘사례비’를 드려야 했습니다. 더 알아보니, 다른 교회에서 저에게 사례비를 주면 저는 곧바로 그것을 헌금해 버렸습니다. 반면 제가 그들에게 준 사례비는 그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고, 심지어 그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전한 설교는 엉터리였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 교회는 설교에 대한 기준이 다소 높습니다. 이제는 점차 저를 이해하시겠지만, 저는 죽으나 사나 제 자리를 지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제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을 섬기고, 하나님의 교회를 잘 세우며,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남이 준 사례비를 헌금했는데, 그들은 제가 준 사례비를 자기 주머니에 챙겼습니다. 돈이 한 바퀴 돌아 자기 호주머니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제가 왜 이런 방식을 그토록 싫어하는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정말 이런 짓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 설교를 듣다가 지루해지셨다면 괜찮습니다. 인터넷에 얼마든지 있으니 다른 분들의 설교를 들으셔도 됩니다. 사실 저는 매번 설교 원고를 준비할 때마다 온 힘을 다합니다. 설교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수년 동안 중복되지 않게 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참으로 힘들게 전하고 있습니다. 외부에 나가서 설교하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저에게는 이미 수천 편의 설교 원고가 있고 예화도 신선해서, 대충 골라잡아도 10분이면 준비가 끝납니다. 하지만 우리 성도들에게 전할 때는 참으로 고됩니다. 매번 새로운 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늘 성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제 말의 요점은,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을 할 때는 아무것도 취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저는 가난한 목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만약 제가 젊은 나이에 일찍 나와 사역을 시작했다면 오늘날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배짱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진리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가난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매우 기이한 가르침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많은 사역자가 가난을 영성의 표식으로 여깁니다. 어떤 목사님은 오늘 소시지가 먹고 싶다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저는 왜 그런 기도를 하는지 참 이상했는데, 그 목사님이 간증하기를 기도하고 다음 날 문을 열었더니 문고리에 소시지 한 줄이 걸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소시지가 먹고 싶을 땐 그렇다 쳐도, 만약 어느 날 백조가 먹고 싶다면 어떡하겠습니까? 저는 진리를 위해 일하고 싶지, 소시지를 위해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소시지가 아니라 진리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자유 사역자(독립 사역자)’라 칭하며 교회를 세우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교회를 세우지 않으면 목양을 할 필요가 없으니 부담도 없고, 설교 한 번 하고 털고 떠나면 그만입니다. 스승은 일만 명이 있을지라도 아비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신약성경》 전체의 주제는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는 것입니다. 자유 사역자가 되거나 단체나 기관 하나 차려놓고 대충 일하다가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대해 제게 약간 단편적인 견해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취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설령 가끔 누군가의 후원이 필요하다 해도, 그것은 그 후원하는 사람을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긍휼을 베푸셔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누군가가 후원하는지 안 하는지를 시험하는 도구가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듣기에도 좀 비극적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파송받아 섬기러 나가는 자는 결코 부족함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고 돈조차 챙기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제자가 “주 예수님, 지팡이 하나는 짚고 가도 됩니까?”라고 묻자, “당연하지, 두 개라도 괜찮다” 하셨는데, 농담입니다. 제가 드리고자 하는 요지는, 남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태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사역자가 아닌 평범한 성도라 할지라도, 평생 남의 덕을 보거나 이득을 취하지 않겠다고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지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영문도 모르게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내어 저를 대접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진리를 위해 자신을 드린 사람이 경험하는 바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대접하는 것이 여러분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저 역시 감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드릴까요? 우리 안에는 섬기는 자가 섬김을 받는 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는 자 자기 자신을 위해 섬긴다는 논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하는 것은 일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며, 일하는 것과 섬기는 것 모두가 은혜입니다. 자신이 많은 섬김을 했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섬김을 많이 했다는 것을 핑곗거리로 삼지 마십시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사람을 대접하고, 베풀고, 일하는 것은 모두 마땅한 일이며, 섬김은 더더욱 당연한 것입니다. 섬기지 않고 어떻게 성장하겠습니까?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지는 비결

이 가이오는 남에게 베푸는 일을 처음 해본 사람이 아닙니다. 제 생각에 그는 베풀고 후원하기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저 역시 후원합니다. 저는 주님을 믿기 시작할 때부터 헌금하기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헌금한 액수는 대략 15%에서 17%에 달했는데, 추가로 드리는 헌금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헌금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헌금하고 나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어리석게 행동하지 마십시오. 근본적인 밑바닥 논리를 모르면 상부 구조를 설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는 몇 가지 근본적인 논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여러 가지를 나누었습니다. 섬김과 사역은 모두 은혜입니다. 저는 인사부서가 해야 할 마인드 교육을 다 해드렸습니다. 또 헌금은 은혜이며,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것도 나누었습니다.

가이오가 사도 요한에게서 받은 축복은 ‘부자 되세요’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같은 것이 아니라,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였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지만, 때로는 바라도 얻지 못합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제가 말하는 이 근본 논리가 여러분을 세뇌시키거나 가스라이팅(PUA)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바로 저의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기뻐하시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는 원리를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정말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을까요?

저는 가난하던 시절에 내렸던 위대한 결단을 평생 잊지 못합니다. 세례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게 되면서 십일조를 해야 했습니다. 당시 교회의 한 원로 형제님이 저에게 일대일로 헌금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분이 그때 가르쳐 주신 모습은 오늘 제가 전하는 것처럼 매우 흥분되어 있었습니다. 간증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는데, 그것을 듣는 제 속은 오미자통이 뒤집힌 정도가 아니라 온갖 복잡한 감정이 다 들었습니다. 기분이 아주 찜찜했고, 돈 이야기가 나오니 마음이 상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난 제 마음은 열정으로 끓어오른 것이 아니라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올리브, 참깨 소스, 라임즙이 온통 뒤섞인 것 같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마음이 몹시 불편했습니다. 여러분도 저를 충분히 이해하실 것입니다. 제가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혜로운 결단을 내렸습니다. 하나님께 “한번 시험해 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월급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1년에 2천 위안을 떼어 헌금하자니 한 달에 100위안이 넘는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도전을 해보았더니 대단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연말에 제가 우수 사원으로 선정되어 상금을 아주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참 좋으신 분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헌금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며, 그렇기에 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합니다.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세상의 일들을 하찮게 여기게 마련이며, 가이오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지난번에 후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텐데, 사도 요한은 이번에 또 편지를 써서 헌금하고 후원하라고 하며, 가이오에게 범사에 잘될 기회를 끊임없이 만들어 주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천천히 살펴보십시오. 만약 헌금하면서 마음속으로 어떤 대가를 바란다면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하여 이 근본 논리를 올바르게 정립한다면 실로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진리를 따라 행함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요한삼서》 1:3-4)

모두가 잘되니 당연히 기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이끄는 이들이 코로나 시기에도 번성하는 것을 보며 제가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제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간증은 월급 2만 위안이 넘는 직장을 구했다는 소식입니다. 예전에 1만 위안 받던 사람이 이제 2만 위안을 받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여러분에게 남의 덕을 보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저는 반드시 가로막을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재물 길을 막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가난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도 이런 가난한 마인드를 품고 남의 덕을 보려 하거나 다른 사람의 유명세에 편승하려는 분이 계십니까? 저는 여러분이 손해 보게 둘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제가 자기 돈줄을 막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로막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 마음이 괴롭고, 가로막아야 제 마음에 기쁨이 넘칩니다. 이번에는 여러분이 저를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이끌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지는 길을 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속 쓰레기를 처리할 때 이 고비를 넘기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진리를 따라 행하도록 해야 하며, 그래야 반드시 범사에 잘되게 됩니다. 최근에 기초생활수급자였던 몇몇 분이 갑자기 헌금을 내기 시작했는데, 액수가 꽤 컸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가 따로 묻지는 않았습니다. 헌금하고 베푸는 것을 손해라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헌금을 드리고, 또 남에게도 얼마간 베푸는 마음, 이처럼 베푸는 자세를 갖는 것, 이것이 바로 진리를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요한삼서》 1:5)

나그네는 지나가고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법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다시 찾아오는 단골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그네는 떠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다음에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설령 돌아온다 해도 갚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며, 이를 ‘신실함(충성)’이라 부릅니다. 즉,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취하지 않으려는 태도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돈이 많다 해도, 제가 여러분을 섬기는 것은 결코 주머니 속의 돈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며 오직 진리를 따라 섬기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절대로 남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부자를 섬기기를 좋아하는데, 자녀를 미국으로 유학 보낼 때 그 부자들의 후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목사가 마음속으로 온종일 부자들의 주머니만 쳐다보고 있다면, 그것은 진리를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따라 행하는 모든 사람은 남에게 베풀 때 상대를 나그네로 여깁니다. 그에게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 그것을 신실함이라 합니다. 혹은 그 사람이 큰 부자라 할지라도 그의 돈을 탐내지 않고 섬기는 것, 이 또한 신실함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사람은 재물(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조심해야 합니다. 돈이라는 관문은 넘어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을 영접하려는 것은 영접하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제부터 진리를 따라 행해야 하며, 우리 하나님께서 여전히 다스리신다는 근본적인 논리를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재물을 탐하지 않습니다. 재물을 탐하는 순간 망하게 됩니다. 물론 모든 동역자가 다 이런 태도를 가졌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는 결코 부족함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증거가 있는 사람

여러분이 영접하는 사람은 증거(증언)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스스로 증거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기꾼들이야말로 말을 가장 그럴듯하게 잘합니다.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증거를 받았고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요한삼서》 1:12)

제가 짐작하기로 여기에 언급된 데메드리오가 바로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후원해 주기를 바랐던 사람일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편지에서 가이오에게 영접하라고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 틀림없다고 보증하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데메드리오를 위해 증언하고 있으며, 그는 참으로 진리를 따라 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디 듣도 보도 못한 구석에서 불쑥 나타난 사람을 무작정 후원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일을 자주 겪었습니다.

예전에 우리가 오프라인 건물 교회로 모일 때, 한 사람이 들어와 자신이 사역자라고 소개했습니다. 저는 본래 사역자라는 사람들을 매우 경계하는데,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들어오자 차를 대접하고 싱가포르에 온 목적을 물었습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저는 신학 공부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이 없고, 거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기에 솔직히 호감이 가지 않습니다. 싱가포르에서 1년 학비와 생활비만 해도 한화로 약 4천만 원(20만 위안)이 드는데, 그 비용을 어디서 마련하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믿음으로 살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듣자마자 저에게 후원을 바라고 구걸하러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바보인 줄 아십니까? 증거가 없는 사람은 영접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화인 사명 신학’ 체계를 그에게 가르쳐 줄 수는 있습니다. 그가 이 사명 신학의 체계를 가지고 교회를 세운다면 분명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제게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어떠냐고 묻습니다. 제가 직접 가서 들어보았는데, 거기서 가르치는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습니다.

제가 만난 수많은 목사님들도 신학교에서 배운 것은 소용이 없었고, 교회를 개척하고 세울 때 필요한 것들은 정작 신학교에서 배워본 적이 없다고 말하며 순전히 시간 낭비였다고 했습니다. 우리 동역자 중 몇몇은 자칭 사역자라는 그 사람이 불쌍하다며 후원해 주고 헌금해 주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런 짓을 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돈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남에게 속아 넘어가는 그 기분이 몹시 불쾌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이 진리를 따라 행하기 시작하면 반드시 증거가 따릅니다. 하나님께서 증언해 주실 뿐 아니라 사람들도 증언해 줄 것이며, 진리 자체도 여러분을 증언해 줄 것입니다.

진리를 벗어난 교회 지도자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요한삼서》 1:9-10)

교회를 세우다 보면 온갖 일이 다 일어납니다. 진리를 벗어나는 사람도 있고, 진리를 따라 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넓은 세상에 별의별 일이 다 있는 법입니다. 교인을 빼앗으려는 자들은 사실 사역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헌금을 빼앗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 목사들끼리 서로 교인을 빼앗지 말자고 협약을 맺기도 하는데, 이를 ‘양 도둑질’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오신 분들은 제가 빼앗아 온 것이 아니라 양들이 스스로 찾아 들어온 것입니다. 이곳에 먹을 풀이 있고 꼴이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온전히 베풀 생각은 하지 않고 남의 주머니 속 돈만 탐낸다면, 누군가를 영접하면서 돈을 주는 일은 절대 못 할 것이며 돈을 챙기는 일이나 하려 들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편지에서 언급한 이 교회의 디오드레베에 대해, 가이오가 이 교회와 관련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도 가이오의 근처에 있는 교회였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는 그들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사도 요한이 쓴 편지를 보고 디오드레베더러 재정을 후원하라는 내용임을 알자마자 편지를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습니다. 그의 마음속에서 요한은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고 그저 돈이나 요구하는 사람으로 보였으며, 디오드레베 자신은 요한 일행에게 줄 돈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디오드레베는 바로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자신도 영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접하고자 하는 사람들마저 교회에서 내쫓아 버렸습니다.

교회가 이 지경이 된 것은 교회가 진리를 따라 행하지 않고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영접하라는 말만 나오면 질색하며 교회를 그릇된 길로 이끌기 시작합니다. 진리를 따라 행하지 않으면 아무리 증거가 확실한 사람이라 해도 자기 돈이 나갈 일만 생각하면 견디지 못합니다. 그것은 성도들의 헌금을 자신의 영업 수입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예전에 어떤 외부 교회 성도들이 말하기를, 자기 교회 목사님이 여러 사람이 스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서는 모든 사람이 다 일어나 하나님을 섬기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 목사들이 다른 사람이 스승이 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헌금을 나누어 갖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헌금이 목사 개인에게 곧바로 들어가는데, 이는 대단히 악한 관습입니다. 또한 어떤 이들은 강단에서 아프리카 선교를 간다면서, 성경 말씀대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 운운하며 온 교인이 줄을 서서 목사에게 돈봉투를 쥐여주게 만듭니다. 목사가 도리어 ‘작은 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는 마땅히 ‘큰 자’여야 하는데, 그렇게 작아서야 어떻게 선교하러 나가겠습니까? 사실 큰 자가 작은 자를 축복해야 하고, 작은 자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작은 자에게 주는 냉수 한 그릇은 성령의 생수요 진리를 의미합니다. 절대로 진리에서 벗어나지 마십시오.

사람의 내면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뼛속에 든 것을 드러내십니다. 여러분 내면에 가난이 담겨 있다면 조만간 가난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내면에 진리가 담겨 있다면 반드시 형통하고 흥왕하는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벗어난 교회 지도자들이 참으로 많은데, 바로 헌금 문제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진리를 위해 함께 일하는 자들을 영접하기 시작하십시오. 그들이 대접받을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대접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영접함으로써 각자의 선한 마음을 나타내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진리가 과연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야 진리를 위해 함께 일하는 자들을 바르게 영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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