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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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로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2025-10-05 2,151 有福系列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주의 제목은 듣기만 해도 힘이 납니다. 바로 “우리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지혜로운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안심하십시오. 우리 설교의 특징은 뜬구름 잡는 헛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이 지혜로운 마음을 얻을 수 있는가를 전한다는 점입니다. 지혜란 무엇일까요? 이 지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우리 중화권 사명신학의 매우 뚜렷한 특징입니다. 공허한 말장난이 아니라 실제 삶에 적용하고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오래전 설교란 도대체 무엇을 전하는 것인가를 연구하던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설교할 때 성경을 그저 한 번 읽고 맙니다. 훗날 저는 깊이 연구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성경은 ‘경(經)’이고, 설교는 ‘론(論)’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한의학에서 배운 원리입니다. ‘경’이란 무엇일까요? 사물의 법칙을 고도로 요약하고 정리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론’이란 무엇일까요? 성경에 나오는 진리를 삶 속에서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를 다루는 것이 바로 ‘론’입니다.

예를 들어, 『황제내경』은 한의학의 경서로서 한의학 이론을 고도로 요약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상한론』은 장중경이 쓴 ‘론’으로서, 『황제내경』의 이론을 어떻게 실제로 적용할 것인가를 풀어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말씀은 모세가 기록한 시편 90편으로, 바로 “우리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에 관한 말씀입니다.

며칠 전 한 자매님이 계셨는데, 수년 전에 위천공(위궤양 천공)이 생겼던 분입니다. 위에 왜 구멍이 났을까요? 아들과 기싸움을 하고, 아들과 며느리에게 홧병이 날 정도로 다투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다투었느냐 하면 위에 구멍이 뚫릴 정도였습니다. 즉, 아들이 엄마를 화나게 하고, 엄마도 아들에게 화를 삭이지 못해 홧병을 앓다가 결국 위에 구멍이 난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이 자매님이 다시 위통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위가 극심하게 아플 때 목회자가 자매님을 붙들고 기도해 주며, 기도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 마침내 문제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원인은 또다시 화를 삭이지 못하고 속상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로 이번에는 구멍까지 뚫리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머리에 구멍이 나든, 위에 구멍이 나든, 장에 구멍이 나든, 그것은 사람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이쯤에서 참 흥미로운 대화가 오갔습니다. 목회자가 물었습니다. “자매님, 왜 이러시는 거예요?” “제가 바보라서 그래요. 제가 어리석어서 그렇죠.”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똑똑해질 수 없을까요?

어제 제가 그 목회자에게 물었습니다. “지금은 좀 나아졌습니까?” 목회자가 말하길 나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화를 내고 속상해하는 그 뿌리가 뽑혔을까요? 뽑힌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만약 동일한 일을 또 마주하게 되었을 때 다시 화를 삭이지 못한다면, 또다시 문제가 터지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정말 바보 같은 짓 아닙니까? 사람은 왜 꼭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며칠 전 저는 한 자매님을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이 자매님은 면역계 질환에 걸려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힘들어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기도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자매님이 너무나 괴로워하고 아파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가 물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을 자초했습니까?” “제가 바보라서 그래요! 제가 어리석어서 그래요.” 그렇다면 왜 지혜로워지지 못합니까? 그래서 저는 우리가 지혜로운 마음을 얻어, 자신을 해치는 짓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깊은 탄식을 느꼈습니다.

또 다른 자매님이 있습니다. 십여 년 전에 교회에 왔는데, 젊었을 때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지난 10년 동안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렇다고 직장을 못 구했느냐 하면 직장은 구했습니다. 돈을 조금도 못 벌었느냐 하면 벌긴 벌었습니다. 하지만 벌고 나면 다 써버려 안 번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저축도 전혀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 한 직장을 구했는데, 직책도 괜찮았습니다. 사장 비서였습니다. 그러자 ‘출근하는데 돈이 없으면 너무 창피하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온라인 대출로 7만 위안(한화 약 1,300만 원)을 빌려 명품 가방 몇 개를 샀습니다. 그 명품 가방이 머릿속의 어리석은 때를 가려줄 수 있습니까? 가려주지 못합니다. 결국 출근한 지 며칠 안 되어 일도 제대로 못 해서 사장에게 해고당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대출금은 여전히 갚아야 합니다. 세상에, 얼마나 고생스럽습니까? 제가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묻자 “제가 바보라서 그래요”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도대체 왜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은지 생각하게 됩니다. “가방은 사서 뭐 하려고 그랬어요?” “바보라서 그래요.” 어떤 형제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길게 말할 것 없이, 결론은 ‘바보라서’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제가 바보라서 그렇습니다”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저는 여러분에게 “우리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를 가르쳐 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여러 자료를 검색하다가 짧은 영상 하나를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세상 사람의 90%는 사실 바보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더라도 너무 언짢아하지 마십시오. 영상에서 그렇게 말한 것이니 저도 책임을 좀 돌리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도 동의합니다. 왜일까요? 사람은 많은 것을 제대로 배워서 행하지 않고, 제멋대로 지껄이고 제멋대로 생각하며 제멋대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다들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깁니다(自以为是). 나이가 들수록 자기 고집과 독선도 함께 늘어납니다. 사실 지식은 별로 배운 것도 없으면서 말입니다.

어제 한 자매님이 간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자신의 남동생 이야기를 하며 참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남동생도 이제 예순이 되어 은퇴를 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성적도 안 좋고 공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남동생은 매우 훌륭한 전기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다른 자매님이 “어머, 목사님! 목사님 남동생이랑 똑같네요! 그분 남동생도 여러 과목 다 합쳐봐야 백몇 점밖에 안 나왔는데 아주 뛰어난 전기 기술자예요. 타고난 재능이 있나 봐요”라고 했습니다. 정말 타고난 재능이었을까요? 사실은 아닙니다.

전기 기술자가 기술을 배울 때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올바른 학습 태도를 가지고 전기 지식을 배웠기 때문에 해낸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영역에서는 자기 생각대로만 굽니다. 사람이 어디서든 자기 생각이 옳다고 고집부리는 순간, 바로 그 부분에서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난 그런 줄 알았지”, “난 이렇게 하면 돈을 벌 줄 알았지” 하지만 결국 손해를 보지 않습니까? 다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긴 결과입니다.

무엇을 배우든 올바른 학습 태도를 가지면 사람은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올바른 태도를 갖지 않으면 절대 배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배우는 태도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지혜와 명철은 다 배우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저는 여러분께 고백합니다. 제 평생의 많은 것들은 다 배운 것입니다. 제 생각대로 한 것들은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었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렇다’고 하는 순간 사기를 당하고 손해를 보았습니다. 제대로 연구하고 배울 때는 물론 힘이 듭니다. 배움이 어찌 힘들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배우는 것이 힘들다 해도 바보로 사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습니까? 제가 만약 전기 기술자 일을 하면서 제 생각대로만 했다면 아마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전기를 제멋대로 만지다가는 펑 하고 거대한 불꽃이 튀어버립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그럴 것이다’라고 제멋대로 넘겨짚습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에 빠져 있을수록 그만큼 어리석어지는 법입니다.

한번은 우리가 컴퓨터용 무정전 전원 공급 장치(UPS)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우리 중 한 자매님이 곁에서 지켜보더니 “제가 할게요” 하고 손을 쑥 뻗었습니다. 그 순간 펑! 하고 거대한 불꽃이 튀었습니다. 플러스극과 마이너스극을 쇼트시켜 버려서 스패너가 녹아내렸습니다. 손에 화상을 입어 끔찍하게도 커다란 물집이 잡혔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분별력(명철)이 없고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돕는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돕겠다고 일하면서 이런 거대한 불꽃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아론의 두 아들이 하나님 앞에서 섬긴다면서 다른 불을 담아 분향하다가 거대한 불이 나와 그 자리에서 타 죽지 않았습니까?

기독교에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이 말은 틀렸습니다. 차라리 ‘한 번의 재앙은 영원한 재앙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더 맞습니다. 한 번 교통사고가 나면 인생의 마침표가 찍혀버립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한 번 구원이 반드시 영원한 구원이 아닐 수 있어도, 한 번의 재앙은 영원한 끝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명철과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헛사는 것이며, 평생 수고와 슬픔, 괴로움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렇게 사는 인생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러므로 모세가 우리를 어떻게 가르치는지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하루 대충 때우고, 내일 또 대충 때우고, 모레도 빈둥거리며 살지 마십시오. 그렇게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면 결국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맙니다. 배우지 않고 빈둥거리기만 해서 무슨 열매를 맺겠습니까? 나이가 들수록 선악을 분별하는(정죄하는) 악습만 늘어나고, 배우지는 않은 채 남들보다 밥그릇 수만 더 먹었다고 우깁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고집만 세어지니 이것이 얼마나 가증한 일입니까?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사람은 평생토록 극심한 굴곡과 고난을 겪게 되는데, 그것은 다 자업자득입니다.

모든 것은 다 배움으로 얻는 것이지, 타고난 것은 쓸모가 없습니다. 재능 타령하지 마십시오. 재능이라는 것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습니까? 통제할 수 없습니다. “난 이런 재능이 있어, 저런 재능이 없어” 하는 말은 핑계 대고 책임 회피하는 것 외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께 가르치는 것은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모든 것은 배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모세가 쓴 시편 90편은 참으로 탁월합니다. 그중 가장 훌륭한 구절이 바로 “우리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모세는 훗날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애굽의 왕자로 살면서 수많은 학문을 배웠습니다. 애굽에서 그는 최고의 과학자이자 최고의 엔지니어였으며 대단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유모는 사실 친어머니였고, 애굽 궁궐에서 공주의 아들로 자랐습니다. 공주가 낳은 것은 아니었지만 공주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궁궐 안에서 의기양양했고 포부가 가득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리라! 내가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하리라!’ 그러나 결국 애굽 사람 하나를 쳐 죽이고는 사시나무 떨듯 두려움에 떨게 되었습니다. 바로가 알게 되었으니, 애굽 사람을 죽인 이상 왕자든 뭐든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습니까? 왕자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말을 더듬기 시작했습니다. “어… 어… 나… 내가 애굽… 애굽…” 출애굽을 시켜야 하는데 너무 놀라 말을 더듬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말을 더듬으며 미디안으로 도망쳐 십보라와 결혼하여 처가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잘나가던 남자가 온갖 고생을 하며 쭈그리고 앉아 한숨만 쉬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쥐락펴락했습니다. 모세를 멸시하고 괴롭힌 것입니다. 모세는 매일 그런 비참한 환경 속에서 살았습니다. 상상이 가십니까? 매일 양이나 치면서 꿈도 사라지고 자신감도 다 잃어버린 채 ‘인생이란 참으로 헛되고 헛되구나’ 탄식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마침내 한 가지 도리를 깨닫고 약간의 지혜를 얻었습니다. ‘아, 내 혈기와 포부로 하나님께 죄를 지었구나. 다 부질없다. 내가 무슨 하나님을 돕는다고? 다 때려치우고 양이나 치자.’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을 때 그는 “저는 못 갑니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가라”고 하시자 “못 갑니다. 하나님, 저 그런 헛된 짓 하기 싫습니다. 그냥 여기서 양이나 치며 살겠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하나님을 돕겠다고 나서는 순간, 결과는 헛수고와 분주함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도우려는 생각을 다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그 일을 맡기십니다. 이것이 바로 모세의 성품을 빚으시는 과정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모세가 80세에도 어떻게 몸이 강건했는지 아십니까? 40세에 애굽 사람들에게 쫓겨 미디안 제사장의 집에 들어가 십보라와 결혼했습니다. 비록 온갖 구박과 학대를 받으며 고생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80세가 되어서도 여전히 양을 칠 수 있을 만큼 몸이 강건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지난 40년 동안 기쁨이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 무엇도 모세의 마음속에 있는 기쁨을 빼앗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는 지혜를 얻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인생 뭐 있나, 그저 즐겁고 기쁘게 살자.’ 이것이 바로 시편에서 기쁨을 노래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양이나 잘 치면서 마땅히 할 일이나 하며 살자.’

만약 여러분이 20대에 인생이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끝난 것입니다. 망했다는 끝이 아니라, 고생 끝이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참으로 건강했습니다. 아내가 구박해도 ‘구박하든 말든’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 무엇도 모세 마음속의 기쁨을 빼앗지 못했습니다. 인생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시요, 우리 인간은 결국 흙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모세는 양을 치면서 인생의 헛됨을 묵상하고 깨닫기 시작하여 마침내 시편 90편을 쓴 것입니다. 여러분, 지혜를 얻는 기초는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시고, 여러분은 그저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는 데 있습니다. 인생은 눈 깜짝할 사이에 헛되이 지나가는데, 무엇이 남겠습니까? 그저 기쁨을 남기십시오. 아시겠습니까? 혈기왕성하게 의기양양해하지 마십시오.

결국 그 누구도 흐르는 세월의 칼날을 막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날마다 ‘만수무강’을 외쳐도 결국 끝이 납니다. 날마다 ‘만세 만세’를 외쳤던 황제들의 수명이 가장 짧았습니다. 만세를 너무 외쳐대서 도리어 저주를 받은 셈입니다.

훗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할 때, 길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 하셨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타협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나만 기쁘면 그만이지’ 했던 것입니다. 아내가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는 것을 반대하자 ‘에휴, 싫다는데 그냥 두지 뭐’ 하고 넘어갔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 하시자 십보라가 그제야 모세의 아들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 이야기들을 파헤쳐 보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애굽으로 가 바로와 맞설 때, 모세는 그저 여든 살 먹은 노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내면에는 확고한 논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이러한 성품과 논리를 사용하셨습니다. ‘인생은 헛되고 헛되니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그저 이렇게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널 때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모세는 사람들이 너무나 어리석다고 탄식했습니다. 바로 왕이 어리석습니까? 어리석습니다. 이것이 바로 90%의 사람이 바보인 이유입니다. 사람은 평생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살며 죄악 가운데 거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우리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모세는 250명의 족장들이 불에 타 죽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고라의 온 가족이 있는 곳에 땅이 쩍 갈라져 그들을 삼켜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 하나님! 우리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고라가 전날에 땅이 갈라져 자기를 삼킬 줄 알았겠습니까? 알았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감히 그런 짓을 했을까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일이 헛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아등바등 따지고 들지 않습니다. 고라는 왜 그리 기를 쓰고 대들었을까요? “왜 모세만 저 높은 자리에 있는가? 우리도 레위인인데 왜 당신과 동등하게 설 수 없는가?” 고라는 모세를 40년 동안 따르면서도 여전히 포부가 가득하고 의기양양했습니다. “내게는 250명의 족장이 있다!” 2,500명의 족장이 있어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시키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모세를 대적할 능력은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을 대적해서 어쩌겠다는 것입니까? 모세는 속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어찌 저리도 어리석을까? 제발 하나님께 지혜로운 마음을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모세가 이 시를 쓰고 나서 200만~300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읽으라고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 읽고 나서 “모세야, 네가 하나님의 백성을 죽였다”고 원망했습니다. 세상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들입니까?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사람은 늘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운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모세가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으로 보냈을 때, 돌아온 10명의 정탐꾼이 악평을 쏟아내자 그들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죽임당했습니다. 세상에! 모세의 입장에서 보면 어리석은 자가 90% 정도가 아니라 거의 전부였던 것입니다. 12명의 정탐꾼 중 여호수아와 갈렙 단 두 사람만 지혜로웠으니 그 비율이 얼마나 적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로운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평생토록 기뻐하며 사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평생 우리가 행하는 일에 하나님의 손이 도우시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평생을 뒤엉키고 괴로워하며 따지고 싸우고, 일할 때마다 마귀가 틈타 훼방하는 인생은 어리석음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 안의 ‘아젠다(agenda)’를 깨뜨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영어를 알든 모르든 상관없습니다. ‘아젠다’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여러분 자신의 계획과 일정을 뜻합니다.

자신만의 아젠다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의 꿈을 깨뜨려야 합니다. 이 세상의 꿈을 깨뜨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기 어렵습니다. 자기만의 아젠다가 있고, 자기만의 일정이 있으며, 자기만의 목표와 논리 체계가 있으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평생에 걸친 우리의 논리 체계와 꿈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중병이 있든, 그것은 여러분만의 고집스러운 생각과 틀이 있어서이며 그 틀이 여러분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입니다. 어떻게 이를 깨뜨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시도록 구하십시오. “왜?”라고 묻지 마십시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원하시는 대로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헛된 인생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결정적인 핵심입니다. 모세는 훗날 120세까지 살았고, 120세에도 산을 오를 수 있었습니다. 왜일까요? 그는 어떤 일에도 얽매이지 않았고, 불평하지 않았으며, 남 탓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얻은 것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함’이었습니다.

본문 말씀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한숨 가운데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시편 90:1-17)

기도

하나님! 우리의 마음눈을 열어 주옵소서. 하나님, 생각이 어리석고 부족한 저희가 주님 앞에서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옵소서.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인생은 고작 70~80년에 불과함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의 목숨은 짧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사람에 불과하며, 늘 주님의 진노 아래 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주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일생이 헛됨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사 기쁨을 가르쳐 주시고, 이 세상의 짧고 고통스러운 인생 속에서 참된 기쁨을 얻게 하옵소서. 우리 손이 행한 일이 주 앞에 기억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배경

이 본문의 배경은 모세가 수많은 어리석은 백성들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보십시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성막을 짓는 식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을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와 보니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 아닙니까? 모세는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인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금송아지를 만들고는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애굽에 있을 때가 얼마나 좋았는가!” 모세는 너무 화가 나서 두 돌판을 던져 깨뜨려 버렸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습니다. 출애굽기와 민수기에 기록된 모든 사건의 중심에서 모세는 직접 눈으로 보고 온몸으로 겪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고사는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머릿속에는 오직 살아가는 사소한 일들로만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출애굽시켜서 뭐 하려는 건가? 우리를 죽이려는 것 아닌가!” 참으로 탄식이 나옵니다. 고라 당과 250명의 족장들, 그 250명의 족장은 다 불에 타 죽었습니다. 아론의 두 아들도 불에 타 죽었습니다. 어리석어서 그렇습니다. 모세는 이 광경을 바라보며 간구했습니다. “아, 하나님! 우리로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어찌하여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요? 교회에서 양 떼를 목양하다 보면 모세의 심정이 너무나 깊이 이해됩니다. 저 역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걸까’ 싶을 때가 많습니다.

12명의 정탐꾼이 돌아와 악평을 쏟아놓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애굽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대국이었고 군대도 막강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애굽의 바로 군대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셨고 홍해 바닥에 애굽 군대를 수장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안 된다고 생각합니까? 거듭해서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결국 그 10명의 정탐꾼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즉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10명이 하나님께 멸망당하는 것을 보았으면 “하나님, 주님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제가 항복합니다!”라고 엎드렸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반대파’였습니다. 하나님이 동쪽으로 가라 하시면 서쪽으로 가고, 개를 잡으라 하시면 닭을 잡으러 갔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무리였습니다.

어찌 그리 어리석을 수 있을까요? 저 또한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사람이 어찌 저리도 미련할까.’ 훗날 모세는 시편 90편을 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대대로 읊조리며 부르게 했습니다. 다 함께 모여 배우게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에는 몇 가지 핵심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인생이 헛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눈앞의 삶에 너무 집착하다가 결국 질병과 고통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 사람과 기싸움하고, 저 사람과 다투다가 결국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완고한 자가 되었습니다. 인생이 헛되고 헛됨을 알지 못하면 사람은 결코 기뻐할 수 없습니다.

아들과 다투고, 며느리와 다투고, 만나는 사람마다 부딪칩니다. 마음은 땅콩만 하고 머리는 호두알만 한데 지식조차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네가 기를 쓰고 대드니 어디 한번 혼나봐라” 하시며 위통을 주십니다. 그러면 그제야 “사역자님, 빨리 기도해 주세요. 죽을 것 같아요, 너무 아파요”라고 합니다. 진작 지혜로울 것이지, 이미 어리석게 굴어놓고 말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를 깨닫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세 번째로 모세는 기쁨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옳고 그름만 따지기(讲理)를 좋아했습니다. 기쁘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내가 옳다’는 것만 증명하려 하다가 결국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스라엘 무리 중에 위천공, 장천공 환자가 얼마나 많았으며, 심근경색, 뇌경색, 각종 중병을 앓는 자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들은 평생 무엇을 했습니까? 그저 부딪치고 싸우느라 아무런 기쁨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출발!” 하면 “에휴, 또 출발이야” 하고, “진을 치라” 하면 “흥, 또 진을 쳐야 돼?” 하며 사사건건 원수처럼 굴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원수 덩어리 같았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불만이었고, 모세가 무엇을 하든 반대만 일삼는 반대파였습니다.

네 번째 문제는 사람들이 손으로 하는 일이 너무 고통스러웠다는 점입니다. 무슨 일을 해도 힘들고 원망만 가득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이토록 어리석은지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원망을 품고 일하니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모세가 보기에 사람들은 인생의 헛됨도 모르고,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으며, 기쁨도 없고, 일하는 것조차 괴로워했습니다. 참으로 지혜가 없어 어리석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혜로운 마음을 얻도록 시편 90편을 기록한 것입니다. 사실 모세는 오늘 우리에게도 지혜로운 마음을 얻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들리십니까?

지혜 1: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이 세상의 것 중 하나님이 짓지 않으신 것이 어디 있습니까?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셨으며, 우리가 있다 한들 하나님께서 과연 우리가 없어서 일을 못 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절대 “왜?”라고 묻지 마십시오. “하나님, 왜 저 사람은 살해당했습니까? 왜 저 사람은 투신자살했습니까? 하나님은 왜 가만히 계십니까?” 미국에서 1993년생의 한 전도자이자 정치 활동가가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93년생이면 서른두 살, 참 젊은 나이입니다.

그가 생전에 대학생들과 토론할 때 청년들이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세상에 왜 이토록 많은 재앙이 있습니까?” 철부지들은 꼭 이런 질문을 좋아합니다. 왜 이러냐, 왜 저러냐고 묻습니다. 사실 머리가 어리석어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지식이 많아 그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토론했습니다. 저라면 토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을 증명하겠습니까? 증명해 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우리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며,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아이가 “노자가 『도덕경』을 왜 썼는지 아세요?”라고 묻길래 모른다고 했더니, “노자 마음이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행하시는 것입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은 주권대로 행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기록 아닙니까?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데, 여러분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무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왜?”라고 물어봐야 하나님은 대꾸조차 하지 않으십니다. 자꾸 따져 물으면 작은 재앙을 내리실 뿐입니다. 계속해서 따져보십시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살게 될 뿐입니다. 이것이 지혜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며,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어도 모든 일의 배후에는 이유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는 어디서 왔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라고 하겠지만,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면서도 그렇게 행하십니다.

쓰나미와 지진 등 하나님이 주관하지 않으신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이처럼 주관하시는데도 사람이 자기 목숨이 짧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비극이 아닙니까? 해변에서 수영하다가 수십 미터 높이의 쓰나미가 덮치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시신조차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 오히려 “내가 너에게 묻고 싶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뜻대로 행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혜를 얻으려면 “그분은 하나님이시고 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된 창조 법칙에 합당하게 살면 복을 받는 자가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됩니다.

지혜 2: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날은 짧다)

우리의 목숨은 짧습니다. 성경은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소서”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목숨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계산해 보십시오. 이 짧은 인생 동안 화를 내며 보낸 시간이 얼마입니까? 뇌경색과 뇌출혈로 앓아누운 시간은 얼마이며, 심근경색으로 고통받은 시간, 열이 나고 감기에 걸려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시간, 괴로워하며 일했던 시간은 또 얼마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짧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70~80년밖에 못 사는 짧은 인생이 하나님을 향해 꽥꽥 소리를 질러본들 무엇을 얻겠습니까? 하나님의 진노를 살 뿐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비교할 때 한낱 인간인 우리는 얼마나 보잘것없습니까? 순종하십시오. 더 이상 고집부리며 대들지 마십시오. 아등바등하다가 위천공이 생기고, 장천공이 생기고, 신부전증이 오고, 뇌출혈과 백혈병이 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많은 사람이 하나님과 씨름하며 의학과 과학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할수록 질병은 더 많아집니다. 결코 다 해결할 수 없습니다. 왜일까요? 질병은 영계에 속한 문제이기 때문에 약물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목숨은 짧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겠습니까? 좀 더 기쁘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양을 치는 일을 맡았다면 기쁨으로 양을 치십시오. 청소하는 일을 맡았다면 즐겁게 청소하십시오. 무슨 일을 맡았든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십시오. 얼굴을 찌푸린 채 일할 수도 있지만, 왜 굳이 그래야 합니까? 기쁘게 감당할 수 있지 않습니까?

자신의 날수를 계수해 보십시오. 원하신다면 매일의 시간을 기록해 보십시오.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찌푸린 얼굴,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바나나,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사과’ 이렇게 기록해 보는 것이 바로 자기 날수를 계수하는 것입니다.

지혜 3: 순식간에 날아가 버림 (헛되고 헛됨)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90:10)

얼마나 탁월한 말씀입니까?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고 마침표가 찍힙니다. 최근 서른일곱 살의 유명 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성공한 스타였지만 순식간에 끝났습니다. 오래전 장국영도 큰 인기를 누렸으나 순식간에 허무하게 떠났습니다. 인생은 짧고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이를 깨닫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기 목숨이 아직 길다고 착각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여깁니다. 이것을 모르면 사람은 불안에 떨며 이것저것을 움켜쥐려 하다가 결국 손에 가시만 가득 박히고 맙니다. 그렇게 살지 마십시오.

인생은 짧고 순식간에 헛되이 지나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지혜를 얻은 자라야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임을 알고, 우리의 목숨이 짧음을 깨닫습니다. 장례식장이나 화장장에 가보면 헛되이 끝난 인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이들은 죽기 직전까지도 욕심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한 자매님은 남동생을 지극히 사랑하여 돈을 도와주곤 했습니다. 훗날 남동생이 암에 걸렸는데 성질이 대단했습니다. 누나도 넉넉지 않은 형편에 어렵게 돈을 마련해 주었는데, 남동생은 고마워하기는커녕 돈다발을 누나 얼굴에 집어던지며 “이 딴 썩은 돈 필요 없어!”라고 소리쳤습니다. 제가 그를 위해 기도해 주고 있을 때, 30대였던 그 아들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카메라 앞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인생은 이처럼 헛되이 끝나는데도 쓸모없는 것들을 끝까지 붙잡으려 합니다.

또 다른 암 환자를 사역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혜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보십시오. 이미 가망이 없는 암 환자였습니다. 그를 위해 기도해 주며 몸을 일으켜 힘이 들어가는지 확인하게 했습니다. 기도를 따라 하게 하는데, 그가 중얼거리며 “8억… 3천만…”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하고 묻자 “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날 밤늦게까지 기도해 주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의 고모가 전화를 받길래 “그 사람 상태는 어떻습니까?” 물었습니다. 영상 통화를 켜보니 눈을 부릅뜬 채 누워 있었습니다. “숨을 쉬는지 만져보세요”라고 했더니 이미 숨이 멎어 있었습니다. 6시간 전만 해도 몇천만 원을 이야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인생이란 참으로 찰나에 헛되이 사라지는 것 아닙니까?

제가 왜 조금이라도 지혜를 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저는 아주 젊었을 때부터 인생이 짧고 헛되고 헛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지혜 4: 하나님을 경외함

지혜는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며 내 입에서 악한 말을 내지 않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물질을 드리고 헌신하며 열심히 섬겼는데도 실직하게 되었을 때, 저는 감히 하나님께 “왜 이러십니까?”라고 따져 묻지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니 다 제 교만의 소치였습니다. 의기양양하고 포부에 차서 ‘내가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세우고, 내 힘으로 돈을 벌어 살아가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계산은 하나님의 계산을 따를 수 없습니다. 결국 직장을 잃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저의 하나님은 참으로 크고 두려우시며 능력이 무한하신 분입니다. 제게 가장 좋은 길을 예비해 주셨으니 오직 주님을 경외할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노하심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랍니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과 은밀한 죄를 얼굴빛 가운데 두셨으니, 우리의 평생이 주의 진노 중에 한숨처럼 지나갑니다. 이러할진대 어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쳐 주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해달라고 구하십시오. 주의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평생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게 해달라고 간구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틀리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말씀만을 온전히 따라가십시오.

지혜 5: 우리로 기뻐하게 하소서

지혜가 없으면 기뻐할 수 없습니다. 지혜가 없으면 공연히 쓸데없는 일을 만들어 괴로워하고 얽매일 뿐입니다. 기쁨을 잃어버리는 순간 사람은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맙니다.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날은 짧고 순식간에 날아가며, 자랑할 것은 수고와 슬픔뿐인데 고통 속에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모세는 분명하게 간구합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이 말씀이 얼마나 귀합니까?

사람은 고난을 겪어보지 않으면 여전히 혈기왕성하고 자만합니다. 세상에서 환난을 당해보지 않으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늘 자기가 대단한 줄 압니다. 그런 상태에서 기쁨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헛된 꿈과 교만에 차 있는 사람은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환난을 겪고 고난을 당하는 세월을 통해 우리 안의 세상적인 꿈이 산산조각 나게 됩니다. 자신이 한낱 인간에 불과하며, 목숨이 짧고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는 데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쁨을 구하게 됩니다.

어머니와 딸이 싸우고, 고부간에 기싸움을 하며, 아들과 부딪히는 분들은 경각심을 가지십시오. 기쁨을 잃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 기쁘지 않을까요? ‘내가 옳다(讲理)’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은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순간 삶은 피폐해집니다. 차라리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편이 낫습니다.

“내가 맞는데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해? 어떻게 나를 이렇게 대할 수 있어?” 스스로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 잘난 맛에서 벗어나십시오. 옳고 그름을 따지는 태도와 그 패역함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지 마십시오. 자기가 옳다는 확신에 차서 진리가 자기 손에만 있다고 믿는 사람은 반드시 지극히 불행한 사람이 됩니다. 고난과 환난은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음을 깨닫고 자기 논리를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통하여 마침내 참된 기쁨을 배우게 하십니다.

지혜 6: 우리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무엇을 해도 일이 풀리지 않고, 빵을 구우면 태우고, 다리를 지으면 무너집니다. 다리가 무너지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손으로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의기양양하여 ‘내가 이것을 완벽하게 해내리라’고 장담하다가 실패하면 사람은 깊은 절망에 빠집니다. 왜일까요? 우리가 하는 일에 마귀의 훼방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세워주시는 것은 우리가 지혜 1부터 지혜 5까지를 마음에 품었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마귀가 틈타 훼방하면 손으로 하는 일이 잘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반드시 잘됩니다. 자기 자신을 굳게 믿는 교만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자신의 무력함을 알고,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우리의 목숨이 짧고 순식간에 지나감을 깨달아 하나님을 경외할 때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얻고, 수고하는 가운데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로 평생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주의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견고하게 하소서.”

모세의 이 기도는 참으로 탁월합니다. 여러분이 이 지혜들을 삶에 온전히 실천한다면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번민, 고통, 질병, 홧병은 우리의 분깃도 아니요 하나님이 주신 사명도 아닙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몫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참된 기쁨의 길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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