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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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如何具体地在悟性和灵性上更好的操练?
悟性上就是神的话,要在神的话语上面有一个清楚的了解,比如《圣经》上的一句话:
信的人必有神迹随着他们,就是奉我的名赶鬼;说新方言(《马可福音》16:17)
悟性上,我们很难说我明白了。真的明白了吗?只有真正去做了才会明白,要想认识神,必须要把神话语活出来。他以为知道,但是很多话语没有做出来。通过实践才了解到,原来跟我们字面上的理解相差很大。
这样的例子很多。比如,我们读神的话,按照自己的理解,判断是不是符合自己的逻辑。如果不符合,那么还不去实践,就可能会说神迹奇事没了。为什么不先判断一下,信的人是一种怎样的信心呢?其实信心是悟性上自主的选择,操练认识神的话,先选择相信神的话,再去落实。就会在悟性上更深地认识神。
我们读《圣经》的时候,每一段都有一个主题。如果在悟性上领受整段在讲些什么,那么对这个人的帮助很大。如果认识总体的意思,才能真正的理解。只见树木、不见森林的人也很多。有的人如果不懂,就会很局限的去讲一件事,但是他不确定说的话是否真的认识神。就像方言祷告这件事,拿出来一些片断去说。这件事情如果不用全局观来看是很难理解的,除非很系统查考《圣经》才会更好地理解。
那灵性上又如何操练呢?当我们方言祷告,是用圣灵代替我们祷告,圣灵不断充满我们,这样在灵性上会有一个很大的提升。那么我如何知道在灵性上有提升呢?因为自己就会打开属灵的眼睛,按照神的话语去看,灵性上得着属灵的能力。
Q2:如何更好地操练信心?
任何事情都是从小到大的操练。在医治释放的操练上,有的人说自己感冒真的不重要,吃点药就好了,不需要祷告,等我得了很重的疾病,比如癌症这种不能医治的病的时候再祷告吧。你说,如果感冒都不去对付,到了癌症的时候能好吗?那是不可能的。
操练信心从小事上操练,在悟性上了解神的话语,你会发现一个很简单的事情——效法耶稣。耶稣做的事情,我们去做,应该不会错。他不去做的事情,我们去做,这就有问题了。
信心是从听神的话语来的,把神的话语落实出来,神怎么说你就怎么去落实,这就很厉害了。操练信心就是在小事上不断地操练,神怎么做,我们就怎么做。小到感冒的问题,可以祷告好,提升信心操练,信心从小事情上面开始的。
大家一定要开始调整,从小事操练信心。这是一个重要的基本原则。主耶稣在地上做的事,一半是传讲神的话,一半是行神迹,做医治病人。那么我们也要开始在医治释放上操练信心,这是一个好的开始。
Q3:神赐给我们一个真正的帐幕,是什么呢?
帐幕是神同在的地方,是人与神相会的地方。真正的帐幕,是敬拜神,献祭给神的地方,今天教会就是真正的帐幕。你会问,教会就一定是神的帐幕吗?我们在敬拜神上,要知道,教会是耶稣基督的身体,神要透过教会,使人知道祂的智慧。帐幕在《希伯来书》这里,是在讲教会的概念。
Q4:执事是执掌王权吗?
执事就是负责服侍神的工作。
Q5:如何分辨神的试探和神来的咒诅?
这句话在《希伯来书》里面没有阐述。当一件不好的事情临到我们,我们要去看是神的试探还是神的咒诅。比如癌症的问题,神是试探我们吗?试探本身是一个错误的概念,是神在考验我们。
《圣经》中带来的咒诅很明显,咒诅是伴随人一直不能解决的问题,直到灭亡。《申命记》的二十八章十五节之后都在讲咒诅。你会发现,对得上号的都是神的咒诅。有的人说我得癌症,是神的考验,但是在《圣经》中没有发现神用这样的事情考验人,我没有发现亚伯拉罕、以撒、雅各,神给他们那样的东西。即使当时还没有癌症的概念,我们也看不到神给他们这样的考验。
神的咒诅是明显的,在《圣经》中清清楚楚,又重又久的病,又大又长的灾,都是咒诅。我们要开始了解,疾病本身就是咒诅的一种状态。咒诅从哪里来?咒诅是我们违背了神的话。
一个人如果生活中遇到贫穷,不兴盛;另外一方面身体的疾病,都是咒诅的征兆,祝福和咒诅是我们必须认识的两件事情。
Q6: 从哪些方面考核一个人是否有忠心?
当你冤枉了一个人,他却还是不改变对神的心意,那就是忠心的人。就像约瑟,他被卖到埃及做奴隶,他仍然不识别善恶,仍旧相信神在他身上成就美好的计划。你可能会问约瑟被卖是不是遇到咒诅?其实就是做了奴隶,神仍旧与约瑟同在,无论他做什么,他都兴盛。相反一个人受咒诅,他不会兴盛。
我常常做一件事情,就是考验一个人是否有忠心。冤枉他一把就知道了,我经常使用这些方法。我常常对一些人,狠狠地训一下,我再看他的反应,如果反应很负面,我就知道,这不是忠心的人。其实在人一生中,忠心都是非常重要的素质。
我们牧养神的羊,知道羊身上有一个非常好的特性,它们会一直跟随牧羊人。但是我们没有听过有人养一群狼,或者白眼狼。我们把忘恩负义的人叫白眼狼,我想是因为很多时候,如果有吃的时候,就跟着你,没有吃的时候,就不跟着你。这是忠心或是不忠心的概念,考察一个人的忠心是一个很重要的课题。
《圣经》里的大卫给我们树立了非常好的榜样。大卫被他的主人扫罗王四处追杀,到处逃命的时候,曾有机会杀掉扫罗,但大卫竟然没有下手。他说,这不是他要做的事情,他不能够杀害自己的主人。主人要追杀大卫,但大卫仍然忠心于主人,这就是神所要的人。
但有些人千好万好,一旦有一个不好就全都不算数了,那这就不是一个有忠心的人。有些人就算有一千个一万个不好,只要有一个好,那么就纪念人家的恩典,这是一种很重要的素质,蒙福的人都是如此。
Q7:我知道要竭力进到完全,那怎样才算是竭力呢?什么程度算是完全呢?很多时候想竭力但很难做到,该怎么办呢?
神说,要尽心尽性尽力爱主你的神。但人没有解释,到底要怎么尽心尽性尽力。尽心尽性尽力就叫做竭力。但有的人是这样一种状态,放假了或失业了,没什么事情就在家待着,什么聚会都参加;等到有工作了,一忙起来,什么聚会都没时间参加了。这算是竭力还是不竭力呢?有时间就参加,没时间就算了,这叫竭力去做工的人。竭力做事也就是把事情放在最高优先级,相当于只要有时间那么就做这件事情。
每个人竭力的标准是不同的。我想我是一个竭力的人,但是我不能用自己的竭力程度去要求我的妈妈,我们两个人的竭力是不一样的。一位八十多岁的老人家,她的竭力不能和我同日而语。所以神特意把竭力,或者说尽心尽性尽力用来要求我们。也就是说,每个人都有一杆尺,彼此的竭力不同,没有一个绝对的标准。为什么没有绝对的标准呢?因为神给每个人的东西多少不同。
举个例子,神给一位老太婆两块铜板,人家把两块全投在奉献箱里了,你说这算不算竭力呢?当然算。有的人拥有很多很多,家财万贯,可拿出来奉献的时候费劲无比,在看守钱财上倒是尽心竭力,但是在奉献上却犹豫不决。虽然他奉献的多,因为他拥有的太多了,神也不一定算他是竭力。正因为如此,我们的神不划定绝对标准,满有恩典,满有怜悯。
那么什么又是完全呢?就是像耶稣。只要你还有一点不像耶稣,你就应该继续竭力追求。你可能会觉得这太难做到了,这么难该怎么办呢?其实很简单,人的脑子里都有一杆秤。例如,如果可以白白地得着一万块钱,可同一时间你拿了这一万,就拿不了十万块钱,一个往东一个往西,往西能拿到十万,往东只能拿到一万,有人会选择那一万的路吗?选一万的人应该脑子都有问题,反正我会选十万的路,因为十万更大呀!
为什么会觉得事情很难做到呢,因为我们认为这件事不重要。事情重不重要都来自我们的主观判断。如果你认为一生都应该为主而活,一生不能没有神,要把自己完全献给神,那么还有什么东西能够拦阻你竭力进到完全呢?没有。但如果你不觉得这事情重要,这只是你生命中诸多事情之一,还有很多其他的事情要做,只将剩下的一丁点时间给神,你的麻烦就大了。你把神排在这么后面,神又会把你排在哪里呢?
有的人在做服侍的时候是这么说的,明天我还要上班呢!今天我得早点睡觉,所以我不能服侍。那等你有问题的时候喊:神啊,鬼来搅扰我,我该怎么办呢?神说:我明天还要上班,今天我没时间。真的这样,你怎么办呢?你就真的麻烦大了。
有的人会说,神不是这样的,我会告诉你,你怎样对待神,神就怎样对待你。《圣经》里有很多这样的记载:
你们若离弃耶和华去事奉外邦神,耶和华在降福之后,必转而降祸与你们,把你们灭绝。(《约书亚记》24:20)
耶稣便叫一个小孩子来,使他站在他们当中,说,我实在告诉你们,你们若不回转,变成小孩子的样式,断不得进天国。(《马太福音》18:2-3)
这些人虽看见我的荣耀和我在埃及与旷野所行的神迹,仍然试探我这十次,不听从我的话,他们断不得看见我向他们的祖宗所起誓应许之地。凡藐视我的,一个也不得看见。(《民数记》14:22-23)
如果你回转向神,神也回转向你;如果你离弃神,神也离弃你;如果你藐视神,神就让你被藐视。我脑子里把这笔账算得很清楚,神多重要啊!没有神该怎么办啊?儿子女儿都指望不上,除了指望我的神,还能指望谁呢?有谁能擦干我的眼泪?有谁能给我安慰?有谁能够帮助我,在我遇见困难的时候与我同在?只有我的神。
如果不清楚这一点,你是不可能竭力的,因为你觉得这事情压根不重要,所以觉得做不到竭力,总是有更重要的事情。既然整天有更重要的事情,那你就去做吧,神就是不重要的事呗。等你找神的时候,也只会把你当一个很不重要的人。我们要在悟性上好好地认识神。人就是这样,不知道就不可能做得到。
Q8:《希伯来书》第7章第11-12节这段话不理解,请问律法也必须更改是什么意思?
相当于神先给人做了一个模型。比如买房子的时候,即将开发的地段上什么也没有,只有大坑和一大堆的挖掘机,但你可以看到漂亮的大楼模型,提供给你挑选房屋。但你签的合同是买模型吗?不是的,你要的是跟模型一模一样的建好的房子。
旧约中百姓在利未人祭司职任以下受律法,这是个影子,一个照着天上的样子做的模型。现在天上的东西来了,真的兑现了,就大不一样了。需要的不是更改,而是成全。律法只是影子,它终究要变成新的,变成真的。不是改了,而是兑现了。
Q9:《希伯来书》第2章第7-9节中写了只是如今我们还不见万物都服他,请问这是指的魔鬼吗?
不是魔鬼服不服神的问题,魔鬼是神的仆役,别把魔鬼看得很了不起。这里在讲神所造的教会是耶稣基督的身体,耶稣基督是教会的头,这样完美合一的创造,神与人合一的状态,叫做万物都被踩在脚下。
现在成就了没有?没有,作者在写《希伯来书》的时候还没成就,什么时候成就呢?耶稣基督再来的时候,教会转变成新耶路撒冷,耶路撒冷就是神的殿,是耶稣基督的身体,也是耶稣基督的新妇,那是一个完美合一的状态,到那时候万有都服在神的脚下,神要透过教会使万有知道神百般的智慧。
魔鬼算得了什么呢?天使和魔鬼都叫天使,魔鬼也是天使,天使也有好坏之分,神使耶稣比天使小一点,就是教会还没有完全的得胜,没有进到完全合一的状态,因此建立得胜荣耀的教会是关键。
Q10:什么是真正的安息?如何才能做到真正的安息。
死人躺在棺材里,活人就在那唱安息,但这不是我们所说的安息。《希伯来书》第三章讲到,安息是与神完全的合一。人与神完美的合一是被谁破坏了呢?亚当和夏娃吃了识别善恶树的果,人本来与神完全合一的状态被破坏了。
恢复这种合一的状态叫做真正的安息。真正的安息透过建造神得胜荣耀的教会,神与教会完全的同在。建立得胜荣耀的教会靠什么呢?靠着神的话语去建造。
Q11:我们跟耶稣基督的关系?是指个人呢还是教会呢?
如果是教会,教会是耶稣基督的身体,耶稣基督是教会的头,教会是耶稣基督的新妇,都不是指着个人。我们在教会里面与耶稣基督完美合一才能建立关系,在新约《圣经》教会是神所看重的,透过教会才能轮到个人。
为什么会是这样呢?我个人初浅的理解,人身上的毛病,人跟神都不能很好的相处,人跟人怎么好好相处?神创造的教会,你会发现人跟人之间很多矛盾,因为相互的识别善恶,就没有办法合一。不能合一因为不够圣洁,不够圣洁就是不像耶稣,我们身上没有合一的品格。
如果有这种品格,那么跟合一的人就很容易合一,就会跟耶稣基督成为一个非常合一关系,耶稣基督跟我们的关系是透过教会。
Q12:魔鬼和天使有什么区别?
魔鬼是堕落的天使,有堕落和没有堕落就是重要的区别。(咱们今天为什么还对魔鬼和天使充满兴趣?)《希伯来书》的作者鼓励你看重人的位分,魔鬼和天使不过是仆役,要成就神在人身上的伟大计划。
Q13: 人怎样才能活出耶稣基督的形像?
把自己完全献上当作活祭。耶稣是把自己完全献上,人这一辈子最愚蠢的是自私小气,因为那是魔鬼的形像,如果你身上有鬼的形像能不招鬼吗?
人满脑子想的都是自己的那点自私事,活一辈子活成那样,还挺想活,挺爱自己的,结果就活成了魔鬼的形像。人怎样才能活出耶稣基督的形像呢?完全奉献,把自己完全地献上。
有人说自己奉献过,但看着一点也不好。他以为奉献了,神就应该给他祝福。其实神还真不需要我们的奉献,缺了我们这块臭豆腐神照样可以煮那盘菜。不要以为神很需要我们,是我们很需要神。有些人奉献完了之后觉得自己很了不起似的,以前觉得自己奉献十分之一很厉害了,居然还有人奉献十分之二的。
奉献不是神需要你的奉献,是你需要奉献,奉献完了你蒙福,你能活出神的形像。如果连钱都不奉献,算什么基督徒。奉献仅仅是个入门,你读《圣经》就知道,神把世上的钱财叫做不义的钱财。跟神建立好关系,神把我们接到永生里去,不要等到钱财无用的时候,才知道钱财无用。活着的时候就知道钱财无用,千万不要自私也不要小气。
我们的神掌管宇宙万有,祂极其富有,祂要祝福谁就祝福谁,祂要使谁富有就使谁富有,祂要使谁贫穷谁就贫穷,神全管这些。整完了你跟神说,我想富有所以做这个做那个,结果目的不纯,完了白整了。
如果你觉得奉献是理所应当的,你奉献完了真的会蒙福,如果你觉奉献是跟神做交易,那你的奉献不会蒙福,神祝福那些合祂心意的人。
如经上所记:神为爱他的人所预备的是眼睛未曾看见,耳朵未曾听见,人心也未曾想到的。(《哥林多前书》2:9)
你的目的很重要,如果你的目的是求点钱财,那你还是拜偶像好了。人要活出耶稣基督的形像,就要完全奉献自己,这就是我们神的样子。一个人为自己活,活着活着就死了没有意义。为什么我们叫命定神学,没有命定哪来的意义?问题问完了就好好的落实。
前几天遇到一个小牧者,问他所牧养的一只羊,都为啥祷告,为他的工作、钱财业绩,有得着没有?好像有得着,好像也没得着。其实人心怎样思量活出的样子就怎样,你瞒不过神,也瞒不过鬼。
业绩真的那么重要吗?如果你讨了神的喜悦,照着神的心意把自己完全献上当作活祭,神一定会祝福你。效法约瑟做宰相,在企业里做个小宰相。要活出神的形像这件事是非常重要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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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늘 우리는 몇 가지 개념을 계속해서 나누겠습니다. 저는 《히브리서》를 성경공부할 때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만족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드디어 제가 일부나마 이해하게 된 것 같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20여 년 동안 읽어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읽지 못한다고 하나님께서 저를 집어 죽이지 않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종종 어떤 부모들이 아이가 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화를 내고 절망하며, 말투에 비꼬는 기색을 담는 것을 봅니다.
저는 늘 여러분에게 큰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지만 지금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니 더 노력해야 합니다. 또 어떤 사람도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고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니 더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매우 큰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기도 합니다. 이제 7장 이후의 개념들을 나누겠습니다.
영적인 것 VS 육적인 것
영적인 원칙에 따라 사물을 보는 사람을 영적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모두 영계의 일을 말하고 있으며, 성경은 영적인 말로 영적인 일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물이 공허하고 혼돈한 것을 보고 이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볼까요? 이런 사람은 영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보기 때문입니다. 공허하고 혼돈한 가운데서 우주 만물을 창조해 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본래 일이 꽤 좋은데도 계란에서 흠을 찾듯이 많은 문제를 찾아냅니다. 그렇다면 절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육적이라는 것은 육체의 법칙에 따라 일을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육적인 사람은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불이 꺼지고 촛불이 뽑힌 것처럼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영적인 사람은 영이 그 사람의 몸에서 나와 육체가 죽었다고 봅니다. 육적인 사람은 배부르고 배고프지 않으며 만족을 얻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영적인 사람은 자신의 영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배고프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차이입니다.
도대체 육적인 것이 좋습니까, 영적인 것이 좋습니까? 당연히 영적인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셨지만 죽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적인 법칙은 영적인 법칙보다 못합니다. 육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람이 40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죽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상상을 완전히 뒤엎는 일입니다. 의학적으로 며칠 동안 먹지 않아도 한동안 살 수 있지만, 며칠 동안 물을 마시지 않으면 곧 죽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심으로 육적인 법칙을 뒤엎으셨습니다. 육체의 법칙에 따라 사는 사람은 육적인 사람이고, 영적인 법칙에 따라 사는 사람은 영적인 사람입니다.
대제사장
대제사장은 육체의 규례에 따라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육체의 규례에 따라 세워진 제사장은 아론과 그의 자손입니다. 예수님은 아론의 후손이 아니며, 예수님은 유다 지파이고 아론은 레위 지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육체적인 지파에 따라 세워진 제사장이 아니라 영적인 규례에 따라 세워진 제사장입니다. 대제사장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대제사장은 우리를 위해 제사를 드리고, 우리의 죄와 허물을 속죄하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을 열어 줍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합니다.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신 대제사장께서 우리를 온전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온전하게 함
온전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온전하게 함’이라는 개념은 매우 좋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구원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힘써 추구한다고 해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까요? 역사 이래로 거룩하게 되고 온전하게 되기를 원한 사람은 많았지만, 정말 온전하게 되었습니까? 잘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온전하게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통해 이루십니다. 우리에게 능력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능력이 되어 주십니다. 이것을 온전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싸움을 싸우게 하시니, 우리는 마귀 원수를 공격하고 일어나 싸웁니다. 그러면 어떻게 싸웁니까?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통해 우리를 위해 이루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영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천사와 천군이 마귀를 무너뜨립니다. 실제로 우리가 마귀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방식을 통해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마귀 원수를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온전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신약과 구약 모두 이렇게 행합니다. 《잠언》에도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마귀가 우리를 괴롭힐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늘의 자원을 끌어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과 기사가 따른다는 뜻입니다. 표적과 기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이며, 이것을 온전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능력이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원래 여러분의 그 작은 능력에 의지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그 능력이 무엇이라고 대단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아이고, 저는 안 돼요”라고 말합니다. 원래 여러분은 할 수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이고, 저는 할 수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원래 여러분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얼마 전 한 자매가 사람들을 데리고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성경공부를 인도하기만 하면 교과서를 읽는 것처럼 했습니다. 학교에서 자주 교과서를 읽던 습관을 계속 고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공부를 인도할 때마다 매우 힘들어했고, 그 좋지 않은 느낌 때문에 나중에는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그 자매에게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없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그 자매가 저를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오늘 제가 인도한 성경공부 나눔이 정말 잘됐어요.” 왜 잘됐을까요?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늘 잘되지 않습니다. 형제자매들은 알아야 합니다. 온전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우리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장막
어떤 사람은 장막이 tabernacle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말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중국어 하나를 영어로 바꾼 것일 뿐입니다. 그러면 장막은 무엇일까요? 장막은 하나님과 연결되는 통로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이러한 대제사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미 지극히 높으신 분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셔서 성소, 곧 참 장막에서 섬기고 계십니다. 그러면 땅에 있는 장막은 무엇입니까? 땅에 있는 장막은 하늘에 있는 장막의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만으로는 안 되고 진정한 장막이 있어야 합니다. 장막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삼가 모든 물건을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만들라.” 무슨 뜻입니까? 땅에서 장막을 하나 모방해 만드는 것이며, 진짜 장막은 하늘에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늘에 있는 그 장막을 위한 것이며, 모세가 땅에서 만든 장막은 모조품에 불과합니다. 구약과 신약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구약은 모조품이고 신약이 원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하늘의 장막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장막에는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언약
또 하나의 개념은 언약입니다. ‘언약’이라는 말은 계약보다 훨씬 강합니다. 언약에는 거룩한 요소가 있으며, 하나님과 사람이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는 구약이고 하나는 신약입니다. 구약은 하나님께서 노아와 모세와 세우신 언약이고, 신약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로 사람과 세우신 언약입니다. 언약을 세우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세워진 언약에 따라 행하고, 언약의 말씀에 따라 약속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언약을 지킬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것에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언약의 말씀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지므로 신약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길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그러면 각 사람이 자기 이웃과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야 합니다”라고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에는 약간의 도전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너무 적어서 저를 괴롭히고, 조금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위의 말씀은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들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시고, 우리는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성령께서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없는 것이겠지요. 만일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이 말씀은 맞지 않는 것 같고, 혹은 이 말씀이 옳더라도 지금 많은 사람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암에 걸리겠습니까? 성경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고 모두가 읽을 수 있으니, 잘 읽으면 반드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명백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이에 대해 그저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할 뿐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이 알지 못한다면 우리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에게 알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화
다음 개념은 성화입니다. 성화는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승리하는 것이며, 무엇을 이기는 것입니까? 우리의 육적인 것을 이기는 것입니다. 사람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성화됩니다. 성령께서는 악령과 다투시는 것이 아니라 육체와 다투십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여전히 육적이라면 성화될 수 없습니다. 육체를 따르는 사람은 반드시 죽고, 성령을 따라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이면 반드시 살게 됩니다.
후에 저는 승리한다는 것이 마귀와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귀는 성령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승리한다는 것은 성령을 의지하여 우리의 육체에 속한 악한 행실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승리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육체를 죽이고, 영적 지배를 끊어 내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육적이지 않다면 무엇이 그를 지배하겠습니까? 어떻게 지배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성화입니다.
구원
이어서 구원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온전하게 하시는 것도 구원하시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일입니다. 사람이 여전히 죄인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또 하나의 개념은 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 나타나실 때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나타나시는 것은 죄와 상관없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승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사람이 승리하려면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정말 대단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이르면 믿음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합니다. 믿음의 길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은 믿다가 믿지 않게 됩니다. 뒤로 물러나는 것은 믿지 않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계속 믿기로 선택합니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랑하듯 말합니다. “저는 좀 약하니 먼저 물러나서 잠시 쉬겠습니다. 재정비가 되면 다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재정비를 마친 뒤에도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히브리서》에서 뒤로 물러나는 것에 대한 개념을 발견했습니다. 뒤로 물러나는 것은 멸망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고 완전히 승리할 때까지 우리의 믿음을 굳게 지키며 뒤로 물러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뒤로 물러남’이라는 개념을 마음에 새겨 두십시오. 저는 주님을 믿는 것이 조금 지쳐서 잠시 멈추어 쉬고 싶어 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쉬지도 못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 번 뒤로 물러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여러분을 구원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믿음이 있으면 뒤로 물러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뒤로 물러나는 것은 믿음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고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지만, 어느 단계에서든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떨어진다는 것은 무슨 개념입니까? 믿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많은 귀신을 쫓아내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치유와 축사를 행했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믿지 않게 됩니다. 저는 매우 의아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렇게 많은 귀신을 쫓아냈는데도 세상을 사랑하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러면 장차 어떻게 되겠습니까? 장차 그 귀신들이 그를 죽도록 괴롭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지속적인 믿음이 참된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제 자신의 연구에 따르면 믿음은 하나의 선택입니다. 나는 믿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를 보았는데 그 아이가 매우 어리석고 형편없으며 부족해 보이면 부모는 매우 절망합니다. 그러나 저는 영적인 시각으로 봅니다. ‘이 아이는 보통이 아니야. 대단해. 큰 인물이야.’ 왜 제가 믿음을 가집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이 아이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시고 온전하게 하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은 자신이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대단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나중에는 매우 대단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라는 두 글자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많은 사람은 자신감이 믿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은 형편없고 하나님은 대단하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큰 인물입니다. 어떤 사람이 뛰어난 사람입니까?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입니다. 이들은 모두 뛰어난 사람들이며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들에게 모두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단한 사람,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이해됩니까? 잘 이해되지 않는 것 같지요? 저도 여러 해 동안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믿음에는 증거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믿음에 증거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믿고 나면 표적과 기사가 따른다는 뜻입니다. 표적과 기사가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성경 말씀에 따라 말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과 기사가 따릅니다! 표적과 기사가 따르지 않는다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에는 증거가 있습니다. 증거가 있으면 얻을 수 없는 약속을 받게 됩니다. 얻을 수 없는 약속이란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살아 있을 때는 받을 수 없고, 그것을 받게 되면 더 이상 이 세상에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영원 안에 있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 영원 안에 있는 약속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많은 증거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증거는 하나의 증표입니다.
증거란 무엇입니까? 증거는 하나의 증거물입니다. 이것은 가짜가 아니라 보고 만질 수 있는 증거입니다. 이해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나타난 것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매우 강력한 것입니다. 매우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반드시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끝입니다.
《히브리서》 11장 전체는 많은 사람이 믿음을 품고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 믿음 안에서 많은 증거를 얻었습니다.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고,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고,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함이 강하게 되기도 하고, 전쟁에서 용맹을 발휘하기도 하며, 이방 군대를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이해했습니까? 사람이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날마다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이라면 저는 꽤 많이 경험했습니다. 저에게 천국에 가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 없습니다. 영원한 약속을 받았느냐고 물으면,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영원 안에서 반드시 저를 위해 상을 예비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안에서 저를 위해 영생을 예비하시고 영광의 면류관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혹독한 형벌을 견디고 간신히 놓임을 받으며, 조롱과 채찍질과 결박을 견디고, 톱으로 켜져 죽기도 하며, 칼에 죽기도 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머리에 문제가 있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것, 곧 영원 안에 있는 소망과 약속을 매우 확실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약속은 영원 안에 있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더 좋은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얻는 증거보다 더 중요합니다. 이해했습니까? 다시 말해 이 세상에서 얻는 이러한 증표와 증거가 우리가 믿음을 실천하게 하는 동력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이 세상의 것들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본향, 더 좋은 것, 곧 영원 안에 있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대가를 치르기를 원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그리고 후대의 모세와 다윗 같은 사람들과 같이 대가를 치르기를 원하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대가를 치름
그러므로 대가를 치르는 믿음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 대가를 치르는 것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대가를 치른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이 이 많은 증거를 얻는 것이 근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영원 안에 있는 약속이 근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많은 것을 경험하고 믿음이 매우 강해져서 어떤 것도 우리를 흔들 수 없으며, 어떤 대가라도 기꺼이 치를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가를 치르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그 아름다운 약속을 믿는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이것이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것은 믿음이라고 하지 않으며, 대가를 치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대가를 치르는 믿음이 참된 믿음이고, 대가를 치르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온종일 추구하는 것이 육적인 것이라면, 예를 들어 자녀의 공부, 학위, 직장, 이런저런 것들만 추구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말 곤란해집니다. 우리가 처음 주님을 믿었을 때는 매우 육적이었고, 저도 여러분과 같았습니다. 주님을 믿은 뒤에도 한동안 육적인 것을 원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징계를 받습니다. 징계를 받고 나면 하나님께서 대단하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반드시 징계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죄와 육체와 싸우는 일에 아직도 한참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싸우는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여러분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저도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께서 영원 안에서 주시는 약속을 추구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정말 조금 연약해지는데, 하나님께서는 즉시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어떻게 징계하십니까? 어떤 형제자매가 귀신에게 억압을 받다가 풀려났는데, 풀려난 후 다시 이전으로 돌아갑니다. 돌아간 뒤에도 그의 논리 체계가 바뀌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런데 결국 귀신이 다시 돌아옵니다. 귀신이 돌아오는 것이 어떻게 긍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귀신이 돌아오지 않으면 여러분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니 그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는 좋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마귀가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은 모두 좋은 것이며, 마귀는 실제로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무엇을 합니까? 하나님께서 쓰레기를 제거하시도록 돕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이끌어 줍니다.
그러므로 뒤로 물러나지 말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반드시 징계하십니다. 여러분이 징계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조금 위험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받고 또 징계를 받으면 거룩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 나라는 영원히 존속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나는 그런 것은 필요 없고,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살아 보십시오. 잘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 잘 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한 종류는 세속적인 것을 탐하고, 다른 한 종류는 하나님의 약속을 탐합니다. 에서처럼 세속적인 것을 탐하는 것은 음행이며, 세속과 음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그것이 음행입니다. 여러분이 세속적인 것을 탐하면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세속적인 것을 탐하는 것은 하나님의 눈에 쓰레기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어리석게 행동하지 마십시오.
세속적인 것을 탐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과 세상의 모든 일은 지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아직 지나가지 않았는데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세상과 세상의 일이 아직 지나가지 않았더라도 여러분이 먼저 지나가게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아직 지나가지 않았더라도 여러분이 세상을 떠나면 이 세상은 여러분에게 지나간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게 굴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습니까? 70~80년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늙어서는 치매까지 걸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후에 저는 세속적인 것을 탐하는 것이 매우 의미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노인성 치매에 걸리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늙어서도 세속적인 것을 사랑하면 곧 치매에 걸립니다. 여러분은 노년에 치매에 걸리고 싶습니까? 원하지 않지요. 원하지 않는다면 세속적인 것을 탐하지 마십시오.
저의 어머니는 80세가 넘으셨는데, 세상을 사랑하면 귀신이 찾아옵니다. 귀신이 오면 노인성 치매에 걸리고, 치매에 걸리면 스스로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러면 제가 어머니를 위해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탐해야 합니까?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싶다면 모든 모욕을 가볍게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일 가운데 우리를 온전하게 하셔서 우리가 그분의 뜻을 따르게 하시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마음속에서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이해했습니까? 이것이 《히브리서》 전체의 결론입니다.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데 어떻게 핵심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히브리서》에 대한 나눔은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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