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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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西阿书12章-其他的判词
  • 1 以法莲吃风,且追赶东风,时常增添虚谎和强暴,与亚述立约,把油送到埃及。
  • 2 耶和华与犹大争辩,必照雅各所行的惩罚他,按他所做的报应他。
  • 3 他在腹中抓住哥哥的脚跟,壮年的时候与 神较力,
  • 4 与天使较力,并且得胜,哭泣恳求,在伯特利遇见耶和华。耶和华万军之 神在那里晓谕我们以色列人;耶和华是他可记念的名。
  • 5
  • 6 所以你当归向你的 神,谨守仁爱、公平,常常等候你的 神。
  • 7 “以法莲是商人,手里有诡诈的天平,爱行欺骗。
  • 8 以法莲说:‘我果然成了富足,得了财宝;我所劳碌得来的,人必不见有什么不义,可算为罪的。’
  • 9 自从你出埃及地以来,我就是耶和华你的 神;我必使你再住帐棚,如在大会的日子一样。
  • 10 “我已晓谕众先知,并且加增默示,藉先知设立比喻。”
  • 11 基列人没有罪孽吗?他们全然是虚假的。人在吉甲献牛犊为祭,他们的祭坛好像田间犁沟中的乱堆。
  • 12 从前雅各逃到亚兰地,以色列为得妻服侍人,为得妻与人放羊。
  • 13 耶和华藉先知领以色列从埃及上来;以色列也藉先知而得保存。
  • 14 以法莲大大惹动主怒,所以他流血的罪必归在他身上。主必将那因以法莲所受的羞辱归还他。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호세아》 12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성경 전체가 말씀하는 바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사야》부터 《호세아》에 이르기까지 구약의 선지자들은 모두 한 가지 일을 말하고 있는데,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의 진노를 격발했다는 것입니다. 본 장의 주제는 “너희는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입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어찌 이리도 어렵단 말입니까? 우리는 이 문제를 차근차근 정리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늘 허상과 거짓 속에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늘 거짓 속에 살아갔다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날마다 거짓과 포악을 더하여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 (《호세아》 12:1)

사람이란 이처럼 늘 거짓 속에 살아갑니다. 여러분이 추구하는 것 중에 관 속에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황제가 매장될 때 수많은 부장품이 함께 묻히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함께 묻혔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 것이 되는 줄 착각하지 마십시오. 무덤을 파헤쳐 보면 보이는 것은 뼈 한 무더기뿐이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묻습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까?” 제가 그것을 분명히 보지 못한다면 여러분을 가르칠 수 없을 것입니다. 거짓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참으로 비참합니다. 인생이란 헛되고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은데, 돈, 재물, 부요함, 집, 밭과 같은 이러한 헛된 것들을 위해 온갖 일을 하며 많은 대가를 치릅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도서》 1:14)

예를 들어, 어떤 채권자는 돈을 돌려받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쓰다가 심지어 사채 빚을 대신 받아내는 조폭까지 찾아갔습니다. 그 사람들은 채무자에게 돈을 받아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모든 나라에 그런 직업적인 채권추심자들이 존재하며, 세상에는 포악함이 가득합니다. 사실 사람에게 돈이 있는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참으로 명확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제게 1억 위안이 생긴다면 정말 잠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1억 위안은 고사하고, 우리 중 어떤 자매님은 집을 팔아 천만, 팔백만 위안을 쥐게 되자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매일같이 자신의 목회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 돈으로 무엇을 사야 할지 상의했습니다. 만약 1억 위안이 있다면 더 큰 근심이 생겼을 것입니다. 투자하지 않으면 돈의 가치가 떨어질까 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1,000만 위안이 900만 위안으로 줄어들어도 가슴이 찢어지는데, 1억 위안이 9,000만 위안으로 평가절하되어 1,000만 위안이 날아간다면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조급한 마음에 투자했다가 결국 1억 위안을 몽땅 날려버리기도 합니다. 인간은 바로 이러한 상태 속에서 살아갑니다. 어쨌든 제게 1억 위안을 준다 해도 저는 정말 그것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1억 위안을 원하지도 않으며, 그저 가볍고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거짓 속에 사는 것이 비극임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첫 구절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고 날마다 거짓과 포악을 더한다고 말씀합니다. 돈으로 유인되는 것은 파리와 모기뿐이며, 그들은 부자의 재물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공을 들입니다.

그는 상인이라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즐겨하며 (《호세아》 12:7)

상인들이 모두 간사한 상인은 아니지만, 간사한 상인이 비교적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주 오래전 저의 어머니는 저에게 “사는 사람이 파는 사람의 셈을 따라갈 수 없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파는 사람은 당연히 약삭빠릅니다. 상인의 일은 돈을 버는 것이기에 속이기를 즐겨하지만, 제사장은 사람을 얻는 자입니다.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낼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호세아》 12:8)

이 말의 뜻은 자신에게 죄가 없으며, 자신의 재물은 의롭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종종 재물을 ‘불의한 재물’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늘 거짓 속에 살면서, 자신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와 영원 안에서의 축복을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믿기지 않으면 한번 시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하는 사람은 그의 슬픔과 고통이 더해질 것입니다. 제가 목사로서 여러분이 조금 더 기쁘고, 즐겁고,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가르치고자 하는데, 이것이 왜 이리도 어려울까요? 문제는 가치관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사람이 드리는 제사 역시 한갓 쓰레기더미에 불과한데, 이는 가치 체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사람이 드리는 제사는 쓰레기더미에 불과하다

길르앗은 불의한 것이 없느냐 과연 그러하다 그들은 거짓되도다 길갈에서는 무리가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리며 그 제단은 밭이랑에 쌓인 돌무더기 같도다 (《호세아》 12:11)

돌무더기란 곧 쓰레기더미를 말합니다. 밭에서 흙더미를 보았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비료를 만들기 위해 쌓아둔 것으로, 알기 쉽게 말하자면 똥더미입니다. 즉 유기농 비료로서, 분뇨와 흙, 나뭇잎, 태운 재 등을 함께 쌓아두었다가 봄이 되면 밭에 뿌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농작물을 잘 자라게 할 수는 있겠지만, 본질은 여전히 똥더미일 뿐입니다. 거짓된 사람이 드리는 제사도 한갓 쓰레기더미에 불과하며, 우리는 이 쓰레기더미를 배설물이라고 부릅니다.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재물에 얽매여 있습니까?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이 폭락하면 수많은 사람이 곤경에 빠집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이러한 헛된 것들을 좇으며, 평생 재물 때문에 불행하게 삽니다. 어떤 자매님이 제게 말하기를, 화인(중국인)들이 불행하게 사는 이유는 평생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위해서 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보십시오, 화인들은 부지런하고 돈 모으기를 좋아하지만, 삶은 별로 즐겁지 않습니다. 어릴 때는 공부 걱정, 남들과의 경쟁에서 밀릴까 걱정하며, 그냥 포기하고 드러눕고 싶지만 그러지도 못해 안달복달합니다. 조금 자라면 대학 입시와 취업을 고민하느라 본인만 힘든 것이 아니라 부모까지 함께 속을 썩입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께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구하고, 어떤 이는 아들이 좋은 며느리를 얻게 해 달라고 구하는데, 온통 이런 것들뿐입니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조차 여전히 이런 것들을 구하고 있으며, 기쁨을 구할 생각은 하지 않으니, 이는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된 사람은 가치 체계를 허무한 재물, 즉 이생의 논리 체계 위에 세워두었는데, 제사를 드린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일들인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마치 돌잡이 때 아이 앞에 금괴와 사탕을 놓아두었더니, 아이가 금괴를 집어 핥아보고는 아무 맛도 안 난다고 던져버리고, 사탕은 달콤하니까 꽉 쥐고 놓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는 옆에서 보며 애가 탑니다. 이 어리석은 아이는 금괴 하나면 수없이 많은 사탕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호세아》 12:6)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의 하나님을 굳게 붙잡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더 이상 헛된 것 가운데 살지 않는다면, 어찌 사탕과 음식과 재물이 부족하겠습니까?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고작 이 세상 살아가는 일뿐이면서, 죽어서는 천국에 가기를 바라고 좋은 것은 다 자기 차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거짓된 사람이 드리는 제사는 한 무더기의 배설물에 불과한데, 배설물을 하나님께 바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형식적인 제사가 아니라, 여러분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는 것입니다. 사람이 늘 거짓 속에 사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외치셨지만 사람들은 도리어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밖에서는 선지자가 죽임을 당할 수 없는데, 그 밖에는 선지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예루살렘일까요? 그것은 오늘날의 교회와 같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논리 체계를 전하는 사람이 사람들에게 환영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몹시 어려워합니다. 반드시 자신의 논리 체계와 가치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재물이란 헛된 것이어서, 두 다리를 뻗고 두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너무 아등바등 살아가면 스스로를 번뇌와 고통 속에 몰아넣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그러한 고통과 번뇌는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어리석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 중 어떤 형제자매들은 우리 자료를 예전에 알고 지내던 목사님들에게 보내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듣고 나서 “이 류 목사는 설교를 참 못한다. 남더러 맨날 ‘바보 얼간이 같다, 머리에 묽은 똥이 찼다’는 말만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 참 큰일입니다. 머리에 묽은 똥이 찬 사람이 또 하나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머리 바깥에 요강 단지까지 뒤집어쓴 꼴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어야 본질을 보지 못하고, 야곱이 추구했던 그 축복을 추구할 줄 모른단 말입니까?

야곱은 축복을 추구한 야곱이었다

이 이스라엘 백성은 비록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후손이지만, 야곱의 후손이라고 해서 야곱의 관점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야곱이 어떤 야곱이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여호와는 만군의 하나님이시라 여호와는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니라 (《호세아》 12:3-5)

야곱은 모태에 있을 때 형의 발꿈치를 잡았는데, 이는 형더러 비키라고 하고 자기가 먼저 태어나 장자가 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결국 이기지 못해 몇 분 늦게 나오는 바람에 차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자라나는 과정에서 하나님과 영원 안에서 예비된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을 얻기 위해 그는 대단히 진지했습니다. 마침내 장자의 명분을 얻었지만, 그 대가로 돌아온 것은 지팡이 하나뿐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야곱처럼 소위 말하는 부잣집 2세나 3세로서 집에서 좋은 음식을 먹으며 넉넉하게 살고 있었다고 해 봅시다. 그런데 아버지가 주는 축복 때문에 형에게 쫓기게 되어, 손에 지팡이 하나만 쥔 채 황량한 광야를 걷게 되었다면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야곱은 후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영원 안에서의 축복을 계속 추구하여 마침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오직 야곱처럼 세상의 모든 일을 하찮게 여긴 사람만이 영원 안에서의 축복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을 하찮게 여긴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헛되지 않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당신의 가치관이 야곱의 가치관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믿고자 한다면, 반드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논리 체계를 연구해야 합니다. 야곱은 지팡이 하나를 짚고 벧엘에서 꿈에 하나님을 만나 하늘로부터 임하는 축복을 선포받았습니다. 이 축복은 돈처럼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돈처럼 쓸모가 없다면, 그것은 참으로 곤란한 일일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산 자들의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진작 낙심했을 것입니다. 산 자들의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며, 영원 안에서의 축복을 추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야곱입니다.

야곱이 아람의 들로 도망하였으며 이스라엘이 아내를 얻기 위하여 사람을 섬기며 아내를 얻기 위하여 양을 쳤고 (《호세아》 12:12)

훗날 야곱은 마침내 외삼촌 라반의 집에 이르러 외삼촌의 양을 쳤습니다. 외삼촌이 거듭해서 그의 품삯을 속이고 깎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가 추구한 것은 재물이 아니었으며, 그 양과 소들이 그를 영원한 축복으로 인도해 줄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영원 안에서의 축복만이 자신을 따를 것임을 알았기에 그는 양과 소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 소와 양들은 오늘날에도 확실한 금은보화처럼 값진 것이며 고대에는 더욱 그러했지만, 야곱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라반의 양과 소와 재물을 빼앗아 야곱에게 주셨습니다. 야곱이 온 가족과 재산, 양 떼를 이끌고 떠날 때 라반에게 알리지 않았기에, 라반은 야곱이 가져간 것들이 모두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재물 때문에 라반은 야곱을 그냥 놓아줄 리 없었고, 야곱의 뒤를 바짝 쫓아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사실 야곱은 누구도 속이지 않았으며, 정당하고 합법적으로 그 양 떼와 재물을 얻었으므로 어디 가서 재판을 받더라도 그것은 모두 그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라반이 길을 가던 도중,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창세기》 31:24)

우리 하나님의 행하심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사람들의 추살을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재물을 빼앗아 야곱이 쓰도록 주신 이유는 오직 야곱이 영원 안에서의 축복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라반이 야곱을 죽이려 하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꿈을 주어 혼쭐을 내놓으셨습니다. 결국 라반도 야곱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것은 칼과 창으로 삼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밥으로 먹고 돈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영원 안의 것은 세상의 것과 도무지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진짜 지폐와 저승 노잣돈을 비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매우 지혜로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야곱처럼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람은 돈이 조금만 생겨도 마음이 흔들리고 번민하기 시작하니, 이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야곱이 평생 겪은 일들은 모두 하나님의 축복을 의지하여 걸어온 여정이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남겨진 것은 모두 하늘의 소망뿐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살면서 재물 때문에 염려하지 않고 하늘에 속한 소망을 의지하여 살았습니다. 야곱은 참으로 대단한 인물이지만 쉽게 본받기는 어렵습니다. 그와 같은 사람은 신령한 사람으로서 온갖 것을 통찰하지만 아무도 그를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이토록 훌륭한 복음이 있는데도 사람들이 잘못 믿고, 복음을 잘못 전파하며, 야곱이 남을 속이다가 남에게 속았다는 둥 온통 세상적인 관점으로만 해석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스라엘은 선지자로 말미암아 보존되었다

여호와께서는 한 선지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이스라엘이 한 선지자로 보호를 받았거늘 (《호세아》 12:13)

야곱이 아람에서 나올 때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라반의 양 떼를 탈취하였는데, 그가 직접 손을 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탈취해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올 때 애굽 사람들의 재물을 탈취한 것 역시 선지자 모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사무엘과 나란히 구약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동행하심 속에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었던 것은, 사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신 것이 아니라 선지자 모세와 함께하셨기 때문이며, 이스라엘 백성은 그 덕을 보았을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오고 아람을 나올 때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선지자로 말미암아 보존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전부 멸하려 하셨습니다. 온 머릿속에 거짓이 가득하고 이생에 갇혀 살며 요강 단지처럼 어리석은 자들을 보시고 몹시 진저리를 치셨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고, 이스라엘 역시 선지자로 말미암아 보존되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부디 깨어나십시오. 제 말이 듣기 거북하다고 탓하지 마십시오. 사실 이것은 여러분을 위한 좋은 말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거슬리는 이유는 여러분의 핵심 이익과 가치관의 핵심부를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시선을 영원한 축복에 둔다면 분명 희락 가운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야곱처럼 영원 안에서의 축복을 추구하는 믿음에 시선을 둔다면 반드시 승리하는 자가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재물을 빼앗아 여러분에게 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목적이 여전히 세상 재물에 있다면 큰일입니다. 야곱은 이러한 재물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양과 낙타와 나귀를 형 에서에게 아낌없이 주었는데, 여러분이라면 아까워서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만물을 배설물로 여겨야 하며, 선지자가 전한 말씀으로 말미암아 깨어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사는 자들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만물을 배설물로 여기고, 지극히 귀한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얻어야 하며, 그분은 참으로 최고의 보배이십니다. 여러분이 지혜롭다면 마땅히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만약 어리석은 사람이라면 계속해서 허상 속에 살아가겠지만, 이 헛된 인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감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않는단 말입니까?

너희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니라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그는 상인이라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즐겨하며 (《호세아》 12:6-7)

우리 모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제사장들입니다. 우리가 얻는 것은 허무한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복을 받지 않으려 해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앞에는 두 가지 길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처럼 바람을 먹고 동풍을 좇으며 날마다 거짓과 포악을 더하여 재물을 위해 무의미하게 사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 야곱이 추구했던 그 복된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왜 인애를 지켜야 합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거짓 저울로 속이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재물을 배설물로 여기기에 한가하게 배설물을 모으러 다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귀한 보배로 여깁니다.

제가 만나본 그리스도인들은 늘 제 마음에 안타까움을 남기며, 오늘날까지도 제 마음에 종종 큰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섬겼고 어떤 이들은 천지가 개벽할 만한 표적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제 곁에 남아 저와 함께 영원 안에서의 축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둘러보아도 초창기에 제가 섬겼던 사람들 중 남아있는 사람은 한 손의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돌아보면 그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의 삶의 결과는 굳이 남이 말해주지 않아도 훤히 내다보입니다. 평생 수고와 슬픔뿐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축복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비록 여전히 그리스도인이라고는 하지만, 에브라임처럼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쫓아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 어떤 목사는 많은 사람이 스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는데, 오직 자기 혼자만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사실 그는 스승 노릇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언제 아비와 어미의 마음을 품고 섬겨본 적이 있습니까? 또 언제 세상만사를 배설물로 여겨 보았습니까? 추구하는 것은 온통 명예와 부귀뿐이며, 헌금을 더 많이 걷기 위해 자신을 세계적인 유명 목사로 포장하려 합니다. 많은 사람이 스승이 되지 말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스승이 되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헌금이 분산될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부디 알아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헛된 세상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저나 저의 동역자들을 얄팍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마십시오. 어떤 이들은 목사 곁에 있는 사람들이 목사의 재물을 탐내서 붙어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제게 돈이 한 푼도 없을 때부터 저를 따라 하나님을 섬겼지, 돈이 생긴 뒤에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앞에 놓인 이 두 가지 길은, 사람의 내면에 담긴 논리 체계와 가치관이 다름으로 인해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한 길은 하나님께로 돌아와 복을 받는 길이고, 다른 한 길은 주님의 진노를 격발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쏟아지게 하는 길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이 기존의 가치 체계를 버리지 않은 채 제가 배설물로 여기는 것을 보배로 여기고, 제가 보배로 여기는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면, 그 끝에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는 손가락으로 꼽아볼 필요도 없이 눈을 감고도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는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는 가치관

여러분이 여전히 돈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반드시 여러분 위에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에브라임과 이스라엘 백성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진노 또한 반드시 여러분 위에 나타날 것입니다. 감당하지도 못할 고통을 고스란히 짊어지게 될 터인데, 이는 모두 선지자가 애끓는 심정으로 전한 진심 어린 경고입니다.

에브라임이 격노하게 함이 극심하였으니 그의 주께서 그의 피로 그의 위에 머물러 있게 하시며 그의 수치를 그에게 돌리시리라 (《호세아》 12:14)

여러분이 비록 이스라엘 사람이고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그릇된 가치 체계를 여전히 품고 있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게 되며, 스스로 진노를 쌓아 결국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까?”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맹렬한 진노 또한 버리지 않으심의 한 부분입니다. 만약 진노로 말미암은 멸망의 벼랑 끝에서 회개한다면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이 가치 체계는 목숨이 걸린 중대한 체계입니다. 아직 통찰하지 못했다면 천천히 깊이 들여다보십시오. 온전히 꿰뚫어 보게 될 때 그것이 허망함과 헛됨 속에 사는 것이며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진노를 쌓지 마십시오. 진짜 금은보화가 진정한 보물이 아니며, 세상의 보물 역시 참된 보배가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이 땅의 만물은 배설물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최고의 보배이십니다. 제가 이 말을 하면 어떤 이들은 속으로 비웃으며 제가 헛소리를 한다고, 저 역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정말 제대로 보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자신을 철저히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이 길을 가기 원하는 사람은 우리 내면의 기초와 핵심 이익과 가치 체계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논리 체계와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완전히 뜯어고쳐야 합니다. 영원 안에 우리를 위해 영광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섬길 때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아비와 어미의 심정을 품고 섬겨 하나님의 뜻을 만족시켜 드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을 뵙는 그날, 하나님께서 “와서 나와 함께 나의 영광을 누리라. 착하고 충성된 종아, 들어와 네 주인의 영광을 누릴지어다”라고 말씀하실 터인데, 이는 비할 데 없이 좋은 일입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무지하기 때문에 용감하여 늘 이생에 매여 살아갑니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며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해서 죽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죽음을 두려워해서 죽음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우리는 다 함께 부둥켜안고 벌벌 떨기만 하면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귀신을 불러들이기 십상입니다. 여러분이 영생 안에 살고 있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 위에 올려놓았을 때, 서른 살 된 청년 이삭이 기꺼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며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이면서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이 얼마나 비극입니까? 귀신은 무섭지 않으나 하나님의 진노는 두렵습니다. 어떤 이는 아주 사소한 문제만 생겨도 서둘러 의사를 찾아가 치료를 받으려 하는데, 그처럼 안절부절못하며 사는 모습을 보면 피곤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한 일들이 겉보기에는 지극히 타당해 보이지만, 결국 패망을 가져올 뿐입니다. 지금까지도 어떤 사람들은 어느 목사의 설교를 듣고서 병원도 하나님이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병원 역시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는 장소입니다. 몸에 호스를 꽂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비껴갈 줄 아십니까? 주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내면의 가치관을 철저히 바꾸지 못한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고 나서야 하나님을 알게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부디 변화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때로는 이런 형제자매들을 만났을 때 상처를 받을까 염려되어 너무 깊이 말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비록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겠지만, 우리 또한 마땅히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하면 눈앞의 문제와 괴로움은 즉시 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모두 배설물에 불과하다면, 두 사람이 요강 단지 하나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한참 동안 다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물론 어떤 이는 그 요강이 한고조 유방이 쓰던 것이라 매우 값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가치가 있든 없든 요강은 여전히 요강일 뿐입니다.

마치기 전에 우스갯소리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골동품 하나를 얻었는데 세공이 매우 정교하고 보기에 무척 값져 보였습니다. 볼수록 마음에 들어 늘 그것을 술병으로 사용했습니다. 훗날 골동품 감정 전문가를 찾아가 감정을 받았더니, 전문가는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요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요강을 보물처럼 여기며 오랫동안 그것으로 술을 따라 마셨으니, 지금까지도 입안에서 옛사람의 오줌 냄새가 맴돌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진짜 보배이고 무엇이 배설물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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