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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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지혜와 우매함과 오만함 시리즈 (3) -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스스로 지혜로운 체하지도 말라!

2026-07-05 987 智慧愚昧与狂妄系列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이어서 "지혜와 우매와 광기" 세 번째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제목은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입니다. 제목이 입에 잘 붙지 않고 좀 어렵지요.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고,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번 설교는 저 자신에게 들려주는 말씀입니다. 왜일까요? 지난 세월 동안 지나치게 의롭게 행하려다 너무나 어리석게 굴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깨달았는데, 저는 마음이 참 부드러운 사람입니다. 제게는 '부드러움'이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틀린 것을 알면 곧바로 고칩니다. 잘못을 알면 즉시 고칩니다. 오늘도 또 한 번 고쳤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교회에서 우리는 사람을 변화시키기를 참 좋아하며 그것을 그럴듯하게 '양육'이라고 부릅니다. 과연 양육이 그런 것일까요? 양육이 꼭 맞는 것 같지는 않지요? 알고 보니 수많은 양육이 바로 지나치게 의롭게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지나치게 의롭게 행하려 할까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암에 걸렸을 때, 우리는 사력을 다해 기도합니다. 가장 길게는 13시간 동안 기도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효과가 없었다고 하기에는 침대에 누워 온몸에 기운이 없던 사람이 일어나 걷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효과가 있었다고 하기에는 다음 날이면 다시 원래대로 무너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람 자신이 전혀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저는 제 자신이 지혜를 과시하고, 스스로 옳다 여기며, 지나치게 의롭게 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사람의 운명(생명)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 후 깊이 연구해 보니, 이런 일들은 사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 저주가 형성되고, 저주가 열매를 맺으면 심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심판하고 계시는데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해가 되십니까? 참으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나중에 아주 흥미로운 현상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다들 자기는 꽤 괜찮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매우 선하다고 여긴다는 점입니다. "목사님, 아세요? 저는 참 착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착한 사람이라고요? 어떻게 착한데요?" "보세요, 할머니가 장보고 길 건너시는 걸 보면 장바구니를 들어다 드려요. 교회 모임 때도 늘 먼저 와서 의자를 정리하고요." 이것이 과연 선한 사람일까요? 제가 물었습니다. "나쁜 짓은 한 번도 안 해보셨습니까?" "그건 엄청 많지요." 그렇다면 이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까, 악한 사람입니까? 세상에.

암에 걸렸으면서도 여전히 자기가 선한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착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왜 눈도 없으신지, 어쩌자고 이런 일이 내게 임하게 하셨을까?" 하나님의 눈은 불꽃같이 밝으십니다. 저는 많은 사람을 섬겨보았기에 참으로 탄식이 나왔습니다. 이런 수많은 상황들을 겪으며 저는 끊임없이 반성하고, 끊임없이 조정하고, 다시 반성하고 조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제가 곧게 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부려 놓으신 것을 제가 어떻게 곧게 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겨루는 짓입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사람 안에 어떤 논리가 들어있는지에 따라 그 삶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사람은 결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자신에게 문제가 있고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손해라면 하지 않을 것이고, 이렇게 하는 것이 이득이라면 안 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스스로를 선한 사람이라 여기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마음 깊이 통감했습니다. 자신이 의롭게 행하여 남을 변화시키려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나치게 의롭게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여러분이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제 나쁜 습관이 아직도 다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양육하면서 늘 사람을 바꾸려 들지 않았습니까? 이제부터는 사람을 바꾸려 하지 않고, 제 자신을 바꾸겠습니다. 만약 변화되기를 원하신다면 저를 찾아오십시오. 함께 길을 찾아봅시다. 하지만 변화되기를 원치 않으신다면 저도 여러분을 찾지 않을 테니, 여러분도 저를 찾지 마십시오. 그냥 그렇게 둡시다. 그렇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요? 저는 더 이상 지나치게 의롭게 행할 수 없고, 더 이상 어리석게 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사실 며칠 전에 또 한 번 어리석은 짓을 했습니다. 아, 제 자신이 너무 밉습니다. 내가 왜 또 이 고질병이 도졌을까? 나중에 생각해 보니, 한 가지 나쁜 버릇을 고치는 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결국 깨닫게 된 것은, 지나치게 의롭게 행하고 지나치게 스스로 지혜를 뽐내는 것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도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수치를 당하고 멸망하게 될 뿐입니다.

아, 이런 회개는 참 좋습니다. 이 회개는 너무나 좋습니다. 형제님도 좋고 자매님도 좋고, 형제님 평안하시고 자매님 평안하시고, 모두가 평안하고 참 좋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제가 당신의 육신을 치려고 할 때 당신이 제게 이를 드러내며 덤벼든다면 얼마나 무의미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부터 우리 형제자매들은 모두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바꾸려 힘쓰고, 저는 제 자신을 바꾸려 힘쓰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하다고 하시면 우리는 그대로 전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러하다고 하시면 들을 귀 있는 자는 듣고, 듣지 않겠다면 그만두는 것입니다. 사람이 고생을 좀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저는 가끔 지나치게 마음이 아파서 남들이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지나치게 의롭게 행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말해줘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동북 지방 말로, 이 오랜 세월 동안 콩을 먹어왔으면서 아직도 콩 비린내를 모른단 말입니까? 날콩을 한번 씹어보십시오. 얼마나 비린내가 나는지 모릅니다. 저는 제가 대단한 신령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지나치게 의롭게 행하는 어리석은 자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스스로 변화되고, 스스로 고치려고 해야 일이 쉽게 풀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이 변화되기를 원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안의 논리를 다시 조정하기 시작합시다. 안의 논리를 잘 조정하면 여러분은 그 논리에 따른 열매를 살아가게 됩니다. 사물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변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강산은 바꾸기 쉬워도 타고난 본성은 고치기 어렵다.' 왜 그렇습니까? 본성은 그냥 그대로 두십시오. 굳이 본성을 바꾸려 하지 맙시다. 하지만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요? 사물에 대한 그 사람 내면의 인식을 바꿀 수는 있습니다. 그 역시 제가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바꾸어야 합니다. 제가 이 모임에서 기도를 인도하다 보면 어떤 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전 목사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사실 제 생각도 목사님 생각과 똑같거든요." 어디가 똑같습니까? 지나치게 의롭게 행하는 것이 저와 똑같고, 스스로 옳다 여기는 것이 저와 똑같다는 말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제가 사역을 해오면서 깨달은 것은, 참으로 배워야 할 교훈이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한번은 가정폭력을 당하는 분이 제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남편이 밖에서 문을 발로 차고 있고, 자기는 안에서 문을 잠갔는데 문틀이 거의 떨어져 나갈 지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 남편도 참 미련합니다. 저 같으면 전동 해머를 가져와서 '타다다닥' 박아버리고 문을 잠그든 말든 부숴버렸을 텐데 말입니다. 저는 먼저 경찰을 부르고 나중에 직접 가서 그 자매님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맞아 죽을 판이었으니까요.

사실 이전에도 이미 수년 동안 맞고 살아왔습니다. 제가 얼마나 지나치게 의롭게 행했습니까? 저는 많은 교훈을 얻었고, 그때 아주 쓴맛을 보았습니다. 그 자매를 데리고 나와서 머물 곳을 마련해주려고 차를 몰고 사방으로 집을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그렇게 살 집을 구해놓았더니, 그 자매는 자기 남편을 다시 그 집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살갗이 근질거려서 그런 것인지 대체 왜 그러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사실 우리 남편도 참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하더군요. 좋습니다, 좋아, very very very good, 아주 좋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그런 사고방식이 바뀔 것 같습니까? 저는 온 힘을 다해 도와주었고 그녀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여전히 '가정폭력에 길들여진 뇌'였습니다. 남편이 폭력을 쓰지 않으니 그 폭력적인 방식을 제게 적용하더군요. 제가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싶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한 가지 습관이 생겼습니다. 우리 사역자들에게 이런 가정폭력 문제를 만나면 관여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맞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정말 괴로웠다면 벌써 떠났을 것이지, 이렇게 수년 동안 끌고 올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렇게 오랜 세월을 끌 필요가 없습니다. 상관하지 마십시오. 나중에 보니 이런 상황이 꽤 흔했습니다. 절대로 지나치게 의롭게 행하지 마십시오. 폭력이 싫었다면 진작에 해결했을 것입니다. 해결하고 싶지 않은 것이니 부부간의 일에 우리는 끼어들지 맙시다.

보십시오, 제가 도와주고 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장담하건대, 그렇게 도와주고 나면 언젠가 그 사람은 당신에게 "사실 우리 남편은 이런 장점도 있고 저런 장점도 있어서 참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 긴 세월을 함께 살았겠습니까? 여러분 중에 가정폭력을 겪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제 설교를 들으신 후 스스로 결정을 내리십시오. 제게 와서 보증을 서달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혼을 하라 마라, 헤어져라 마라 권하지 않을 것이며 관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제가 오직 신경 쓰는 한 가지는 여러분 내면의 지식, 내면의 논리 체계, 내면의 지혜를 끌어올려 스스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 처리해 주고 났더니 "사실 그 사람은 참 좋은데 내가 문제예요"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지 마십시오. 다시 말해 그 사람이 평생 살아온 결과는 바로 자기 내면의 인식 때문입니다. 그 인식이 틀렸다기보다는, 본인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바로 그 인식 말입니다. 인생은 길지 않은데 왜 굳이 맞아가며 살아야 합니까? 평생을 살면서 여든 살이 넘도록 맞고 살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엊그제 한 친구가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라고 하더군요. 제 아버지가 아니라 그 친구 아버지 말입니다. 왜 돌아가셨냐고 물었더니, 부부 싸움을 하다가 여든여덟 살에 아파트에서 뛰어내리셨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여든여덟 살까지 싸울 수 있다니요.

나중에 아주 흥미로운 짧은 영상을 보았습니다. 꼬부랑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 각각 몽둥이와 빗자루를 들고 싸우는데, 세상에, 무공이 대단했습니다. 서로 주고받으며 싸우시더군요. 노인분들이 운동하시는 것입니까? 그러다 발을 헛디뎌 옥상에서 떨어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것이 바로 타고난 본성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사람은 자기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자기 스스로는 그것이 문제라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그러므로 제가 말씀드리지만, 다들 자기가 옳다고 여기고 자기가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스스로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절대로 관여하지 마십시오. 회개하기를 원한다면 함께 기도하겠지만, 회개할 마음이 없다면 무엇을 위해 기도하겠습니까? 기도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들을 많이 보았는지 아십니까? 중보기도팀을 조직하는 사람들입니다. 얼마 전 우리 교회의 한 자매에게 예전 교회의 자칭 '선지자'라는 다른 자매가 연락해 와서, 기도팀을 만들어 예전 담임목사님이 회개하도록 기도하자고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기도해서 그 사람을 회개시키겠다고요? 그것은 주술(무속)이 아닙니까? 그것이 주술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내가 여기서 중얼거리면 저쪽에서 변한다고요? 그것을 무엇이라 부릅니까? 주술입니다. 저는 수많은 중보기도팀이 그렇게 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형제는 자기가 그 교회의 파수꾼(watchman)이라고 자처했습니다. 파수꾼이 '워치맨' 맞지요? 그러면서 자기가 뒤에서 목사님을 위해 필사적으로 기도하고 있다고, 목사님이 잘못된 신학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란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아직 살아 계신데, 그 형제는 이미 죽어버렸습니다. 기도하다가 자기가 암에 걸렸는데도 여전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기도로 사람이 변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중에도 남편을 위해 수년 동안 기도했지만 남편이 변하지 않은 자매들이 있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때리고 면박만 줍니다. 저는 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혜와 우매와 광기를 생각할 때, 그것이 바로 광기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도 바꾸지 않으시는 목사를 자기가 바꾸겠다고요? 기억하십시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고, 지나치게 스스로 지혜를 뽐내지도 마십시오. 저는 이 두 가지를 다 범했습니다. 저는 깊이 회개합니다. 며칠 뒤에 제가 또 이 고질병이 도진 것을 보시더라도 용서해 주십시오. 저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습관 하나를 고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무엇을 억지로 펴려고 한 것입니까? 마치 스프링처럼 온 힘을 다해 구부리고 잡아당기다가 손을 놓으면 다시 튕겨 돌아가 원래대로 됩니다. 또 가서 억지로 펴려다 보니 온몸이 땀범벅이 됩니다. 차라리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변화되기를 원하는 것도 그 사람의 몫(운명)이고, 원치 않는 것도 그 사람의 몫입니다. 나중에 중병에 걸린들 저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마땅히 전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만 전할 뿐입니다. 전도서 같은 말씀을 깊이 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에게는 '기저 논리'와 '기저 사고방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그 사람 내면에 심겨 있는 것들입니다. 컴퓨터를 배운 사람은 압니다. 드론이나 스마트 기기를 사서 휴대폰에 연결하면 먼저 펌웨어(firmware)를 업데이트하지요. 펌웨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기기 안에 굳어져 있는 소프트웨어입니다. 그 소프트웨어가 어떠하냐에 따라 그 기기의 작동 방식이 결정되며, 그것은 결코 쉽게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펌웨어, 즉 하드웨어(대만 사람들은 '잉티[硬體]'라고 부릅니다)는 본래 그런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기차를 샀다면 반드시 전기를 충전해야지 기름을 넣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전기차이고, 저것은 하이브리드라면 본래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니 바꿀 수 없습니다. 가솔린차에는 전기를 충전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구부려 놓으신 것을 여러분이 어떻게 곧게 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곧게 펴려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려는 것을 일컬어 '지나치게 의롭게 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때로 아직 이생에 집착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왜일까요? 여러분이 이 땅에서 고통당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 고생을 좀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고생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본래 생긴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폭력을 당할 체질이라 나중에 폭력적인 남편에게 시집갔다면 그 마음에 딱 맞는 것 아닙니까? 육체의 고통을 좀 겪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떤 분이 유튜브 댓글에 "누가 누구를 돕는단 말인가. 나도 가정폭력 당하는 사람을 도와줬다가 결국 양쪽에서 뺨 맞는 꼴이 되었다. 폭력 당하던 그 사람이 나중에 '사실 우리 남편은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썼더군요. 그 사람들은 애초에 작정하고 함정을 파서 뛰어들게 만든 것입니다. 결국 부부가 짜고 친 판에 걸려든 셈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내면에 있는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고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는 말씀을 붙잡고 씨름해야 합니다. 굽은 것은 굽은 것이고 꺾인 것은 꺾인 것이니, 그 사람이 고치고 싶으면 고치는 것이고 고치기 싫다면 그만두게 두면 되지 않겠습니까?

본문 말씀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전도서 7:15-18)

기도

주 예수님, 우리의 마음의 눈을 열어주셔서 늘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우리 육신을 쳐서 복종하게 하옵소서. 늘 우리 안에서 주님의 말씀에 우리를 비추어 보게 하셔서, 우리가 언제 지나치게 의롭게 행했는지, 언제 어리석고 교만했는지를 깨닫게 하옵소서. 지혜로운 마음을 얻어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게 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그 누가 곧게 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주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하나님, 주께서는 천지 만물을 주관하십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을 경외하고 신뢰할 뿐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는 자주 곁길로 가오니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늘 바르게 교정하여 주옵소서. 살아가는 것은 오직 주님을 신뢰하는 것임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의 배경

솔로몬이 평생을 살면서 인생의 일들을 총결산해 보니, 선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었고 늘 착한 일만 했습니다. 길에 쓰러진 사람을 부축해 주었다가 덤터기를 쓰고 봉변을 당합니다. 의인이 의롭게 행하다가 도리어 멸망하는 것입니다. 뇌봉(레이펑)이나 굴원 같은 인물들이 그 전형입니다. 다 착한 사람들입니다. 솔로몬은 이런 일들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반면에 악인은 악을 행하면서도 도리어 장수합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여러분도 자세히 관찰해보면 솔로몬과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코로나19 하나를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반면에 악인은 악을 행하면서도 도리어 장수합니다. 참 기괴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관찰하고 나면 혼란스럽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솔로몬이라고 혼란스럽지 않았겠습니까?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는 혼란 속에서 "이것이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라고 묻고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바로 '지나치게 의롭게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의인이 의롭게 행하되 지나치게 행하다가 일찍 죽습니다. 지나치게 지혜를 뽐내지도 말아야 합니다.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을 자초하겠습니까? 이 결론을 보십시오. 얼마나 기가 막힌 결론입니까.

그 앞 구절에서 그는 참으로 훌륭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그것을 곧게 펴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겨루는 짓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꺾어 구부려 놓으셨는데, 하나님께는 얼마나 간단한 일입니까? '탁' 하면 꺾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탁' 한 번으로 있으라 하시면 있고 없으라 하시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그것을 다시 펴놓으면 다음 날 또 구부러지고, 셋째 날 다시 펴놓으면 넷째 날 또 구부러집니다.

이것이 제가 중병 환자들을 섬길 때 겪었던 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저도 지칠 대로 지치고 하나님도 피곤하게 만들어 드렸습니다. 보십시오. 내가 오늘 '다시 실행(redo)'하면 내일 하나님이 '실행 취소(undo)'하시고, 내가 또다시 펴놓으면 하나님이 또 구부리십니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입니까? 결국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을 데려가서 없애버려야겠다. 네가 허구한 날 귀찮게 구는구나. 내가 사람 하나 심판하겠다는데 심판도 못 하게 하느냐? 왜 온종일 여기서 가로막고 있느냐?" 이것이 바로 지나치게 의롭게 행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흥미롭지 않습니까? 솔로몬이 정리한 이 내용은 참으로 탁월합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결론을 내렸을까요?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세상에는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의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알고 보니 그가 선한 사람이고 의인이라는 것은 자기 스스로 자신에게 붙인 직함이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집에서 혼자 일품대관의 관모를 만들어 쓰고는 자기가 벼슬을 더한 짝퉁이지, 황제가 하사한 관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고는 자기가 진짜 일품대관이라도 된 줄 압니다. 이것이 참 묘합니다. 솔로몬의 결론처럼, 세상에 무슨 의인이 있겠습니까? 항상 선을 행하고 죄를 범하지 않는 의인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알고 보면 모두 죄인이며, 스스로 자기가 착한 사람이라고 착각할 뿐입니다. 여러분,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일찍 세상을 떠난 목사님들 중에는 정말로 선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정말로 착한 사람이고, 열심히 사역하며 주님을 섬겼고, 스스로도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비참하게 끝났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결코 자기를 선한 사람이라 여겨서는 안 되며, 자기를 의인이라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다 자기가 스스로 붙인 타이틀입니다. 어떤 분이 제게 "목사님, 제가 한 가지 현상을 관찰했는데요, 교회의 목사님들이 마지막에 참 비참하게 살다 가시더라고요. 반면에 교회에서 건성으로 다니고 열심도 없고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은 오히려 아주 잘 살더군요. 혼란스럽지 않으세요?"라고 물었습니다.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사실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이렇게 혼란스러운 일들을 만들어 두셨습니다.

그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 사람들은 사실 죄인인데도 자기가 선한 사람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스스로를 악인이라 여기며 나쁜 짓을 좀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덜 삽니다. 반면에 죄인이면서 착한 일 몇 번 해놓고 스스로 선한 사람이라 자처하는 자는 하나님의 엄청난 진노를 사게 됩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스스로를 선한 사람이라 착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부패한 독소입니다.

저는 이 법칙을 깨달은 후 날마다 제 자신에게 선포합니다. "나는 죄인이다, 나는 죄인이다, 나는 죄인이다, 나는 죄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나는 죄인이니 회개해야 한다. 나는 죄인이니 회개해야 한다." 밥을 먹을 때도 "나는 죄인이니 회개해야 한다." 물론 정신병자처럼 온종일 중얼거리지는 마십시오. 그러면 곤란하고 진짜 죄인이 될 테니까요.

솔로몬이 탐구하여 찾아낸 이 해답은 참으로 탁월합니다. 우리는 결코 혼란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겪는 고난을 보면 그 사람의 머릿속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가장 더러운 부분이 바로 '자신을 선한 사람이라 착각하는 것'입니다. 장담하건대 제가 섬겨본 수많은 암 환자들은 예외 없이 전부 자기가 선한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여러분께 이 건강식품 저 건강식품을 챙겨 먹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조언을 하나 드릴 수 있습니다. 어떤 건강식품보다 뛰어난 효과가 무엇일까요? '절대로 자신을 선한 사람이라 여기지 않는 것', 이것이 여러분의 생명을 건질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결론이 얼마나 훌륭합니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꽤 괜찮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이 알고 있느니라."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입에서 나온 모든 말을 기록해 놓는다면, 장담하건대 끝장납니다. 분명히 남을 저주하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참 묘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만 골라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뱉은 말은 다 옳다고 여기며, 심지어 남을 저주하는 말조차 옳다고 여깁니다. 이것이 얼마나 보편적인 현상인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회사에서 직원들이 모여 사장의 흉을 보는 것을 자주 보지 않습니까? 직장 생활을 해보지 않은 분은 모르겠지만, 직장인들은 모이기만 하면 상사 뒷담화를 합니다. 나중에 자기가 관리자가 되면 아래 직원들이 똑같이 자기를 그렇게 대합니다. 완전히 똑같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이 의인이라고요? 입술 하나 제어하지 못하면서 무슨 의인입니까? 남의 흉이나 보면서 무슨 의인이란 말입니까? 남 이야기나 일삼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의인은 없으며 선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선한 사람이라 여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암세포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대단한 것입니다. 저 역시 큰 선을 하나 행한 셈이니 '유 대선인(劉大善人)'이라 불러야 할까요?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려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스스로를 선한 사람이라 생각하십니까? 저는 겨우 한 가지 선한 말을 전했을 뿐이니 이 몇 분 동안만 '유 대선인'이고, 그 후에는 다시 죄인으로 돌아갑니다. 사실 농담으로 드린 말씀일 뿐, 저 역시 결코 선한 사람도 의인도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우리 모두를 죄인의 범주에 넣었으며,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분류하셨습니다.

솔로몬이 관찰하고 실험해 본 결과, 이 사실을 얼마나 철저하게 분석해 냈습니까? 그는 분석을 마친 후 지혜를 알고자 간절히 원하여 모든 것을 살피고 연구했습니다. 무엇을 연구했습니까? 지혜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고, 또 사악함과 우매함과 광기를 알고자 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 일이 참으로 흥미진진합니다.

그가 찾아 나섰지만, 세상에, 찾지 못했습니다. 그는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연구하여 이것을 얻었으나 내 마음이 여전히 찾고 있으나 아직 얻지 못하였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찾지 못한 것일까요, 아니면 찾은 것일까요? 그는 의인이 의를 행하다가 도리어 멸망하고 악인이 악을 행하면서도 도리어 장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세상의 모든 일을 낱낱이 온전히 파악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눈에 보이는 것은 세상의 일들이라 세상의 논리로는 결코 평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영계의 관점, 즉 영적인 안목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적인 안목으로 바라보면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영적인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이리저리 분석하고 논문을 쓰고 유전자니 장기 이식이니 연구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재앙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150세까지 살기를 원합니다. 한번은 160세 된 노인을 발견했는데 바짝 말라비틀어져 삶의 질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마치 마른 새우처럼 뼈만 앙상하고 남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저더러 그렇게 살라고 한다면 사양하겠습니다. 150세까지 살 수 있게 연구하는 박사들은 다른 문제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60세에 은퇴해서 150세까지 살려면 그 90년 동안 돈이 얼마나 들지는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긴 세월을 고생하며 살아야 하니 얼마나 끔찍합니까? 그 90년을 대체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직 150세까지 사는 법만 연구했지 다른 것은 안중에 없었던 것입니다.

싱가포르의 한 친구가 중병에 걸렸을 때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치료 안 받으면 죽는 거고, 치료받아도 죽는 거지요." 제가 "왜 치료받아도 죽는 건가요?"라고 물었더니 "치료받으면 돈이 다 떨어져서 파산해 죽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더군요. 세상에, 치료를 받으나 안 받으나 죽기는 마찬가지라니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았습니다. 차라리 일찍 죽는 것이 깔끔하고 고생을 덜 하는 길입니다. 그렇게 늙어서까지 고통을 당할 바에야 말입니다. 물론 제 말이 반드시 절대적인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구하려거든 이생에서 찾아서는 안 됩니다. 이생에서 찾으려 하면 결코 찾을 수 없고 계산이 맞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 사람은 별다른 나쁜 짓도 안 했는데 왜 이리 일찍 죽었을까요? 하지만 영계에서 계산해 보면 장부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집니다. 영적으로 계산해 볼 때, 자기를 의인이라 여기고 선한 사람이라 여기는 것이 세상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일지 몰라도 영계에서는 심각한 죄가 됩니다.

솔로몬의 연구 결과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여기에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이것이 바로 솔로몬이 찾아낸 결론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온전히 신뢰하며, 스스로 잘난 체하지 말고 지나치게 의롭게 행하지 마십시오.

지나치게 의롭게 행하면 반드시 병이 납니다. 병에 덜 걸리고 싶다면 '대선인' 노릇을 하지 마십시오. 아시겠습니까? 대선인이 되려 하지 말고 죄인으로 사십시오. 큰 죄인으로 인정하는 것이 훨씬 유익합니다. 보십시오, 악인은 악을 행해도 '지나치게' 악을 행하지만 않으면 기한 전에 죽지 않는다는 논리가 성립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결국 무엇을 바꾸어야 하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바꾸어야 합니다. 자신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지혜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우리는 꼬이지 않고 편안해집니다.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한다 해도 나는 죄인이니 당연히 그렇게 대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입니다. 사람들이 주 예수님께도 그렇게 대했는데, 내가 예수님도 아니면서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지 않습니까? 당연합니다. 그러면 속이 편해지지 않습니까? 기쁘고 즐거워지며 쓸데없이 분란을 일으키지 않게 됩니다. 늘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내면을 잘 조정하십시오. 참된 지혜를 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의 끝이며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어떻게 죽든 상관없습니다. 혈당이 조금 높든 낮든, 혈압이 조금 높든 낮든 무슨 상관입니까? 감정이 좋든 나쁘든, 기쁘든 답답하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죽음을 마음에 두고 저와 함께 결단합시다. 지금부터 두 다리 뻗고 눈을 감는 그날까지 기쁨으로 살아가기를 결단합시다.

환난을 만났을 때는 깊이 생각하십시오. "아, 내가 또 지나치게 의롭게 굴었구나!" 기뻐할 수 있다면 즉시 그 기쁨을 누리십시오. 하루라도 더 기쁘게 살고, 이틀이라도 더 기쁘게 사십시오. "아, 내가 드디어 이틀 동안 기뻤구나!" 하루 더 연장해서 사흘은 기쁠 수 없겠습니까?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예전처럼 사서 고생하며 남도 괴롭히고 나도 괴로운 짓은 이제 그만두고, 모두가 기쁘게 삽시다.

육신을 위하고 싶다면 실컷 위하십시오. 제가 가로막았다가 원수가 될 필요가 있겠습니까? 육신을 따르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문제를 해결하면 됩니다. 문제가 생겨도 깨닫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아멘. 의인이 의를 행하다가 멸망하고 악인이 악을 행하다가 도리어 장수한다는 말씀의 의미를 조금 전 충분히 설명해 드렸습니다.

제 설교는 보통 70~80%가 반복입니다. 그러니 중간에 잠시 놓쳤다가 다시 들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의인이 의를 행하다가 망한다는 이 말씀 속에는 대단히 치명적인 문제가 들어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의인이라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착한 일 하나 했다고 해서 자기가 진짜 의인이 된 것입니까?

의인이 의를 행하다 망하고, 악인이 악을 행하다 장수한다

의인이 의롭게 행하다가 도리어 멸망하는 경우를 저는 셀 수 없이 많이 보았습니다. 교회에 건성으로 대충 출석하며 지내는 사람들은 별탈 없이 잘 지냅니다.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열성적으로 봉사하면서 자신이 대단한 공헌을 했다고 착각하고, 스스로 선한 사람이라 여기며 하나님과 성도들이 자기에게 빚을 졌다고, 온 세상이 자기에게 빚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끝장나고 맙니다.

사실 그런 분들에게서 꼬투리를 잡으려 해도 흠잡을 데가 별로 없습니다. 제가 만난 어떤 분들은 참으로 선한 사람이었지만, 암에 걸려 죽어가는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들이 정말 선한 사람일까요? 본인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었을 뿐입니다. 암에 걸린 제 좋은 친구가 있었는데, 제가 또 지나치게 의를 행하느라 "이것은 저주야"라고 직언을 했다가 하마터면 얻어맞을 뻔하여 얼른 도망쳤습니다. 그는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전도자들을 만나면 자기 회사로 초청해 직원들과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하게 하고, 집회가 끝나면 두둑한 사례비를 건네곤 했습니다. 저도 한번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대단히 탁월하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결코 자신이 주님을 지극히 사랑한다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바로 '지나치게 의롭게 행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직도 주님을 사랑함이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아직도 진리를 온전히 알지 못한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면 쉬워집니다.

가장 치명적인 죄는 스스로를 선한 사람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영적 세계에서 하나님을 거스르는 모든 죄악 중 가장 고단수의 죄입니다. 사울과 다윗을 비교해 보십시오. 사울은 겉으로 보기에 그리 큰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고, 스스로도 착한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나는 진실로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빗나간 것입니까? 그는 진심으로 자기가 말씀에 순종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다윗은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겼습니다. 이것을 어디 가서 따지겠습니까? 따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악을 행하더라도 선을 넘지 마십시오.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악인이 악을 조금 행하는 것은 도리어 괜찮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결코 자기가 착한 사람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이 왜 무사할까요? 그들은 "내가 몹쓸 짓을 했지"라고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자기가 못된 짓을 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스스로 선하다고 착각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항상 선을 행하고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전도서 7장을 여러분을 위해 철저하게 파헤쳐 설명해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혼자 읽는다면 제가 겪었던 혼란을 여러분도 겪게 될 것입니다. 저 역시 수없이 읽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후에야 비로소 이 깨달음에 도달했습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여러분 입에서 나온 말들만 보아도 통과할 자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모든 사람은 자기 입에서 나온 말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집에 물건을 도둑맞았을 때 "우리 집 물건을 훔쳐 간 놈은 죽어 마땅해!"라고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훗날 내가 남의 물건을 슬쩍 훔쳤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늘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 "너는 죽어 마땅하다. 네가 목사라고? 목사는 무슨, 죽어 마땅하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제가 "억울합니다"라고 하면 하나님이 "뭐가 억울하냐?" 하시겠지요. 제가 진짜 도둑질을 했다는 말이 아니라 예를 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쓸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만담에서 추임새 넣는 상대라면 이름을 쓰겠지만 설교에서는 그럴 수 없지요. 제가 "억울합니다" 하면 하나님은 "어찌하여 억울하냐? 도둑질한 자는 죽어 마땅하다고 네 입으로 직접 말하지 않았느냐? 너도 도둑질을 했으니 끝이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내 입으로 내 자신을 정죄한 셈입니다.

그러므로 비판(판단)하지 마십시오. 비판하는 자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주 예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저를 바라볼 필요가 없고 저도 여러분을 바라보지 않으며, 우리 모두 오직 주 예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 죄인이며 모두 예수님의 보혈이 필요하고,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셔야 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입술의 허물을 씻음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우리가 지은 악행이 셀 수 없이 많은데, 착한 일 한두 번 했다고 스스로 위대하다고 여긴다면 큰일 날 일입니다. 이해가 되셨지요?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얼마나 탁월한 말씀입니까! 참으로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그렇게 지으셨는데 당신이 바꿀 수 있겠습니까? 저는 못 바꿉니다. 본인이 그것이 옳다고 굳게 믿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고치겠습니까? 우리 집 두세 살배기 아이라면 매를 때려서라도 가르치겠지만, 다 큰 성인을 제가 어떻게 때리겠습니까? 제가 때리면 당신도 저를 들이받을 텐데, 저도 힘으로 당신을 이기지 못합니다. 만약 교회의 양육이 그런 식이라면 교회가 권투 체육관이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체육관 관장도 아니고, 서로 육신을 쳐서 복종시킨답시고 치고받고 싸우자는 것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저는 체육관을 차린 것이 아닌데 무슨 육신을 치겠습니까? 우리 교회는 이제 변화되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어야 합니다. 서로 물고 뜯고 상처를 주며 저주의 말을 내뱉다가 하늘에서 다 폭로되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그러고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신학(사명 신학)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더 이상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행하심을 관찰하십시오. 하나님이 저 사람을 저렇게 지으셨으니 게으르면 게으른 대로 두십시오. 게으르다 병이 나면 "게으름을 좀 피우는 건 괜찮지만 병이 날 정도면 곤란하지요.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당신이 좀 게으르다는 마음을 주셨는데,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그냥 넘어가십시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껏해야 여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뿐입니다. 말을 더 보태고 싶어도 더 말하면 지나치게 의를 행하는 것이 됩니다.

고집이 센 사람이라면 그냥 고집부리게 두십시오. 얼른 자기 마음을 다스리며 "마음을 가라앉히자, 지나치게 의롭게 행하지 말자"라고 스스로를 통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부려 놓으신 것을 우리가 억지로 펴려 해서는 안 됩니다. 억지로 펴려다가는 지나치게 의를 행하게 되고, 언젠가 하나님께서 저를 치워버리실지도 모릅니다. "너 허구한 날 뭐 하는 짓이냐?" 하시면서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구부려 놓으셨다고요? 정말 하나님이 구부려 놓으셨을까요? 아닙니다. 다들 조심하십시오. 사실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구부려 놓은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으실 때는 팔다리나 코, 눈 하나 부족함 없이 온전하게 지으셨고 머리도 온전했습니다. 그러나 태어나 자라면서 머릿속에 온갖 잔꾀가 생겨났습니다. 자라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견고한 '펌웨어'를 형성했고 결국 비틀리고 굽어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구부리신 것입니까, 무엇입니까? 사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완악함과 굽은 성품을 그대로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변화되는 길은 간단합니다. "목사님, 제가 굽었나요? 얼마나 굽었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저는 "도를 넘어서 완전히 휘어졌다"고 할 것입니다.

몇 도나 휘어졌을까요? 최소한 360도는 휘어졌습니다. 360도 돌면 제자리 아니냐고요? 한 바퀴를 완전히 꼬아서 꽈배기처럼 비틀려 있는데 어찌 굽지 않았단 말입니까? 360도 돌아가는 파노라마 카메라도 아니고 말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내면이 얼마나 비틀리고 꼬여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도 마음에 안 들고 저것도 꼴 보기 싫어하면서 오직 자기 자신만은 훌륭하다고 여깁니다. 자기가 무슨 기준이라도 되는 줄 압니다. 키가 작은 사람에게 키가 작다고 하면 화를 냅니다. 뚱뚱한 사람에게 뚱뚱하다고 하면 기분 나빠합니다. 결점을 지적하면 화를 냅니다. 바지 지퍼가 열린 채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어도 지적해 주면 기분 나빠합니다. 사람이 이처럼 뒤틀려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일은 그냥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이 일을 주께 맡길 수 있습니까? 맡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더러 그 굽은 것을 펴라고 명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만약 내 자신이 굽어 있다면 내 자신을 펴야 합니다. 이전에는 꽈배기였다면 이제는 길쭉한 꽈배기 도넛(유탸오)처럼 곧게 펴는 것입니다.

꽈배기를 사서 그것을 억지로 길게 펴려고 해보십시오. 얼마나 힘든지 압니까? 손을 놓는 순간 도로 비틀려 버립니다. 남이 나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직 내 자신이 나를 바꿀 때만 겨우 변화가 일어납니다. 몸이 아플 때는 잠시 뉘우치다가도 다 나으면 다시 꽈배기로 돌아갑니다. 어릴 적 가난했을 때 "엄마, 꽈배기 먹고 싶어요" 하면 볼때기를 두 손가락으로 비틀어 꽈배기를 만들고, "엄마, 도넛 먹고 싶어요" 하면 반대쪽을 잡아당겨 모양을 만들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심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와 악의 두 극단에서 벗어나라

우리는 이제 세상적인 기준으로 이것이 선인지 악인지 판단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오직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인가, 순종하지 않는 것인가만을 분별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왜 의와 악이라는 두 가지 극단에서 벗어나야 할까요?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는 그 행위 중심의 판단 자체가 '선악을 분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유 대선인이고, 저 사람은 유 대악인이다"라는 식의 선악 분별에서 벗어나 하나님만을 경외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경외합시다. 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할까요? 여러분이 얻은 모든 것은 마땅히 받을 만해서 받은 것이요, 여러분이 겪은 고난 중에 억울한 것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일들을 허락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철저히 살피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환난 날에는 깊이 생각하십시오.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감히 스스로를 '선한 사람'이라고 자처할 수 있겠습니까? 겁도 없이 어디서 '대선인' 행세를 한단 말입니까? "나는 악인일 뿐이며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합니다. 내가 그동안 지나치게 의롭게 행했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부려 놓으신 남의 인생은 억지로 펴려 하지 마십시오. 오직 우리 자신의 내면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곧게 펴야 합니다. 동북 방언으로 '반듯하게 다듬는다(直溜直溜)'는 말이 있습니다.

'반듯하게 다듬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저 녀석 좀 반듯하게 다듬어야겠다"고 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동북 출신이 아닌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손을 좀 봐주거나 호되게 훈계하여 징계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자신을 반듯하게 다듬어야 합니다.

정직한 사람이 되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정직한 사람이 되십시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한다면 당신에게는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자신이 악인임을 인정한다면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의인이라고 여긴다면 당신에게는 아무런 기회도 없습니다. 오직 패망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우리 자신이 얼마나 많은 꾀를 부려왔는지 돌아보십시오. 태어났을 때는 제법 곧고 순수했지만, 세상 교육을 받고 살아가면서 수많은 잔꾀를 만들어 냈습니다. 사람이 평생 받아온 세상 교육이란 사실 자기 자신을 뒤틀리게 만든 과정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비틀어 놓으셨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본래 당신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당신 스스로 점점 더 꼬이고 비틀려 버린 것입니다. 자기가 옳다고 우길수록 더욱 비틀어지고, 비틀어질수록 더욱 자기가 옳다고 여깁니다. 결국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왜곡된 요술거울처럼 삐뚤어지게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남이 꽈배기처럼 비틀려 있는 것을 보더라도 "너 왜 꽈배기처럼 구냐"고 지적하지 마십시오. 그랬다가는 흠씬 얻어맞을 뿐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내 자신이 꽈배기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고침을 받을 자격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본래 정직하게 지으셨습니다. 팔다리나 눈코 귀 하나 부족함 없이 지으셨는데 오직 지혜로운 분별력 하나가 부족하여 스스로를 꼬이게 만들고 온갖 사서 고생을 자초한 것입니다.

암에 걸려 방사선 치료, 항암 치료, 수술을 받고, 장 천공이 생겨 장루를 달고,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되고, 심혈관 질환에 뇌혈관 질환까지 겹쳐 온갖 소망을 병원에만 걸면서도 여전히 자기는 착한 사람이라고 우깁니다. 참으로 대단한 고집입니다. 소도 꺾지 못할 황소고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내면이 얼마나 비틀려 있는지를 직시해야 합니다. 스스로는 반듯하다고 여기는데 실제로는 심하게 꼬여 있다면 어찌 고통스럽지 않겠습니까? 남의 비틀림만 바라보며 자기는 곧은 도넛이고 남들은 다 꽈배기라고 착각하지 말고, 제발 자기 자신을 바꾸십시오! 제가 이 설교를 하는 목적은 오직 저 자신을 바꾸고, 여러분 각자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도록 촉구하기 위함입니다. 허구한 날 남의 문제만 쳐다보지 마십시오.

사역할 때도 분수를 지켜 힘에 맞게 해야지, 지나치게 의롭게 행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상대방이 자기 육신을 쳐서 반듯하게 다듬어 달라고 간절히 요청한다면 도와주십시오. 요청할 때만 도와주는 것입니다.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억지로 고쳐주려 들면 싸움만 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교회가 권투 경기장이 되고 맙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지나치게 의롭게 행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만하는 교만입니다. 제가 꽈배기니 도넛이니 길게 말씀드렸더니 출출해서 사 먹으러 가고 싶으십니까? 잊지 마십시오, 우리 자신이 바로 비틀린 꽈배기입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곧게 폅시다. 정직한 사람이 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됩시다. 지혜로운 자는 오직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양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사람의 갈망의 수준에 맞추어 양육해야 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상대가 사모하는 분량만큼만 주는 것입니다. 상대가 변화되기를 간절히 원할 때 곁에서 조금 도와줄 뿐입니다. 우리가 그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훗날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게 감사하게 될 날이 올 것이며, 동시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변화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바로 시작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서 능력이 되셔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으로 빚어가실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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