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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사사기 6장 - 하나님께서 우상을 섬기던 기드온을 택하시다니!

2024-12-04 6,624 士师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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士师记06章-基甸
  • 1 以色列人又行耶和华眼中看为恶的事,耶和华就把他们交在米甸人手里七年。
  • 2 米甸人压制以色列人;以色列人因为米甸人,就在山中挖穴、挖洞、建造营寨。
  • 3 以色列人每逢撒种之后,米甸人、亚玛力人,和东方人都上来攻打他们,
  • 4 对着他们安营,毁坏土产,直到迦萨,没有给以色列人留下食物,牛、羊、驴也没有留下;
  • 5 因为那些人带着牲畜帐棚来,像蝗虫那样多,人和骆驼无数,都进入国内,毁坏全地。
  • 6 以色列人因米甸人的缘故,极其穷乏,就呼求耶和华。
  • 7 以色列人因米甸人的缘故,呼求耶和华,
  • 8 耶和华就差遣先知到以色列人那里,对他们说:“耶和华以色列的 神如此说:‘我曾领你们从埃及上来,出了为奴之家,
  • 9 救你们脱离埃及人的手,并脱离一切欺压你们之人的手,把他们从你们面前赶出,将他们的地赐给你们’;
  • 10 又对你们说:‘我是耶和华你们的 神。你们住在亚摩利人的地,不可敬畏他们的神。你们竟不听从我的话。’”
  • 11 耶和华的使者到了俄弗拉,坐在亚比以谢族人约阿施的橡树下。约阿施的儿子基甸正在酒榨那里打麦子,为要防备米甸人。
  • 12 耶和华的使者向基甸显现,对他说:“大能的勇士啊,耶和华与你同在!”
  • 13 基甸说:“主啊,耶和华若与我们同在,我们何至遭遇这一切事呢?我们的列祖不是向我们说‘耶和华领我们从埃及上来’吗?他那样奇妙的作为在哪里呢?现在他却丢弃我们,将我们交在米甸人手里。”
  • 14 耶和华观看基甸,说:“你靠着你这能力去从米甸人手里拯救以色列人,不是我差遣你去的吗?”
  • 15 基甸说:“主啊,我有何能拯救以色列人呢?我家在玛拿西支派中是至贫穷的。我在我父家是至微小的。”
  • 16 耶和华对他说:“我与你同在,你就必击打米甸人,如击打一人一样。”
  • 17 基甸说:“我若在你眼前蒙恩,求你给我一个证据,使我知道与我说话的就是主。
  • 18 求你不要离开这里,等我归回将礼物带来供在你面前。”主说:“我必等你回来。”
  • 19 基甸去预备了一只山羊羔,用一伊法细面做了无酵饼,将肉放在筐内,把汤盛在壶中,带到橡树下,献在使者面前。
  • 20  神的使者吩咐基甸说:“将肉和无酵饼放在这磐石上,把汤倒出来。”他就这样行了。
  • 21 耶和华的使者伸出手内的杖,杖头挨了肉和无酵饼,就有火从磐石中出来,烧尽了肉和无酵饼。耶和华的使者也就不见了。
  • 22 基甸见他是耶和华的使者,就说:“哀哉!主耶和华啊,我不好了,因为我觌面看见耶和华的使者。”
  • 23 耶和华对他说:“你放心,不要惧怕,你必不至死。”
  • 24 于是基甸在那里为耶和华筑了一座坛,起名叫“耶和华沙龙”(就是耶和华赐平安的意思)。(这坛在亚比以谢族的俄弗拉直到如今。)
  • 25 当那夜,耶和华吩咐基甸说:“你取你父亲的牛来,就是(或译:和)那七岁的第二只牛,并拆毁你父亲为巴力所筑的坛,砍下坛旁的木偶,
  • 26 在这磐石(原文是保障)上整整齐齐地为耶和华你的 神筑一座坛,将第二只牛献为燔祭,用你所砍下的木偶作柴。”
  • 27 基甸就从他仆人中挑了十个人,照着耶和华吩咐他的行了。他因怕父家和本城的人,不敢在白昼行这事,就在夜间行了。
  • 28 城里的人清早起来,见巴力的坛拆毁,坛旁的木偶砍下,第二只牛献在新筑的坛上,
  • 29 就彼此说:“这事是谁做的呢?”他们访查之后,就说:“这是约阿施的儿子基甸做的。”
  • 30 城里的人对约阿施说:“将你儿子交出来,好治死他;因为他拆毁了巴力的坛,砍下坛旁的木偶。”
  • 31 约阿施回答站着攻击他的众人说:“你们是为巴力争论吗?你们要救他吗?谁为他争论,趁早将谁治死!巴力若果是神,有人拆毁他的坛,让他为自己争论吧!”
  • 32 所以当日人称基甸为耶路·巴力,意思说:“他拆毁巴力的坛,让巴力与他争论。”
  • 33 那时,米甸人、亚玛力人,和东方人都聚集过河,在耶斯列平原安营。
  • 34 耶和华的灵降在基甸身上,他就吹角;亚比以谢族都聚集跟随他。
  • 35 他打发人走遍玛拿西地,玛拿西人也聚集跟随他;又打发人去见亚设人、西布伦人、拿弗他利人,他们也都出来与他们会合。
  • 36 基甸对 神说:“你若果照着所说的话,藉我手拯救以色列人,
  • 37 我就把一团羊毛放在禾场上:若单是羊毛上有露水,别的地方都是干的,我就知道你必照着所说的话,藉我手拯救以色列人。”
  • 38 次日早晨基甸起来,见果然是这样;将羊毛挤一挤,从羊毛中拧出满盆的露水来。
  • 39 基甸又对 神说:“求你不要向我发怒,我再说这一次:让我将羊毛再试一次。但愿羊毛是干的,别的地方都有露水。”
  • 40 这夜 神也如此行:独羊毛上是干的,别的地方都有露水。

《答疑解惑》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사기》 6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장은 참으로 흥미진진한 장입니다. 제가 그 깊이를 다 전하지 못할까 염려될 정도인데, 여러분은 미리 예습해 오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예습을 하셨다면 어떤 결론을 얻으셨습니까? 제가 여러분께 성경을 읽는 간단한 방법을 알려드리자면, 바로 핵심을 잡는 것입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과연 무엇일까요? 제가 한번 제시해 볼 테니 보십시오. 이것이 표준 정답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나름의 답이 있을 수 있고, 저에게는 저의 답이 있습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바로 “하나님께서 뜻밖에도 우상을 섬기던 기드온을 택하셨다”입니다. 기드온은 우상을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기드온의 행동 방식을 보면 그가 우상 숭배자였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1. 기드온의 집안은 바알 우상을 섬겼습니다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는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기드온과 그의 아버지가 우상을 숭배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당연히 함께 숭배했습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택하시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의 평생은 그저 먹고사는 삶의 굴레와 우상 숭배의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가 하나님을 섬기기는 했지만, 그 내면에는 여전히 우상 숭배의 논리 체계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사실 드보라가 죽고 나서 그리 오랜 세월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또다시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7년 동안 미디안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그 사이에 정확히 몇 년의 세월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리 먼 과거의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기드온은 드보라를 알고 있었을까요? 알고 있었습니다.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는 드보라를 알고 있었을까요? 요아스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를 모두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쩌자고 우상을 숭배하러 갔을까요? 어째서 바알의 우상과 아세라의 우상을 집 안으로 들여놓았을까요?

기드온의 집안이 바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게다가 이 몇 년 동안 미디안 사람들에게 억눌려 지내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바알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기드온과 요아스 부자, 어쩌면 요아스의 다른 아들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쩌다가 우상을 집 안으로 모셔 들이게 되었을까?’ 제가 말씀드리자면, 사람이 그저 잘 먹고 잘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집 안에 모셔 들이고도 못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이 우상을 집에 들이는 것은 잘살고 싶어서일까요, 아니면 못살고 싶어서일까요? 다 잘살고 싶어서입니다.

제가 아는 한 대기업 회장이 있습니다. 그 기업은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 중 100위권, 200위 안쪽에 드는 초대형 기업입니다. 수조 원대 규모의 기업 제국인데, 그의 사무실 한편에 커다란 회의실을 따로 칸막이해 두고 그 안에 온갖 우상을 가득 채워 놓았습니다. 그의 직원들은 그와 함께 우상을 숭배하지 않으면 그의 곁에서 고위 임원이 될 생각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런 사장에게 묻겠습니다. 그가 자살하려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요? 우상을 통해 돈을 벌고 싶어서입니다.

그렇다면 요아스와 기드온의 집안은 바알 우상을 들여놓고 무엇을 하려 했을까요? 그들은 이 우상이 자신들을 도와 목표를 이루어 주기를 바랐습니다. 무슨 목표일까요? 어떤 사람은 “나는 상장 회사를 하나 세우겠다”고 말합니다. 세웠습니까? 못 세웠습니다. 여러분이 참 하나님께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제 회사가 유니콘 기업이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구한다면, 제가 말씀드리건대, 그런 식으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제 회사가 상장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상장해서 무엇 하려느냐?” “주주들의 돈을 끌어모으려고요.” 제가 묻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겠습니까?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사실 그때 기드온은 나이가 적지 않았습니다. 기드온과 그의 아버지가 머리를 굴려 바알을 모셔 온 것입니다. 오늘날 연예인들을 보십시오. 실제로 우상을 숭배하는 연예인이 얼마나 많습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자신이 유명해지고 큰 인기를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요아스의 집안은 이것으로 대단한 일을 벌였습니다. 그 바알 우상을 통해 그들이 사는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집으로 와서 절을 하게 만든 것입니다.

기드온의 집 문 앞에는 작은 가게가 하나 딸려 있었는데, 바로 그 집안에서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절하러 오셨습니까? 그럼 향유를 사셔야지요. 절하러 오셨습니까? 지전(종이돈)을 사셔야지요. 절하러 오셨습니까? 복채를 내셔야지요.’ 제가 말씀드리지만, 기드온과 그의 아버지 요아스는 바알을 하나 차려놓고 이것을 사업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참 하나님을 사업의 수단으로 삼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큰 변을 당하게 됩니다. 저 역시 이 일을 보며 하나님께 의문을 품었습니다. “하나님, 이스라엘에 정말 사람이 그리도 없었습니까? 어떻게 이런 사람을 찾아내셨습니까?”

2.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바알을 숭배했는가

우상을 섬기는 사람의 말로는 매우 비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미디안 사람들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알 숭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참으로 기괴한 일이 아닙니까? 제가 말씀드리자면, 이 바알의 악령도 꽤나 강력했습니다. 바알의 악령이 그 땅에서 이리저리 역사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우 신기해했습니다. “야, 저 가나안 사람들을 봐라. 저들은 바알을 섬기더니 땅에서 풍년이 들지 않았느냐? 그런데 우리 땅은 왜 풍년이 안 드는 거지?”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말 그대로 ‘인플루언서’처럼 잘나가는 것이 훤히 보였습니다. 도무지 그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먹고사는 모습에서 그들을 도저히 이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농사짓는 것, 돈 버는 것, 장사하는 것 등 모든 면에서 그들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세상에서 눈부시게 잘나가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대단히 잘나가는 그리스도인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왜 이리 힘들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매우 흥미로운 생활 방식이며, 이러한 삶의 방식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쳐다보며 부러워했습니다. “어휴, 저 사람들은 밤마다 디스코텍에 가고 술집에 가는구나.” 명절이나 축제 때가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명절에 그런 것들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저들의 신당에는 신전 제사가 있어 얼마나 시끌벅적하고 화려합니까! 여러분은 아세라 주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성기 숭배의 한 형태였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워했겠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이 되면 유월절을 지켜야 하고, 초막절이 되면 초막절을 지켜야 하며, 매주 안식일도 지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 저 사람들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자유롭습니까? 네, 자유롭습니다. 아주 자유롭지요.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은 속으로 은밀히 부러워하다가, 급기야 자기들도 그것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렇다면 요아스와 기드온의 집안도 그런 짓을 했을까요? 그들도 했습니다. 매우 음란한 짓이었습니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기드온은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던 그 악습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훗날 그는 아들을 일흔 명이나 낳았습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아들을 일흔 명이나 낳을 수 있습니까? 대단하지 않습니까? 대단합니다. 기드온이 부패했는지 안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그는 대단한 부자였습니다. 기드온은 아들을 일흔 명이나 낳았고, 게다가 세겜 사람인 첩까지 두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집안에는 우상 숭배의 뿌리가 깊이 박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우상을 숭배했을까요? 그들의 오락과 유흥이 얼마나 매력적이었습니까! 물론 제가 너무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싱가포르의 홍등가보다 훨씬 더 심했습니다. 사람이 우상을 숭배하며 장사하고 농사짓고 유흥을 즐기는 모습에 대해, 이스라엘 사람들은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배후에 있는 악령이 매우 강력했기 때문입니다.

3.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미디안 사람의 손에 넘기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얼마나 두려운 분이신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사람들을 일으키셔서 이스라엘을 미디안 사람들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집안을 포함한 이스라엘 전체를 미디안 사람들의 손에 넘기신 것입니다.

제가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저는 여러분이 주님을 믿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내면이 온통 세상의 것들로만 가득 차 있다면, 차라리 주님을 믿지 않는 편이 세상에서 더 편하게 살지도 모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상 숭배자들을 부러워한다면, 그런 삶은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셨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그저 먹고사는 일에만 빠져든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원수의 손에 넘기실 것입니다. 미디안 사람이든, 가나안 사람이든, 야빈이든, 시스라든, 아니면 아말렉 사람이든 간에 그들의 손에 넘기실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싸워 승리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도를 삼가 지켜 행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뿐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진정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만약 여러분이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면서 동시에 주님을 믿으려 한다면, 그것은 영적 간음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파멸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몇 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이러한 순환을 반복했는데, 이는 마치 주기적인 경제 위기와 같았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압제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디안 사람들로 말미암아 산에 구멍과 굴을 파고 산성을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파종할 때마다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왔습니다. 그들을 향해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기까지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가축과 장막을 가지고 메뚜기 떼처럼 수없이 몰려왔기 때문에, 사람과 낙타가 무수하여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디안 사람들로 말미암아 극심하게 궁핍해지자, 그제야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결국 이 역시 그저 먹고살기 위한 것 아니었습니까? 알아들으셨습니까? 먹고살기 힘들어지면 하나님께 부르짖고, 먹고살 만해지면 하나님을 멀리 내팽개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참으로 기괴한 악순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이러한 악순환 속에 빠지면 어떤 상태가 되겠습니까? 악순환에 빠진 전형적인 모습은 바로 ‘먹고사는 문제’에만 매달리는 것입니다. 살기 힘들어지면 어떻게 합니까? 우상을 숭배합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혼란을 겪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보십시오, 제 사업은 왜 우상 숭배자들의 사업보다 안 됩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럼 당신도 가서 우상을 섬기시지요”라고 말합니다. 목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저 먹고사는 것에만 매달리다가, 살기 힘들어지면 우상을 숭배하고, 결국 원수의 손에 넘겨지며, 원수의 손에 넘겨져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면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면 또다시 자기 먹고사는 일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다시 패망할 날이 머지않은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 사람의 핵심 이익이 이 세상의 삶에만 있다면 그것은 비극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의 삶에만 소망을 둔다면, 세상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는 고통과 번뇌 외에는 다른 소망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문제를 반드시 명확히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먹고사는 일에만 집착한다면, 결국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진노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될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의아해합니다. “내가 그저 내 삶을 살아가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저는 암에 걸렸다가 제가 기도해 주어 치유받은 사람들을 종종 만납니다. 그런데 그 후 그 사람은 제게 묻습니다. “아니, 당신처럼 그렇게 믿어서야 어떻게 먹고삽니까?”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 나처럼 믿지 않고는 어떻게 살겠습니까? 암에 걸렸던 사람이 여전히 먹고사는 것에만 마음을 두고 있습니까?” 저는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저 살아남는 것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마음속에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최근 뉴스에 유명 로맨스 소설 작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유명 작가였는데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그 사람의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있는데 글을 정말 잘 썼습니다. 그러니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부디 이런 악순환에 빠지지 마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죽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해도 죽어야 하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죽어야 합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의 결국입니다.

어떤 사람은 “선생님, 뉴스에 자살이라고 나오면 얼마나 듣기 흉합니까?”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난화이진(南懷瑾) 같은 인물을 배워보지 그러십니까? 대가로 불리는 사람인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곡기를 끊지 않았습니까. 누군가는 “누워서 곡기를 끊어도 되지 않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죽고 나면 사람들은 “와! 신선이 되었다, 입적(원적)했다”고 칭송하고, 화장한 후에는 사리까지 나온다고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자면, 여러분이 죽음을 하찮게 여기고, 이 세상의 삶에 집착하지 않을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될 자격을 갖추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인의 영적 안식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제가 80일 금식 기도를 하고 세상을 떠나려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혹시 사리 같은 것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미디안 사람들의 손에 넘기셨을 때, 그들의 삶은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4. 이스라엘 사람들이 극심하게 궁핍해져 여호와께 부르짖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삶이 그리 궁핍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 부르짖었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주님을 믿으러 온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됩니까?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다들 삶이 너무 비참해져서, 암에 걸리고 강직성 척추염에 걸리고 나서야 저를 찾아왔습니다. 사람은 기분이 좋고 살 만하면 ‘하나님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극심하게 궁핍해졌을 때 우상 앞에 엎드려 구하고 절했지만,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섬기던 우상의 배후에 있는 신은 기껏해야 재물의 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전쟁의 신이시며 싸움에 능하신 분입니다. 여러분이 싸워 이기지 못한다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돈은 권세를 이길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먹고사는 일은 참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결코 능가할 수 없습니다. 이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은 우상이 아무 소용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우상이 자기 말을 듣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놓아라, 딴소리하지 말고!’라는 심보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극심하게 궁핍해지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부르짖었습니까?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성경 어디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기 위해 부르짖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극도로 궁핍해지고, 우상을 숭배해도 소용이 없으며, 우상 숭배를 마친 후에는 미디안 사람들이 쳐들어와 그들의 재물을 다 빼앗아 가니, 그제야 참담한 삶 속에서 부르짖은 것입니다.

기드온의 손에는 칼 한 자루가 들려 있었는데, 훗날 우리는 그것을 ‘기드온의 칼’로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기드온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극도로 궁핍해져 여호와께 부르짖기 전에, 기드온은 날카로운 칼을 한 자루 벼려 두었는데 그것이 바로 ‘기드온의 칼’이었습니다. 그는 집 뒤뜰에서 몰래 무술을 연마했고, 그의 실력은 점점 더 대단해졌습니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매우 유머러스하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힘으로 가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기드온은 열심히 무술을 연마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쳐들어왔을 때 그들을 쳐부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기드온은 또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추수할 때가 되어 밀을 타작하지 않았겠습니까? 타작해서 거두어들인 후 서둘러 산속 동굴에 숨겨 두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비참한 삶이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런 삶을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때때로 화가 납니다. 왜 화가 날까요? 사람은 왜 꼭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고 나서야 주님을 믿는 것입니까? 저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어떤 면에서는 깊은 비애를 느낍니다. 삶이 평안하고 잘나가는 사람들은 결코 “목사님, 제가 왔습니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러 오셨습니까?”라고 물으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결국 찾아오는 사람은 암에 걸린 사람, 강직성 척추염에 걸린 사람, 빚더미에 앉은 사람, 실직한 사람, 극심하게 가난한 사람뿐입니다. 아, 세상에! 저는 이것이 참으로 씁쓸합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람이 삶이 좀 나아져서 자식도 생기고, 집도 생기고, 차도 생기고, 돈도 생기고, 아내도 얻게 되면 이내 이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라고요? 다시 한번 말씀해 보시지요.” 아, 제 마음이 과연 이것을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뿐입니다. 견딜 수 있든 없든 감당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발 이러한 악순환에 빠지지 마십시오. 왜 꼭 극심하게 궁핍해지고 나서야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까?

5. 하나님께서 우상을 숭배하던 기드온을 택하시다

여호와의 사자가 오브라에 이르러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사사기 6:11)

제가 묻겠습니다. 그 이전 날들에 기드온 부자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지난 7, 8년 동안 바알 앞에서 향을 피우고 머리를 조아렸으며, 때로는 이마에 피가 맺히도록 절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만 쳐들어오면 모든 것이 끝장이 났습니다. 8년째 되던 해, 기드온 부자는 집에서 의논했습니다. “이 바알이 정말 신이 맞기는 한 걸까? 만약 신이라면 왜 아무런 효험이 없을까? 처음에 우리가 이 바알을 모셔왔을 때는 돈 버는 데 꽤 도움이 되지 않았던가! 밀이 자랐을 때도 다 내다 팔 수 있었는데 말이지.”

기드온 부자는 말했습니다. “우리도 참 어리석었다. 이것은 진짜 신 같지가 않다. 우리가 잘살려면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우리가 잘못 생각했다. 바알을 섬겨서는 안 된다!” 그들의 논의는 봄에 씨를 뿌릴 때부터 가을 추수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가을 추수 때가 되어 미디안 사람들이 들이닥칠 때가 되자,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속은 온통 복잡했습니다. 이 밀을 다 타작해 보았자 결국 누구 차지가 될지 알 수 없었기에, 마음속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기드온과 요아스는 우상에 대해 회의를 품기 시작했고, 과거 드보라가 40년 동안 평안을 누리게 해 주었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지금 우리는 왜 또다시 먹고사는 일에만 빠져 미디안 사람들에게 이렇게 처참하게 짓밟히고 있는가? 야빈의 일도 바로 얼마 전의 일이지 않은가?’ 제가 묻겠습니다. 개혁개방 40여 년의 세월도 바로 엊그제 일 같지 않습니까? 기드온과 요아스가 드보라를 기억하고 있었을까요? 그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기드온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해 주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는 밀을 타작하면서 속으로 끊임없이 묵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택하시기 어렵습니다. 비록 여러분이 우상을 숭배하던 사람일지라도, 하나님께 부르짖기만 하면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자신이 연마한 무술 실력이 꽤 뛰어나지만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무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미디안 사람들을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언제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덧입어 옷니엘이나 에훗이나 드보라처럼 큰 용사가 될 수 있을까? 언제쯤 나도 그들처럼 될 수 있을까?’

기드온이 그런 생각을 품자마자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집 상수리나무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과 대면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갈망하지 않는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결코 그런 말씀을 하실 리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처럼 온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이 되기를 갈망하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드온은 거의 반년 동안 갈망해 왔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그는 줄곧 ‘나는 참 하나님을 섬기겠다, 참 하나님만을 받들겠다’고 다짐해 왔던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기드온과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그런 상태였음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기드온을 죽이려 할 때 요아스가 했던 말을 보십시오. 요아스가 그날 불쑥 그 말을 생각해 냈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다투느냐 너희가 그를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다투는 자는 아침까지 죽임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의 제단을 파괴하였은즉 그가 자신을 위해 다툴 것이니라 하니라 (사사기 6:31)

이 말은 이미 반년 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말이었습니다. 기드온은 그의 아버지 요아스보다 조금 더 앞서 있었기에,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간절히 갈망했던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자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대개 반년 동안 마음속으로 준비한 끝에 떠납니다. 우리 가운데도 지금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누군가 교회를 떠나려 하는 것이 보이면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보십시오, 교회를 떠난 사람들도 다 잘살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저는 그 사람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는 것이지, 굳이 도덕적으로 그 사람을 옭아맬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전화를 걸어 여러분을 괴롭히지도 않을 것이고, 도덕적인 잣대로 압박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위로해 줄 것입니다. 집에 우상을 하나 모셔 들여놓으면 참 편리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미디안 사람들의 손에 넘기셔서, 하나님이 보내신 대적들을 섬기게 하신다면, 그때 가서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어쩌면 기드온 같은 직분을 하나 얻게 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러니 참으로 흥미로운 일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사사기 6:12)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사사기 6:14)

하나님은 참으로 유머러스하십니다! “너의 힘으로 가라”고 하시니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잘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군가 그분을 알기를 얼마나 갈망하시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나타나시기를 얼마나 바라시며, 사람이 일어나 그분이 사용하시는 그릇이 되기를 얼마나 갈망하시는지 모릅니다. 그 이유를 아십니까? 기드온은 비록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에 얽매인 마음이 있었지만, 동시에 미디안 사람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는 사명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한편으로는 씁쓸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찾고 찾으셨으나 결국 기드온 같은 사람 하나밖에 찾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찾고 찾으셨어도 옷니엘이나 드보라 같은 사람을 찾지 못하셨는데, 그런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도토리 키 재기 하듯 찾다 보니 결국 기드온 하나를 찾아내셨는데, 그 집안에는 바알 우상마저 버젓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가끔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동역자 중 어떤 이들이 제게 “목사님, 요즘 근심이 많아 보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정말로 근심이 됩니다. 하나님! 주님의 백성을 일으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기드온처럼 형편없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이제는 갈망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저 자신의 작은 삶을 영위하는 데 머무르지 말고,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지도자가 되기를 갈망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목양입니다! 그 시대에는 이 정도 수준의 목양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기드온을 택하셨을까요? 기드온은 누가 참 하나님이신지 검증하고 탐구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은 아버지 요아스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며, 집안에서도 일정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과연 누가 참 하나님이신지 깊이 확인해 보고 싶어 했습니다. ‘바알이 신인가? 아니다. 바알은 신이 아니며, 오직 우리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미디안의 손과 압제에서 구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기드온은 시험해 보기를 좋아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그분을 검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검증을 마쳤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계십니까?

잘 검증해 보십시오. 절대로 하나님을 상대로 해괴한 짓을 벌여서는 안 됩니다. 그 해괴한 짓이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그저 돈만을 구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돈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는 극히 적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습니까? 이 도시에 제 친구 중에 대단한 부자가 한 명 있습니다. 그의 동생이 암에 걸리자 그는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결국 동생은 죽었고 집안의 회사마저 무너졌습니다.

돈으로 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돈을 더 많이 쏟아붓고 최고급 약을 쓸수록 더 빨리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기를 쓰고 돈만 벌려고 합니까? 기를 쓰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좇으면 안 됩니까? 기를 쓰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안 됩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누가 참 하나님이신지 검증해 보아야 합니다.

6. 하나님은 사람이 참 하나님이신지 시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신다

여러분이 정말로 그분이 참 하나님이신지 검증해 본다면, 여호와 하나님이야말로 참 하나님이시며, 크고 능력이 많으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두 손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며, 여러분의 작은 생명 또한 능히 붙들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의 문제만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영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의 삶에만 소망을 둔다면 죽은 자보다 더 불쌍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대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이 그분을 시험하고 검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기드온은 우상 숭배를 통해 꽤나 잘 훈련되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사실 매우 진지합니다.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났을 때, 그가 하나님과 나눈 대화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사사기 6:13)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기드온이 그에게 말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너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리라 하니라 (사사기 6:14-18)

이제 우리는 이분이 하나님의 사자인지, 아니면 하나님 자신이신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의 이 대목에서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오신 것입니다. 세상에! 기드온이 무엇을 하러 갔는지 보십시오.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사사기 6:19)

기드온이 돌아와 보니 하나님께서 정말로 거기서 그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바위 위에 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그가 예물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드린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하나님이 참 신이신지 시험해 보려 한 것입니다. 기드온은 ‘당신이 정말 이 고기를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 어디 한번 보자’ 하며 시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을 부으라 하니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사사기 6:20-21)

기드온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아! 이분이 참 하나님이시구나.”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사람이 시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우상을 숭배할 때도 우상에게 이런 식의 영적 현상이 나타납니다. 제가 예전에 보았던 무당의 굿판도 꽤나 강력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기드온은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 안에 믿음이 생겼습니까, 안 생겼습니까? 믿음이 생겼습니다. 기드온은 생각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의 사자가 내 제물을 열납하셨으니, 그분은 반드시 나와 함께하실 것이다.’

결국 기드온은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 우상을 모두 부수어 버렸습니다. 참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기드온은 하나님을 시험해 보기를 좋아했던 사람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정말 잘살고 싶지 않습니까? 제가 말씀드리건대, 하나님을 따르면 반드시 잘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잘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복되고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사는 것이지, 상장 회사를 세웠다가 결국 남에게 쫓겨 자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무슨 삶입니까? 참으로 비참한 삶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이 번성하기를 원하시고, 기쁨과 평안이 넘치며 능력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오직 하나, 바로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남에게 속거나 괴롭힘을 당하거나 빚을 진 사람들이 있다면, 그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시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기드온은 바알의 제단을 헐고 하나님의 제단을 새로 쌓은 뒤, 집안의 두 번째 수소를 끌고 왔습니다. 그 집의 소들에게는 번호가 매겨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곱 해 된 둘째 수소를 번제로 드리라.” 일곱 살 된 소라면 한창 힘이 좋을 때의 소입니다. 아마 첫째 소는 너무 늙어서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셨을 것입니다.

기드온은 대단했습니다. 두말하지 않고 그 일곱 살 된 수소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습니다. 요즘 소 한 마리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지금 소 한 마리에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이 훌쩍 넘습니다! 기드온은 참으로 대단하게도 그 귀한 것을 바쳤습니다. 그러자 다음 날 아침 성읍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바알의 제단이 파괴되었으며 그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제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것이 누구의 소행인가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이르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 이는 바알의 제단을 파괴하고 그 곁의 아세라를 찍어버렸음이라 하니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다투느냐 너희가 그를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다투는 자는 아침까지 죽임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의 제단을 파괴하였은즉 그가 자신을 위해 다툴 것이니라 하니라 (사사기 6:28-31)

결국 바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지나간 후 기드온은 유명해졌고, 사람들은 그를 ‘여룹바알’이라 불렀습니다. 기드온이 바알보다 더 강했던 것입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요아스의 이 한마디 말 때문에 온 성읍 사람들의 바알에 대한 믿음이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습니다. 원래 이 사람들도 속으로 의구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 바알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놈인가? 효험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그런데 요아스가 그렇게 말하자, 반년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섬기던 사람들이 이제는 바알더러 스스로 다투어 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백성들은 누구를 따르게 되었습니까? 기드온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언제 따르게 되었습니까? 미디안 사람들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돌 때였습니다. 집안의 곡식은 다 타작했는지, 다 거두었는지 확인하며 ‘곡식을 다 타작하고 거두었는데 미디안 사람들이 온다! 강을 건너려 하니 빨리 거두어 숨기자’ 하던 때였습니다. 이때 기드온이 기회를 얻었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형제들이여, 나를 따르라!” 하고 외치자 수만 명이 몰려왔습니다. 전쟁이 벌어지려 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어 싸우게 하려 하실 때에도 기드온은 시험해 보기를 원했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사사기 6:36-37)

기드온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미디안 사람들과 싸우게 하시려는군요. 미디안 군사가 얼마나 많습니까? 메뚜기 떼처럼 까맣게 뒤덮고 있지 않습니까.’

이튿날 아침에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사사기 6:38)

기드온은 여전히 표징을 얻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께 말씀드리건대, 우리는 엉뚱한 일로 표징을 구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까지 제가 아는 바로는 표징을 구하는 일은 매우 위험합니다. 왜 위험할까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에 대한 확증이라면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진 자인지 확인하려는 표징이라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 여자가 나와 결혼할 사람인지’, ‘저 남자가 나를 좋아하게 해 줄 것인지’ 따위의 표징을 구하는 것은 성경 어디에도 전례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드온의 믿음이 작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다행히 그의 믿음이 작았기에 저와 비슷합니다. 기드온에게 기회가 있었다면 여러분에게도 기회가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기드온보다 나은 편입니다. 여러분의 집에는 아직 우상을 들여놓지 않았지 않습니까? 우상을 모시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기드온보다 기회가 더 큽니다. 다만 누가 참 하나님이신지 부지런히 찾아야 합니다. 기드온은 “양털에만 이슬이 있고 다른 땅은 다 마르면 주께서 저를 보내신 줄 알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보니 정말 양털만 젖어 있고 다른 땅은 다 말라 있었습니다.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과연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사사기 6:39-40)

이로써 기드온의 믿음이 단번에 크게 자라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검증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시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이 시험의 배후에 있는 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 아주 작은 믿음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방식을 통해 여러분이 시험해 보는 것을 괘념치 않으시지만, 하나님께서 과연 이런 일을 진정으로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은 그리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에서 이런 일을 기뻐하셨다면 진작에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믿음을 갖기를 바라십니다.

7. 하나님은 사람이 믿음을 갖는 것을 더욱 기뻐하신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믿음도 믿음일까요? 이것 역시 믿음입니다. 하지만 절대로 이것을 돈 버는 일에 쓰지 마시고, 이성 친구를 사귀거나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일 따위에 함부로 쓰지 마십시오. 알아들으셨습니까? 쓰려거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쓰십시오.

하나님은 사람이 그분을 믿는 것을 더욱 기뻐하시며,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기에, 여러분이 시험하든 시험하지 않든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십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이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기 시작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다면 우리의 모든 염려를 내려놓고 강하고 담대해져서 이 세대의 축복이 되어야 하며, 그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평생이 이러한 악순환에 몇 번이고 다시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저 먹고사는 일에만 매달리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다시 우상을 섬기다가, 결국 원수의 손에 넘겨져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면 또다시 먹고사는 일로 돌아가는 것, 이것은 비극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곤핍하고 가난하게 만드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번성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분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진정한 목표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의 목표는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며, 그 외의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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