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주일에 저는 주님을 믿고 목회자가 된 이래 가장 전하기 어려웠던 설교인 “뱀을 집어 올리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는데, 참으로 큰 만족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또 가장 전하기 어려운 설교인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라는 제목이 주어졌습니다. 여러분, 이걸 어떻게 전하겠습니까? 설마 우리 이 작은 무리가 우리 교회의 형제자매들을 데리고 각자 작은 잔에 디프테렉스, 디디브이피, 살충제 같은 독약을 준비해서 “자, 하나 둘 셋, 마셔!” 하고 마신다면, 다음 날 저는 테러리스트가 되고 말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예수님께서도 그런 짓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도 “자, 우리 각자 ‘디디브이피’, ‘디프테렉스’, ‘그라목손’ 같은 걸 한 병씩 마시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지 않으신 일은, 제가 가르쳐 드리건대, 절대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독을 마시지 않으셨기에 이 일은 자칫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주제는 지난주보다 난도가 조금 더 높은데, 어떻게 전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 것이 아주 좋은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건물 위에 서서 뛰어내린다면, 기억하십시오. 2층에서도 뛰어내리지 마십시오. 2층에서 떨어져도 엄청난 고통을 당합니다. 3미터 높이의 사다리를 놓고 거기서 떨어져 본다 해도 목숨이 위험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것들을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층이든, 3층이든, 10층이든 뛰어내리면 목숨이 위험합니다. “어, 하나님의 손이 받쳐 주지 않나요?” 그런 게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간증을 하나 했습니다. 그가 고원 지대에 복음을 전하러 갔는데, 눈이 내리고 있어서 발을 헛디뎌 미끄러져 “쑤욱” 하고 굴러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마침 아래쪽에 바위 하나가 가로막고 있어서 다시 기어 올라왔습니다. 기어 올라와서 땅에 엎드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는 실제로 아무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가 스스로 뛰어내렸다면 진짜로 그 바위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저는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라는 말씀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이것은 표적입니다. 이 표적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표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함으로 나타나는 표적입니다. 그것은 표적이자 약속이며,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지극히 중요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터인데, 그것은 핵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2000년이 되기도 전에 세계 종말이 올 줄 알고 통조림을 잔뜩 사두었습니다. 세계 종말에 통조림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생수를 방 하나 가득 사두기도 했습니다. 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통조림과 생수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직 표적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이 기독교 환경 안에는 옥석이 뒤섞여 온갖 일을 벌이는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지금도 방주를 짓는다며 돈을 가로채는 사기꾼들이 있습니다. “내가 방주를 지으려 하는데 투자하겠습니까?” “어디에 짓습니까?” “윈난(云南)에 짓습니다.” 나중에 방주에 가야 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가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과정에서의 제3차 세계대전은 분명 매우 잔혹한 전쟁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핵전쟁이며, 물과 음식이 모두 오염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인을 치실 것이며, 어떤 독도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독도 우리를 해칠 수 없다니, 세상에,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전쟁이 발발하면 예수님이 곧 오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주님을 똑바로 믿어야 합니다! 반드시 똑바로 믿어야 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예수님의 눈에는 믿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면 큰일입니다. 자신이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해도 예수님이 인정하지 않으시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믿어야 할까요? 기억하십시오. 믿음의 열매는 표적입니다! 전통적인 논리는 믿음의 열매가 ‘생명’이라고 하지만, 아닙니다. 믿음의 열매는 표적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에 표적이 따른다면, 세상에, 여러분의 믿음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이 지극히 큰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 세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이런 믿음이 없다면 큰일입니다. 무슨 독을 마시든 날마다 마시게 될 텐데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 세대만 해도 유전자 변형(GMO) 제품 같은 것들 때문에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식품 검사를 해본다면, 검사가 끝난 뒤에는 감히 먹지 못할 음식이 수두룩할 것입니다.
어느 은사주의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 목사님도 귀신을 쫓아내고 방언을 말했습니다. 그분이 캐나다로 귀신을 쫓으러 가서는 마침 우리 교회의 한 자매님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그 자매님에게 말하기를, “와, 나는 매우 존귀합니다. 내 몸은 너무나 존귀해서 유기농 제품만 먹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그 먼 캐나다까지 가면서 유기농 제품을 한 자루나 짊어지고 가서 아침에 일어나 그걸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저도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맞이한 적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유기농 제품을 유난히 맹신하여 기계를 짊어지고 와서는 콩을 갈아 가루를 내고 있었습니다. 또 온몸에 병이 있고 암세포 수치가 초과된 한 자매를 맞이한 적도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컵에 가루를 여러 포 털어 넣고 먹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게 뭡니까?”라고 물으니, “건강보조식품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유기농 식품만 따져 먹고, 유전자 변형 식품은 안 먹고, 이것도 안 먹고 저것도 안 먹는 이 세대를 보며 생각합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유기농 식품이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까?
그러나 제가 믿는 것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저는 음식을 먹을 때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동안 독을 얼마나 먹었는지, 하나님이 나를 몇 번이나 구해주셨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해를 받지 않았고 지금까지 아주 건강합니다.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좋고 얼마나 강인합니까!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에서는 때로 사람들을 미꾸라지처럼 훈련시킵니다. 물이 조금만 있어도 살아나도록 말입니다. 또 청소물고기처럼 훈련시켜 말라비틀어진 건어물처럼 되었다가도 물만 조금 부어주면 다시 살아나게 합니다. 사람이 이렇게 훈련되면 얼마나 대단합니까!
성경에는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라는 약속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을 시험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결코 하지 않을 일은, 여러분을 데리고 각자 작은 병에 담긴 그라목손이나 쥐약을 한 병씩 마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을 다시 바로잡아야 하며, 결코 그런 짓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이들은 찬송가를 틀어놓고 디디브이피를 마시기도 하는데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 비소가 있는데 이건 됩니까?”라고 합니다. 네, 단번에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겠지만, 그러면 큰일 나지 않겠습니까?
독을 마셔도 결코 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이것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마침 어제 우리가 함께 식사를 했는데, 우리 사람들은 건강관리를 그리 따지지 않아서 참깨 소스 한 봉지가 있었는데 자세히 보지 않고 그냥 먹었습니다. 한 자매가 그것을 먹은 뒤 즉시 속이 메스꺼워지더니 곧바로 토해냈습니다. 토하고 나니 괜찮아졌고 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증명되었습니까? 증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제발 하나님을 시험한다고 밖에 나가서 유통기한 지난 식품들을 사 모으지는 마십시오. 그건 사서 고생하는 짓이 아닙니까?
오래전부터 저는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는 이 말씀을 믿어왔고, 정말로 믿었습니다! 어느 날 우리 집 강아지가 바퀴벌레와 모기를 잡는 살충제를 잘못 먹었습니다. 아이고, 얼굴이 퉁퉁 붓고 강아지 얼굴이 이빨을 드러내며 일그러지는데 정말 무서웠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사람이 무슨 독을 먹어도 해를 받지 않는다면, 우리 집 강아지는 어찌 되겠습니까?” 저는 우리 하나님이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시기에 강아지의 이런 모습을 보실 때 하나님의 마음도 제 마음과 비슷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물며 강아지가 독을 먹어도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실 텐데,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이 훨씬 더 긍휼히 여기실 것입니다.
저는 우리 집 강아지를 품에 안고 제 옷을 강아지 몸 위에 덮은 채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1시간 동안 기도했더니 강아지가 나았습니다. 저의 이 간증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 어떤 집은 소가 나았고, 어떤 집은 병든 돼지가 낫기도 했습니다. 제가 1시간 동안 기도한 후 옷을 걷어 올리자 강아지의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강아지도 이럴진대, 집안의 자녀들은 어떻겠습니까? 한 마리 강아지에게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이토록 풍성한데,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이렇게 좋은 약속이 있는데 왜 받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이렇게 좋은 약속이 있는데 왜 믿지 않습니까? 왜 굳이 하나님의 능력 있는 복음을 능력 없는 것으로 믿어버립니까? 여러분이 이 표적을 원치 않는다면 저는 원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표적이 따르리니, 곧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제 안심이 되십니까? 여전히 유기농 제품에 의지할 필요가 있습니까? 필요 없습니다.
오늘날 자신을 미꾸라지처럼, 저 청소물고기처럼 단련시키십시오. 그러면 핵전쟁이 와도 죽지 않고, 어떤 독극물에도 끄떡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목회자이든 성도이든 이미 다 아시고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불신과 악한 생각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우리 마음속의 더러움과 불신을 제거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마음속의 더러움은 우리의 수많은 질병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항상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 것은 맞지만, 여러분 마음에서 생겨난 독은 어디에 두겠습니까? 사실 하나님도 우리 마음속에서 나오는 그 더러운 것들을 지극히 해결해 주고 싶어 하십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오늘날 우리 몸에 생기는 병의 대부분은 우리 마음속의 더러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한동안 저는 참 혼란스러웠습니다. 기도만 하면 아이쿠, 왜 자꾸 트림이 나오는 걸까요? 제가 트림을 하고 싶다고 나오는 게 아니라, 기도를 많이 하면 저절로 나왔습니다. 당시에는 참 당혹스러워서 “이 트림이란 게 도대체 뭐지?”라고 했습니다. 출근해서 트림이 끅 나오고, 속에서 꾸르륵 소리가 나면 사람들이 “병원에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속에 더러운 것들이 많아서 밖으로 배출되려는 것입니다. 배출되지 않으면 그것이 다 병이 되지 않겠습니까?
어느 90세 된 어르신이 날마다 트림을 하셨는데, 트림하는 것을 너무 부끄럽게 여겨 병원에 가셨고, 병원에서는 약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서양 의약품이란 게 참 묘한 구석이 있는데, 어떤 점이 묘한가 하면 트림을 딱 멈추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이 참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이 의사를 만나 약을 먹고 트림이 멈추었다고 하더니, 3개월 뒤에 돌아가셨습니다. 트림은 멈추었지만 더러운 것을 속에 그대로 가두어둔 것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트림하고 방귀 뀌는 신학이 아니며, 그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아닙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결코 해를 받지 않는’ 신학입니다. 다행히 트림하고 방귀를 뀌며 더러운 것들을 배출하는 것입니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 제가 어떻게 사선을 넘길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그 자리에서 묵묵히 기도했습니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저 방언으로 기도했습니다. 세상에! 날마다 수백 번의 트림과 방귀를 뿜어내며 독을 배출했고, 저는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코피가 난다면 억지로 피를 멈추려 하지 마십시오. 왜 그럴까요? 더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성이 생리를 하는데 병원에 가서 “피를 멈추게 해주세요”라고 한다면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닙니까? 왜 그렇습니까? 더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각과 마음속의 더러움은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몇 년 동안이나 트림을 하는데, 머릿속의 더러움이 제거되지 않고 여전히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트림으로 나가도 다시 생겨나는 것입니다. 속에서 계속 이 더러운 것을 만들어내는데, 이것들을 배출하지 못하면 결국 암이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연구해 보니, 사람은 조금만 자극을 받아도 속에서 그 사악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괴로워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마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은 자기 자신을 더럽히는데, 정작 자신은 그것도 모른 채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으면 외부의 것은 결코 여러분을 더럽힐 수 없습니다. 설령 누군가 여러분을 저주하려 해도 저주할 수 없으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자기 속에서 스스로를 더럽히는 것이며,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니 남들은 여러분을 해칠 수 없습니다.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것은 자신이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항상 물어야 합니다. “내가 어떤 것 같습니까?” “당신 별로예요.” “내가 어느 부분이 별로입니까?” “이 부분이 별로입니다.” “그럼 내가 고치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대뜸 남과 맞서 싸우려 들지 마십시오. “당신 왜 나를 그렇게 봅니까? 왜 나를 존중하지 않습니까? 왜 나를 무시합니까?” 이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 남에게 당신을 무시할 권리가 없습니까? 당신이 그렇게 행동하는데 남이 무시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복을 받지 못하면 다른 모든 일이 꼬이게 됩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실질적으로 이론과 실제 양면에서 질병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여, 사람들이 고통을 훨씬 덜 겪고 돈도 많이 절약하게 해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오직 이 영적인 일에서만 시간을 아끼고, 유독 기도하는 시간만 아까워하는데,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풍성한 방언 기도는 지극히 큰 은혜입니다. 담대하게 자신의 더러운 생각과 뜻을 처리해야 합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병의 근원은 사람 속의 더러움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특정 장기에 쌓여 그 장기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음부에 가려움증이 생겨 매우 힘들고 고통을 겪는데, 왜 그렇습니까? 더러움 때문입니다. 속에 더러움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피부에 종기가 나서 독을 배출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간에 생기고, 신장에 생기고, 폐에 생긴다면 그중 어느 하나인들 목숨을 위협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사람이 이 더러운 것들을 배출하는 속도가 더러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병이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날마다 우리 속의 더러움을 제거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목사님, 오늘 설교는 무슨 독을 마시는 것에 대한 것 아닙니까?”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지만, 사람 속에서 생겨난 독은 스스로를 해칩니다.
10여 년 전에 우리 교회에 온 한 자매가 있었는데, 당시 건강보험 카드에 잔액이 모자라 매번 깨끗이 바닥이 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에 온 이후로는 보험 카드의 돈을 다 아끼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공감하십니까? 분명히 공감할 것입니다.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질병의 문제를 우리가 참으로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결코 해를 받지 않습니다. 그 자매는 식품 검사를 하는 직업이었는데, 저에게 검사 지식을 공유해 주었습니다. 듣고 보니 부추도 못 먹고, 셀러리도 못 먹고, 도무지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사실 음식이 만들어내는 독은 우리 내면의 더러움이 만들어내는 독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일부에 불과합니다. 마음속에 라오마의 영, 지옥의 구더기가 우리 속에 살면서 만들어내는 더러움은 실로 엄청납니다. 세상의 도덕관념과 이 세대의 풍속은 단 하루도 우리를 오염시키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의 이러한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영을 더욱 사모하고, 거울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모하여 평생토록 우리의 더러움을 씻어내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지만, 여러분 속에서 만들어지는 독은 사람을 해칩니다. 그러므로 유기농 제품 따위에 믿음을 두지 마십시오. 건강보조식품도 여러분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수많은 건강보조식품 전문가들의 수명이 매우 짧은데, 왜 그렇습니까? 이것저것에 전전긍긍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문제 해결의 근본이 아닙니다. 문제 해결의 근본은 믿음입니다! 문제 해결의 근본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표적이 따르며, 수많은 약속이 뒤따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사에게 물렸습니다. 그는 본래 로마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으러 가던 피의자 신분이었는데, 어느 섬에서 독사에게 물린 것입니다. 그 섬 주민들이 보고는 “아이고, 저자 조금 있으면 목숨이 끊어지겠구나. 독사에게 물렸으니 끝장났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자니, 그는 멀쩡하게 살아 숨 쉬며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만약 섬사람이 독사에게 물렸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시는 독이 아니라 독사에게 물린 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섬의 추장의 부친이 열병에 걸려 고열로 앓아누워 있었습니다. 추장은 바울이라는 사람이 독사에 물려도 멀쩡한 대단한 사람임을 보고,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에 바울에게 자기 아버지가 고열로 앓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그렇다면 내가 가겠습니다. 이것은 나의 전공입니다. 나의 전공은 독사에 물리거나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으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으면 낫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추장의 아버지는 나았고, 사람들은 바울을 신처럼 떠받들었습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왜 바울에게 임했을까요? 바울은 우리와 동일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와 동일한 사명(命定), 곧 교회를 세우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진 자, 하나님을 위해 사는 자,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 만민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는 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자에게는 반드시 표적이 따르며, 이러한 사람은 담대하게 살아가며 더 이상 어떤 독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저는 깊이 감탄하며 “하나님, 저도 이런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세상에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나 많고, 병원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 가서 줄 서지 맙시다. 그 줄을 서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제가 지금 무엇을 전하고 있습니까?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본문 말씀
지난주와 동일하게 본문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러분은 “목사님, 이 본문으로 참 오랫동안 설교하시는데, 이렇게 많은 말씀을 전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히 밝히 전하는 것이 진짜 대단한 것입니다. 자, 저와 함께 읽겠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4절부터 20절입니다.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아멘 (마가복음 16:14-20)
기도
하나님, 주님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다 일어나 주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주님의 은혜와 약속을 우리에게 부어주셔서, 우리가 나아가 주님의 복음, 주님의 순전한 복음, 주님의 능력 있는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이 세대에 주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주님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몸에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시고, 주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역사하사 따르는 표적으로 우리가 전하는 도를 확실히 증언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가 전례 없이 주님의 영광이 나타남을 보게 하시고, 주님의 크고 두려우며 능력 있는 역사가 나타남을 보게 하옵소서. 우리를 사용하여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시고,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배경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표적이 따라야 하며, 우리는 반드시 능력 있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능력 있는 복음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전하는 것은 기쁜 소식이지, 사도 바울이 그 섬의 추장에게 말로만 장황하게 설명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곳에 가서 손을 얹고 기도하여 사람을 치유했습니다. 우리는 단순한 종교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하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예수님은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이미 한 무리의 어리석은 자들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직설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대략 그런 뜻입니다. 믿지 않는 어리석은 무리들이 복음을 아무런 능력이 없는 복음으로 전락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러고는 “보라, 저 사람이 얼마나 주님을 잘 믿는가, 얼마나 생명력 있게 믿는가”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믿음의 열매가 표적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믿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표적이 따르리니, 곧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논증하신 바가 무엇입니까? 믿음과 이러한 것들은 필수적인 것이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보셨던 이 일들은 지난 수천 년의 교회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들어맞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이 말씀, 이 구절은 믿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표적이 따르지 않는데 이 성경 구절을 어떻게 전하겠습니까? 표적이 따르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까? 저는 참으로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한번은 인터넷에서 짧은 설교를 하나 들었는데 참 흥미로웠습니다. 그 목사님은 치유와 축사를 거의 하지 않고 귀신도 쫓지 않으며, 어쨌든 실제적인 사역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그에게 축사에 대해 묻고 치유와 축사에 대해 물었습니다. 교회 안에 치유와 축사가 없으면 매우 힘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종교적 교리만 전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귀신을 쫓지 않고, 치유와 축사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학파적이고 바리새파적인 입장에서 이론적으로만 여러분의 질문에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논리가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틀렸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들이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원하십니까?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정말 좋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원치 않는다면 저는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하셨으니 우리는 쫓아내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다들 주먹구구식으로 쫓아냈습니다. 저는 그저 믿었을 뿐이며 어떻게 쫓아내는지도 잘 몰랐지만 담대했습니다. “귀신 따위가? 내겐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마구 쫓아내도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니 마귀는 나갈지어다!” 마귀가 나가지 않으면 “마귀는 나갈지어다!”라며 귀신과 맞붙었습니다. 그때 영적인 지각(悟性)이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사실 지각은 별로 없었지만 무식할 정도의 뚝심이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사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단계의 일이지만, 정말 효과가 좋고 수많은 문제를 해결합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긍휼이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염려하지 말고 담대히 귀신을 쫓아내십시오. 예전에 제가 주먹구구식으로 할 때도 역사가 일어났는데, 이제 여러분에게 방법을 가르쳐 드리고 있으니 어찌 역사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대에 이 말씀과 이 약속을 회복시키고자 하시니, 우리는 이 약속을 취하면 됩니다. 얼마나 큰 복입니까!
믿지 않는 자들은 왜 표적이 없는지를 설명하며 표적이 지나간 시대의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믿지 않기에 이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고 “아이고, 이제는 없어졌다”라고 변명합니다. 그러면서 산 자의 복음을 기어코 죽은 자의 복음으로 둔갑시켜 “당신은 죽으면 천국 갈 수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들의 말이 기준이 아닙니다. 살아서도 믿지 못하는데 죽어서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도 믿지 못하는데 그가 무엇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자가 모세의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믿음, 구원, 표적 등 수많은 개념을 화인 사명 신학은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구원은 우리가 살아있을 때 누리는 구원이며, 참으로 실제적인 효력이 있습니다. 트림이나 구토와 같은 현상은 사실 하나님의 약속의 일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더러운 것들이 밖으로 배출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트림의 신학이 아니라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 신학입니다. 설령 우리 속에서 독이 생겨났다 할지라도 그것을 배출해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눈이 멀게 되는 것은 마음속 악한 생각에서 비롯된 독이 눈에 쌓였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이 독기(氣)가 속에서 꾸르륵거리며 밖으로 빠져나옵니다. 당뇨병은 췌장에 독이 쌓여 인슐린을 분비하지 못하기 때문에 혈당이 올라가는 것이므로 이 독을 배출해야 합니다. 암은 내면에서 생성된 독 때문인데, 기도하여 구토하게 되면 구토가 끝난 후 수많은 증상이 사라집니다.
제가 일전에 침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던 암 환자를 섬긴 적이 있는데, 기도하자 초록색 물질을 잔뜩 토해냈습니다. 얼마나 더러운 것입니까! 그러고 나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신기합니까? 오늘날 우리는 자신을 철저히 쳐서 복종시켜 고통을 덜 겪어야 합니다. 믿는 자는 어떻게 믿습니까? 바로 이렇게 믿는 것이며, 믿는 자에게는 표적이 따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 입술에서 고름이 흘러나온다면,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만약 신장이나 간에서 고름이 흐른다면 큰일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끊임없이 성장해야 합니다. 귀신을 쫓는 단계는 초급 단계이고, 방언을 말하는 것 역시 비교적 초급 단계입니다. 그러나 뱀을 집어 올리는 것은 조금 더 고급 단계로서 영적인 지각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앞선 단계들을 거쳐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 더 높은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는 단계가 되는데, 오늘날 우리는 아직 온전히 이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손을 얹기만 해도 병든 자가 반드시 나을 것을 믿습니다. 이 본문의 배경은 바로 ‘불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 복음은 독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수많은 질병이 바로 독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두통이나 위통은 모두 독 때문입니다. 신체 내부의 수많은 이상 증상이 독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것이 바로 의학적 검사를 통해 원인을 찾아내도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약속, 이 복음은 독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내면의 독뿐만 아니라 밖에서 마신 독이든, 뱀에 물려 들어온 독이든, 어떻게 들어온 독이든 모두 해결했습니다.
이 독은 특정한 느낌을 유발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 한 자매는 내면에서 게으름, 답답함, 낙심,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 등 매우 기이한 일련의 감정들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수많은 질병에 대해 저는 여러분을 탓하고 싶지 않으며 여러분에게 소망을 드리고 싶습니다. 수많은 문제는 두통이 찾아올 때와 마찬가지로 불쑥 찾아옵니다.
여러분은 분명 “아, 목사님이 저를 너무나 잘 이해해 주십니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이 모든 것이 귀신을 쫓아내고,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고,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과 귀신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귀신이 사람에게 붙으면 수많은 독을 뿜어내는데, 예를 들어 몸이 몹시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속에 독이 있기 때문이며 실제로는 몸에 귀신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독과 귀신은 사실상 한통속입니다.
풍성한 방언 기도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귀신을 쫓고, 방언으로 기도하며, 지각의 돌파를 이루고, 나아가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게 되면 더욱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만민으로 주님의 제자를 삼으라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만민으로 주님의 제자를 삼으십시오. 여러분이 전하는 것은 기쁜 소식이며, 건강과 번성, 사람의 전인적 치유와 질병의 치유를 전하는 참으로 복된 소식입니다. 여러분이 병원에만 의지하려 해도 병원에는 시장보다 사람이 더 많아 몹시 힘이 듭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독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약속의 앞부분에서 성경이 무엇이라 말씀하는지 보십시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마가복음 16:15-18)
그리고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때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고, 만민으로 주님의 제자를 삼을 때 이러한 약속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개인적인 수양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 교회 역사의 수많은 유명 인사가 비록 ‘이신칭의’를 외쳤지만, 그들은 교회관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즉 교회 안에서 사람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점차 무능해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두가 개인적인 수양으로 빠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 앞에는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훈련시켜 주님의 제자로 양육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제자와 성도들은 무엇을 믿습니까? 믿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표적이 따르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고,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다는 이 약속들을 믿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왜 표적이 사라졌는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교회의 기초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교회라는 간판은 걸어두었지만, 각자가 교회 안에서 홀로 도를 닦고 있습니다. 너는 나와 상관없고 나도 너와 상관이 없으니, 하나님의 임재를 보기가 어려워진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면 사울에게서 하나님이 떠나셨을 때 악령이 들어왔듯이,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면 악령이 찾아오게 됩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반드시 구원을 얻으리라
이 구원에는 무엇이 포함됩니까?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는 것이 포함되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 것이 포함됩니다. 화인 사명 신학에서는 ‘믿고 세례를 받는다’고 할 때 어떤 세례를 말합니까? 많은 사람이 물세례만을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러 오셨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성령 충만하여 방언으로 기도하고, 불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불세례란 성령의 불이 임하여 우리를 깨끗하게 태우시고, 우리가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한 번제물로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릴 때 하나님의 불이 우리 위에 임하여 우리가 거룩하게 구별되어 여호와께 성결하게 되는데, 이것을 온전히 드려지는 번제물로서의 ‘불세례’라고 합니다. 이 구원은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셨던 그 구원이며, 다리 저는 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며 걷게 하셨던 그 구원입니다. 과거에는 살아있는 동안 표적이 사라졌기 때문에 구원이 단지 ‘죽어서 천국 가는 것’으로 축소되었지만, 우리 화인 사명 신학은 마침내 이 복음을 ‘산 자의 복음’으로 회복시켰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은 후에 천국 갈 수 있습니까? 내가 죽으면 천국에 갈까요?”라고만 묻습니다. 살아있을 때는 귀신처럼 살다가 “목사님,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천국에 가셨을까요?”라고 묻습니다. “네, 가셨습니다”라고 답하지만, 사실 저도 모르는 일이며 그저 산 사람을 위로하는 말일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관은 ‘살아있는 동안 누리는 구원’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형제자매 여러분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구원을 누려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암이 치유되는 것이 구원입니까? 구원입니다. 당뇨병이 낫는 것이 구원입니까? 구원입니다. 맹인이 보게 되는 것이 구원입니까? 구원입니다. 오늘 이미 믿은 자들,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반드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믿고 세례를 받아야 할까요?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받고, 자신을 온전히 번제물로 드리는 불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구원을 받으면 독의 문제도 해결되고, 질병의 문제도 해결되며, 나아가 삶 속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살아있는 동안 번성함을 누리게 됩니다. 재앙의 문제 역시 해결되는데, 재앙 또한 귀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것은 산 자의 복음이며,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반드시 구원을 얻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표적이 따르리니
믿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표적이 따르며, 믿음과 표적은 즉시 나타납니다. 여러분이 표적을 행할 수 있는 것은 믿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저에게 “목사님, 표적만 너무 추구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표적을 추구한다고 표적이 나타납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실행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실천할 때 표적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어떤 표적입니까?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믿어 귀신을 쫓아내는데, 귀신과 뱀은 모두 독을 생성하는 존재들입니다. 우리 몸의 질병은 모두 독과 연관되어 있어서 독이 쌓이면 암이 되고, 각종 질환이 되며, 성인병(삼고)이 되는 등 다 독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주시고, 여기에 뱀을 집어 올리는 지각과 진리에 대한 인식이 더해지면 독을 이기는 천적이 됩니다.
우리는 믿는 자들에게 반드시 표적이 따른다는 것을 압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를 세울 때 하나님께서 표적으로 우리가 전하는 도를 확증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하는 도는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방언 기도를 통해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뱀을 집어 올림으로써 지각의 문제를 해결하여 귀신과 뱀의 천적이 되는데, 이 천적이 곧 독의 천적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끊임없이 누리기 시작하여,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으며 우리 속에서 독이 생겨난다 해도 그것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습니다.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반드시 해를 받지 아니하며
이 약속이 얼마나 좋습니까!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독이 체내에 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독을 마셨을 때 온몸으로 퍼지거나 독사에 물려 온몸으로 퍼지면 끝장납니다. 그러나 독을 마셔도 퍼지지 않고 한곳에 모여 있다가 토해내면 그만입니다.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결코 해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람 안에 거하시면 이 독이 퍼지지 못하게 막으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만약 귀신이 사람 안에 거하면 작은 독에도 쉽게 온몸으로 퍼져 어느 장기가 먼저 죽고 어느 장기가 먼저 중독될지 모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귀신을 쫓는 것은 영적인 영역의 일이고, 방언을 말하는 것도 영적인 영역의 일이며, 뱀을 집어 올리는 것도 영적인 영역의 일이고,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 것 역시 영적인 영역의 일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독을 마시는 문제는 육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육신이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결코 해를 받지 않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바울이 독사에 물려도 아무렇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트림이나 방귀, 구토, 식은땀 같은 현상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밖으로 배출되기만 하면 해결됩니다. 그래서 치유와 축사에는 더러운 것들을 밖으로 쏟아내는 증상들이 자주 동반되는 것입니다. 우리 화인 사명 신학은 트림이나 방귀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독이 우리를 해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참으로 복된 소식이 아닙니까? 참으로 복된 소식입니다. 믿음을 실천해 보시겠습니까? 불신이야말로 모든 문제의 걸림돌입니다. 왜 믿지 못합니까? 머릿속에 세상의 것들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표적이며, 표적이란 하나님의 행하심이요 영에 속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붙들어 주셔야 하며, 물리학, 화학, 생물학의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아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멘!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여러분이 지혜롭다면 영적인 법칙을 믿을 것이요, 세상적인 법칙을 믿는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세상의 법칙에는 능력이 없으며, 그것은 물리학, 화학, 생물학 같은 과학적 차원, 물질적 차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학적 차원에서 우리가 믿는 복음은 지극히 능력이 넘치며, 이 복음은 본래 하나님의 큰 능력입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큰 능력을 전파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아멘!
여러분의 믿음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몸에 병이 있다면 그것은 독의 문제입니다. 그 독이 마신 것이든, 먹은 것이든, 우리 내면의 더러움에서 생겨난 것이든, 여러분은 반드시 치유받을 것입니다. 이 단계를 통과하여 다음 단계로 나아가면 여러분도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어 낫게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고, 손을 얹으면 병든 자가 낫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영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일으켜 세워 이제부터 능력 있는 복음을 전파합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주님의 표적으로 우리를 따르게 하시며, 우리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표적을 취하여 우리가 전하는 도를 확증하게 합시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위해 지극히 큰 은혜를 예비해 두셨으며, 그 은혜는 바로 표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