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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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天的《箴言》书讲得我自己挺开心的,这个喜爱管教就是喜爱知识,恨恶责备就是畜类! 是不是骂人?其实是骂人。你说“你怎么还骂人?”《圣经》骂人我就骂人,大家别怪我,我念的是《圣经》。如果你说“你怎么骂人是畜生呢?”不好意思,我就照着所罗门的说了一下,我就在《箴言》书抄的。今天讲的《箴言》书12章,说句老实话,我准备这一段可费劲了,冥思苦想。我就发现写的这些话凑不到一起去,后来终于给它凑到一起去了,我心里就敞亮。
知识这个东西大家知道吗?知识是一个完整的体系,知识如果东一撇子西一划子,左一撇子右一划子,不成体系的东西它不是知识 。大家慢慢琢磨,它不是形成体系的东西,不是知识的话它不好用 。就是东抄一段西抄一段,把世界名著每一本书撕一页粘在一起,然后你说“这是我写的书”写的都是瞎说,驴唇不对马嘴。前面讲的是关公,后面讲秦琼去了,秦琼战关公就乌烟瘴气,它不是一个体系它不好用,然后武松也来,那就麻烦了!《水浒传》有宋朝、有唐朝、还有汉朝、三国的,它就乱套!所以说人不能这么干,你学数学就一整套数学,学物理就一整套物理,学什么都是一套一套的。
所以知识这东西不成体系,是人一辈子最严重的缺陷 。有很多人到了五十岁、六十岁、七十岁、八十岁,你说他活那么大年纪,但他里头没有知识那是很麻烦的。为什么我说他没有知识呢?因为他的知识不成体系。我给大家举几个例子,你会发现在各个学科,它都有一套自己的东西。比如说地缘政治,这个国际、世界的政治有一套地缘政治,地缘政治就是哪个国家挨着哪个国家,你会发现有矛盾的都是挨着的国家,没矛盾的都是挺老远的,八竿子都打不着。但是后来发现地球越来越小,然后就出现很多问题,所以就形成一个东西叫做地缘政治,如果你听新闻会发现有这种地缘政治。
为什么会打仗呢?因为地缘政治就导致了它必然形成的战争,为啥?它形成了知识体系,用这个知识体系里面的规律来一看,这是必然的规律!所以像基辛格就写了一本书叫《On China》,就是《论中国》,他把中国论得挺详细的。还有一些人写了一些书,我读的是英文的,我不知道华文,翻译过来大概是人被地理位置给囚禁了。比如说阿富汗是一个地方,它那个地方必然成为这样的状况。所以这些书论述的这些东西,咱也不知道,咱也没仔细研究。但是我知道很多东西的知识是成体系的。数学非常明显。学数学是学数学的方法;学文学是学文学的方法;学哲学是学哲学的方法;学工程是学工程的方法。我今天想说什么呢?咱们读《圣经》一定要读成体系。你会发现,我在讲《箴言》书12章的时候,我讲的是把它形成体系。很多人非常佩服这种牧师,就拿《圣经》里的一句话讲了三天,这东西挺要命啊!他不是在讲《圣经》里的东西,是在讲他自己哪。
所以你会发现命定神学讲了一个非常重要的概念,不是把《圣经》肢解开来读,而是把《圣经》集成在一起读,读成一个体系。从《创世纪》到《启示录》,我们把它整合出来一个体系,我们把它叫做命定神学。命定神学是谁开启的呢?是亚伯拉罕开启的。所以这个事是综合来看。
昨天有一个牧者来问我。老师,什么叫片面地、孤立地看问题?片面地、孤立地都是典型的没有整体观念,只见树木不见森林。今天读《圣经》,我在《箴言》书12章是一个完美的体现。什么东西怎么把它串起来,人家作者写这个不是一拍脑袋瞎说的。所以说今天咱们千万别片面地、孤立地、静止地看问题。
咱们今天《箴言》书12章就在讲这个。当我们把它串起来,整体一看,读得脑袋老清楚了。我中间再加点故事,这就是学习的方法。如果我把大家都能训练成一个会学习的人,就像我这样的学习,学着学着明白,人活着这事是这样,是那样,人就变聪明了。人变聪明了以后,你就会去牧养,你就会不断地成长,你就会成为一个大人,一边学,一边做;一边做,一边学。所以我说的意思很重要。
多少的基督徒只会片面地看问题。当代的法利赛人比耶稣年间的法利赛人还多。什么叫法利赛人?就是片面地、孤立地看问题。他怎么片面呢?他不管神的心意如何,他就守安息日。结果写了一本书,叫《守安息日》,一千多页。这样就叫守安息日,那样就不叫守安息日。
所以到了耶稣年间,他们就照着以色列人发明的东西,走两里路还是走一里路,全是这些事。是那么回事吗?如果是的话,摩西早就告诉咱们了。他们把守安息日这事孤立来看,他们不是把《圣经》整合起来看。一整合一看,讲的老清楚了。
所以今天你不想做法利赛人,很简单,就整体来看《圣经》。孤立地、片面地、静止地来看《圣经》是很要命的事。
【问题】1、老师是不是当别人说起自己的问题,就开始反思自己就是受管教的那一种?
答:对了,听了以后要感谢人家。这个事做起来不容易,包括我自己都不容易,我们常常认为自己没整对就容易了。如果人一旦认为自己整得对、完全对、绝对的对,你怎么能够听进去别人讲的呢?那就是不受教,关于受教《圣经》里早就告诉我们要有一个受教的耳朵,要听得进去!
【问题】2:老师,心理学喜欢找人原生家庭的问题,有的基督徒也喜欢面对服侍的人听他的倾诉,很多时候就是听他本人哭诉,从小到大受尽父母虐待、管教,感觉听的人对他心生怜悯,还认为是圣灵带领,听了老师的课感觉应该调整的是他自己,可是他本人有严重的癌症、抑郁症等类的疾病,又很担心说真话让原本虚弱的他接受不了,病会更加严重,这是我单方面的想法,我该怎么把握这个度呢?
体贴肉体与属灵智慧的抉择
答:听你说这话里面带出来的东西,我看那个人癌症怎么服侍已经不重要,你这个人比较重要。为什么得癌症?就是因为受了咒诅,为什么受咒诅?因为自以为是也不听管教,然后里面识别善恶,又体贴肉体,里头还有一肚子的怨气,又自尊心很强,反正是一大堆的活不好的毛病在他身上都有。无知愚蠢到了离谱的地步,虚病就变成了实病。什么抑郁症了,癌症了,反正就是一大堆的这些问题!你问的问题我先跳过去,先说这些服侍的人,研究什么是原生家庭?你会发现我从来不讲这玩意。那纯粹的垃圾,我在《圣经》里头找不到。那些东西就是说:这个人他变成这样是有原因的。有原因没原因这都不重要,重要的是我们自己决定要做一个什么样的人!
你要不要做一个癌症患者啊?你要想做癌症患者,我祝你好运!你要不要做一个忧郁症呢?要,我就 祝你好运!你要不要招点鬼来啊?那招点鬼来好啊!你就自己慢慢招吧,一招就来了!问题是说啥呢?问题是这个人变成了这样,咒诅已经很深了。就你这个问题本身我就觉得,你里面有强烈的体贴肉体的观念。他本身就体贴肉体咱们再体贴他,我看就把他往死里体贴吧!还不如不服侍呢!你在服侍他的时候,他在一边说一边哭,你就来了一句:“就是啊!他怎么能这么对待你呢?就是啊!”完了,你也沾染了咒诅,为啥?你也是个体贴肉体的家伙。你如果体贴肉体,我今天要告诉你:咒诅也不会放过你!病会更严重,什么叫病更严重?难道不解决他的根本问题吗?当然了,人家让你解决咱就解决,人家不让你解决,咱解决啥?反正我是不管,如果让我服侍我就好好服侍,我把真话告诉他,听得进去就听,听不进去就拜拜!
把握什么度?体贴肉体把握什么度?“来,大家帮我答一下,体贴肉体把握一个什么度?要体贴到什么程度?”奇怪了,你自己好好琢磨琢磨,我希望你的牧者好好整整你,你里面的东西太脏了。可能从前继承下来的东西太多。今天还没有整好。我今天鼓励你好好学习,把握什么度,都是错的。体贴肉体没有度,体贴肉体都是错的!就是不体贴肉体,治死肉体就对了。这是你单方面的想法,你要先调整下自己,把神的道整明白。我怕你不是得罪了这个癌症患者,我怕你得罪神。你怕得罪癌症患者,你竟然不怕得罪神吗?基督徒浑的可多了,到今天我也改不完。这不是神的话,回到神的话,看神怎么说。
【问题】3:老师,贻羞的妇人如同朽烂在他丈夫的骨中。贻羞是啥?
答:贻羞就是丢人,净做丢人的事。我就不解释那么多了。
【问题】4:老师,我知道自己识别善恶的问题,也不想继续识别善恶,但是一整就钻牛角尖。烦死自己了。应该怎么办?
答:需要释放,那里有鬼,鬼已经辖制你很多年了。
【问题】5:老师。现在有一个词叫做职场PUA,指的是老板对员工的精神控制,以达到唯命是从的效果,如果觉得丧失员工有职场PUA倾向,是因为员工自己识别善恶的原因吗?
管教与顺服的智慧
答:其实控制不控制这事不重要。你如果选择被控制,为啥被控制?因为他释放了很多听起来似乎合理的东西。为什么要控制人呢?因为要让他们好好做工,精神控制,要达到什么效果呢?达到唯命是从的效果,如果我们愿意唯命是从,又不被控制可不可以呢?如果你是愿意唯命是从,不是被控制唯命是从,我愿意听老板的话,老板让我干我就好好干,老板没有安排我干的,看到活没有人干,我也把它干了。老板还需要控制你吗?老板就不需要控制你。
如果这是一头驴,平时好好拉磨,好好干活,干的平时比别的驴还多。我问你,那个主人需要给你套上那些东西吗?如果这个牛也是个很听话的牛,需要给牠套上牛鼻环吗?就不需要。我想今天咱们弟兄姐妹,一定要做一个什么样的人,做一个自主的人。什么叫自主的人?不是一个奴才被套上嚼环,然后那个鼻环套着,牵着绳一牵才走,不牵不走。做一个什么呢?别做一个奴才,做一个自主的员工。
老板让我干的我好好干,老板没让我干的,我也给它干好了。我告诉你老板根本不管你了 ,为什么需要管你?你是一个奴才,不管不是要造反不上天了。所以说,我想大家一定要不断的提升自己,在神面前不要做一个奴才,要放嚼环管着,拿皮鞭抽着。也不要在企业里做一个奴才,在企业里头就像算是一个员工比老板还上心,我问你谁会控制你?没有人控制你,也不需要控制。
【问题】6:老师,女儿很容易玻璃心,每当说一些纠正她做法的话,她听了就很容易哭,该怎么管教?
答:过了管教的年龄就麻烦了。小孩就要不断的教训,督责、教导、训斥、监督,责备。她得习惯,她没有这个习惯其实就很麻烦。从2,3岁就没有养成这个习惯,到了7,8岁就麻烦一点,那一过了十岁就非常麻烦,然后一到了12,13岁就几乎没有机会了。越往大教导的东西越多,如果你不会教,你自己讲的东西都不上道,让孩子听起来他怎么可能听得进去呢?既要有威严同时也要有道,逐渐让孩子学会又尊荣又敬畏,这就叫管教,好好的管教。孩子得愿意顺服,又佩服爸爸、妈妈,不是一种毫无道理的责打。尤其是爸爸、妈妈每一次做事不上道,这对孩子来讲都是你形像也叫人设彻底的崩塌。
如果你的形像在你孩子心目中彻底的崩塌,你就完全没法管了。所以说,做父母的还得学会做父母,连孩子的父母都不会做父母,怎么管孩子?从小就要学会管,这是一个很深的话题,一句话两句话讲不清楚,我就把最关键告诉你。小孩哭是啥?小孩哭我告诉你是要挟。有一个两岁的孩子一整就哭,在我办公室里天天哭,唉呀!哭得他爸他妈整不了,我说我来管一管,我管完了,不哭了!我说:你想哭,是吗?容易啊!我这有个墙角,你就对着墙角哭,什么时候哭够了,你告诉我,不想哭了,你来找我。
管教与坚毅的智慧
结果我把他往那一放,哭吧!然后我该嗑瓜子嗑瓜子,该吃花生吃花生,然后他就在那哭,这小孩挺坏啊!他哭完以后回头拿眼瞄了我一眼,我接着嗑我的瓜子,我说:你哭又不是我哭,你看我做啥?你以为我在乎啊!我不在乎。问题是很多父母一看到孩子哭,完了!有的时候三十多岁的人在我面前哭,你以为我在乎啊!有的时候二十多岁三十多岁在我面前哭,那哭呗!哭啥?啥好哭的?有理啊?想哭!继续哭,哭够了咱再说。
我让你哭个够,结果这小孩哭了五分钟,不哭了!我说:咋不哭了呢?哭够了吗?他哭完了,他发现再哭下去也没有任何果效,没有人当回事,因为他以前以为一哭大家当回事,现在没有人当回事。哭!使劲哭,我还没听够呢!我就喜欢听,结果怎么着!不哭了!我说:过来!还想哭吗?不想哭!好!该干啥,干啥!该读书读书、想吃瓜子吃瓜子、想嗑花生嗑花生。
好啦!我说:我可警告你,下次再弄的话,还不行了呢!这次我原谅你!你可以停下来,下次是不能停的。到底谁厉害?当然我比较厉害啦!我肯定比他厉害,跟我玩邪的,我让你玩!他玩的过我?很多孩子可以掰过来,有没有掰不过来的?有掰不过来的,那再掰不过来的,我告诉你,我也有招,我整藤条,我把你屁股抽烂了,抽烂了再长,该抽的抽,该打的打,只有一件事,在我这没有机会。不但,管小孩这样,我管我的员工也这样,在我这没有机会。
这事说起来大家不够理解,这事背后就是一个要胁,记住啊!千万别被人家要胁住, 被人一要胁住就麻烦,那他手里有核弹,一整就来核弹,他的核弹就哭,他一哭你就腼,他每次哭好使,当然下次就哭,是父母不会做,听明白了吗?
今天咱们答疑就到这,有问题咱们下次再提,愿神祝福大家!弟兄姐妹再见!
1. 지혜로운 사람은 훈계를 좋아한다
관찰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 지혜로운 사람이다. 사람은 관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훈계를 받을 때 그 안에서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는지 관찰하면 점점 더 지혜로워지고, 점점 더 지식이 많아진다.
지식이 없고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사람은 관찰하지 않는다. 훈계를 받으면 욕하고 원망할 뿐이어서 점점 더 무지해지고, 점점 더 어리석어지며, 영원히 교훈을 배우지 못한다.
사람은 악한 습관으로 굳게 설 수 없다. 사람이 훈계에 순종하지 않으면 마음속에는 온통 비뚤어진 것만 담기게 된다. 훈계를 좋아하고, 책망을 듣고, 가르침을 받아야 지식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2. 훈계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사람이 훈계를 대하는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책망받는 것도 싫어하고 간섭받는 것도 싫어하며, "비굴하게"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결국 정말 비굴한 사람이 된다.
타고난 것은 별로 크게 쓸모가 없고, 후천적으로 얻은 것이 유익하다. 선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선한 사람이 아니라, 책망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사람이다.
부모와 선악을 분별하는 사람은 모두 어리석은 사람이다. 부모의 훈계에 순종하지 않고 어릴 때부터 부모와 선악을 분별하면, 자라서는 누구에게나 시비를 거는 사람이 된다.
3. 자존심이 강하면 앞날이 없다
왜 사람은 훈계를 받지 못하는가?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스승을 모시는 것은 아버지를 모시는 것과 같다. 자존심이 너무 강하면 조금만 지나도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제자가 될 수 없고,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자존심이 너무 강한 사람은 앞날이 없다. 마음에는 연약한 자존심으로 가득하고, 머릿속에는 허무하고 뜬 것들만 가득하다. 하늘과 땅을 원망하고 모든 사람을 탓하면서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으니, 결국 자기 자신을 옭아매는 올무가 된다.
4. 결론: 훈계를 받는 것은 생명의 길이다
훈계를 좋아하는 것은 지식을 좋아하는 것이다. 사람이 선악을 분별하지 않고 지식이 있으며, 겸손하게 가르침을 받고, 잘못했을 때 책망받을 수 있으면 아름다운 복으로 배부르고 생명을 누리게 된다!
도량이 넓은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본받고, 자신을 내어주면 하나님의 축복이 모두 당신을 통해 흘러나오게 된다. 당신의 평생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키워드
관찰하는 법을 배우기
훈계를 좋아하기
겸손하게 가르침을 받기
책망을 들을 수 있음
훈련을 받을 수 있음
연약한 자존심
생명의 길
지혜로운 사람은 훈계를 좋아한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잠언》 12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람이 《잠언》의 10퍼센트만 잘 흡수하고 실천해도 지혜로운 사람이 되지 않으려야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잠언》 11장의 주제는 사람 됨됨이의 결과를 자세히 관찰하라입니다. 관찰은 사실 배우는 과정입니다. 사람이 관찰할 줄 모르면 얼마나 어리석겠습니까! 관찰이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예를 들어 기도한 후에 목에 걸린 생선 가시가 사라졌다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이런 정도의 관찰력조차 없고,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평소처럼 살아가며 아무런 반응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점점 더 무지해지고, 점점 더 어리석어지는 것입니다!
《잠언》 12장은 사실 내용이 조금 뒤섞여 있어서 읽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이 장의 주제를 훈계를 좋아하는 것은 지식을 좋아하는 것이고, 책망을 미워하는 것은 짐승과 같은 것이다라고 정했습니다. 어떤 사람의 목에 생선 가시가 걸렸다면,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훈계입니다! 오늘 생선 가시가 걸렸는데도 반성하지 않는다면, 내일 또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큰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은 관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 일이 일어난 것을 보고 곧바로 이것이 훈계라는 것을 깨달은 다음, 잘 회개하고 훈계 속에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책망을 미워합니다. 처음부터 “왜 하필 생선 가시가 내 목에 걸렸지? 왜 다른 사람 목에는 걸리지 않았을까?”라고 원망합니다. 그러고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욕합니다. 결국 제대로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짐승과 같은 저주로 바꾸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지식이 없는 것은 정말 치명적인 일입니다!
어떤 자매는 어릴 때부터 훈계를 받지 않으려 했습니다. 훈계를 받기만 하면 마음속으로 불평했고, 자신은 옳고 부모가 자신을 학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이 지식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짐승처럼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몇 번이고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면서도 교훈을 배우지 못하고, 지식이 없는 데다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기면 더욱 치명적인 일이 됩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를 좋아하셨습니다. 저는 훈계를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타고날 때부터 부모님께 폐를 끼리지 않았습니다. 태어나서부터 울지도 않고 떼를 쓰지도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이불로 저를 둘둘 말아 온돌방 머리맡에 놓아두면, 방 안에 아이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해야 할 일을 하러 가시면 되었습니다. 타고날 때부터 훈계를 좋아하든, 나중에 훈계를 좋아하게 되든, 시작점이 낮든 높든 상관없이 훈계를 좋아해야 합니다. 훈계를 좋아하지 않고 책망받는 것을 싫어하면 짐승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평생 하늘 아버지의 훈계를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모든 사람은 훈계를 경험해야 합니다. 훈계를 받은 후 자신의 반응을 다시 살펴보십시오.
훈계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직장에 출근하는 일을 예로 들어 봅시다. 사실 많은 사장들은 한 사람의 기술이 어떠한지보다 인재로 키울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그 사람의 태도입니다. 사람의 태도가 나쁘면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일을 하는데 다른 사람은 15분이면 끝낼 일을 이 사람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끝냅니다. 사장이 분명 기분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사장이 “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이것밖에 못 했습니까?”라고 한마디 물으면, 이 사람은 곧바로 “뭐라고요? 제 흠을 잡는 겁니까? 아니면 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겁니까?”라고 반응합니다. 태도가 매우 나쁜 것입니다. 만약 그가 만난 사장이 좋은 사람이라면 그를 해고하지 않고 그곳에서 견습생으로 있게 할 수도 있습니다. 원래는 아주 좋은 배움의 기회였는데, 그는 그 기회마저 망쳐 버립니다. 이유는 태도가 나쁘고 너무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르침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화장실에 더 자주 가고, 다른 사람보다 식사 시간도 더 깁니다. 얼마나 미움을 사겠습니까! 바닥이 더러워져도 치우지 않고, 방이 어질러져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더럽힌 사람도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집에서도 일을 별로 하지 않고, 바닥이 더럽고 어질러져 있는 것을 보면서도 오히려 괜찮고 익숙하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는 퇴근하자마자 엉덩이를 털고 가 버리니, 어느 사장이 이런 직원을 좋아하겠습니까?
사람이 지혜롭다면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사장님이 나에게 기회를 주셨으니, 다른 사람들이 몇 시까지 일하든 나는 그들보다 두 시간 더 일하겠다. 어차피 집에 가도 제대로 할 일이 없으니까.” 어디가 더럽고 어질러져 있으면 가서 정리하고, 평소에 사장님에게 물 한 병을 사 드리거나 차 한 잔을 타서 가져다드릴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비굴한 일을 하기 싫다고 생각한다면, 결국 진짜로 비굴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고집만 부리고, 끝까지 짐승과 같은 사람이 되려 하는 것입니다.
선인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으려니와 꾀를 부리는 자는 여호와께서 정죄하시느니라. (《잠언》 12:2)
사실 이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선한 사람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훈계를 받고 책망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지식을 얻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되기를 선택하면 여호와의 은총을 받게 됩니다. 사람은 왜 꾀를 부립니까?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분명 이런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일을 했는데도 매를 맞았다고 원망합니다. 그것은 일을 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한 아이는 동북 지방에 살았습니다. 대학에 갈 때는 반드시 하이난섬이나 신장에 있는 대학에 가려고 했습니다. 부모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일수록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훈계를 이를 갈며 미워했고, 머릿속에는 부모를 미워하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대학에 간 후 부모에게서 멀리 떨어져 더 이상 훈계를 받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매일 먹는 음식이 부모가 해 준 것이라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부모와 선악을 분별할 자격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부모의 훈계를 미워하는 사람은 짐승과 같습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부모와 선악을 분별하는 자녀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부모를 미워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고, 훈계를 받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어느 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 그가 앞날이 있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나쁜 부모라도 자기 자녀가 잘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이런 사람이라면 오늘 당장 고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도 당신을 싫어할 것입니다.
어떤 부모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여권을 만들 수 있고, 캐나다로 날아갈 수도 있으며, 태어나자마자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 당신의 아이가 나타도 아닌데, 태어난 다음 날 바로 세 개의 머리와 여섯 개의 팔이 생기겠습니까? 설령 나타라고 해도 요괴일 뿐입니다! 많은 부모는 상처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아이를 어릴 때부터 다 키워 놓았더니 배은망덕한 자식이 되어 버렸으니 말입니다! 저는 정말 한탄스럽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를 도와 일하고도 매를 맞았다고 말하는데, 그 말 속에는 마치 자신이 가정을 위해 얼마나 큰 공헌을 한 것처럼 드러납니다. 일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아이는 세 살이면 심부름을 할 수 있고, 일곱 살이면 부모를 도와 밭일을 할 수 있습니다.
선인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으려니와 꾀를 부리는 자는 여호와께서 정죄하시느니라. (《잠언》 12:2)
어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와 선악을 분별하고, 자라서는 친구에게 시비를 걸며, 조금 더 자라서는 동료에게 시비를 겁니다. 하늘과도 다투고 땅과도 다투니, 온 사람이 시비를 걸기 좋아하는 왕이 되어 버립니다! 하늘을 가리키며 하늘을 욕하고, 땅을 가리키며 땅을 발로 구르고, 사람만 보면 침을 뱉습니다. 어쨌든 누구와도 다툽니다. 결국 무엇을 얻겠습니까? 짐승과 같은 사람일 뿐입니다. 훈계를 받기를 좋아하고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짐승과 같은 사람이란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 뱀이 얼어 움직이지 못할 때 농부가 뱀을 품에 넣어 따뜻하게 녹여 주었는데, 뱀은 은혜를 알지 못하고 농부를 물어 죽인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보기만 해도 밉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한다고 절대로 저와 시비를 걸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지식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식은 대학에서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대학에서는 이런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부모와 다투고 온 세상과 다투면서, 계속 다투다 보니 마치 온 세상이 자신에게 잘못한 것처럼 생각하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남을 해칠 꾀만 생각한다고 해 봅시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이 당신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겠습니까? 머릿속은 온통 무지뿐입니다!
사람은 악행으로 굳게 서지 못하나 의인의 뿌리는 흔들리지 아니하느니라. (《잠언》 12:3)
사람이 훈계를 받고 책망받기를 좋아하며, 간섭받고 책망을 듣고 훈련받을 수 있으면 지식을 얻게 됩니다. 당신의 뿌리는 곧 당신의 지식 체계이며, 사물에 대한 당신의 인식입니다!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고, 남과 다투는 것으로 살아간다면 잘 살 수 있겠습니까? 다투기를 좋아하는 악인이 되면 반드시 매우 힘들게 살게 됩니다. 남과 다투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면, 의인의 뿌리는 날마다 자라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해야 합니다. 사람이 훈계를 받고 책망받기를 좋아하면 그 기초가 매우 견고해집니다.
타고난 것은 별로 큰 쓸모가 없고, 후천적으로 얻은 것이 유익합니다. 제가 여러분과 함께 《잠언》을 공부하는 것은 여러분이 잘 반성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반성하고 나면 사람은 지혜로워집니다. 사람은 사실 깨알이나 티끌 같은 존재인데, 하루 종일 어리석게 이것저것에 시비를 걸면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에게는 지식이 있어야 하고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뿌리는 사람이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기초가 있어야 합니다.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어도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 같으니라. (《잠언》 12:4)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왜 평안하게 잘 살지 못하는 것입니까?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데 오늘도 다투고 내일도 다투며 평생을 그렇게 살아갑니다! 여자가 덕이 없으면 마음을 괴롭게 하지만, 남자에게 덕이 없어도 역시 마음을 괴롭게 합니다! 어릴 때부터 하늘과 땅에 시비를 걸 줄만 알고, 팔에는 왼쪽에 청룡, 오른쪽에 백호를 문신한 사람이 무슨 지식이 있겠습니까?
무지는 정말 치명적입니다! 훈계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입니다. 제가 그 사람이 일을 잘못 처리했다고 말했더니, 그는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제가 잘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동북 지방에서는 길을 가던 사람이 갑자기 뒤돌아 다른 사람에게 “뭘 봐?”라고 말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정해진 대사처럼 “너를 보면 안 돼?”라고 받아칩니다! 그러고는 두 사람이 서로 붙잡고 싸우기 시작합니다. 결국 한 사람은 머리를 몇 바늘 꿰매고 다른 사람도 머리를 몇 바늘 꿰맵니다. 이게 바로 괜히 일을 만드는 것 아닙니까?
의인의 생각은 정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속임이니라. (《잠언》 12:5)
머릿속으로 온종일 이런 나쁜 일만 생각하면 잘될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제가 길을 걷다가 실수로 몸을 돌리면서 어떤 사람과 부딪쳤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그 사람의 이마에는 칼자국이 가득했고 피까지 배어 나왔습니다. 생김새도 흉악해서 보기만 해도 무서웠습니다. 저는 ‘내 목숨이 당신 목숨보다 더 귀하니, 당신이 무릎 꿇으라고 하거나 사과하라고 해도 다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얼른 그 사람에게 허리를 굽히며 사과했습니다. 저는 그와 말다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돈을 조금 내놓으라고 해도 괜찮으니, 제 머리까지 그의 머리처럼 문신투성이가 되지만 않으면 됐습니다. 이런 사람은 우리가 건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끼리 평안하게 살면 안 됩니까? 어떤 사람은 한가하면 일부러 곰을 건드립니다. 그러다 곰을 화나게 하면 한 번의 앞발질만으로도 큰일을 당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무 일도 없는데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작은 나라는 작은 나라대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고, 큰 나라는 큰 나라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 있습니다. 작은 나라는 절대로 큰 나라를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큰 나라들이 서로 싸우지 않는 것은 힘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싸우면 양쪽 모두 다치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늘 문제를 일으키는 작은 나라 하나를 손보는 일은 아주 쉽습니다. 사람에게 귀한 것은 자기 분수를 아는 것이며, 나라마다 각자의 생존 방식이 있습니다. 어떤 작은 나라들은 자신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재빨리 방향을 바꿉니다.
악인의 말은 피를 흘리게 하려는 매복이거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잠언》 12:6)
온종일 남을 미워하고, 그 사람을 미워하는 데만 마음을 쓰며, 잘못된 사람을 미워하고도 자신은 알지 못한다면 이것이 바로 무지입니다.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 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마음이 굽은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 (《잠언》 12:7-8)
사람이 훈계에 순종하지 않고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면, 결국 마음속에는 온통 비뚤어진 말만 담기게 되어 지식이 전혀 없게 됩니다. 조금 지식이 있다고 해도 다단계 판매업자에게 배운 것뿐이어서 입을 열기만 하면 사람을 현혹하는 그들의 말을 늘어놓습니다.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매우 괴로웠습니다. 사람을 지식 있고 배울 줄 아는 사람으로 훈련시키기 위해 수없이 시도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때로는 정말 잠시 쉬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저는 오늘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함께 영적인 사람의 좋은 습관을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설교하는 것을 들으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전하는 《잠언》을 들어 보면, 그들은 구절을 하나씩 읽기만 할 뿐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듣고 나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존심이 강하면 앞날이 없다
비천한 자가 종을 부리는 것이 스스로 높은 체하고 음식이 부족한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 12:9)
사람이 훈계를 받을 때 사실은 자신의 자존심이 상한 것입니다. 사람이 그 얼마 안 되는 자존심을 붙들고 “선비는 죽을 수는 있어도 모욕을 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 훈계를 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자존심이 별로 없습니다! 저를 욕하고 한바탕 몰아붙여도, 심지어 제게 침을 뱉어도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이런 일에 반응이 둔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저를 능력 있는 사람으로 예비해 주신 것은 좋은 일입니다. 고생을 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아도 괜찮습니다. 저는 보통 사람보다 멸시를 받을 가능성이 높지만 괜찮습니다.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를 한결같이 따르는 형제자매들도 있습니다. 저는 자존심을 그다지 추구하지 않습니다. 자존심이 너무 강하면 지식을 배울 수 없고 훈계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국 고대에 스승을 모시고 기술을 배우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공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공자에게 배우려는 것은, 오늘날 과학원에서 과학원 원사를 따라 박사과정을 밟는 것과 같았습니다. 당시에는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스승의 발을 씻겨 드리고 요강을 비우는 등 이런 일을 자주 해야 했습니다. “하루 스승은 평생 아버지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존심이 매우 강하다면 견습생이 될 수 있겠습니까? 작은 한약방에 견습생으로 들어가서도 조금만 일하면 화를 내며 그만둔다면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사람은 절대로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의 작은 목회자는 진심으로 당신의 성장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당신의 자존심이 결국 당신 자신을 해치게 됩니다.
자기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 (《잠언》 12:11)
사람이 무지하고 자존심이 강하면 모두 허무한 것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평범하게 잘 살 수 있는데도 일부러 쓸데없이 일을 만듭니다. 자기 밭은 아직 갈지도 않았고 풀도 뽑지 않았는데, 머릿속에는 온통 허무한 생각뿐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여러분 모두를 제대로 된 일을 하는 사람으로 훈련하고 싶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자존심이나 복수 같은 것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들을 추구해서는 앞날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어느 순간 가을이 오면, 다른 사람들은 곡식을 거두는데 당신은 풀을 거두게 됩니다. 매일 풀을 먹고 살겠습니까?
악인은 불의의 이를 탐하나 의인의 뿌리는 결실을 맺느니라. (《잠언》 12:12)
악인은 날마다 훈계를 거부하고, 온종일 어떻게 복수할지, 어떻게 남을 해칠지 궁리합니다. 지식도 없고 배우지도 않으며, 노력하지도 않고 제대로 된 일도 하지 않습니다. 온종일 하늘과 땅에 시비를 걸고 모든 사람을 원망하니 매우 고통스럽게 살아갑니다. 결국 평생 짐승과 같이 살게 됩니다. 마치 아프리카 초원의 오소리처럼 평생 싸우고 있거나 싸우러 가는 길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올무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잠언》 12:13)
사람이 훈계에 순종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으면, 결국 자기 자신을 옭아매는 올무가 됩니다. 그가 입으로 하는 말도 사람을 세워 주지 못하고, 듣기만 해도 지치게 합니다. 제가 말한 것을 여러분이 다 들은 후에는 그대로 고쳐야 합니다.
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잠언》 12:14)
사람이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따라 입으로 무엇을 말하게 됩니다. 저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릴 때 어떻게 고생했는지, 자라서 누가 자신에게 잘못했는지를 마치 보물처럼 낱낱이 이야기합니다. 한 번만 들어도 이 사람이 어리석은 악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그가 말하는 것은 모두 한쪽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이 베푼 사랑을 미움으로 여기고, 자신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과는 반드시 무슨 일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선악을 분별하지 않고 지식과 학문이 있으며, 가르침을 받고 훈계를 받을 수 있고, 잘못했을 때 책망받을 수 있다면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배부르게 됩니다!
여러분은 자기 입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입을 다스리기 전에 먼저 마음속의 논리를 다스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열 가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사실 그중에는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일이 아흔 가지나 더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수없이 잘해 주어도 한 가지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모든 것을 없던 일로 여깁니다. 머릿속에는 그 좋지 않은 일만 기억합니다. 저는 이 세상에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는지 매우 놀랍습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잠언》 12:15)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한 말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가 말하는 것은 모두 허무한 것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지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악인의 올무이고, 입으로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잘못과 허물, 혹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어떻게 잘못했는지에 대한 과거 이야기뿐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의 말을 듣고 나면 역시 그에게서 조금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 모두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직 충분히 고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여러 번 훈계를 받아도 깨닫지 못하고 결국 이런 사람이 된 것입니다.
미련한 자는 당장에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잠언》 12:16)
온 세상 사람이 모두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습니다. 정말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잘못했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잘못했을 것입니다. 좋은 일은 모두 잊고 나쁜 일만 기억하니, 이런 사람이야말로 악인 중의 악인이 아니겠습니까? 《창세기》에 나오는 가인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를 말리거나 훈계할 수도 없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습니다. 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심각한 정신병에 걸려 환시와 환청을 겪고, 온종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피해망상증입니다.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하느니라.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잠언》 12:17-18)
사람이 함부로 말하고 지식 없이 말하면, 그 말은 쉽게 칼처럼 사람을 찌르게 됩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든 어느 곳에 가서 그곳의 언어를 배우게 되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한 지능형 로봇을 만들어 인터넷에서 언어를 배우게 했더니, 로봇이 입을 열자 온통 욕하는 말만 했습니다. 사람이 칼처럼 찌르는 말을 하는 것은 정말 능숙합니다. 어느 정도로 능숙하냐 하면 로봇조차 아주 빨리 배울 정도입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어린아이들도 싸우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싸울 줄 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지식이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진정으로 지식 있는 것을 배우게 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잠언》 12:19)
그러므로 칼처럼 사람을 찌르는 말은 한 번에 배웁니다.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이 있고 화평하게 하는 자는 희락이 있느니라. 의인에게는 아무 재앙도 임하지 아니하거니와 악인에게는 앙화가 가득하니라. (《잠언》 12:20-21)
왜 의인에게는 재앙이 임하지 않습니까? 조금 재앙을 당하더라도 곧바로 깨닫기 때문입니다. 한 번 고생하면 한 가지 지혜를 얻고, 열 번 고생하면 열 가지 지혜를 얻습니다. 왜 악인에게는 재앙이 가득합니까? 한 번 고생하면 어리석음 하나를 더 얻고, 또 한 번 고생하면 어리석음 열 가지를 더 얻기 때문입니다.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잠언》 12:22)
여호와께서는 거짓말하는 사람의 입을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그를 계속 저주하시고, 계속 귀신을 보내 괴롭히십니다. 귀신이 점점 더 많이 오고, 그가 그렇게 하면 할수록 저주도 더 많아져서 결국 평생을 망치게 됩니다.
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감추어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하느니라.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려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잠언》 12:23-25)
이 모든 것은 사람에게 지식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참으로 사람의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굽어 펴지지 않아 사람을 괴롭게 합니다! 이럴 때에는 한마디의 선한 말이 필요합니다. 훈계하고 깨우쳐 주면 마음이 기뻐집니다.
의인은 그 이웃을 인도하여도 악인의 소행은 자기를 미혹하게 하느니라.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 부지런한 자는 귀한 재물을 얻느니라. (《잠언》 12:26-27)
결론: 훈계를 받는 것은 생명의 길이다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 (《잠언》 12:28)
훈계를 받는 것은 생명의 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생명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그 체면과 자존심은 생명의 길이 아닙니다. 의로운 길에는 생명뿐만 아니라 참된 도리와 지식과 기쁨과 재물도 있습니다. 이것이 옛사람들이 말한 “책 속에 미인이 있고, 책 속에 황금으로 지은 집이 있다”는 뜻입니다.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고, 생명 안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길에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도량이 넓은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본받고, 자신을 바쳐 내어주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진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이 당신을 통해 흘러나와 많은 사람이 당신으로 인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부족할 수 있겠습니까? 이 길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잘 깨달았다면 돌아가서 잘 실천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