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摩西在红海边,一边坚定百姓的信心,一边求告神,百姓是否看到了摩西的软弱?
这真的不清楚,但我相信应该是没有看到,因为我也经常这样,后来发现慢慢熟悉了以后就不这样了。哀求不是合神心意的做法,这是很有意思的事。早期在建立教会,教会面临极大的挑战,其实我的信心是在崩溃的边缘,虽在崩溃的边缘,但我建造弟兄姐妹的信心,传递异象传递梦想。我讲的挺厉害,跟摩西讲的差不多,就像摩西说,大家站住!不要作声!耶和华必为我们争战!心里头其实很软弱,他们都没有看出来,你当时有崩溃吗?
他们走了以后,其实我眼泪都快下来了!就是软弱,但是神不会因为我们软弱然后就怎么着,我们软弱不是很正常吗?越软弱越信靠神,后来慢慢就不太愿意哀求了,因为哀求对神不尊荣,哀求不像与神同行的状况。后来我就研究这事,《圣经》说,我们活着活着就开始成为神的仆人,再活着活着就成为神的朋友,再活着活着就从神的朋友变成神的儿女,原来是这样!
仆人是哀求,做了好朋友,就勾肩搭背说说笑笑,我给他讲笑话,他也给我讲笑话。虽然是朋友,但也不是没有尊荣,要知道神是神,后来神把我们当成朋友,我们晋升到神的儿女。你想神的儿女在神的家中出入不自由吗?出入自由了,完全进到神的心意里,做的就是神儿女的事。所以这个时候的摩西刚出道不久,还是挺软弱的,但是以色列的百姓应该没看到。
Q2:到了学期末,因为前面时间没安排好,事情变得非常多,心里有些烦乱。但听了查经以后,我也相信神会为我争战。我要如何落实?心里一直紧张,一直想着有很多事情要做。
这个事情挺有意思,我们总觉得自己得做点什么,然后结果才能怎么样。很多时候我遇到的事情,简直是超出我的想象和我的智商了,我也无法理解。前一段时间,我跟大家说过我们当中一位博士本来不能毕业,后来可以毕业的事情。导师当时都说不能毕业,后来怎么就能毕业了呢?因为是神做的。
还有一件事,我们教会最早期的时候,从不祷告的教会变成祷告的教会。当时聚会一结束,我就看台下的那些弟兄姐妹们嗖的一声就跑了。我当时想着从台上下来,找他们聊,结果就不见人影了。后来想明白了,怕我把他们留下来参加祷告会。当时心里还是挺难受的,我心想,你需要我的时候,我摆上;我需要你的时候,你脚底抹油溜了!这群忘恩负义的小子们,下次轮到有机会的时候,我一定要拿他们一把,当时心里很不舒服。再过了一段时间,有人居然留下来祷告了。我很诧异,这是太阳从西边出来了?
结果对方一开口,就让我为她祷告,一把鼻涕一把泪的。因为她好几科的考试全考砸了,考砸一科就得交补考费补考,还有其他的费用,那都是真金白银的钱啊!对方扯着嗓子,让我为她祷告:牧师啊,为我祷告,我考试全考砸了。我就趁机损她一把:考砸了,这还能怎么办?你考试之前怎么不来呢?考试之前不是还觉得自己挺行的吗?当然,我后来还是为她祷告了,神奇的事情就发生了。这一祷告,等成绩出来的时候,居然都及格了!这让人太费解。如果人不考砸,能来教会祷告吗?
后来又一位姐妹来了,也是考砸了,也是问我能不能为她祷告,我答应了。等成绩一出来,成绩还不错。我说我的神啊,你也太神了吧!所以别慌乱,你说我要做什么?其实你不用做什么,就按部就班的能做什么就做什么。我服侍过很多这样的人,脑袋容易乱,脑袋里面没有层次,没有顺序,觉得有很多东西。之前做着做着,越做问题越多,为啥呢?
因为第一天的课没有好好听,在复习上一个学期的;第二天就复习昨天的;再过一个礼拜就复习上一个礼拜的,再到下个月就复习上一个月的,等到期末一结束的时候才发现,整个一学期都没好好学。就好比在我们中国有一些生多了的小猪崽子,该喝奶的时候,分配不过来,不够位置,所以有一些小猪崽子们就老也赶不上喝奶。如果学习的时候你成了这种状况,你就麻烦了,总是在赶前面的旧债。前一段时间,我看这位姐妹还在赶上一个学期的旧债呢,这都是错误的学习方式。
错误的思维方式带来的问题会越来越严重,就算如此,耶和华神仍然可以为你争战,你也可以不用担心,但是你得解决你这种坏习惯。你这坏习惯不解决,可怎么办啊?最近咱们不断地推动学习,我发现有很多人不会学习。比如,问这个问题的姐妹很需要学会学习啊!我也花了很多的力气在训练我们的牧者,几乎每一个牧者都要过一遍,必须学会学习。
结果我这么一整,我发现这种状况还是蛮普遍的,整天在赶,我得赶快赶上,结果没能赶上,我得赶紧赶上,又没有赶上,结果就到期末了。这种状况需要翻转,因为悟性上不是很清楚。如果是我来干,那我很清楚我应该怎么干,先干现在的,然后干过去的。如果现在的和过去的都干完了,我就干将来的,所以我解决的都是将来的问题,过去的问题我都解决了,我不留着 。
Q3:常有人挑战基督徒能不能把海分开给他们看,该怎么应对他呢?
你就问问他,看见埃及人死在红海里了吗?的确,红海在我们面前没有开,我却看见了红海淹死那些埃及人。然后,我告诉你,灾祸一定降临,让他知道耶和华是神。他不是在挑战基督徒,他是在挑战神,所以千万不要觉得我得开红海才能证明。就算开了又能怎么样呢?对方还能跳下去吗?你就问问对方,开了是不是你就要跳下去呢?你要跳我就开啊。你不跳,那我就不开。而且将来总有一天,你会看见海开了,你跳下去,然后被海水所埋葬的,就是你们这种挑战神的人。
对方一定会跟你嚷嚷,说你怎么咒诅他呢?谁让你问这种问题呢? 然后再补充一句,如果没有发生,你不用来见我,如果发生了,赶紧来找我,我会为你求神赦免你的过犯。其实这些人很怕咒诅的,但是闲着没事就遭咒诅。会回答了吗?我的回答比较绝,所以一般人不太爱理我。有一些牧师来找我理论,他也没法过我这关,他们说着说着都发现说不过我,按照他们的说法,他们就觉得我嘴太臭,太损了。那嘴巴不损能干得过鬼吗?说鬼话的人,你可以来我这里试试看。
Q4:老师,我的问题是怎么长记性,记得神的恩典?每次选择的时候都起来争战?
我告诉大家,其实长记性这件事情,是要靠常常数算神的恩典,因为我们一天不数算,我们就很快忘记。尤其是遇到困难的时候,更需要数算。我曾经面对弹尽粮绝,那叫一个惨啊,很惨很辛苦,账户里的钱只能活两三个月,然后还有很多的房贷车贷需要还。结果数算神的恩典,数算数算着,有一天神就告诉我,祂说六月份,你们家的房子全部都可以出租出去。真的假的?然后我硬生生熬到了六月份。
离六月份还有两个月的时间,要是房子租不出去,那简直就是闹心啊,还得还房贷车贷,那数目太吓人了。结果到了六月一号居然真的租出去了一间,六月三十号又租出去一间,租金都比市场高很多。因为那是人家走进来的,说的第一句话就是,谁也别租了,我租这个房子,不管这个房子什么价钱,我都接受。听着都觉得太神了吧,神就这么干。所以说,我们要常常数算神的恩典,你就会发现会有越来越多的恩典追随着你。
Q5:老师,最近神给我一份国企的工作,我做的就是人力资源。可是我的专业不符,也没有经验,我的领导把我放在业务前线。我心里有惧怕,不会接老板的话,完全不会掌握那个度,要么用力过度,要么畏畏缩缩,领导对我的态度也开始冷漠。我现在心里很多惧怕,感觉这种惧怕很像以色列人出埃及的时候。老师,我想知道,我该怎样看待这份工作,才不会惧怕?
因为我们把工作跟我们的生和死连在一起了,如果人连死都不怕,很多事就解决了。我告诉大家,我是个死都不怕的人。死都不怕的人,就是被海盗抓去了以后,就跟他们说:杀了我吧!想怎么整就怎么整,反倒事情好办了。我们人一旦想活,求生欲望很强,就会产生一系列的问题。这一系列的问题所带来的结果都不好。
所以我们在这种状况下不要怕,因为我在工作岗位上也有类似的状况。凡是我在工作岗位上无所畏惧,信靠我的神,我啥也不在乎,反倒越做越好。我在工作岗位上,越是在乎那个工作,越想把它做好,越想在老板面前表现自己,就越做不好。其实千万别把这事当回事,你说这个事能比博士毕业这个事更严重吗?不会,其实在神凡事都能。好好祷告,好好信靠神,然后不再惧怕,就容易解决了。
Q6:神从一开始就告诉以色列人会在埃及全军得荣耀,埃及军队来了,以色列人却以为神要使他们死在旷野。为什么扭曲神的话,没事的时候好好的,事情一来全慌了?我也常常会这样,问题出在哪里?
问题就出在信心。所以耶稣来了,常常批评他的门徒不信或者小信。人的信心其实是一个非常神奇的事,人没有信心是个悲剧。你说,我就是没办法相信。其实信和不信是我们的责任,是我们的选择。当我们一不信,一没有信心,很多问题就出来了。所以,一相信神,眼睛就不再惧怕困难;一敬畏神,就不再怕东西;一怕东西,就不怕神。所以说,人这一辈子挺悲剧的。常常害怕问题,就是不怕神。如果我们害怕神,敬畏神,生怕得罪神,就什么问题都解决了。就怕神不高兴,这不好办了吗?
Q7:一遇到困难才想神的恩典,没有困难的时候就不想神的恩典,就开始吃喝玩乐,忙于工作。我怎么天天记念神的恩典?
我发现很多人的脑子不好使。为什么脑子不好使呢?他不知道他干了这件事,对他会产生一个什么样的影响。比如,我们天天吃喝玩乐,然后神说,回来,好好祷告!没时间啊,然后又出去旅游。神说,你看,你都没为我拿过假期,但是你为了玩,却拿假期。那当然了!等后来发现山穷水尽,叫天天不应,叫地地不灵的时候。就说,神啊,救救我!神就说,我也要拿假期!
那怎么才能改掉这个问题呢?我告诉你一个很简单的方法,就是神做工。人啊,就是遇到的问题还不多。遇到这种状况,我说你都没有用。谁说你都没有用,只有神管教才有用。我是被神管教惯了,我就习惯了。我们一生怎么才能走正路呢?只有神不断地引导,神不断地管教。如果神不管怎么办?神不管可麻烦了,麻烦大了,我们就不是一个神的儿女。
Q8:传统教会的人不喜欢被问问题,因为会觉得被冒犯,然后教会悟性就不太成长。是吗?
至于是不是传统教会咱不说,咱就说不太喜欢被问问题的这种状况。如果被问问题,答不上来,多没面子啊!归根到底,就是他们紧紧地抱着他们自己都不相信的神学,因为他们自己都不能自圆其说。我在教会看到的,他们自己都不能自圆其说的事很多。
后来我发现,其实人只要稍微谦卑下来,问自己,到底问题出在哪?然后仔细揣摩神的话,都能找到答案。但是问题是,人就假装没有问题。所以你就不能问。一问,你就顺服吧!如果你再问,你怎么不顺服呢?你再问的话,我不是告诉你,你要顺服吗!你怎么还学不会顺服呢!你说:我很困惑。困什么困?惑什么惑?然后就说:别再问了!人就被噎住了。可是心里还是被一种东西挑动着,要去寻求这些困惑的答案。这就是你为什么来到我们当中。
你为什么来到我们当中?你肯定是来寻求的!所以在咱们当中,你会发现,我很少讲顺服的道理。我跟我们当中的牧者也说这样的话,别要求人家顺服。人家看你,说话也说不清楚,讲道理也是一问三不知,什么也不知道。然后让人家顺服,顺服什么呀?后来我就教我们的牧者,要学会让人家佩服。人家佩服了,才会顺服。人家不佩服你,顺服是个假的。你说,你怎么知道?因为我就是这样。
我以前在当地教会,小组长带领得非常烂,话也说不清楚,查经瞎说一通。你说,你让我顺服他,多难啊!不过我可以顺服。后来我发现,我的顺服不过就是表面的,心里还挺看不起人家的。那个年代,我属灵高度还不够。顺服从某种意义上说,我每次都参加小组聚会,我非常的配合,我也非常的配搭。人家让我干什么,我就干什么。到了查经,讲着讲着,他胡说八道一通以后,就问:弟兄,你有什么分享吗?其实我也知道,在我们小组里,很多弟兄姐妹喜欢我讲那几句。
我就说:几分钟?三分钟,咱就别超三分钟;五分钟,就别超五分钟。我就把那天的经文,该分享的都分享一下,很多弟兄姐妹就得到点造就。我说的意思就是,你说人家咋顺服啊?神的话也讲不清楚,要不就瞎说。我在那里待了很久,后来实在忍受不了,我就出来自己建教会,结果一整就整到今天。有的时候,我觉得神掌权,学会顺服还是很好!别挑战人家,别老是觉得自己了不起。在人家下面,就算不佩服人家,还是乖乖的做人家的下属。会做下属,才会做上司。不会做一个好下属,怎么可能做一个好上司呢!
所以说,这些教会在悟性上很难成长。人家悟性不成长,我们的悟性可以成长。我常常看见不好的组长,也看见不好的牧者,或者不太像样的牧师,反倒坚定了我的信心。我要在这个时代,做牧师,就做一个好牧师;做牧者,就做一个好牧者。然后做一个又忠心,又良善的神的仆人。到时候,可以分发粮食,喂养神的群羊。这不是好事吗?什么东西也不能改变神在我们身上的计划。但是千万不要去挑战人家,故意问人家一个刁钻的问题,好像人家答不上来,我们心里很爽似的,那不是一个好下属的做法。但是我们可以在悟性上不断地成长。
1. 서론:
사람의 일생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구원을 베푸실 것을 믿으면 늘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의 논리 안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없었습니다!
2. 사람의 기억력과 논리적 추론은 매우 영적인 일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기억하는지가 사람의 일생을 결정합니다. 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은혜를 받고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기억하는지가 사람의 일생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늘 하나님을 기억해야 늘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억을 다시 한 번 강화하시려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지만 늘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억을 다시 한 번 강화하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매우 우둔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추격하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억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4.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애굽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으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에서 애굽 군대를 장사하신 것은 애굽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은 살려고 할수록 죽음의 길로 달려갑니다. 생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 오히려 생명을 얻고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5. 두려움은 사람으로 하여금 기억을 잃게 합니다
사람의 기억력과 두려움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두려워하면 기억력이 없어지고, 기억력이 없어지면 자기 힘으로 제멋대로 하게 됩니다. 제대로 하지 못하면 서서히 멸망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늘 기억하고 계속해서 기적을 경험하면 사람 안의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6.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위해 싸우십니다
사람이 어려움을 두려워하면서 하나님까지 잊어버리면 결국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재앙도 내리시고 복도 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때에도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는 것의 핵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군대인가 하는 것입니다!
7. 손에 있는 권세를 사용하기 시작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싸워 승리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지팡이를 드는 것입니다!
더 이상 애원하지 말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8. 하나님은 우리의 길이십니다
사람이 생사의 갈림길에 있을 때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길이십니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셔서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해지십시오.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핵심 단어
기사와 이적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함
기억력
두려움
권세를 사용함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심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출애굽기》 14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전무후무한 기적을 행하셔서 우리를 매우 놀라게 하십니다. 이 장의 말씀을 읽으면 누구나 정말 믿기 어렵고 놀랍다고 느낄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정말 너무나 놀랍지 않습니까! 사람의 일생에 가장 필요한 것은 기적입니다. 저는 기적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을 믿으면서도 기적은 믿지 않는다면, 이것은 그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큰 비극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정말 크게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을 베푸실 것을 믿기 때문에 저는 늘 기적을 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저의 손을 통해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은 성경 정경이 이미 완성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더 이상 기적을 행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순전히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사람은 일생 동안 앞에는 홍해가 있고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 오며, 깊음의 표면은 어둡고 공허하며 혼돈한 상황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이때 사람은 극도로 두려워합니다. 기적이 없다면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의 일생에 가장 필요한 것은 기적입니다.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큰 능력이 반드시 구원하실 것을 안다면, 이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시고 능력이 많으시며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십시오! 하나님은 정말 너무나 좋으신 분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없는 날들을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습니다. 하늘을 불러도 대답이 없고 땅을 불러도 응답이 없는 상황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외에 우리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입이 있어도 먹지 못하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그저 진흙으로 만든 우상일 뿐입니다.
이 장에서 우리의 하나님은 다시 한 번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매우 위대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 위대한 일로 어떤 사람들은 참혹한 대가를 치렀고, 어떤 사람들은 깊이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출애굽과 홍해를 건넌 이야기는 주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 계속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 일을 행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억을 다시 한 번 강화하셔서,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기억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이 장의 원문에서는 찾을 수 없고, 앞 장과 다음 장에서 찾아야 합니다. 15장은 모세가 한 편의 노래를 부르는 내용이고, 앞 장은 여호와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여호와께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그렇게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애굽 왕 바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자를 죽이셨습니다. 그러자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빨리 떠나 달라고 간청했을 뿐 아니라 금과 은과 보물까지 모두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당시 애굽 사람들은 완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사람의 기억력과 논리적 추론은 매우 영적인 일입니다
사람의 기억력은 매우 영적인 것입니다. 사람마다 기억이 지속되는 시간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3초만 기억하고, 어떤 사람은 3시간, 어떤 사람은 3일이나 5일, 어떤 사람은 영원히 기억합니다. 중국에는 ‘양을 잃고 우리를 고친다’는 뜻의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양 한 마리를 잃었으면 서둘러 양 우리를 고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기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은 매우 영적인 일입니다. 사람의 기억력이 우리의 일생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제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는 상당히 괘씸한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어려움만 만나면 과거에 경험했던 은혜를 모두 잊어버립니다. 제가 어떻게 그들을 데리고 기도하여 치유를 받게 했는지, 어떻게 속박에서 벗어나게 했는지는 잊어버리고 눈앞의 문제만 봅니다. 제가 이런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마치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성향대로라면 이런 사람을 만났을 때 진작에 도망갔을 것입니다. 피할 수 있다면 멀리 피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머릿속에 나쁜 일만 기억하고, 과거에 받은 은혜는 모두 잊어버립니다. 어려움을 만나면 눈에는 그 어려움만 보이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저는 속으로 ‘이 사람은 젊은 나이에 어떻게 벌써 치매에 걸렸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섬김을 마친 후 저는 하나님께 제가 하나님이 아닌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그를 손으로 눌러 죽였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기억력은 매우 영적인 것입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를 보십시오. 저에게는 아주 큰 장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다른 사람이 베푼 은혜를 늘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은혜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를 구원하셨는지, 어떻게 제게 일자리를 주셨는지, 어떻게 은혜를 베푸셔서 제가 일에서 복을 받게 하셨는지 등을 모두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저는 제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많은 사람은 제 능력이 매우 뛰어나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제가 이렇게 하나하나 세어 볼수록 하나님께서 제게 주시는 은혜는 더욱 많아집니다. 저도 앞에는 홍해가 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 와서 곧 죽을 것 같은 상황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을 베푸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떤 사람인지 묻는다면, 저는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복 받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억력이 너무 나빠서 자기가 한 말조차 잊어버립니다. 예전에 저는 귀신에게 눌린 한 사람을 섬긴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정신병을 앓고 있었고, 지옥의 불이나 지옥의 벌레 등 영계의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 사람을 마귀의 속박에서 해방시켰지만, 해방된 후에도 제가 노트를 하라고 하면 하지 않고, 과제를 쓰라고 하면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시간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의아했습니다. 정신병에 걸릴 시간은 있으면서 성장할 시간은 없다는 것입니까? 불과 1~2년 만에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 사람이 떠난 후 저는 기뻐하며 환호했습니다. 마침내 은혜를 저버린 사람 하나를 양육해서 떠나보냈구나! 그 사람이 떠나지 않았다면 저도 주도적으로 내보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고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매우 답답합니다. 그래서 저도 제 육적인 본성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그들을 손으로 눌러 죽였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느낌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저도 하나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저 역시 예전에는 매우 우둔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죽이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보존하시고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바로가 가까이 왔을 때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행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하였더라(《출애굽기》 14:10-12)
사람의 논리적 추론 역시 매우 영적인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 안에 있는 논리는 매우 이상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우둔한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사물을 판단하는 논리적 추론이 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육을 하든 훈련을 하든, 사람 안에 있는 잘못된 인식과 잘못된 논리 체계를 실제에 더욱 부합하는 상태로 조정해야 합니다. 절대로 이스라엘 사람처럼 되지 마십시오! 문제가 조금만 생겨도 그전에 경험한 기적을 모두 잊어버리고, 논리적 추론도 전부 사라져서 그저 제멋대로 하게 됩니다. 나중에 이런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께 죽임을 당하거나 귀신에게 붙잡혀 갔습니다. 결국은 멸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억을 다시 한 번 강화하시려 하셨습니다
이번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억을 다시 한 번 강화하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그렇게 많은 일을 행하셨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보았습니까?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그들의 기억을 다시 강화하려 하셨을까요? 나중에 사실로 드러났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억력이 정말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시험하시려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홍해 곁으로 데려가셨습니다. 그들이 퇴로가 끊긴 채 배수진을 치고 싸우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를 빠져나와 홍해 곁으로 갔다는 소식을 애굽 왕 바로에게 누가 전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사람처럼 변장하게 하셔서 애굽 왕 바로에게 달려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길을 잃고 홍해 곁으로 갔습니다. 지금 추격하면 아직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라고 알리게 하신 것은 아닐까요? 성경에는 이 일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므로 누구도 확실히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작은 함정을 하나 놓으신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 왕 바로의 군대와 병거가 추격해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가져온 것은 당시 가장 앞선 무기들이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에 매장지가 없단 말인가? 끝났다, 끝났어. 이번에는 죽었구나’라고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 사람들이 이미 그 앞선 무기와 병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때 애굽 사람들이 바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금과 은과 보물을 그들에게 주었다는 것도 잊었습니다. 방금 7일 동안 무교병을 먹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무덤도 없이 죽을 수 있겠습니까? 앞에는 홍해가 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 오지만, 지난번에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그들을 구원하셨는데 지금은 하나님께서 돌보지 않으신다는 말입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서니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출애굽기》 14:19-20)
사람이 이렇게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는 머리를 가졌다면, 참으로 인생의 비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저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이런 모습을 모르셨을까요? 아셨습니다! 다만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직 그들을 멸망시키기를 원하지 않으셨고, 그들이 다시 한 번 기억하는 법을 배우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전히 잊어버렸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행하시는 것이 쉽지 않으셨겠구나! 얼마나 상처를 받으셨을까!’ 하고 탄식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를 원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원망한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인도받았고, 날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잊어버릴 수 있었을까요? 정말 이상합니다!
나중에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 사이에 있어 양쪽이 서로 가까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현상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그처럼 어리석은 말을 했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고, 직접 하나님의 큰 능력을 경험했으며, 애굽의 종살이하던 집에서 인도받아 나왔습니다. 그런데 왜 애굽 사람들의 병거만 보이면 두려워하기 시작했을까요? 만일 제가 그때 이스라엘 진영에 있었다면 애굽 사람들을 도발하며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능력이 있으면 와 보라! 우리가 애굽에서 나올 때 너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너희 장자의 죽음을 잊었느냐? 기억력이 왜 그렇게 나쁘냐? 아직도 교훈을 얻지 못했느냐!’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애굽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으려 하셨습니다
사람을 섬기는 과정에서 저는 하나님을 정말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셔서 자기 백성이 하는 일을 바라보시면 이해하기 어려우실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제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애굽 왕 바로입니다. 당시 애굽은 이미 열 가지 재앙을 당했고 온 애굽이 황폐해졌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반죽도 부풀지 않았고,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빨리 떠나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이스라엘 사람들을 추격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몰랐단 말입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애굽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한눈에 이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스라엘 사람들 뒤에 계신 하나님과는 겨룰 수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의 머리도 망가져 있었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머리를 제대로 쓰지 못합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들은 GDP와 경제, 그리고 건설 사업 등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눈앞의 일이 사람을 죽게 할 일이라는 것은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목숨도 없는데 GDP가 무슨 소용입니까? 세상 것들이 무슨 소용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애굽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려고 애굽 사람들을 홍해 바닥에 장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때로 사람은 귀신에게 홀린 것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 돌진합니다. 사람의 기억력은 정말 목숨과 관계된 일인데, 어떻게 모두 잊어버릴 수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가 보는 여러 현상도 똑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명이 하루 이틀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계속 무언가를 벌입니다. 하나님과 겨루다가 이미 패배했는데도 모든 것을 잊고 또 싸우려 합니다. 머리는 호두알만 하고 마음은 땅콩알만 한데도 자신이 꽤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다리 아래 적토마를 타고 손에 은빛 창을 들고 있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옛날의 진경, 서초패왕 항우, 이원패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저 광대일 뿐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들은 광대 하나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희극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이제 하루밖에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면 더 이상 일을 벌이지 마십시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사람들도, 홍해에서 죽은 애굽 사람들도 모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었다면 우리도 조금은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자주 어떤 사람들을 봅니다. 겨우 몇십 시간밖에 살 수 없는데도 여전히 이것저것을 걱정합니다. 제가 섬겼던 한 사람은 당시 며칠이나 더 살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섬김을 마치자 그는 일어나서 ‘삼천만, 8억’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물었습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그가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의 머리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매우 놀랐습니다! 죽음이 눈앞에 닥쳤는데도 세상 일로 끝없이 얽매여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자 자살을 선택했고, 결국 자살에 실패하여 다시 살아났습니다. 살아나고 나니 문제가 더 커졌습니다. 원래의 문제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후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또 살아 있는 일로 걱정합니다. 원래 죽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살아났기 때문에 여전히 의식주와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잠자는 수많은 문제로 염려해야 합니다.
사람은 죽으면 더 편한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지만, 살아 있으면 더 복잡합니다. 어떤 사람은 병이 나으면 다시 살아가는 일을 걱정합니다. 결혼, 자녀, 노후 등입니다. 처음 죽을 병에 걸렸을 때는 왜 이런 일들을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므로 사람이 살려고 하면 문제가 커지고, 사람이 죽게 되면 문제는 즉시 해결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내게 있어서는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에 대해서는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 세상의 일들을 모두 작은 일로 여긴다면 마음이 편하고 자유롭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죽을병에 걸려 일주일밖에 살 수 없다면, 그 일주일을 잘 계획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GDP를 걱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살아 있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어려움이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을 만나면 머리가 멍해집니다. 애굽 왕 바로라도 마찬가지로 정신을 잃고 죽음의 길로 달려갑니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애굽의 GDP를 걱정하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더 이상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게 되었으며, GDP도 그들과 아무 관계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이든 애굽 사람이든,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강할수록 죽음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여러분과 제가 그렇게 강한 생존 욕구를 갖고 있지 않고, 오히려 죽음에 대한 강한 욕구까지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무엇에든 묶이겠습니까?
가령 어느 날 소말리아 해적이 저를 붙잡아 죽이려고 한다면, 저는 오히려 그에게 감사할 것입니다! 저는 그에게 빨리 죽여 달라고 간청할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저는 이미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이번에는 드디어 제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를 죽여 주십시오!’ 그러면 소말리아 해적은 분명히 당황할 것입니다. 그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살려고 발버둥 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오늘은 죽여 달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또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몸값을 요구하지 마십시오. 제게는 없습니다! 저를 돌려보내도 저는 다시 자살할 것입니다. 지금 죽여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무슨 생각일까요? 이렇게 하면 해적뿐 아니라 마귀와 음부와 지옥과 죽음의 영까지 모두 당황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사람들에게 전화만 하면 얼른 돈을 보내 왔는데, 이 사람은 왜 세상 사람들과 다를까요? GDP나 돈이 그에게 아무런 매력이 없으니 그들도 어찌할 수 없게 됩니다. 자신들이 잘못 건드린 것은 아닌지 생각하고 얼른 그를 놓아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오히려 살아날 기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사람으로 하여금 기억을 잃게 합니다
제가 사람을 섬기는 과정에서 사람은 두려워하는 순간 기억을 잃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많은 문제의 근원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많은 문제가 사라집니다.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두려운 마음으로 하면 이것저것 걱정하게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GDP를 두려워했고, 건설 사업을 완성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사실 수천 년이 지나고 나면 그 GDP와 건설 사업은 아무것도 아니며 그저 폐허 더미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것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사람의 기억력은 두려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계속 두려워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이심을 기억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과거에 그분의 강한 팔로 구원을 베푸셨다는 것을 알지 못하니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두려워하면 기억력이 나빠지고, 하나님의 구원을 잊어버리며, 자기의 작은 힘으로 버티려 합니다. 그러나 버틸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일생에 기적이 없고 자기 힘으로도 버티지 못하면 멸망합니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멸망합니다. ‘나는 원래 겁이 많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저는 ‘당연한 결과다! 누가 너를 두려워하게 했느냐? 누가 너를 겁쟁이로 만들었느냐?’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자신을 훈련하여 담대해져야 합니다. 무엇이 두렵습니까?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하나님의 구원을 계속 기억하고 계속 기적을 경험하면 사람 안의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위해 싸우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위해 싸우십니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이 반문할 것입니다. ‘정말입니까?’ 저는 정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하나님께서 반드시 저를 위해 싸우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싸우실지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지만, 여러분이 처음 두려워하고 처음 하나님의 구원을 잊어버린 것이라면 ‘괜찮다. 이번에는 네 기억력이 좋지 않았고 논리적 추론도 부족했지만 내가 너를 용서하겠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번 기회를 주시면 그만큼 여러분의 기회는 한 번 줄어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렇게 용서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며 그렇게 많은 기적을 경험했고, 다시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 모세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잊어버렸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경고합니다. 한 번 잊을 수도 있고 두 번 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잊어버리면 죽음이 가까운 것이며 반드시 광야에 버림받게 됩니다. 계속해서 일부러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기억하는 사람인지 계속 시험하십니다. 여러분이 한 번 또 한 번 잊어버리고, 겁을 내며 어려움을 두려워한다면, 아무리 하나님을 많이 경험하고 아무리 많은 기적을 보았어도 여러분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말합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여러분은 제게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믿음을 세우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허무는 것처럼 느껴집니까?’ 알아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믿음을 세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우리는 깨달음 가운데 기회는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줄어들며, 영원히 이런 식으로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억하는 법을 배우게 하실 때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직접 보게 될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을 죽인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었습니다. 어떻게 죽이셨습니까? 홍해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건너갔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괜찮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무 일도 없었으니 우리도 건너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물속으로 들어가자 병거가 뒤집혔고, 곧 홍해의 물이 다시 합쳐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을 뒤집어엎으신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까? 애굽 사람들은 죽기 전에 한 가지 어리석은 일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시 잡아오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군대이며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누구든 건드리면 죽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우리를 위해 싸우셨던 것을 우리가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까? 이런 경험을 통해 여러분은 얼마나 기억하는 법을 배웠습니까? 마음을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사람이 나쁜 일만 기억한다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많은 은혜를 주셔도 그런 사람을 구원하실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의 군대의 대장이십니다. 우리가 기도하여 사람이 병에서 치유되고 해방되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는 일이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의 그릇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군대가 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입니다! 여호와의 군대는 칼과 창에 의지하지 않고, 병거와 말에 의지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것을 의지합니다. 아무리 강한 군대와 앞선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과 겨룰 수 없습니다.
《손자병법》에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주요 비결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물입니다. 물을 이용해 싸우는 것은 매우 강력합니다.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물에 잠기면 무너집니다. 두 번째는 불입니다. 물과 불은 모두 자연계에서 온 것입니다. 제갈량이 조조의 진영을 불태워 첫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일은, 1천여 명의 병력으로 수만 명을 이긴 사례입니다. 열 명으로 백 명을 상대하고 한 명으로 열 명을 상대하는, 자연 자원을 활용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연 자원은 하나님의 손에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그것을 극대화하여 사용하십니다. 예를 들어 불 한 번으로 소돔과 고모라를 태우셨습니다. 애굽의 정예 군대가 아무리 강해도 물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자비가 없으십니까? 하나님께는 당연히 자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자비를 베푸시고 하나님을 대적한 애굽 왕 바로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재해의 위력을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매번 싸우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다시 우리를 이끌어 성을 공격하고 땅을 정복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온 땅을 얻어야 하며,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것을 사람들이 보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재앙을 내리시기도 하고 그분의 백성에게 복을 주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 하나님을 위해 싸운다면 마귀와 원수를 짓밟고, 사로잡힌 사람들과 마귀에게 억압받는 사람들을 해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입을 열어 선포한 대로 이루실 것이며, 온 땅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온 땅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는 말은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애굽 땅에 나타났을 때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을 지닌 군대가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입니다.
손에 있는 권세를 사용하기 시작합시다
모세라는 사람은 매우 대단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원망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애굽기》 14:13-14)
모세는 매우 믿음 있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의 마음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 하나님께 간청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출애굽기》 14:15-16)
저는 이런 말씀을 정말 좋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세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이미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권세, 곧 하나님께서 주신 보검을 받았습니다. 바다를 향해 지팡이를 내밀면 바다가 순종하고 물이 갈라집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권세를 막을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출애굽기》 14:21)
누가 행한 일입니까? 모세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모세의 손에 있는 권세가 대단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권세를 들고 바다를 향해 지팡이를 내밀면 바다가 갈라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이러한 기록과 이야기를 정말 좋아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과 하나님이 동행하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을 들으시고 우리가 지휘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너무나 좋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싸우게 하시고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며, 승리의 관은 우리의 머리에 씌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우리는 그저 지팡이를 들기만 하면 됩니다. 그 지팡이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권세를 상징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권세를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향해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들어 올리면 바닷물도 갈라지고, 크고 작은 산도 옮겨지며, 높고 낮은 웅덩이도 메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을 가진 군대가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애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애원하는 것을 매우 반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애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항상 권세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우리 가운데 한 자매가 가족 배후의 악한 영에게 시달려 매우 괴로워하며 집에서 이틀 동안 기도했습니다. 애원하고 찬송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지만 여전히 괴로웠습니다. 이대로 가면 큰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동역자가 제게 빨리 가서 그 자매를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권세를 사용하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곳에 가서 자매에게 손을 가슴에 얹고 저를 따라 큰 소리로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매의 가족 배후에 있는 악한 영을 묶노니 물러가라!’ 불과 5분 만에 그 자매는 나았습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손에 있는 권세는 홍해를 갈라지게 할 수도 있고 홍해의 물을 다시 합쳐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홍해를 가르면 하나님의 군대가 마른 땅을 걸어가듯 건너갑니다. 홍해를 다시 합치면 이 세상은 홍해 밑에 장사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고, 천국의 열쇠도 이미 우리의 손에 주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큰 은혜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질병을 조금 만나거나 작은 어려움을 조금만 만나도 즉시 죽을 듯이 두려워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죽게 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죽음에서 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길이십니다
사람은 앞에는 홍해가 있고 뒤에는 추격병이 있는 생사의 갈림길에 자주 이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길이시므로 우리에게는 다른 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 이야기가 있는데, 매우 좋습니다. 어떤 사람이 산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어렵게 산에서 나무를 하는 사람을 만나 산을 빠져나가는 길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나무꾼은 그에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나무꾼은 길 잃은 사람을 풀숲 사이로 계속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 사람은 어리둥절해져서 ‘이게 어디가 길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나무꾼은 ‘내가 바로 길입니다! 나를 따라오면 틀림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무꾼은 모두 지름길로 다녔기 때문에 두 사람은 곧 큰 산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발밑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홍해라도 우리 앞에서 갈라져 마른 땅을 걷듯 건너게 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앞에 어떤 큰 장애물이 있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해지십시오.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 길을 가고 싶다면 그렇게 가면 됩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을 따르겠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길이시며, 예수님은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나의 모든 것이십니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애굽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출애굽기》 14:30-31)
그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믿은 기간은 얼마나 되었습니까?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이한 일을 행하실 필요도 없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광야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하실 필요도 없이 곧바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확신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 손에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3일 만에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3일이면 갈 수 있는 길을 40년이나 걸렸습니다. 모두 기억력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한 번 또 한 번 행하신 기적을 보았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을 믿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이끌어 내신 것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완성하게 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시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려 하신다는 것을 아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