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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사사기 13장 - 기묘하신 하나님께서 기묘한 구원을 베푸시도다

2025-01-22 4,018 士师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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士师记13章-参孙出生
  • 1 以色列人又行耶和华眼中看为恶的事,耶和华将他们交在非利士人手中四十年。
  • 2 那时,有一个琐拉人,是属但族的,名叫玛挪亚。他的妻不怀孕,不生育。
  • 3 耶和华的使者向那妇人显现,对她说:“向来你不怀孕,不生育,如今你必怀孕生一个儿子。
  • 4 所以你当谨慎,清酒浓酒都不可喝,一切不洁之物也不可吃。
  • 5 你必怀孕生一个儿子,不可用剃头刀剃他的头,因为这孩子一出胎就归 神作拿细耳人。他必起首拯救以色列人脱离非利士人的手。”
  • 6 妇人就回去对丈夫说:“有一个神人到我面前来,他的相貌如 神使者的相貌,甚是可畏。我没有问他从哪里来,他也没有将他的名告诉我,
  • 7 却对我说:‘你要怀孕生一个儿子,所以清酒浓酒都不可喝,一切不洁之物也不可吃;因为这孩子从出胎一直到死,必归 神作拿细耳人。’”
  • 8 玛挪亚就祈求耶和华说:“主啊,求你再差遣那神人到我们这里来,好指教我们怎样待这将要生的孩子。”
  • 9  神应允玛挪亚的话;妇人正坐在田间的时候, 神的使者又到她那里,她丈夫玛挪亚却没有同她在一处。
  • 10 妇人急忙跑去告诉丈夫说:“那日到我面前来的人,又向我显现。”
  • 11 玛挪亚起来跟随他的妻来到那人面前,对他说:“与这妇人说话的就是你吗?”他说:“是我。”
  • 12 玛挪亚说:“愿你的话应验!我们当怎样待这孩子,他后来当怎样呢?”
  • 13 耶和华的使者对玛挪亚说:“我告诉妇人的一切事,她都当谨慎。
  • 14 葡萄树所结的都不可吃,清酒浓酒都不可喝,一切不洁之物也不可吃。凡我所吩咐的,她都当遵守。”
  • 15 玛挪亚对耶和华的使者说:“求你容我们款留你,好为你预备一只山羊羔。”
  • 16 耶和华的使者对玛挪亚说:“你虽然款留我,我却不吃你的食物,你若预备燔祭就当献与耶和华。”原来玛挪亚不知道他是耶和华的使者。
  • 17 玛挪亚对耶和华的使者说:“请将你的名告诉我,到你话应验的时候,我们好尊敬你。”
  • 18 耶和华的使者对他说:“你何必问我的名,我名是奇妙的。”
  • 19 玛挪亚将一只山羊羔和素祭在磐石上献与耶和华,使者行奇妙的事;玛挪亚和他的妻观看,
  • 20 见火焰从坛上往上升,耶和华的使者在坛上的火焰中也升上去了。玛挪亚和他的妻看见,就俯伏于地。
  • 21 耶和华的使者不再向玛挪亚和他的妻显现,玛挪亚才知道他是耶和华的使者。
  • 22 玛挪亚对他的妻说:“我们必要死,因为看见了 神。”
  • 23 他的妻却对他说:“耶和华若要杀我们,必不从我们手里收纳燔祭和素祭,并不将这一切事指示我们,今日也不将这些话告诉我们。”
  • 24 后来妇人生了一个儿子,给他起名叫参孙。孩子长大,耶和华赐福与他。
  • 25 在玛哈尼·但,就是琐拉和以实陶中间,耶和华的灵才感动他。

《答疑解惑》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사기》 13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사기를 보면 볼수록 참 혼란스럽고, 한 편 한 편의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습니다. 삼손의 때에 이르러서는 이 막장 드라마가 정말 극에 달합니다. 우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하고 의아해합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하나님이 참으로 기묘하시다고 느낍니다. 사사기 13장의 주제는 바로 “기묘하신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묘한 구원”입니다. 비록 막장 드라마 같아 보일지라도, 이것은 여러분의 상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기묘한 역사입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다

역사의 맥을 짚어보면 한 가지 흐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세대가 갈수록 점점 더 못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느끼셨습니까?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욱 악화되고 엉망이 되더니, 결국 이 지경까지 망가져 버렸습니다. 가만히 보면 이것이 교회의 역사와도 참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러다 결국 극에 달해 반전이 일어나는 때에 이르게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고, 결국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40세에 죽는다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을 블레셋 사람에게 억압당하며 살았다는 뜻입니다. 만약 20세부터 블레셋 사람에게 억압을 받기 시작해 60세에 죽었다면, 그 일생은 참으로 비참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졌고, 그 40년 동안의 상황은 대단히 처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을 세우신 것은 이 40년 중의 20년 동안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그 40년의 세월 중 20년 동안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삼손의 이야기는 다른 사사들과는 사뭇 다르게 들립니다. 드보라는 군대를 이끌고 싸워 대승을 거두었고, 기드온은 300명의 정예 용사를 이끌고 싸워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삼손에게 와서는 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그저 혼자서 천하장사처럼 행동하는데, 그가 행한 일들이 과연 사사답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 세대에 행하신 기묘한 일입니다.

저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한 후, 그들의 마음이 갈수록 완악해졌다는 사실에 탄식하게 됩니다. 이때 사람들의 마음은 극도로 완악해졌습니다. 이전에는 그래도 하나님께 부르짖을 줄은 알았는데, 이번에는 아무도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블레셋 사람에게 이렇게 억압당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왜 이토록 완악해졌을까요? 제 생각에 이스라엘 백성은 마음속으로 몹시 괴로워하며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이곳이 주께서 우리를 인도해 들이신 약속의 땅이 아닙니까? 약속의 땅이 왜 이 모양입니까? 왜 약속의 땅에서 오늘은 이 사람에게 억압당하고, 얼마 지나면 또 저 사람에게 억압당해야 합니까? 그러고는 또 사사 하나를 세워 구원하신단 말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해를 탓하고, 달을 탓하고, 하나님을 탓하면서도 오직 자기 자신만은 탓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 사람이 하나님의 목전에 악을 행한 데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목전에 악을 행할 때는 스스로 괜찮다고 여깁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악을 행해도 별일 없네? 또 악을 행해도 아무 일 없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와 극심하게 억압하자, 도리어 마음이 더 완악해져서 고통스럽고 힘들게 살아갑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게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차라리 우리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때가 지금보다 낫지 않습니까? 애굽의 노예 생활이 이것보다는 나았겠습니다. 왜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습니까? 겨우 이것이 약속의 땅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엉뚱한 말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사실 그들의 마음은 너무나 괴롭고 답답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교회가 마귀에게 짓밟히고 굴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이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나는 마땅히 십자가를 져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치유받지 못해 극심한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고는 치유와 축사는 이미 지나간 시대의 것이라 치부하며, 앞뒤가 맞지 않는 온갖 핑계를 늘어놓습니다.

제 생각에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심정이 지금의 교회들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사람이 왜 병에 걸립니까? 사람들은 병에 걸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생로병사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병에 걸려 몹시 위중한 상태에 놓이기도 합니다. 어떤 전도자 가정의 아이가 병에 걸렸는데, 우리 공동체에 뇌종양을 앓는 아이가 온 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전도자였습니다. 그는 예전에 병든 다른 교인들에게 “병에 걸리는 것은 변장된 축복입니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기 아이에게 그 일이 닥쳤으니 어떻겠습니까? 사람들은 깊은 혼란에 빠집니다. “하나님,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이제 사람들은 예전처럼 부르짖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당신은 원래 이런 분이십니다”라며, 선하신 하나님을 괴팍하고 악한 하나님처럼 묘사합니다. 삼손의 시대가 바로 이러했고, 참으로 고통스러운 때였습니다.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들이 대단히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뇌물을 좀 받고 부패한 정도인데, 그것이 세상에서 흔한 일 아니냐는 식입니다. 재판관에게 선물을 좀 보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선물을 많이 준 사람이 재판에서 이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입니다.

이처럼 혼탁하고 부패한 일들이 가득했습니다. 억압받는 자들은 억압받는 대로 ‘왜 억압을 당해야 하는가?’라며 핑계를 대고 마음의 불평을 품었습니다. 억압하는 자들 역시 온갖 이유를 대며 합리화했습니다. 불행한 날들을 살아가면서도 수많은 핑계를 대며 하나의 이론 체계를 만들어 냈습니다. 다시 말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는 것이 이미 하나의 이론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얼마 전 우리 중에 한 자매가 있었는데, 그 머릿속에 있는 견고한 진은 정말 우리가 어떻게 손쓸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자매가 온 첫날부터 우리는 지켜보며 그 내면의 가치관을 바꾸어 주려 했지만, 결국 끝까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하는 말은 온통 이런 것이었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어떻게 이 세상에서 살 수 있겠어요?” 그러니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은 원래 그런 분이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부르짖을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원래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암을 주시는 분이고, 목사에게도 암을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이것을 저주라고 여기지도 않고,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축복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지극히 정상으로 여깁니다.

중화권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은 바로 이러한 처참한 광경 속에서 수많은 비극을 목격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였고, 하나님이 참으로 선하신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그저 겉핥기식으로 조금 회개하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우리 중에 한 형제가 있었는데, 겉으로는 매우 하나님을 사랑하고 열심이 있어 소그룹도 인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집 창고에 불이 나서 큰 재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형제님,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 형제는 “그렇지 않으면 어쩔 건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암에 걸렸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제가 그에게 “암은 저주입니다. 창고에 불이 난 것에도 문제가 있으니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라고 권면했지만, 그는 “까닭 없는 저주는 내게 임하지 않는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사실 많은 교회의 목회자들도 이처럼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친히 기묘한 구원을 행하시다

이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구원을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구원의 방법을 구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기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기 싫어하신 것이 아니라,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일깨우려 하셨습니다. “너희가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느니라!”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리저리 외치셔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구약성경》의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애타게 증언하며 회개하라고 외쳤을 때, 백성들이 “어? 무슨 문제라도 있어? 우린 평안한데”라고 반응했던 것과 같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 여인을 찾아가 임신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삼손이 태어나고 그의 어머니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와, 이 아이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사람이구나!”라고 반응했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런 반응은 전혀 없었고, 도리어 “그런 일이 정말 있어? 삼손의 아버지가 지어낸 이야기겠지”라고 말했습니다. 훗날 삼손은 참으로 외롭고 쓸쓸하게 사사의 직무를 수행하며 큰 고생을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삼손이 “모이라!” 하고 외쳐도 아무도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기드온이 “모이라!” 했을 때는 3만 명이 모여들었습니다. 입다가 “모이라!” 했을 때는 부르지 않은 사람들까지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삼손의 때에는 그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자서 일해야 했습니다. 얼마나 기묘한 일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임신하지 못하던 여인이 아이를 낳는 것을 보고도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뜨거운 열정이 인간의 차가운 냉대에 부딪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 지파의 한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삼손이 단 지파에 속해 있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단 지파는 가장 형편이 비참했던 지파였으며, 이때까지도 자신들의 기업의 땅을 얻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에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을 정복하던 때부터 삼손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단 지파는 여전히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가장 비참한 지파였습니다.

삼손의 아버지인 마노아는 마침내 땅 한 조각을 얻어 황무지를 개간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이 기묘한 방법을 우리는 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저주 가운데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우리 중에도 여전히 자기 생각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 옳음 속에 갇혀 사는 사람의 결말은 저주이며, 무엇을 하든 형통하지 못하고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묘한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결단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간절히 구원하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무감각함과 완악함에서 걸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어떻게 해야 복된 삶을 살 수 있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더 이상 마귀에게 짓밟혀서는 안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부터 하나님을 새롭게 알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간절히 치료하기를 원하십니다. 비록 우리 내면이 너무나 무감각해져서 우리가 내린 선택과 우리가 하는 말들이 당연한 것이라 여길지라도, 과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시대, 삼손의 시대에 나실인 한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기로 결단한다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고백한다면, 그는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눈에 나실인이며,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거룩한 삶을 살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겪는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사람이 밥 먹고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 겪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이 죄를 짓고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약속의 땅을 지옥처럼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비록 18층 지옥까지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2~3층 지옥의 고통은 겪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가정을 찾으셨고, 삼손을 통해 그 시대에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삼손 혼자뿐이었습니다. 40년의 기간 중 삼손이 사사로 일한 20년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억압을 받던 때였고, 결국 삼손은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져 두 눈이 뽑히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사사기 13:2-5)

그 여인이 돌아가 남편에게 알리자, 남편이 기도했습니다.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니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여인이 밭에 앉았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그에게 임하였으나 그의 남편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여인이 급히 달려가서 그의 남편에게 알리어 이르되 보소서 전날에 내게 오셨던 그 사람이 내게 나타났나이다 하매 마노아가 일어나 아내를 따라가서 그 사람에게 이르러 그에게 묻되 당신이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그 사람이니이까 하니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니라 마노아가 이르되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고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하니라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하니 (사사기 13:8-15)

이 대화는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그러고 나서 주의 사자는 불꽃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은 기묘하니라

마노아가 또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귀히 여기리이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사사기 13:17-18)

저는 여러분에게 소망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출애굽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과정에서 수많은 난관에 부딪혔기 때문에 열 가지 재앙의 표적이 있었습니다. 앞에 홍해가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에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가 있었고, 요단강이 있었기 때문에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러한 억압을 겪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이 임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원한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몸의 어느 부위가 아프든, 몸에 무엇이 생겨났든 간에, 그것은 모두 억압당한 결과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 비슷하게 악령의 억압 속에서 살아갑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악령을 보내어 그 사람을 악령의 손에 넘겨주십니다. 이것을 누가 행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악령의 손에 넘겨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사사를 택하여 구원을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결코 절망하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의 이름은 ‘기묘자’이시며, 그분의 구원하시는 방식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대단히 기묘합니다.

여러분이 불순종하던 백성이었다면 이제 해방되어야 합니다. 억압받고 있었다면 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병들어 있었다면 하나님의 기묘한 역사가 여러분의 몸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 마음속에 도대체 무엇이 담겨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의 내면에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완악함이 가득 차 있다면 구원을 얻기 어렵습니다.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수많은 쓰레기가 쌓여 있고, 조상 때부터 대물림된 저주들도 있습니다.

부모 세대가 사역자였다면 자녀 세대는 오히려 더 큰 고난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역자들이 다른 불(凡火)을 드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 구원하기 싫어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삼손의 시대, 즉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 사람에게 40년 동안이나 억압을 당했습니다. 이러한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도적으로 먼저 다가가셨고, 비록 백성들의 차가운 반응에 직면하셨을지라도 여전히 구원을 베풀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대 모든 세대 속에서 사용하실 만한 그릇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자원하는 수많은 그릇이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더 이상 완악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부드러워져서, 수많은 고난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질병이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을 치료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은 이 모든 환난과 악령의 억압을 통해 우리는 기묘하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마노아에게 나타난 이 표적은 참으로 기묘했습니다. 마노아가 번제물을 불로 태워 드릴 때, 그 불은 하나님의 불이었습니다. 번제물을 바위 위에 올려놓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습니다. 불꽃이 높이 치솟아 올랐는데, 그것은 평범한 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노아가 드린 번제를 기쁘게 받으셨다는 증거였습니다. 제사를 마치자 곁에 서 있던 사람이 그 제단의 불꽃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마노아는 그것을 보고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하나님을 보면 죽습니까? 하나님을 뵈었다고 해서 왜 죽어야 합니까? 자신이 하나님을 찾아내어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 주신 것인데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노아의 왜곡된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마노아는 그의 아내보다 훨씬 뒤떨어졌습니다. 우리 중에도 많은 자매들이 남편보다 하나님을 훨씬 더 잘 압니다. 많은 남편들은 생각이 유연하지 못합니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들리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사사기 13:23)

마노아의 논리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참으로 온전치 못한 생각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들이 아직 정신병원에 보내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머릿속에 정신질환자 같은 환각과 두려움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마노아는 ‘주의 사자가 불꽃을 타고 올라갔으니 우리는 이제 끝났다, 다 죽게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그의 아내는 생각이 비교적 맑고 온전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성경에는 마노아의 아내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지만, 사실 이름이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먼저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났고, 두 번째로도 아내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남편 마노아를 찾아갔고, 마노아가 와서 “당신이 바로 그분입니까?”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자매들이 때로는 영적인 일에 있어서 형제들보다 훨씬 더 민감합니다. 형제들은 영적인 논리가 잘 통하지 않고, 세상일에 그리 영리하지 못하면서도 영적인 일에 있어서는 대단히 미련하고 둔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사사기 13:4-5)

삼손의 어머니는 이 말씀을 지켰습니까? 철저히 지켰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호와께 거룩히 구별된 자가 되고자 한다면, 즉 나실인이 되고자 한다면 세속에서 벗어나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삼손의 어머니는 그것을 지켜냈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자라는 동안, 어머니는 하나님의 사람이 전해 준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겼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이 삼손을 감동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삼손은 어려서부터 엄청난 힘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을 사용하신 방식, 삼손을 보내신 방식, 마노아와 그의 아내를 사용하신 방식은 모두 기묘한 역사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기묘한 역사와 기묘한 구원이 우리 삶에 나타나기를 사모합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워져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기묘한 방법으로 역사를 이루시는데, 하물며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고 그분께로 돌이킨다면 그 구원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하나님이 치료의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습니다. 지난 수년간 사역하면서 저는 인간의 악함을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대만의 한 사람이 암에 걸려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상태가 너무나 처참했는데, 우리 공동체의 한 사역자가 그를 섬겨 치유를 받았습니다. 기묘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기묘합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머리)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런 일을 경험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가 도전하건대, 저 같았으면 “하나님 맙소사, 이것이 정녕 기묘하신 하나님의 역사인가! 나 같은 사람도 고침을 받다니, 참으로 기묘하도다!”라며 감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밥을 먹여줍니까? 그렇습니다. 약이 됩니까? 약이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어리석게도 치유받은 후 우리와 연락을 끊으려 했고, 거의 우리를 차단할 지경이었습니다. 한 달여가 지난 후에야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그 한 달 동안 그는 빚이 많다는 이유로 죽기 살기로 돈을 벌러 다녔습니다. 빚이 많으니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는 자기가 기를 쓰고 돈을 벌어야 빚을 갚을 수 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사실 그를 마귀의 손에 넘기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셨습니까?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후에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구원받자마자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러 갔습니다. 한 달여 만에 다시 찾아왔을 때는 모든 병이 재발해 있었고, 이전보다 훨씬 더 심각해졌습니다. 섬기던 사역자가 너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제가 직접 맡아서 섬겼고, 그 과정에서도 수많은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몸이 망가진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관점(머리)이 망가진 데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온전합니까, 아니면 병들어 있습니까? 만약 사람의 생각이 망가지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무엇이 참된 보물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머릿속이 온통 세상적인 것으로 가득 차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하나님께서 기묘한 구원을 베푸신다 해도 그 망가진 생각을 가진 사람을 끝내 구원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어떤 목회자들은 “축사는 소용없다”고 말합니다. 축사가 소용없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간절히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삼손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기묘한 구원을 행하고자 하셨습니다. 보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삼손을 보며 “이것은 하나님의 기묘한 구원이니, 우리가 속히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자”라고 반응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온전해져야 합니다. 제가 섬겼던 그 사람처럼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는 참으로 생각이 망가진 사람이었고, 그의 가족들 역시 온전치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날 밤에도 제가 그를 섬겼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급히 전화를 걸어보니, 그는 눈을 크게 뜬 채 숨이 끊어져 누워 있었습니다. 눈을 감지도 못한 채 죽었고,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바로 전날 밤까지만 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던 그가, 제가 기도를 해준 후에는 일어나 걸어 다닐 수 있었습니다. 기묘하지 않습니까? 기묘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이 망가져 영원히 세상의 논리 체계 속에 갇혀 있으면, 그 결말은 너무나 비참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해 마노아와 같은 인식을 가지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의 아내와 같은 인식을 가지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간절히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훗날 마노아의 아내는 아들을 낳아 이름을 삼손이라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덧입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패역함 가운데서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더 이상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따라 살다가 하나님에 의해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지고, 마귀의 손에 넘겨지는 비참함을 겪지 마십시오. 주님을 제대로 믿지 않는 것은 비극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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