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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스가랴 2장 -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리라!

2025-05-17 3,012 撒迦利亚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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撒迦利亚书-准绳的异象
  • 1 我又举目观看,见一人手拿准绳。
  • 2 我说:“你往哪里去?”他对我说:“要去量耶路撒冷,看有多宽多长。”
  • 3 与我说话的天使去的时候,又有一位天使迎着他来,
  • 4 对他说:“你跑去告诉那少年人说,耶路撒冷必有人居住,好像无城墙的乡村,因为人民和牲畜甚多。
  • 5 耶和华说:我要作耶路撒冷四围的火城,并要作其中的荣耀。”
  • 6 耶和华说:“我从前分散你们在天的四方(原文是犹如天的四风),现在你们要从北方之地逃回。这是耶和华说的。
  • 7 与巴比伦人同住的锡安民哪,应当逃脱。
  • 8 万军之耶和华说,在显出荣耀之后,差遣我去惩罚那掳掠你们的列国,摸你们的就是摸他眼中的瞳人。
  • 9 看哪,我(或译:他)要向他们抡手,他们就必作服侍他们之人的掳物,你们便知道万军之耶和华差遣我了。
  • 10 锡安城啊,应当欢乐歌唱,因为我来要住在你中间。这是耶和华说的。”
  • 11 那时,必有许多国归附耶和华,作他(原文是我)的子民。他(原文是我)要住在你中间,你就知道万军之耶和华差遣我到你那里去了。
  • 12 耶和华必收回犹大作他圣地的份,也必再拣选耶路撒冷。
  • 13 凡有血气的都当在耶和华面前静默无声;因为他兴起,从圣所出来了。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스가랴서》 2장을 나누겠습니다. 이 장의 설교 원고를 준비하면서 많은 자료를 수집했지만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이 장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러분께 좋은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드디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장의 본문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거기 나오는 ‘소년’은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어떤 때는 ‘그’, 어떤 때는 ‘나’, 또 어떤 때는 ‘너’라고 나오는데, 도대체 이들이 각각 누구일까요? 이제 저는 마침내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제 설교를 듣고 나서 제가 전한 《스가랴서》를 다시 깊이 묵상해 보시면, 스가랴가 말한 것이 사실은 바로 우리 이 세대를 가리켜 말한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흥분되는 일입니다.

스가랴가 당시 멀리 바라보았을 때, 우리 이 세대의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것을 보았고, 그들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과 그들 가운데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이 장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리라”입니다. 이 말씀이 정말 좋다고 생각하신다면 하나님께 꼭 ‘좋아요’(찬양과 감사)를 올려드리시기 바랍니다!

스가랴는 사실 매우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스가랴는 왜 매우 실망했을까요? 그는 선지자일 뿐만 아니라 제사장이기도 했는데, 제사장의 사역은 들어오는 헌금도 거두어야 했습니다. 다른 제사장들이 받는 헌금은 10만, 100만 단위였는데, 스가랴가 받은 것은 고작 3모, 5모, 3원, 5원에 불과했으니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래서야 성전을 짓고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건축할 수 있겠는가?’ 그가 본 예루살렘은 온 성읍이 낡고 허름하며 작았고, 인구도 얼마 되지 않아 몹시 황폐했습니다! 위대한 왕의 거룩한 성읍의 모습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스가랴는 이 과정 중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바로 미래의 예루살렘에는 반드시 많은 사람과 가축이 가득할 것이며, 이곳은 지극히 번성하는 곳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영광이 그 가운데 거하시며, 이곳은 결코 돌로 쌓은 성벽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불로 지어진 성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스가랴에게만 위로를 준 것이 아니라, 우리 이 세대에도 매우 훌륭한 계시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세우려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것인데, 우리는 그분의 뜻대로 그분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건축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하고, 성령의 불이 우리의 성벽이 되게 하는 것은 참으로 크나큰 위로입니다!

당시 스가랴는 한 사람이 손에 측량줄을 잡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려고 합니까?”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너비와 길이가 어떠한지 보려고 합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매우 작고 보잘것없는 도시로, 오늘날의 지방 소도시와 같았는데, 천사가 이 도시를 측량하러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말하던 천사가 떠날 때, 또 다른 천사가 나와서 스가랴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전하라.” 사실 이 ‘소년’은 스가랴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스가랴가 ‘소년’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그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누구누구의 손자라고 불렀는데, 당시 그의 할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셨으므로 그가 늙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따라서 ‘소년(젊은이)’이라 불린 것입니다.

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촌락과 같으리라 하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스가랴서》 2:4-5)

천사가 스가랴에게 전한 말은 그에게 매우 큰 위로를 주었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이 일이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교회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며, 오직 교회만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하나님은 줄곧 성전 안에 거하셨고, 사람이 하나님을 알현하러 나아가려면 먼저 이방인의 뜰로 들어가고, 그다음에 성소로 들어가야 했지만, 지성소에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 하나님께 경배하러 들어갈 수 있었는데, 몸에 방울을 달고 뒤에는 밧줄을 매어야 했습니다. 마치 잠수부가 물속에서 죽어 올라오지 못할 것에 대비해 밧줄을 매고 바다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 시대의 성소와 지성소는 보통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리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사건을 가리키며, 그때 이후로 비로소 성령께서 부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계시하시다

비록 이 장의 본문은 매우 짧지만, 하나님께서는 스가랴를 통해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계획을 계시하셨는데, 그중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리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가운데 거하실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습니다.

영광을 나타내신 후에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실 수 있다

스가랴가 ‘영광을 나타내신 후에’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을까요? 그도 아마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신약》의 관점에서 볼 때, 본문 원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영광을 나타내신 후에, 너희를 노략한 여러 나라를 징벌하러 나를 보내셨나니 너희를 건드리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것이라. 보라, 내가 그들 위에 손을 흔든즉 그들이 자기를 섬기던 자들의 노략물이 되리니,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리라.”(《스가랴서》 2:8-9)

이 구절을 깊이 묵상하고 또 묵상하며 여러 날을 보냈지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어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나를 보내셨나니”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자기 자신을 보내신다는 뜻일까요? 이것은 언뜻 비논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이시며, 여기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영광을 나타내신 후’는 그분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본문에는 한 가지 사실이 숨겨져 있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보혈을 흘리신 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부활의 권능을 통해 그분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교회를 통해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임을 나타내셨고, 교회가 하나님과 하나 되며 교회가 곧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영광을 나타내셨다’라는 말은 담담하게 쓰여 있지만 매우 험난한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곧 기름부음 받은 자 예수, 혹은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세상에 사람으로 오셨는지, 어떻게 죽으시고 장사되셨는지, 그리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소망을 가져다주셨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축복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을 이어받은 후에는, 여러분을 저주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저주하십니다! 그에게 ‘따귀’를 올려붙여 얼굴이 멍들게 하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분의 손을 번쩍 드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그들 위에 손을 흔든즉 그들이 자기를 섬기던 자들의 노략물이 되리니,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리라.”(《스가랴서》 2:9)

“영광을 나타내신 후에, 너희를 노략한 여러 나라를 징벌하러 나를 보내셨나니 너희를 건드리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것이라.”(《스가랴서》 2:8)

이 말씀은 매우 명확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 눈에 보배라는 것이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눈에 보배였던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복이 우리 이방인들에게도 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참으로 유대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온 땅의 만국과 만민을 향해 있습니다. 《성경》은 《창세기》에서 매우 위대한 계시를 열어주셨습니다. 바로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값을 치르고 얻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은혜와 이 신분을 반드시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보통 사람들이 입술로만 말하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이미 구원받았다”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이어야 비로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에서 나오는 자들이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전에 너희를 하늘 사방에 흩어지게 하였거니와 이제 너희는 북방 땅에서 도망할지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바벨론과 함께 거주하는 시온의 백성아, 마땅히 도망할지어다.”(《스가랴서》 2:6-7)

이 구절은 세상에 쓰레기와 먼지가 가득하지만, 그 속에 많은 보물이 숨겨져 있으며 이 보물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 세상 속에서 가려내고 건져낸 자들입니다. 이 논리를 여러분은 반드시 붙잡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다 보물인 것은 아닙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보석을 캐러 산에 올라갔을 때 산 전체가 보석인 것이 아니라 그 속을 파고 또 파서 비로소 작은 보석 한 조각을 캐내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온 산이 금산인 것이 아니라 파고 또 파서 가려낸 것만이 금인 것과 같습니다! 만약 온 산이 전부 금이라면 그것은 화폐 교환의 기초가 될 수 없으므로 황금도 극히 적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세상에서 나오는 자들입니다.

바벨론은 곧 바벨탑이며 세상을 가리킵니다. ‘바벨론’은 우리가 붙인 이름이고, 또 다른 이름으로는 ‘늙은 말(대적하는 영적 세력)’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제가 ‘북방 땅에서 도망하라’는 의미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북방 땅’이란 무엇일까요? 《이사야서》에 나오는 한 계시를 보면, 마귀 사탄은 북극 가장 먼 곳에 있는 매우 밝은 별, 곧 북극성으로 묘사됩니다. 따라서 북방 땅은 사탄의 왕국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백성은 사탄의 왕국에서 나와야 하고 세상에서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다고 결코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눈에 든 보배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으며, 오직 그들만이 하나님의 ‘눈동자’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을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건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찌 혼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 올 때 반드시 하나님의 눈에 든 보배가 되어야 하고, 반드시 세상에서 나와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철저히 뿌리 뽑아야 하며, 그런 다음 영생의 논리 체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논리 체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과 함께하시며, 이러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원수를 노략하고 이 세상의 것들을 노략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의 모든 통치와 권세를 다 사로잡으시고 만물을 발아래 복종시키시며 교회를 만물의 으뜸으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약속이며 참으로 놀랍고 흥미진진한 일입니다.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로 돌아오리라

《구약》 스가랴 시대에 이 선지자들의 인식은 오직 유대인에게만 머물러 있었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들이라는 점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만국과 만민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한 가지 약속을 주셨습니다. 바로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이 아브라함의 축복을 상속받을 수 있음을 계시합니다.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들은 축복을 받지 못할까요? 그 사람 안에 아브라함의 믿음이 없고, 아브라함의 모습이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하면 아브라함을 더욱 닮아갈 것인가를 더욱 많이 탐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을 닮지 않는다면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을 수 없습니다!

스가랴는 이 사실을 받았습니다. “그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에 머물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줄 알리라”(《스가랴서》 2:11)

온 땅의 사람들이 다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니 이는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실 것입니다! 우리 중화권 사람들이 유대인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도 이 일을 이어받았습니다. 우리 안에 아브라함의 모습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선택해야 하며, 그러면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실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흥분하고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스가랴가 비록 이 말들을 전했지만 그 자신도 다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가랴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2천여 년 전에 이미 선지자에게 계시하셔서 마지막 때에 한 무리의 이방인들이 일어나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것을 약속하셨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유럽인이든, 미국인이든, 아메리카 대륙 사람이든, 아시아인이든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실까요?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건대, 저를 가장 흥분하게 만드는 일은 바로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를 번성케 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경제 상황은 비록 매우 어렵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을 축복하십니다. 어제 한 형제가 저에게 간증을 나누었는데, 복을 받는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제 환경 속에서 그의 사장이 뜻밖에도 월급을 2,000위안이나 올려주었다고 하니 저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자매는 원래 온몸에 병이 가득했는데, 우리 교회에 온 후 기도를 통해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 당시 그녀는 일하는 속도가 유독 느려서 사장이 그녀를 몹시 싫어했고 해고할 준비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청소 일을 하시는 한 연로한 자매님이 그녀를 양육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이 자매는 자신의 사장에게 그녀를 계속 일하게 해달라고 간청하며 스스로도 변화하고자 결단했습니다. 그 결과 이 자매는 온몸의 병이 나았을 뿐만 아니라 굼뜨게 일하던 습관도 고쳤고, 심지어 일도 꽤 빨리 배운다는 것이 발견되어 월급까지 올랐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이방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나타내심으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나와 그분의 백성이 되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게 되었으며,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가 일어나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나오심이라

모든 육체가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하라 (《스가랴서》 2:13)

스가랴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성소 안에 거하셨기에, 만약 그분이 성소에서 나오셨다면 백성들은 전부 산산이 쓰러져 죽었을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해마다 이런 피, 저런 피를 드리고 이런 제사, 저런 제사를 드리며 자신을 정결케 한 후에야 성소에 들어가 섬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 성소에 들어갔다가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직 거룩한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 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들어갈 자격조차 전혀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둘로 찢어지며 하나님께서 성소에서 나오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은 것이었기에 하나님께서 성소에서 나오신 것이며,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 침례(세례)를 받고 돌아온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라고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 위에 있기에 하나님의 영이 비로소 우리 위에 임하실 수 있고, 성령께서 비로소 우리를 충만케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셨기 때문이며,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은 감당하지 못해 비참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소에서 나오셨고, 그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임한 복이 얼마나 큰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높이 들리시고 하나님께서 성소에서 나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바입니다.

담이 없는 교회, 벽이 없는 성전

맨 처음에 지어진 성전은 모두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이방인의 뜰에서 성소로 들어가려면 겹겹이 둘러쳐진 벽을 통과해야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그 안에 가두어 두는 것이었으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느냐? 나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거하지 아니하노라.”

그렇다면 오늘날의 건물 교회 역시 사방을 벽으로 둘러친 건물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많은 목회자의 평생소원이 예배당 하나를 짓고 그 안에 의자를 들여놓은 뒤 일주일에 한 번 사용하는 것인데, 그들에게는 이것이 매우 아름다운 소망입니다.

어떤 사람은 3천만 위안을 들여 랜드마크가 될 만한 교회를 지어 결혼하는 사람들의 인증샷 명소가 되게 했고, 어떤 사람은 3억 위안을 들여 대형 교회를 지어 인증샷 명소가 되었지만, 빚이 너무 많아져 야반도주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형제자매가 혼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침에는 우리와 함께 모임에 참여하고, 오후에는 다시 건물 교회로 갑니다. 건물 교회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끼며, ‘이것은 교회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머리가 굳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담이 없는 교회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불이 우리의 성벽이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모일 때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임하는 것, 이것을 교회라고 부릅니다.

만약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였는데 하나님의 임재는 없고 오히려 귀신의 동행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단언컨대, 어떤 교회에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그곳에는 100% 귀신의 임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에는 반드시 귀신이 가득 차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우리가 담이 없는 교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년 전부터 우리는 온라인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도대체 어디가 좋지 않다는 말입니까? 온라인을 통해 가르치고 양육하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온라인에서 제대로 된 설교 한 편을 듣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예배당 의자에 앉아 귓가만 맴도는 미적지근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습니까? 저는 온라인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성경》 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세대를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만 연결되면 휴대폰 하나로 모임에 참여할 수 있고, 전화 한 통으로 가르치고 양육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교회 형제자매들 간의 연결이 건물 교회의 피상적인 연결보다 훨씬 더 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목회자가 매주 여러분을 몇 번씩 챙기고 점검하며 메시지를 보내거나, 여러분의 묵상 노트를 피드백해주거나, 나쁜 습관을 바로잡아 주기 때문에 목회자와 양 사이의 연결이 건물 교회보다 훨씬 훌륭합니다. 건물 교회 사람들은 만나면 그저 “자매님 평안하세요”, “형제님 평안하세요”라고 인사만 나눌 뿐인데, 평안하지 않을 때는 누구를 찾아가 하소연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예루살렘에 반드시 사람이 살리라” 할 때 이 예루살렘은 새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교회를 가리킵니다. 천사가 스가랴에게 말했습니다.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촌락과 같으리라 하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와, 정말 놀랍고 탁월한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취하여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 (《스가랴서》 2:12)

여러분은 여기서 예루살렘이 어떤 특정 토지를 가리킨다고 결코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는 하나님의 교회를 가리키며, 하나님의 교회가 곧 예루살렘이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부터 바깥으로 한 바퀴 더 축복이 확장되면 유다 온 땅이 되고, 거기서 또 한 바퀴 더 확장되면 예루살렘에서부터 유다 온 땅과 땅끝까지 이르게 됩니다! 곧 온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이게 되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요 하나님의 예루살렘이며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시대에 이사야는 말했습니다.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느냐?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는 자를 내가 돌보리라.”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들이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눈에 든 보배로 건축되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이 관계야말로 진정한 교회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은 양육하는 신학이며, 세워지는 교회는 양육하는 교회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게 하는 교회입니다. 이는 얼마나 중대한 은혜입니까!

여러분은 우리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좋아요’)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스가랴서》 2장과 우리 이 세대의 관계를 아주 명확하게 연결 지었고, 매우 분명하게 풀어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오늘 나눔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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