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1.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말씀은 제가 참 전하기 좋아하는 주제인데, 바로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가끔 제가 “돈 많이 벌고 싶으십니까?”라고 물어보면, “아이고, 목사님, 왜 그런 걸 물으세요? 당연히 벌고 싶죠,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라고 합니다. 벌고 싶지요. 그렇다면 방법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방법도 없는데 어떻게 돈을 벌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또 묻습니다. “번성하는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꿈에서라도 간절히 원하죠!”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좋습니다!” 하면, 그가 “뭐가 좋은데요?” 하고 묻습니다. 제가 “저한테 비결이 있거든요” 하니, “그 비결이 뭔데요?”라고 묻습니다. 이 비결은 정말 기가 막히게 좋습니다. 간단하고, 쉽고, 피를 흘릴 필요도, 땀을 뻘뻘 흘릴 필요도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의 얼굴을 보니 안색이 싹 변하더니 새파랗게 질리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람이 저에게 “아니, 그게 무슨 방법입니까?”라고 하더군요. 제가 “아니, 이게 얼마나 좋은 방법인데요!”라고 하니, 그 사람이 “저는 목사님이 창업하는 법이나, 사업을 개척하는 법, 회사를 키우고 대기업, 유니콘 기업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실 줄 알았죠”라고 하는 것입니다.
유니콘 기업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됐습니다, 우리는 애초에 가는 길이 다르네요!” 성경에 제 마음을 깊이 뒤흔든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주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제가 주님을 갓 믿었을 때의 저는 다른 사람들과 좀 달랐습니다. 저는 공부를 아주 잘하는 우등생이었습니다. 매사에 진지하고 철저하게 공부하는 사람이었고, 엄격한 훈련을 받은 엔지니어였습니다. 제가 주님을 갓 믿었던 그 시절, 성경을 읽다가 이 구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어디를 읽었을까요? 신명기 28장을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성경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를 지나 곧바로 신명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기 시작한 초기였지요. 그런데 무엇을 읽었겠습니까?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신명기 28:1)
그 당시 저는 주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된 초신자였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무것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는데, 와!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까요? 뇌성벽력처럼 가슴을 울렸습니다! “그가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제가 말했습니다. “Very good! 하나님, 저 이거 원합니다! 아이고, 저 이거 정말 원합니다. 이걸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무조건 받아야지요!” 그리고 2절을 읽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신명기 28:2-6)
얼마나 좋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어디 가서 찾겠는가? 쇠신을 닳도록 찾아 헤매도 못 찾을 것을,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얻었구나!” 이런 횡재가 나에게 찾아오다니, 정말 이런 하나님이 계시단 말인가? 진짜 계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신명기 28:7-8)
저는 속으로 ‘와!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싶었습니다. 제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건 제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하나님이 이런 사소한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실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하나님이란 저 높은 곳에 계신 옥황상제 같은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 중국 사람들의 관념에서 옥황상제가 백성들의 삶을 일일이 신경 쓰겠습니까? 보십시오,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픕니까? 캄캄한 옛 사회에서 누가 백성을 돌봐 주었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니, 세상에나! 우리 집 창고까지 돌봐주신다는 겁니까? 창고, 냉장고, 은행 계좌, 그리고 내 손으로 하는 모든 일까지 말입니다. 좋습니다! 저는 공부를 철저히 하는 사람입니다. 대충 읽고 마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우등생 스타일은 이걸 읽자마자 ‘좋아! 우리 하나님께 ‘좋아요’ 한번 누르자!’ 하는 것입니다. ‘좋아요’만 누르고 끝낼까요? 어떻게 끝냅니까? ‘좋아요’를 눌렀으면 그대로 행해야지요! “하나님, 제가 그대로 행하겠습니다!”
어차피 그 당시에는 주님을 갓 믿어서 땡전 한 푼 없이 찢어지게 가난했고, 길거리에서 나앉아 잘 판이었습니다. ‘좋아, 어차피 이렇게 가난하고, 어차피 이렇게 비참하게 사는데, 주님의 말씀대로 한번 해보고 모험을 걸어보자. 이 정도 리스크는 감당할 수 있다.’ 그렇지 않습니까? 손가락으로 꼽아보아도 무슨 손해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행해서 잘되면 대박인 것이고, 안 되어도 nothing to lose!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잃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좋다, 해보자!’ 딱 손가락을 튕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위험부담이 없으니까요.
세상에나! 하나님의 복이 제게 임하는데, 정말이지 받아 누릴 곳이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제 평생을 살아오면서 저는 오직 이 길, 곧 ‘삼가 듣고 지켜 행하는 길’만을 굳게 붙잡았습니다! 여러분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제가 종교적인 율법주의에 빠진 줄로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날까지 주일 예배를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코로나 걸렸을 때는 어떡했습니까?”라고 물으신다면, 그때도 제 설교 녹음이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빠진 줄 아십니까? 저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게 장난입니까? 오늘 우리 형제자매님들 중에 저 같은 성격을 가진 분이 많을까요? 많지 않습니다. 저 같은 성격은 흔치 않습니다. 모범생의 철저한 성격인데, 장난으로 하겠습니까?
그래서 ‘삼가 지켜 행하라’는 말씀을 읽었을 때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와, 하나님께서 내가 살아가는 이 하찮은 일까지 신경 쓰신단 말인가?’ 제가 표현이 조금 거칠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정말 지극히 작은 일 아니겠습니까?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영원히 살아계신 참 하나님께서 나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을 돌보신다니! 이 사실이 제 내면의 인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뼛속 깊이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참 얌전해 보였을지 모릅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도 잘했고, 말썽 한번 피우지 않아 부모님 눈에는 착한 아들이었고, 남들의 부모님 눈에도 모범적인 아이였습니다.
저는 제가 참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착실하게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재수 없는 날들을 겪으면서 한 가지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운이 나쁠 때는 물을 마셔도 이가 시리고,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보기에 참 좋은 직장이 있었지만, 그 직장은 저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 일을 참 마음에 들어 했지만, 그 일은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어떤 남자가 여자를 참 마음에 들어 하는데, 그 여자는 남자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주변에서 다리를 놓아주고 한 방에 앉아 맞선을 보아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맞선을 보아도 내가 좋아해 봤자 상대가 나를 싫어하면 헛수고입니다.
일이 꼬이고 망할 때는 내 말과 능력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합니다! 저는 완전히 깨졌습니다. 그 후로 저는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내 이깟 작은 재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내 힘을 의지하려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기댈 수도 없구나!’ 그때 저는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그러다 신명기 28장 1절부터 14절을 기록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보물을 발견한 것입니다! 정말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을 만진 것 같았습니다. 나를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직장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고, 과장이 아닙니다. 얼마 전 저는 그 당시 직장의 사장님을 만났는데, 그분은 이미 일흔이 넘으셨습니다. 그분도 저에게 “그 일자리는 하나님이 자네에게 주신 걸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저와 같은 열심과 중심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저는 영어 성경책 한 권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습니다. 페이지가 다 떨어져 나가고 까맣게 손때가 타서 부스러질 정도가 되어 결국 버려야 할 정도였습니다. 중국어 성경책은 세 권을 닳아 없어지도록 읽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조금의 과장도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들으면 이 모든 복이 뒤따라온다고 하셨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제가 바보입니까? 열심히 읽지 않겠습니까? 저는 바보가 아닙니다. 저는 제 지능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고, 특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일에 있어서는 지혜롭게 처신합니다. 지금은 성경책이 닳아 없어질 일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전자 성경이니까요. 전자 성경을 닳게 만들려면 정말 대단한 내공이 필요하겠지요.
신명기 28장 1절부터 14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은 제가 직접 경험한 것이며,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날 하나님이야말로 최고의 보물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귀한 것을 보물로 여기지 않을까? 참 어리석구나!’ 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가끔은 화가 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어리석음을 정말 싫어하고, 미련하게 행하는 것을 보면 속이 터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머리에 똥만 찼습니까?”라고 하면, “왜 욕을 하십니까?”라고 합니다. 사실을 말한 것인데 무슨 욕입니까? 당장 머릿속을 열어보면 알 것 아닙니까? ChatGPT보다도 못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참 답답합니다.
복을 받는 것, 제가 처음으로 물질의 복을 받기 시작한 것이 어디서부터였는지 아십니까? 바로 십일조 헌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집으로 걸어가는데, 목사님이 “이제 십일조를 드리기 시작하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아니, 다른 얘기도 많은데 왜 하필 돈 이야기를 하실까?’ 마음이 참 불편했습니다. 집으로 걸어가던 중, 길 중간에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십일조를 드리자.’ 그 후로 쏟아진 하나님의 복은, 세상에나! 재정적으로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헌금하신다고 해서 제가 감사해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헌금하고 나면 처음에는 마음이 쓰라릴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복이 임하니,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드디어 내가 지혜로운 결정을 내렸구나! 바보 같던 녀석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 오늘 우리 가운데 이런 지혜로운 결단을 내린 분들이 많아 계속해서 헌금을 드립니다.
지금은 온몸과 온 마음, 제 전인격을 온전히 바쳐 헌신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너무나 좋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지혜로워야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이 헌금하면서 “목사님, 제가 헌금했는데 왜 감사하다는 말씀도 안 하십니까?”라고 바라지 마십시오. 제가 왜 감사합니까? 여러분 스스로 지혜로운 결정을 내린 것에 감사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성장해 가십시오. 30년 넘는 신앙생활 동안 저는 주일 예배를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고, 주일 예배뿐만 아니라 구역 성경공부 모임도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대단한 일입니다! 평범한 헌신이 아니며,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 제가 이날 결혼하는데 와주실 수 있나요?”라고 묻습니다. 제가 “어느 날입니까? 아, 그 시간은 안 됩니다. 저는 창세 전부터 그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약속했습니다. 당신 결혼식 때문에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미 다른 분과 선약이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그가 “누구와 약속하셨는데요?” 하면, “하나님과 약속했습니다. 그러니 안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저 같은 사람, 대단하지 않습니까? 대단하지요! 어찌 대단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여러분이 제가 지칠 줄 모르고 사역하는 모습을 보신다면, 그것은 오직 제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철저히 지켜 행하기 때문입니다! 조금의 타협도 없습니다. 귀신도 이 사실을 잘 압니다. 귀신은 종종 저에게 함정을 파놓습니다. 귀신도 제가 어리석은 사람을 몹시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제 내면의 상태를 귀신은 훤히 꿰뚫고 있습니다. 한번은 사역을 하는데, 속에서 저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육신으로는 그 사람이 너무 답답하고 귀찮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해야 하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기에 양쪽에서 갈등이 일어났지만,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 안에 있던 귀신이 그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허공에서 들린 소리가 아니라 귀신들린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 귀신이 “내가 이 사람을 죽여버리려고 했는데…”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 자신이 스스로를 죽이겠다고 말한 것이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귀신이 그 사람 안에서 말한 것입니다. “너희들이 정말 지긋지긋하다!” 귀신은 제가 있는 한 그 사람을 죽일 수 없으니 제가 몹시 싫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귀신이 교활한 눈빛으로 “너도 이 사람 사역하는 거 엄청 싫어하잖아!”라고 하더군요. 저에게 함정을 판 것입니다. 그런 함정이 통할 줄 압니까? 사실 그 말 자체는 맞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내 육신으로는 이 사람을 돕는 것이 정말 싫다. 내 육신의 뜻대로라면 이런 사람들은 멀리하고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육신의 원함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다! 이 사람이 내 밑에서 양육을 받는 한, 너에게는 틈이 없다. 당장 물러가라!” 그러자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여러분이 보는 저의 지칠 줄 모르는 섬김은 모두 신명기 28장 1절부터 14절의 말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저는 15절 이후에 나오는 말씀은 결코 원치 않습니다. 저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신명기 28장 15절 이후의 저주는 저와 상관이 없고, 14절까지의 축복이 바로 저의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지켜 행하고자 합니다. 어느 정도로 지켜 행하느냐? 저는 ‘화인명정신학(华人命定神学)’을 창립한 사람입니다. 화인명정신학은 이 시대에 기독교 신학 체계 전체를 매우 체계적이고 명확하게 정립한 유일한 신학입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요?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청종하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기를 싫어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을 볼 때마다 제 마음이 몹시 괴롭고 답답합니다. 예전에 제가 부동산 사업을 하던 한 분을 사역한 적이 있습니다. 그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해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려던 사람이었습니다. 뛰어내리기 직전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날 저는 그분을 붙들고 함께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분도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기도하고 났더니 바로 다음 날 일거리가 들어왔습니다. 원래 통장에 5만 위안밖에 남지 않았고, 아이는 영국에서 유학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26만 위안에 내놓았던 주차 공간 하나를 어떤 사람이 29만 위안에 사 간 것입니다. 그 3만 위안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덤으로 더 얹어주신 것입니다.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본인은 26만 위안을 불렀는데 상대가 29만 위안을 준 것입니다. 그 3만 위안은 십일조로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건 십일조로 드려야 합니다”라고 했더니, 그 사람은 “갚아야 할 빚이 너무 많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빚을 갚더라도 먼저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라고 권면했지만, 그는 그 돈으로 빚을 갚아버렸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셔서 그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200만 위안이라는 큰돈이 들어오게 하셨지만, 그는 여전히 헌금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반년 후 그가 다시 찾아와 또 뛰어내려 자살하겠다고 하더군요. 제가 말했습니다. “뛰어내리십시오. 뛰어내리면 저 푸른 하늘 속으로 사라지겠지요. 참 배짱도 두둑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공장을 하다가 빚 때문에 사람들에게 얻어맞아 갈비뼈가 부러졌습니다. 이번에는 어떡할 겁니까? 다리를 부러뜨릴 참입니까? 허리를 부러뜨릴 참입니까, 다리를 부러뜨릴 참입니까?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저주 가운데 살아가려 합니까? 왜 굳이 저주 가운데 살려 하십니까? 제가 말이 좀 지나칠지 모르나, 부디 뼈가 부러지고 다리가 부러진 뒤에야 비로소 순종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때는 돌이키기도 참 어렵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그 열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까? 저는 사람들의 지혜가 인공지능 로봇보다, ChatGPT보다도 못하다는 사실에 참으로 놀랍니다. ChatGPT에게 물어보아도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지켜 행하라”고 답할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로봇에게 물어보아도 가르쳐 줄 텐데, 사람이 그것을 모르고 있으니 얼마나 비극입니까? 저주 아래 사는 사람은 많고 복을 누리는 사람은 적으며, 지혜로운 사람은 적고 어리석은 사람은 많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는 것이 무엇이 나쁩니까? 성경에는 순종한 사람과 불순종한 사람의 수많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이 잘못 쓰인 것 아닙니까?”라고 하지만, 잘못 쓰이지 않았습니다.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과 불순종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이 넘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하나님은 우리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듣는 것도 아니고 안 듣는 것도 아닌, 순종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는 잘 순종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세 번째 부류입니다. 순종하지도 않으면서 순종했다고 착각하니 이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 혼자 착각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무엇을 들었습니까? 어떤 사람은 “목사님, 저는 하나님을 정말 사랑합니다”라고 합니다. 제가 “어떻게 사랑합니까?”라고 물으면, 멍하니 저를 바라보며 “목사님 말씀대로, 가르쳐주신 대로 다 행하고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행했습니까?”라고 물으면 그저 눈만 껌벅거립니다. 계획을 세우고, 핵심을 잡고, 콘텐츠를 만들고, 착실히 성장하며, 목표를 분명히 하고, 전략을 명확히 세우며, 올바른 방법으로 발을 땅에 딛고 행하라고 했는데, 그중에 무엇 하나 제대로 들은 것이 있습니까? 들은 것은 하나도 없고 그저 세월만 낭비하며 분주하게 헛돌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적 없이 바쁘기만 한 사람들을 보면 참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바빠서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너무 바빠서 축복을 놓쳐버리며, 너무 바빠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시간조차 빼앗겨 버립니다. 계속 바쁘게 사십시오, 행운을 빕니다! 참으로 기이한 현상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저는 바쁘지 않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저를 참 신기하게 봅니다. “저 사람은 바쁘게 뛰어다니는 법이 없네.” 하지만 제가 해내는 사역의 양은 목사 열 명이 와도, 스무 명이 와도 따라오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일하면 일할수록 마이너스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텐데, 일만 벌이면 마이너스가 됩니다. 사업을 하면 돈을 벌어야 마땅한데, 손을 대는 족족 손해를 보니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바쁘든 바쁘지 않든 간에,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들어야 합니다.
제가 한가해서 교회에 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 저도 몹시 바빴습니다. “목사님은 안 바쁘시다면서요?”라고 하시겠지만,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역할 것은 사역하고, 하나님을 예배할 때는 온전히 예배하며, 결코 하나님의 일을 세상일 뒤로 미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최우선이었습니다. 심지어 회사 업무가 끝날 무렵 귀신들린 사람이 찾아오면, 근무 시간 중에도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물론 저에게는 그런 여건이 되었기 때문이니, 여러분은 함부로 흉내 내지 마십시오. 그런 여건이 안 되면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저는 사장이었기 때문에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깨달아야 합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사무엘상 15:22)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하고 엄격한 태도가 바로 우리 화인명정신학의 태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인명정신학은 수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신학적 난제들을 명쾌하게 풀어내고 바로잡았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은 어린아이가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한 살 때는 울고 보채지 않는 것이 순종입니다. 세 살 때는 부모의 심부름을 할 줄 아는 것이 순종입니다. 열 살 때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부모의 말을 잘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 살이 되어서도 한 살짜리처럼 울지 않는 것으로 만족하며 멍하니 있다면 그것이 순종입니까? 그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주님을 갓 믿었을 때의 기준이 지금도 그대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끊임없이 성장하며 높아집니다. 우리는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한 살 때는 그 나이에 맞게 사랑하고, 세 살 때는 그 나이에 맞게 사랑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분량에 이르면 사역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비극은 어디에 있습니까? 신앙생활을 30년이나 했으면서도 여전히 세 살배기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병입니다. 그것을 순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끊임없이 자라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는 끝이 없습니다. 사람이 성장하지 않는 것은 커다란 비극입니다!
최근에 ‘피터(Peter)’라는 단어가 제 눈에 띄었는데, 어떤 사람이 ‘피터의 법칙(Peter Principle)’이라는 이론을 정립했습니다. 뉴턴은 들어보셨지요? 뉴턴의 세 가지 운동 법칙 말입니다. 그런데 피터의 법칙은 들어보셨습니까? 1969년에 한 학자가 《피터의 법칙》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이론이 참 흥미롭습니다. 사람이 능력이 있어서 직장에서 계속 승진을 하다가, 결국 자신의 무능함이 드러나는 직급에 이르면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피터의 법칙입니다. 왜 수많은 기업에서 사람들이 승진을 거듭하다가 특정 위치에 이르면 일을 망쳐버릴까요? 이것이 바로 피터의 법칙입니다. 사도 베드로(Peter)의 모습과도 묘하게 닮지 않았습니까? 그 원인은 바로 ‘성장의 부재’에 있습니다.
제가 이 피터의 법칙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한마디는, 사람은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화인명정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는 신학이자, 동시에 ‘성장의 신학’입니다. 성장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삼가 들을 때 일어납니다. 그렇게 할 때 반드시 성장하게 되며,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고 제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될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것은 번영 신학이 아니라 ‘성장의 신학’입니다. 우리는 피터의 원리 속에 살지 않고 ‘바울의 원리’ 속에 살아갑니다. 화인명정신학의 본질은 사도 바울의 신학이며,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신학입니다. 우리는 푯대를 향해 전심전력으로 달려가며, 주님을 뵙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성장하고 추구하는 삶을 삽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주님을 뵈올 때까지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 마음속에는 아주 간절한 소망 하나가 있습니다. 제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듣는 것입니다. 이 소망이 있기에 저는 매일 전심으로 달려가고 있으며, 결코 헛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며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줍니다. 오늘날 화인명정신학은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이 제 설교를 메신저 방에 공유하여 듣게 되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좋다! 참 깊이가 있다!”라고 감탄합니다.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화인명정신학은 전심으로 성장을 추구하는 신학이며,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 안의 황당하고 비성경적인 현상들을 명쾌하게 규명해주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30년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해서 “나는 순종하고 있다”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30년 전에 말씀 한마디 듣고 지난 29년 동안 순종하지 않았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서론이 35분이나 되어 조금 길어졌습니다. 은혜가 되십니까? 좋습니다. 이제 본문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말씀을 읽을 때 여러분 모두가 제가 처음에 이 말씀을 읽었을 때 받았던 충격과 감격을 동일하게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당시 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전율과 흥분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2. 본문 말씀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신명기 28:1-14)
이 말씀이 우리 모든 형제자매님들의 삶에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3.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토록 놀라운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오늘 우리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허락하사 주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이 곧 영이요 생명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며 신뢰하고, 주의 말씀대로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철저히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신명기 28장 1절부터 14절에 선포된 모든 축복이 우리 삶에 임하게 하시고, 주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며, 만민이 주님의 백성이 땅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경외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일으켜 세우사 모든 형제자매들이 주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친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본문의 배경
이 말씀이 기록된 배경을 아십니까? 이 말씀은 매우 가슴 아프고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기록되었습니다. 왜 비극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 강한 팔로 애굽의 모든 장자를 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직접 눈으로 보았고, 홍해가 마른 땅처럼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훈련을 거쳐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야 할 때, 그들은 들어가기를 거부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진노를 사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게 되었고, 그 40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려 하셨습니다.
그때 모세가 기록한 책이 바로 ‘신명기(申命記)’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금 천명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다시 새겨주는 책입니다. 모세가 이 말씀을 기록할 당시, 그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모세가 어떤 인물입니까! 애굽에서 수많은 표적을 행하였고, 당대 최강대국 애굽의 절대 권력자 바로 왕과 맞섰던 사람입니다. 바로 왕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지만, 모세는 바로 앞에서 담대히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백성들이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직접 보고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했으니 이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결국 그 완고하고 불순종하는 백성들 때문에 모세와 여호수아, 갈렙 같은 믿음의 사람들까지 광야에서 40년을 함께 방황해야 했으니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그 40년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신명기를 기록하는 모세의 글에는 원망이 전혀 없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속이 터졌겠습니까! 이때 모세의 마음에는 ‘이번에도 들어가지 못하면 또 40년으로 끝나지 않을 텐데’ 하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종종 배가 되는데, 만약 80년이 된다면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이번에도 들어가지 못하면 정말 파멸이다’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신명기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신명기 28장에 이르러 가장 찬란한 축복의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복을 원하십니까, 원치 않으십니까? 저는 원합니다! 그래서 저는 크리스천을 세 부류로 나눕니다. 첫째는 애굽에서 아직 나오지도 못한 사람, 둘째는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죽어간 사람, 셋째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법을 배우십시오.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바에야 왜 주님을 믿습니까?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선포합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신명기 30:19)
하늘과 땅을 증인 삼아 이스라엘 백성 앞에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명백히 제시하며 선택하라고 외쳤습니다. 복을 택하든지 저주를 택하든지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들었습니까? 듣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인도로 약속의 땅에 들어갔지만, 과연 순종했습니까? 오늘 우리에게는 이 말씀이 뇌성벽력처럼 크게 울리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귀머거리에게 외치는 소리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대대로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은 적고 불순종하는 사람은 많아, 결국 ‘저주의 본보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경외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왜 떨리는 마음이어야 할까요? 자칫 잘못하면 우리 또한 저주의 본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굳이 사서 저주의 본보기가 되고 싶겠습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이 제게 찾아와 “목사님, 제가 어찌해야 합니까?”라고 하소연할 때, 제가 “당신은 차라리 예수를 믿지 말고 절에 가서 절이나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렇게 권하는 것이 차라리 그 사람에게 덜 해롭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저주의 본보기는 되지 않을 것 아닙니까? 저도 참 답답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라고 하지만, 지금 돌이키지 않으면 정말 저주의 본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설교에서 저는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 ‘누구든지’에 포함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저주 아래 들어가면 모든 것이 끝장납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핵심적인 유익을 보십시오. 돈을 벌고 싶으십니까? 돈을 버는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와 소유가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연약하거나 병든 자녀를 낳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모두가 건강하고 복된 자녀를 원합니다. 원수나 경쟁자가 여러분을 치러 올 때 이기는 것, 여러분의 관심사 아닙니까? 하나님의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의 어리석음은, 자신들이 바라는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의 약속 안에 다 들어있는데도 믿지 않고 제멋대로 자기 길을 갔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도 깊이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다만 가는 길이 다를 뿐입니다. 그러니 올바른 비결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세가 이 비결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누어 주었지만 듣는 자가 극히 드물었습니다. 신명기 28장은 총 68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절부터 14절까지의 축복은 전체의 20%에 불과하고, 15절부터 68절까지의 80%는 저주에 관한 말씀입니다. 80%가 저주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러니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저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제 삶의 경계선은 명확합니다. 저는 15절 이후의 저주가 아니라 1절부터 14절까지의 축복을 택했습니다. 15절 이하에서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부족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적군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 마침내 너를 멸할 것이라 (신명기 28:47-48)
여러분은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저는 당연히 1절부터 14절을 택하겠습니다. 저주를 택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제가 왜 온 힘을 다해 사역하는지 아십니까? 몸이 파김치가 될 정도로 지칠 때가 많지만, 다시금 영을 깨워 앞으로 달려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 앞에서 지혜로운 선택을 하십시오. 저는 신명기 28장 1절부터 14절의 약속을 굳게 믿으며, 동시에 15절부터 68절의 경고 또한 엄중히 믿습니다. 사망이 아닌 생명을, 저주가 아닌 축복을 택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저는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파하는 것은 허황된 번영 신학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지켜 행하는 신앙’입니다.
5. 하나님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신명기 28:1)
이 말씀의 뒷부분이 바로 오늘의 핵심 주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묻겠습니다. 이 약속을 원하십니까? 원하지요! 그런데 왜 오늘날 뛰어난 삶을 살지 못하고 여전히 비참하고 메마른 모습으로 문제투성이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자기 생각만 들었기 때문입니다. 왜 세계 만민 위에 뛰어나지 못할까요? 아직 제대로 듣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머릿속에 온갖 세상 쓰레기가 가득 차 있으니 말씀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생각하면 빗나가고, 들으면 왜곡하고, 행하면 제 길로 가버립니다. 아직도 만민 위에 뛰어나지 못하고 신명기 28장 15절 이하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정말 심각하게 돌이켜야 합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존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삭과 야곱도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다윗 왕국을 세웠습니다. 다니엘과 느헤미야 역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으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바쁘다는 핑계를 대지 마십시오.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저는 목적 없이 맹목적으로 바쁜 것을 가장 경계합니다. 바쁘게 죽어라 일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어떤 형제는 1년 내내 정신없이 일했지만, 결국 천만 위안을 날렸습니다. 차라리 바쁘지 않았더라면 천만 위안이라도 아꼈을 텐데 말입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만민 위에 뛰어나게 하려 하시는데, 기어코 그 길을 마다하고 유니콘 기업을 만들겠다며 뛰어듭니다. 유니콘의 뿔은커녕 짐승처럼 비참해지고 마는 것이 현실입니다.
6.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너를 따르리라
많은 사람이 착각을 합니다. 교회를 떠나면서 “목사님, 저를 위해 축복기도 좀 해주세요”라고 합니다. 기도해 주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축복이란 몇 마디 기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축복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지켜 행할 때, 복이 여러분을 따라오는 것입니다. 복을 좇아다니지 말고, 돈을 좇아가지 마십시오. 돈이 여러분을 따르게 하십시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재정이 따르고 사업이 번창하며 모든 복이 뒤따라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내가 복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복이 나를 따라오는 삶입니다. 그 복의 내용이 얼마나 풍성합니까!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신명기 28:3-8)
얼마나 좋습니까! 틈날 때마다 이 구절을 묵상하고 선포하십시오. 끊임없이 선포하다 보면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앞선 조건을 잊지 마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지켜 행하면!” 손님이 오면 ‘손님이 왕이다’ 하면서 손님의 말만 듣고 하나님의 말씀은 팽개쳐버린다면 어떻게 복이 임하겠습니까?
한번은 제 사무실에 어떤 분이 친구를 데리고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제 영의 눈을 열어 보여주셨습니다. 그 사람 뒤로 귀신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데, 거의 한 개 소대 규모인 스무두세 마리는 되어 보였습니다! 두 발로 서 있는데 다리는 짧고 몸통통은 길며, 두 손을 들고 있었습니다. 맨 앞의 큰 놈은 사람 키의 절반만 하고, 그 뒤로 점점 작아지더니 맨 끝에는 쥐새끼만 한 것까지 줄줄이 엮여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어서 오십시오, 앉으세요” 하면서도 속으로는 ‘저 귀신 떼가 내 소파를 더럽히지나 않을까’ 싶었습니다. 제가 소개자에게 “이 친구분은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고 묻고는 “혹시 요즘 하는 일마다 꼬이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아셨습니까?” 하며 놀라더군요. 제 눈에 보이니까 아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겪는 일마다 실패와 불운의 연속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축복이 따르는 삶이 아니라 저주가 따르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떼로 붙어 다니는데 하는 일이 잘될 리가 있겠습니까?
7. 하나님께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하나님께서 너를 치러 온 대적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실 것입니다. 세상에는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납니다. 경쟁자가 한순간에 나를 짓밟아버리면 그동안 피땀 흘려 쌓아온 것들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됩니다. 사업이란 참 냉혹합니다. 저도 예전에 사업을 구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정수기 사업이 괜찮아 보여 몇 달 동안 시장 조사를 해보았더니, 이미 수많은 업체가 포화 상태였습니다. 목공 사업을 알아보니 그 분야 역시 경쟁자가 넘쳐났습니다. 어떤 분야든 경쟁이 치열합니다. 무턱대고 뛰어들었다가는 경쟁자들에게 짓밟히기 십상입니다.
어느 업계나 마찬가지입니다. 들어가 보면 이미 레드오션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실력을 깊이 쌓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충분한 실력과 경쟁력을 갖춘 후에 진입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고생만 합니다. 그러나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실 것이며, 여러분을 대적하는 자들을 여러분 앞에서 완전히 패하게 하실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핵심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삼가 지켜 행하는 데 있습니다.
쉬운 분야는 없으며 어디나 경쟁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고 복을 쏟아부어 주신다면, 어찌 경쟁력이 없겠습니까? 당연히 탁월해집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님들이 이 영적 원리를 깊이 깨닫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핵심은 말씀을 삼가 행하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입니다!
8. 지켜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사역을 하면서 참 흥미로운 현상을 보게 됩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결단하면 귀신은 그를 율법적인 종교인, 바리새인으로 몰아갑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지면 세상 사랑으로 사정없이 내몹니다. 영적인 것을 추구하다가 잘못 빠지면 기복적인 번영 신학으로 가거나, 아니면 ‘가난해야 거룩하다’는 빈곤 신학에 빠져 부자를 증오하고 현실의 일은 내팽개쳐 버립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충실하게 일하라고 독려하면 이번에는 세상에 푹 빠져버립니다. 참으로 다루기 힘든 난제입니다.
능력도 없고 일도 제대로 못 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하면 무엇을 사랑한다는 말입니까?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을 갖추되, 현실에서 먹고살 수 있는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실력을 키우도록 도와주었더니, 실직 상태에서 돈을 좀 벌게 되자마자 덜컥 세상을 사랑해 버립니다. 제 입장에서는 “이제야 세상을 사랑할 자격이 생겼으니 마음껏 사랑해 보십시오,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양이 때로는 참으로 힘겹습니다. 실제적인 삶을 살라고 권면하면 세상으로 가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권면하면 종교적인 형식주의에 빠져 일도 안 하고 믿음으로만 살겠다며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그러므로 “삼가 지켜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들어야 합니다.
9. 어떻게 듣고 어떻게 지켜 행할 것인가?
지금까지 말씀을 지켜 행할 때 받는 복을 말씀드렸다면, 이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나누겠습니다.
1. 체계를 세워야 합니다
그동안 기독교 안에는 체계적인 논리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과거에 철학을 전공한 어떤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한 크리스천이 그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그 철학자가 저에게 “그 사람의 이야기는 전혀 체계가 없고 앞뒤 논리도 맞지 않더군요”라고 했습니다. 그 철학자는 신앙이 깊지 않았지만, 저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저는 모든 질문에 성경적이고 체계적으로 명쾌하게 답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저에게 질문할 때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목사님, 한 가지 더 여쭈어보아도 되겠습니까? 가르침을 청합니다.” 예의상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왜 그랬을까요? 화인명정신학은 사람의 뜬소문이나 풍문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견고한 체계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체계를 세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기초이고 무엇이 핵심 진리인지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진리에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본말이 전도되면 바리새인이 되어 망하게 됩니다. 진리는 반드시 확고한 뼈대와 체계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2. 영원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영원한 계획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 무엇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온전한 연합을 이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랑이시요, 교회는 신부입니다. 어떤 개인이 거울을 보며 화장하고 눈썹을 문신하면서 “내가 예수님의 신부다”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잘못된 이해입니다. ‘교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교회와 하나님이 온전한 일치와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입니다. 화인명정신학이 확고한 신학 체계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이 영원한 뜻과 계획 안에서 모든 것을 정립했기 때문입니다.
3. 본받아 계승해야 합니다
반드시 본받아 계승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집니다. 누구를 본받아야 합니까?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대로 우리도 행하는 것입니다. 제 어머니께서 저에게 “아들아, 다른 사람들의 설교는 너무 복잡한데 네 설교는 참 단순하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본받고, 바울을 본받아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앞서 가신 분들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법’입니다. 참으로 명쾌하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이 자기만의 방식을 만들어내는데,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제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방식을 따릅니다.
10.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지켜 행할 때, 우리가 염려하던 세상의 모든 문제는 지극히 사소한 일이 되어버립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신명기 28:1)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며,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가운데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를 보배롭게 여기사 그분의 원대한 계획을 이루는 통로로 불러주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 속에서 지혜로운 건축자로 섬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요 복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주님 앞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충성이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충성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삼가 듣고 철저히 순종하십시오. 이 모든 복이 여러분의 삶을 뒤따라올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가 모든 형제자매님들에게 임하여 더 많은 간증이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찬양을 한 곡 부르고 오늘 헌금을 드리겠습니다. 헌금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신 분은 헌금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복을 흘려보내는 통로입니다. 헌금이란 무엇입니까? 헌금은 얻는 것이며 심는 것입니다. 내가 헌금으로 교회를 먹여 살린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교만한 마음으로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며 도리어 저주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다시 주님께 감사함으로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헌금의 영적 의미를 깊이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최근 많은 성도님들이 성전 건축 헌금에 기쁨으로 동참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짓고자 하는 성전은 눈에 보이는 거대한 건물이나 외딴섬에 방주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온라인상의 영적 네트워크 교회를 구축하고 있으며, 최첨단 IT 기술을 사역에 접목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쯤에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화인명정신학의 논리와 말씀 체계로 여러분의 영적 질문에 명쾌하게 답해주는 시스템입니다. 사람이 아닌 시스템이므로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고, 로그인할 필요도 없습니다. 익명으로 무엇이든 자유롭게 질문하십시오. 놀랍고 탁월하게 답을 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난 세월 동안 아낌없이 투자하고 헌신해 온 결실입니다. 참으로 많은 재정과 노력을 쏟아부었습니다. 앞으로는 스마트 목양 시스템과 스마트 훈련 시스템까지 확장해 나갈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날 살아있다면 틀림없이 이러한 도구들을 총동원하여 사역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님들에게 더욱 실제적이고 깊이 있는 훈련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학습 능력 훈련, 실행력 훈련, 엔지니어링 논리 사고 훈련, 기업 경영 훈련에 이르기까지 전인격적인 훈련을 감당할 것입니다.
우리가 세우는 교회는 그저 주일에만 잠깐 쓰고 비워두는 비효율적인 건물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철저히 훈련받는 영적 훈련소가 되어야 합니다. 다양한 커리큘럼과 훈련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단순한 노래 연습을 하려면 노래방에 가십시오. 이곳은 그리스도의 군사로 훈련받는 거룩한 처소입니다.
다 함께 손을 들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가 주님의 온전하신 뜻 안으로 들어가 우리를 향한 선하신 계획을 이루기를 원합니다. 주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우리 삶 가운데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교회가 인터넷과 온 땅에 편만하게 세워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