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大家好,这次咱们讲的《创世记》第九章比之前讲的好多了,因为我成长了。有的人说,老师,最近我看到你又成长了。我也觉得是。我激励了大家一把,我就觉得非常开心。大家都知道自己有尊贵的形像,开始逃避那种不尊贵的东西。然后就从咒诅当中走出来,进到祝福的里面。如果你觉得你里面还有点困惑,看看挪亚,再看看自己,好像还是觉得自己没有尊贵,就说明脑袋里有问题,咱们就把脑袋里的东西清理清理。
Q1:老师,你不是说不能个人修行吗?是不是个人在那里祷告不管用,需要跟教会或者牧者一起祷告?
这问题挺有意思,你想怎么祷告就怎么祷告,但是你得知道,你做这事是建立在什么样的根基之上?如果建立在个人修行的根基上,你根本看不到神的恩典。我为什么这么说呢?因为,新约圣经里有一个很明确的主题,就是耶稣基督的身体。也就是说,整本《圣经》的最终指向就是耶稣基督的身体,就是建造教会,这是神的旨意。耶稣基督身体的建造就在彼此相爱的里面,神就住在我们当中。
如果你今天、明天、后天都关在密室,关了三年、五年你要干啥呢?你不造就别人,别人也造就不了你;你身上有毛病,别人不能说;别人身上有毛病,你也不管,你就在那儿慢慢酿造。如果是一块豆腐的话,就会成为臭豆腐;如果成了臭豆腐,神也不缺那块臭豆腐。所以,我们要对准神的心意,建造教会的根基得对。所以,对不去建造教会,不去牧养的人,我有一个非常犀利的评论,今天就不说了。脱离开了根基,义人还能怎么样呢?根基要毁坏,义人也不能做什么。
Q2:老师,我才加入江湖APP,教会就改变了,中午、晚上都没有直播祷告了,我很伤心、痛苦。
不用伤心。我为什么这么干?因为很多人祷告成精了。华人命定神学很注重一件事,就是悟性。人的悟性不通,其实是个悲剧,再祷告也没有用。如果你有病,祷告好了,就赶紧去学习。
我稍微说一下调整,上午的祷告是为了顽固病症,晚上的是为了大家一起祷告。如果大家真的很喜欢祷告,网上有的是录音,就跟着录音去祷告吧,今天太多人需要在悟性上被推动。咱们教会每隔一段时间就会有改革,如果改着改着,大家又需要祷告了,就再把祷告拿回来。这段时间大家一定要在悟性上突破,多学、多了解。如果你一学就卡住,赶紧找牧者,牧者带你祷告,把里面拦阻你悟性成长的邪灵干掉。
Q3:尊贵和高傲怎么区分?
这还不好区分吗?尊贵是尊贵,高傲是高傲,高傲不是尊贵。我们上学的时候,有些学校里的女孩子,尤其是校花,通常都很冷艳和高傲,鼻孔朝上,她们觉得那就是高贵。咱们当中有没有女孩子上高中、上大学的?鼻子如果长到眼睛上面去了,还觉得那样好,还觉得很伟大、高贵、尊贵,那就麻烦了!那是无知!让人看着很恶心,其实啥也不是。
我们小时候,有的暴发户穿个裘皮貂绒大衣,看着像个黄鼠狼似的,土得要死。但是她自己觉得因为外面穿了那层皮就高贵了,其实里头啥也没有,就喜欢嘚瑟。有人戴个大金链子,好像监狱里那个大铁链子似的,往脖子上一挂,好几斤。看着恶心不恶心?我看着是恶心,看不出来高贵。高贵是人的里面,不是外面的表情。
尊贵不是这样的,你看我穿个小褂子,干干净净地,不整一身汗臭,很普通。衣服裤子也没有爱马仕、LV,全都是普通老百姓穿的。但是,我一开口、一说话,里里外外都流露着尊贵。尊贵是从里到外的尊贵,高傲不过是个表面。
Q4:老师,我学校有个老师是个gay,跟他上一对一的课,他非常凶,总带着很差很差很负面的情绪,我从刚开始的时候跟他上完课要崩溃一两天,到现在只是上课的时候我里面会识别善恶,下课了就好了,不会再被影响了。这是我不够尊贵,还是说神借着这个老师来试验我、历炼我?
很多人喜欢弄出那副面孔,也许有的人他就长得很凶,如果你真的对付他一把,他真的不一定有那个料,只是被他的长相镇住了。一个尊贵的人,他里面一定有那种尊贵的性格和那种尊贵的知识。大家一定要在悟性上不断成长,如果你里面的悟性不成长,外面装出来的没有用。咱别往这是不是神在试炼你这方面思考,你就好好成长吧。成长了你就会发现,不管什么人和你相处的时候都觉着特别舒服,你不会觉着自己不会做人,你也不会觉着人家不会做人。
Q5:老师,请问堕胎算是流人血吗?那么如果基督徒因为战争杀人都算错吗?
你的问题挺厉害啊,一下子就把我难倒了。为什么呢?因为你这个问题,如果我回答算流人血,就是反堕胎。如果是意外怀孕了,咋整?我们总是想在理论上去探讨,而不是从自己去实践神的话的角度去看。你问完了这个问题你要干啥?是你怀孕了要想堕胎吗?我要告诉大家,不要再问这一类的问题,我是不管这些事,你爱流就流吧。
我给大家讲一个我自己的经历,做牧师这活没有点智慧还真不好干。有个人就来问我,老师我怀孕了,我就对她说,你跟我说这干啥?又不是我干的。她又问我,那我要不要堕胎呢?我告诉她,你想干啥就干啥去吧!又不是在我肚子里。
她就是想在我这拿答案,然后去找人替她背书。她想堕胎或者想生下来,我就告诉她都好,平平安安去吧。她说,老师,你这样说太没原则了。我就告诉她,我只有一个原则,就是你做完了以后,你心里头别自己责备自己。肚子里一个人,肚子外一个人,别把两个人一起败坏了,那不麻烦了吗?
曾经有一个人,认为堕胎是流人血,非逼着人生下来,生下来之后那人抱着孩子跳楼了,两条人命。那你说流人血没有?谁流的啊?那些牧者们流的呗。我不管这事,我不会替你做决定,你自己做决定。
Q6:一个姐妹欠了一屁股债,但是从小都觉得自己很尊贵,这种自我感觉良好的尊贵是真的尊贵吗?
这是很扯淡的尊贵,欠了一屁股债能尊贵吗?为什么欠了一屁股债?因为买不起的非去买,吃不起的非想吃,穿不起的非想穿,这叫尊贵吗?我看她还没有济公尊贵呢,人家济公都不在乎这个。
Q7:老师,现在有几个在别人眼中有问题的学生非常愿意来我的合唱队参加活动,其中有一个是被定位被害妄想症的学生。之前我搞不定他们的,现在总感觉这些孩子愿意接近我,听我的话,这是说我越来越尊贵了吧?
我看不是,以前教会里有一个人来找我,要求去另一个牧区,我就问他为什么呀?他说,我觉着那个牧区长比较好。我就去问那个牧区长,你知道这个人吗?他说,我知道。我再问,那你知道这个人为什么来找你吗?他说,不知道。我就告诉他,是因为那个人身上的鬼能欺负你,所以来找你。身上带着鬼的人来找你,是不是很要命?你还觉着自己很尊贵呢!如果你能赶那个鬼,那个鬼绝对不敢来找你。
你问我有这么严重吗?如果你喜欢这样就行,我从来不拦着。我告诉你,绝大多数的人的那两下子,可以说把体贴肉体都当做天父的爱了。就你赶鬼那两下子能解决被害妄想症吗?被害妄想症背后的鬼相当的邪恶,这种人都是极其自私的人。你要不要对付他身上的那些问题?你如果不对付,只是对他挺好,我看就算了。
Q8:老师,我找牧者帮我祷告,然后他们说要悟性通,还把我说了一顿,没有祷告。是不是我得罪他们了?还是我识别善恶了?
不是,他们只是说了一句真话!你没有得罪他们,他们也没有得罪你。他们只是告诉你,把悟性弄通是你努力的方向,悟性一通很快就好。医治释放这事很有意思,人只要悟性一通,鬼就骗不了他,悟性一通,鬼与人就分离,一赶,鬼就出去了。所以我们的医治释放都是悟性的教导加上灵里的祷告,让圣灵在他里面做工,使人鬼分开。悟性的教导是让他开始明白神的真理,因为真理可以使他得自由。
Q9:老师,我们的仇敌就是家里的人,面对家里人的抵挡,阻拦,逼迫,排挤,我们用什么方法比较好呢?是离开吗?
这不是方法问题。如果我们学会做人,靠着神的灵得着智慧,会怎么样?家里人也不会把你怎么样,但是你会变得灵活。问这种话的人,里面的宗教味还是比较足的。我一句话两句话也解释不清楚,要按着具体的状况来灵活处理。
有可能是你在家碗筷也不收拾,啥也不干,就在那儿吃喝等死,然后还觉着自己很属灵,家人当然讨厌你。还有就是一开口就是哈利路亚、感谢主,家里人听了以后特别讨厌,这就是没事找事。真正被家里人逼迫的其实不多。如果你稍微刚强起来,你就是为了造就他们,为了他们的好,为了祝福他们,那问题不就简单了吗?
Q10:老师,含的咒诅落在了迦南身上,是不是《申命记》5章讲的,神要追讨他的罪自父及子三到四代?
其实咒诅迦南与咒诅含没有什么太大两样,只是《圣经》里这么写。迦南成了迦南地的原住民,让以色列人读了《创世记》以后,就知道把迦南地的人斩尽杀绝,那是让以色列人遵行神的命令。结果他们进了迦南地的时候,他们不这么干,就讨了神的愤怒。这些事是让以色列人不但知道含受了咒诅,而且让以色列人知道挪亚咒诅了迦南,所以迦南人做那些很邪性的东西。
Q11:老师,我之前被家人逼迫带了一个符咒,然后就开始幻听。我把那个符咒扔了,可是还有幻听,这是怎么回事?
你以为把它扔了,鬼就走了?请鬼容易送鬼难!其实送鬼也不难,就是我们心里面太脏。你听了我讲这些,要学会悔改,过去整错了,今天整对它。
Q12:老师,问个题外话,一个人不能侍奉两个主,在组织里的能不能信耶稣?
大家千万别把这事套在跟政治相关的事上。其实政府也不希望你成为贪官,而是希望你为人民服务。那你好好为人民服务有问题吗?今天的基督徒太自私,所以基督徒三个字成了一个很扭曲的词。扭曲到什么程度呢?扭曲到容易让人觉得它是一个政治化的东西。其实《圣经》里的耶稣基督从来没有让我们去参与政治,但并不代表我们在政府下面不能好好做一个好公民。华人命定神学就是要让大家好好落实神的话,成为别人的祝福。别学那些福音派,什么派,闲着没事找事。
任何一个国家都没有反对人去做一个好公民,华人命定神学鼓励你做一个好公民,能造就一个人就造就一个人;能降低点社会的成本就降低点社会的成本。如果你在政府里面做工,就做一个政府工作人员,别去整那些乌烟瘴气的东西。好好做工,别宗教味十足,满脑子稀屎,啥也不是,成为社会的负担。能不能为社会降低点负担,少消耗点社会资源?能不能为社会多创造价值?能不能把自己塑造成有价值的人?这很重要!
什么叫侍奉两个主?就是不能侍奉神又侍奉钱。一个爱钱的人,做政府的官员,会成为一个贪官;做了商人,会成为奸商。如果一个爱神的人,做了政府官员,老老实实服侍这个社会,政府很喜欢你,又解决问题,又不给政府找麻烦;又能解决下面老百姓的疾苦;又不搞今天推倒这个,明天推倒那个;这个制度不好,那个制度不好,咱不搞那玩意儿。咱们在西方就尊重西方的政府,在东方就尊重东方的政府。
Q13:老师,我跟我爸说耶稣可以救你。他说耶稣不在我面前啊,《圣经》里耶稣在病人面前。神是活人的神,神在每个世代都在,从以前到现在都可以救人。老师,有没有什么办法跟他说?一讲见证,一讲神的话他就怕吵。
那是个鬼。我们很多人跟家里人说话,其实鬼在他里面说话你都不知道。所以有的时候人对鬼很温柔,还以为那是孝顺。其实家里人被鬼辖制,多么希望从辖制里出来。如果我们就顺着家人的话走,最后不是卡住了吗?
Q14:老师,基督徒可以练气功和瑜伽吗?
我看你最好操练敬虔的道理,《圣经》里没有气功也没有瑜伽。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창세기》 9장을 특별히 좋아합니다. 이 부분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모두 존귀하게 여기신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은 매우 존귀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정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격려를 받고, 발가락까지도 격려를 받아서 걷는 모습조차 달라집니다!
여러분이 아주 존귀한 사람이라면, 아직도 남의 닭을 훔치거나 몰래 나쁜 짓을 하겠습니까?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아주 부유한 사람이라면, 남의 닭을 훔치거나 몰래 나쁜 짓을 하겠습니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일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아주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아직도 남의 닭을 훔치거나 몰래 나쁜 짓을 하겠습니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보십시오. 사실 저는 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람들이 저를 그냥 부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저도 별로 잘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공부는 그냥 잘됐습니다. 이런 말을 다 듣고 나면 사람들은 “이 사람은 너무 자랑을 잘하네. 정말 짜증 나 죽겠다. 말하는 것만 들어도 마음이 불편하다”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말은 맞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안에 이 존귀한 형상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너에게 존귀한 형상이 있다”라고 말씀하시면 그는 “저에게 무슨 그런 형상이 있습니까?”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아주 아름답게 생겼다”라고 말씀하시면 그는 “어디가요?”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공부를 아주 잘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면 그는 “그럴 리가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아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면 그는 “불가능합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치료하겠다”라고 말씀하시면 그는 “의사도 치료하지 못합니다”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생각입니까?
이 세상에는 아주 재미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재미있냐 하면, 머릿속에 온통 존귀하지 않은 모습이 가득한데도 굳이 남의 닭을 훔치거나 몰래 나쁜 짓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창세기》를 특별히 좋아합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이 안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정말 훌륭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정밀하게 설계된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사람입니다. 바퀴벌레가 사람과 비교가 됩니까? 바퀴벌레는 아주 단순해서 그저 그런 것뿐입니다. 단순한 것이 오래 버티겠습니까, 아니면 복잡한 것이 오래 버티겠습니까? 당연히 단순한 것이 오래 버팁니다. 하지만 오래 버티는 것의 설계는 아주 형편없습니다. 부품도 얼마 없고, 바퀴 네 개에 핸들 하나만 달려 있습니다. 사실 핸들도 필요 없습니다. 뒤에서 밀면 됩니다. 그런 것을 뭐라고 합니까? 고물차라고 합니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포르쉐 한 대를 샀는데, 언덕을 올라갈 때 올라가지 못하고 연기만 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포르쉐 카이엔은 아주 비싼 차인데, 백만 위안이 넘는데도 언덕을 못 올라가네”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누군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건 포르쉐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번역을 잘못한 겁니다.” 제가 “그럼 뭐라고 번역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그는 “고물차라고 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정말 고물차인데도 여전히 아주 비쌉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사람입니다. 땅에 사는 사람은 존귀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뼛속 깊이 깨달을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어쨌든 제 충고 한마디를 들으십시오. 여러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존귀한 형상을 살아 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창조하실 때부터 여러분은 너무나 존귀했고, 매우 존귀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신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세기》 9:1)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사람에 의해 흘려질 것이니,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이다.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서 번성하고 풍성해져라.(《창세기》 9: 6-7)
존귀의 속성 하나: 생육하고 번성하며 풍성해짐
여러분이 자신을 매우 존귀하게 여기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십니다. 자신의 생각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시는 관점이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가난해서 달그락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모습이 번성하고 풍성한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존귀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온몸은 지공의 모자 같은 모자를 쓰고, 할 일 없이 코딱지를 파다가 목에 때를 밀어 때뭉치를 만들고, 누군가 약丸을 달라고 하면 그 때뭉치를丸로 빚어 먹입니다. 옷은 다 해지고 찢어졌으며, 조끼의 등까지 일부러 찢어서 깊은 V자 모양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여자아이가 깊은 V자 옷을 입고 런웨이에 서면 사람들은 보기에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공 같은 사람이 런웨이에 올라가면 어떻겠습니까? 한쪽에서는 코딱지를 파고, 한쪽에서는 때뭉치를 빚고, 걸을 때도 한쪽으로 삐딱하게 걷는다면 아무도 보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뜻은, 생육하고 번성하며 풍성해지는 것이 존귀의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저는 한 가지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정말 영적이고 정말 복을 받은 사람이라면 재정적으로 반드시 번성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당신이 말하는 것은 성공신학입니다”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성공하지 않는 것을 좋아합니까? 어떤 사람이 저에게 와서 “누구누구가 말한 내용이 정말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뭐가 좋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실패신학이 뭐가 좋습니까? 여러분은 실패신학을 믿으십시오. 저는 번성하고 풍성한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성공신학이 아니라 존귀의 신학입니다.
여러분은 존귀한 모습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바싹 말라 볼품없이 살아가는 것이 존귀할 수 있습니까? 날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모습이 지공과 같다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이 버스에 타면 많은 사람이 내려 버리고, 사람 곁에 서기만 해도 사람들이 자동으로 자리를 양보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좋습니까? “이렇게까지 자리를 양보한다고요? 견딜 수 없습니다!” 온몸에서 시큼하고 악취가 나서 사람이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성경에 합당합니다. 여러분은 존귀한 사람입니다. 우리 화인명정신학 안에서 우리는 존귀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번성하고 풍성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생육하고 번성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재정적으로 부족하지 않고 건강에도 절대로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복음은 정말 좋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풍성해지는 것은 여러분이 경쟁하고 몰아붙여서 얻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경쟁하던 사람들은 모두 홍수에 멸망했습니다. 가인의 족속도 모두 멸망했고, 노아의 가족만 남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스스로를 몰아붙이다가 죽은 것입니다. 오늘날 이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노아의 가족이 하나님의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 아주 가난해서 달그락거리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정말 좋았습니다. 다윗은 부자였습니다. 돈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의 눈이 반짝입니다. 다윗은 돈을 사랑하지 않았지만 아주 부유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다윗까지 그렇게 자랑할 수 있습니까?”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정말 그렇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부자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삭도 부자였고, 야곱도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 돈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 말을 듣고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부자가 되고 싶다면 먼저 생각부터 바꾸십시오. 여러분이 머릿속에서 자신을 고물차나 망가진 사람으로 여기면, 재산도 망가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제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것이고, 그것은 사람이 재정적으로 상당히 번성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이를 몇 명 더 낳고 집에서 계속 웁니다. 제가 “왜 우십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선생님, 제가 키울 수가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의사가 아들이라고 진단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들이면 어떻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아들이 자라서 결혼하려면 집도 사 주어야 하고, 차도 사 주어야 하고, 신부 예물도 주어야 합니다. 저는 딸 하나만 낳고 싶습니다. 나중에 신부 예물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라고 합니다. 저는 감탄하며 말합니다. “이게 무슨 생각입니까?”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생육하고 번성한다는 것은 태어나는 아이들이 모두 재산이라는 뜻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아이들이 태어난 후 모두 하나님의 복 가운데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존귀의 속성 둘: 만물이 너를 두려워함
만물이 여러분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정말 좋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만물이 여러분이 자기들보다 존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여러분의 손에 맡기셨고, 귀신조차도 여러분을 두려워합니다. 만물이 여러분을 두려워하는데, 여러분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동물들이 여러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러분이 존귀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동물들이 여러분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그것이 존귀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만물이 여러분을 두려워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두 번째 존귀의 속성입니다.
저는 성경에서 많은 예를 찾았습니다.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꽤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대머리였습니다. 그 시대에는 대머리가 보기 좋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머리를 반짝반짝하게 밀어도 꽤 보기 좋고, 여전히 존귀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대머리였기 때문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와서 그를 놀렸습니다. “대머리야, 올라가 버려!” 대머리라고 조롱하면서 “대머리는 꺼져 버려!”라는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존귀합니까? 존귀하지 않습니다. 엘리사는 존귀합니까? 존귀합니다! 존귀한 사람은 절대로 “대머리야, 올라가 버려”와 같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존귀한 사람이라면 이런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직 “내게는 존귀한 형상이 있고, 너에게도 존귀한 형상이 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람을 조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엘리사의 머리에 머리카락이 없어서 아이들이 그를 조롱했습니다. 조롱을 마치자 그 아이들은 곰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사람이 존귀하다면 동물은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사람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들은 여러분을 보면 두려워서 길을 돌아갑니다. 곰에게 물려 죽고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사람들은 모두 자업자득입니다! 어떤 사람이 담을 넘어 야생동물원에 들어갔습니다. 호랑이가 보니 한 녀석이 들어왔는데 꽤 재미있었습니다. 담을 기어오르는 사람이 존귀할 수 있습니까? 호랑이는 그 사람이 존귀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를 잡아먹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이런 뉴스도 있었습니다. 부부가 다투었는데, 여자가 조수석에 앉아 있다가 다툰 일로 차에서 내렸습니다. 두 사람이 운전자를 바꾸려고 하는 순간 호랑이가 달려들어 사람을 물고 갔고, 물어 죽였습니다. 그 여자의 어머니도 물려 얼굴이 다 뜯겼습니다. 아무 일도 없이 계속 다투다가 원수처럼 된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원수가 되어 버렸지만, 사실 사람이 조금만 참고 견뎠다면 호랑이나 사자에게 물려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일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알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존귀한 형상이 없으면 고양이와 쥐, 심지어 바퀴벌레까지도 여러분을 괴롭힙니다. 호랑이와 사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정말 심각한 일입니다. 우리 가운데 바퀴벌레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쥐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형상이 아닙니다. 천천히 바꾸십시오! 동물들이 여러분을 두려워하게 해야지, 여러분이 동물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워하는 것이 오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존귀의 속성 셋: 살아 있는 모든 동물이 너의 음식이 됨
여러분은 상당히 존귀한 존재입니다. 동물의 음식이 아니라, 동물이 여러분의 음식입니다. 여러분은 존귀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로 존귀합니까? 우리 형제자매들은 사물의 본질을 붙잡아야 합니다. 사람은 매우 존귀하고 바퀴벌레는 존귀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번 생에 자신이 밟아 죽인 바퀴벌레가 전생의 자신이 환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무슨 논리입니까? 아무도 본 적이 없고, 여러분도 본 적이 없으며, 저도 환생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쥐 한 마리를 잡고 “너는 전생에 무엇이었니?”라고 물어보십시오. 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바라볼 뿐 대답하지 못합니다. 모르는 것입니다!
쥐가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제가 “당신은 전생에 무엇이었습니까?”라고 물으면 여러분은 “전생에 저는 바퀴벌레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강한가 봅니다. 작은 강자였지요. 얼마나 끈질기게 살았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전생에 바퀴벌레였다면 전전생에는 무엇이었습니까? 손가락을 꼽아 보니 쥐였다고 합니다. 우리 중국인들은 십이지를 만들어 냈습니다. “당신은 무슨 띠입니까?” “저는 뱀띠입니다. 당신은요?” “저는 쥐띠입니다.” “저는 무슨 띠냐고요? 저는 고양이띠입니다. 쥐를 전문적으로 잡아먹습니다.” 여러분, 지금 무엇을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까?
또 큰 쥐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쥐가 소보다 앞에 섰다는 것입니다. 이런 온갖 혼탁한 말들은 모두 화인의 문화입니다. 다른 것을 하면 안 됩니까? 사람은 굳이 자신을 동물의 띠로 만들어 버립니다. “당신은 무슨 띠입니까?” “저는 원숭이띠입니다.” 여러분이 급해지면 귀를 긁고 머리를 긁는 모습이 정말 원숭이 같습니다! 정말 원숭이띠답습니다. 쥐띠인 사람은 좀도둑처럼 눈매가 교활합니다. 돼지띠인 사람은 또 어떻습니까? 온갖 말이 다 있습니다. 그럼 저는 무슨 띠입니까? 저는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며, 제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물은 우리의 음식이고, 동물은 존귀하지 않습니다.
땅에서 존귀한 존재는 오직 한 종류,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동물은 어떤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까? 이 질문은 여러분을 어렵게 만듭니다. 제가 평소에 하는 말을 자주 들은 사람은 알 것입니다. 동물은 하늘의 영계에 있는 것들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천사는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서유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신선의 탈것이었던 것이 땅에 내려오면 요괴가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동물은 하늘 영계의 것들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성경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언약궤 위의 그룹들이 있고, 구약의 선지자들이 본 천사들의 형상도 여러 동물과 매우 비슷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과 천사 중 누가 더 존귀합니까? 사람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도 천사를 숭배합니까? 더 이상 숭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조금씩 생각해 보기 시작해야 합니다.
존귀의 속성 넷: 사람의 피를 흘리고 생명을 해치는 자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심
사람은 어느 정도로 존귀합니까? 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죄를 심판하십니다. 사람이 그만큼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의 피를 흘린 사람은 그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화인명정신학은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형제자매를 존귀한 사람으로 빚어 가려는 것입니다. 존귀한 사람이 되는 길을 누가 개척했습니까?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사람은 복을 받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아브라함의 피를 흘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분이 아브라함을 한 번 노려보기만 해도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브라함의 길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회복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화인명정신학은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형제자매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가진 사람으로 빚어 가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존귀한 뜻을 가지고 계시며, 여러분 안에 존귀한 형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는 묽은 똥이 들어 있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어떤 형제자매는 제가 욕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말하면 저도 억울합니다. 제가 날마다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머릿속에서 똥을 파내려는 것입니다! 머릿속에 생각하는 것들이 너무 냄새나고, 극도로 더럽습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돈만 생각합니다. 그것이 존귀합니까? 돈이 여러분의 조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의 머릿속에 똥이 든 것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또 안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그 사람의 머릿속에 똥이 있는 것은 허락하면서, 제가 그 머릿속에 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의 머릿속에 있는 똥을 파내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것들이 너무 냄새나서, 말을 할 때마다 냄새가 납니다.
저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왜 하나님의 존귀함을 살아 내려고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존귀함을 살아 내려고 하지 않는다면 여기에는 왜 왔습니까? 여러분이 화인명정신학에 와서 돈을 좀 벌어 보려고 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화인명정신학에 온 사람들의 재정이 모두 복을 받았다”라고 말한 적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 뿌리를 잊어버렸습니까? 제가 말한 것은 여러분이 존귀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존귀하지 않은데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습니까? 사람은 돈만 생각하고 돈이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사실 사람의 생명은 재산의 풍성함에 달려 있지 않고, 사람 안에 있는 존귀함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모두 분명히 이해하셨습니까?
한번은 어떤 기업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기업가는 사업을 매우 성공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업을 관리하는 방식이 아주 흥미롭고 대단한 논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식사를 대접했고, 식사 중에 제가 “이 기업은 어떻게 관리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오히려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제가 매년 천만 위안을 드린다면, 무릎 꿇고 식사하고 무릎 꿇고 일하시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무릎 꿇는 것쯤은 할 수 있지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절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천만 위안을 위해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을 수 있습니다. 몇 말의 쌀을 위해 허리를 굽히는 것입니다! 중국 고대의 사대부들도 몇 말의 쌀을 위해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저는 매우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기업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존귀한 사람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들어왔는데 그가 존귀하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사람을 뽑지 마십시오. 그 사람은 스스로 존귀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고 무릎 꿇고 식사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를 채용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정말 무릎을 꿇는다면 저는 그 천만 위안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왜 주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존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피를 흘리고 생명을 해치는 사람들은 모두 돈을 위해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의 죄를 심판하십니다. 여러분이 누구든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죄를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직장을 구하든 일을 하든 자신이 존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몇 말의 쌀을 위해 허리를 굽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야 기업이 여러분을 채용합니다. 기업은 여러분이 그 월급을 받기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라는 인재가 와서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원합니다.
어떤 형제자매가 직장을 구하기 전에 저는 먼저 그에게 용기를 북돋워 줍니다. 어떻게 격려합니까? 저는 사람의 믿음을 세우는 데는 전문가입니다. 저는 “당신은 존귀한 사람입니다. 절대로 사람에게 일자리를 달라고 빌지 마십시오. 일자리를 달라고 빌면 그 일자리를 얻지 못합니다. 당신이 존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기업에 가서 일하려 할 때, 그들이 여러분을 채용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그 일자리를 간절히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이 존귀하고 그 기업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이 존귀하지 않고 능력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사장님, 저에게 이 일자리를 주세요!”라고 말하면 끝입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합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늘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존귀한 모습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복을 의지하기 시작하고,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번성하지 않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게으릅니다. 원래는 숙제도 잘하고 섬김도 잘하다가 재정적으로 조금 복을 받으면 돈이 다시 그의 조상이 되어 버립니다. 모든 것은 내려놓을 수 있어도 그 작은 가게는 내려놓을 수 없고, 무엇이든 내려놓을 수 있어도 돈 버는 일만은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돈이 그의 조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가 존귀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피를 흘리고 생명을 해치는 사람들은 모두 돈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람의 피를 흘리고 생명을 해치는 것도 모두 돈 때문입니다! 아니면 이런저런 사소한 일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게 됩니다. 제가 말하는 방식은 조금 날카롭고 매정하지만, 제 동기는 매우 고상합니다. 첫째 동기는 여러분의 머릿속에 있는 똥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존귀한 형상을 여러분에게 두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머릿속에 쓰레기가 남아 있다면 저는 조금도 사정하지 않고 그것을 도려낼 것입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그리고 여러분 자신에게 하나님의 매우 존귀한 형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가난할 수 없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언약을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 너와 언약을 세우심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 및 너희 후손과 언약을 세우며,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곧 방주에서 나온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짐승과도 언약을 세운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니, 다시는 모든 육체가 홍수로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홍수가 땅을 파괴하지 않을 것이다.(《창세기》 9:8-11 )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과 언약을 세우시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과 언약을 세우신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존귀한 사람과 언약을 세우십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존귀한 사람이라고 여기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언약을 세우시고 여러분을 멸망시키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짐승으로 보시고, 모기처럼 피만 빨아먹는 사람, 예수님 위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 사람으로 보신다면 하나님께서 손바닥으로 쳐서 죽이십니다. 모기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짐승처럼 살면 사람의 음식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짐승이고, 사람의 음식은 마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존귀한 사람과 언약을 세우십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존귀한 사람이 될 것인지, 짐승과 같은 사람이 될 것인지입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가 구호 하나를 만들었는데, 나중에 제가 그 구호를 금지했습니다. 더 이상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구호의 내용은 꽤 좋았습니다. 그 자매는 “사명이 없으면 짐승과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늘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짐승처럼 살면 그 짐승은 무엇을 합니까? 짐승은 먹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짐승에게는 짐승의 지위가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의 지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지위는 이 땅을 다스리고, 생육하고 번성하며, 풍성해지고, 땅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살펴보면 어떤 사람에게는 사람의 형상보다 귀신의 형상이 더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이 이기적으로 되면 문제가 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여러분을 한 번 격려하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저와 함께 자랑해 보십시오. 그는 돈을 사랑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돈이 많을까요?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애써 경쟁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성적이 그렇게 좋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별것도 없고 작은 목표 하나 세웠을 뿐인데, 그 작은 목표도 제대로 세우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루어진 것입니까? 순식간에 많은 사람을 앞질러 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경쟁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을 경쟁하게 만든 것입니다. 즉 짐승을 경쟁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여러분을 차단했지만, 여러분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의 매우 존귀한 형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되도록 말하지 말고, 마음속으로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저처럼 입으로 너무 잘 말하지 마십시오. 너무 많이 말하면 많은 사람이 저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피곤하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성경공부도 이렇게 잘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공부를 하다가 엉망이 되는데, 제 말을 들으면 분명 마음이 불편할 것입니다.
나중에 저는 제 입을 조금 절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뛰어나면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인테리어를 하는 사람도 제 돈을 벌지 못하고,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사람도 제 돈을 벌지 못하며, 병원도 제 돈을 벌지 못합니다. 그런데 저는 돈도 아주 많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것은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절대로 저에게 자극받아 경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자극받아 경쟁하면 문제가 됩니다. 저는 짐승을 경쟁시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어떤 언약을 세우셨습니까? 노아의 언약입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입니다! 저를 축복하는 사람은 복을 받고, 저를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저는 이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자신을 저주할까 봐 두려워서 교회를 떠나기 전에 저에게 계약서에 서명해 달라고 합니다. “선생님, 저는 원래 다니던 교회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좋습니다! 빨리 가십시오! 어서 가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는 “저를 붙잡지 않으시는군요?”라고 합니다. 저는 사람을 붙잡지 않습니다. 그가 “선생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제가 떠난 뒤에 뒤에서 저를 저주하지 마세요”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이 아브라함이라면 누가 여러분을 저주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아브라함이고, 이삭이고, 야곱이라면 누가 여러분을 저주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저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브라함도 아니고 이삭도 아니며 야곱도 아니고 요셉도 아니라면, 제가 여러분을 저주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저주하십니다. 저주에 관한 일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 오해 속에 있습니다.
나중에 세워진 이 언약은 발전했습니다. 노아의 언약은 아브라함의 언약으로 발전했고, 아브라함의 언약은 예수님의 언약으로 발전했습니다. 예수님의 언약은 예수님의 피로 세워졌습니다. 얼마나 존귀합니까? 여러분과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신 바 되었습니다. 얼마나 존귀합니까? 그런데도 몰래 돈을 사랑하다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정말 집안 전체가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머릿속에 온통 돈 생각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할수록 존귀하지 않고, 존귀하지 않을수록 가난해집니다. 가난할수록 돈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할수록 존귀하지 않게 됩니다. 이 일이 언제 끝나겠습니까? 오늘 저는 칼을 들어 존귀하지 않은 모든 것을 끊어 버리겠습니다. 여러분이 한 번 자랑해 본다면 저는 지금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돈을 사랑하지 않는데 돈은 많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은 매우 대단합니다. 여러분은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노아에게 아브라함의 모습이 있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노아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이 노아를 조금이라도 업신여기면 저주를 받지 않을 것 같습니까? 노아를 조금이라도 업신여겨도 저주를 받습니다. 노아에게 문제가 있었습니까? 문제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그에게는 여전히 존귀한 형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존귀하다고 여기시는 사람을 여러분이 존귀하지 않게 여기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기시는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저주를 받음
‘존귀하다’는 두 글자는 정말 대단합니다. 부주의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저는 여러분이 제가 매우 존귀하다는 것을 알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를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한마디 당부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존귀하지 않게 여기면 문제가 생깁니다. 제가 여러분을 겁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뜻을 여러분은 이해해야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매우 존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다른 사람을 보면서 함부로 말해서도 안 됩니다.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원을 심었다. 그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있었다. (《창세기》 9:20-21 )
그날 노아는 술을 꽤 많이 마시고 취했습니다. 그는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있었습니다. 날씨가 너무 더웠기 때문입니다. 에어컨도 없고 선풍기도 없었습니다. 술에 취하자 옷을 벗은 것입니다. 사실 그대로 말하면 그다지 체면 있는 모습도 아니고 존귀한 모습도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를 평가할 차례는 아닙니다. 함은 들어가 아버지가 벌거벗은 것을 보고 몰래 엿보았습니다.
여러분은 뉴스에서 어떤 선생님이 창문에 엎드려 다른 사람이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았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까? 그것을 본다고 무엇을 알 수 있는지 우리도 모르지만, 결국 붙잡혔습니다. 인터넷에서 몰래 보면 아무도 잡으러 오지 않는 것 같지만, 도대체 무엇이 좋습니까? 함은 들어가서 아버지가 벌거벗은 것을 보았고, 결국 아버지가 존귀하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가 본 것이 사실입니까? 절대적으로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실이라고 해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함은 밖으로 나가 두 형제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집 늙은이가 술에 취해서 벌거벗고 있는데 정말 창피하다.” 그의 형과 동생은 옷을 들고 뒷걸음질쳐 들어가 감히 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몸이 매우 존귀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부족한 점이 있고, 술에 취해 문제가 생겼으며, 실제로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여러분이 그를 손가락질할 차례는 아닙니다. 성경에는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함은 그것을 보고 밖으로 나가 떠벌렸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시선을 노아가 벌거벗은 몸에 두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노아는 그 세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었고, 유일하게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한 사람이었으며, 유일하게 하나님의 존귀한 형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함이 밖에 나가 노아가 벌거벗었다고 말한 것은 선악을 분별한 것이며, 귀신이 그 사람 안에 거하게 됩니다.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면 귀신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셈과 야벳은 등을 돌린 채 아버지의 몸을 덮었습니다. 사람의 결점을 보기를 거부하고, 사람의 연약함을 보기를 거부하며, 좋지 않은 것을 보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사람이 늘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점만 보면 끝장입니다. 늘 그 사람의 나쁜 점만 보고, 아버지의 이런 결점과 어머니의 저런 결점을 보면서 “아, 나는 평생 아버지와 어머니 때문에 망했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깁니다. 나쁜 것만 본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함이 이 일을 했기 때문에 왜 저주를 받았는지 이해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함이 이 일을 하자 저주가 가나안에게 임했습니다. 영적인 일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복을 받은 존재였지만, 사람의 마음속에 존귀하지 않은 것이 들어오고 사람의 눈은 오로지 존귀하지 않은 것만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보는 것을 얻게 됩니다. What you see,is what you get。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눈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이것도 좋지 않다고 하고 저것도 좋지 않다고 한다면, 여러분의 운명은 좋지 않은 운명입니다.
제가 섬길 때마다 몸에 이런 병이 있고 저런 병이 있는 사람, 특히 온몸에 병이 많은 사람을 보면 점쟁이보다 더 정확하게 맞힙니다. 거꾸로 추적해 보면 분명 무엇을 보아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그 사람이 정말 벌거벗고 있었잖아요”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정말 벌거벗고 있었던 것이 여러분과 무슨 상관입니까? 보고 싶습니까? 여러분에게 훔쳐보는 증상이 있다면 심리 의사를 찾아가든지, 예수님을 만나 치료와 해방을 받든지 해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과 무슨 상관입니까? 여러분은 저주 가운데 살고 싶습니까? 오늘날 함처럼 저주 가운데 사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화인명정신학에 와서 날마다 제가 말하는 것을 듣는데, 그것이 귀에 들어옵니까? 어떤 사람은 “선생님, 저는 통제할 수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통제할 수 없다면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운명입니다. 복을 받는 일은 하지 않고 굳이 저주받는 일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결국 노아가 술에서 깨어나 함을 저주했고, 그는 장차 종들의 종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야 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그런 것들을 보지 말고 사람에게 있는 존귀한 것을 보기 시작해야 합니다. 과거 여러 해 동안 저는 일할 때 한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제 상사가 아주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그에게서 많은 장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가 아주 뛰어난 사람이라면 저는 더 많이 배웠습니다. 이것은 진심으로 하는 말이며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가끔 절제하지 못했을 때는 곧바로 회개해야 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매를 맞았고, 하나님께서 정말 저를 다루셨습니다.
셈의 하나님은 찬송받으실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셈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존귀하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셈은 노아의 아들이며, 셈에게는 존귀함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존귀함이라는 것이 있었고, 바울에게도 존귀함이라는 것이 있었으며, 다윗에게도 존귀함이라는 것이 있었고, 요셉에게도 존귀함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선악을 분별하기를 거부하고, 선악을 분별할 자격이 있어도 선악을 분별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자격도 없는 사람은 더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셈의 하나님은 찬송받으실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셈의 하나님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셈을 본받는 사람은 모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근본부터 본받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노아와 셈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본받습니다. 많은 목회자가 저주를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노아의 결점만 찾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결점만 찾으며, 다윗의 문제만 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의 좋지 않은 점만 골라서 봅니다.
저는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화인명정신학은 그런 담력조차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셈과 노아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늘 자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도 그럴 담력이 없고, 사람들 앞에서 “저 사람만 잘났습니까?”라고 으스대지도 못합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살아 있는 동안 몇 년을 살든 하나님의 존귀한 형상을 살아 낸다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무지한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좋은 것은 배워도 다 배울 수 없는데, 왜 굳이 결점을 찾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9장 본문
9:1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9: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가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할 것이며,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도 너희 손에 넘겨 주었다.
9:3 살아 있는 모든 동물은 너희의 음식이 될 수 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채소처럼 너희에게 주었다.
9: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인 피째 먹어서는 안 된다.
9:5 내가 너희의 피를 흘리고 너희의 생명을 해치는 자, 곧 짐승이든 사람이든 반드시 그 죄를 물을 것이다. 각 사람의 형제에 대해서도 그러할 것이다.
9:6 사람의 피를 흘리는 자는 그의 피도 사람에 의해 흘려질 것이니,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이다.
9: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서 번성하고 풍성해져라.”
9:8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셨다.
9:9 “내가 너희와 너희 후손과 언약을 세운다.
9:10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짐승, 방주에서 나온 모든 생물과 언약을 세운다.
9: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니, 다시는 모든 육체가 홍수로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홍수가 땅을 파괴하지 않을 것이다.”
9:12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나와 너희 및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우는 영원한 언약의 표징은 이것이다.
9: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으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운 언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9: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날 것이다.
9:15 내가 나와 너희 및 모든 육체를 가진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을 기억할 것이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가진 생물을 멸망시키는 홍수가 되지 않을 것이다.
9:16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날 때 내가 그것을 보고 땅 위의 모든 육체를 가진 생물과 나 사이에 세운 영원한 언약을 기억할 것이다.”
9:17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나와 땅 위의 모든 육체를 가진 것 사이에 세운 언약의 표징이다.”
9: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었다.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였다.
9:19 이들은 노아의 세 아들이며, 그들의 후손이 온 땅에 퍼졌다.
9:20 노아는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원을 심었다.
9:21 그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있었다.
9: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아버지가 벌거벗은 것을 보고 밖으로 나가 두 형제에게 알렸다.
9:23 셈과 야벳은 옷을 하나 가져다가 어깨에 걸치고 뒷걸음질쳐 들어가 아버지를 덮었다. 그들은 얼굴을 돌리고 있었으므로 아버지가 벌거벗은 것을 보지 않았다.
9:24 노아가 술에서 깨어나 작은아들이 자신에게 한 일을 알고
9:25 말하였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는 형제들에게 종들의 종이 될 것이다.”
9:26 또 말하였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는 찬송받으실 분이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될 것이다.
9:27 하나님께서 야벳을 넓히시고 그가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며,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기를 바란다.”
9:28 홍수 후에 노아는 삼백오십 년을 더 살았다.
9:29 노아는 모두 구백오십 세를 살고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