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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여호수아 0장 - 서론

2019-06-06 15,686 约书亚记 十一奉献 怜悯 教会 约书亚 恩典 效法

틀을 세우는 사고방식을 배우기

최근 저는 어떤 사람들은 왜 책을 잘 읽지 못하는지 한동안 연구해 보았습니다.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틀을 세우는 사고방식이 부족하고,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이 평생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면, 이 생을 잘 살아가기는 조금 어려울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틀을 세우는 사고방식이 있다면, 먼저 전체를 파악한 다음 부분을 파악합니다. 전체를 보는 관점도 없고 틀을 세우는 사고도 없는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미래가 없습니다.

사람이 잘 살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말을 배워야 합니다.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단지 내가 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세상 사람들의 인생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사람은 이렇게 혼란 가운데 살아가며, 뛰쳐나오려고 해도 뛰쳐나오지 못합니다. 매일 일하고, 아이를 돌보고······ 바쁘게 지내면서 이런 생활의 사소한 일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정말 그렇게 중요할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저는 자주 이런 예를 듭니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죽게 되면 모든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돈도 문제가 아니고, 집도 문제가 아니고, 차도 문제가 아니며, 심지어 아이도 문제가 아닙니다.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죽게 된 사람이 돈을 얼마나 쓸 수 있겠습니까? 많이 쓸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갑자기 죽을 병에 걸렸는데 아무도 치료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단번에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온 사람, 곧 눈앞에서 곧 죽을 것 같은 사람은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갑자기 틀을 세우는 사고 속으로 들어가고, 곧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됩니다.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 있는 것일까요? 그래서 저는 때때로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고, 정말 내 사무실에 관 하나를 놓아야겠어. 사람이 생각을 정리하지 못할 때 들어가서 잠시 누워 있게 하고, 고민이 많은 사람이 오면 들어가서 느껴 보게 해야겠어.”

문제는 사람이 죽을 병에 걸리면 살아 있다는 것이 단순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다시 살아나면 살아가는 일이 아주 복잡한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여산 속으로 다시 들어가면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고, 여산에서 빠져나오면 사람의 삶 전체를 단번에 분명히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장례식에 자주 참석하면 쉽게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됩니다. 오랜 지인이 살아가다가 어느 날 이렇게 세상을 떠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의 삶이 사실 매우 단순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직장, 가정, 인간관계가 모두 사소한 일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저는 여러분을 틀을 세우는 사고 안으로 인도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여호수아》 1장부터 24장까지 빠르게 읽어 보겠습니다. 이 책은 모두 26쪽이고, 한 쪽을 2분에 읽는다면 약 52분이 필요합니다. 한 쪽을 3분에 읽는다면 70분이 조금 넘어서 다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을 느리게 읽으면 아무리 자세히 읽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틀을 세우는 사고가 부족하고,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상반기에 1장을 읽고 하반기에 24장을 읽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얻는 것이 모두 조각조각 흩어진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빠르게 읽으면 이 책이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을 얻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21장, 22장, 23장, 24장까지 읽으면 그 안에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한 문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여호수아》를 성경공부한 후 《여호수아》 성경공부 교재를 쓴다면 독자에게 이렇게 알려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 말은 단번에 사람의 믿음을 끌어올립니다! 사람의 믿음이 불붙으면 그는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어떤 사람은 약속을 얻었고 어떤 사람은 얻지 못했습니다. 얻은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렇다고 생각하고, 얻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목회자들이 많아진 것은 자신이 받은 깨달음에 따라 말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은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일을 아주 분명하게 논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졌느냐?”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쇠퇴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 여러분에게 아브라함의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여러분에게서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바울이 논쟁한 초점은 이것이었습니다. “나도 이스라엘 사람인데, 왜 하나님의 약속이 나에게서는 폐하여지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용하신 방식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을 초월했습니다.

여호수아처럼 성품 있는 사람을 본받기

《여호수아》 전체를 읽고 나면 이 책에 어떤 제목을 붙일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 제목은 책 전체를 관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책의 주제를 요약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을 다시 살펴보면 의문이 생깁니다. 왜 어떤 사람에게서는 약속이 폐하여졌고, 어떤 사람에게서는 폐하여지지 않았을까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폐하게 하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할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여러분을 억지로 끌고 가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 중 자신의 선택이 아닌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여호수아》에 나오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본받을 수도 있고, 《민수기》에 나오는 고라나 광야에서 쓰러져 죽은 이스라엘 백성을 본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한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확고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되기를 선택해야 합니다. 《성경》은 여호수아에게만 보여 주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후대에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이 될 사람들을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창세기》도 아브라함에게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본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읽어 주듯 읽지 말고, 자신에게 읽어 주듯 읽으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매우 어리석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부인합니다. 제가 만난 기독교인들 가운데 많은 목회자와 전도사를 포함해, “하나님의 약속은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만 말하고,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 빠져나갈 구실을 찾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아니고, 바울도 아니고, 여호수아도 아니야. 그들이 경험한 것은 그들의 것이고, 나는 나야.”

그러나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 여호수아가 기록되어 있으니 저는 여호수아를 본받기로 작정했습니다. 여호수아 같은 사람이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까? 분명히 잘 살고 싶을 것입니다. 대가를 치를 의향이 있습니까? 이것은 조금 어렵습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잘 살 수 있습니까? 잘 살지 못합니다. 이 세상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번성합니까, 아니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바친 사람이 번성합니까?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은 직장에서든 생활에서든 열정으로 살아가며, 비교적 좋은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여호수아처럼 열정적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본받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여호수아》를 읽을 때 마음속에 느낀 것이 매우 깊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성품이 제게도 조금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더 많아지고, 또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기기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그들이 강 건너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상은 38년 전의 기억이었습니다. 지금의 여호수아는 요단강 건너편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곳에 거인들과 매우 강한 원수들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앞에 놓인 길은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총알에는 눈이 없기 때문에 누구에게 떨어질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갈 때 누구나 두려워합니다. 여호수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이 두려워하면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겨야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를 읽을 때 여호수아와 같은 위대한 사람도 두려워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그는 두려움을 이겼습니다. 그는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은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고, 우리의 생명은 새로운 돌파를 경험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경험하고, 하나님께서 새 일을 이루시게 해야 합니다! 어느 것이 미지의 영역에 대한 새로운 탐험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괜찮습니다. 사람이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싶다면 가장 중요한 일은 두려움과 맞서는 것입니다.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겁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를 겁주기 때문입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면서 먼저 자신을 겁주고, 심지어 몸을 떨 정도로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두려움과 싸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성경》은 야곱이 사람과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겼다고 기록합니다. 사람과 씨름한다는 것은 자신과 씨름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은 매우 흔합니다. 당시 여호수아도 자신과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그도 괴로워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가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격려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이 말씀은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그래도 여전히 할 수 없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명령하지 아니하였느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여호수아》 1:9)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제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처음 교회를 세울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도 몰랐고,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으며, 목양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여러 교회에 가서 살펴보았습니다. 계속 살펴보았지만 그들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해를 걸어온 오늘, 저는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정말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어머니는 걷지 못하셨고, 두 다리가 국수처럼 힘없이 풀려 있었습니다. 기도하면 나아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렇게 되곤 했고, 기도하면 또 나아졌습니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육체입니까? 아닙니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영입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번성하면 몸도 건강해지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됩니다.

저는 《여호수아》를 빠르게 한 번 훑어보았는데, 느낀 점이 매우 많았습니다. 사람이 미래를 탐험하는 일은 도전으로 가득하고, 미래로 가는 길에는 알 수 없는 일이 가득하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여러 해를 걸어오면서 저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가득해졌습니다.

오늘날 미래를 마주할 때 도전과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때로는 선악을 분별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환경만 보면 아무리 보아도 상황이 그렇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갈 때 여호와께서 여러분 앞에서 싸우십니다. 제게 이런 틀이 세워지기 시작했는데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평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잠재력을 모두 펼쳐 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 여호수아와 갈렙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지난 한 주간 많은 간증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교회를 떠났던 노인도 병에 걸렸다가 돌아와 기도하고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 노인의 딸은 50대였는데 이상한 병에 걸렸습니다. 병원에서 이리저리 검사했지만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도 우리와 함께 기도하고 나았습니다. 비록 그들이 교회로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하여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을 초월하는 일입니다! 저는 자주 여러분에게 이렇게 나눕니다. 평생 하나님을 의지하면 의료비를 얼마나 절약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고통을 덜 겪을 수 있는지 모릅니다! 이런 은혜를 받고도 왜 원하지 않습니까? 그저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선택하면 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온전히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기

여호수아의 첫 번째 특징은 그가 온전히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온전히 집중하는 것은 사람이 평생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특성입니다!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 예를 들어 수학을 하면서 국어를 생각하고 물리학을 하면서 영어를 생각하는 사람은 평생 공부를 잘할 수 없습니다. 머릿속이 온통 풀어진 죽처럼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집중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일을 매우 집중해서 하십니다. 목표를 세우시면 반드시 이루시고, 목표에 이르지 못하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다 이루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 다 이루어졌습니까? 아직 아닙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사람이었다면 벌써 포기했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때부터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약속이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이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온전히 집중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온전히 집중하면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은 이랬다가 내일은 저랬다가, 잠시 하나님을 따랐다가 또 따르지 않았다가 하지 않습니다. 머릿속이 어지럽고 소란스러운데 마음이 편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괴롭게 살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집중하지 못할 때는 정말 괴롭습니다. 그러므로 편안하게 살고 싶다면 온전히 집중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온전히 집중하는 사람은 목표를 세운 뒤 목표를 향해 곧장 달려가며 양쪽을 바라보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그 목표를 향해 곧장 달려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앞으로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실 것이며, 앞에 있던 일들은 모두 과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사람이 평생 끊임없이 새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점점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미지의 영역을 끊임없이 탐구하려면 목표가 필요하고, 집중이 필요하며, 온전히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붙잡는 데 집중한다면 그것 역시 집중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호수아를 본받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지배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밤낮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모든 율법을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 1:5-8)

이 말씀은 정말 좋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체적인 관념을 세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전체적인 관념을 세우는 것은 사실 어렵지 않습니다. 조금 빠르게 읽으면 금방 다 읽을 수 있고, 이야기 전체의 줄거리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평생 한 일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이 그의 앞에서 무너졌지만, 그것은 그 자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대포를 발명했기 때문도 아니고 폭탄을 발명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강하고 담대하여 백성을 이끌고 여리고성 주위를 몇 바퀴 돌기만 하자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우리는 놀라며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지어낸 것일까, 실제로 일어난 일일까?”

성 주변을 돌며 그 성 주위를 걸으면 위에서 돌을 던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위에서 돌을 던지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맞아 죽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계속 걸어야 합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아무도 돌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7일 동안 걸은 후 성이 무너졌습니다. 우리는 정말 놀랍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이 돌을 던지지 못하게 하실 수 없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마비되어 돌을 던지지 못하게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활을 쏘지 못하게 하실 수 없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넌 후 이스라엘 백성은 그곳에 진을 치고 할례를 행했습니다. 여리고성 사람들은 그들이 할례를 받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두 수술을 받았다면 어떻게 싸울 수 있겠습니까? 여리고 사람들이 달려와 이스라엘 백성을 단번에 멸망시킬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세겜 사람들이 야곱의 아들들에게 그렇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여호수아가 걱정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이 나오지 못하게 하실 수 없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하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직장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온전히 하나님을 따르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밤낮으로 여러분의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십시오! 우리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온전히 하나님을 따르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우리가 흔들리면 머릿속은 곧 풀어진 죽처럼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안의 믿음을 정돈하고 온전히 하나님을 따르면 모든 어려움을 즉시 이기게 됩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호수아는 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는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지만, 요단강을 건넌 후에는 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여호수아의 이런 성품을 본받기 시작하면 평생 비범한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의 선택이다

여호수아는 특별한 재료로 만들어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은 그가 선택한 것일 뿐입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저는 믿음이 무엇인지 연구했습니다. 연구하고 또 연구하면서 믿음이라는 것을 몇몇 사람들이 설명하는 것처럼 그렇게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계속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늘 믿음을 말하는데, 믿음이 도대체 무엇일까? 제가 물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모르겠습니다. 전혀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어떻게 지금 이 모습이 되었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예수님이 아니고 바울도 아닌데, 내가 이렇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여러분이 예수님처럼 될 것이라고 정말 믿는 것입니다.

나중에 저는 믿음이 하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믿기로 선택하는 것, 그것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제게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선택하여 섬기게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선택하여 섬기게 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제가 믿기 때문입니다.” “왜 믿습니까?”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왜 믿고 싶습니까?” “그냥 믿고 싶습니다! 제가 믿기로 선택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조금씩 이제는 아무도 제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이제 꽤 유명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게 와서 당신이 누구인지 묻습니다.” 한 목회자가 저에 대해 알아보러 온 적이 있습니다. 교회를 처음 세웠을 때는 고양이 두세 마리밖에 없는 것처럼 사람이 없었고, 저 혼자 보아도 마음이 괴로웠으니 다른 사람이 보면 더 괴로웠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게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되었습니까?” “괜찮습니다! 영광스러운 교회가 이미 제 믿음 안에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오늘의 모습은 그때의 믿음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미래의 모습은 지금의 믿음이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믿음 안에서 미래의 승리를 위한 선택을 하십시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승리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근육의 크기에 달린 것이 아니고, 능력의 크기에 달린 것도 아니라 믿음의 크기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며, 평생 여러분 앞에 능히 설 사람이 없다는 것을 믿습니까? 저는 믿습니다!

제가 귀신을 쫓아낼 때 귀신이 분명히 제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우리 쪽에서 아주 유명합니다. 우리 대장이 저를 보냈으니 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와서도 내가 두렵지 않으냐?” 귀신이 말했습니다. “두렵습니다! 어차피 돌아가도 죽고, 여기 남아도 죽습니다.” 결국 마귀는 완전히 쓰러졌습니다.

우리가 계속 귀신을 쫓아내면서 영계의 일들이 거듭해서 증명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우리는 점차 실마리를 찾아냈고,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에게서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으며, 여호수아를 따르는 사람들도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여호수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온전히 하나님을 따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사실 그다지 온전히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세상을 떠날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그분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온전히 자신을 따르기를 요구하십니다. 온전히 따르지 않으면 24장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후에 재앙을 내리실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한 예언입니다. 듣기에 전혀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지만, 사람이 온전히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무엇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잠시 세상의 체계를 따랐다가, 또 잠시 하나님을 따랐다가, 이리저리 오가며 소란을 피운다면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어느 나라에 있든 배신자가 되는 것인데, 어떻게 편안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마귀의 나라에서도 배신자이고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배신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편안하게 살 수 없습니다. 저는 뉴스를 보면서 자기편 사람들을 배신한 사람들의 마지막 결과가 모두 비참하다는 것을 주의 깊게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이라크의 사담을 배신한 경비원의 결말도 매우 비참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영원히 배신자가 되지 마십시오. 영원히 반역자가 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따르기로 선택했다면 끝까지 온전히 하나님을 따르십시오. 죽더라도 따라야 합니다.

싸움에서 승리해야 약속의 땅을 얻는다

여러분의 평생에 아무도 여러분 앞에 능히 서지 못할 것이며, 마귀도 여러분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여러분은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승리하지 못하면 약속의 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싸움에서 승리해야 하나님의 약속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지만, 우리는 싸워 승리하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 자체가 믿음의 반응입니다. 싸우기로 선택하는 것은 상대를 물리칠 수 있고 그들의 땅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업의 현장에서 고객은 이 회사의 제품을 사거나 저 회사의 제품을 삽니다. 여러분 회사의 제품을 사면 다른 회사의 제품은 사지 않습니다. 고객이 다른 회사의 제품을 사려고 할 때 그 고객을 빼앗아 온다면, 실제로는 그것이 하나의 싸움입니다.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우리 형제 중 한 분이 화웨이에서 일하는데, 제게 아주 좋은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화웨이가 오늘날의 성과를 거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줄곧 분투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이 왜 당신들의 제품을 사겠습니까?”

10여 년 전 화웨이는 시장의 동종 제품 가운데 이름도 없고 지위도 없었습니다. 상위 몇 곳에는 화웨이와 관련된 것이 전혀 없었고, 아주 적은 점유율을 가진 다른 유형의 제품에서나 화웨이라는 이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화웨이의 성공은 분투해서 얻은 것입니다! 온전히 일하지 않고서 가능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어떤 일이든 성공은 싸움에서 승리하는 과정입니다. 싸우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호랑이 아가리에서 먹이를 빼앗는 것은 치열한 싸움입니다. 고기를 호랑이 아가리에서 빼앗아 와야 비로소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호랑이 아가리에서 먹이를 빼앗는 일이라 해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땅은 승리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승리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약속은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더라도, 여러분에게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자질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온전히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셋째, 강해져야 합니다. 넷째, 앞으로 나아가 싸움에서 승리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여호수아》를 읽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 너무 잔혹하고 너무 피비린내가 나네요. 하나님께서 완전히 다 죽이려고 하시네요.” 여러분 안에 이런 생각이 있다면 저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이해하실 수 있는 것은 아니니, 행운을 빕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진 것 중 싸움에서 승리하지 않고 얻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예를 들어 시장에서 사업을 하면서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 봅시다. “아, 내가 이 고객을 얻으면 저 사람은 얻지 못하겠네. 그냥 저 사람에게 주자!”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 안에는 매우 이상한 생각이 많습니다. 그것은 바로 쓸데없는 동정심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힘들어지면 생각합니다.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도 네게 묻고 싶구나. 너는 어디로 갔느냐? 나를 온전히 따르라고 했는데 너는 온전히 따르지 않고 어디로 도망갔느냐?” 오늘 우리는 여호수아를 본받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의 온전함을 본받고, 그의 강함을 본받으며, 싸움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부족한 사람은 바로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우리 가운데 다음과 같은 상황을 반드시 없애야 합니다. “아, 나는 여호수아가 아닌데.” 여러분에게 이런 생각이 있다면 힘써 버리십시오! 우리 안에는 이런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반드시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이 되겠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여호수아처럼 되기로 작정했고, 위에 있고 아래에 있지 않으며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나타내며 살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과 공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만 높이려 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이렇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성경》에는 라합이라는 기생이 나옵니다. 라합은 본래 여리고성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분명히 진멸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을 진멸하시고 성 안의 모든 사람을 죽이려 하셨으며, 가축 한 마리도 남기지 않으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라합이라는 특이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믿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다.” 라합과 그녀의 가족은 놀랍게도 여리고성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후에 라합은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사람이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는 더욱 온전히 하나님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합이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는 죽을 사람들의 명단에서 그녀의 이름을 지우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는 더욱 온전히 하나님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리고성 사람들은 마음이 완고했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 성에 라합이 한 명 더 있었다면 하나님께서는 똑같이 구원하셨을 것입니다. 온 성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 앞에 굴복했다면 온 성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 시대에 사람들은 자주 하나님에 대해 선악을 분별하며 하나님께서 성을 진멸하신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지만, 하나님은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리고성 사람들은 악을 많이 행했고 죄에 합당한 대가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선악을 분별하지 말고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본받기 시작하여 온전히 하나님을 따르십시오.

《여호수아》에는 또 하나 매우 특이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간이라는 사람이 죄를 범하자 온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틀을 세우는 사고를 확립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는데,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물건을 훔친 사람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를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모두 삭제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전체 팀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손에 쥐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진멸할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에 사용되는 물건 중에는 진멸할 물건에 속하는 것이 있고, 또 하나님께 속한 것도 있습니다. 그것을 자기 손에 가지고 있으면 진멸할 물건이 됩니다. 첫 번째 성은 여리고성이었고, 그 안의 모든 금과 은과 보물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야 그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처음 난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첫 번째로 정복한 성도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빼앗은 모든 재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이것이 규례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우리는 거룩한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진멸할 물건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일조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것은 교회가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 모든 사람을 이끌어 약속의 땅을 얻을 수 있는지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아이성은 매우 작은 성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패배했습니다. 여리고성은 매우 큰 성이었지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시며,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을 본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1장부터 24장까지 모두 이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앞부분과 뒷부분을 모두 진지하게 읽어야 합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로 말미암아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너희의 눈으로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 보라 내가 요단에서부터 해 지는 편 대해까지의 남아 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모든 나라를 내가 너희 지파에게 기업으로 제비 뽑아 나누었느니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들의 땅을 차지할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여호수아》 23:3-6)

우리 하나님은 싸움에서 승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산타클로스가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크고 강대한 나라들을 쫓아내셨으므로 오늘까지 너희 앞에 능히 당할 자가 한 사람도 없었느니라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멸망하기까지 하리라 보라 나는 오늘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의 마음과 뜻으로 아는 바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모든 불길한 일도 너희에게 임하게 하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를 멸절하기까지 하실 것이라 만일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그에게서 받은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하리라 (《여호수아》 23:9-16)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수아》 전체의 틀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싸움에서 승리하고, 온전히 하나님을 따르며, 승리하면 약속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본받아 그들처럼 행동하고 살아가면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임하고 우리는 속히 멸망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섬기려면 온전히 집중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특성입니다. 여호수아든 갈렙이든 그들은 모두 온전히 하나님을 섬긴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는 다시 새로운 단계로 들어가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동역자는 더 이상 종교적인 방식으로 섬기지 않고 실제적으로 섬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사도 바울이 천막을 치며 하나님을 섬기는 동시에 일했던 것을 본받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도 모든 형제자매와 마찬가지로 살아갈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일이 있고 우리에게 우리의 일이 있으며,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사업이 있고 우리에게 우리의 사업이 있습니다. 우리는 형제자매들과 마찬가지로 온전히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

전도자로서 저는 대충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한동안 저는 영원히 전임 사역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결국 직장을 잃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우리 교회의 전체적인 특성이 하나님에 대한 저의 인식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실제적으로 일을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전도자라는 분야에는 종교적인 냄새가 가득한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그들은 실제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도자라는 분야에는 실제적인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전도는 양심에 따라 하는 일이어서 일주일에 설교 두 편만 하면 쉽게 사람들을 얼버무릴 수 있습니다. IT나 소프트웨어를 배우는 일과는 다릅니다. 프로그램을 작성했는데 실행되지 않으면 즉시 알 수 있습니다. 전도자라는 분야에서는 잘못해도 모르고 잘해도 모릅니다. 결국 그저 날마다, 해마다 그렇게 적당히 지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팀 전체는 모두 착실하게 실제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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