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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고린도후서 10장 -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라.

2024-08-14 29,458 哥林多后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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哥林多后书10章-保罗为他的工作辩护
  • 1 我保罗,就是与你们见面的时候是谦卑的,不在你们那里的时候向你们是勇敢的,如今亲自藉着基督的温柔、和平劝你们。
  • 2 有人以为我是凭着血气行事,我也以为必须用勇敢待这等人;求你们不要叫我在你们那里的时候,有这样的勇敢。
  • 3 因为我们虽然在血气中行事,却不凭着血气争战。
  • 4 我们争战的兵器本不是属血气的,乃是在 神面前有能力,可以攻破坚固的营垒,
  • 5 将各样的计谋,各样拦阻人认识 神的那些自高之事,一概攻破了,又将人所有的心意夺回,使他都顺服基督。
  • 6 并且我已经预备好了,等你们十分顺服的时候,要责罚那一切不顺服的人。
  • 7 你们是看眼前的吗?倘若有人自信是属基督的,他要再想想,他如何属基督,我们也是如何属基督的。
  • 8 主赐给我们权柄,是要造就你们,并不是要败坏你们;我就是为这权柄稍微夸口,也不至于惭愧。
  • 9 我说这话,免得你们以为我写信是要威吓你们;
  • 10 因为有人说:“他的信又沉重又厉害,及至见面,却是气貌不扬,言语粗俗的。”
  • 11 这等人当想,我们不在那里的时候,信上的言语如何,见面的时候,行事也必如何。
  • 12 因为我们不敢将自己和那自荐的人同列相比。他们用自己度量自己,用自己比较自己,乃是不通达的。
  • 13 我们不愿意分外夸口,只要照 神所量给我们的界限够到你们那里。
  • 14 我们并非过了自己的界限,好像够不到你们那里;因为我们早到你们那里,传了基督的福音。
  • 15 我们不仗着别人所劳碌的,分外夸口;但指望你们信心增长的时候,所量给我们的界限,就可以因着你们更加开展,
  • 16 得以将福音传到你们以外的地方;并不是在别人界限之内,藉着他现成的事夸口。
  • 17 但夸口的,当指着主夸口。
  • 18 因为蒙悦纳的,不是自己称许的,乃是主所称许的。

《答疑解惑》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린도후서》 10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고린도후서》 10장은 앞부분의 논리와는 분명히 약간의 괴리가 있습니다. 왜일까요? 앞에서는 고린도 사람들이 이미 순종했다고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장에 이르러 바울은 그들이 아직 순종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고린도후서 10:6)

다시 말해, 편지가 여기까지 오니 다소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어떤 이들은 과감하게 이것이 《고린도중서》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이 구절이 《고린도중서》인데, 후대의 사람들이 필사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된 영문인지 뒤섞여 필사되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생각에는 그럴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으며, 저 역시 이것이 바울의 《고린도중서》였으나 몇몇 단락이 《고린도후서》의 뒤쪽에 붙여진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장을 볼 때, 앞선 장들의 흐름과 억지로 이어가며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보아서는 매끄럽지 않고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이 장에서는 이 장만의 주제에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다"입니다.

사람의 생각을 사로잡아 되찾아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각을 되찾아와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일임을 알고 계십니까? 말을 할 때는 온유함을 담아야 하면서도 단호해야 하고, 무너뜨려야 하면서도 세워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점은 다시 조정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자주 귀신에게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뜻은 유독 거짓말을 쉽게 믿는데,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괴이한 일입니다.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일을 믿는 것은 매우 어려워하면서도, 자신을 패망하게 만드는 것은 유독 빠르게 믿어버립니다.

예를 들어, 제가 한 자매를 섬기게 되었는데 머리가 몹시 아픈 것을 보았습니다. 기도하면 나을 수 있을까요? 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매는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로 두통이 심해 견디기 힘들어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통제 두 알을 먼저 먹고 버틴 다음에 다시 기도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자매는 속으로 '어라? 나를 위해 기도해주기 싫은 건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게도, 거짓말은 거의 순식간에 '탁' 하고 찾아옵니다. 즉, 사람의 생각과 뜻은 참으로 악하여 거짓말을 너무나도 쉽게 믿고, 순식간에 거짓말에 이끌려가 버립니다.

어떤 사람에게 암을 유발하는 성격이 있는지를 판단하려면, 그가 매사를 늘 부정적으로 바라보는지 보면 됩니다. 길거리에서 들어온 사람들도 제가 죽기 살기로 섬기는데, 제 곁에 있는 사람들을 제가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당신을 위해 기도해주기 싫다"라는 말이 얼마나 사람의 속을 긁어놓습니까? 만약 제가 그 생각을 맞받아쳐 바로잡아 주지 않는다면, 이 영적 전쟁은 패배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목회자의 사역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가운데 있는 소그룹 목회자들을 훈련할 때, 말을 단호하고 분명하게 하라고 가르칩니다. 입을 열었을 때 솜바지 허리춤처럼 흐물흐물하고 논리가 불분명하면, 대화의 공방 속에서 번번이 귀신에게 바닥에 내팽개쳐져 짓밟히게 되며, 그렇게 되면 사역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모두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고자 한다면, 이것이 영적 전쟁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싸움은 포연이 보이지 않지만, 사람을 패망하게 하는 것과 사람을 세우는 것 사이의 치열한 공방전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1. 이것은 영적 전쟁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대할 때, 겉으로는 마치 어떤 사람들이 찾아와 고린도 교회를 어지럽히고 패망하게 만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일을 단순히 특정 사람들의 탓으로 돌린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이 영적 전쟁이라는 데 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영적 전쟁터에서 끊임없이 마귀와 겨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때로는 마귀를 묵사발로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마귀에게 맞아 만신창이가 되기도 하지 않습니까? 때로는 마침내 귀신을 바닥에 내리누르고 제압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땀을 흘리며 극심한 수고를 겪게 됩니다. 놈을 바닥에 짓누르기까지 수많은 펀치를 맞기도 합니다. 사람을 목양하고자 한다면, 이것이 영적 전쟁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는 것은 지극히 힘겨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어제 우리 가운데 한 소그룹 목회자가 자신이 섬기는 형제 안에 있는 거짓말을 무너뜨리려 하다가, 아직 미숙한 탓에 결국 그 형제를 선악을 분별하는(识别善恶) 상태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그렇게 만들려던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제가 그 일을 넘겨받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소그룹 목회자들이 감당하기 힘든 위태로운 상태까지 몰고 갔을 때, 제가 넘겨받아 처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그 사람을 단단히 붙잡아 앉혀야 했습니다! 제가 넘겨받자 그 사람은 입을 열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영적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는 다짜고짜 자신의 목회자가 왜 자기를 망신시키고 왜 상처를 주었느냐고 따졌습니다. 그는 "내가 지금 얼마나 연약한지 여러분이 아셔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상대방과 시시비비를 따질 때는 그 이유가 어찌나 차고 넘치는지 모릅니다. 화를 내는 이유도 당당하고, 괴로워하는 이유도 당당하며, 상처받은 이유도 당당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 저는 단호히 말을 끊었습니다. "당신이 지금 하는 그 모든 말들이 자기 자신을 패망하게 만드는 것임을 압니까?" 제 말이 단호하지 않습니까? 단호합니다! 사람의 생각을 사로잡아 되찾아오는 데에는 기가 막힌 비결이 하나 있습니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망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저는 그를 돕고 세워주어, 그가 그 상태에서 걸어 나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께 온전히 복종했다면, 더 이상 자기 자신의 논리를 늘어놓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쉽게 상처를 받겠습니까? 쉽게 상처받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조차 마음에 내상을 입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형제자매들의 마음을 보면 온통 내상과 상처투성이지 않습니까?

소그룹 목회자들의 목양이 아직 능숙하지 못하고 다소 거칠기도 합니다. 마치 칼날이 잘 들지 않아 삐걱거리며 썰어대도 제대로 잘라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이것이 영적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말을 주고받는 그 언어의 공방 속에서, 이미 영적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는 여러분이 이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의 육신의 말 또한 영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그것은 패망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각을 사로잡는 것만이 사람을 패망 가운데서 건져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이것이 바로 목양입니다.

단언컨대, 여러분 마음속에 하나님의 양 떼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귀신을 제압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즉, 섬기다 보면 어느새 목양하는 대상과 함께 선악을 분별하는 데 빠지게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선악을 따지며 엉겨 붙어 싸우게 됩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상황에 꽤 익숙하지 않습니까? 사역 가운데서든 목양 가운데서든, 하다 보면 두 사람이 엉겨 붙어 싸우게 됩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선악을 따지고, 나도 저 사람에게 선악을 따집니다. 그러나 선악을 분별하는 것은 모두 악한 것입니다. 문제는 한 사람은 살려내려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스스로를 망치려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전쟁의 기이한 실체입니다. 어떤 이들은 '내가 내 자신을 쥐어뜯고 괴롭히지 않으면, 이 세상을 헛산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역을 할 때, 교회 안에는 사람을 패망하게 만드는 무리가 종종 나타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교회를 마냥 온전하게 거룩한 곳으로만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죄인들이 모여 있으니 서로 부대끼고 부딪히는 것입니다. 그 부딪힘을 통해 무엇을 합니까? 우리의 더럽고 거룩하지 못한 것들을 모조리 깎아내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바로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거룩하지 못한 한 사람이 또 다른 거룩하지 못한 사람을 목양하면서, 그 과정 속에서 함께 거룩해져 가는 것입니다.

2. 반드시 담대함으로 이런 자들을 대해야 한다

고린도 교회에 어떤 사람들이 들어왔는지 아십니까?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이 사람들은 대단한 자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보다도 더 영향력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손가락을 꼽아보든 발뒤꿈치로 셈을 하든, 바울보다 영향력이 큰 자가 누구겠습니까? 틀림없이 베드로나 야고보 같은 이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와서는 바울이 예수를 직접 따라다니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가 전한 것들 중에는 하나님의 도와 거리가 먼 것들도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롯을 의인이라고 부른 내용도 있습니다. 낭패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롯을 의인이라고 하셨습니까? 바울이 언제 롯을 의인이라고 했습니까? 롯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상실한 자입니다. 그들은 사명을 잃어버린 자를 의인으로 둔갑시켰습니다.

단언컨대, 독은 많은 양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독 한 방울만으로도 치명적입니다. 술 한 잔에 비상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마시면 죽음에 이르는 것과 같습니다. 술입니까? 술입니다. 독입니까? 단 한 방울뿐이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 역시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는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이다! 나는 큰 사도이며, 예수를 직접 보았고,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도 그 자리에 있었다"라고 자랑합니다. 여러분은 베드로의 이러한 모습이 영적 전쟁에서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아십니까? 이것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영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영적 문제로 인해 고린도 교회를 어지럽힌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대단히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바울이 변질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전 한 목사님을 만났는데, 그 목사님이 제게 "많은 사람이 당신이 빗나갔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더군요. 빗나갔으면 빗나간 것이지요. 원래도 빗나가 있었던 존재들입니다. 예전에는 많이 빗나갔고, 지금은 덜 빗나갔을 뿐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이름도 없는 평범한 자들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들이 여러분을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곳으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알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은, 여러분 주변에 온갖 거짓 선지자들이 끊임없이 거짓말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끊임없이 사람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저를 보고 빗나갔다고 한다면, 그런 면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시선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사람의 눈은 원래 다 삐뚤어져 있지 않습니까? 무엇을 본들 바르게 보이겠습니까? 어쩌면 우리가 정말 빗나간 것일 수도 있겠지요." 저는 오늘날 우리가 이 영적 싸움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자들을 담대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담대해야 합니까? 말에 힘이 있어야 하고, 영적인 무기를 들어야 합니다.

한번은 제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두 사람이 단체방을 나간 일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주변의 우리 교회 형제자매들이 제게 말해주어 알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제가 "내가 어떻게 압니까? 비행기 타기 전까지 섬기다가 내렸더니 방을 나가고 저를 차단까지 했더군요"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의 집 근처에 어떤 선지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두 자매는 모두 제게서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었고, 중병에 걸렸다가 제 사역을 통해 은혜를 입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그중 한 자매에게 다른 사람을 목양하도록 맡겼는데, 사람을 보는 저의 눈도 참 부족했나 봅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을 세워 목양하게 했을까요? 자매는 자기 집 근처에 선지자가 있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두 사람 모두 곁에 그런 선지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전에 병들었을 때는 그 선지자가 왜 돌봐주지 않았는가? 왜 내게로 찾아왔는가?' 자매가 말하기를 "우리 집 근처 선지자가 어제 제게 말하기를, '유 목사를 조심하라, 그가 너희에게서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먼 거리에서 내가 도대체 무엇을 노린단 말인가? 도무지 노릴 것이 없다.'

그런데 다른 자매도 "어제 우리 집 근처 선지자도 똑같이 제게 그렇게 말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완벽하게 일치했습니다. 결국 그 두 자매는 단체방을 나가 잠적해 버렸습니다. 이것이 이토록 딱 맞아떨어진다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확증이 아니겠습니까? 어디 두고 보십시오.

그 후로 저는 목양에 있어 점점 더 강인해졌습니다. 사람을 패망하게 만드는 자들을 담대하게 대해야 합니다. 때로는 형제자매들이 마귀의 거짓말을 입에 담으면, 저 역시 그들을 엄히 다루어야 합니다. 왜일까요? 내버려 두면 결국 패망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는 하나님께서 멸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훼손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멸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50%를 되찾아왔고, 어떤 사람은 80%, 어떤 사람은 90%를 되찾아왔을지라도 상관없습니다. 계속해서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사람이 거짓말을 믿는 힘은 실로 대단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이렇게 바쁜데도 수요일 성경공부에 참석해야 하고, 금요일 성경공부에도 가야 하며, 주일 예배까지 드려야 합니다. 내게 무슨 시간이 있습니까? 내가 이미 이만큼이나 하고 있는데, 내게 대체 무엇을 더 바라십니까?"

여러분, 이런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만약 이런 말이 교회 안에 퍼져나간다면 교회가 무너지고 맙니다. 제게 담대하게 대하라고 하신다면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지 마십시오! 이곳에서 계속해서 부정적인 패망의 말을 쏟아내지 마십시오." 우리 형제자매들 중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의 유익을 얻지 못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3.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다

저는 사역하는 과정에서 종종 도전에 직면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제게 따집니다. "왜 화를 내십니까? 왜 언성을 높이십니까? 말 좀 좋게 해주실 수는 없습니까?" 이런 말은 참으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때로는 사람이 귀신에게 사로잡혀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결과는 어떠합니까?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하게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고린도후서 10:2-3)

비록 제 목소리가 다소 커지고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질렀을지라도, 저는 혈기와 육신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고린도후서 10:4-6)

우리의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 앞에서 강력한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게 이러한 영적 무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논하자면, 보통 사람들은 결코 저를 당해낼 수 없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제 사역할 때 어떤 사람이 제게 수많은 인간적인 논리를 늘어놓았습니다. 제가 한마디 던졌습니다. "그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단 한 구절도 없었습니다. "당신이 늘어놓은 수많은 말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단 하나라도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당신처럼 행동하셨겠습니까? 아닙니다. 바울이 당신처럼 했겠습니까? 아닙니다. 요셉이, 야곱이 당신처럼 했겠습니까? 아무도 당신처럼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지금 마귀의 거짓말 속에 살면서, 스스로를 망치고 있는 줄도 모른 채 귀신의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 중에도 귀신의 말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순간 정신이 멍해지며 미혹되어 귀신의 말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귀신이 사람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목사님도 나를 섬기는 것이 참 싫으시죠?" 아, 이 말이 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아니었다면 당신 같은 사람은 하늘과 땅의 거리만큼 멀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귀신은 이 말을 듣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음 말을 이어갔습니다. "나는 내 뜻대로 행하지 않고, 내 기분과 감정에 따라 행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뿐이다. 그러니 너는 썩 물러가라! 이 자매가 우리 가운데 단 하루라도 머물러 있는 한, 나는 기필코 너를 박멸해 버릴 것이다." 이렇게 선포하자 귀신이 꺾여버렸습니다. 저 역시 육신의 연약함이 있어 제 감정대로 하자면 정말이지 진저리가 나고 피곤하기 짝이 없습니다.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제 기분대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합니다. 당신이 내 목양 아래 있는 한, 나는 당신을 마귀의 거짓말 속에서 반드시 건져낼 것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대단한 것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이렇게 사니 괴롭지 않습니까? 괴롭지요! 그러니 나와 함께 걸어 나옵시다." 그러자 그 사람은 "목사님을 따라 나가겠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귀신이 분통이 터져 발악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왜 이자를 죽이지 못하는가? 왜 이자는 당신을 따르려 하는가? 아! 왜 내 말을 듣지 않는가? 원래는 숨통을 끊어놓으려 했는데, 왜 하필 당신을 만났단 말인가!" 우리의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적 전쟁터에서 우리를 백전백승의 장수로 삼아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의지하여 승리하지 못한 싸움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끄럽게 한 싸움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는 암 환자들을 대할 때 긍휼과 연민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느낍니다. 수년 전 한 암 환자를 섬겼는데, 그는 결국 거짓말을 따라가고 말았습니다. 만약 그가 저를 끝까지 따르며 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목양하도록 내어맡겼다면, 그는 오늘날 온전히 회복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양이 점점 커졌고, 저는 그를 이끌고 기도하며 동시에 가르쳤습니다. 사망의 영이 그의 심장과 폐로 침투하여 심부전 증상이 일어나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참으로 먹먹했으나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은 우리의 측량을 뛰어넘습니다. 두 시간 동안 그를 이끌고 기도하자 심장의 힘이 일부 회복되었고 호흡도 크게 안정을 찾았습니다.

제가 그에게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암세포는 매우 왕성해 보입니다. 암세포는 활발할수록 밭의 브로콜리처럼 빠르게 자라납니다. 그러나 이 암은 완전히 쪼그라들고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다만 오늘부터 당신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육신의 안일한 삶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와 모든 계략을 파해야 합니다."

마귀가 쓰는 간계는 뻔한 몇 가지 수작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면 원수의 온갖 흉계와 견고한 진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교만한 모든 지식을 남김없이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모두 일어나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수많은 말을 늘어놓으면서도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단 한 구절도 없다면, 그 모든 말은 샤브샤브 냄비에 고기를 건져 먹듯 다 털어버리십시오.

4. 말은 영적인 것이다

저는 여러분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쳐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가르치는 것도 가르치는 것이지만, 실제로 배우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바울의 말을 보십시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고린도후서 10:3)

저는 바울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제 육신의 감정으로는 싫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포할 때 귀신은 즉시 멸망당합니다.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고린도후서 10:7)

주께서 우리에게 권세를 주신 것은 여러분을 세우려 하심이니, 바울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강력한 힘이 실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언어의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이 언어의 뿌리는 하나님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논쟁해서는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저의 목양이 왜 효과가 있겠습니까? 제 말이 영적 권세로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어디 시험해 보십시오. 기회가 된다면 저와 대화를 나누며 겨루어 보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제가 하는 말은 오직 여러분을 괴로움에서 건져내기 위함입니다. 제가 하는 말은 여러분을 세워주기 위함입니다. 제가 하는 말은 사람을 온갖 거짓말 속에서 끄집어내어 그 마음과 생각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뿐입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자신의 환경을 바라보며 나약해지지 않습니까? 자신의 왜소한 체구와 시장의 열악한 환경을 바라보고, 머릿속에 든 빈약한 지식을 바라봅니다. 여러분이 완벽히 준비되고 강해질 때를 기다린다면, 시장의 기회는 이미 다 지나가 버릴 것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눈앞의 난관을 극복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것, 그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을 굳게 붙잡기 시작하면, 속사람이 능력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기 시작하면 내면이 힘으로 가득 차서 그 문제들이 하찮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종종 말합니다. "이 하찮은 것들아! 사는 것이 그리 대단히 어려운 일이더냐?" 어떤 이는 "목사님, 저는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묻습니다. "어제 살아서 오늘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어제도 살아있었고 오늘도 숨 쉬고 있지 않습니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도 살아서 내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또 "그러다 죽으면 어떡합니까!"라고 합니다. "죽으면 죽는 것이지요! 나는 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당신의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사람이 사는 것은 단순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말은 매우 영적인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우리가 하는 말이 온통 육신의 사람의 말이요,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뜻일 뿐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에게 꼼짝없이 휘둘리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회복하십시오. 과거에 자신을 의지했을 때 잘되지 않았습니까? 스스로 하려다 회사를 말아먹지 않았습니까? 자신을 의지하다가 사업을 망치지 않았습니까? 자신을 의지하다가 실직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제부터는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십시오. 사람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회복해 보십시오! "목사님, 저는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믿기로 결단하면 믿음이 생기는 법입니다.

단언컨대 하나님의 말씀은 놀랍습니다. 특히 《전도서》를 깊이 읽으십시오!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우리 권세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이는 내가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 같이 생각하지 않게 함이라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자가 어떠한 자이면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자도 그와 같은 자인 줄 알라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고린도후서 10:8-14)

단언컨대 이 말씀의 권세는 실로 강력합니다. 여러분도 배워야 합니다. 얼굴을 마주하고 직접 부딪쳐 보아도 좋습니다. 이런 자들은 참으로 지혜가 없어 자기들끼리 비교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비교하며, 비교해서 무엇을 얻겠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바울은 이어 말합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고린도후서 10:17-18)

어디 한번 겨루어 보십시오. 주께서 함께하시면 여러분의 입술의 말은 단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말은 모조리 헛것이 될 것입니다.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를 하나님께서 가만두시겠습니까? 교회를 왜 찾아왔습니까? 돈을 벌러 왔습니까? 쇼를 하러 왔습니까?

어제 한 목사님을 만났는데, 온몸이 상처투성이였고 지난 세월이 참으로 험난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과 함께 교회를 개척했는데, 동역하던 자가 도중에 무책임하게 떠나며 사역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렸습니다. 그가 떠난 이유는 교회의 짐들이 자신의 안락한 삶과 유흥을 방해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교회를 맡자마자 개척 목사님은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비참하지 않습니까? 고통스럽고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직분을 빼앗긴 것입니다.

비행기를 탔을 때 옆자리에 앉은 한 목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요즘 어디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선교를 다녀오셨나요?" 그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사업하러 다녀왔습니다." "목사님이 웬 사업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드디어 그 지긋지긋한 멍에를 내려놓았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본인은 고역을 내려놓았을지 몰라도, 남아있는 양 떼는 더욱 고통스러워졌습니다. 속마음을 그렇게 털어놓는 것을 들으시며 예수님께서 얼마나 가슴 아파하셨겠습니까?

그 후로 저는 깨달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고,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지 않는 자는 결코 목양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힘을 주어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쳐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이 영적 전쟁은 사람들의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생각 역시 사로잡아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싸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온전히 돌아설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직분입니까! 결코 지긋지긋한 고역이 아닙니다. 목사라는 이 사역을 저는 너무나 누리고 즐거워하며 기쁨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비록 매 전투마다 펀치를 맞아 눈두덩이가 멍투성이가 될지라도 결국 승리합니다! 마귀를 바닥에 내리누르고 짓밟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말은 영적인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말의 영적 권세와 무게감을 훈련하기 시작하십시오.

5. 영적 주권은 타협할 수 없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 교회는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세우신 교회이며,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직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직분을 저는 죽는 날까지 단 하루도 내려놓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평생직분제를 하겠다는 말입니까?"라고 물을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평생의 부르심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호흡이 남아있는 한, 이 영적 영역을 마귀에게 결코 내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을 한 걸음 한 걸음 세워 하나님을 닮은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형제자매들이 저와 동일한 중심, 동일한 비전, 동일한 꿈을 품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다른 이들이 세운 교회는 우리가 관여할 바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다스리실 일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하나님께서 제게 위탁하신 곳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제게 맡기신 양 떼를 다시 하나님께 떠넘기고, 하나님이 다시 제게 맡기시면 또 떠넘긴 채 다리를 꼬고 앉아 낚시나 하러 가고, 스포츠카나 굴리며 등산이나 다니는 짓은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역자들 중에는 저를 닮아 노는 것에 흥미가 없는 이들이 많습니다. 놀러 가라고 등을 떠밀어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멀리서 왔으니 놀러 갑시다"라고 권하면 "놀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럼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라고 물으면 "사역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좋습니다, 사역을 마치고 구경시켜 주겠습니다." 그들은 세상 재미에 관심이 없습니다. 세상 놀이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 사람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없다는 사실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한 가지 원칙을 배웠습니다. 놀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냥 내버려 두어 어디든 가고 싶은 대로 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그의 핵심 관심사는 유흥이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어떤 대형 집회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해서 사역자들을 데리고 간 적이 있습니다. 청중들이 강단에 선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물급 목사들에게 질문했습니다. "목사님들의 개인적인 취미는 무엇입니까?" 한 분은 사냥이라 하고, 다른 분은 낚시라 했으며, 또 다른 분은 스포츠카와 레이싱을 즐긴다고 했습니다.

그때 제 동역자가 제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취미가 무엇입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나는 일하는 것이 취미이고, 사역하는 것이 취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제게 맡겨주신 일을 저는 끝까지, 철저하게 완수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약속하건대 여러분이 떠나지 않는 한 저는 동역자들과 소그룹 목회자들과 함께 여러분의 온 마음이 사로잡혀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할 때까지 섬길 것입니다. 온갖 방식을 다 동원해서라도 여러분이 복음의 참된 유익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백성으로 세워낼 것입니다.

진심으로 고백하건대, 여러분의 아픔은 곧 저의 아픔이며, 여러분의 괴로움은 곧 저의 괴로움입니다. 비록 제게 대단한 힘은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제가 믿는 대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이곳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영역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주신 영역이었듯, 그 누구도 와서 교회를 흔들 수 없습니다. 와서 분란을 일으킨다면 저는 단호히 징계할 것입니다. 상대가 아무리 대단한 사도라 자처할지라도 그것은 겉모습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은 제가 외모도 볼품없고 말도 거칠다고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칠어 보일지라도 명확하고 단순합니다. 제게는 진리의 도가 있으며, 이 도는 사람을 모든 결박에서 해방시킵니다. 마음이 괴로운 자들, 일터에서 고통받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참된 자유를 줄 것입니다.

6.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세우려 하심이다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에 대해 깊이 꿰뚫어 보았습니다. 저는 육신의 생명 자체나 돈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관심사, 곧 섬김과 사역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권세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세움을 입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영적 무기이며,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힘입어 우리는 이미 넉넉히 이깁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세우시려고 권세를 주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권세를 주신 목적은 여러분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여러분 위에 군림하며 권세를 부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함임을 압니다. 성경에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남을 섬기고 세우는 자가 된다면 하나님께서 어찌 권세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권세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포하는 말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은혜가 충만할 것입니다! 섬김을 받는 자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섬기는 자가 믿음으로 입을 열어 선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선포대로 영계에서 역사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큰 권능을 증언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시키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권세가 없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결코 남의 교회에 불쑥 찾아가 교회를 어지럽히지 않습니다. 감당해야 할 자기 사명이 차고 넘치는데 어느 겨를에 남의 곳에 가서 훼방을 놓겠습니까? 우리는 가장 큰 사도라 칭함을 받으면서도 할 일 없이 이리저리 쏘아다니던 자들과 같지 않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런 무책임한 태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고린도 교회 역시 베드로가 다녀간 이후 극심한 혼란에 빠졌습니다.

바울이 훗날 무엇이라 말했습니까? "나는 가장 유력한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베드로가 왔다고 해서 특별할 것이 있습니까? 그 누구를 앞세운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이 양 떼는 내 책임입니다. 주께서 내게 권세를 주셨으니 나는 성도들을 굳건히 세워 그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할 것입니다. 표현은 다소 투박할지라도 선포되는 하나님의 도는 결코 조잡하지 않습니다.

손에 권세가 있는 자와 권세가 없는 자의 사역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권세가 있을 때 원수 마귀를 짓밟고 형제자매들을 온전히 세울 수 있습니다. 이리가 오면 쫓아내고, 사자가 와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사자나 이리가 양을 물어갈 때 끝까지 쫓아가 양을 도로 빼앗아 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 주권이며, 권세이며, 말씀이자 무기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영적 훼방꾼들을 담대하게 대해야 합니다. 제 앞에 와서 이런저런 영적 논리를 들이대며 따지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말뿐인 논리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오직 영적 권세가 나타나야 합니다!

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자랑하려거든 오직 주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누가 하나님께 옳다 인정함을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인정받는 사람입니까?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고린도후서 10:17-18)

형제자매 여러분, 이 말씀의 깊은 뜻을 깨달으셨습니까? 바울이 전한 도와 설교는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한 것입니다. 바울이 선포한 모든 것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바울의 서신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고백에 깊은 울림을 받았습니다.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마음속에는 저를 진정으로 이끌어줄 영적 아비와 같은 목회자에 대한 깊은 갈망이 있었습니다. 제가 직면한 문제들은 제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된 목자를 만나지 못했을 때 저는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하나님! 훗날 제가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게 하실 때 주님을 본받는 아비가 되겠습니다.' 저는 오직 주 안에서만 자랑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중심의 소원을 아시고 제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사역할 때마다 주님은 저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랑하려거든 주 안에서 자랑해야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는가를 자랑해야 합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고린도후서 10:17-18)

어떤 이들은 스스로를 기준 삼아 비교하는데,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줄자를 사 와서 자기 몸을 스스로 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1센티미터도 1미터도 자기 마음대로 재어버립니다.

그러나 정밀한 하나님의 줄자로 정확하게 재어보면 모든 것이 삐뚤어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어찌 자신을 잣대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무엇으로 측정해야 합니까?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만이 절대적으로 정확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참으로 복된 자들입니다. 이 양 떼의 울타리 안에 저와 같이 양들을 철저히 지키는 자가 있다는 사실에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외모가 아닌 하나님의 준엄한 평가와 하나님의 잣대,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분량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누가 참된 사도이며 누가 거짓 사도인지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납니다.

비록 여러분의 현재 모습이 부족할지라도,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간절한 마음으로 여러분의 온 마음이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오기를 밤낮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비록 연약할지라도, 언제든 제게 도움을 청한다면 저는 하나님을 섬기듯 여러분 한 영혼 한 영혼을 성심껏 섬길 것입니다.

제 힘은 미약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넉넉한 힘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제 능력이 모자랄지라도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적 무기와 능력이 제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저와 동일한 비전, 동일한 사명을 품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성도들은 단 한 사람도 낙오되지 않을 것입니다. 자랑하려거든 오직 나의 주 예수님만을 자랑하겠습니다. 주님은 저의 이러한 섬김을 기뻐하시며, 마지막 날 제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영광의 상급을 주실 줄 확신합니다. 이것이 제 평생의 소망입니다.

바울의 서신은 제 가슴속 가장 깊은 곳을 울립니다. 그러하기에 여러분에게 저의 온 마음을 털어놓아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운데 친히 역사하셔서, 현재의 모든 억눌린 상태에서 여러분을 건져내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모든 생각이 사로잡혀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고 온전히 순종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저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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