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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2024-02-25 9,025 神同在系列 神同在 不要着急 吃得起苦 头脑清醒 不要不好意思 在别人的事上忠心

1.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과 아주 좋은 주제를 나누고자 합니다. 왜일까요? 하나님께서 저들의 재물을 빼앗아 우리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성경》에 나오는 원문 그대로의 말씀이며, 이 이야기 또한 대단히 흥미진진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임재 시리즈’를 나눕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돈이 되고 밥이 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단순히 돈과 밥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수억, 수조 원대 가치의 결정이며,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입니다, 이 어리석은 자녀들아! 부모 입장에서 자녀가 무엇이 더 값진지 모르는 것을 보면 “이 어리석은 아이야!”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실로 엄청난 결정인데, 많은 사람이 이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지난번에 우리는 야곱이 지팡이 하나만 짚고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갔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돌아올 때의 이야기입니다. 야곱이 지팡이 하나만 짚고 갈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그가 지팡이를 짚고 돌아올 때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와, 대부호였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대부호’라고 하니 “목사님, 돈을 참 좋아하시나 봅니다”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임재가 얼마나 값진지 모른 채 그저 어리숙하게 하나님의 임재를 구했습니다. 이제 그는 알게 되었을까요?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20년이라는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습니다. 오늘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사람이 재정 상황에서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건강 상태에서 복을 받지 못하는 것도 비극입니다! 왜일까요? 재정과 건강의 문제는 모두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영적인 사람은 시간은 다소 걸릴지라도 재정적으로 반드시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그대들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눕니다. 이 말이 얼핏 듣기에는 도덕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우리는 야곱을 탓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원래 이렇게 일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가장 자주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자주 하시는 일은 어떤 사람들의 재물을 빼앗아 다른 사람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논쟁하려 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세일 산은 원래 호리 족속이 살던 곳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빼앗아 에서에게 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내가 원해서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원해서”라는 이 말이 참 분통 터지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왜 주님을 믿습니까? “내가 원해서입니다!” 당신은 왜 두리안을 좋아합니까? “내가 원해서입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어찌하겠습니까?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압 땅을 빼앗아 롯의 후손에게 주셨고, 암몬 땅을 빼앗아 암몬 자손의 후손에게 주셨습니다. 온 땅이 다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은 주시고자 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가나안 땅은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이스라엘에게 주셨고, 오늘날까지도 바로 그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만국의 경계를 정하셨으니, 여러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운다면 이는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온 우주의 천연자원관리국과 같으셔서, 그분이 “이것은 네 것이다”라고 하시면 네 것이 되고, “이 양들은 네 것이다”라고 하시면 네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시며, 이는 아주 냉혹한 현실입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빼앗기는 사람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빼앗아 채워주시는 사람인가 하는 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빼앗기는 사람이라면 비극입니다!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큰돈을 날리게 됩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했으면 손에 1,000만 원이라도 남아 있었을 텐데, 애쓰고 수고하다가 그 1,000만 원이 마이너스 1,000만 원이 되어 버렸다면 대체 무엇을 바라고 그런 것입니까?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때로는 너무 화가 나지만, ‘그래, 마음을 비우자. 각자 저마다의 인생이 있고 그릇대로 사는 거지!’라며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예를 들어 주일 예배를 보십시오. 주일 예배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는데,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하여 드리지 못하고 툭하면 아들에게, 남편에게 써버립니다. 온통 세상일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남편의 임재를 구하고, 아들의 임재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지 마십시오. “나는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 내 생명을 하나님께 바칠 것입니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주일 예배 시간조차 바치지 못하면서 무엇을 바친다는 말입니까? 여러분의 생명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의 모든 시간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입니다.

제가 보기에, 시간조차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는 것은 쓰레기나 다름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기쁨으로 섬긴다고 해서 여러분이 매우 영적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제가 기꺼이 여러분을 섬기는 것은 여러분을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같기 때문이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대단해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사람이기에 한 사람 한 사람 섬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귀신에게 끌려가 버리기도 하는데, 그렇게 떠나가면 저는 집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며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제가 샴페인을 터뜨려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터뜨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께서는 매우 냉혹한 현실을 만드셨습니다. 곧 빼앗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빼앗아 채워주심을 받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냉혹한 일입니다. 스스로를 돌아보십시오. 제 평생에 정말 잘한 결정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다른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임재만을 구하며,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에만 관심을 둔 것입니다. 저는 결정을 내릴 때마다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을 기뻐하실까?’ 어떤 일이 돈을 많이 벌게 해 줄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게 만든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골칫거리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저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저는 제 두 손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래전에 이미 제 능력을 의지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바보인 줄 아십니까? 저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유익은 대단히 큽니다!

사람의 안목이 곧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야곱의 안목을 보십시오. 야곱은 정말 안목이 탁월했습니다. 그의 안목은 단번에 영원 속에 있는 축복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20년 전에는 지팡이 하나만 짚고 갔는데, 오늘날에는 수많은 양 떼와 소 떼, 낙타 떼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고요? 그가 형 에서에게 선물로 보낸 아주 작은 일부만 해도 양 200마리에 암염소와 낙타, 나귀 등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돈인지 아십니까? 지금으로 환산해서 제가 여러분에게 양 200마리와 낙타 20마리를 선물로 준다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은 양 200마리와 낙타 20마리가 얼마의 가치인지 아십니까? 양 한 마리에 30만 원만 잡아도 200마리면 6,000만 원이고, 소와 낙타는 훨씬 더 비쌉니다! 야곱은 20년 전에 지팡이 하나만 짚고 갔지만, 오늘날에는 거대한 양 떼와 낙타 떼, 나귀 떼를 이루었습니다. 그가 에서에게 준 것이 십분의 일 정도였다고 생각해보면, 그는 실로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어디서 났습니까? 하나님께서 빼앗아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얼마의 시간 만에요? 6년 만에 하나님께서 빼앗아 그에게 주셨습니다. 야곱의 안목이 소나 양에 가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야곱의 안목은 하나님의 축복에 고정되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신 것입니다.

나중에 저는 이 세상이 참 흥미롭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손에 구슬 하나를 쥐고 이리저리 바꾸다 보니 결국 소 한 마리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바꿀 수 있었을까요? 세상일이란 본래 그렇게 돌아가는 법입니다. 이 세상에서 돈은 결코 줄어들지 않으며, 단지 한 사람의 손에서 다른 사람의 손으로 흘러갈 뿐입니다. 구슬 하나가 어떻게 소 한 마리가 되었을까요? 계산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그 구슬을 가지고 바닷가로 가서 한 아이를 찾았습니다. 아이는 구슬이 마음에 들어서 아주 예쁜 조개껍데기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는 그 조개껍데기를 가지고 서쪽으로 갔습니다. 바닷가를 벗어나자 그 조개껍데기는 귀한 물건이 되었고, 그는 그것으로 구슬 10개를 바꿨습니다. 그리고 다시 바닷가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며 물건을 유통한 것입니다. 그렇게 바꾸고 바꾸다 보니 소 한 마리가 되었고, 소 한 마리가 점차 집 한 채가 되었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집 한 채를 소 한 마리로 바꾸고, 소 한 마리가 점차 조개껍데기 하나가 되고, 조개껍데기가 결국 구슬 하나가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실로 대단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은 한 덩이를 주셨을 때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하시면, 당신은 그것을 서서히 열 덩이로 불려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 한 덩이를 주셨는데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결국 그 한 덩이마저 빼앗겨 열 덩이를 가진 사람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합리적이냐고 묻고 싶으십니까?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사람은 서서히 재앙을 맞이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왜 라반의 소유를 빼앗아 야곱에게 주셨을까요? 야곱은 무엇을 했습니까? 오늘 우리는 바로 이 점을 나눌 것입니다. 여러분은 야곱을 알아야 합니다. 평생 야곱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야곱은 떠날 때 지팡이 하나만 짚고 갔으나, 돌아올 때는 수많은 소와 양 떼를 거느린 그 시대의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의 영적 안목에 달려 있습니다.

몇 년 전, 우리 교회 한 자매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 이 집을 팔고 싶어요.” 제가 “얼마에 팔 수 있는데요?” 하고 물으니, “한 7080억 정도요”라고 했습니다. 팔아도 그만, 안 팔아도 그만이었지만 아무리 내놓아도 팔리지 않았습니다. 어디 가서 하소연하겠습니까? 팔고 싶어도 안 팔리는 것을요.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2년이 지나자 120억에 팔렸습니다. 마침 시장 최고가일 때 사 간 호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호구가 많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딱 한 명이면 족합니다. 팔았을 당시에는 120억이었는데, 지금은 다시 7080억으로 떨어졌습니다. 어디 가서 따지겠습니까? 이런 일은 한둘이 아니며, 우리 가운데 수없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40억을 그 사람의 손에서 빼앗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의 임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 참 너무하네요”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이것은 인정머리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손에서 빼앗아 누구에게 주느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니 하나님께 따질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하시겠다는데 여러분이 어찌 막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또 다른 자매님은 어젯밤 제게 집을 판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자매님도 매수자를 찾았는데, 그 사람이 “세금을 낼 테니 그 금액을 매매가에 얹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집을 팔았는데, 팔자마자 정부에서 면세 혜택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5억 원을 아끼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값어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의 임재는 대단히 값집니다! 정신없이 살다가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고 오직 남편의 임재만 남게 만들지 마십시오. 그러면 큰일 납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서는 겉보기에 기세등등하게 잘나가는 많은 사람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열심히 번 것을 결국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넘겨주도록 하십니다. 참으로 좋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좋다고 합니까? 너무 못됐네요!”라고 하시겠습니까? 이것이 왜 안 좋다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라반의 양 떼를 빼앗아 내게 주셨습니다! 라반이 점 있는 것을 야곱에게 주겠다고 하면 태어나는 양마다 점이 생겼고, 얼룩무늬 있는 것을 야곱에게 주겠다고 하면 태어나는 양마다 얼룩무늬가 생겼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주관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공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술’이었습니다! 게다가 여러분이 이러한 것을 얻었을 때 누군가 우리를 해치려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라반이 야곱을 죽이려 했지만 죽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라반아, 조심하여라. 가부간에 말하지 말라. 네가 함부로 굴면 네 목숨을 거두어가겠다!” 《성경》에 이렇게 적혀 있지는 않지만, 제가 쉽게 번역하자면 대략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는 것이 좋습니까, 안 좋습니까?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참으로 좋습니다! 여러분이 부를 얻게 되면 수많은 파리와 모기 떼가 꼬이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에 익숙해진 사람은 하나님 없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면 모든 일이 너무나 쉽게 풀립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야곱에게서 배우십시오. 배우실 수 있겠습니까? 배우십시오!

2. 본문 말씀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이 모든 영광을 모았다 하는지라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창세기》 31:1-9)

3.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형제자매들은 이 시대의 야곱이 되기를 갈망하며,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주님의 임재를 깊이 갈망하는 것은 재물 때문이 아니요, 주님이 우리의 생명이시며 우리의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를 인도하셔서 주님을 더욱 깊이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이끄셔서 기쁨으로 시간을 구별하여 주님께 드리게 하시고, 주님의 임재를 소중히 여기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께서 라반의 가축을 빼앗아 야곱에게 주셨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저들의 가축을 빼앗아 주사 주 안에서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주 안에서 주님의 선하심을 깊이 누리며, 주 안에서 주님의 임재와 은혜와 축복을 날마다 경험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이러한 용기와 이러한 안목을 주셔서, 《성경》 속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곧 주님과 언약을 맺은 믿음의 거장들을 본받게 하옵소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인도하사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시고 주님의 임재를 더욱 귀히 여기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본문의 배경

이 본문의 배경은 여러분 모두가 익히 잘 아시는 내용이지만, 저는 다시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제가 전하는 내용이 이전에 전했던 것과 겹친다면 그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고, 다음에 또 반복된다면 그것은 훨씬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을 떠날 때의 나이가 95~96세였습니다. 그는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머물렀는데, 그 20년 동안 지난 75년간 추구해 온 하나님을 마음속에서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얼마나 갈망했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얼마나 사모했던지요! 결국 그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던 길에 광야에서 잠이 들었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사닥다리 위에 서서 야곱을 향한 축복을 선포하셨습니다.

잠에서 깬 야곱은 “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알지 못했던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이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이토록 거대한 소와 양과 낙타 떼가 생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내게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고 나로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만 해주십시오”라고 구했습니다. 사람의 필요는 겉보기에 아주 단순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이번에는 깨달았습니까? 깨달았습니다. 야곱은 지팡이 하나만 짚고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면서 그저 “하나님, 제가 무사히 돌아올 수만 있게 해 주십시오.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고 평안히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라고만 바랐습니다. 그런데 돌아올 때 그는 엄청난 거부가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부유함을 기뻐하시고, 번성함을 기뻐하시며, 쪼들리고 메마른 삶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쪼들리고 메마른 삶이 어찌 좋겠습니까? 결코 좋지 않습니다!

이 노인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일하게 되었을 때, 처음에 라반은 한 달의 수습 기간 동안 무료로 머물게 했습니다. 라반이 보니 이 청년 야곱이 꽤 괜찮았던 것입니다! 야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복을 받은 사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특징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겼냐고요? 저처럼 생겼습니다. 제가 또 자랑을 늘어놓았네요.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사람에게 어떤 특징이 있는지 아십니까? 그의 손이 닿는 것마다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라반의 집에 병든 양이 생기자 그 양을 데려와 야곱에게 양 떼를 돌보게 했습니다. 그러자 병든 양은 낫고, 건강한 양은 더욱 튼튼해졌습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아십니까? 바로 ‘복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복잡한 사회 속에서 사람의 업무 능력을 검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실 능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열심히 일해도, 지지리 복도 없는 사람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군(郡) 하나를 맡겨 책임자로 세웠다고 합시다. 그전까지는 평안하던 지역이었고, 그 사람도 능력이 출중해 뼈 빠지게 일했는데, 이상하게 그가 부임한 뒤로 그 지역에 온갖 재앙이 닥칩니다. 이쪽 건물이 불타고, 저쪽 건물이 무너지고, 인테리어 공사를 하다가 내력벽을 부수는 등 온 동네가 불행해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상부에서 “보직 해임!” 명령을 내립니다. 그가 유능하다고 말해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가장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일지라도, 재앙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끝난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재앙을 몰고 다니니 얼마나 끔찍합니까?

때로는 정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혀두면, 이상하게 아무 사고도 나지 않고 아주 평온합니다.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우한으로 발령받았는데 우한 코로나가 터져서 해임당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재수가 없는 것 아닙니까? 왜 하필 다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이었을까요? 세상은 이렇듯 여러분에게 책임을 맡긴다는 명목으로 재앙의 책임을 뒤집어씌우기도 합니다.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사실 많은 일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복을 받았느냐 받지 못했느냐의 문제이며, 축복을 받았느냐 저주를 받았느냐의 문제입니다. 라반이 가만히 보니 야곱이라는 청년은 대단했습니다. 그의 손에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 풀렸던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지난 수년간 제가 손댄 사역이나 일 중에서 흐지부지 중단된 것은 하나도 없었으며, 모든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복잡해도 제가 손을 대면 순조롭게 풀렸습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당시 일할 때 제가 축사 사역을 그리 잘하지는 못했지만, 제가 일을 처리하고 나면 골치 아프게 굴던 문제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스스로 떠나갔다는 점입니다. 제가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했습니다.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라반이 보니 야곱이 참으로 훌륭하여 그를 붙잡아 두고 싶었습니다. 인재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는 단순한 인재가 아니라 ‘복 덩어리’였습니다!

라반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야곱이 1년을 일해주면 내가 1년에 얼마나 더 벌겠는가? 2년, 3년을 일해주면 훨씬 더 많이 벌겠지.’ 그래서 그는 두 딸을 야곱에게 시집보내기로 했습니다. 한 번에 둘을 다 보낸 것입니다. 야곱은 그 두 딸을 얻기 위해 라반의 집에서 14년 동안 일했습니다. 14년이 지난 후 야곱이 라반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14년이 지났으니 두 딸을 얻었으므로, 저의 품삯을 정해 주십시오.” 야곱은 처음에 품삯 협상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계약을 맺고 나면 라반이 품삯을 자꾸만 바꾸었습니다. 오늘도 바꾸고 내일도 바꾸어, 무려 열 번이나 품삯을 변경했습니다! 라반도 참 고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꾸만 말을 바꾸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야곱이 너무나 안쓰러워 꿈속에서 야곱에게 한 가지 묘안을 주셨습니다.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창세기》 31:8-9)

이렇게 정리되니 상황이 명확해졌습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말했습니다. “얼룩무늬나 점이 있는 양은 모두 골라내십시오. 앞으로 태어나는 양 중에 얼룩무늬나 점이 있는 것이 나오면 다 제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염색약도 없어서 털을 물들일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아이디어는 실로 ‘하나님의 완벽한 어시스트’였습니다! 결국 그 6년 동안 태어난 양들은 모조리 점 있는 양이 되어 야곱의 차지가 되었고, 약한 것들만 라반의 것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멀쩡하던 양이 염색도 하지 않았는데 자라면서 저절로 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어디 가서 따지겠습니까?

라반은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6년이 흘렀고, 라반이 보니 자신의 양 떼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제 생각에 야곱이 몰래 떠날 때쯤에는 라반의 양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양에게 점이 생겨버렸으니, 라반의 속이 얼마나 뒤집어졌겠습니까? 라반의 아들들이 말했습니다.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아 갔다!” 라반의 몫은 거의 남지 않았으니 라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점 없는 양을 맡겨 기르게 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전부 점 있는 양이 되어 버리고, 안 맡기자니 일할 사람을 찾을 수 없고, 맡기자니 기르면 기를수록 다 야곱의 것이 되어 버리니 말입니다.

라반의 아들들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아 갔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이때 야곱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습니다. 언제 라반이 손을 써서 자기를 죽일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계약을 번복하려 해도 번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전의 품삯은 깎아내릴 수 있었지만, 이미 털에 점이 박혀 나온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라반은 야곱을 죽이고 싶어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아, 일어나 이곳을 떠나라!” 이에 야곱은 두 아내를 불러 말했습니다. “속히 이리로 오시오. 큰일이 났소. 장인어른의 안색이 나를 대함이 예전 같지 않고 대단히 불쾌해하고 있소. 나는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으나 장인어른은 나를 속여 열 번이나 품삯을 바꾸었소.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나를 해치지 못하게 막으셨소.”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창세기》 31:8-9)

어떤 양은 새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자라면서 저절로 점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그 후 아내들의 생각도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맞아, 아버지는 우리를 남편에게 팔아넘겼고, 지금 우리에게는 수많은 자녀가 있는데, 아버지는 우리의 지참금과 우리를 판 돈을 가로챘어. 이 모든 재산은 나와 내 아들들의 것이야. 친정아버지는 이제 상관없어, 아버지에게 줄 몫은 없어!’ 야곱의 아내들도 참 똑똑하지 않습니까? 어느 쪽이 가깝고 먼지를 분명히 분별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몰래 떠났습니다. 그렇다면 라반의 양은 누가 돌봅니까? 돌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남은 것이 없었으니까요! 두 아내도 이제는 다투지도 않고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습니다. ‘내 남편의 재산이 이렇게 많으니 남편의 것이 곧 내 것이고, 내 것이 남편의 것이지. 우리 싸우지 말자’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라반은 야곱 일행이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들을 이끌고 추격했습니다. 라반은 참으로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 떼는 내 양 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 내 딸들과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하겠느냐 (《창세기》 31:43)

라반은 이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얼마나 억지스럽습니까? 하지만 라반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왜 어쩔 도리가 없었을까요? 본래 그는 야곱을 죽이고 양 떼를 모두 빼앗아 오려 했지만, 하나님께서 꿈 하나로 문제를 해결해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 꿈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라반아, 네 목숨을 조심하여라. 선악 간에 야곱에게 말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라반의 가축을 빼앗아 가셨는데, 라반이 하나님의 손에서 그것을 도로 빼앗아 올 수 있겠습니까? 빼앗을 수 없습니다! 꿈 하나로 문제가 깨끗이 해결되었습니다. 꿈 하나로 해결될 문제를 사람의 힘으로 풀려고 했다면 무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라반의 가축을 빼앗아 야곱에게 주신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러한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의 소유를 빼앗아 여러분에게 주시도록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그건 좀 그렇지 않나요? 좀 미안하고 면목이 없네요”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5. 원칙 1: 남의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은 당신의 것을 주신다

이 일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야곱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이 시대에 이 말씀을 저보다 더 잘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아주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왜일까요? 제가 바로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전에 제가 일할 때 저는 대단히 충성스러웠습니다! 고용주의 어려움은 곧 저의 어려움이었고, 사장님이 제게 일을 맡기면 저는 충심을 다해 일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제가 손해를 보았습니까, 보지 않았습니까?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면 굳이 억지로 굴리지 마시고 제 권면을 들으십시오. 이것은 가스라이팅도 아니고 심리적 지배도 아닙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원칙’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왜 그렇게 일했을까요? 저의 논리는 단순했습니다. ‘그들이 내게 문제를 해결할 플랫폼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면, 내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어디서 경험을 쌓겠는가?’ 남의 일에 충성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그것을 좋게 여기지 않고 속으로 ‘나한테 100만 원 주는데 내가 왜 1,000만 원어치 일을 해? 난 딱 50만 원어치만 일할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불충성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는 인사 교육을 조금 하려 합니다. 곧 사람이 남의 일에 충성해야만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것을 주신다는 원칙입니다.

보십시오. 이 소와 양과 낙타는 모두 야곱의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빼앗아 여러분에게 주시면 그것은 온전히 여러분 자신의 것이 됩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양을 칠 때 극진히 충성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야곱이 양을 치면서 불성실했던 적을 본 적이 있습니까? 라반이 오늘 품삯을 깎아도 충성했고, 내일 품삯을 깎아도 충성하며 묵묵히 양을 잘 쳤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는 그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고 계십니까? 직장 일에 충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목양과 섬김에 있어서도 저만큼 충성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은 이 원칙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남의 주머니에 든 돈만 쳐다볼 뿐,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하나님께서 큰일을 맡겨 다스리게 하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야곱이 양을 칠 때 겪은 어려움이 많았겠습니까, 적었겠습니까? 대단히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모든 문제를 성실하게 해결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그는 목양에 대한 지극히 풍부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는 양도 치고, 나귀도 치고, 낙타도 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모든 기술을 라반의 집에서 배운 것입니다! 충심으로 배우고 풍부한 경험을 쌓았으니, 훗날 하나님께서 야곱 자신의 소유를 주셨을 때 능숙하게 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원칙을 굳게 붙잡으십시오. “남의 일에 충성하라!” 저는 남의 일을 하면서 불충성하는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남의 일에 불충성하는 사람이 태반인데, 그런 자에게 하나님이 어찌 그 자신의 것을 주시겠습니까? 주실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라반의 것을 빼앗아 야곱에게 주셨을까요? 야곱이 일할 때 주께 하듯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의 성품입니다.

6. 원칙 2: 조급해하지 말라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조금 투박한 표현이지만 아주 직설적인 말입니다.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생각해 보십시오. 14년에 6년을 더해 20년이 흘렀습니다. 야곱이 그 14년 동안 조급해했습니까?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묵묵히 양을 쳤고, 그 14년의 세월을 거치며 엄청난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6년의 세월 동안, 심지어 라반이 매일같이 품삯을 바꾸는 1년의 세월 속에서도 야곱이 조급해했습니까?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런 것에 전혀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구한 것은 그저 입을 옷과 먹을 음식뿐이었습니다. 왜일까요? 영적인 사람은 본래 세상일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연연하지 않을까요? 그가 추구하는 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재물에 집착한다면 반드시 조급해질 것입니다!

1년이 지나도 아무것도 없고, 7년이 지나도 아무것도 없고, 14년이 지나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야곱이 조급해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보지 못했습니다. 왜 조급해하지 않았을까요? 그는 믿음을 훈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무엇 때문에 조급해하겠습니까? 그는 속으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모든 것을 내게 주실 것이다. 내 삶에 하나님의 임재만 있다면 내게는 아무 문제도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돈이 눈에 보이면 믿음이 생기고, 돈이 없으면 믿음이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재물 위에 믿음을 세운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돈이 생기니 믿음이 충만해진다. 복을 받고 돈을 벌었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다가도, 돈을 못 벌면 ‘하나님은 대체 어디 계시는가?’ 하고 따집니다.

사람이 조급해지면 일을 결코 잘 해낼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불충성하게 되고, 점차 횡령과 부패에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오늘날에도 직장에서 일하다가 횡령이나 비리를 저지르면 감옥에 갈 수 있지 않습니까? 리베이트를 챙기는 등 허튼짓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조급함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결코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 가지 일을 유독 주의 깊게 살피는데, 동역자들이 조급해하는 것을 가장 경계합니다.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사장이 직원들에게 자꾸 조급해하지 말라고 하면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어쩌려고 그럽니까?”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흥왕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7. 원칙 3: 고난을 견뎌내라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게으름’입니다! 최근에 여러 사람을 섬기면서 그들에게 게으른 습관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미룰 수 있는 데까지 미루고, 고생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을 조금만 해도 “하나님!” 하고 소리치며 고난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야곱을 보십시오.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참으로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창세기》 31:38-40)

보이십니까? 야곱은 결코 좋은 고용주를 섬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과 수고 속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창세기》 31:42)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기꺼이 고난을 견디고 힘써 수고하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의 고난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실 야곱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일하는 것을 고역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것을 고역으로 여겼다면 끝까지 버텨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마땅히 이렇게 일해야만 이런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왜일까요? 그렇게 일하는 것 자체가 바로 ‘믿음의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조급해하지 않는 것이 믿음의 훈련이고, 남의 일에 충성하는 것이 믿음의 훈련이며, 수고로움 속에서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는 것 역시 믿음의 훈련입니다!

‘하나님,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면서요? 주님이 함께하시는데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합니까?’라고 야곱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이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는 법이다!’라고 여겼습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고 해서 그저 드러누워 하늘에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하늘에서 감은 떨어지지 않고 새똥만 떨어질 뿐입니다. 게으름은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했지, ‘교활하고 간사한 종’이라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오늘 우리 가운데 게으른 사람이 많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일하기를 싫어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저는 일하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일하지 않으면 얼마나 좀쑤시고 답답합니까?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성실하게 일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하겠습니까? 어차피 하루 종일 그곳에서 양 떼를 지켜야 한다면, 잘 돌보든 대충 돌보든 상황은 마찬가지이며, 대충 본다고 해서 딱히 편한 것도 아닙니다. ‘날씨가 이렇게 더우니 대충 봐야지’ 한다고 해서 날씨가 덜 더워집니까? 밤에 날씨가 매우 추운데, 잘 돌보나 대충 돌보나 춥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모든 것이 믿음의 훈련입니다! 하늘에 속한 축복을 가진 사람,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추구하고 갈망하며 영원 속의 축복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발을 땅에 딛고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왜일까요? 그는 재물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믿음과 충성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8. 원칙 4: 냉철하게 분별하라

야곱은 참으로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머리가 대단히 명석하고 냉철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결코 흐리멍덩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어디에서 명철했습니까?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창세기》 31:4-7)

이때 야곱은 자기 아내들이 어느 편에 설지 알고 있었을까요? 몰랐습니다. 만약 아내들이 친정아버지 편을 든다면 어떻게 됩니까? 바보가 되는 것 아닙니까? ‘당신들은 남아 있으시오, 나는 떠나겠소!’ 야곱은 머리가 명석하여 아내들의 마음을 먼저 잘 설득했습니다. 사실 라반의 두 딸도 가끔 아버지가 “내가 그를 죽여버리겠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 시대에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참으로 잔인했습니다! 오늘날이라고 해서 돈 있는 사람들이 잔인하지 않을 것 같습니까? 역시 잔인합니다! 그렇다면 이 일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야곱은 먼저 아내들의 생각을 정리해 주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나를 해치지 못하게 막으셨소. 당신들도 알아야 하오. 내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소. 나를 따르면 평생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하겠지만, 나를 따르지 않으면 평생 당신들 아버지와 함께하게 될 것이오. 이처럼 하나님이 당신들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소.” 그가 한 말이 참으로 탁월하지 않습니까? 대단합니다! 지혜가 넘치고, 말을 잘하며, 상황을 냉철하게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너는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창세기》 31:11-14)

알고 보니 그들은 한마음이었습니다. 야곱이 이런 말을 한 것은 라헬과 레아가 자신과 한마음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는 평소에도 이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평소에도 라헬과 레아 앞에서 믿음직한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생각이 흐리멍덩한 사람은 믿음을 논할 수 없습니다. 머릿속이 죽처럼 뒤엉켜 있는데 어떻게 믿음이 있겠습니까?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들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창세기》 31:15-16)

그는 첫 번째 관문을 명석하게 통과했습니다. 라반이 쫓아와 그들의 장막을 샅샅이 뒤진 후 야곱이 외쳤습니다.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내 뒤를 급히 추격하나이까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보셨으니 외삼촌의 집안 물건 중에서 무엇을 찾아내었나이까 여기 내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둘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창세기》 31:36-39)

야곱이 외삼촌이 행한 그 악행들을 기억하지 못했겠습니까? 다 알고 있었습니다! 머리는 지극히 명철했지만, 그것이 일하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창세기》 31:40-42)

야곱 자신은 빈손으로 가는 것에 연연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가 빈손으로 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어찌 가장 사랑하는 야곱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야곱의 고난을 보셨고, 그가 아무것도 횡령하지 않고 라반의 것을 탐내지 않은 것을 보셨습니다. 그러나 라반은 너무나 잔인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야곱의 피 한 방울까지 쥐어짜 내고도 해치려 했던 전형적인 악덕 자본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고난을 보신 것입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사람이 영적 지각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되면,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를 지키시며, 하나님이 반드시 저들의 것을 빼앗아 우리에게 주실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생각이 흐리멍덩하면 믿음이 있어야 할 때 믿음이 없고, 내려놓아야 할 때 내려놓지 못하며,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지 못하니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사람은 명철합니다. ‘나는 결코 횡령하지 않는다. 이것은 온전히 내 것이며, 하나님이 빼앗아 내게 주신 것이다.’ 이것은 야곱이 누구에게 한 말입니까? 아내들에게 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빼앗아 그에게 주신 것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라반에게 말할 때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라고만 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라반의 것을 빼앗아 자기에게 주셨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라반이 홧병으로 쓰러질 텐데, 굳이 라반을 자극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라반은 그런 자극을 견딜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만약 야곱이 라반에게 “하나님이 외삼촌 것을 다 빼앗아 내게 주셨습니다!”라며 눈을 가늘게 뜨고 약을 올렸다면 라반이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야곱이 매를 버는 짓 아니겠습니까? 분별력이 없으면 안 됩니다. 결국 라반도 별다른 도리가 없어서 “내가 이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하며 물러섰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그냥 보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롭게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9. 원칙 5: 미안해하거나 주저하지 말라

저는 많은 사람이 세상 도덕의 굴레에 얽매여 있는 것을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금만 잘못되어도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면목이 없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프로젝트를 마치고 상대방이 대금을 주지 않아서 제가 “가서 돈 달라고 해라. 아직 돈을 덜 줬다”라고 하면, 그들은 “아이, 어떻게 그래요, 쑥스럽고 미안하게요!”라고 합니다. 무엇이 미안합니까? 상대가 내게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하고, 그것은 마땅히 내 것인데 내가 왜 미안해해야 합니까? 만약 야곱이 라반에게 “하나님이 외삼촌의 양을 다 빼앗아 제게 주셨습니다. 외삼촌, 미안합니다!”라고 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미안해할 일입니까? 그렇게 굴면 모든 것을 망치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 주저하고 미안해하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까? 주지 않으면 속상해하고, 정작 주면 또 미안해합니다. 저는 전혀 미안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빼앗아 내게 주신 것이니 당당히 받습니다! 받지 않고 무엇을 기다리겠습니까? “하나님, 이 양은 원래 라반 것이었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흰색이더니 오늘 점이 생겼네요!”라며 미안해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가운데 쓸데없이 미안해하는 분들은 생각을 바꾸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것은 감사히 받으십시오! 우리 성도 중에는 저의 이런 마음을 잘 모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나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해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목사님, 이것을 헌금하고 싶습니다”라고 하면, 저는 “좋습니다” 하고 사양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제가 왜 사양하겠습니까? 제 논리는 명확하고 머리는 냉철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림으로 복을 받는 것인데, 제가 왜 사양하겠습니까? 제가 왜 남의 복을 가로막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빼앗아 주시면 “감사합니다!” 하고, 몰래 떠나라 하시면 “알겠습니다!” 하고 가면 됩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어머, 미안해서 어쩌지? 라반에게 미리 알려서 와서 날 죽이라고 해야 하나?”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도덕주의의 억압 속에 갇혀 살아갑니다. 사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적인 도덕의 잣대로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 도덕을 따진다면 큰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라반에게 남겨진 양 떼는 어찌 됩니까? 돌볼 사람이 없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라반의 양이 남아 있지 않고 전부 점 있는 양이라면 다 끌고 가면 되는 것이지 남겨둘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남겨진 양이 있어서 “라반의 남은 양은 누가 보살피지? 라헬 네가 볼래, 레아 네가 볼래?” 하며 머뭇거린다면 되겠습니까? 미안해할 필요 없습니다. 머리를 맑게 하십시오. 상대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야 합니다. 상대는 당신을 해치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지키시고 조상의 집,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려 하십니다. 무엇을 주저합니까? 손사래를 치며 “하나님, 제게 이렇게 복을 주시니 너무 죄송해요!”라고 한다면, 제 생각에는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 같습니다. 바보처럼 살지 마십시오. 입만 열면 “죄송합니다, 면목 없습니다”를 연발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도리에 어긋나는 짓은 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빼앗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사양하지 않고 당당하게 취합니다!

가나안 땅은 약속의 땅인데, 그들이 어떻게 들어갔습니까? 칼과 창을 들고 그곳 사람들을 쫓아내고 들어갔습니다. 여러분이 미안해하면 하나님도 여러분에게 역사하시기 곤란해집니다. 사울은 아말렉 사람들을 다 쳐부수고 나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각 왕을 살려두었습니다. 아각 왕을 살려두어 후궁으로 삼기라도 하겠다는 말입니까? 후궁으로 삼아 무엇 하겠습니까? 공연히 화를 자초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이런 자를 지극히 싫어하십니다! 여러분이 미안해하고 머뭇거리면 하나님의 약속을 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로잡힌 원수의 손에서 빼앗아 여러분에게 주려 하실 때, 결코 하나님 앞에서 미안한 척하지 말고 기쁨으로 받아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십시오!

10. 결론

하나님의 임재는 비할 데 없이 좋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임재를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기본 원칙을 굳게 붙잡는다면, 여러분의 평생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다른 사람의 소유를 빼앗아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외삼촌의 것을 빼앗아 여러분에게 주실 수도 있고, 아버지의 것을 빼앗아 여러분에게 주실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왜일까요? 우리 하나님은 본래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온전히 준비하여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상속받읍시다, 아멘! 앞으로의 날들 속에서 여러분은 재정적으로 다시금 큰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마귀 원수를 털어 그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주시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찬양 한 장 부르시고 오늘의 헌금을 준비하겠습니다. 헌금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신 분은 헌금하지 마십시오! “목사님, 제가 이만큼이나 많이 헌금했습니다”라고 자랑하려거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헌금하는 것은 여러분이 복을 받기 위함입니다. 저는 사람의 헌금을 보지 않고,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는 것을 봅니다. 저는 사람의 재물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임재를 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승리하게 하시고 원수를 털어 승리케 하시는 역사를 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더 큰 임재와 더 큰 영광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러한 은혜를 받을 준비를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떻게 후대하시는지 친히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다 함께 손을 들고 기도하겠습니다: 주 예수님, 저는 이 시대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되기를 결단합니다. 저는 주님의 임재를 갈망하며, 주님의 영광을 사모합니다. 하나님, 오늘 저를 승리로 이끄사 원수를 결박하고 털게 하시며, 원수가 빼앗아 간 모든 축복을 배나 도로 찾아오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니, 나는 재정의 복을 받을지어다! 나는 건강의 복을 받을지어다! 나는 주님의 임재를 친히 눈으로 볼지어다! 하나님, 저는 야곱을 본받아 주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 기업을 얻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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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师啥时候能查一下士师记?
命定小助手
等小先知书查完,就再查一次士师记
@Cher: 老师啥时候能查一下士师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