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大家好!咱们讲到《使徒行传》的第九章,讲到都是神所拣选的器皿!但是拣选这个词太难讲了,我怎么知道是如何拣选的呢?神在创世以前,我们还在母腹当中的时候,神就拣选了我们。这要上哪证明呢?证明不了!还好终于熬下来了,大家还给我很多的鼓励。
虽然我自己觉得翻车了,大家却说没有翻车,那就没翻车吧!那预定这件事怎么讲呢?讲不清楚啊!但真的就是拣选和预定。所以大家千万不要以为奇怪,真的就是这样。这东西讲不清楚没关系,因为我们可以选择相信,但是相信要有根有基,得依据神的话!
Q1:老师,在创世以前神就已经拣选了我们,如果一个人被拣选成了爱世界的人,那要怎么回转呢?
我得说好像真的回转不了。但如果一个人觉得:哎呀!我好像有点爱世界了,我可不能爱世界,那你就好像有点被拣选的味道了。这里面有两层意思:第一、神可能拣选了很多人,但是很多人掉链子,后来这些人就死在旷野里,没有达成神在他们身上的计划,就是我们会把神的计划搞泡汤。这就是我常常讲:人要变聪明!但是就是有愚蠢的人。
神在人身上本来有一个美好的计划,结果人却把计划给搞砸了,搞泡汤了,这不是愚蠢吗?怎么搞泡汤的呢?爱世界、爱钱。那你爱世界、爱钱,不就悲剧了吗?我常常看见笨的人,那是真的一点也不夸张,所以看到人笨是常态。为什么笨呢?因为人以为这么选择就会活得好。人们总是以为:我这么干、那么干就会活得好,结果活得水当尿裤,那就麻烦了。
我曾经认识过一个人,她从小就信耶稣了,但是却成了一个很自私的人,因为她很想活得好。好多年前她就在咱们教会,当时我怎么讲,她都听不进去。这个姐妹就是希望走一条谈恋爱、结婚,然后让人家养着的路。后来她找了一个男朋友,她就跟我说:感谢神!神赐给我一个很好的男朋友。结果天天在家里打游戏。
后来她生病了,她老公也不管她,她就来找我,这是十年以后的事。我把她从鬼那里释放出来,按说应该好了吧!结果没好!我让她为神付点代价,一推就掉链子,没有办法继续留在我们教会当中,后来又离开教会了。
她在这些年当中都做了什么呢?结婚就得生一个孩子,生一个孩子又觉得太少;得再给孩子整个伴,又生了第二个孩子,生了第二个以后;她又觉得将来要养老,这俩个孩子里头好像没有一个孝顺的,又去生第三个,这一下就生了三个,三个里头就有好的吗?好像也没有。后来大的孩子手烂、屁股和脚都烂了,皮肤这些问题可多了,我们当中的牧者就带着她。她里面爱神的心在哪里呢?是不是把神在她身上美好的计划全给整泡汤了?全给整泡汤了!为什么呢?因为心里都有自己的一套逻辑、有一套自己的想法。
如果一个人后来成为爱世界的人,那就是注定要灭亡的人。不用回转,因为回转不了。所以我给大家的建议就是千万别爱世界。很多人说:那不爱世界日子怎么过呢?这种话我也听了很多遍。我们不是正在过吗?这么过不挺好的吗?
Q2:老师,有些人被神拣选了,但是后来又走偏了,这是什么情况呢?
这是人自己的选择,神的拣选占一半,另外一半是人自己的选择。如果神拣选了你,甚至你成为了耶稣基督的使徒,那又怎么样?犹大成了十二使徒,结果出卖了耶稣,怎么办?慢慢地灭亡吧!至于走偏了还是不走偏的,那都是人自己选择的路。神拣选了使徒保罗,他没有掉链子。
Q3:老师,为什么讲好多人要杀保罗,又没有一个人杀得了他?
好多人要杀他,你以为人想杀就能杀得了的?人说了不算,神说了算。要记住:神永远掌权!,不要怀疑这件事。许多人要杀他,这背后的灵就是这么运作的。不要觉得奇怪,这不奇怪!
Q4:老师,神拣选是不是预定论?
其实是预定,预定我们得着神儿子的荣耀,但是很多人预定完了也没定好。大家困惑了吗?这一讲到拣选、预定,你的理解和我的理解可能不太一样。你以为预定了以后就没事了,以为已经上了保险了。其实那不是上了保险了,那东西一点也不保险。
Q5:老师,名字有什么含义吗?
有啊!比如以法莲和玛拿西,玛拿西是大儿子,以法莲是小儿子。玛拿西的意思是:神使我忘记了我的痛苦;以法莲的意思是:神使我在受苦的地方昌盛。结果雅各在为这俩孩子祝福的时候,把以法莲放在玛拿西以上。本来以法莲是小儿子,后来成了大儿子了。其实名字是有意思的,后来我发现很多不喜乐的人叫喜乐,不得胜的人叫得胜,生不出撒母耳来的人都想叫哈拿,是不是挺有意思的?
Q6:老师,怎么区分为主受苦和受管教呢?
其实区分也好、不区分也好,意义不太大。就是我们做这件事的目的到底是为了什么?如果我们做这件事的目的是为了自私,你心里也明白、我心里也明白、神心里也明白,不需要别人告诉我们。如果我们是为了主摆上而受苦,也不需要别人告诉我们,我们也用不着区分别人,只要我们把自己的事整明白就很好了。
Q7:老师,人心里面有一颗爱神的心,就相信自己是神拣选的,就可以凭着信心去做呢?
我告诉大家,我见过很多人说自己很爱神!我就问他们:你爱神是怎么爱神的呢?你有奉献吗?我没有奉献,神知道我的难处。我就在想:这些人哪来的信心说自己爱神?如果你相信是神所拣选的,你身上一定有使徒保罗身上的那些素质或者是旧约《圣经》里约瑟的那些素质、或者是大卫身上的那些素质,那你相信的就有根基。
你在乎的是什么呢?你就知道你到底是不是神所拣选的。也许你还没开窍,或者十年以后开窍,那开窍以后你肯定知道。所以要凭着信心去领受,如果你爱神你就一定会谨守遵行神的话,听到了吗?这不是件难事。
Q8:老师,俩夫妻一个被神拣选,一个没有被神拣选,过日子完全是两个不同的体系,也根本没有共同语言,该怎么整?
你想怎么整就怎么整。如果你希望我告诉你:离了吧。我是讲不出这种话。如果你说你已经离了,那就离了!不离就继续在一起,自己过自己的就像搭伙过日子似的。如果我告诉你:你离了吧!我看我这句话是犯毛病,我不告诉你。但是你要告诉我,你要做什么?如果你想做一个聪明人,那你的选择还是好的!人来到这世上不是为你老公而活着,也不是为你老婆而活着。但是如果已经结婚了,那就照着《圣经》的原话,能在一起就在一起。如果在一起整天就是掐架、受苦,那就算了吧!根本没有必要在一起。
Q9:老师,怎么能够拥有传福音的智慧?
先别讲传福音的智慧,先好好的打造自己,提升自己。因为你传福音需要的是属灵的能力。传福音很简单,不要闲着没事就给人家讲,人家不听就算了。拣选和命定不是靠人说服的,强扭的瓜不甜。所以说你要传福音,别瞎整。如果人有需要,咱就医病赶鬼,有的人整着整着就信主了。千万别拉人入教,拉人入教是法利赛人干的事,祝福人是我们干的事。
Q10:老师,门徒打发两个人去见彼得,为什么是央求说不要耽延呢?是和保罗在热心上的对比吗?
不是,《圣经》里说不要耽延。人死了能不着急吗?如果家里人死了,还能说没事吗?难道你还可以买张机票去度个假,然后回来再说吗?买什么机票?赶紧过来吧。
Q11:老师,神老早就知道有些被拣选的人会掉链子,为什么还要拣选这些人呢?
这就是神的恩典。其实神本来预定人进到应许之地,可是人偏偏选择在旷野里死亡。我们人有时候真的很傻,当我们看见了能不能够清醒过来呢?神怎么可能不知道这些人会掉链子呢?神都知道。
Q12:老师,神拣选了很多人,但是否有命定是人的选择,对吗?
是的。肯定是神呼召的多,选上的少。为什么呢?因为人来的时候根本没当回事,没有把福音当成很宝贵的真理。没当就没当吧,所以过着过着就老年痴呆了。如果过着过着还没痴呆,就每天都在家待着了。大家要知道人如果每天都在家里待着,最后能不痴呆吗?
Q13:老师,这个世代神拣选了那么多得癌症的,应该怎样帮助得癌症的人得着医治?
帮助不了。如果你很想帮助的话,你可以试试看。你要是能够帮助的话,我跟你学!因为得癌症就是咒诅的具体表现。
Q14:老师,我想问一下,我按神的方式做事的时候,心里有被拉扯很难受,还有一种喘不上气的感觉,这是被辖制还是没被拣选呢?
是被辖制了。大家以后别再用:神愿万人得救,不愿一人沉沦。因为这句话说了跟没说差不多。说完了以后,就好像是我们让人得救,其实以我的看法,有一种普度众生的感觉在里面,但是神一定是选择宝贝。愿望是没用的,比如说我有一个美好的愿望:我愿世界和平。你觉得能和平吗?这话说了和没说一样。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함께 《사도행전》 9장을 살펴봅시다. 저는 제가 전했던 앞선 8개 장의 나눔에 대해 꽤 만족하고 있습니다. 전할 때마다 새로운 발견이 있었고, 첫 번째 버전보다 본문의 주제를 훨씬 더 잘 붙잡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장에서 다루는 《모두 하나님이 택하신 그릇이다》라는 이 제목은 정말 좋습니다! 결코 베드로는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선택(택하심)’이라는 이 논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혼란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택함 받은 사람일까요?” 그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당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귀신도 안다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의 서신을 보면, 바울은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갈라디아서》 1:15)
실제로 어떤 구절들에서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에베소서》 1:4)
바울의 신학 체계는 사실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바로 여러분과 제가 창세 전에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다는 것인데, 이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요, 나쁜 일일까요? 제가 이번 장에서 나눌 제목은 《모두 하나님이 택하신 그릇이다》입니다. 즉 여러분도 하나님이 택하신 그릇이고, 저도 그렇고, 베드로와 바울도 모두 그러하며, 택하시는 방법 또한 천차만별이고 독특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택하신 그릇이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도행전》 9:1-5)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바울이라는 이름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 장에 나오는 사울과 바울은 동일 인물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택하신 그릇이었으며, 다만 이번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방식이 매우 흥미로웠을 뿐입니다. 어찌 되었든, 바울은 당시에 영 안에서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그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대답이 “주여, 누구시니이까?”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예수를 박해했는데, 하나님은 왜 그를 택하셨을까요? 사실 그 시대에 예수를 박해하던 사람들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어쩌면 다른 이들도 택함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왜 하나님은 오직 바울 한 사람을 택하시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두셨을까요?
창세 전이든 모태에서든 간에, 바울은 하나님을 향해 열심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열심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다만 바울의 방법이 좀 이상했을 뿐인데, 그는 자기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 그리스도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의 도를 거스르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실 바울은 이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과거에 성경을 수없이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읽고 또 읽어도 예수님과 연결시키지 못했고, 그 안에는 자기만의 주관적인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었습니다. 훗날 그의 사역을 보면, 그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데 열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섬기는 데도 매우 열심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뼛속 깊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택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매우 신기한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쩌면 세상의 영이 택한 자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세상을 사랑할까요? 이것은 아마 창세 전에 이미 정해졌을 것입니다. 마귀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아십니다. 사도 바울로 말하자면, 그는 그 안에 하나님을 향해 열심을 내는 마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참된 진리의 도를 추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목수가 되거나 노점을 차려 장사를 하는 편이 훨씬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굳이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년간 고생하며 논문까지 써야 했습니다. 바울의 논문 주제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것이었는데, 결국 길을 가던 중에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사도행전》 9:10-12)
베드로가 하나님께 택함 받았을 때는 바울보다 훨씬 단순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시자, 베드로는 고깃배를 버려두고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에는 일정한 틀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께 택함 받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어느 날 하나님이 “나를 따르라”고 하시자 따랐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빛이 비추어 눈이 멀었다가, 나중에 아나니아가 와서 기도해 주어 눈을 뜨게 되었으니 자신이 택함 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그가 정말 하나님이 택하신 바로 그 사람인지 증명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로만 증명할 수 있는데, 바로 사람 안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가,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그 마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택하시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하나님께 택함 받았다는 둥 엉뚱한 표적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예컨대 어떤 사람은 털이 곤두서는 것을 보고 택함 받았다고 느끼고,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 마비되는 것을 보고 택함 받았다고 하며, 목사님이 기도해 줄 때 두 다리가 풀리고 떨리는 것을 보고 택함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귀신 들린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오직 한 가지로만 증명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정말로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교회에 온 목적이 단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라면, 그리스도인을 박해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교회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절에 가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바울 안에는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뜻이 있었지만, 단지 방법이 틀렸을 뿐입니다.
어떤 이는 이미 열두 사도가 있는데 왜 바울 한 사람을 더 부르셨냐고 묻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열세 명도 많지 않고, 열네 명, 열다섯 명, 열여섯 명이라도 결코 많지 않습니다. 보배로운 자라면 하나님은 누구든지 다 택하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바울이 주님을 믿게 되는 과정을 보면, 그 안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결코 “이미 열두 사도가 있는데 왜 또 바울을 세우셨을까?”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사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열두 명으로도 부족합니다. 하나님은 보배가 많다고 마다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스무 명, 서른 명, 쉰 명을 더 세우셔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자리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총지배인을 맡기시든, 총지배인의 상사를 맡기시든 다 좋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실망스러운 이야기를 해 드리자면, 선택이라는 것은 사실 창세 전에 이미 다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노력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열심히 찾고,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내야 합니다. 설령 여러분이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을 낸다 해도, 하나님께서 바로잡아 주실 것입니다. 과거에 바울은 잘못 행하여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빛이 바울을 비추자 그는 즉시 회개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사람이 잘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두려워하십니다. 저 자신을 예로 들자면, 제가 예전에 다니던 교회들은 썩 좋지 않았고, 나중에 스스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이 말이 다소 오만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결국 소고기 장조림이나 통닭, 오리구이나 나누는 교회를 세우게 되어 남들이 세운 교회보다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 안에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었기에, 잘못된 것을 깨닫고 나중에 고쳤습니다. 그리고 고친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냈습니다. 여러분이 사도 바울이나 저를 본받고자 한다면, 속에서부터 열심을 내뿜으십시오. 미지근한 물처럼 차지도 덥지도 않게 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남녀가 연애를 할 때, 한쪽은 뜨겁게 사랑하는데 다른 한쪽은 차갑게 군다면 그 연애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훗날 저는 몇 가지 작은 비결을 찾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는지를 보려면, 그가 사업을 하거나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됩니다. 만약 사업이나 일에는 열심이 넘치는데 하나님을 향한 열심은 해가 서쪽에서 떠야 볼 수 있을 정도라면, 하나님을 향해 열심을 내는 것은 영영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슬그머니 들어와 이득이나 챙기려 한다면, 저도 얼마든지 이득을 줄 수는 있습니다. 저는 사람을 관찰할 때 그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이 있는지를 봅니다. 시간이 남아서 열심을 내는 사람은 시간을 때우는 것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없는데도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열심을 내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택하셨고, 우리가 모태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본래 우리는 하나님께 지음 받은 존재이며, 우리 안에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들어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안의 열심을 드러내십시오.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택함 받은 원리도 바로 이것입니다. 바울이 비록 잘못 행했더라도 하나님께서 바로잡아 주셨는데, 그것이 뭐가 그리 어렵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정말 적다는 사실에 참으로 탄식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늘 자기의 사소하고 하찮은 일에만 관심을 둡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은 사람이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택하셔서 천하 만민 위에 뛰어난 사람으로 세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택하신 것은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다
이미 사도들이 그렇게 많은데, 하나님은 왜 베드로나 요한을 이방인과 임금들 앞에 세워 하나님의 이름을 전하게 하지 못하셨을까요? 하실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자원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자원하든 안 하든, 하나님은 여전히 바울을 택하십니다. 이것이 바울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훗날 바울 역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지켜내어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쓴 서신들 중에는 《히브리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전체 논리 체계는 매우 명확합니다. 그는 그 서신에 사도 바울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는데,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쓴 글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이 처음에 사도 바울이 썼다는 것을 읽으면 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아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 이방인, 임금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전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는 훌륭하게 해냈지만, 그 방식이 여러분이 원하는 방식과 반드시 같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베드로를 택하셨는데, 왜 9장에 다시 바울이 등장했을까요? 베드로 역시 하나님께 택함을 받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받았지만, 나중에 베드로는 그것을 꺼려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바울을 일찍이 예비하셨고, 베드로가 이방인 선교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다음 몇 장을 보면 여러분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과거 5천 년, 미래 5천 년을 다 아시는 분이시기에 여러분은 결코 하나님의 앎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대략 어떻게 행동할지를 이미 다 알고 계시며, 그것은 사람 중심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택하셨을 때, 여러분은 베드로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바울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까? 만약 베드로 같은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제대로 완수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방향도 제대로 실행하지 않은 채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한다면, 비록 거듭 기도하여 병든 자들이 다 고침받았다 할지라도 베드로의 수준은 사도 바울의 수준과 여전히 큰 차이가 납니다.
바울은 이방인, 이스라엘 사람, 임금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전했습니다. 상식적으로 그는 왕을 만나기 어려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로마 황제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사람을 도덕적으로 얽매지 않고 로마 황제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이는 지극히 큰 영광이었습니다. 비록 바울이 감옥에 갇힌 적도 있고 당시에 복음을 전하던 방식이 사람들 보기에 대단해 보이지 않았을지라도, 그 방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여 이루고자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사명과 추구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썩지 아니할 영원한 복을 구할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자신이 진정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화인사명신학에 와서 진정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늘로부터 오는 사명을 얻고 영원한 영광을 구하고자 한다면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사명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바울과 같은 사명을 품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높이셨듯이 여러분 또한 반드시 높이실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위하여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한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사도행전》 9:15-17)
바울은 하나님을 위해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만약 이 말을 여러분에게 한다면, 여러분은 그래도 주님을 믿으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좀 두렵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래도 믿겠다고 합니다. 사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가늠하는 핵심 기준입니다. 진정으로 사명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 살고 이것을 위해 태어났으며,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명이다!” 이 사명을 위해 약간의 고난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를 위해 고난받게 하신다면 우리 안의 진심을 더욱 확실히 검증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고난을 겪으면 발을 빼고, 약간의 장애물만 만나면 곧바로 포기한다면, 베드로처럼 바울의 강인한 성품을 갖추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은 사명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최고의 시험대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조금만 고난이 오면 꽁무니를 빼고 도망친다면, 작은 일만 생겨도 즉시 나가떨어진다면 그것은 사명이 아닙니다. 본래 다른 것을 얻으려 했는데 와서 얻은 것이 고난뿐이고, 특히 누군가 여러분을 죽이려 한다면 여러분은 그래도 이 길을 가시겠습니까?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이며, 고난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육체에 채우게 하셨습니다. 사실 여러분과 저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육체에 채워야 하며, 이것이 바로 사명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사명이 아니라면, 조금만 고난을 받아도 분명 도망칠 것입니다. 고난은커녕 조금만 심한 말을 들어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살아가는 것이 본래 그러함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사도행전》 9:18-23)
바울이 받은 이 고난은 시작부터 닥쳐왔습니다. 이번에 그는 눈을 뜨게 되었고, 다메섹에 이르러 사람들과 변론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전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도 죽였는데, 바울을 죽이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 아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자신들을 비추는 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면 누가 하나님께 속한 자이고 누가 마귀에게 속한 자인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은 바울도 용납하지 못했고 예수님도 용납하지 못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더욱 박해를 받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박해를 받고 고난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사도행전》 9:24-25)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사도행전》 9:28-29)
다메섹에 도착한 후 누군가 바울을 죽이려 하자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도망쳤습니다. 예루살렘에 이르러 바울이 온종일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증명하려 하자,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누군가 자기를 죽이려 한다면 여러분은 이 일이 결코 쉽지 않다고 생각하며 목숨을 내놓고 하는 짓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별다른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를 이렇게 대했을까요? 예수님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고, 나라를 세우려 하지도, 정부를 전복하려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단지 사람이 구원받는 복음을 전하셨을 뿐인데, 사람들은 까닭 없이 그분을 미워하고 죽이려 했습니다. 그 배후에는 바로 영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는 귀신뿐만 아니라 사람도 압니다. 이것은 결코 타협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자 하면 부모와 아내와 자녀와 형제와 전토와 집을 버릴 줄 알아야 하며, 버리지 않으면 주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 주의 제자가 되는 순간 귀신은 분명 이런 것들을 통해 여러분을 괴롭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사명을 얻고자 하고 이 영광스러운 길을 걷고자 한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하지도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많은 고난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은 도리어 여러분이 정말로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임을 더욱 분명히 증명해 줍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귀신은 여러분을 가만두지 않고 똑같이 괴롭힐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없으면 더 많은 고난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을 위해 고난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고난을 받을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제 친구의 장인어른이 90세이신데 치매에 걸려 아들과 딸을 몹시 괴롭혔습니다. 제 친구가 그 어르신을 모시고 와서 제게 섬김을 받게 했는데, 그 어르신은 오자마자 주먹을 쥐고 저를 때리려 했습니다. 그 배후에 바로 귀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그들에게 수많은 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 배후의 귀신이 그 어르신의 자녀들을 몹시 괴롭혔던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왜 나는 괴롭히지 못할까?’ 생각했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치매에 걸리셨지만, 어머니 안의 귀신은 감히 저를 괴롭히지 못하고 오히려 저에게 완전히 짓밟혔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치매를 앓으셨지만 제 곁에서 늘 정상적인 생활을 하셨고, 제가 하나님을 위해 약간의 고생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고자 하는 마음이야말로 여러분의 사명을 확증하는 핵심입니다. 주님을 믿는 것이 그저 축복과 평안과 기쁨뿐이고 모든 것이 다 잘 풀리기만 한다면, 사명을 논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집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을 지닐 수 있는지를 보십시오. 만약 여러분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과 사명이 실제로 있다면, 귀신은 여러분을 보기만 해도 벌벌 떨 것입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명령 한마디면 귀신은 물러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나 사업이나 일 때문에 고생합니다. 사장이 야근하라면 야근하면서도, 제가 사역을 위해 야근을 하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야근해야 하니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묻습니다. “바울은 어디를 가든 죽이려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떻게 살았을까요?” 우리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죽을 각오가 없고 이생의 삶을 너무 중하게 여긴다면 이 사명의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이 사명의 길을 가는 데는 참으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화인사명신학은 값싼 은혜 신학이 아니라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고 대가를 치르는 신학입니다.
베드로 역시 하나님이 택하신 자이다
그릇은 모두 하나님이 택하신 것이며, 베드로 역시 하나님이 택하신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이 그릇을 통해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이번 장에서 누가는 앞부분에 바울이 택함 받는 과정을 썼는데, 그 이야기는 매우 신기합니다. 반면 베드로가 택함 받는 과정은 매우 직설적이어서, 하나님이 따르라고 하시자 그는 주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사도행전》 9:32-34)
우리 모임에서는 영적 생명이 좋은지 나쁜지를 그다지 따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베드로의 영적 생명이 좋아서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이 택하신 그릇이었고 하나님께서 그를 그렇게 쓰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입니다. 8년 동안 마비되었던 사람을 일어나 걷게 했다고 해서, 자기가 매우 영적이거나 영적 생명이 대단해서 치유가 일어났다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과 저는 단지 그릇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영광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입니다! 치유의 공로를 결코 자신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비록 제가 많은 표적을 행했더라도, 저는 늘 제 자신이 단지 그릇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모두 택함 받은 그릇일 뿐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셔서 많은 일을 행하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설령 영적이지 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를 쓰시고자 한다면 쓰시는 것이 당연하며, 사명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을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사도행전》 9:36-41)
도르가는 당시에 이미 죽은 지 몇 시간이 지났는데 다시 살아났으니,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베드로의 영적 생명이 좋아서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단지 택함 받은 그릇이었을 뿐입니다. 이는 한 가지 사실만을 보여 줍니다. 바울과 베드로 모두 하나님이 택하신 그릇이라는 점입니다. 여러분이 잘못 행해도 하나님은 바로잡아 주실 수 있고, 여러분이 잘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여러분을 계속 쓰실 수 있습니다. 표적을 행하는 것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인도하여 기도하는 것은 단지 제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그릇임을 나타낼 뿐입니다. 만약 표적으로 판단한다면 우상 사당에도 수많은 기적이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베드로와 바울이 예수님께서 택하신 그릇임을 부인하지 마십시오. 바울 역시 베드로가 하나님이 택하신 그릇임을 결코 부인한 적이 없습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행했는지, 예수님께서 그가 행한 일을 기뻐하셨는지에 대해 훗날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고린도전서》 3:12-15)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왜 바울을 택하셨는지 아십니까? 바울 안에는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에 대해 나누었고, 마침 《사무엘기》에서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했던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 함께 이러한 사명을 완수하여 하나님의 뜻을 만족시켜 드립시다. 여러분과 저 중 그 누구도 우리가 진정 하나님이 택하시고 사명을 주신 자인지 확실히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여러분과 제가 스스로 하나님이 택하신 자임을 믿는 것이며, 택함 받은 사람 안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귀하게 보시는 특별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힘써 그것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바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힘써 이루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셔서 이 세대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게 하셨다면, 이방인과 이스라엘 사람, 심지어 임금들까지도 모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할 대상입니다.
제 안에는 강한 감동이 있습니다. 장차 우리 무리가 하나님께 일으키심을 받아 소외된 자들, 가난한 자들, 노동자들, 사회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위로는 고위 관리와 임금들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섬기게 하실 것입니다. 사업가이든 아니든, 돈이 있든 없든, 이 세대에는 섬김을 받아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하게 풀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는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을 끊임없이 훈련시켜, 복음의 진리를 명확히 전할 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릇이 되어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으며 위에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할 것입니다.
경영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야기할 수 있고, 사업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복음과 귀신 쫓기, 신유, 축사와 내적치유는 더욱 우리의 주특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횡적으로 확장하여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대를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종적으로도 우리는 전문직 종사자, 다양한 사업가, 심지어 공직자나 군인들까지 섬길 수 있으며, 그들의 필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채워질 수 있습니다.
결론
결론은 한마디입니다. 모두 하나님이 택하신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사 그분이 사용하시는 그릇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용하실지는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 드립시다. 우리 위에 하나님의 주권이 있으며, 하나님은 우리의 구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