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오늘 여러분과 매우 중요한 제목을 나누려고 합니다. 제목은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반석》입니다. 이 제목은 매우 어렵습니다. 제가 사람을 넘어뜨리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몇 달 전에 제가 《많은 사람이 넘어지고, 많은 사람이 일어나다》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적이 있는데, 그것도 그렇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 자매의 온 가족, 곧 손자와 아들, 며느리가 해외여행을 가려고 짐을 싸고 있었습니다. 그때 할머니가 손자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데리고 가지 않니?” 손자가 말했습니다. “할머니, 이 여행은 비용이 아주 많이 들어요.” 이 자매는 가정에서 많은 헌신을 했고, 자녀들을 양육하고 성장시켰습니다. 그런데 결국 자녀들은 오히려 비용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은 삶 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뜻을 드러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반석이십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이므로, 우리는 반드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얼마 전 한 영국인 자매가 우리 가운데 왔습니다. 저는 그 자매가 목양을 받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 자매는 삼사십 년을 살아오면서, 젊었을 때 결혼하고 싶어서 하나님께 남자친구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다른 사람의 남편이 되었습니다. 화가 난 자매는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 후 다시 하나님께 구했는데, 결혼한 사람은 결혼생활 속에서 재정적으로 매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과 모든 비용을 반씩 부담하는, 곧 자매가 생활비를 지불해야 하는 관계가 되었고,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었습니다.
주 예수님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신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를 세우는 데 있어서 매우 큰 은혜입니다. 제가 배운 많은 방법은 주 예수님께서 만들어 내신 것입니다. 목회자를 훈련하여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하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반석이시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우는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며, 쓰레기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과정에서 좋지 않은 것은 모두 버리시고, 좋은 것은 남기십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사실 예수님은 자선을 베푸는 일을 한 번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마가복음 14:7 참조)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며, 우리 목회자도 예수님을 본받아 각 사람의 일을 드러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은 예수님의 반석에 부딪혀 넘어지고 산산이 부서집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을 죽이셨습니다. 애굽 사람들의 장자도 하나님께서 죽이셨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사람들도 대부분 하나님께서 죽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사람을 죽이셔야만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까? 이 문제는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명령은 그 땅의 사람들을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신데,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오늘 저는 하나님께서 반석이시며,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걸려 넘어지고 산산이 부서진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오늘 이 제목으로 말씀드리는 이유는 하나님의 진리를 매우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더 이상 가장하지 말고, 더 이상 위선적으로 행동하지 맙시다. 오늘 저는 제가 읽고 깨달은 것을 나누려고 합니다. 넘어질지 넘어지지 않을지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선택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성경 본문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누가복음 2:34-35)
기록된 바와 같으니 “보라 내가 시온에 부딪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로마서 9:33)
기도
주 예수님,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내 주셔서, 주님이 맹렬한 불이시며 또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반석도 사랑입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께서 사람을 넘어지게 하시는 분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일으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하기를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후하게 베푸시는 하나님이시지, 징벌하시는 하나님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신약과 구약에서 모두 하나님께서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반석으로 말씀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려 넘어지는 돌과 부딪치는 반석이 되시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지고 넘어지며 부러지고 덫에 걸리며 잡힐 것이니라.”(이사야 8:14-15)
바리새인들은 독사의 자식들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반드시 잘못 읽지 말고, 하나님의 뜻 안으로 읽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성경》에 걸려 넘어지는 이유는 이 말씀이 사람의 이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치에 따라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마침은 그리스도이시니 이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려 하심이라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로마서 10:1-8)
많은 사람은 모세가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고 말한 것도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도대체 무엇을 말씀하시려는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서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뜻에 따라, 곧 사람의 생각대로 《성경》을 해석하면 안 됩니다. 얼마 전 한 형제가 우리 가운데 왔는데, 흉골에 금이 가 있었습니다. 그 형제가 이전에 다니던 교회의 한 형제는 의사였는데, 그 의사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뼈에 금이 간 상태가 아주 심하네요. 적어도 한 달은 지나야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뜻에 따른 말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탐구하고 찾게 하십니다. 사실 이것은 성령께서 사람을 진리 안으로 인도하시는 것이지, 사람의 뜻이 아닙니다. 저는 한 사람이 여러 해 동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오면서 《성경》을 읽고도 찾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올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정말 알고 싶습니다. 찾는다는 것은 어떻게 찾는 것입니까? 길을 지나가던 사람이 떡을 구한 것처럼 찾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꿰뚫어 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하며, 일부 구절만 떼어 내어 자기 뜻대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뜻을 읽어 내야 합니다. 과거에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람을 넘어지게 하려고 시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석이시며,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반석이십니다. 여러분은 주 예수님이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이런 상황이 바로 주 예수님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주 예수님은 어떻게 사람을 넘어지게 하셨습니까?
한 가나안 여인이 있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원래 그 여인의 아들을 고쳐 주려고 하셨지만,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음식을 개들에게 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인은 선악을 분별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속 구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과 따지며 “어떻게 저를 개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라고 하지 않았고, 예수님과 다투지도 않았습니다. 만일 제 아이가 병들었다면,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당하더라도 저 역시 “제가 그렇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치료하십니다. 그 결과는 좋은 것입니다. 야곱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사람과 씨름하다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며 하나님의 허벅지를 꼭 붙들었고, 결국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행동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는데, 단 한마디 때문에 믿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것에 화가 있습니까? 사실은 자신이 스스로 걸려 넘어지는 것입니다. 눈이 너를 넘어지게 하면 눈을 빼어 버리고, 귀가 너를 넘어지게 하면 귀를 잘라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단호한 분이십니다. 제가 예전에 지도자로 있을 때, 한 면접에서 한 부하 직원에게 매우 듣기 힘든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저와 함께 책상을 치며 말했습니다. “왜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저는 그를 시험하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저와 함께 면접하던 사람들은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은 면접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저와 싸우러 온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지으실 때 제 안에 있는 선악을 분별하는 뿌리를 제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베드로는 정말 감당하는 힘이 강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매서운 말을 한다면 사람을 매우 상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이 사람을 사용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매일 이렇게 동역자들을 시험합니다. 이런 때에는 본인도 괴롭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사람의 생각과 뜻이 드러납니다. 이것은 매우 좋은 시험입니다. 사람이 선악을 분별하게 하는 열매를 먹으면 모두 비참하게 죽게 됩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누가 자신을 팔 사람인지 아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생각을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 예수님께서 행하신 분명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원래 사람을 해치려는 뜻이 없으셨습니다. 만일 유다가 주 예수님께서 자신이 알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면, 주 예수님을 팔지 않을 선택을 할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유다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배신을 선택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독사의 자식들이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것 역시 주 예수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신 것이며, 그들이 결국 어떻게 선택하는지를 보신 것입니다. 만일 제가 독사의 자식이라고 불린다면, 반드시 깊이 돌아보며 “내가 이렇다면, 반드시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주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정죄했습니다. 맹인도 알 수 있는 일을 바리새인들은 어리석게도 결과를 보지 않았습니다. 만일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감탄하며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칠 수 있단 말인가?!” 주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계속해서 시험하셨습니다. 그들의 조상은 아브라함이었지만, 주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 아비는 마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저는 반드시 회개했을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목양과 변화를 감당할 수 있습니까? 사실 넘어지는 것은 자신의 선택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어릴 때부터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에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사실 사랑이 부족한 사람도 다듬어지고 세워져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사랑이 부족했던 한 자매는 기도만 하면 어머니를 찾으며 몹시 울었습니다. 며칠 전 제가 그 자매를 보았는데, 그 자매의 삶이 많이 달라졌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마태복음 21:43-44)
여러분은 돌에 맞아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우리 교회에 온 이유에 대해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마음속의 쓰레기를 제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끊임없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가장 좋은 사랑은 여러분을 많이 돌보아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돌’ 하나를 주고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지 보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성령이 예수님 위에 임하시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힌 후에는 사람을 보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와 고통받는 사람들과 악귀 들린 사람들을 고치셨고, 많은 맹인에게 은혜를 베풀어 보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누가복음 7:21-23)
누구든지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 주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원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세례 요한이 반석을 경험하면서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지를 시험하신 것입니다.
신약의 예수님도 여전히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반석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산타클로스가 아니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후하게 베풀기만 하시고 책망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많은 사람이 우울증에서 벗어났습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뜻 안에 있는 더러움이 정말 단단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워 가는 과정에서 기존의 관념을 끊임없이 씻어 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이 진정으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고 싶어 하십니다.
주 예수님께서도 요한을 이렇게 대하셨는데, 요한은 결국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며, 그분의 뜻은 우리의 이해 능력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또 듣기 힘든 말씀을 하셔서 우리의 생각과 뜻을 드러내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며칠 늦게 그곳에 가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조금 일찍 오셨더라면 그를 구하실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마리아가 거의 넘어질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양을 이처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분”이십니다. 예수님 때문에 넘어지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넘어지는 사람은 산산이 부서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사용하신 방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더 이상 사람의 말 때문에 넘어지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한 자매가 많은 시험을 겪었지만 교회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고, 결국 저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또 한 형제는 100만 위안이 넘는 손실을 입었지만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좋은 결말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분별하게 하는 나무를 심으시고 사람이 그것을 먹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그것을 먹은 후 죄에 빠졌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을 넘어지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으로 갔지만 많은 기근을 겪었고, 수많은 시험을 겪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매번 시험이 끝난 후 그에게 큰 상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이 애굽 땅에 들어간 뒤 400년 동안 종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의 반응은 매우 좋았습니다. 비록 종이 되겠지만 결국에는 그곳에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매우 심하게 학대를 받았고, 광야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으며, 늘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과정을 통해 사람들이 넘어질지 그렇지 않을지를 보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연단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름이 올라갔다가 내려왔습니다. 구름이 내려오지 않으면 며칠 동안 계속 걸어야 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체력을 시험하는 일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가 보니 거기에는 많은 거인이 있었고, 그들의 무기는 수레 축만큼 굵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무엇을 만나든지,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서 다스리고 계십니다. 사람을 넘어지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직 우리의 선택이 결정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어찌 그와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넘어지는 사람은 철저히 넘어지고, 일어나는 사람은 완전히 일어납니다. 오늘 여러분은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선택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많은 고난을 겪고 아무리 많은 억울함을 당해도, 베드로나 요셉이 겪은 것보다 많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저 여자는 당신의 어머니가 아닙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내 어머니요 내 형제자매다.” 이것은 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매섭습니까?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고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목회자라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방식대로 섬겨야 합니다.
세상에 걸려 넘어지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큰 맷돌을 그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마태복음 18:6-9 개역한글)
손 하나나 발 하나가 없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말씀을 왜곡합니다. 사실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것은 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지팡이를 들고 사자와 이리 떼에 맞서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육체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싸우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체계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넘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논리 체계가 여러분을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양을 목양하는 것은 사람을 넘어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늙은 엘리의 처소에 보내졌습니다. 사랑이 부족했다면 그가 부족했던 것이 여러분보다 적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 시대에 모세와 같이 위대한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은 사랑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그는 밑 빠진 독과 같아서 아무리 채워도 가득 차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나는 개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저는 “그보다 더 낮은 존재라고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서 넘어지지 않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셔서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위선자들을 본받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을 산타클로스처럼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때문에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은 사람의 생각과 뜻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좋은 말 몇 마디를 하고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으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주 예수님의 방법을 배우고 하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결론
우리의 사명은 사람을 넘어지게 하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여 모든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고, 성령의 불로 사람을 가려내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은 선택하여 남기고, 좋지 않은 사람은 남겨 두지 않으며, 좋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하늘의 기준에 따라 형제자매들을 요구한다면, 우리 가운데 반드시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