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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열왕기상 8장 -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였더라

2026-07-17 46,840 列王纪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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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王纪上-运约柜入殿
  • 1 那时,所罗门将以色列的长老和各支派的首领,并以色列的族长,招聚到耶路撒冷,要把耶和华的约柜从大卫城就是锡安运上来。
  • 2 以他念月,就是七月,在节前,以色列人都聚集到所罗门王那里。
  • 3 以色列长老来到,祭司便抬起约柜,
  • 4 祭司和利未人将耶和华的约柜运上来,又将会幕和会幕的一切圣器具都带上来。
  • 5 所罗门王和聚集到他那里的以色列全会众,一同在约柜前献牛羊为祭,多得不可胜数。
  • 6 祭司将耶和华的约柜抬进内殿,就是至圣所,放在两个基路伯的翅膀底下。
  • 7 基路伯张着翅膀在约柜之上,遮掩约柜和抬柜的杠。
  • 8 这杠甚长,杠头在内殿前的圣所可以看见,在殿外却不能看见,直到如今还在那里。
  • 9 约柜里惟有两块石版,就是以色列人出埃及地后,耶和华与他们立约的时候摩西在何烈山所放的。除此以外,并无别物。
  • 10 祭司从圣所出来的时候,有云充满耶和华的殿;
  • 11 甚至祭司不能站立供职,因为耶和华的荣光充满了殿。
  • 12 那时所罗门说:“耶和华曾说,他必住在幽暗之处。
  • 13 我已经建造殿宇作你的居所,为你永远的住处。”
  • 14 王转脸为以色列会众祝福,以色列会众就都站立。
  • 15 所罗门说:“耶和华以色列的 神是应当称颂的!因他亲口向我父大卫所应许的,也亲手成就了。
  • 16 他说:‘自从我领我民以色列出埃及以来,我未曾在以色列各支派中选择一城,建造殿宇为我名的居所,但拣选大卫治理我民以色列。’”
  • 17 所罗门说:“我父大卫曾立意,要为耶和华以色列 神的名建殿。
  • 18 耶和华却对我父大卫说:‘你立意为我的名建殿,这意思甚好。
  • 19 只是你不可建殿,惟你所生的儿子必为我名建殿。’
  • 20 现在耶和华成就了他所应许的话,使我接续我父大卫坐以色列的国位,又为耶和华以色列 神的名建造了殿。
  • 21 我也在其中为约柜预备一处。约柜内有耶和华的约,就是他领我们列祖出埃及地的时候,与他们所立的约。”
  • 22 所罗门当着以色列会众,站在耶和华的坛前,向天举手说:
  • 23 “耶和华以色列的 神啊,天上地下没有神可比你的!你向那尽心行在你面前的仆人守约施慈爱;
  • 24 向你仆人我父大卫所应许的话现在应验了。你亲口应许,亲手成就,正如今日一样。
  • 25 耶和华以色列的 神啊,你所应许你仆人我父大卫的话说:‘你的子孙若谨慎自己的行为,在我面前行事像你所行的一样,就不断人坐以色列的国位。’现在求你应验这话。
  • 26 以色列的 神啊,求你成就向你仆人我父大卫所应许的话。
  • 27 “ 神果真住在地上吗?看哪,天和天上的天尚且不足你居住的,何况我所建的这殿呢?
  • 28 惟求耶和华我的 神垂顾仆人的祷告祈求,俯听仆人今日在你面前的祈祷呼吁。
  • 29 愿你昼夜看顾这殿,就是你应许立为你名的居所;求你垂听仆人向此处祷告的话。
  • 30 你仆人和你民以色列向此处祈祷的时候,求你在天上你的居所垂听,垂听而赦免。
  • 31 “人若得罪邻舍,有人叫他起誓,他来到这殿在你的坛前起誓,
  • 32 求你在天上垂听,判断你的仆人:定恶人有罪,照他所行的报应在他头上;定义人有理,照他的义赏赐他。
  • 33 “你的民以色列若得罪你,败在仇敌面前,又归向你,承认你的名,在这殿里祈求祷告,
  • 34 求你在天上垂听,赦免你民以色列的罪,使他们归回你赐给他们列祖之地。
  • 35 “你的民因得罪你,你惩罚他们,使天闭塞不下雨;他们若向此处祷告,承认你的名,离开他们的罪,
  • 36 求你在天上垂听,赦免你仆人以色列民的罪,将当行的善道指教他们,且降雨在你的地,就是你赐给你民为业之地。
  • 37 “国中若有饥荒、瘟疫、旱风、霉烂、蝗虫、蚂蚱,或有仇敌犯境围困城邑,无论遭遇什么灾祸疾病,
  • 38 你的民以色列,或是众人,或是一人,自觉有罪(原文是灾),向这殿举手,无论祈求什么,祷告什么,
  • 39 求你在天上你的居所垂听赦免。你是知道人心的,要照各人所行的待他们(惟有你知道世人的心),
  • 40 使他们在你赐给我们列祖之地上一生一世敬畏你。
  • 41 “论到不属你民以色列的外邦人,为你名从远方而来,
  • 42 (他们听人论说你的大名和大能的手,并伸出来的膀臂)向这殿祷告,
  • 43 求你在天上你的居所垂听,照着外邦人所祈求的而行,使天下万民都认识你的名,敬畏你像你的民以色列一样;又使他们知道我建造的这殿是称为你名下的。
  • 44 “你的民若奉你的差遣,无论往何处去与仇敌争战,向耶和华所选择的城与我为你名所建造的殿祷告,
  • 45 求你在天上垂听他们的祷告祈求,使他们得胜。
  • 46 “你的民若得罪你(世上没有不犯罪的人),你向他们发怒,将他们交给仇敌掳到仇敌之地,或远或近,
  • 47 他们若在掳到之地想起罪来,回心转意,恳求你说:‘我们有罪了,我们悖逆了,我们作恶了’;
  • 48 他们若在掳到之地尽心尽性归服你,又向自己的地,就是你赐给他们列祖之地和你所选择的城,并我为你名所建造的殿祷告,
  • 49 求你在天上你的居所垂听他们的祷告祈求,为他们伸冤;
  • 50 饶恕得罪你的民,赦免他们的一切过犯,使他们在掳他们的人面前蒙怜恤。
  • 51 因为他们是你的子民,你的产业,是你从埃及领出来脱离铁炉的。
  • 52 愿你的眼目看顾仆人,听你民以色列的祈求,无论何时向你祈求,愿你垂听。
  • 53 主耶和华啊,你将他们从地上的万民中分别出来作你的产业,是照你领我们列祖出埃及的时候,藉你仆人摩西所应许的话。”
  • 54 所罗门在耶和华的坛前屈膝跪着,向天举手,在耶和华面前祷告祈求已毕,就起来,
  • 55 站着,大声为以色列全会众祝福,说:
  • 56 “耶和华是应当称颂的!因为他照着一切所应许的赐平安给他的民以色列人,凡藉他仆人摩西应许赐福的话,一句都没有落空。
  • 57 愿耶和华我们的 神与我们同在,像与我们列祖同在一样,不撇下我们,不丢弃我们,
  • 58 使我们的心归向他,遵行他的道,谨守他吩咐我们列祖的诫命、律例、典章。
  • 59 我在耶和华面前祈求的这些话,愿耶和华我们的 神昼夜垂念,每日为他仆人与他民以色列伸冤,
  • 60 使地上的万民都知道惟独耶和华是 神,并无别神。
  • 61 所以你们当向耶和华我们的 神存诚实的心,遵行他的律例,谨守他的诫命,至终如今日一样。”
  • 62 王和以色列众民一同在耶和华面前献祭。
  • 63 所罗门向耶和华献平安祭,用牛二万二千,羊十二万。这样,王和以色列众民为耶和华的殿行奉献之礼。
  • 64 当日,王因耶和华殿前的铜坛太小,容不下燔祭、素祭,和平安祭牲的脂油,便将耶和华殿前院子当中分别为圣,在那里献燔祭、素祭,和平安祭牲的脂油。
  • 65 那时,所罗门和以色列众人,就是从哈马口直到埃及小河所有的以色列人,都聚集成为大会,在耶和华我们的 神面前守节七日又七日,共十四日。
  • 66 第八日,王遣散众民;他们都为王祝福。因见耶和华向他仆人大卫和他民以色列所施的一切恩惠,就都心中喜乐,各归各家去了。

《答疑解惑》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열왕기상》 8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나눌 첫 번째 단락은 8장 1절부터 21절까지입니다. 어떤 내용일까요?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채워진 이야기입니다.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마치고 언약궤를 들여놓았을 때,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임했는데, 이는 전무후무한 역사였습니다.

그때 모든 사람이 어떻게 느꼈는지 아십니까? ‘와, 이건 정말 놀랍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교회를 세웠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임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겠습니까! 다들 바라보며 ‘세상에,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게 된 다섯 가지 가장 핵심적인 이유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던 이유 첫째: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한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 제가 주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드려도 될까요?”라고 물었는데, 하나님께서 “아니다, 필요 없다”라고 하셨음에도 여러분이 성전을 짓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성전을 짓는 것보다 사람이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훨씬 더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그분께 무언가를 드리는 것보다 그분의 율법과 법도와 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을 훨씬 더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었다’는 점입니다.

솔로몬이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입으로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 이르시기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오직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내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그러나 너는 그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오직 네 몸에서 낳을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셨도다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 아버지 다윗을 이어서 일어나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열왕기상》 8:15-20)

형제자매 여러분, 이 ‘약속’이라는 두 글자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이라는 단어를 우리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십니다.

우리가 교회를 세웠는데도 하나님의 약속을 볼 수 없고, 약속의 성취도 보이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온 까닭이 무엇을 바라고 온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고 온 것입니다. 우리가 왜 이토록 대가를 치릅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가 치르는 대가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에 온 뒤 내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렸다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하나님의 약속은 그 모든 것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복이 있는지 없는지는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그 사람에게 약속이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이 성전에 가득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이 친히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 우리가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여 병이 나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며 그분이 친히 이루신 것이지 저에게 무슨 대단한 도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이 누군가를 ‘영적 대가’로 받들어 섬긴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절대로 사람을 우상화하지 마십시오. 저 역시 그런 대가가 되고 싶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계승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솔직하게 말씀드려 보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다른 일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없다면 인생은 무너지고 맙니다. 하늘을 쳐다보아도 응답이 없고 땅을 내려다보아도 막막하여 아무런 방법이 없는 때를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약속을 절실히 필요로 합니까? 살면서 마주하는 문제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없다면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몇 가지 약속을 유독 좋아합니다. 첫째,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는 약속입니다. 얼마나 좋은 말씀입니까! 오늘날 과학이 아무리 발전했다 해도 병에 걸려 약을 먹으면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인데, 어찌 이 약속보다 좋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가끔 “주님을 믿는 것은 밥이 될 뿐만 아니라 약도 되고, 약이 될 뿐만 아니라 돈으로 쓸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 약속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처럼 좋은 약속이 주어졌는데, 오늘날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여 누릴 수 있는 능력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취할 수 있습니까?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이 계산을 분명하게 마쳐야 합니다. 이 계산이 명확하지 않으면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한 것,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의 약속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내려오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웠는데 하나님의 임재는 없고 마귀만 가득하다면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평생토록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찬 교회를 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두 번째 약속은, 예수님의 가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부요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속함을 받았고, 예수님이 징벌을 받으심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 중에 돈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헌금할 때 “하나님은 참 인색하게 왜 돈을 요구하실까?”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헌금은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는 매우 핵심적인 통로입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조심해야 합니다. 예전에 가난했을 때는 돈을 그리 사랑하지 않다가도, 돈이 조금 생기면 헌금하기가 몹시 어려워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번은 제가 성과급을 꽤 많이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헌금하려니 마음에 걸림이 생겼습니다. 액수가 컸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몇백 위안, 많아야 천 위안을 헌금했는데 갑자기 만 위안, 2만 위안을 헌금하려니 망설여진 것입니다. 십만 위안이 들어왔기 때문에 만 위안을 헌금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깜빡한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이처럼 아둔합니다. 만 위안이면 살 수 있는 물건이 많다 보니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한참을 갈등하다가 생각했습니다. ‘에이, 겨우 만 위안으로 무슨 중병을 고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은가? 헌금하자.’ 그래서 저는 많은 헌금을 드렸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전을 짓고자 하는 것은 그곳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교회를 건축해야 합니까? 그곳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약속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왜 다른 사람이 아닌 다윗에게 약속하셨을까요? 그 많은 사사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사무엘도 있었습니다. 사실 사무엘은 언약궤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고, 언약궤를 돌볼 여유도 없었습니다. 역사 이래로 사무엘과 모세는 가장 위대한 두 선지자로 꼽히지만, 그들은 이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때에 이르러 다윗이 이 일을 하고자 결단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던 이유 둘째: 사람의 마음에 품은 소원

그가 이르시기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오직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솔로몬이 이르되 “내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하셨나이다” (《열왕기상》 8:16-18)

이 말씀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 뉘앙스가 느껴지십니까?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이래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성읍을 택하지 아니하였다.” 그 사람을 찾지 못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몹시 쓸쓸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아무도 이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나중에 언약궤가 어디에 숨겨져 있었습니까? 웃사의 집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토록 보배로운 성물인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소원을 품은 사람을 찾지 못하셨습니다. 모세가 지었던 성막의 해달 가죽도 삭아버리고, 썩을 만한 것들은 다 썩어서 부속품조차 온전히 맞출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막을 다시 치려고 해도 칠 수가 없어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저 아무렇게나 놓아두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기에 그토록 귀한 것을 방치해 두었을까요?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셨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이것은 내가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인데!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시내산에서 온 백성에게 말씀하고, 시내산에서 이 언약을 받아 두 돌판을 받게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모세를 통해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세워 성막을 아주 정교하게 짓게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어디로 갔습니까? 다윗 시대에 이르러서는 만리장성의 벽돌을 가져다 돼지우리나 양 짓는 데 쓴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 아프셨겠습니까? 아무도 이 일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가 얼마나 보배로운지,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왕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고자 뜻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내가 참으로 오랜 세월을 기다려왔다. 사사들을 거치고 거쳤으며, 왕들을 거치고 선지자들을 거쳐왔지만 오직 다윗만이 나를 위해 전을 짓겠다는 마음을 품었구나’라는 뜻입니다. 출애굽부터 다윗에 이르기까지 400여 년 동안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성읍을 택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지 않습니까? 왜 택하지 않으셨을까요? 아무도 성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택하면 하나님이 그냥 주실 줄 압니까? 사람에게 먼저 그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드리며 진솔한 심정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을까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당시 지역 교회에 대해 불만족스러운 마음을 품고 있었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고 쓸데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지만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말을 꺼내는 순간 선악을 분별하는 죄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을 잘 알기에 속으로 삭이고 참았습니다.

그 후 교회를 개척하면서 마음에 한 가지 생각이 있었습니다. 비록 방법은 잘 몰랐지만,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즉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여야 한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마음에 큰 갈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긍휼히 여기셔서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게 하셨지만, 그 마음의 중심은 변함없이 남아 있었습니다. ‘교회를 세운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우겠다’는 소원이었습니다.

당시 그 소원을 품고 나아가는 것은 참으로 고단했습니다. 환경을 둘러보아도 갖추어진 조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세운 교회를 보면 만 명이 모이고, 무대와 드럼, 화려한 조명, 찬양팀이 인도하는 멋진 예배가 있었습니다. 반면에 스스로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그런 외적인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시고 친히 이루십니다. 그때의 초라했던 모습을 떠올려 보며 오늘날 다시 생각해보면, 아무리 거대한 무대와 훌륭한 조명, 음향, 음악, 드럼, 기타 연주자가 있다 한들—그들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그것이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의 마음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기쁠 때는 굳이 저를 찾아오지 않아도 되지만, 여러분 중 누군가 고통스러워할 때 제가 어찌 함께 아파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바로 그러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 교회의 어떤 지체라도 힘들어하면 저도 함께 힘들어하며,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속히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마음입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올바르게 다스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음의 중심이 올발랐고 태도가 올발랐습니다. 오늘날 여러분 모두가 증인이 될 수 있듯이, 저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해왔습니다. 하지만 제 속으로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직 충분히 충성스럽지 못하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주님을 섬기기에 여전히 부족하며, 때로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마음에 소원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십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에게 가득하기를 원하신다면 주님 역시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좋은지 아는 만큼 우리 마음의 갈망도 커집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얼마나 큰지 아는 만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갈망도 깊어집니다. 그 갈망이 깊어지면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거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며, 그것이 가장 큰 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이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의 명예나 이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제가 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임재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이 성전에 가득 채워지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그토록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얼마나 필요합니까? 누군가 “선생님, 제가 너무 힘듭니다”라고 하면, 그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누군가 “선생님, 머리가 아픕니다”라고 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필요한 것입니다. “목이 아픕니다”, “혈당이 높습니다”, “고관절이 펴지지 않습니다”, “무릎에 골절이 생겼습니다”, “발에서 고름이 납니다”, “나이가 이렇게 많은데 여전히 가난합니다”라고 호소하는 이들을 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절실합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을 짓기를 갈망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해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받기 위함입니다. 다윗에게 바로 그 마음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짓고자 마음을 품었기에 시작된 것이지, 하나님이 먼저 지으라고 명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만나기를 간절히 기다리셨고, 그에게 속히 말씀해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네 생각이 참으로 좋구나. 네가 참으로 지혜롭다. 내가 보좌에서 400년 동안 이런 사람을 기다려왔는데 드디어 나타났구나.”

그래서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기다리셨다면, 이제 제가 나타났고 제가 왔으니 “하나님,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가끔 형제자매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 같은 사람은 5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화인 사명 신학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내는 신학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아무리 많다 해도 오늘날 성취된 것은 여전히 부족하며, 우리 가운데 훨씬 더 많이 성취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저의 갈망이며,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도 동일한 갈망을 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자신을 온전히 드려 자신의 의를 세우려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십시오. 여러분은 반드시 이 시대의 다윗이 되고, 이 시대의 솔로몬이 되며, 이 시대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될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시고, 우리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며, 땅의 모든 족속이 우리를 통해 복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듣기만 해도 힘이 솟구치지 않습니까! 이는 보드카 한 병을 마시는 것보다 훨씬 더 힘이 나며, 최고급 양주를 마시는 것보다 더 좋은 느낌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러한 마음을 품고 우리 안의 열정을 다시 불태웁시다. 결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지 않게 하십시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앞서는 순간 재앙은 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돈이 많은 것을 시기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막아서 돌이킬 수 있다면 여러분의 복이고, 막지 못한다면 저의 한계일 것입니다. 제 말이 이해되십니까? 마음속으로 탄식이 나옵니다. 정말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이 길을 함께 달려갈 것입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모든 것이 평안하다고 해서 안심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수많은 재앙을 막아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는 질병과 재앙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승복하지 않고 굳이 시험해 보겠다면 행운을 빌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던 이유 셋째: 대가를 치르고자 하는 마음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기로 마음먹은 뒤, 자주 시간을 내어 골방으로 들어갔던 것을 아십니까? 그곳에서 무엇을 했을까요?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면 손가락으로 설계도를 그리셨습니다. 제 짐작이지만, 다윗이 두꺼운 양피지에 그린 도면들은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직접 그려주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오늘날 누군가 그것을 소장하고 있다면 그 가치는 연성지벽(連城之璧)을 넘어 값을 매길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다윗에게 자세히 그려 보여주셨다고 기록합니다. 그것은 모래사장에 그린 것이 아니라 양피지에 그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도면을 그리실 때 다윗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다윗의 대단한 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도면을 그리시는 하나님을 향해 멈추라고 소리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실 당시 다윗에게는 그러한 건축 기술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성전 전체의 외형을 그리고, 모듈별로 그리신 다음 구체적인 자재까지 명시하셨습니다. 다윗은 도면을 보고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짓는단 말인가? 벽에 금을 입히라고? 세상에, 내가 이 많은 금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그러나 하나님은 명확히 지시하셨습니다. “여기는 이렇게 하고, 저기는 저렇게 하라.” 다윗은 보고 나서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주께서 그리신 도면이라면 주께서 친히 이루실 줄 믿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오늘날 화인 사명 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친히 이루실 것입니다.

제 느낌이나 제가 경험한 바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은 무수히 많으며, 경험하고 난 뒤에는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내용 중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두 나음을 입었다”라는 구절을 보면 “어떻게 모두 나을 수 있는가? 나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보고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만약 여러분 같았다면 “하나님, 잠깐만요, 더 이상 그리지 마세요”라고 반응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왜 그러느냐?” 하시면, “이 거대한 돌들을 어디서 구합니까?”라고 했을 것이고, 그러면 모든 것이 끝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대가를 치르겠습니다. 좋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의 심정과 같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죽여 번제로 드리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돌이 아무리 크다 한들 하나님보다 크겠습니까? 하나님이 큰 돌을 설계하시면 안 됩니까? 하나님이 “영광스러운 교회는 이러하다”고 말씀하시는데 문제가 있습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감히 문제 삼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 방면에서 대가를 치르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윗은 “이 대가를 제가 치르겠습니다. 금 수백 톤쯤이야 문제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얼마나 가지고 있었을까요? 단 1톤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수백 톤은 어떻게 마련했을까요? 구하고 모은 것입니다. 금 수백 톤이 대수입니까? 큰 돌들이 대수입니까? 결국 솔로몬에게 넘겨주어 완성하게 했습니다.

다윗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가 왜 그토록 많은 금을 준비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설명해주신 성전을 지으려면 그만큼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금을 어떻게 얻었겠습니까? 하나님이 금을 공급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건대, 오늘날 우리 화인 사명 신학이 보고 있는 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수년 전에는 지극히 미미하고 작은 시작이었습니다. 오늘날 역시 여전히 겸손한 시작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미 눈에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소망이 아닙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라야 할 것은 아직 보지 못한 위대한 역사입니다.

솔로몬은 대가를 치렀습니까, 치르지 않았습니까? 대가를 치렀습니다. 솔로몬도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아버지 다윗에게서 사역을 넘겨받을 때 수많은 질문을 던졌을 것입니다. “아버지, 이것이 정말 가능합니까?” 다윗은 말했을 것입니다. “묻지 마라.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알아들었느냐? 다시는 의심하는 말을 하지 마라. 그런 소리를 또 하면 볼을 꼬집어줄 테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치르는 대가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나중에 따져보면 제가 치른 대가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진정한 대가를 치른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만 입었을 뿐입니다. 큰 대가를 치른 것이 아니라 풍성한 은혜를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사람이 자신을 온전한 번제물로 드릴 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유익을 얻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늘 자신을 거룩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드리는 것보다 더 좋은 기회, 더 남는 장사, 더 훌륭한 투자는 평생 다시 없을 것입니다. 최고의 투자가 무엇입니까?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무엇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성전을 짓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럴 때 샘솟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우리에게 대가를 치르고자 하는 마음을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화인 사명 신학의 핵심 가치 중 하나가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진정한 대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르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을 때 우리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얻게 된다는 단순한 논리입니다. 아까 대가를 치르는 부분에서 본문 구절을 읽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그와 함께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 (《열왕기상》 8:5)

성전의 돌과 자재뿐만 아니라 제사를 드릴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들을 아껴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자”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구제하는 것이 어찌 하나님의 영광보다 앞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없다면 가난한 자를 구제하다가 자신마저 가난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면 구제하려 애쓰지 않아도 가난한 자들이 부요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던 이유 넷째: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

그 때에 솔로몬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열왕기상》 8:12)

‘캄캄한 데 계시겠다’는 이 말씀은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하나님, 특히 우리 주 예수님은 결코 자신을 과시하지 않으십니다. 사탄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며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를 주겠다고 유혹했을 때, 주님은 “오직 주 너의 하나님께만 경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떠벌리거나 허풍을 떠시는 분이 아니며, 캄캄한 흑암 중에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찾고 구하는 자만이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은밀한 곳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왜 언약궤를 천안문 광장 한복판에 두어 번쩍번쩍 빛나게 하지 않으셨을까요? 그것은 우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이 아니며, 하나님은 그런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사역자에게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말씀입니까.

우리는 특별히 조심하여 결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 해서는 안 됩니다. 다음 세대에도 제 이름은 남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 세대에는 오직 하나의 이름, 곧 사명 신학이라는 온전한 신학 체계만이 전해질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중요합니다. 제가 왜 이처럼 강조하겠습니까? 수많은 비극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세계적인 유명 목사가 되겠다”고 말합니다. 미국의 한 유명한 목사가 있었는데, 저도 그의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성년자 성추행 등의 죄목으로 결국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싱가포르의 한 목사도 세계적인 목사가 되겠다며 아프리카와 미국으로 선교를 다녔지만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참담하게 끝났습니다. 저는 그러한 일들을 수없이 보았기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전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저는 유명해지고 싶지 않으며, 제 이름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이 중요합니다. 그 교회 출신의 한 성도가 저에게 와서 “선생님은 어쩜 그렇게 지혜로우십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더욱 하나님을 갈망해야 합니다. 화인 사명 신학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을 이토록 세밀하게 상고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나누는 《열왕기상》도 이미 두 번째로 살펴보는 중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은밀한 곳에 숨어 계십니다. 언약궤를 거대한 광장에 둘 필요도 없고,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산더미만 한 금빛 신상을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십자가를 높이 치켜든다 해도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오직 우리의 이 마음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이 은밀한 중에 거하심을 모른다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 가득하며, 성전에 가득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핵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끊임없이 높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의 동기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의 동기가 이름을 내기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유명하게 만드신 뒤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은 이름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말처럼, 살찐 돼지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제멋대로 행해도 된다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을 깊이 이해하고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힘써 행하고,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은 손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던 이유 다섯째: 성전 안에 언약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으니 언약궤는 폐하여졌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약궤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습니까? 십계명이 들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언약궤 안에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직접 새겨주신 십계명의 두 돌판이 들어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전 가장 깊은 곳, 지성소에 언약궤를 모셔 들인 까닭은 바로 그 안에 두 돌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구약》이 더 이상 쓸모없다고 여기는 잘못된 신학 체계들이 많지만, 《구약》과 《신약》은 하나의 온전한 체계이며 결코 구약을 폐기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언약입니다. 그 기초는 여전히 율법입니다. 어린아이일 때는 규율을 정해주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자마자 아무런 규칙도 지키지 않은 채 스스로 대단하고 자유롭다고 여기면 결국 어떻게 됩니까? 자신을 망치게 됩니다. 그것은 육신을 따르는 방종이며 매우 부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 안에는 언약궤가 놓였고, 언약궤 안에는 시내산에서 받아온 두 돌판이 담겨 있었습니다. 오늘날 언약궤의 돌판에 새겨진 말씀은 바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십계명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언약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두 돌판을 뛰어넘는 온전한 성취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살아낸다면 율법을 성취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율법 조문 자체는 하나님의 약속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간절히 바란다면 도둑질하지 않고, 살인하지 않는 십계명 따위가 무엇이 그리 어렵겠습니까? 거짓 증언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 그리 어렵습니까?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울 때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폐기하는 방식으로 세워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화인 사명 신학의 중대한 이론적 돌파는 바로 《신약》과 《구약》이 하나의 온전한 체계라는 점을 밝힌 데 있습니다. 이 말씀을 반드시 마음에 새기십시오. 이것은 온전한 하나의 체계이며 결코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신약은 은혜의 시대이니 율법은 상관없다”는 식의 논리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세우며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의 충만을 경험하기를 원한다면 이러한 기초적인 진리를 갖추어야 합니다. 폐하여진 것이 아니라 성취된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십계명을 어기는 자가 저주를 받는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때 율법을 온전히 성취해야 합니다. 이것은 율법주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육신의 악한 행실을 죽임으로써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다섯 가지 핵심 요소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어느 단계에 와 있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아직 성전을 완공하지 못하고,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던 그 7년의 과정 중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더욱 자신을 드려야 하며, 더욱 사모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더욱 굳게 믿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끊임없이 깊이 하여 율법을 성취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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