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년 동안 새로운 직장에서 훈련받으며, 나는 황피자의 억압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었다.
새로운 분야의 제품을 개척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주변에는 이 분야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도 스스로 적극적으로 많은 시도를 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분야에 대해 통찰한 것을 최대한 정리해 내놓고, 제품을 설계하고, 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시장에 진입할 방법을 찾았다. 상업적인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제품을 판매하는 일도 직접 실행하기 시작했다. 매일 업무를 정리하고 생각을 정돈해서 투자자이자 우리 회사의 사장님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지난 반년 동안 많은 것을 독학했고, 과거에 몇 년 동안 종사했던 업계에 대해서도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업무 가운데 매우 답답하고 억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많은 것을 내놓았지만 투자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직접 상사와 업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할 때마다 상대방은 곧바로 졸린 기색을 보였고, 나는 다시 움츠러들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생각했다. “여기는 나와 맞지 않아. 내가 익숙한 분야로 돌아가는 게 낫겠어.” 하지만 그래도 계속 버텼다. 직장 하나일 뿐인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계속 해야 할 일을 하자.
한 달쯤 전, 새로운 제품의 초기 형태를 완성하고 두 번째로 고객을 만나기 직전에 내면의 상태가 정말 너무나 힘들었다. 그때 나는 목회자가 밤낮없이 한 자매를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더 방해하지 않는 게 낫겠지?”라는 생각과 “나는 반드시 목회자를 찾아가야 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부딪혔다. 결국 더는 견딜 수 없어서 반차를 내고 목회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회자는 나를 인도해 기도하게 했고, 그것들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알려 주었다.
거짓말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많았고, 아주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목회자는 진정으로 내가 죽든 살든 관심을 가진 적이 없어!” “목회자는 내게 많은 요구와 제약을 한다. 나는 그 요구를 따르려고 매우 애쓰는데도, 목회자는 영원히 만족하지 않고 계속 나를 책망해!” “목회자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 걸까?” “내가 진짜 감정을 말해도 될까? 말할 수 없어. 목회자가 나를 위해 많은 것을 해 주었는데, 나는 말할 수가 없어…” “목회자가 나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 “조금만 참고 견디면 돼. 어차피 여러 해 동안 참아 왔잖아. 정말 힘들 때는 나 자신에게 일을 시키거나, 아니면 잠을 한 번 자면 돼…” “나는 최선을 다했어. 하지만 할 수 없어. 지쳤어. 더는 살고 싶지 않아…” “나는 내가 싫어! 너무 싫어!”
그동안 내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던 이 목소리들이 그날 오전 기도 가운데 모두 쏟아져 나왔다. 나는 몹시 억울하고 처절하게 엉엉 울었다. 그때 목회자는 내게 몇 가지 핵심 단어를 알려 주었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형상」, 「자유」였다. 내가 이런 생각들을 말하자 목회자는 말했다. “이것들은 모두 황피자가 풀어놓은 거짓말입니다. 당신은 계속 그것에게 속고 있는데,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가요? 이런 거짓말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오전 내내 기도하며 해방을 경험하자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고, 자유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나는 과거에 계속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두 번째로 고객을 만났을 때 내 모습은 사실 괜찮았다. 하지만 몸에서는 계속 반응이 나타났고, 이동하는 길에 계속 심하게 토해서 함께 가던 동료들까지 놀라게 했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해방의 시작이다. 한동안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겠지만, 나는 해방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해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뒤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기도만 했다. 마침 그때 사흘 연속 밤을 새워 기도하는 기도회가 있었고, 나도 함께 필사적으로 기도하며 황피자와 싸웠다. 그날 밤 새벽 2시쯤까지 기도하고 있는데 이메일이 왔다. 투자자가 내가 반년 동안 준비한 새로운 제품을 프로젝트에 도입하는 일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메일을 보는 순간 마음에 약간의 파장이 일었지만, 의외로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매우 기뻤다. 이제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할 수 있겠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지난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너무나 힘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아예 휴가를 내고 잠을 보충했다. 잠에서 깨어 보니 부재중 전화가 많이 와 있었다. 나의 파트너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동료들은 내가 충격을 견디지 못해 몸이 무너진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다. 심지어 얼마 전에 퇴사한 CTO도 이 소식을 듣고 내게 전화해 나를 격려하고, 앞으로 프로젝트의 작은 팀을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이후 어떻게 계속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지 등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매우 평온하게 그들과 대화했고, 회사로 돌아가 프로젝트 팀의 작은 팀원들과 소통하며 그들을 안정시켰다. 팀원들은 꽤 놀란 모습이었다. 그들 역시 마음속에 낙담이 있었고, 내가 가장 깊이 몰입했던 사람이니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내가 매우 평온하게 그들을 위로했기 때문이다. 나 자신만은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자신의 능력에 의지하지 않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받쳐 주신다고 믿기 시작하면 많은 일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그 후 사장님이자 투자자인 분과 한 차례 대화를 나누었다. 사장님은 몇 가지를 지적했다.
- 나는 소통에 능숙하지 못하다. 매일 고개를 숙이고 일만 했다. 업무 보고와 생각을 이메일로 상사에게 보내기는 했지만, 상사가 반응하지 않을 때 소통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놓기만 했다.
- 투자자를 설득할 때 반드시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이 믿도록 하고, 상대방 안에 확신을 세워 주어야 한다. 이는 전도자가 하는 일과 같다.
- 과학자는 혼자서 성공적인 창업자가 되기 어렵다. 사장님 자신도 ‘연구자적 사고’에서 ‘사업가적 사고’로 전환하는 과정을 겪었는데, 그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내가 익숙한 ‘연구자’의 환경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지금 돌아가도 늦지 않았다. 하지만 남기로 선택한다면 도전을 선택하는 것이며, 똑같이 고통스러운 전환 과정을 겪어야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나는 사장님이 나와 함께 이 일을 이루어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당신을 채용했고,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당신의 ‘전도’를 통해 설득되기를 더 기대했습니다. 내가 이 일을 위해 투자할 수 있도록 확신을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유독 나를 설득하려고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순간 이것이 나와 목회자의 관계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목회자가 나에게 요구하고 나를 책망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목회자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매우 애썼지만, 목회자는 여전히 만족하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는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했다. “이것들이 혹시 모두 내가 스스로 파고든 생각은 아닐까? 실제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시간이 나에게 깊이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기에, 나는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이것은 나 자신을 새롭게 하고 변화시키며 해방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회의실에서 나는 즉시 사장님에게 대답했다.
- 나는 원래 익숙한 환경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편안하고 안락한 삶보다는 나 자신을 변화시키기를 더 원하기 때문에 남겠습니다.
- 지난 반년 동안 마케팅 배경을 가진 동료를 보며 내게 부족한 사고방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 동료를 따라 배우고 싶습니다.
대화가 끝난 후 나는 사장님이 매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것을 보았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사장님은 프로젝트의 실패가 주로 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나의 직접적인 상사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고, 그저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만 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사장님은 내가 끈기 있고 끝까지 견디는 성격을 가졌으며, 나를 새롭게 만들어 갈 수 있다면 회사의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반적인 프로젝트라면 사업적 전망이 보이지 않을 때 3개월 만에 중단했을 텐데, 사장님은 6개월 동안 인내하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견디는지도 지켜본 것이었다. 내가 배우고 싶다고 먼저 말한 마케팅 담당 동료는 사장님이 매우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었다. 사장님은 그 동료가 나의 원래 상사보다 나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데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내가 그 동료의 팀에 들어가고 싶다고 먼저 말한 것은 사장님의 뜻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앞으로 나는 연장된 정규직 전환 심사를 맞이하게 된다. 지난 한 달 동안 회사가 내게 요구한 것은 더 이상 업계에 대한 통찰을 내놓는 일이 아니라,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프로젝트 관리였다. 새로운 리더는 이것이 나를 훈련하기 위해 특별히 만든 자리라고 알려 주었다. 그전까지 회사에는 프로젝트 관리 직무가 없었다. 사장님은 내가 가장 보완해야 할 부분이 소통 능력이라고 생각했고, 프로젝트 관리에는 내부 소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이 일을 목회자에게 기쁘게 말했고, 목회자는 “주님께 감사합시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훈련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하지만 당신은 반드시 다시 무너질 것입니다. 무너질 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해방하실 때입니다.” 나는 이 말을 기억해 두었다.
처음 업무를 맡았을 때 나는 ‘프로젝트 관리’가 잡다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일은 내가 잘하는 일이 아닌가? 나는 곧바로 몇 개의 표를 만들었고, 며칠 만에 관련 정보를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거 어렵지 않네?” 하지만 곧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정말 도전적인 훈련의 기회였다. 기계나 정보보다 사람을 관리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려웠다.
제품 라인을 책임지는 사람이 실질적인 책임자였지만, 나는 내 업무가 지원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게 맡겨진 몇 가지 업무는 사실상 사람을 관리해야 하는 일이었다. 조금 자만하는 데다 가장 경력이 많은 개발 매니저, 성질을 부리는 업계 전문가, 협조하려 하지 않는 젊은 프로그래머와 테스트 담당자 등을 상대해야 했다. 스무 명이 넘는 팀에서 누군가는 회의 초대를 잊고, 누군가는 회의 참석을 잊고, 누군가는 화를 내며 회의에 오지 않았다. 나는 정말 감당할 수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좌절감과 좋지 않은 감정이 다시 올라왔고, 몇 차례 더 기도하며 그것들과 싸웠다. 그러면서 리더가 어떻게 하는지 관찰했다. “내 팀에서는 결과만 봅니다. 성과를 낸 사람이 존중받습니다. 그 사람이 업계 전문가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리더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왜 나는 일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두려움을 느끼는 걸까? 과거 목양 훈련을 받을 때와 똑같았다. 나는 왜 늘 사람들이 떠날까 봐 두려워하는 걸까?
그 밖에도 나는 이 리더가 굳세고 흔들림 없이 목표가 분명하며, 특히 체면을 중시하지 않고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줄곧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이후 함께 지내는 동안 나는 한 가지 일을 직접 보게 되었다. 다른 제품 라인의 매우 경력이 많고 나이가 있으며 그 분야에서 권위를 가진 책임자가 2주 동안 붙잡으려 해도 붙잡지 못했던 인재를, 이 젊은 리더는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시간 동안 이치로 설득하고 감정으로 감동시키며 진솔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동시에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었다. 그 결과 그 인재를 회사에 남게 했을 뿐 아니라 우리 제품 라인으로 데려오기까지 했다.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녀의 절반만큼이라도 끈기 있게 행동했다면, 부모님과의 관계,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복음을 전하고 간증을 나눌 때 왜 항상 내가 먼저 위축되고, 결국에는 말하지 못하게 되는 걸까? 내 목표가 분명하다면, 가족을 축복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면, 어려움을 만났을 때 물러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끈기 있는 성품을 가져야 한다.
또 하나의 문제도 발견했다. 바로 체면을 중시하고 자신을 내세우는 태도였다. 많은 지식인들에게 이런 현상이 있는데, 나에게도 그런 면이 있었다. 과거에 여러 해 동안 일했던 연구기관의 환경이 이런 경향을 오히려 강화했다. 나는 심지어 이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자신을 내세우던’ 경력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인재를 빼앗기는 모습을 보았다. 반면 늘 “회사 전체에서 내가 학력이 가장 낮다”고 스스로를 낮추던 사람은 회사에서 가장 젊은 제품 라인의 책임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기적처럼 인재를 회사에 붙잡아 두고 우리 쪽으로 데려오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왜 체면을 중시해야 하는가? 왜 자신을 그렇게 내세워야 하는가? 왜 좀 더 자유롭게, 목표를 분명하게, 감정도 좀 더 자유롭게 표현하며 살지 못하는가?
최근 한 번의 출장에서 중요한 고객을 만나는 일이 있었다. 나는 충분히 준비하고 고객이 있는 도시까지 날아갔지만, 거절당하고 약속을 어기는 일을 겪었다. 정말 낙담스러웠다. 부정적인 감정과 자신의 힘에 의지하는 체계와 싸우며 기쁨을 회복했다. 다음 날 다른 도시로 가기 전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 중요한 고객의 연구 방향이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연구해 온 방향과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리더에게 연락해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 리더는 내가 넘어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격려했다. 그리고 말할 방법을 가르쳐 주며 고객에게 다시 전화하게 했다. 놀랍게도 이 중요한 고객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리더는 이것이 작지 않은 돌파라고 말했다.
정리
이 경험을 기록한 내용이 조금 산만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내면의 논리 체계를 점차 바꾸고 많은 고정관념을 내려놓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유와 평안을 조금씩 누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이렇게 수고하고 애쓰는 일들을 예전만큼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자신에게 의지하는 체계가 여전히 깊이 뿌리박혀 있을 때마다, 반복해서 분명하게 느껴지는 낙담과 괴로움이 나에게 일깨워 준다.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에서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으로 변화되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