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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적전쟁 승리의 신학 시리즈 (6) - 귀신들도 우리에게 굴복하더이다!

2026-06-07 1,023 争战得胜的神学系列

《答疑解惑》

서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신학 강의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오늘은 여섯 번째 강의로, 주제는 "귀신들도 우리에게 굴복하더이다"입니다. 저희 사역 초기에 귀신 하나를 쫓아내고 나서 얼마나 흥분했었는지 아십니까? 세상에, 그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그런 흥분이 사라졌을까요? 당시에는 너무 흥분해서 우리가 무언가를 잘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잘한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참 신기했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솔직히 말씀드려 정말 엉망이었습니다. 교회가 축귀 사역의 길을 가기 시작했을 때, 교회 안에는 일치(하나 됨)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교회는 전혀 승리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처음에 귀신을 쫓아낼 때는 참 겁도 없었습니다. 어떤 학교의 중국인 학생이 짝사랑 때문에 귀신에게 사로잡혔습니다. 경찰이 신병을 확보해 정신병원에 인계했고, 입원 수속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병상을 둘러싸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이빨을 드러내고 어찌나 사납고 흉측하게 굴던지 보기에 역겨울 정도였는데, 기도하자 귀신이 쫓겨 나갔습니다.

입원 후 정밀검사를 해보니 정신병이 아니었고, 모든 것이 정상이어서 퇴원했습니다. 퇴원 후에 제가 일자리를 마련해 주며 말했습니다. "이제 그 짝사랑인지 뭔지 그만하고, 일자리 구해서 정상적으로 출근하세요, 알겠죠?" 그런데 결과가 어땠을까요? 잊지 못하고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또 매달리더니 용하다는 도사까지 찾아가 주문을 외우고 난리를 치다가, 두 번째로 또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정신병원 면회실로 찾아가서 또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속으로 '야, 나 제법 대단한데?'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그때 교회에는 기도회도 없었고, 정말 형편없었습니다. 우리도 참 신기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연약하고 엉망인데 어떻게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을까요? 그것도 작은 귀신이 아니라 꽤 센 놈 같았는데 말입니다. 알고 보니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 앞서 가셔서 승리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귀신 쫓아내는 것을 두려워하며 "내가 귀신을 쫓아냈는데, 그 귀신이 나를 해코지하러 오면 어쩌지?"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당시 저는 그런 두려움은 없었지만, 귀신도 저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신기했던 것은, 우리가 이렇게 엉망인데 귀신이 왜 우리를 처치하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귀신도 우리를 손대지 못했고, 하나님도 우리를 멸하지 않으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앞서 승리하셨기 때문이고, 둘째는 우리가 엉망이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멸하시는 분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은 구원을 베풀러 오셨습니다. 그러니 지금 스스로를 보며 부족하다고 생각되십니까? 괜찮습니다. 그래도 그때의 저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이후 교회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기도하는 교회로 바뀌었습니다. 기도하는 교회로 바뀐 지 얼마 안 되어 환자에게 기도할 때마다 낫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는 사람마다 다 나았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신기해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요? 사실 주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승리해 놓으신 것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이 우리 앞서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훌륭해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땅의 사람들이 너무 악하고 썩어서 하나님이 그들을 멸하시고 이스라엘을 그곳에 두신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니 예수님이 택하신 열두 제자도 참 엉망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부족한 사람들을 택하셨을까요? 거의 완벽하고 멋진 인물들을 제자로 삼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흠 많은 제자들을 택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그러니 우리처럼 부족한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 수능 전국 수석 같은 엘리트들만 뽑으셨다면 우리는 어디 설 자리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스펙이나 성적으로 뽑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은혜와 긍휼,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보시고 택하신다는 점입니다. 초기의 열두 제자들도 참 엉망이었습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와, 주 예수님, 귀신들도 우리에게 복종했습니다!"라고 하니, 주 예수님은 '무얼 그리 기뻐하느냐? 내가 이미 천군 천사를 보내 너희 앞길을 열어 놓았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나가라고 명령해서 나간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 천군 천사가 그 잡귀들을 결박한 것입니다. 제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또 다른 칠십 명의 제자들도 성경을 보면 대단한 훈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어떤 훈련을 받았습니까? 돈주머니도, 배낭도, 여벌 옷도 가지지 말고 캐리어를 끌고 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성에 들어가 영접을 받으면 그 집에 머물며 거저 먹고 마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훈련입니까? 거저 먹고 자는 훈련입니다.

사람들이 영접하지 않으면 발의 먼지를 털어버리고 나오라는 것이 훈련의 전부였습니다. 칠십 명의 제자들은 그렇게 길을 떠났습니다. 길을 가면서 그들은 속으로 웅성거렸을 것입니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열두 제자도 별 볼 일 없던데 우리라고 못 하겠어? 베드로 같은 사람들도 하는데 우리도 할 수 있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래도 조심해야 해. 저들은 열두 제자잖아!'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열두 명의 못난 사도'였지만 말입니다. 결국 제자들은 길을 떠났습니다. 어떤 이는 마음이 나뉘었고, 어떤 이는 겨자씨만 한 믿음으로 얼떨결에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귀신을 쫓아보니 나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게 되지?" 귀신을 쫓는 족족 나갔습니다. 그들도 신기해했습니다. '귀신이 이렇게 쉽게 쫓겨나다니!'

그 순간 마음속으로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부족해도 상관없구나, 하나님이 온전하시면 되는 거구나.' 칠십 명이 돌아왔을 때 왜 그렇게 기뻐했는지 아십니까? 제가 사역 초기에 귀신을 쫓아내고 기뻐했던 것과 똑같았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나니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위풍당당하게 걸었습니다. 칠십 명의 제자들도 승리한 장수처럼 펄쩍펄쩍 뛰며 돌아왔습니다. 드디어 존재감을 확인한 것입니다. 지금도 어떤 분들은 귀신을 하나 쫓아내고는 "목사님, 우리가 정말 엄청난 일을 해냈습니다!"라고 외칩니다. 수년 전의 저와 똑같습니다.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이해합니다. 제자들도 돌아와서 외쳤습니다. "주 예수님, 귀신들도 우리에게 복종했습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사람이 밀치며 말합니다. "저리 좀 비켜봐. 주 예수님, 귀신이 저한테도 복종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앞사람을 밀치며 말합니다. "비켜봐요, 내가 주님께 먼저 말씀드려야 해! 내가 쫓아낸 귀신이 당신 귀신보다 더 크다고!" 줄을 서서, 큰 귀신 쫓아낸 사람이 앞에 서고 작은 귀신 쫓아낸 사람이 뒤에 서는 격이었습니다. 한참을 소란 피우는 것을 보시며 주 예수님은 생각하셨습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너희 앞서 승리하신 것인데, 너희가 잘나서 그런 줄 아는구나.'

오늘 제가 전하는 말씀도 하나의 논문과 같습니다. 현대 신학이 많은 것을 뒤바꿔 놓았기에 우리는 이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현대 신학은 축귀를 대단히 거룩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로 여깁니다. "우리는 아직 부족하니 성경공부나 하자. 귀신을 쫓아내려면 얼마나 거룩해야 하는데." 이런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이 칠십 명이 거룩했습니까? 제가 보기엔 열두 제자도 아직 거룩하지 못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열두 제자도 형편없었고, 이 칠십 명은 더 형편없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우리는 훨씬 더 형편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어떠함과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 앞서 승리를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내가 가서 한 것 같지만, 하나님이 앞에서 다 준비해 두신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한 집을 만났는데 반갑게 맞아주고,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먹을 것을 대접해 줍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입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나타났습니까?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입니다! "어쩜 이렇게 타이밍이 딱 맞지?"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큰 소리로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떠나가라! 결박될지어다!" 외치면 귀신이 나갑니다. 하나님이 앞에서 판을 다 짜놓으시고 엑스트라 역할을 맡겨 주셨는데, 자기가 주인공인 줄 착각하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대단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계의 실제를 경험하게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영적 세계가 얼마나 실제적인지 체험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다 예비하신 것입니다. 나중에 어떤 귀신은 잘 나가지 않는 경험도 해보셨을 것입니다. 이전에는 단번에 쫓겨났는데 왜 이번에는 안 나갈까? 어떤 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축사 사역을 하시면서 가장 오래 걸린 적은 얼마나 되나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가장 오래 걸린 것은 오늘날까지도 안 나간 경우가 있으니까요.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훈련하시는 과정입니다. 저에게는 확실한 믿음이 있습니다. 다른 것은 자랑할 수 없어도 믿음만큼은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 이면에 영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귀신이 어떻게 들어옵니까? 저주와 관련이 있습니다. 저주는 왜 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옵니다.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죄이며, 죄로 인해 저주를 받고, 저주가 임하면 귀신이 합법적으로 그 사람의 몸에 들어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므로 죄가 근본 원인입니다.

축귀의 과정은 먼저 주 예수님의 보혈로 그 저주를 씻어내어 죄를 묻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죄가 무효화되면 귀신은 더 이상 그 사람 안에 합법적으로 거할 수 없습니다. 불법 거주가 되었으니 쫓아내면 나가는 것입니다. 합법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핵심 원리는 회개입니다. 사람이 회개하고 자유케 되기를 원해야 합니다. 스스로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고 귀신을 따라가며 "나는 귀신과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쫓아낼 수 있겠습니까? 매우 어렵습니다.

육신과 사람 내면의 가치 체계는 귀신을 끌어들이는 통로가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됩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믿음으로 의인이 된다는 것은 내가 이미 온전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이 의인으로 여겨 주신다는 뜻입니다. 왜 의인으로 인정하십니까? 내 안의 귀신을 불법 거주자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스스로를 의지하기 시작할 때 당신은 더 이상 의인이 아니며, 귀신은 당신 안에서 합법적으로 거주하게 됩니다. 이것이 영적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의 귀신을 쫓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지난주 한 자매님이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조카의 아들이 귀신에게 눌려 집에서 너무 무서워 떨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함께 몇 번 기도해 주었는데도 귀신이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물었습니다. "누구라고요?" 열 살 된 조카의 아이라는 것입니다. "그 조카 내외는 주님을 믿습니까?" 물으니 안 믿는다고 합니다. 회개가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다소 위험합니다. 귀신을 쫓아낸다 한들, 그 귀신이 더 악한 귀신들을 데리고 돌아오면 그 아이를 해치는 꼴이 되지 않겠습니까? 둘째로, 믿지도 않는데 무엇하러 쫓아냅니까?" 완전히 헌신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이 영적 사실은 알아야 합니다. 아직 어린아이들의 경우, 부모가 바로 귀신을 끌어들이는 근원이 됩니다. 그러니 이 일을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스스로 끌어들인 귀신은 해결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어떻게 귀신을 끌어들입니까? 육에 속하여 자기 의를 세울 때 귀신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자기 의를 세우면 하나님의 의를 세울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의가 없으면 귀신을 불러들이는 사람이 됩니다. 죄가 예수님의 보혈로 덮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보혈의 덮으심과 씻음이 없다면 원리는 단순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면 귀신은 우리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내가 온전해져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이 바로 이 뜻입니다. 믿음이 있기에 귀신이 손대지 못하며,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축귀는 저주가 주 예수님의 보혈로 도말되는 과정입니다. '그 당시에는 아직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이지 않은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온전히 성취되기 전이라도 주 예수님은 이 일을 행하러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승리를 미리 가져다 쓰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승리는 이미 확정된 승리였습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내면의 불신과 육신에 속한 가치 체계를 처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주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기뻐하느냐?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아라. 그것은 내가 한 일이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오늘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기록되었습니까? 사람이 믿는다면 무엇을 믿습니까? 자신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주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사되심, 부활은 무엇을 이루셨습니까? 육신을 쳐서 죽이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길을 가야 합니다. 귀신 하나 쫓아낸 것에 더 이상 호들갑 떨 필요 없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단순한 일입니다. 오직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신학입니다.

본문 말씀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굴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17-20)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권능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 예수님, 우리를 위해 피 흘려 희생하시고,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모든 권세를 얻으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권능을 주셔서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하게 하시고, 어떤 것도 우리를 해치지 못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오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승리의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귀 원수를 이길 뿐 아니라 그들이 퍼뜨리는 모든 거짓말을 이기게 하옵소서. 귀신이 우리에게 굴복할 뿐 아니라 주의 권능으로 육신의 악한 행실을 죽여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배경

이 본문의 배경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첫머리에 "그 후에"라고 시작합니다. '그 후'란 어떤 일이 일어난 후를 말할까요? 열두 제자가 나가서 귀신을 쫓아내고 성공적인 사역을 마친 후였습니다. 그들이 병을 고치고 축사 사역을 하고 돌아오자,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귀신을 쫓을 때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이미 다 예비해 두셨음을, 즉 모든 현실적인 염려를 덜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먹고 마시고 쓰는 모든 것을 더 이상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생은 단순한 것입니다. 오병이어로 배불리 먹이신 후,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셨습니다.

그곳에서 눈을 떠보니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를 보고 주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내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겠습니다." 초막을 지으려면 여섯 개는 지어야지, 셋만 지으면 제자들은 어디서 잡니까? 쓸데없는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변화산 사건을 통해 제자들은 영광을 보았습니다. 주의 권세를 보았고,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았으며, 변화산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왔을 때 한 사람이 귀신에게 심하게 눌려 고통당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귀신을 꾸짖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떤 귀신은 쫓아내서 기뻐했는데, 왜 어떤 귀신은 쫓아내지 못했을까요? 예수님은 "패역하고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요"라며 탄식하셨습니다.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여기서 배웠습니다. 귀신이 잘 쫓겨나면 기뻐하고, 잘 안 나가면 낙심하십니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잘 나가지 않는 것은 믿음의 훈련 과정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솔직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맹인이 눈을 뜨고 다리 저는 자가 걷는 치유는 쉽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의 잘못된 생각의 굳은살을 제거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 와서 기꺼이 받아들이면 치유가 매우 빠르게 일어납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 특히 이미 치유를 경험하고도 옛 모습으로 돌아간 사람은 고치기가 더 어렵습니다. 왜일까요? 생각의 틀을 바꾸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후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셨고, 어떤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본 제자들이 보고하자 예수님은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자가 많아지는 것이 무슨 문제겠습니까? 이 권능은 열두 제자뿐만 아니라 사모하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습니다.

이 일 후에 칠십 명을 세우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며 탄식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귀신에 눌려 있으니 일꾼이 절실하다는 뜻입니다. 칠십 명을 보내셨지만, 칠백 명, 칠천 명, 칠만 명을 보내도 부족합니다.

그들에게 주신 명령이 무엇입니까?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당황스럽지 않습니까? 어린 양이 이리 떼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린 양이 이리 떼 속에 들어가서 살아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돌아올 수 없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 돌아왔을까요?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평안을 빌고,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그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올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영접하거든 차려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말하라 하셨습니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거리로 나와서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하셨습니다. 바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대가를 지불하려 하지 말고 아무것도 챙겨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앞서 축사의 대상뿐 아니라 축사의 권능, 먹고 마실 모든 것을 예비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앞서 오병이어 사건을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이 내가 벌어서 얻은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예비하셨고, 마지막에는 하늘의 영광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이 배경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는 장면입니다. 어린 양이 이리 떼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린 양이라 할지라도 손에 쥔 권세가 이리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이리는 양을 이길 수 없습니다. 양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양에게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께로부터 뱀과 전갈을 밟는 권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길을 떠나서 매우 놀랐을 것입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니 호텔처럼 잘 차려놓고 영접해 줍니다. 신발도 닳지 않고 옷도 더러워지지 않으며, 먹고 마실 것이 거저 주어집니다. 귀신이 복종할 뿐만 아니라 여정의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전대도 없고 여벌 옷도 없었지만, 그들이 가진 권세는 이 모든 것보다 컸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입니까! 그래서 기뻐하며 돌아왔습니다. 제가 돌아왔다면 "주 예수님, 이번 여정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모릅니다! 돈도, 양식도, 옷도 챙기지 않았는데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습니다"라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칠십 명의 제자들은 이런 일상적인 공급은 깊이 느끼지 못했을 수 있지만, 명령 한마디에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은 너무나 생생하게 체감했기에 몹시 기뻐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참으로 탁월하셨습니다. "내가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얼마나 훌륭한 말씀입니까! 우리를 해칠 수 있는 것이 있었다면 저는 진작 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온갖 귀신을 쫓아내며 사역하는데, 귀신에게 힘이 있었다면 저를 가만두었겠습니까? 하지만 손대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권세를 주셔서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하게 하셨고, 결코 우리를 해칠 자가 없게 하셨습니다. 주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직 거룩하지 않아서 귀신을 못 쫓아낸다"고 하지만, 그렇게 거룩해지기를 기다리다가는 관 속에 들어가서야 끝날 것입니다. 그때는 죄를 짓고 싶어도 못 지으니 가장 거룩하겠지요. 그러므로 이러한 고정관념은 깨져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생각의 굳은 틀을 깨부수십시오. 내가 온전해서 승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고 엉망이기 때문에 승리가 필요합니다. 내가 대단해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연약하기에 이 권능을 받아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뒤가 아니라 우리 앞서 행하십니다. 물론 앞서 인도하시고 뒤에서 지켜주십니다.

모든 염려를 내려놓고, 자기 의를 세우지 말며, 오직 하나님의 의만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좋은 것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권능을 주셨을 뿐 아니라,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제자들에게 전대도 여벌 옷도 챙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속옷이라도 몇 벌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속옷조차 챙기지 않았습니다. 남의 옷을 입는 게 맞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속옷까지 다 예비해 두셨습니다. 며칠을 입어 냄새가 날 때쯤, 그 집 주인이 새로 산 속옷을 내어주며 치수까지 딱 맞게 하시는 식입니다.

물론 웃자고 드리는 말씀이지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예비하셨다는 뜻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먹을 것, 마실 것, 쓸 것을 다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권능과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사탄은 이미 패배했고, 우리 주 예수님은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우리가 권세를 얻은 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것도 대단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예비하심 덕분입니다. 그러니 담대하게 나아가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마지막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좋은 대접을 받은 것으로 기뻐하지 말며, 오직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얼마나 엄중한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하셨는데,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주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자기 의를 세우지 말며, 귀신을 불러들이지 말고, 육에 속한 어리석음으로 살지 말며, 자기주장과 논리를 내려놓고 자신을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괜찮습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며, 그 억울함조차 하나님이 우리가 선악을 분별하는지 시험하시는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우리가 이미 이 좋은 몫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귀신을 제어할 권능이 손에 있다면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오늘 자신을 이기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육신에 속한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육신을 위하는 것은 처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육신을 따르면 죽음에 이릅니다. 육신이 강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영으로 육의 행실을 죽이고 자신을 이겨야 합니다. 제가 예전에 "자신을 쫓아내라"는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결국 씨름해야 할 대상은 사망의 몸인 자기 자신입니다.

더 이상 육신이 자신을 망치게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자신의 기호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십시오. 우리의 육적 취향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더 이상 나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오직 주님을 위해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사 우리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시기를 원합니다. 크신 은혜로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께로 돌이키게 하옵소서.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다

이것이 기초입니다! 사탄은 이미 패배했습니다. 아십니까? 사탄은 주 예수님께 패배했습니다. 어떻게 패배했습니까? 주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무엇이라 기도하셨습니까?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시라 하시면 마시겠습니다. 내 뜻대로라면 마시기 싫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면 마시겠습니다. 이것이 승리입니다. 괴롭지 않으셨겠습니까? 괴로웠습니다. 아프지 않으셨겠습니까? 아팠습니다. 힘들지 않으셨겠습니까? 제자들의 연약한 모습을 보실 때도,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도 마음이 찢어지도록 힘드셨습니다.

채찍에 맞으실 때 뼈가 드러나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라고 순종하셨을 때 사탄은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승리가 어디서 옵니까?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치열한 순종에서 옵니다. 예수님의 육신도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영적 전쟁의 승리입니다. 이렇게 행할 때 귀신도 복종하고 육신도 굴복하여, 영이 주도권을 쥐고 육신이 지배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염려하고 집착하는 것들은 사소한 것들 아닙니까? 속옷 몇 벌의 문제입니까, 떡 몇 개와 물고기 몇 마리의 문제입니까? 육신을 완전히 쳐서 죽이십시오. 육신을 따라 살면 반드시 썩어질 것을 거두지만, 성령을 따라 살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주 예수님은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따르고 주님이 여신 길을 걸어간다면 우리 역시 하늘에 속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은혜를 위해 사탄을 멸하십시오. 주 예수님은 이미 승리의 길을 여셨고 우리에게 권능을 주셨습니다.

권능을 이미 너희에게 주었다

주 예수님께서 칠십 명의 제자들에게 주신 권능은 어디서 비롯된 것입니까? 바로 승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주 예수님의 승리로 얻으신 권능입니다. 우리는 그 승리를 힘입어 이미 권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악한 행실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육신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여러분의 육신을 가장 잘 챙겨줍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여러분의 생각에 사람의 뜻이 가득하다면 큰일입니다. 사탄은 당신의 육적 생각을 부추겨 스스로 옳다고 여기게 만들고, 은혜를 저버리고도 당당하며 온갖 핑계를 대며 책임을 전가하게 만듭니다. 주님은 뱀과 전갈을 밟을 권능을 이미 주셨습니다. 그 권능이 어디서 왔으며 왜 주셨습니까? 이 직분과 사명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실제로 경험해 본 칠십 명의 제자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강력하다니! 나도 반드시 승리하여 내 이름을 하늘에 기록하리라.' 그러므로 이 권능은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참으로 선하시기 때문에 거저 주신 것입니다. 하늘의 보도를 쥐어 주셨으니 영적 세계에서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영적 세계에서 원수의 목을 취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습니다. 모든 장애물을 뚫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명성이 널리 퍼질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치유와 축사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의 사명 신학은 단순히 치유 축사만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모든 성도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힘입어 뱀과 전갈을 밟고 포로 된 자와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며, 우리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것이 참된 승리입니다.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능력을 주셨다

마귀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아십니까? 거짓말에서 나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거짓말에 속았습니까? 성도 여러분, 더 이상 사서 고생하는 길을 걷지 마십시오. 마귀의 능력은 거짓말에 근거합니다. 두려움의 귀신은 사실 보잘것없지만, 거짓말을 하나 던지면 사람들은 쉽게 굴복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무엇이 두렵습니까? 여러분은 이미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을 어떻게 이기셨습니까? 사탄이 시험할 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이것이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하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그 말씀대로 행하며, 선악을 분별하며 괴로워하는 자기 생각에 빠지지 마십시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우리가 마귀의 계책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온유함으로 성도들을 권면했습니다. 구원받는 자들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요 망하는 자들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로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었습니다. 완곡하지만 매우 엄중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원수의 모든 능력을 이길 권능을 주셨음을 아십니까? 원수의 힘은 우리의 육신과 거짓말에 기생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축사뿐만 아니라 먹고 마시고 쓰는 일상의 모든 것을 예비하셨다면, 원수 마귀가 우리를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염려를 내려놓고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우리는 껍데기 같은 체면에 집착하다가 본질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이제 원수 마귀의 거짓말을 무너뜨려야 하며, 그 거짓말은 결코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결코 너희를 해칠 자가 없으리라

누가 여러분을 해치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린 양입니다. 이리 떼 가운데 들어간 어린 양이지만 아무도 여러분을 해칠 수 없습니다. 이리의 날카로운 이빨도, 양을 에워싸는 간계도 통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든 권세와 능력이 여러분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리가 보기에 연하고 맛있어 보여 덤벼들지라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이 막아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리는 '이상하다, 왜 저 양에게 다가갈 수가 없지?' 하며 튕겨 나갈 것입니다. 양도 신기해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방패에 부딪힌 것처럼 튕겨 나가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늑대의 이빨과 간계를 이기고 원수와 뱀과 전갈을 이길 권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늑대의 턱을 빠지게 하셔서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시는 일쯤은 식은죽먹기보다 쉽습니다. 아무것도 여러분을 해칠 수 없음을 믿으십니까? 믿으십시오. 결코 여러분을 해칠 것이 없습니다. 스스로를 보호하려 애쓰지 마십시오. 직장이든 어디서든 염려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십시오.

축사 사역을 열심히 하면 삶의 열매도 좋아집니다. 얼마 전 인플루언서 매니지먼트를 하는 한 자매님이 간증했습니다. 구역 식구를 맡아 매일 축사 기도를 해주었더니, 늘 불안정하고 문제를 일으키던 소속 인플루언서들이 놀라울 정도로 안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해칠 자가 없습니다. 영적 세계에서 승리하십시오. 블레셋 사람의 표피 이백 개를 베어 왕의 사위가 된 다윗처럼, 영적 전쟁에서 귀신을 결박하고 승리를 취하십시오.

결코 너희를 해칠 자가 없습니다! 자신을 지나치게 방어하려 하지 말고 어린 양으로 서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작은 것조차 지켜주지 못하신다면 어찌 하나님이시겠습니까? 두려움과 염려는 물러가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승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신학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신학이기에, 평생 담대하게 이 승리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그러나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목표는 여러분이 귀신 몇 마리 쫓아내고 기분 내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감을 드러내라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표는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록됩니까?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나는 나답게 살 거야, 특별한 나를 만들 거야"라는 생각은 지혜가 아닙니다.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길을 가실 때 한 사람이 주 예수님께 와서 말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셨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하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셨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가족과 작별하게 허락하옵소서" 하니,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셨습니다.

이것저것 재고 염려하며 주님을 위해 한 번도 온전히 살아보지 못한 삶에서 벗어나십시오. 인생에서 참으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승리입니다. 육신을 따르고 자기 의를 세우면 멸망에 이를 뿐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을 힘입어 스스로를 돌아보아야지, 남 탓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남을 원망하고 책임을 떠넘기다 보면 결국 그 모든 대가는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사람의 생명을 멸하려 함이 아니요 구원하려 함이며,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의 길을 걸으십시오. 내 뜻대로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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