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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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摩司书06章-以色列的毁灭
  • 1 国为列国之首,人最著名,且为以色列家所归向,在锡安和撒玛利亚山安逸无虑的,有祸了!
  • 2 你们要过到甲尼察看,从那里往大城哈马去,又下到非利士人的迦特,看那些国比你们的国还强吗?境界比你们的境界还宽吗?
  • 3 你们以为降祸的日子还远,坐在位上尽行强暴(或译:行强暴使审判临近)。
  • 4 你们躺卧在象牙床上,舒身在榻上,吃群中的羊羔,棚里的牛犊;
  • 5 弹琴鼓瑟唱消闲的歌曲,为自己制造乐器,如同大卫所造的;
  • 6 以大碗喝酒,用上等的油抹身,却不为约瑟的苦难担忧。
  • 7 所以这些人必在被掳的人中首先被掳;舒身的人荒宴之乐必消灭了。
  • 8 主耶和华万军之 神指着自己起誓说:“我憎恶雅各的荣华,厌弃他的宫殿;因此,我必将城和其中所有的都交付敌人。”
  • 9 那时,若在一房之内剩下十个人,也都必死。
  • 10 死人的伯叔,就是烧他尸首的,要将这尸首搬到房外,问房屋内间的人说:“你那里还有人没有?”他必说:“没有”;又说:“不要作声,因为我们不可提耶和华的名。”
  • 11 看哪,耶和华出令,大房就被攻破,小屋就被打裂。
  • 12 马岂能在崖石上奔跑?人岂能在那里用牛耕种呢?你们却使公平变为苦胆,使公义的果子变为茵陈。
  • 13 你们喜爱虚浮的事,自夸说:“我们不是凭自己的力量取了角吗?”
  • 14 耶和华、万军之 神说:“以色列家啊,我必兴起一国攻击你们;他们必欺压你们,从哈马口直到亚拉巴的河。”

《答疑解惑》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모스서》 6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아모스가 그 시대에 선포했던 말씀들을 사람들은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마치 오늘날 제가 여러분에게 이것은 길이 아니며 죽음의 길이라고 말해도, 어떤 사람들은 한사코 고집을 부리며 뉘우치지 않고 제 갈 길로 가기를 좋아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모스는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와 같은 사람들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 수 있지만,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하기란 너무나 어렵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이 세대도 《아모스서》에 나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이 사람들을 가로막고 있는지 몰라도, 선지자의 말에는 도무지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참으로 기괴한 일입니다.

《아모스서》 이번 장의 주제는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즉각 공격을 가하지 않으시고 오랜 세월을 두고 기다리셨는데, 이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한 왕을 일으키시고, 한 나라를 일으켜 하나님의 백성을 치실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를 읽어보면 앗수르가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켰고, 바벨론이 유다 왕국을 멸망시켰으며, 로마 제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주후 70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 후로도 이스라엘 땅 전체는 로마와 오스만 튀르크 등 수많은 제국에 의해 빈번히 점령당했습니다. 즉,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엄청난 고난을 겪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2천 년 넘게 지속되었습니다.

이 2천 년이 넘는 역사는 하나님이 바로 그러한 분이심을 증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왕을 일으키시고, 한 나라를 일으켜 자신의 백성을 치시는 분이십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이방인에게 핍박받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방 민족을 일으켜 치실 것이며, 그때가 되면 도무지 도망칠 길도 없고 맞서 싸울 힘도 없게 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마음에 두지 않은 채 제 길로만 치우쳐 행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끊임없이 애타게 여러분에게 권면해도, 돌아오는 것은 오히려 맞서 따지는 태도뿐이었습니다. 사실 저라고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양육받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거듭거듭 일러주어도 못 본 척하고 반응도 없을 뿐더러, 대단히 괘씸한 글들을 써내기도 합니다.

사람은 언제쯤 되어야 손을 떼고 멈추겠습니까? 언제까지 자고하다가 재앙이 닥치고 나서야 깨닫겠습니까? 재앙이 임하고 나면 이미 기회는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읽는 《아모스서》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저 통쾌하게 들린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전체 신앙 체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사람의 생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리석고 둔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는 아주 괜찮다고 여기니, 이것이야말로 철저한 파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한 나라를 일으켜 이스라엘 족속을 치실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 그 무엇도 재앙의 강림을 막을 수 없다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우두머리인 지도자들이여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을 따르는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는 갈레로 건너가 보고 거기에서 큰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라 너희가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영토가 너희 영토보다 넓으냐 (《아모스서》 6:1-2)

이 말씀은 그 어떤 것도 재앙을 막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비록 열국 중 으뜸가는 나라이고 매우 부유하며 사람들도 가장 저명하고, 세간에는 유대인의 똑똑함이 널리 알려져 있을지라도 말입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똑똑하지만, 그 똑똑함은 돈을 버는 데 쓰였습니다. 현대의 유대계 자본은 대단히 강력하며, 이스라엘 족속은 각 지파가 한마음으로 뭉쳐 단결력도 강합니다. 나라로 따지면 그보다 강한 나라가 없고, 영토로 따져도 그보다 넓은 곳이 없었습니다. 당시는 황량한 땅이 많았기에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재앙은 그대로 임하며, 그 무엇도 이를 막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믿는 길이 높은 위험이 따르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행해 왔는지 돌아보십시오.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기는 괜찮다고 여깁니다. 저는 자신감에 가득 찬 그리스도인들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아무리 말해 주어도 스스로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악을 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나누는 ‘그 무엇도 재앙의 임함을 막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2. 재앙의 날이 멀다고 생각하지 말라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재앙의 날이 곧 닥쳐올 것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그날이 멀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참으로 재앙이 닥치면 그것을 되돌릴 힘이 전혀 없습니다. 사람의 어리석음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하고도 하나님이 필요 없다며 돌아서고,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히 잊어버립니다. 제가 예전에 여러분에게 마음에 새기라고 했던 말이 있습니다. 천 가지 만 가지가 좋아도, 단 하나가 잘못되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자신이 아주 옳은 양 장담하지만, 재앙이 닥쳐올 때는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재앙의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아십시오. 여러분이 모든 것이 좋다고 느끼는 것은 안목이 짧아 미래의 형편이 어떠할지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미래에는 그 어떤 것도 지체되지 않으며 와야 할 것은 반드시 옵니다. 결코 겁을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포악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잔치가 끝나리라 (《아모스서》 6:3-7)

사람들은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안일하고 걱정 없는 삶을 살기를 좋아하며, 재앙은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어느 고속도로가 갑자기 무너져 내려, 달리던 차들이 잇따라 추락하는 통제 불능의 사고가 있었습니다. 재앙의 닥침은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하루 세 끼 밥 먹고 자고 일어나며, 등하교를 하거나 출퇴근을 하는 일상이 여러분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갑작스럽게 닥쳐오는 재앙이며, 그것이 임할 때는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정하심이며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때입니다. 여러분, 그들이 모두 죄가 더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망대가 무너져 많은 사람이 깔려 죽은 사건이 나오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들이 너희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고 하시며,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들은 마치 앞다투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은 모든 것이 좋아 보일지라도 내일은 알 수 없습니다. 새로 산 상아 침상에 눕고 편안한 요 위에 누워, 살결에 닿는 상아 침대의 매끄럽고 안락함을 즐기며, 양들을 다 잡아먹고 양육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곳에서 비파를 타며 노래하고 여흥을 즐기며, 다윗이 만든 것 같은 악기를 만들며 겉으로는 대단히 잘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술 마실 사람은 술을 마시고, 기름을 바를 사람은 기름을 바르면서, 재앙이 무엇인지 전혀 마음에 두지 않지만 재앙이 닥치면 그제야 알게 됩니다. 오늘날 아무도 자신에게 임할 재앙을 알지 못하지만, 재앙이 정말 닥쳐오면 인간은 그것을 되돌릴 힘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경외하는 마음을 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포악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아모스서》 6:3)

그곳은 안일함과 포학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 온갖 포학을 행했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서 포학을 행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행할 자격이 없었을 뿐입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보더라도, 진짜 재앙이 닥쳐올 때에야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절대로 자고하지 마시고, 반드시 경외하는 마음을 품고 우리 머릿속에 있는 쓰레기를 철저히 청소해야 합니다. 저에게 하나님을 열심히 사랑하겠다고 말한 사람이 너무나 많았지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사랑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 속에는 지극히 혼란스러운 것들이 가득 차 있어서 글을 써도 매우 혼란스러운데, 스스로는 글을 아주 잘 썼다고 여기며 당당하게 자기가 옳다고 주장합니다. 재앙이 닥쳐오면 자기가 쓴 것들이 아무 쓸모가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잔치가 끝나리라 (《아모스서》 6:7)

비록 제가 드리는 말씀이 듣기에는 거북할지라도,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여러분이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이스라엘 백성처럼 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한 왕을 일으켜 그들을 멸하려 하실 때에야 비로소 어리둥절해하며 하나님께 왜 이러시냐고 묻지 마십시오.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여러분 생각의 혼란을 짚어줄 때 정말 귀담아들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날마다 사람들 안의 어리석음을 제거해 주려 하는데, 결국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을 공동체에서 제거해 버리고 맙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사람은 분수를 알아야 하고, 자신이 사람에 불과함을 알아야 하며,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랑하는 것 중에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날마다 먹고 마시고 연락(宴樂)을 즐기며 포학을 행할 뿐입니다. 어떤 이는 자신은 포학을 행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저는 그저 탄식할 뿐입니다. 우리 사역자들 중 어떤 이들의 섬김을 보면 제 마음이 답답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반드시 조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모스의 말을 들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 여러분도 제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서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제가 어떤 사람을 바로잡아 주려 하면, 자기를 잘못 지적했다며 스스로 매우 옳다고 생각하니, 이런 식으로는 양육을 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3. 공평도 없고 공의도 없다

사실 사람에게는 공평도 없고 공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에게 공평이 없는 줄도 모르고, 공의가 없는 줄도 모릅니다.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서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며 (《아모스서》 6:12)

사람이 공의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 맺히는 열매는 쓴 쑥이 되었습니다. 쓴 쑥은 쓸개즙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쓴 것입니다. 말이 절벽 위를 달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고속도로에서 질주하는 것과 같아서 죽음을 향해 내달리는 짓입니다. 공의도 없고 공평도 없으니 이것이 바로 재앙을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에게 공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공평이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았으며, 다들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재앙이 닥치자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의아해했습니다. 그들의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이 넘치는 분이어야 한다며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땅에 공평과 공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아모스서》 6:6)

그들은 요셉의 환난에 대해서는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환난이 날마다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기이합니다. 즉 그 시대에 요셉이 야곱의 집에서 노예로 팔려갈 때 그의 형제들은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잘된 일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여겼습니다. 훗날 그들이 애굽으로 곡식을 사러 갔을 때 약간의 곤욕을 치르게 되었는데, 그것도 요셉이 꾸민 일이었지만, 그제야 비로소 당시에 요셉에게 그렇게 대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을 기억해 냈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팔아넘길 당시에는 마음에 가책 하나 없이 아주 당당했습니다. 사실 우리 안에도 죄책감이 없는데, 어찌 재앙이 임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행해 온 일들을 돌아보십시오. 모임에 참석한다고 해서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실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주 여호와가 당신을 두고 맹세하셨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에 가득한 것을 원수에게 넘기리라 하셨느니라 (《아모스서》 6:8)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시고 그의 궁궐들을 미워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겼고, 땅에는 포학이 가득했습니다. 이 이스라엘은 홍수가 닥쳤던 노아의 시대와 다를 바 없었고, 《사사기》에 나오는 이스라엘이나 소돔과 고모라와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하나님의 자손이며,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했습니다. 예수님 시대라고 해서 예수님께서 듣기 좋은 말씀만 하셨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들이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무런 재앙도 일어나지 않자 사람들은 다 거짓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훗날 재앙은 실제로 닥쳤고, 그 재앙은 무려 2천 년 넘게 지속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면서도 자고하여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말했지만, 진짜 재앙이 임하자 아무런 대책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요셉의 환난을 전혀 기억하지 않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도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대단히 잔인한 자들이었습니다.

너희는 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뿔들을 취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도다 (《아모스서》 6:13)

여기서 ‘뿔’은 권력을 의미합니다. 자기 힘으로 권력을 쥐고서 아주 대단하다고 여기며, 총리나 대통령이 되어 나라 전체를 다스리는 것을 대단하게 여깁니다. 아합 왕 역시 스스로를 괜찮게 여겼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능력 중심으로 삼는 자들은 반드시 재앙을 불러들입니다.

4. 모든 것을 능력 중심으로 삼는 사람들

이 땅에 포학이 가득한 이유는 온통 능력을 근본으로 삼는 자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그 뿔을 차지하지 못해 안타까워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매우 좋고 대단한 것으로 여기며, 우리가 보기에 수많은 사람이 능력 본위로 살아갑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대단해 보입니다. 능력이 없는 자는 능력이 있는 자를 부러워하는데, 실상 그 사람의 뼛속도 능력 본위로 차 있습니다. 재앙은 반드시 이처럼 능력을 근본으로 삼는 자들에게 임합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허물을 덮으시고, 우리를 저주와 질병에서 건져내 주셨지만, 우리는 제대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뼛속에는 여전히 능력을 최고로 여기는 생각이 남아 있어, 강자를 부러워하며 그 강자들의 논리대로 살아갑니다. 머리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무엇을 보든 지극히 혼란스러워하고, 목회자가 양육하는 것을 두고 양육으로 여기지 않고 자기를 가스라이팅(PUA)한다고 생각하니, 이것이 어찌 재앙을 부르지 않겠습니까? 때로는 하늘에서 재앙이 내려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랄 때가 있습니다.

5. 하나님께서 성읍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원수에게 넘기시리라

하나님께서는 한 나라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멸하겠다고 하셨고, 결국 실제로 멸망당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에는 단 지파, 아셀 지파, 르우벤 지파, 시므온 지파 같은 것들이 남아 있지 않고, 오직 유다와 베냐민 지파만 남아 오늘날의 이스라엘을 이루고 있습니다. 유대인들도 사실 그들과 마찬가지로 그리 선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들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읍의 모든 사람을 원수에게 넘기실 것입니다. 이 땅은 장차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나라가 침략해 오는 것을 반드시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주 여호와가 당신을 두고 맹세하셨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에 가득한 것을 원수에게 넘기리라 하셨느니라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라 죽은 사람의 친척 곧 그 시체를 불사를 자가 그 뼈를 집 밖으로 가져갈 때에 그 집 깊숙한 곳에 있는 자에게 묻기를 아직 더 있느냐 하면 대답하기를 없다 하리니 그가 또 말하기를 잠잠하라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못할 것이라 하리라 보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므로 타격을 받아 큰 집은 갈라지고 작은 집은 터지리라 (《아모스서》 6:8-11)

열 사람이 모두 죽었습니다. 방 안에 아직 사람이 있느냐고 외쳐 묻지만, 누가 대답하는지도 알 수 없이 다 죽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나라를 일으켜 그들을 치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의지하고 있는 것들이 과연 무엇인지 자세히 보십시오. 성전의 영광이라 할지라도 재앙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 무엇도 재앙을 막을 수 없으며, 오직 사람의 회개만이 재앙을 막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회개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어서, 얼마나 어리석어야 자기 힘으로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아무리 많은 은혜를 경험했다 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은혜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오직 회개해야만 재앙을 막을 수 있습니다.

재앙이 일어났을 때 그 문제가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귀신에게 붙잡혀 있으면서도 저에게 목회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치려 듭니다. 사람은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리석으면서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재앙입니다. 입으로 하는 말은 전혀 이치에 닿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는 대단한 논리를 펴고 있다고 착각하니 참으로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제가 사람들을 양육할 때 가장 싫어하는 것이 어리석음인데, 어리석은 사람이 너무나 많고 자고한 사람도 수두룩합니다. 제가 하는 말을 도무지 알아듣지 못합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행해 온 어리석은 일들을 한번 정리해 보라고 했더니, 정리해 내지도 못하면서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저지른 어리석은 짓을 전혀 모르고 있으니, 세상 끝 날이 되어야 번쩍 정신을 차리겠습니까? 지적을 해 주면 오히려 말대꾸를 하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남김없이 드러냅니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사람이 어리석지 않다면 어떻게 삶이 엉망진창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저의 섬김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재앙 속에서 한 걸음씩 걸어 나와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 사람은 한없이 교만해집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제 마음은 이미 벌집처럼 상처투성이가 되어 구멍이 몇 개 더 난다 한들 괜찮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을 양육하는 것은 대단히 두려운 일입니다. 어리석으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여 계속 어리석음의 길을 향해 내달리기 때문입니다. 누가 자기를 위하는지, 누가 자기를 해치고 속이려 하는지도 전혀 분간하지 못하니 이것이 바로 어리석음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과 입으로 내뱉는 말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단 한 마디라도 있습니까? 우리 가운데 사기를 당한 사람도 참 많은데, 사기당한 이야기는 입 밖에도 내지 못합니다. 말하면 너무나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쉽게 사기를 당하는 이유는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늘 그 몇 가지 어리석은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하지만, 한참을 미루고도 깨닫지 못하며, 여전히 자기는 똑똑하고 괜찮다면서 엉뚱한 이야기들을 잔뜩 끌어와 자기가 똑똑함을 증명하려 듭니다. 써 놓은 것을 보면 웃음거리밖에 안 되지만 말해 줄 수도 없습니다. 한마디만 하면 상처를 받을 것이고, 살짝 짚어주기만 해도 저와 맞서려 하니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지혜로워질 수 있지만, 자기가 어리석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영원히 지혜로워질 수 없습니다. 오늘 제가 드리는 말씀이 다소 무거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이지만,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겠다고 외치시는데도 ‘그럴 리가 없다’고 여길 만큼 어리석었습니다. 양들을 다 잡아먹으면서도 스스로는 다 괜찮다고 여겼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전히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지 못하고, 단점을 장점인 양 포장하여 제게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재앙을 막을 수 없습니다. 재앙은 지체함 없이 어리석은 자들에게 고스란히 임할 것입니다. 오늘 당장 그 길에서 돌아서십시오. 하나님으로 하여금 거듭거듭 재앙을 내리시도록 몰아붙이지 마십시오. 어떤 이는 자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할 만한 자격이나 힘이 없었기 때문일 뿐이며, 권한이 생기면 반드시 포학을 행할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하나님께서 반드시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실 것입니다. 우리 중에도 그릇된 논리를 진리로 철석같이 믿는 자들이 많은데,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가증스러운 일입니다. 제가 하나하나 지적해 깨뜨리려 하면, 그 사람이 떠나갈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저 어릴 때부터 자라오면서 행한 어리석은 일들을 정리해 보라는 간단한 요구 하나에도 결국 떠나버리고 맙니다.

제가 여러분의 문제를 지적할 때, 결코 가스라이팅을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본 것을 여러분에게 말해 주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여러분이 재앙을 조금이라도 덜 겪게 하려는 것입니다. 과거에 겪었던 재앙이 얼마나 많았는지 돌아보십시오. 과거에 겪은 재앙이 아직도 부족합니까? 재앙에서 겨우 빠져나오자마자 자기가 대단한 줄 착각하지만, 도대체 누가 여러분을 섬겨 주었습니까? 이 사람들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눈이 멀어 가고, 귀가 들리지 않고, 대소변도 제대로 못 보고, 잠도 못 자며 머릿속에서는 윙윙 소리가 납니다.

사람이 배우려는 마음, 배우는 자세만 갖춘다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들을 우리에게 알려주실 때, 우리는 마땅히 반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면, 옳은 것은 무엇이며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단 한 마디, 즉 바르게 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태도입니다. 옳게 행하는 법을 알고자 한다면 제가 성경 말씀을 들어 분명히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배움의 태도입니다. 사람은 저절로 지혜로워지지 않습니다. 지혜로워지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제가 어떤 이들이 하는 말이 ‘귀신의 소리’라고 지적하면, 그들은 코웃음을 치며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런 태도를 보여도 저는 지치지 않고 계속 설명해 줍니다.

우리는 모두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 안의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며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조금 더 어리석은가, 덜 어리석은가 하는 것뿐입니다. 조금 덜 어리석다고 해서 더 어리석은 자를 비웃을 수 없고, 더 어리석다고 해서 덜 어리석은 자를 비웃을 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목회자를 무조건 믿는다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저 역시 여러분에게 저를 믿으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는 금전 거래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진작부터 말씀드렸습니다. 굳이 있어야 한다면 고작해야 밥 한 끼 사주는 정도의 돈이어야 합니다. 자기 목회자를 너무 믿었다가 사기를 당했다는 둥 말하지만, 저는 결코 여러분의 목회자를 맹신하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은 때로는 사람 같고 때로는 귀신 같습니다. 우리 자신만 보더라도 마치 두 얼굴을 가진 것 같지 않습니까? 악한 기운이 올라올 때는 귀신 같고, 성령의 감동이 올 때는 천사 같습니다. 할렐루야를 외칠 때는 천사의 노랫소리 같지만, 그래 봐야 여전히 어리석은 사람일 뿐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가르쳐 드리고 싶은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바로잡지 못하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더 이상 억지로 붙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냥 작별 인사를 하고 하나님께 넘겨드려 하나님께서 다루시게 할 것입니다. 당신처럼 대단한 사람은 차라리 아모스 선지자가 와서 다루게 해야 합니다. 제가 몇 번이고 주의를 주었지만 저의 권면에 거의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매번 부딪히고 충돌하는데, 저는 정말 충돌하고 싶지 않으며 몹시 지칩니다. 어떤 분이 온라인에서 ‘옳은 모습’이란 어떤 것이냐고 묻는데, 옳은 것은 바로 요셉과 같은 모습입니다.

저는 남에게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을 애굽에 팔아넘긴 적도 없고, 남의 물건을 털끝만큼도 탐낸 적이 없는데, 왜 사람들은 저를 쓰레기처럼 발로 차버리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걸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수많은 오해가 존재합니다. 사람이 자고함에 빠져 도를 넘어서면, 자기를 위해 주는 사람을 도리어 자기를 해치려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육신은 참으로 완강합니다. 다들 이처럼 자고하니, 이를 처리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오늘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귀신이 깃들 수 있으며, 여러분의 목회자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어떤 분이 만약 제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그것도 빌려주지 말아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제 대답은 ‘저를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가 언제 귀신 들릴지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다. 저는 본래 남에게 돈을 빌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살 능력이 되면 사고, 안 되면 사지 않습니다. 먹을 능력이 되면 먹고, 안 되면 먹지 않습니다. 만약 어느 날 제가 여러분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면, 그것은 귀신이 한 짓인 줄 아시고 절대로 빌려주지 마십시오. 저도 자칫 방심하면 귀신에게 사로잡힐 때가 있으니, 우리는 모두 죄인일 뿐입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애타는 심정으로 형제자매들에게 간증하며 권면하고 있습니다. 모두 조심하여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십시오. 지혜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남을 탓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련함과 둔함을 탓하고, 자기가 무언가를 탐했던 것을 탓하십시오. 만약 이득을 탐하다가 사기를 당했다면 그것은 자업자득입니다. 자기가 미끼를 문 것이니 남을 탓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는 여전히 《성경》에서 아모스가 기록한 것과 똑같은 모습들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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