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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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2023-06-25 8,379 耶和华是我的牧者 神的怒气 神的慈爱 效法主耶稣 牧养神的群羊 属灵的儿女多 要得多国为业

《答疑解惑》

1. 서론

  1. 사람이 천지가 개벽할 만한 수많은 표적을 경험하고도 순식간에 잊어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이는 당시 광야에서 어리석게 굴던 이스라엘 백성과 같습니다.
  2.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과 '하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맺지만,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과 '노예주와 노예'의 관계를 맺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관계든 다 망쳐버립니다.
  3.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깨닫고 받는 것도 다릅니다. 만약 사람이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아니라면,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속은 것입니다.
  4. 더 이상 귀신을 따르지 말고, 더 이상 자기 뜻대로 하지 말며, 더 이상 미련한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2. 본문 말씀

산들은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애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54:10)

3. 기도

4. 본문 배경

5.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으라

  1. 목양은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매서운 말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매서운 말을 하기 위한 전제는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상대방이 당신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굳게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2. 목양을 배울 때는 근본까지 배워야 합니다. 그 근본은 사랑이지, 말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6.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말라

  1.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며 매서운 말씀을 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징계하듯,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저주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7. 주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목양하라

  1. 주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목양하는 사람은 곧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쏟아붓는 사람입니다.
  2.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품고 목양할 때, 여러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투지 않게 되며 여러분의 목양은 강력한 감화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8. 영적 자녀가 더욱 많아지다

  1. 자신의 그릇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자신의 능력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잠재력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2. 영적 자녀는 여러분의 기업이며 육신의 자녀를 두는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마음과 시야를 넓히기 시작하고, 각 방면의 전문적인 역량을 끊임없이 끌어올리십시오.

9. 여러 나라를 기업으로 얻다

  1. 여러 나라를 기업으로 얻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더 이상 메마른 상태가 아니라 풍성한 상태입니다.

10. 황폐한 성읍들에 사람이 살게 하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일으키셔서 황폐한 성읍들에 사람이 거주하게 하실 것인데,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11. 결론

  1.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받으시는 때요, 우리가 대가를 지불하는 때이며, 우리의 목양이 더욱 성숙해지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확장시키셔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핵심 단어

  1. 하나님의 인자하심
  2.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3. 자신을 확장함
  4. 영적 자녀
  5. 여러 나라를 기업으로 얻음
  6.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
  7. 황폐한 성읍들에 사람이 살게 됨

1.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여러분이 분명 듣기 좋아하실 만한 제목인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입니다. 얼마 전 제가 전했던 설교 제목들 때문에 어떤 분들은 큰 충격을 받고 겁을 먹어 교회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몇 분이 떠나셨지요. 왜 떠났을까요? 제가 설교하면서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죄를 갚으신다!"라고 하니 어떤 분들은 "아이고, 이런 말씀은 못 듣겠네"라고 합니다. 또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하니 "아이고, 이런 말을 어떻게 들어? 안 들을래, 듣고 나니 너무 괴로워"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저 류 목사 좀 봐, 내가 괴롭다고, 내 속에서 정죄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니까 나더러 마땅히 정죄받아야 한다고 하네. 아이고 세상에, 이건 도저히 못 듣겠다. 네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니, 세상에, 이 말씀은 더더욱 못 듣겠네"라고 합니다.

사실 여러분, 이 말씀들이 진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저주 가운데 사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저주에 관한 말씀을 듣는 것은 두려워하니 참으로 기괴한 일입니다. 지난 세월 목회를 하면서 어떤 분들은 교회를 떠나며 저를 찾아와 밥을 사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한 가지만 부탁드릴게요. 부디 저를 저주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아셨죠?" 아이고 세상에, 그런 짓은 우리가 하려고 해도 못 합니다. 제가 그런 사람도 아니지 않습니까? 당신의 사주팔자를 알아내서 인형을 만들어 놓고, 교회를 떠났다고 해서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그런 게 사람을 저주하는 것인데 우리는 그런 짓 안 합니다.

사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사람들은 다 잊어버립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들을 때 참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좋은 것은 듣지 못하고 유독 안 좋은 것만 골라 듣습니다. 사실 제가 다른 좋은 말씀도 얼마나 많이 전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를 향해 언약을 지키시며 인자를 베푸실 것이다!"라는 말씀도 전했습니다. 또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실 것이다!"라는 말씀도 전했습니다. 제가 전했습니까, 안 전했습니까?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저주든 이것이든 저것이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우리를 그분의 영생과 영광이 있는 길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단 한 번도 우리를 떠난 적이 없으며,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해치려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히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우리가 《출애굽기》를 공부했는데,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여러분도 그 이야기를 다 아시지요? 자, 제가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했습니다. 아이고, 노예살이가 얼마나 고달팠습니까. 이집트 감독관들이 채찍을 들고 있었습니다. 일 안 해? 일 안 하고 배겨? 찰싹! 내가 코로나 양성이라고 해도, 이집트 감독관이 양성이든 음성이든 상관이나 하겠습니까? 일해! 양이 될 시간도 없고, 돼지나 소가 될 시간도 없이 매일 일만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드리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재앙을 만나면 "하나님!" 하고 부르짖습니다.

어떤 형제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갑자기 사람들에게 붙잡혀 작은 방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남이 그 사람 돈을 뜯어내려는 건지, 그 사람이 남의 돈을 떼어먹은 건지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두들겨 맞았습니다. 작은 방에 갇혀 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그런데 참 놀랍게도 정말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창문으로 탈출했습니다. 그러고는 그 일이 지나가자마자 끝이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사람이 그렇습니다. 지나고 나면 하나님이 어디 있습니까? 다음에 또 작은 방에 갇힐 때나 찾겠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이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어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이끌어 내는 이 과정이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어서 시작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막상 건져내기 시작하자 상황이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말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보내셨다면 우리를 이렇게 구원하시지 않는다. 만약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라면 우리를 단숨에 쏜살같이 빠져나가게 해 주셨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쏜살같이 나가는 법이 있겠습니까? 만약 쏜살같이 나가 버렸다면 그 많은 재물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상황이 더 나빠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반응이라는 게 참 묘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고, 그들은 바로 왕이 보내주지 않자 하나님께서 권능의 팔로 자신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출애굽을 하기 위해 이처럼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이집트 군대가 주둔해 있는 상황에서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손에 온갖 재물을 쥐여주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게 어떤 광경이었겠습니까? "돈 줄 테니 제발 빨리 나가라!" 얼마나 많은 재물이었습니까? 금, 은, 보화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안겨주었는데, 이해가 되십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저 쏜살같이 나가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은 늘 이렇게 어긋나곤 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노예살이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돈을 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엄청난 재물을 보게 된 것입니다. 어제 이집트에서 나와 하루이틀 길을 걸어 홍해 가에 이르렀는데, 뒤에서 이집트 군대가 쫓아왔습니다. 사실 이집트 군대도 참 멍청합니다. 이전에도 하나님을 이기지 못했으면서, 지금이라고 하나님을 이길 수 있을 줄 알았을까요?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기서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우리를 광야에서 죽게 만드십니까? 왜 우리를 죽이려 하십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요? 저는 도무지 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제가 섬기는 사람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습니까? 하나님께서 또 홍해를 가르셔서 마른 땅을 걷듯 건너게 하셨습니다. 이집트 군대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불기둥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불기둥 하나가 아니라 불의 벽이었을 것입니다. 이쪽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있고 저쪽에는 이집트 군대가 있어서, 이집트 군대는 결코 건너올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광경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광경을 보지 못했어도 굳게 결단하고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데, 만약 눈으로 직접 보았다면 목숨 걸고 하나님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위대하신 하나님이신데, 이분을 따르지 않고 누구를 따르겠습니까? 그런데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홍해를 건너자마자 또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없다고 모세를 욕하며 "어쩌자는 거냐, 우리를 광야로 데리고 와서 여기서 죽게 하려는 거냐? 이집트에 매장지가 없어서 그러느냐?"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어리석은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실제 사역 현장에서 섬기다 보면 이와 똑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람의 기억력이란 참 묘해서 과거의 좋은 것은 단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마실 물이 없는 사소한 어려움 하나만 생기면 즉시 원망을 쏟아냅니다. 저는 종종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세월 동안 천지가 개벽할 만한 표적을 경험하고도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투신자살하려던 사람이 치유받고 회복되었는데 "하나님? 하나님께 내 삶을 쏟아붓는다고요? 그럼 내 인생은 어떻게 살라고요?"라고 합니다. 암이 나았는데 "헌금이요? 십일조를 내라고요?" 하길래 제가 "고작 200위안 아닌가요?"라고 하니 "200위안이라도 내면 제 생활은 어떡합니까?"라고 합니다. 유산 위기에 처했던 사람, 임신하지 못하던 사람, 목이 뻣뻣하게 굳었던 사람 등 수없이 많았습니다. 생리 불순, 생리통 등 온갖 질병에서 나았는데, 돌아서면 그들의 반응은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시절에는 사실 제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칼과 창도 뚫지 못하는 금강불괴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에게 상처를 주기는 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사역자 여러분도 이런 훈련을 하셔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저를 대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그들을 섬겨 마귀의 손에서 건져내 주었더니, 돌아서서는 저를 대적합니다. 또 참 괘씸한 어린 친구도 하나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저를 통해 온갖 은혜를 다 받았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해서 제가 도와주고 섬겨주며 다 뒷바라지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꼭 저를 대적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기괴하지 않습니까? 결국 어느 날 그 아이가 그 사람들과 놀러 갔다가 돌아와 고열에 시달리길래, 제가 "저 사람은 머리에 열이 나서 판단력이 마비되었구나"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착한 아이였습니다. 부모님 눈에도 착한 아이였고, 남의 부모님 눈에도 착한 아이였습니다. 왜일까요? 저는 제멋대로 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5남매가 부모님께 훈육을 받을 때 반응은 저마다 완전히 달랐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정말 사랑하셨고, 다른 형제들은 저를 질투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부모님 보시기에 정말 착한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녀는 훈계를 받고 나면 친자식처럼 굴고, 어떤 자녀는 훈계를 받고 나면 어디서 주워 온 자식처럼 굽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어릴 때 열이 나서 뇌를 다쳤나 봅니다. 어떤 사람은 입양되어 왔는데 양부모와 친부모 이상으로 잘 지내는가 하면, 생각이 삐뚤어진 사람은 친부모를 마치 계모 대하듯 대하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어서 "와, 이분은 나의 하늘 아버지이십니다"라고 고백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다"라고 하십니다. 그 관계가 너무나 좋으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즉시 이루어 주시고, 무엇을 구하든 하나님께서 대신 이루어 주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생각이 어리석은 사람은 하늘 아버지와의 관계를 맺으면서 스스로 종놈처럼 굽니다. 사실 하나님은 종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광야에서 죽어간 이스라엘 사람들은 노예 근성 속에 살았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며칠 전에도 참 흥미로운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한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의 나쁜 습관을 자주 훈계하고 고쳐주려 했습니다. 그렇게 타이르고 교정해 주는데, 아이가 갑자기 사라져 하루 동안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목사님, 아이와 연락이 끊겼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아이는 자기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데 뭘 걱정하십니까? 자기를 그렇게 끔찍이 아끼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어머니의 마음은 전혀 안중에 없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십니까? 어제 아침에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어떤 자매에게 문자를 보내 "저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잘 있다고 하면서 전화는 받지도 않으니,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그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겠습니까? 친엄마는 계모 취급하고, 생판 남을 친엄마처럼 대하니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어릴 때 그러던 사람은 커서도 별로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과 사역자들은 하나님과 같은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비록 우리에게 거듭 배신당하셨을지라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자식을 키워본 어머니는 다 압니다. 자식을 키워보지 않고는 부모의 은혜를 모른다고 하지요. 세상에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어머니가 어디 있겠습니까? 설령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홧김에 몇 마디 모진 말을 뱉었을 뿐입니다.

우리 중에도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난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어머니를 몹시 화나게 했습니다. 어머니가 그에게 100만 위안을 주었는데, 속이 상한 어머니가 "아이고, 이 은혜도 모르는 괘씸한 녀석아, 그 100만 위안 도로 내놔라"라고 했습니다. 사실 홧김에 한 말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사람이 저에게 와서 "우리 엄마가 나한테 100만 위안을 돌려달래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 말을 듣고 '이건 좀 이상한데, 사람이 참 생각이 모자라구나' 싶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과 같은 넓은 마음을 갖지 못하면 목양을 할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당신을 실망시키고, 거듭 마음을 아프게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품고 목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상처받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단련하지 않는다면 목양하기가 정말 어려울 것입니다. 왜일까요? 하나님과 같은 넓은 마음이 없이 어떻게 목양을 해보겠습니까? 《고린도전서》 13장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린도전서》 13:1)

우리 안에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기도는 그저 꽹과리를 치고 북을 치는 것에 불과하며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산을 옮길 만한 능력이 있다 해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만약 우리 하나님 안에 사랑이 없으셨다면, 세상 사람들은 진작에 멸망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결코 우리를 떠난 적이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만 우리가 자주 하나님을 발로 차버렸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사역을 맡기고 "왜 사역을 안 했습니까?"라고 물으면 "잊어버렸어요"라고 합니다. 사역하라는 것은 잊어버리고,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겨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도 그를 잊어버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노릇 하기도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고린도 교회의 사람들도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지혜롭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아비와 어미의 심정으로 고린도 교회를 목양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남이 한마디만 툭 던지면 홀라당 넘어가 그 사람을 따라갔고, 결국 바울과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참 대단합니다, 인간이란 늘 이렇습니다. 훗날 바울은 아비와 어미의 마음을 품고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를 썼습니다. 여러분은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의 언어와 글을 통해 수많은 목양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비와 어미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결국 고린도 교회는 돌이켜 다시 바울을 따르게 되었지만, 사람 속의 그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은 다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깨닫고 받는 것도 다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받는 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아니라면, 그 문제는 결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 인자하심을 결코 거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저주를 받고 환난을 당했다가도 돌이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그들에게 인자를 베푸십니다. 오늘 권면하건대, 여러분이 어떤 저주 속에 있든, 어떤 형편에 처해 있든 하나님의 풍성한 인자하심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으십시오.

절대로 스스로에게 속지 마십시오. 저주를 풀 길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진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시기 위함이었으며, 하나님의 사랑이 여기에서 확증되었습니다. 더 이상 속지 마십시오. 더 이상 자기 생각대로 행하지 말고, 더 이상 귀신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사람이 사람의 뜻대로 행하는 것은 사실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 사탄의 덫에 걸린 것입니다. 더 이상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지혜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생각이 삐뚤어져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생각이 삐뚤어져 있으면 어떤 관계든 다 망치고, 무슨 일이든 다 그르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늘 그런 안 좋은 것들만 남아 있습니다. 사람의 기억력은 참 묘합니다. 어떤 자매는 유독 따지기를 좋아합니다. 얼마 전 남편이 무언가를 가르쳐주다가 목소리를 조금 높였는데, 그것을 마음에 깊이 담아두고 잊지 못했습니다. 너무 깊이 담아두고 있길래 제가 조금 생각을 바꾸어주려고 했습니다. 손에는 남편이 사준 좋은 노트북을 쓰고 있으면서도, 입으로는 남편이 자기를 핀잔주었던 몇 마디 말만 곱씹고 있었습니다. 지혜롭지 못하게 구는데 핀잔을 안 줄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은 안 좋은 것만 기억합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몇 마디 말씀만 기억한다면 큰일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꼴을 보고 하나님께서 어찌 진노하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만약 저주의 말씀 몇 마디만 기억하고 우리를 떠나지 않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잊어버린다면 큰 문제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제대로 맺지 못하면서, 그저 엄한 말씀, 훈계의 말씀 몇 마디만 기억하고는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아, 내가 저주 가운데 살고 있구나, 어서 고쳐야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왜 이러실까요? 당신을 회개시키려는 것입니다. 죽어도 회개하지 않겠다면 죽음의 길로 달려가는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오늘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진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으며 우리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 교회에 거대한 돌파가 일어날 것입니다. 왜일까요? 교회가 우리 가운데 풍성한 인자하심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을 다시금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임신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자가 임신하고 출산한 자보다 자녀가 더 많을 것이며, 교회의 목양이 바로 이것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풍성한 인자하심을 품고 그 사랑을 흘려보낼 것입니다. 교회는 다시 한번 돌파하여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복 받는 길로 들어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즉,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으며,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일어나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고, 영적 자녀들을 양육할 수 있는 자들로 세워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번성하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이사야》 54:1-3)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해 정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다시금 격려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되어 그 사랑에 미치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약속이 우리 삶 가운데 온전히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기대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가야 할 길이며, 교회는 더욱 실제적인 목양을 시작해야 합니다. 영적인 지식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형제자매들을 훈련하여 각계각층에서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으며,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뜻이 바로 이러하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약속입니까.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으며,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으리라"라는 말씀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얼마 전 한 자매가 참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제가 "언제 돌아올 건가요?"라고 물으니 자매가 "목사님, 저 그냥은 안 돌아가요. 어떻게든 CIO(최고정보책임자) 자리는 하나 꿰차고 돌아가야죠"라고 했습니다. 제가 "참 좋습니다. C레벨 임원이 되는 것이 일반 직원보다 훨씬 낫지요. 오케이입니다!"라고 했습니다.

2. 본문 말씀

오늘의 본문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그저 입에 발린 말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온전히 우리의 삶에 밀착된 매우 실제적인 인자하심입니다.

산들은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애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54:10)

이 말씀은 참으로 귀합니다. 종이 성경을 보시는 분들은 펜으로 줄을 그으시고, 전자 성경을 보시는 분들은 노트에 적어 두십시오. 저는 주님을 믿은 첫날부터 바로 이러한 믿음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3. 기도

하나님, 번성하는 날이 우리 가운데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형제자매들을 다시금 격려하여 주셔서 모두가 목양하는 자가 되기를 갈망하게 하시고, 영적 자녀들을 목양할 수 있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일으키셔서 우리가 끊임없이 확장되게 하시고 처소의 휘장을 넓히게 하옵소서. 우리의 잠재력을 스스로 제한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능력이 우리의 능력이 되며, 주님의 안목이 우리의 안목이 되고, 주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도우셔서 줄을 길게 늘이고 말뚝을 견고히 박아 좌우로 끊임없이 뻗어나가게 하시고, 우리의 자손들이 열방을 기업으로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에 사람이 거주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주께서 우리를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며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실 그날이 임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니, 교회의 목양이 다시 한번 확장될지어다! 교회의 목양 수준이 다시 한번 도약할지어다! 하나님, 우리를 도우셔서 주님의 뜻 가운데 행하게 하시고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 주님이 함께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뜻이 본래 이러하오니, 우리 모두가 주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나타내며 주님의 신실한 제사장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지 않습니까? 아직 어디로 가야 할지 명확히 알지 못해 내적인 갈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마음속에 갈등이 일어나고, 너무나 좋은 이 말씀들을 읽고 나서 저에게 "목사님,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기도 합니다. 저도 여러분을 보고 여러분도 저를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하나님께로 돌이켜 묻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래도 하나님은 별말씀이 없으십니다. 왜일까요? 이런 일은 믿음으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다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교회의 지난 목양의 세월 동안 우리의 전체적인 목양 체계는 이미 세워졌지만,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으며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와는 아직 거리가 먼 것처럼 보였습니다.

때로는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몰라 마음이 불안하고 흔들릴 때도 있지만, 저는 조금이나마 그 길을 깨달아가며 여전히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이 무엇을 하는 직분인지 아십니까?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훈련시키는 자입니다. 제사장은 대단한 직분이며 하는 일도 아주 많았습니다. 사사 시대부터 사무엘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무엘은 참으로 위대한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먹고 마시고 자는 일상적인 삶을 돌보았을 뿐만 아니라 재판하고 판결하는 일까지 도맡아 했습니다. 제사장이 관할하는 일이 워낙 많았기에 사실상 왕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사야》를 아시지요? 이 책은 총 66장으로 매우 깁니다. 비록 간략하게 성경공부를 진행했지만, 결국 제 성경공부 자료는 상, 중, 하 세 권의 책으로 엮어졌는데, 그 책의 제목이 바로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였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입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관계를 묘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자체가 왕 같은 제사장의 나라이며,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땅의 문제들을 하나님께로 가져가고, 하나님의 능력을 이 땅으로 끌어오는 것, 이것이 바로 제사장입니다. 오늘날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 된 우리들, 곧 형제자매 여러분 모두가 그러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손으로는 하나님의 보좌를 붙들고 발은 이 땅을 딛고 서서,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이 땅으로 가져오고 땅의 문제를 하나님께로 가져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4. 본문 배경

이 장의 배경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이사야》 54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산들은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애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54:10)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사실 《이사야》 53장에서 이 인자하심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바로 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1-5)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이사야》 53:6-9)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이사야》 53:10-12)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아시겠습니까? 우리의 모든 죄악이 그분께 담당되었습니다. 오늘 제가 치유 기도를 인도할 때 많은 분들이 치유를 받는데, 사실 치유가 일어날 때마다 모든 질병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전가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산들은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애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54:10)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주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자 합니다. 죄악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자 합니다. 우리가 어찌할 바를 몰라 몸부림치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문제 해결의 근본임을 아십니다. 과거 구약 시대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구원을 이루시기 전에는 사람들이 얼마나 막막하게 살았으며, 걷다 보면 황폐한 처지에 이르곤 했습니까. 그러나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의 이루심과 구속하심으로 인해 이 저주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주가 예수 그리스도께 담당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그러므로 신약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여기에 확증된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고 우리의 죄악이 예수 그리스도께 전가되었다면, 우리는 왜 여전히 죄악 가운데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다시금 분발하여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입은 백성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한다면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번성하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이사야》 54:1-5)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알고 계십니까? 앞서 나온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것은 곧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성경 본문의 배경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반응하여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기 시작하는 것을 묘사합니다.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영적 자녀를 목양하는 것이 육신의 자녀를 키우는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반드시 장막터를 넓혀야 합니다. 영적 자녀가 너무나 많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야 합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전진하여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목양하는 교회이지만, 오늘날 우리의 목양 수준은 아직 비교적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기껏해야 병 고치고 귀신 쫓고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정도에 불과하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참된 목양과는 아직 큰 격차가 있습니다. 제가 왜 최근에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씀드렸겠습니까? 사실 우리는 다시 시작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시작하여 《이사야》 54장의 말씀이 우리 삶에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사야가 53장과 54장을 기록하며 감격하여 선포한 말씀입니다.

산들은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애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54:10)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번성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메마르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번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에 우리는 심히 번성하는 백성이 되어 여러 나라를 기업으로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남편이시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므로,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 핵심이며 영적 자녀를 얻는 것이 곧 교회의 목양입니다. 사실 《이사야》에는 이미 이 모든 사실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것이 본문의 배경입니다.

이전까지 이사야는 저주와 재앙을 끊임없이 선포했고, 온갖 불길한 일들을 경고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이 멸망할 것이라는 등 수많은 심판을 선포했는데,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53장과 54장에 이르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지극히 아름다운 구원을 예비하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진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게 하셨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다시금 힘을 얻고 그분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기를 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장황하게 설명하니 너무 훈계조로 들리십니까? 하지만 바울 서신을 보면 바울은 저보다 훨씬 더 훈계조로 썼습니다. 괜찮습니다. 예화가 없어도 괜찮고, 이야기가 있든 없든, 듣기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영원히 기억하십시오. 바닷물이 메워지고 큰 산이 옮겨지며 언덕이 무너질지라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변치 않으며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히 견고합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5.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으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는 것, 이것이 바로 기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는 이 말씀을 아직도 온전히 깨닫지 못하셨다면, 질병이 치유될 때마다 그 모든 병이 예수 그리스도께 담당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병이 그저 허공으로 날아갔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귀신이 쫓겨나서 더 이상 안 아프니 좋다고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이것이 바로 기초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몇 마디 호통을 치시고 훈계하실 때도 우리는 여전히 그 사랑을 굳게 믿을 수 있습니까? 제가 지난 세월 목양을 해오면서 늘 붙들었던 한 가지 신념이 있습니다. 제가 목양하는 영혼들에게 그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한 가지 분명한 관점을 심어주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도 내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안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됩니다. 제가 그들을 향해 호통을 치고 때로는 매서운 말을 하기도 합니다. "나와 함께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려면 똑바로 섬기고 쓸데없이 문제를 일으키지 마라. 떠나고 싶으면 당장 떠나되 갈 수 있는 한 멀리 가라." 그러면 그들은 "아이고 목사님, 또 그 말씀 하시네"라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비록 말은 매섭게 했을지라도 그들은 뼛속 깊이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들이 저를 따라오기만 한다면, 그들 안에 있는 귀신이 어떤 영이든 간에 제 앞에서는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귀신은 참으로 간악해서 사람을 속이고, 사람은 귀신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그것을 따르기를 좋아합니다. 귀신의 거짓말을 따르면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되고, 고통스러우면 쓸데없이 문제를 일으켜 사역자를 몹시 힘들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랑이 없으면 목양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 그저 매서운 말만 뱉어버린다면, 그것은 그저 모진 말에 불과하여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목양을 하거나 사역을 할 때 제가 쓴 매서운 말 몇 마디만 흉내 내고 제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배우지 못하여 완전히 사역을 그르치고 맙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 제가 이러저러하게 말했더니 그 사람이 저와 대판 싸웠습니다"라고 합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상대방은 당신 안에 자기를 끝까지 사랑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사랑하겠다"라는 말이 참 어색하고 낯간지럽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기초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엄하게 꾸짖는 방법만 배우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이것이 바로 목양입니다.

물론 상대방이 내 목양을 받기 원치 않는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은 짝사랑일 뿐이며 저 역시 억지로 짝사랑할 생각은 없습니다. 원치 않는다면 굳이 억지로 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다면 품고 다시 목양하면 됩니다. 비록 돌아온 사람들 중에 온전한 사람이 몇 안 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는 것, 그것이 근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실로 그들의 질고를 지고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셨다면, 목양하는 우리 역시 조금 더 짐을 져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더 짊어져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나누는 목적은 목양에 대해 전하고자 함이며, 목양은 바로 이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6.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진노는 잠깐에 불과합니다.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54:6-8)

사랑이 없다면 어디서 진노가 나오겠습니까? 길거리에 지나가는 생판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화를 내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으며, 옳은 일을 하든 그른 일을 하든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굳이 화를 낼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논리를 이해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너무나 상식 밖으로 행동하고 생각이 너무나 어리석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진노하신다면, 그것은 아직 소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때 두려워 떨기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진노하시면 '아, 내가 잘못 행했구나' 깨닫고 속히 바로잡으면 됩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실 때 즉시 회개하면 되는 것이며,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징계하듯 잠시뿐입니다. 우리가 어리석게 행하는 것을 보실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애가 타시겠습니까? 우리가 기를 쓰고 저주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실 때 하나님이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어떤 연인이 기찻길 위에 서서 연애를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기차가 달려오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유유자적 거닐고 있다면,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애가 타겠습니까, 안 타겠습니까? 부모가 아니라도 다급해서 기차에 치이지 않도록 당장 밀쳐낼 것입니다.

사람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사망의 길, 멸망의 길, 저주의 길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으니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그러므로 때로는 하나님께서 귀신을 보내어 우리를 한번 호되게 다루시는 것도 참으로 유익합니다! 우리는 다 귀신에게 쫓겨 하나님의 교회로 들어온 사람들 아닙니까? 재앙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어찌 하나님을 알았겠습니까? 얼마나 기고만장했겠습니까?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생각이 삐뚤어진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실 때 몹시 애가 타십니다. 미련한 자식을 지혜로운 자식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매서운 말씀을 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시기에,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저주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차마 두고 보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목양을 받을 때 목회자가 여러분에게 호통을 치더라도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7. 주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목양하라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어떻게 받아 누려야 할까요? 우리가 사랑의 통로가 되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통해 흘러갈 때, 우리는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목양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위해 대단한 기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께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제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늘 "목양은 목양받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목양하는 자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주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목양한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쏟아붓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쏟아부어 무엇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을 잘 목양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자녀들을 목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신 계획이 바로 이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품고 목양하러 나아갈 때, 비록 우리에게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을지라도 목숨을 바쳐 목양하는 그 중심의 열정은 강력한 감화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변명하지 않으며, 사람들의 모욕을 감당하고 그들의 재앙과 저주를 짊어지게 됩니다. "아이고, 내가 남의 저주를 짊어진다고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저주는 여러분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세대가 주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목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주 예수님의 사역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53:3-7)

이 말씀은 참으로 탁월합니다! 사도 바울이 본받았던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 고백했습니까? 내 육체의 환난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운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로새서》 1:24)

오늘 우리는 우리의 육체의 수고로 사도 바울이 겪었던 고난의 빈자리를 채워야 합니다. 저주로 인해 고통받는 것과 목양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 중에 어느 편이 더 낫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을 목양하기 위해 끊임없이 확장되는 고난이 복된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제가 왜 앞으로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으며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 날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까? 왜 앞으로 엄청난 돌파가 일어날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우리의 목양이 다시 한번 도약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머지않아 사역자들을 다시 불러 모아 목양 훈련을 진행할 것입니다. 이번 목양 훈련은 이전보다 훨씬 더 실제적일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목양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십시오! "저는 평범한 평신도인데요"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더 연약한 성도에게 물 한 잔을 건네는 것도 귀한 섬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앞으로 진행될 목양 훈련은 여러분을 하나님의 약속 안으로 이끌기 위해 훨씬 더 실제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8. 영적 자녀가 더욱 많아지다

목숨을 다해 목양한다면 그 뒤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들에게는 목양이 참으로 절실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양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는 것을 보십시오. 우리 교회에 온 형제자매들은 다른 교회에서 빼앗아 온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제대로 목양받지 못해 영적으로 굶주리고 메말라 있던 영혼들이 우리 가운데 와서 목양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목양을 받고 성도들이 많아지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장막터를 넓히고 처소의 휘장을 넓게 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다 거하겠습니까? 자리가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번성하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이사야》 54:2-3)

스스로를 제한하지 마십시오. 우리 가운데 온 지 반년이나 일 년, 혹은 몇 달밖에 되지 않은 새신자라 할지라도 우리는 과감하게 목양의 자리로 내보내어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는 온갖 가능성이 열려 있으니 자신의 그릇이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능력의 근원이시며 하나님의 지혜가 곧 우리의 지혜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원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자원하는 마음, 대가를 지불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기술적인 문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잠재력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수많은 영적 자녀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육신의 자녀는 빚을 받으러 온 존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시지요? 어르신들이 늘 자식은 빚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전생에 진 빚을 이번 생에 갚는 셈 치고 자식에게 다 쏟아붓습니다. 그러나 영적 자녀는 여러분의 영원한 기업입니다! 영적 자녀를 두는 것이 육신의 자녀를 두는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마음의 그릇을 넓히고 시야를 넓히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각 방면의 전문적인 역량을 끊임없이 발전시키십시오.

9. 여러 나라를 기업으로 얻다

여러 나라를 기업으로 얻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많은 영적 자녀를 얻는 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까? 맞습니다, 여러분은 더 많은 자녀를 얻을 것입니다. 여러 나라를 기업으로 얻는 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까?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결코 메마른 상태가 아니라 분명히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으며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 모습으로 여러 나라를 기업으로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 그렇지 않습니까? 영혼들을 얻으면 온 마음으로 목양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 나라를 기업으로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이미 여러 나라를 기업으로 얻을 만한 강력한 기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 가운데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아프리카, 유럽은 물론 아시아 전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나라를 기업으로 얻고 엄청난 기업들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으며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순전히 영적인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신명기》 28장 1절부터 14절까지를 읽어보십시오. 그곳에 단순히 영적인 것만 기록되어 있습니까? 모두가 지극히 실제적인 복이며, 열방을 기업으로 얻는 축복입니다.

10. 황폐한 성읍들에 사람이 살게 하다

황폐한 성읍들에 사람이 살게 되는 것,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부동산을 매입하는 원리를 아십니까? 헐값에 황폐한 도시의 땅을 샀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땅의 가치가 엄청나게 치솟을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황폐한 곳에 사람들의 물결을 이끌고 들어와 황폐한 성읍에 사람이 살게 만든다면,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기업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전에는 부채였던 것이 이제는 위대한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수년 전 하나님께서 저에게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이 세대 전체가 영적으로 극도로 황폐해진 참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제가 "하나님, 이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하나님께서 "이것이 지금의 영적 상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왜 이것을 제게 보여주십니까?"라고 여쭈었더니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일으켜 황폐한 성읍들에 사람이 살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훗날 《이사야》 54장을 펼쳤을 때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라는 구절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 바로 이 뜻이었구나!' 그 시절에는 제게 그런 큰 포부가 없었기에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고작 두세 사람 모여 멸망의 문턱에서 간신히 허덕이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우리가 손대는 모든 것은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우리에게 참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면, 황폐한 성읍이라 할지라도 다시금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로 가득 차면 그 기업의 가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돈은 결코 문제가 아니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이야말로 핵심입니다! 수많은 영적 자녀를 얻고, 여러 나라를 기업으로 받으며, 황폐한 성읍들에 사람이 살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입니까! 여기에 《신명기》 28장 1절부터 14절의 말씀대로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으며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 축복이 더해질 것입니다. 이 놀라운 그림을 바라보며 사모함으로 기대합시다!

11. 결론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 인자하심을 나타내시는 계절이며, 우리를 번성하게 하시는 계절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대가를 지불해야 할 때요, 우리의 목양이 더욱 번성하고 성숙해지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확장시키셔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받으시는 계절이며, 우리를 다시금 긍휼히 여기실 것입니다. 교회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걸어왔듯이, 앞으로의 여정 속에서 여러분은 더욱 번성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더욱 강력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가를 지불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흘려보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 육체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찬양 한 곡을 부르며 헌금을 준비하겠습니다. 헌금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시는 분은 헌금하지 마십시오. 찬양의 제목은 《내 삶을 깨뜨립니다(쏟아붓습니다)》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께 쏟아부어, 아무런 소망도 의미도 없던 우리의 삶이 지극히 눈부시게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시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앞에는 어떤 날들이 기다리고 있습니까? 올해 서른 살이라면 10년 뒤에는 마흔 살이 되고, 일흔 살이라면 10년 뒤에는 여든 살이 됩니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직 젊고 힘이 있을 때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를 기억하며 영적 자녀를 풍성히 얻읍시다.

많은 젊은 형제자매들이 일찍부터 저와 함께 목양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참으로 감사하고 다행스럽습니다. 지금 그들이 목양하는 숫자는 제가 그 나이 때 목양했던 숫자보다 훨씬 더 많으니, 그 삶이 얼마나 만족스럽겠습니까.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을 온전히 쏟아부읍시다. 만약 사역이나 목양 가운데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인내가 부족했다면, 요구할 줄만 알고 사랑을 나눌 줄 몰랐다면 오늘부터 변화됩시다. 한 번 가르쳐서 모르면 세 번을 가르치십시오. 중간에 가끔 화를 내며 징계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정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처럼 결코 떠나지 않는 인내를 품으십시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떠나지 않습니다!

헌금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지 못하신 분은 절대로 헌금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돈을 거두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번성하게 하는 곳이며, 사람을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으며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세우는 곳입니다. 앞으로 일 년 안에 수많은 형제자매들의 재정 상태가 거대하게 돌파되고 직장에서도 승진하게 되는 것을 똑똑히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여전히 하나님께 자신을 쏟아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할 만한 조건과 자격을 갖추게 될지라도,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기를 선택하십시오. 아멘!

저와 함께 손을 들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만민 중에서 저를 일으켜 세워 주옵소서. 저를 빚으사 주님의 마음에 합한 제사장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저는 주님의 제사장이 되어 영혼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고 주님의 축복 안으로 이끌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저를 일으키사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선한 목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인자하심을 나타내사 우리로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며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잉태치 못하며 출산치 못하던 우리가 잉태하고 출산한 자보다 더 많은 자녀를 얻게 하옵소서. 하나님, 저의 헌신과 예물을 열납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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