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推荐评论
命定神学 关闭
【성경공부】신명기 17장 -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라!

2024-09-25 3,250 申命记

相关经文

申命记17章-有关立王的指示
  • 1 “凡有残疾,或有什么恶病的牛羊,你都不可献给耶和华你的 神,因为这是耶和华你 神所憎恶的。
  • 2 “在你们中间,在耶和华你 神所赐你的诸城中,无论哪座城里,若有人,或男或女,行耶和华你 神眼中看为恶的事,违背了他的约,
  • 3 去侍奉敬拜别神,或拜日头,或拜月亮,或拜天象,是主不曾吩咐的;
  • 4 有人告诉你,你也听见了,就要细细地探听,果然是真,准有这可憎恶的事行在以色列中,
  • 5 你就要将行这恶事的男人或女人拉到城门外,用石头将他打死。
  • 6 要凭两三个人的口作见证将那当死的人治死;不可凭一个人的口作见证将他治死。
  • 7 见证人要先下手,然后众民也下手将他治死。这样,就把那恶从你们中间除掉。
  • 8 “你城中若起了争讼的事,或因流血,或因争竞,或因殴打,是你难断的案件,你就当起来,往耶和华你 神所选择的地方
  • 9 去见祭司利未人,并当时的审判官,求问他们,他们必将判语指示你。
  • 10 他们在耶和华所选择的地方指示你的判语,你必照着他们所指教你的一切话谨守遵行。
  • 11 要按他们所指教你的律法,照他们所断定的去行;他们所指示你的判语,你不可偏离左右。
  • 12 若有人擅敢不听从那侍立在耶和华你 神面前的祭司,或不听从审判官,那人就必治死;这样,便将那恶从以色列中除掉。
  • 13 众百姓都要听见害怕,不再擅敢行事。”
  • 14 “到了耶和华你 神所赐你的地,得了那地居住的时候,若说:‘我要立王治理我,像四围的国一样。’
  • 15 你总要立耶和华你 神所拣选的人为王。必从你弟兄中立一人;不可立你弟兄以外的人为王。
  • 16 只是王不可为自己加添马匹,也不可使百姓回埃及去,为要加添他的马匹,因耶和华曾吩咐你们说:‘不可再回那条路去。’
  • 17 他也不可为自己多立妃嫔,恐怕他的心偏邪;也不可为自己多积金银。
  • 18 他登了国位,就要将祭司利未人面前的这律法书,为自己抄录一本,
  • 19 存在他那里,要平生诵读,好学习敬畏耶和华他的 神,谨守遵行这律法书上的一切言语和这些律例,
  • 20 免得他向弟兄心高气傲,偏左偏右,离了这诫命。这样,他和他的子孙便可在以色列中,在国位上年长日久。”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신명기》 17장을 나누겠습니다. 이 장에는 몇 가지 제목 후보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라"이고, 두 번째는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라"입니다. 저는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라"는 주제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 것은 참으로 치명적인 일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는 결코 우연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닥치는 이런 일들은 사실 영적 세계에서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극도로 재수가 없고 불행한 것을 본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왜일까요?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가증히 여기실까요? 그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늘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미워하시고, 미워하신 후에는 저주하시며, 저주를 받은 후에는 그 사람이 매사에 일이 꼬이고 불행해집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제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밖에서 걸어 들어올 때 제 영안이 열렸습니다. 여러분, 이런 영적인 현상을 일부러 추구하지는 마십시오. 그냥 듣고 넘기시면 됩니다. 열리면 열린 것이고 안 열리면 안 열린 것이니 괜찮습니다. 제가 보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 뒤에 왜 이렇게 귀신들이 떼를 지어 있지?" 그 귀신들의 키가 마치 '도레미파솔라시도'처럼 하나씩 점점 작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맨 마지막 귀신은 얼마나 작은지 거의 쥐 한 마리만 했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그것들이 따라다녔고, 그가 방향을 틀면 귀신들도 따라서 방향을 틀었습니다.

제가 "하나님, 이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하나님께서 "이 사람은 지독하게 불행하고 일이 안 풀리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앉히고 몇 마디 안부를 나누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데려오신 이 친구분은 일할 때 늘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나요?"라고 완곡하게 물었습니다. 그분이 "어머나!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했습니다. 물론 제가 본 것을 다 말해줄 수는 없었지요.

그는 무엇을 하든 실패했습니다. 남들은 다 성공해서 큰돈을 버는 일도, 그가 똑같이 하면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사람은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결코 분수도 모르고 교만하게 굴지 마십시오.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1. 제사를 드릴 때 흠이나 악질이 있는 소나 양을 드리지 말라

사람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 왜 흠이 있고 악질이 있는 소나 양을 바칠까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바치지 않는 게 낫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사람들이 흠이나 악질이 있는 소나 양을 드리는 것을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에휴, 그냥 쟤는 무시하자. 내가 쟤한테 복을 안 주면 그만이지' 하셨을 텐데, 결국 그는 억지로 마지못해 역겨운 마음을 품고서 흠 있고 병든 소와 양을 바친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가 바친 것을 두고 '바쳤냐'고 묻는다면, 바치긴 바쳤습니다. 안 바쳤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제사 드린 방식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가인이 제사 드린 것이 이 사람보다 낫습니다. 가인은 적어도 흠 있고 병든 소나 양을 하나님께 바치지는 않았습니다. 가인은 태도가 옳지 않아서 대충 한 움큼 쥐어 하나님께 드렸을 뿐입니다. 대충 한 움큼 쥐어 드려도 저주를 받았는데, 만약 흠 있고 악질이 있는 소나 양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린다면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원래는 "상대하지 말자, 그냥 두자" 하셨다가도, 이런 제사 때문에 그를 저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녀석 봐라, 악질이 있고 흠 있는 소와 양을 나에게 바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도대체 이런 사람들의 뇌구조가 어찌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배짱도 두둑합니다. 광둥성 사람들 말로 하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이지요! 하나님 앞에서 어쩌면 그리도 겁이 없을까요? 제사를 안 드리면 안 드렸지,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헌금을 드리려거든 제발 팁을 주듯이 하지 마십시오. 그럴 바에는 안 드리는 게 낫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팁을 주듯" 하는 이런 태도를 가장 싫어합니다. 저는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지역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시절, 똑같이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 중에도 어떤 사람은 저주를 받고 어떤 사람은 복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제가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 결단을 내렸습니다. 성경공부 수업을 듣고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는데, 첫 수업에서 가르쳐준 것이 바로 헌금이었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갈등이 되었을까요, 안 되었을까요? 갈등이 안 될 수가 없지요! 다 피 같은 생돈인데 말입니다. 그때는 진짜 영생을 귀하게 여겨서 그랬을까요? 그것은 나중의 일입니다.

그때는 저주에서 벗어나고 재수 없는 불행한 날들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영생이 진짜 있기는 한지, 그저 이생의 삶을 좀 통달해서 거의 출가할 뻔한 심정이었지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바로 헌금을 온전히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서 헌금할 때 돈 아까워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자주 들었는데, 저는 한 가지 결정을 했습니다. '나는 반드시 아까워해야 한다.' 아까워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돈을 낼 때 속이 쓰리고 아깝다는 느낌이 들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팁을 준다"는 마음으로 헌금하는 것은, 저는 정말이지 그런 배짱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제 직장과 일터도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저와 같은 시기에 예수를 믿은 사람들 중에, 십일조를 내야 하는데 5%만 헌금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럼 남은 5%는 남겨서 뭐 하려고 그럽니까? 헌금을 하려거든 하나님의 요구대로 온전히 드려야지, 무게를 속이고 떼어먹어서는 안 됩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한 달에 2,200위안을 벌면서 200위안만 헌금하고 20위안을 자기가 챙겨 두었습니다. 그가 친구와 함께 우리 공동체에 와서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너희처럼 바보가 아니야. 너희는 10%를 다 내지만 난 9%만 내." 저는 너무나 기가 막혀서 "도대체 생각이 있는 사람인가?" 싶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은 우리 가운데서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우리 가운데서 받은 은혜는 맹인이 눈을 뜨고 다리 저는 자가 걷는 것 같은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그는 참으로 지독하게 불행하고 일이 안 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9%만 냅니까? 남은 1%를 아껴서 그 돈이 얼마나 된다고 그럽니까? 저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사람이 헌금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만약 헌금의 의미를 모른다면 절대로 헌금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헌금을 안 했으면 하나님이 저주를 덜 주셨을 텐데, 그렇게 헌금하고 나서 저주가 배나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흠이나 악질이 있는 소와 양으로 제사 드리지 말라는 말씀은 장난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도지사나 시장에게 선물을 보낼 때 감히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께는 감히 그렇게 행동합니까? 사람은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무 일 없다고 여긴다고 해서 진짜 아무 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이 헌금에 있어서 마음가짐을 너무나 가볍게 여깁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지금은 멀쩡해 보여도 그 불행하고 저주스러운 날이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장은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오늘 그렇게 행동했다고 내일 당장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모든 불행한 일은 씨가 뿌려지고 싹이 자라 열매를 맺은 것이라, 먹기 싫어도 결국 먹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매사에 일이 안 풀리고 망하는 사람을 볼 때 '이 사람에게 분명히 문제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품는 이유입니다.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이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헌금은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2.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며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모세가 《신명기》를 쓸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어느 성중에서든지 너희 가운데에 어떤 남자나 여자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 언약을 어기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것에게 절하며 내가 명령하지 아니한 일월성신에게 절한다 하자 혹이 그것을 네게 알리므로 네가 듣거든 자세히 확인해 볼지니 만일 그런 일과 이런 가증한 일이 이스라엘 중에 참으로 있다 하면 너는 그 악을 행한 남자나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고 그 남자나 여자를 돌로 쳐죽이되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 이런 자를 죽이기 위하여는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댈지니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신명기》 17:2-7)"

돌로 쳐 죽이는 것을 보면 누구나 두려워하여 이런 짓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일에 대해, 하나님은 극도로 분노하시고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헌금에 흠 있고 병든 소나 양을 드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좀 작은 일일 수 있어도,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목숨이 달린 치명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왜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불행을 겪을까요? 왜 교회의 목사 중에도 불행을 겪는 사람이 많을까요? 어떤 사람은 불행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어떤 사람은 드문드문 띄엄띄엄 찾아옵니다. 몰려오는 경우는 큰 재앙이고, 드문드문 오는 것은 자잘한 불행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우상을 함께 숭배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정말 치명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돈을 사랑해서는 안 되며, 맘몬을 숭배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돈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하며, 죽임을 당할 죄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 이런 일이 있을까요? 오늘날 교회는 이런 일을 치리하지 않고 사람을 밖으로 끌어내 돌로 쳐 죽이지 않지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엄중한 뜻입니다.

왜입니까? 믿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셔서 성읍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우상을 숭배하러 간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면 망하는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제가 보기엔 안 그렇던데요. 저 사람은 저렇게 돈을 사랑하는데 왜 아무 일도 없지요?"라고 말합니다. 때가 아직 되지 않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때가 이르면 돌이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목사들이나 교회의 지도자들을 사역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악질이나 몹쓸 병에 걸리면 참으로 고치기 어렵습니다. 왜 어려울까요? 몇 가지 큰 난관이 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불행이 닥치고, 그의 마음은 완고해집니다. 마음이 완고해지면, 당신이 그에게 "당신이 죄를 지어서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라고 말할 때 그는 "당신이나 저주받았지!"라며 도리어 저와 누가 더 저주받았는지 겨루려 듭니다. 마음에 우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고, 말을 하자니 눈물만 납니다. 사람들이 저주 속에 사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때로는 진실을 말해주지만, 진실을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완고한 것에 익숙해져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우상 숭배를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제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님, 차라리 절에 가서 절을 하는 게 더 효과가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좀 야박하게 들립니까? 좀 짓궂기는 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을 바에야 절에 가서 우상에게 더 절하면 불행한 날이 조금은 덜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믿으면서 동시에 우상을 섬긴다면,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과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결코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되며, 마음에 우상을 품어서도 안 됩니다. 이것은 죽어 마땅한 죄입니다. 오늘날 우리 세대에서도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죽이기로 작정하시면 기회를 주실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기회를 주지 않으십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저를 긍휼히 여기셔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의 믿음을 세워주고 회개하기를 바라며 사역하게 하십니다. 목사 노릇 하기도 참 힘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 남들은 병원에 가는 것도 다 '위장된 축복'이라고 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저는 절대로 그런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직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고쳐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가 받은 대답은, 사람들이 100% 완고하여 회개하려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나중에 저는 깨달았습니다. 알고 보니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기 위해 지음 받은 진노의 그릇이라는 사실을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믿음으로 사역합니다! 롯을 보셨습니까? 롯의 마음이 완고하지 않았습니까? 완고했습니다.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었는데도 아브라함에게 돌아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롯은 '내가 왜 아브라함에게 돌아가야 해? 얼마나 망신스러운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구부러진 것은 곧게 펼 수 없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님들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십시오. 문제가 생기고 불행이 닥치는 것이 보이면, 얼른 두려워하며 '아이구 깜짝이야, 이런 불행한 삶은 더 이상 살기 싫다' 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십시오!

얼마 전 교회를 떠난 지 오래된 어떤 사람이 이리저리 알아보고 저를 메신저 친구로 추가했습니다. 저와 몇 마디 문자를 나누다가, 음성 통화도 하기 전에 문자 몇 마디만 주고받고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계속 고통스러운 삶을 살며 완고하게 지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살지는 전적으로 당신의 선택입니다. 흠 있고 병든 소와 양으로 제사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십시오. 우상을 섬기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섬기고 싶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하지만 그 결과는 결코 피해갈 수 없습니다. 당신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유를 다스리시며 한 사람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이 사람을 죽이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분명히 "그 사람을 성문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죽이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은 "바울도 돌에 맞았잖아요"라고 말합니다. 똑같이 돌에 맞았어도, 어떤 사람은 죄 때문이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부분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저에게 "목사님, 바울도 돌에 맞았잖아요"라는 식의 말은 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바울이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그럼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어쩔 겁니까? 사람들은 참으로 이상하게도 생각의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습니다.

3.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는 제사장의 말을 듣지 아니하지 말라

"네 성중에서 서로 피를 흘렸거나 다투었거나 폭행하여 네가 판결하기 어려운 송사가 생기거든 너는 일어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으로 올라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 나아가서 물으라 그들이 판결하는 방법을 네게 가르치리니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의 뜻대로 네가 행하되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대로 삼가 다 행할 것이니 곧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율법의 뜻대로, 그들이 네게 지도하는 판결대로 행하고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을 어겨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 것이니라 사람이 만일 무법하게 행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는 제사장이나 재판장에게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 그리하면 온 백성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무법하게 행하지 아니하리라 (《신명기》 17:8-13)"

몰래 우상을 숭배하고, 은밀히 이런 악을 행하며, 몰래 병든 소와 양을 하나님께 바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재수 없고 불행한 일들이 터집니다. 어떤 불행입니까? 송사에 휘말리고 소송에 걸리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며, 불행한 일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어떻게 명령하십니까? 재판장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재판장의 말이 항상 옳을까요?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는 제사장이 엘리 제사장 같은 사람이라면 그 말이 항상 옳을까요? 상관없습니다. 당신은 이미 피 흘림이나 다툼이나 폭행 같은 불행한 일에 휘말렸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가 옳다고 여깁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의 이면에는 다 원인이 있습니다. 왜일까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일입니다. 경외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돈 몇 푼 아끼려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다가 소송 한 번 걸리면 전 재산의 절반이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독하게 운이 없어서, 자전거와 부딪쳐 망하거나, 전동 스쿠터를 타고 가다 사람을 치거나, 스쿠터에 치이거나, 헛디뎌 뼈가 부러지는 등 수많은 악재를 겪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일로 소송을 벌여 피 흘림, 다툼, 폭행에 휘말립니다. 그런데 재판장이 내린 판결이 억울하다고 느껴지면 분노하여 상소하고 또 상소합니다. 재수가 없지요? 더 기가 막힌 일도 있습니다. 길에 누가 쓰러져 있길래 도와주러 일으켜 세웠더니 도리어 뺑소니범으로 몰려 사기를 당합니다. 판사는 "네가 친 게 아니면 왜 도와줬냐?"라고 합니다. 참으로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이는 그 사람이 지독하게 저주 아래 있음을 나타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철저히 돌아보고, 이런 불행한 날들에 마침표를 찍고, 복 받는 날을 새롭게 시작하십시오. 재판장의 말을 듣고도 수용하지 않고 끝까지 고소하고 악착같이 물고 늘어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때로 제가 반어법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당신의 생각대로 말해주는 것뿐입니다. 제가 왜 굳이 반대로 말하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불행을 겪으면서도, 하나님께 속한 일에는 무게를 속이고 하나님과 이것저것 따지려 듭니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것도 아닙니다. 은혜를 다 받아놓고도 여전히 그러하며, 불행한 일을 겪고도 반성할 줄 모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만약 재판관이 불공정하게 판결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선악을 분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스리지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다스리실 수 있습니다. 탄식이 나오지 않습니까? 탄식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평안무사하게 경건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집에 자꾸 이런 흉측하고 해괴한 일들이 일어난다면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재앙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역할 때도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지만, 여러분은 여전히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사람들을 섬겨야 합니다. 사람을 보자마자 함부로 꼬리표를 붙여서는 안 됩니다. 꼬리표를 붙이는 순간 사역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 마음속에는 종종 '아이고, 참 불행하구나, 저주를 받았구나' 하는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들지만, 저의 사명은 사람에게 낙인을 찍는 것이 아니라 그를 저주 가운데서 건져내는 것입니다. 때로 진실을 말해주어야 할 때가 있더라도 낙인을 찍기 위함이 아니라 저주에서 끄집어내기 위함입니다. 힘들까요? 힘듭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사역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신명기》에 기록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게 하고, 우리 자신도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우리의 사역은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묶임에서 해방하는 것입니다. 온몸에 악령이 가득한 사람을 보면, 그가 한 짓인지 악령이 한 짓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가 악령과 너무나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것을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말씀합니다. 좋습니다! 저는 믿음으로 당신을 믿기로 선택합니다. 하지만 당신도 하나님을 경외하기로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이런 저주의 씨앗을 계속 뿌려서는 안 됩니다. 씨를 뿌리다 보면 결국 열매가 맺힙니다. 20년 전에 심은 것을 지금 거둔다면, 그 열매가 얼마나 거대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심은 것은 천 년 만에 열매를 맺는 독초 같아서, 그의 대에 이르러 자라났으니 그것을 어떻게 삼키겠습니까? 두고두고 씹어 삼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불행한 일을 겪을 때 재판관만 탓하지 마십시오. 판결이 불리하게 나왔다면 '하나님이 나를 치시는구나. 내가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일들을 수없이 저질러서 내 자신이 진멸받을 대상이 되었구나!'라고 깨달아야 합니다. 어서 회개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십시오.

우리 가운데 불행을 겪는 사람, 가난한 사람, 사기를 당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평생토록 귀신에게 짓밟히고 끌려다니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깊이 반성하라고 말합니다. 저는 당신을 도울 수 없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로 돌이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더 이상 하나님과 맞서 싸우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4.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왕으로 세우라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사람을 왕으로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반드시 사람을 왕으로 세울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왜일까요? 알려드리겠습니다. 제사를 잘못 드려 망하고, 다른 신을 섬겨 망했는데, 재판장과 하나님 앞의 제사장이 판결을 내리자 불복하면서 '이건 제도 문제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말씀드리지만, 어떤 제도 아래서도 복을 받는 사람이 있고, 어떤 제도 아래서도 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제도가 사람의 복과 저주를 결정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성경적 근거가 있습니다. 제도가 당신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을 결정하십니다. 바벨론 왕이 우상을 숭배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숭배했습니다. 그럼 묻겠습니다. 다니엘이 바벨론 왕의 수하에 있을 때 왕궁에는 온통 진멸할 우상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다니엘이 진멸당했습니까? 제도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총리가 되었고, 애굽 바로 왕의 집은 온통 우상투성이였습니다. 바로 왕이 "요셉, 이리 와서 점심이나 같이 먹으며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의논하자"고 했습니다. 요셉이 먹었습니까, 안 먹었습니까? 먹었습니다. 그 음식이 우상에게 바쳐진 것인지 아닌지 압니까? 모릅니다. 설령 바쳐진 것이라 해도 바로 왕 앞에서 안 먹을 재간이 있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아무 탈이 없었습니다. 온통 진멸할 것투성이였어도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괴로웠을까요? 괴롭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요셉 위에 머물러 계셨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부디 조심하십시오. 환경을 탓하지 말고, 제도를 탓하지 말며, 관리를 탓하지 마십시오. 관리가 부패했다고 해서 당신이 복 받는 데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설령 그 관리가 청렴결백하다 한들, 당신이 저주받는 것을 막아주지도 못합니다. 모든 것은 당신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영이 당신 안에 거하시면 당신은 어디에 있든 똑같이 형통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이야기들을 《성경》에 기록해 두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어디서 이것을 알 수 있었겠습니까? 사람들은 이것을 탓하고 저것을 탓하다가 결국 제도 탓을 합니다. "우리는 모세 같은 제도가 싫어. 우리는 이런저런 제도가 마음에 안 들어." 그래서 저는 제도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동안 많은 사람의 입에서 친구, 동창, 가족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것도 체제 문제, 저것도 체제 문제라고 하더군요. 제가 듣기에는 마치 반역이라도 일으킬 기세 같았습니다. 반역이라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체제가 그렇게 안 좋게 느껴집니까? 그것이 체제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저주이며 다 사람 자신의 문제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정부를 편들며 빈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 자신 안에서 먼저 철저하게 자신을 다루십시오. 당신이 제도를 바꿀 위치에 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실제로 그 일을 당신에게 맡긴다 한들 남들보다 더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스스로를 깊이 점검해야 합니다. 당신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까? 당신이 복을 받은 사람이라면 애굽 바로 왕의 궁정에 있어도 복을 받습니다. 믿으십니까? 당신이 복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방법이 없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왕을 세우고 안 세우고의 문제는 사람들이 제도에 대해 품은 의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다스리는 것을 싫어하고 이 제도가 나쁘다고 여겨서 '사람을 왕으로 세워야겠다. 왕이 세워지면 우리는 좋아질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아졌습니까? 안 좋아졌습니다. 그러고는 또 제도를 탓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반드시 제도를 탓할 것을 이미 다 꿰뚫어 보셨습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도 반드시 제도를 탓하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참으로 탄식이 나옵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울은 반역하는 바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도 반역을 꾀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는 반역의 전례가 없습니다. 위의 권세들은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당신이 복을 받은 사람이라면, 상황이 어찌 되었든 위의 상사가 당신을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유를 딱히 설명할 수 없어도 말입니다. 사람을 왕으로 세우려거든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요구 조건을 이미 여러 차례 낮춰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좋다, 너희가 사람을 왕으로 세우고 싶다면 세워라."

제가 여러분에게 "놀고 싶으면 실컷 놀아라, 여행 가고 싶으면 실컷 다녀라, 마작하고 싶으면 죽어라 해봐라" 하고 말씀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사람을 왕으로 세우기로 했을 때 하나님은 몇 가지 엄중한 요구 조건을 제시하셨습니다.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택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신명기》 17:15-16)"

5.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

말을 많이 두지 말라는 이 말씀을 저는 오랫동안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애굽에 가서 소를 사 오는 것은 됩니까? 됩니다. 나귀를 사 오는 것은 됩니까? 됩니다. 그런데 유독 애굽에 가서 말을 사는 것만은 안 된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어째서 이토록 영적인 문제일까요? 제가 말씀드리지만, 말은 대단히 흥미롭고 의미심장한 동물입니다.

《성경》에는 유독 '말'에 대해 특별히 언급합니다. 제가 왜 '말'이라는 글자를 깊이 연구했을까요? 저는 오랫동안 연구했는데, 많은 사람이 지금까지도 제 말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이 말을 더 얻으려고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을 그토록 싫어하셨을까요? 알고 보니 '말'이라는 존재는 대단히 영적인 사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말은 동물 중에서도 대단히 멋지고 당당해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흔히 "용마정신(龍馬精神)"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중화권 사람들은 말과 용에 대한 인식이 매우 독특합니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말을 어떻게 보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영어와 서양 문화를 잘 아시는 분들은 그들이 말에 대해 특별히 어떻게 논하는지 아십니까? 우리는 말에 대한 표현이 참 많습니다. 예컨대 자동차를 운전할 때 이 차가 몇 마력이냐고 묻습니다. 200마력, 심지어 1,000마력이라고 합니다. 왜 200나귀력이나 200소력이라고 하지 않을까요? 소의 힘도 대단한데 우리는 굳이 마력이라고 부릅니다. 매우 흥미롭지 않습니까?

한 번은 제가 귀신을 쫓아낼 때, 그 귀신이 자기를 '늙은 말'이라고 칭해서 어리둥절했던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런 이름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관련 기록들을 찾아내고 《서유기》에서도 말에 관한 몇 가지 묘사를 발견했습니다. 땅에서는 말이고 바다에서는 용이라 하여, 용과 말은 영적으로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이스라엘 사람들은 말을 더 얻으려고 애굽으로 가려 했을까요? 애굽의 말이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왕이 되었다면, 말의 힘이 센 것으로 승리하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승리하겠습니까? 만약 당신이 말의 힘으로 이기려 든다면, 당신이 하나님의 백성인데 과연 말을 의지해 이길 수 있겠습니까? 훗날 이 잘못을 범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애굽에서 수많은 말을 들여왔고, 결국 솔로몬 역시 저주 아래 살게 되었습니다.

솔로몬도 이 율법의 말씀을 분명히 읽었을 것입니다. 읽고 나서 그는 '설마 그렇기야 하겠어? 왜 안 된다는 거지? 에이, 다들 잘못 이해한 거야. 이런 뜻도 아니고 저런 뜻도 아니야, 말을 사는 건 문제없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람이란 늘 이렇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신약《성경》을 읽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보고는 '정말 그런 뜻일까? 이런 뜻이 아니라 저런 뜻이겠지'라고 여깁니다. 여러분도 이런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아주 자주 듣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서의 말씀에는 무엇을 더해서도 안 되고 빼서도 안 됩니다. 무언가를 더하면 하나님께서 저주를 더하실 것이요, 무언가를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에서 그의 몫을 제하여 버리실 것입니다. 얼마나 치명적입니까? 자신을 위해 말을 많이 얻으려고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사람들이 군대를 강하게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군사를 훈련시켜 싸워 이기는 것이 당신의 훈련 덕분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훈련을 시킬 수는 있습니다. 맡은 바 일을 성실히 감당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말이나 군대를 의지하지 마십시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도 뒤돌아서면 곧 잊어버리고, 현실의 문제를 보면 세상적인 방식만을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이 말씀을 몰랐을까요? 알았습니다. 다윗이 율법책을 필사하여 집에 두고 묵상했습니까? 그렇습니다. 다윗이 그 말씀을 다 읽으면서 이 구절을 보았을까요?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윗이 이스라엘 군사의 수를 계수하고, 군대가 얼마나 되는지 세어본 후 온 세상 앞에 '우리 이스라엘에 가장 강력한 군대가 있다!'라고 자랑했습니다. 그 결과 큰 화를 당해 하나님께서 군대 중 7만 명을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저주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헛된 힘을 쓰다가 저주에 빠지게 됩니다.

왜 애굽으로 말을 사러 가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람이 왜 애굽에 가서 말을 사려고 합니까? 말의 큰 힘을 의지해 승리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성경》의 다른 장에서도 병거나 말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일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를,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합니다.

6.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하나님은 말을 미워하십니까? 하나님은 말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말을 의지하는 것을 가증히 여기십니까? 가증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많은 아내를 두는 것을 가증히 여기십니까? 가증히 여기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왕으로 세우면 온 땅이 그의 통치 아래 들어가고 그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결정되므로, 고개를 들어 예쁜 여자를 보면 데려오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가 왕이라면 눈짓 한 번만 해도 신하들이 알아서 데려올 것이니 말 한마디 할 필요도 없습니다. 왕 주변에서 시중드는 신하나 내시들은 그런 일에 매우 눈치가 빠릅니다.

당시 여인들은 날마다 다윗에게 시집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많은 여인의 이상형이었습니까? 참으로 꿈속의 연인이었지요. 우리 중에도 다윗이 너무나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은 이 일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일까요? 아내를 많이 두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육체의 정욕을 방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성적인 문제는 언제나 육체에 속한 문제입니다. 《성경》은 결코 정욕을 방종하도록 권면하지 않고, 평생토록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정욕을 따라 맹렬히 질주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사람의 육체의 정욕은 고삐 풀린 야생마와 같아서, 고삐 풀린 들나귀도 당해내지 못할 정도입니다. 정욕이란 것은 사람을 심히 부패하게 만들며, 하나님은 이를 싫어하십니다.

얼마 전 누군가 '003 과정'을 공부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라헬이 아버지의 신상을 훔쳤다가 결국 난산으로 죽었습니다. 그 이전에 야곱의 딸이 강간을 당했고, 그 후 야곱은 집안의 진멸할 우상들을 다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왜 하나님은 야곱을 보호해 주지 못하셨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보호하지 못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진멸할 물건을 몹시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진멸할 물건을 소유하는 것을 싫어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손에 진멸할 물건을 쥐고 있으면,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 사람 자신이 진멸받을 대상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들이 얼마나 끔찍한지, 그것이 사람들이 복을 받는 것을 가로막습니다. 그러므로 평생토록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이 무엇을 가증히 여기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7. 평생토록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라

그러므로 왕을 세웠다면 그 왕을 위해 율법책을 필사하여 늘 곁에 두고 읽게 해야 합니다. 애굽으로 가서 말을 사서도 안 되고, 아내를 많이 두어서도 안 되며, 평생토록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많은 아내를 거느리고서 성경을 읽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을 펴자마자 졸리기 십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전날 밤늦게까지 그렇게 보냈으니 다음 날 무슨 정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겠습니까? 신하들과 회의를 하는 것조차 정신이 몽롱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할까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고 어떤 사람을 싫어하시는지 알기 위함이며, 하나님이 어떤 일을 좋아하시고 어떤 일을 가증히 여기시는지 알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워야 하며, 그래야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날이 장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일주일만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아도 금방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의 영향력은 사람의 골수를 찔러 쪼갤 정도로 파고듭니다.

집값이 오르면 너도나도 집을 사겠다고 몰려들고, 집값이 떨어지면 그제야 물렸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다들 그렇습니다. 가격이 오르면 정신이 멍해집니다. 왜일까요? 이 사람도 사고 저 사람도 사는 것을 보면 '왜 나는 안 샀지?' 싶어 조급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고 나면 그대로 물려버립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평생토록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재물로 사는 것도 아니요, 음식으로 사는 것도 아니며, 아내나 정욕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군대나 병마로 사는 것도 아니며, 소송을 잘해서 사는 것도 아닙니다. 우상을 숭배함으로 사는 것도 아니요, 돈 때문에 좋은 소나 양을 남겨둠으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대학 입시를 치르면 부모의 정신이 혼미해지고,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부모가 넋을 잃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좋은 미래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아이의 아름다운 미래는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사람이 평생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고,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세상을 올바르게 관찰한다면 당신은 복을 받을 것이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신명기》 17:19-20)"

이제부터 여러분이 이 땅에서 사는 날이 장구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여러분의 미래는 자녀에게 달려 있지 않고, 자녀의 미래도 여러분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미래는 남편에게 달려 있지 않고, 남편의 미래도 여러분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미래는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关闭
暂无评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