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어서 《열왕기상》 8장을 나누겠습니다. 주제는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입니다. 《열왕기상》 8장은 내용이 매우 길기 때문에 3부로 나누어 진행하며, 오늘은 22절부터 53절까지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교회를 처음 개척했을 때, 저는 다소 오만하고 교만하기 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현지 교회들을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아니, 저분들이 전하는 말씀은 나보다도 못하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이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제가 현지 교회들에서 가장 많이 목격한 것이 바로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였다는 점입니다.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분도 틀림없이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은 바로 솔로몬의 기도를 다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것을 매우 당연한 일로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제가 발견한 것은 솔로몬의 기도가 응답을 받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알았던 여호와 하나님
솔로몬은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솔로몬의 입장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온갖 고생을 다해 재료를 모으고 성전을 건축하면서 수많은 눈물과 땀, 수고를 쏟아부었는데,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 사람들은 대개 이렇게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의 이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참으로 쉽게 교만해지고 우쭐해집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왜 솔로몬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그의 지혜가 어느 정도였을까요?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채워진 후, 그는 우쭐해지기는커녕 매우 냉철하고 맑은 정신을 유지했습니다.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이는 하나님을 깊이 아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인간 스스로에 대해서도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분수를 모르고 하늘 높은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하늘 높은 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고백한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아는 하나님은 영광을 내리실 뿐만 아니라 재앙도 내리시는 분이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단 하나의 문제, 즉 저주를 받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 말하자면, 제가 교회를 개척할 당시 마음에 품었던 몇 가지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5명에서 갑자기 50명으로 늘어나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당연히 좋지요. 그러다 눈 깜짝할 사이에 500명이 되고, 5,000명으로 늘어납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제가 드리는 말씀은 제가 실제로 아는 사실들입니다. 실명은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며 설교하러 다닙니다. 그분의 설교를 한번 섭외하려면 2년 전부터 예약해야 할 정도로 힘들어집니다.
순식간에 교회가 2만 명으로 성장하면 그는 자기가 많은 일을 옳게 해냈다고 생각하며, 세계적인 유명 목사가 되고 싱가포르에서 손꼽히는 교회가 됩니다. 온갖 목회자 서밋의 강사로 서고, 이 세미나 저 세미나의 강사가 되며, 대기업들까지 그를 초청해 강연을 듣게 하니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솔로몬과 같지 않게 됩니다. 솔로몬이 구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성전에서 주께 빌며 간구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열왕기상 8:33-34)
사람은 쉽게 붕 뜨고 들뜨기 마련입니다. 사실 교회의 목회자뿐만 아니라 기업가들도 매우 쉽게 들뜹니다. 오늘 한 자매님이 제게 나누어 주기를, 어떤 사람의 고객들은 전부 억만장자들이었는데 10년 뒤에 다시 찾아가 보니 대다수가 사라지고 무너지고 파산하여 없어졌다고 합니다. 10년 전 그들은 개혁개방의 혜택을 누리면서 그것이 모두 자기 자신의 뛰어난 능력 덕분이라고 여겼습니다. 바람 길목에 서서 바람을 타서 뜬 것뿐인데, 자신이 돼지라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날 수 있는 독수리인 줄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바람이 잦아들고 교만으로 부풀어 오른 상태에서 근육은 붙지 않고 비곗살만 잔뜩 쪘으니 어떻게 날 수 있겠습니까? 독수리라도 온몸에 기름진 살만 가득하면 날아오르기 힘든 법인데, 결국 10년 뒤에는 자취를 감추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깊이 관찰해 보면, 사람들은 많은 순간 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깁니다. 자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자신의 공로로 돌리는 순간 망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실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솔로몬의 지혜를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에게 다른 지혜는 별로 없지만, 저더러 세계적인 유명 목사가 되라고 한다면 저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유명해지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한 동역자에게도 나누었습니다. 솔로몬의 이 장에 나오는 기도를 읽고 난 뒤, 저는 살아 숨 쉬는 한 교회 안에서 가장 비천한 사람들을 끊임없이 섬기겠다고 결단했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크고 지성전도 많은데, 언제 귀신 쫓을 시간이 있겠어?”라고 결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귀신을 쫓아내지 않으면 귀신이 여러분을 쫓아낼 것입니다. 솔로몬이 알았던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지키사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과 같으니이다”(열왕기상 8:23-24)
솔로몬이 자기가 잘했다고 여기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사실 솔로몬은 많은 일을 바르게 해냈습니다. 그 어떤 세부 사항인들 그가 결정하지 않은 것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 어떤 세부 사항인들 하나님의 손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까? 문제가 너무 어려운 것을 보고 무릎 꿇어 기도하며 하나님을 구하고 또 구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의 지혜를 열어 주셔서 그 거대한 난제들을 모두 해결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솔로몬이 해결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해결하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해결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행위를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 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서 나서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락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주는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열왕기상 8:25-26)
묻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러하신 하나님이시고 솔로몬의 기도가 이러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더욱 겸손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역자로서 교회를 이끄는 데는 엄청난 시험이 따릅니다. 5만 명 규모 교회의 1년 헌금은 수천억 원에 달합니다. 수천억 원의 재산을 관리하는 교회의 목사가 얼마나 큰 시험에 직면하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성공한 사업가와 같아지며,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어떤 목사는 과거에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내게 미안하다고(say sorry)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사과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것은 파멸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우리가 아는 여호와 하나님은 눈에 티끌 하나 용납하지 않으시는 공의로운 분이시며, 결코 얼렁뚱땅 넘어갈 수 없습니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이 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옳다고 여기시는 것만이 통합니다. 스스로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죄인이라고 보시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이 억울하다고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억울해할 이유가 없다고 보시면 끝입니다. 그 억울함은 질병을 불러오고 귀신을 끌어들일 뿐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지극히 거룩하신 분을 아는 것이 명철이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저는 참으로 마음 깊이 탄식하게 됩니다. 주님을 수년 동안 믿었으면서도 여전히 옛 자아 그대로이지 않습니까? 입만 열면 자기 생각, 자기 논리만 늘어놓지 않습니까? 그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몇 구절이나 됩니까? 소그룹이나 교구에서 나눔을 할 때는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문제를 만나면 곧바로 무너지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여전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모른다고 하신다면 얼마나 심각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온 마음을 다해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솔로몬의 인식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오늘 주의 종이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열왕기상 8:27-30)
이 구절은 우리 정신을 번쩍 들게 합니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다 담지 못하는데, 우리가 작은 교회 건물 하나 세웠다고 해서 하나님이 오셔서 거하시겠습니까?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솔로몬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의 뜻대로 지은 성전도 이러할진대, 하나님이 어찌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거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성전 건물을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지 마십시오. 건물을 하나님보다 더 크게 여기는 것은 머릿속에 세상적 논리가 가득 찬 것이며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이 파괴된 후 헤롯 왕이 40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재건한 것이었지만,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셨습니까? 거하지 않으셨습니다. 헤롯 왕이 왜 건축했습니까? 자신의 정치적 도구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어진 것이었습니까? 그러나 그 성전이 무너진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파괴된 것이었습니다. 누가 무너뜨렸습니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무너뜨렸습니다. 누가 그들을 데려왔습니까? 하나님이 데려오셨습니다. 훗날 헤롯이 지은 성전은 누가 파괴했습니까? 로마 제국의 군대가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진정으로 다시 겸손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시겠습니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우리가 지은 건물이겠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가져야 하며 교만해질 자격이 없습니다. 저 역시 교만해질 자격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제게 “목사님, 어떻게 그렇게 지혜로우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하나님 앞에 굴복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솔로몬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가 초대형 교회가 될지 어떨지는 저도 알 수 없으며 부럽지도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런 교회들은 사교 모임의 장으로 변질되곤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린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성전에 대한 솔로몬의 인식은 이러했습니다.
왜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간구를 덧붙였을까요? 오늘 우리가 겪는 고난을 보면, 우리 중에 요셉 같은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애굽으로 팔려 갔던 요셉과 같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애굽에 팔려 가지 않고도 선악을 분별하며 남을 판단하는데, 애굽에 팔려 갔다면 칼과 창을 들고 복수하려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은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웃 간의 분쟁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이웃에게 범죄함으로 맹세시킴을 받고 그가 와서 이 성전에 있는 주의 제단 앞에서 맹세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행하시되 주의 종들을 심판하사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돌리시고 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사 그의 의로운 바대로 갚으시옵소서”(열왕기상 8:31-32)
이웃 간의 분쟁이 일어나면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주장합니다. 다들 자신이 옳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성전에 와서 맹세합니다. 그런데 이 맹세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십계명에 거짓 맹세에 관한 계명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맹세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맹세하고 나면 그 저주가 얼마나 깊은지 3~4대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세상에서 조금 이득을 보기 위해 함부로 맹세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성전에 와서 맹세하며 이득을 취하려 합니다. 그러나 부당한 이득을 취하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십니다. 성경에는 본래 우리가 겪지 않아도 될 고난들이 많이 나오는데, 남을 비판하고 정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비판한 그대로 갚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여러분이 여러분의 기준대로 남을 비판하며 이득을 보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바로 그 기준으로 여러분을 심판하시면 얼마나 큰 낭패를 보겠습니까? 참으로 엄청난 화를 당하게 됩니다.
오늘날 세상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끔찍하고 불행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납니다. 그런 낭패가 어디서 오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불행한 일을 해결하는 길은 단 한 마디에 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솔직히 말해 보십시오. 정말로 사랑했습니까? 어떤 사람은 “목사님, 저는 하나님을 정말 사랑합니다. 제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고 평생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즉시 물러섭니다. 알고 보면 그저 입에 발린 소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입만 번지르르한 주전자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주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분쟁에 휘말릴 일이 있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성경》에 어떤 집의 소가 사람을 받아 죽게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소에게도 눈이 있고 귀신에게도 눈이 있으며 하나님께도 눈이 있지만, 사람에게만 눈이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런 불행한 일이 하필 그 사람에게 닥치고 소에 받히게 되었겠습니까?
불운과 재앙이 끊이지 않는 사람들은 볼 것도 없이 돈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랑이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사소한 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하면, 우리가 남의 흠을 잡겠습니까? 시비를 가리고 분쟁을 일으키겠습니까? 남의 소가 우리를 받아 죽이겠습니까? 오토바이나 차로 남을 치거나 남에게 치이는 사고가 나겠습니까? 많은 일들이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맹세하고 이득을 보았으니 끝났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대적 앞에 패함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성전에서 주께 빌며 간구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열왕기상 8:33-34)
싸움에서 패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생각과 마음이 더럽기 때문입니다. 생각 속에 불결한 것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질병이 많은 것도 생각이 더럽기 때문입니다. 제 말에 승복하지 못하겠다면 저와 다투지 마시고 하나님과 씨름하십시오. 인정하기 싫다면 하나님과 끝까지 겨루어 보십시오. 패배한다는 것은 대단히 치명적인 일입니다. 직장에서 패배하든 사업에서 패배하든 그것은 모두 대적에게 패하는 것입니다.
한 자매는 다른 사람이 프로젝트를 따내고 자기는 따내지 못하자 몹시 화를 냈습니다. 자기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다운 말입니까? 결국 극심하게 분노하더니 우울증이 도지려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머릿속에 프로젝트만 있고 하나님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목사님, 저더러 어쩌란 말입니까? 수요일 성경공부, 금요일 성경공부에 참석하고 주일 설교까지 들으며 이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데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분의 설교 참석을 간절히 바란 줄 아십니까?
우리 교회는 온라인 교회라 오프라인처럼 의자 천 개를 놓았는데 십여 명만 듬성듬성 앉아 민망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온라인 교회이므로 체면을 차릴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때때로 ‘우리가 참으로 이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지 않다면 고난을 더 겪어도 상관없습니다. 우울증에서 간신히 건져내 주었더니 왜 다시 그 수렁으로 기어 들어가려 합니까? 세상이 그렇게 사랑할 만합니까? 돈이 그렇게 좋습니까? 이생의 삶이 그렇게 대단하고 의미가 있습니까? 지나고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만약 오프라인 교회를 세운다 해도 사람이 다 떠나고 저 혼자만 남는다 할지라도 저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할 것입니다.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타협하는 것은 구차하게 연명하는 것이며, 교회를 엉터리로 세우는 일이기에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어떤 분은 “누가 교회에 들어오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온라인에서는 계정을 삭제하면 그만입니다.
또 어떤 분은 “오프라인 교회에서 굳이 들어오겠다는 사람을 어떻게 막습니까?”라고 합니다. 물론 막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정의하는 진정한 교회는 ‘섬기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그저 섬김만 받는 사람들은 엄밀히 말해 교회의 핵심 지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섬기는 자들이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은혜를 입고 영광을 맛보는 것은 얼마든지 괜찮고 개의치 않습니다. 심지어 우리 교회는 헌금을 드리는 것조차 자격이 필요합니다. 자격도 없는 사람의 헌금을 받아서 무엇 하겠습니까?
하늘이 닫히고 비가 내리지 않음
“만일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께 벌을 받을 때에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그들의 죄에서 떠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이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시오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열왕기상 8:35-36)
그리스도인이 가난하고 하는 일마다 되지 않는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머릿속이 더럽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드는 것들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핑계를 대지 마십시오. 더 이상 어떤 변명도 늘어놓지 마십시오. 죽도록 일하는데 왜 열매가 없습니까? 제가 여러분이 돈을 사랑하는지 증명할 수도 없고 증명하고 싶지도 않지만, 삶으로 드러나는 상태가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남들은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데 내가 손을 대면 되지 않고 하늘이 닫혀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원인이 무엇입니까? 주의 백성이 주께 범죄하여 주께서 벌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다시 경고합니다. 질병이 재발했다면 변명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몇 년 동안은 아무 일도 없었고 10년 동안 괜찮았는데 왜 다시 아픈 겁니까? 왜 우울증이 다시 찾아오고 등의 근육이 왜 다시 당기는 겁니까? 예전에는 목사님이 기도해 주시면 다 나았는데, 기도하지 않으면 왜 뿌리가 뽑히지 않습니까? 왜 위장이 다시 불편하고 눈이 다시 흐려집니까?”라고 말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징벌하지 않으실 것이라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단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기에 지구 하나를 다스리는 데는 0.0001%의 능력으로도 충분하십니다. 은하계와 그 너머의 우주까지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단일 코어 CPU 수준에 불과한 인간의 뇌로 측량하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만유를 주관하시며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늘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구하십시오. “하나님, 주께로 돌이키기를 원하오니 돌아갈 길을 가르쳐 주옵소서.” 결코 하나님과 씨름하거나 대적하지 마십시오. 제게 자신이 옳다는 것을 백번 증명하고 제가 인정해 준들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저는 항복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물러서지 않으시며 사람을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며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예수를 안 믿겠다”고 한들, 믿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재앙과 질병의 일들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막론하고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그리하시면 그들이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항상 주를 경외하리이다”(열왕기상 8:37-40)
오늘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결코 틀리지 않으시며 귀신도 틀리지 않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착각하고 우리 자신만이 실수를 범합니다. “목사님, 그럼 목사님이 아픈 것은 어떻게 설명합니까?”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저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제가 성인이라도 되는 줄 아십니까?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조차 스스로를 의롭다 자랑하지 않으셨는데, 육신을 입고 있는 한 결코 우리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저는 기준이 아니며 죄인의 표본일 뿐입니다. 저 자신을 다스리려 힘쓰지만 때로는 제어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제 성질이 얼마나 급하고 나쁜지 모릅니다. 이것은 저의 큰 단점입니다. 어떤 이들은 “목사님, 똑똑한 사람일수록 성격이 급하답니다”라며 치켜세우지만, 저는 그것이 지혜가 아니라 어리석음임을 압니다. 일을 그르치는 것을 보면 욱하는 마음에 소리를 지르게 되지만, 이내 “하나님, 들으시고 사하여 주옵소서. 긍휼을 베푸사 성령으로 육신의 악한 행실을 죽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기근, 전염병, 시드는 재앙, 깜부기, 메뚜기 같은 재앙과 질병이 닥칠 때, 개인이든 온 백성이든 마음에 죄와 재앙을 깨닫고 성전을 향해 손을 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수많은 환자들이 온전한 섬김과 치유를 받지 못한 채 고통당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은 교회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을 매우 진지하게 읽어왔습니다. 교회에 발을 들이기 전에도 성경책 몇 권을 닳아 떨어질 정도로 읽었습니다. 중국어 성경은 책장이 떨어져 나가고 표지가 뜯어질 정도로 읽었고, 영어 성경도 한 권을 닳도록 읽었습니다. 그것을 읽으며 뼈저리게 느낀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교회의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교회에서 고치지 못하던 병을 이곳에 와서 고침받았다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 증인이지 않습니까?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이 성전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의 본질을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는 거룩하고 하나 되며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여 싸워 승리하는 정예 용사들의 교회이어야 합니다. 이 길을 함께 걷기 싫다면 억지로 붙잡지 않습니다.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느냐”라고 하셔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교회를 세우는 것이며, 예수님의 몸 된 교회 안에 쓰레기를 남겨두어 하나님께 범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향해 기도한다는 것, 여러분이 이곳에 온 이유는 교회가 처음부터 이러한 비전과 사명을 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건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코 우리의 공로로 돌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독교 신앙 안의 수많은 의문들을 풀어냈습니다. 목회자라 할지라도 경험했던 의문들을 가져오면 명쾌하게 설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 겪어온 길이자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사역은 은혜다’라는 진리는 수많은 이들의 혼란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사역은 결코 인간의 대단한 공로가 아닙니다.
재앙이 닥쳤을 때 조심하고 스스로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저 역시 굳이 죄인이라고 말해주고 싶지 않습니다. 얼마 전 뇌출혈을 겪은 분이 있었는데, 다행히 만성 출혈이라 서서히 진행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솔직하게 진실을 말해주기가 두려웠습니다. 말하면 화를 내며 돌아설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죄를 깨닫는다면 하나님을 섬기듯 정성껏 섬기겠지만, 스스로 옳다고 여긴다면 저는 발을 빼고 피할 것입니다. 차라리 다른 큰 스승을 찾아가십시오. 저는 작은 스승조차 되지 못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마음에 죄를 깨닫고 성전을 향해 손을 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그들이 주의 크신 이름과 능한 손과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시오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열왕기상 8:41-43)
솔로몬은 대단합니다. 그는 성전을 단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처소, 즉 하나님의 이름이 머무는 곳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이 먼 곳에서 와서 기도할 때를 간구합니다. 주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 처음 주님을 믿고 우리 가운데 와서 기도하면 응답이 매우 빠릅니다. 우리 가운데서 주님을 믿게 된 분들이 계시다면 증언해 주셔도 좋습니다. 우리 가운데 와서 기도하면 응답이 유난히 빠릅니다. 이미 믿었지만 다른 교회에서 상처 입고 와서 회개하며 기도할 때도 응답이 매우 강력합니다.
이방인에게는 특별한 은혜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저 ‘이곳에 오면 역사가 일어난다’는 소문을 듣고 와서 기도하면 응답을 받습니다. 제가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 교회에서는 ‘초신자 때는 기도가 다 잘 응답된다’는 식의 이상한 논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허니문 기간’이라 부르며, 시간이 지나면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도의 효험만 바라고 하나님의 뜻은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이었던 우리도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펴신 팔의 구원을 듣고 와서 기도할 때 들으심을 얻었습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경외’입니다.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가장 결핍된 것이 바로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신앙생활을 대충 적당히 할 수 있겠습니까?
주의 백성이 싸우러 나갈 때
“주의 백성이 그들의 적국과 더불어 싸우고자 하여 주께서 보내신 길로 나갈 때에 그들이 주께서 택하신 성읍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이 있는 쪽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시옵소서”(열왕기상 8:44-45)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싸우러 나갈 때 패배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귀신을 쫓아낼 때 강력한 역사가 일어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 기초가 무엇입니까? 기초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적국의 땅으로 사로잡혀 감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적국에게 넘기시매 적국이 그들을 사로잡아 원근을 막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그들이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반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 곧 주께서 택하신 성읍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시오며 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그들을 사로잡아 간 자 앞에서 그들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열왕기상 8:46-50)
하나님의 자리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조금만 은혜를 베푸시면 인간은 교만해져서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조금만 징계하시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건드려도 버티지 못하고 치셔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참으로 난처하실 것입니다. 때리지 않으시면 회개할 줄 모르고, 때리시면 그 재앙을 견뎌낼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왜 이토록 어리석은 길을 고집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굳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대적의 땅에 포로로 끌려가 노예가 되게 만드셔야만 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로 끌려갔고, 유다 백성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 있을 때 자기만족에 빠져 상태가 아주 좋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 착각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서부 영화를 보면 손이 말꼬리에 묶인 채 끌려가며 발에서 피가 나도 걸어야만 하는 비참한 장면이 나옵니다. 기차나 고속열차, 비행기를 타고 가는 줄 아십니까? 나귀나 마차도 없이 끌려가는 처참한 고통입니다.
왜 굳이 그렇게 비참한 길로 굴러떨어지려 합니까? 하나님의 마음은 찢어지시지만, 공의의 뜻대로 집행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포로 된 땅에 가서도 여전히 완고하여 돌이키지 않고 “우리가 범죄하여 반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라고 고백하지 않으면서, ‘내가 이렇게 선한데 왜 이런 대우를 받는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했는데 왜 이러시는가?’라고 원망한다면 그것은 자기 생각일 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속히 “우리가 죄를 지었고 패역하였으며 악을 행하였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법을 기억하십시오. 이 고백 속에 크신 은혜가 있습니다. 그럴 때 포로로 잡혀간 땅에서도 불쌍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수십 년 전 살충제 광고에 나왔던 노래가 생각납니다. “우리는 해충, 우리는 해충~” 하는 중독성 있는 노래였는데, 사실 우리 인간이 해충과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회개는 은혜입니다. 눈이 어두워지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회개하지 않는 완고함입니다. 거듭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대적의 손에 넘기십니다. 그때 “우리가 죄를 지었고 악을 행하였습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눈을 다시 밝혀 주시는 것은 지극히 작은 일에 불과합니다.
오늘 건강이 무너지고 정신력이 쇠약해졌다면 회개하십시오. 과거 우리는 신경 쓰지 말아야 할 것들에 너무 집착하며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그들은 주께서 쇠 풀무 같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주의 소유가 됨이니이다 원하건대 주는 눈을 여시사 주의 종의 간구함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간구함을 보시고 주께 부르짖는 대로 들으시옵소서 주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주의 종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심 같이 주께서 그들을 세상 만민 가운데에서 구별하사 주의 기업으로 삼으셨나이다”(열왕기상 8:51-53)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우리의 체면이나 자존심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고난을 덜 겪는 것이 똑똑한 것이며, 징계를 덜 받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늘 자신이 옳다고 고집부리지 마십시오.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면 몸의 근육과 신경이 긴장하고 굳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허리로 갈지, 골반으로 갈지, 무릎이나 손가락으로 갈지 알 수 없습니다. 자기주장만 늘어놓다가 결국 귀신을 불러들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부드럽게 하십시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지만, 우리가 완고하여 듣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에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제 권면을 듣고 지혜로운 자가 되어 고난을 줄이십시오. 자기 논리를 줄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선포하십시오. 그러면 수많은 재앙과 고통을 피할 수 있습니다. 오늘 다시 당부합니다. 최근 많은 이들의 질병이 재발하려 하고 있습니다. 기도 중에 받은 감동인데, 은혜 속에 살면서도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인해 질병이 연이어 돌아오고 있습니다.
질병이 점점 심해진다면 제 말을 듣고 속히 돌이키십시오. 저는 형제자매들이 기도의 응답을 받고 치유되며 고난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시간, 죄를 지어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시간을 아껴서 평생토록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주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스스로 깨끗하고 괜찮다고 여기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놓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좋지 못한 것들을 끄집어내어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거듭 범죄하여 포로로 끌려갔을 때도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데려와 성전을 재건하게 하셨고, 또다시 범죄해도 끊임없이 은혜와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저에게는 그런 인내심이 없기에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시므로, 언제 돌이켜도 늦지 않습니다. 오늘 결단하여 불필요한 고난을 끝내십시오. 그 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징계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