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大家好,我觉着《撒母耳记上》二十五章写得好,最重要是我的分享比较好。我解释的多好啊,把亚比该的儿子都给挖出来了,一般人读不到我这份上。你如果能听得进去,你就要朝着大卫的这种品德去塑造自己,使自己成为一个情商很高的人。有很多人,虽然他们不是基督徒,但是他们身上有很多的品德,值得我们去学习和效法。别一提什么人,马上就戴着有色眼镜去看,这样不好。我不管这些人是中国的、美国的、还是哪一国的,只要他们身上有好东西让咱们学,咱们就应该学。我不觉着这需要看是什么政治背景,人家真的就做了这些事。
我一直有一个洗厕所的逻辑。有人跟我分享,我们的江总书记还真的洗过厕所。洗厕所这个事很厉害,一下子就把人面对洗厕所这件事的反应,给区分出来了。从一个领导岗位上被分配去洗厕所,这件事其实不是什么荣耀的事,但是确实对人是一个很好的训练。你洗厕所洗得怎么样,绝对有一定的借鉴。厕所洗不好,屁股都擦不净,你怎么做王啊?能理解吗?所以大家要知道,很多人值得我们学习。我就觉得基督徒真的很需要学习。
Q1:老师,如果考试考砸了,还有机会补考吗?
在耶稣基督里,不但有补考,神还常常帮着你补考。我们的神不是希望我们灭亡,而是希望我们得胜。神会给你很多机会,但是千万不能考验神的耐性。别把神的耐性当做理所当然的。清楚了吗?千万不要以为我没考好,考砸了,一辈子就全完了。没有这回事!好好地悔改,神总能为你开辟一条道路。如果我们明知故犯太多了,可能会有用完神恩典的时候。所以每一次我们都要有下次就没有机会的紧迫感。要有一颗敬畏的心,要有害怕的感觉,认为如果再没有机会就麻烦了,那这次咱就别明知故犯了。没有敬畏的心其实是一个很坏的习惯。
我给大家再补充一点。一开头就讲撒母耳死了,最后扫罗将他的女儿米甲,就是大卫的老婆给了迦琳人拉亿的儿子帕提为妻。开头和结尾好像和我讲的没有太大关系。那我为什么没讲呢?因为我没读明白。我就在这里做一个小小的补充。
撒母耳死了,以色列众人聚集,为他哀哭,将他葬在拉玛,他自己的坟墓里。大卫起身下到巴兰的旷野。(《撒母耳记上》25:1)
扫罗已将他的女儿米甲,就是大卫的妻,给了迦琳人拉亿的儿子帕提为妻。(《撒母耳记上》25:44)
撒母耳的死记载在《撒母耳记上》的第25章里,在这之前,大卫可能还有那么一点奢望,希望撒母耳能在他旁边帮助他,但是直到撒母耳死的那天都没有跟大卫在一起过。就在这个时候,大卫再次面临考验。你想想看,帮助你的人已经死了,你想找他了解或者咨询一下都很难。
到了结尾,扫罗将他的女儿米甲,就是大卫的老婆给了拉亿的儿子帕提为妻,那也是很刺激的,大卫的绿帽子是戴得妥妥的。但是,人家大卫没当回事。为啥?没把自己当盘菜。如果把自己当盘菜,这绿帽子戴了以后是很辛苦的。其实,米甲很爱大卫的,一般人能受得了吗?现在还有人说:要想过得去,头上戴点绿,这肚量得多大啊。
Q2:老师,大卫看中拿八的妻子亚比该有高尚的品德,仁义、大度、聪明,这样理解对吗?
不是。实际上是亚比该拦阻了大卫犯罪。也就是说,亚比该在大卫身上有恩。亚比该的老公死了,大卫觉得亚比该是一个宝贝,就把宝贝收在家里。那个年代,一个寡妇还是很不容易的。不管是大卫给亚比该恩典,还是亚比该是个宝贝,我想这两样都应该在大卫的考量当中。
Q3:老师,我六岁的儿子和小朋友一起玩的时候,小朋友有时候会动手,我的孩子没有动手的习惯,总是向我告状谁谁谁对他动手。遇到这种情况的话,我该怎么教导孩子?
教导孩子不要受伤,能躲就躲,躲不起就别再和他玩了。咱自己回家学习,做正经事都行。
Q4:老师,有什么样的方法能把强烈的自尊心干掉?
如果你认为强烈的自尊心是一个好东西,你就会留着;如果你认为它能败坏你,你就会把它丢掉。人不会干自己认为吃亏的事。
Q5:老师,亚比该怎么不想让她儿子出现在耶稣家谱上呢?像他玛一样?
亚比该也想,但是她有一个最重要的素质就是信靠神。神给她什么,她都接受,神没有给她的,她也没有拼命地去抢。她没想抢王位。其实,从某种程度上说,可能亚比该还真的比不上拔示巴。神拣选乌利亚的妻子拔示巴和所罗门,其中有一些原因不是你和我所能够理解的。但是,他玛的事绝对说得清楚。
Q6:老师,亚比该的见识了不得,她的眼光我们怎么学?扫罗之前杀了祭司,就因为这祭司帮助过大卫。要这么看的话,帮不帮大卫是个挺难的决策。
的确是这么回事。如果拿八和亚比该帮了大卫,给大卫一点东西,真的被扫罗知道了,他们的确有杀身之祸。所以说,亚比该的见识和胆量还是比一般人厉害的。
Q7:老师,在生活中怎么操练自己成为亚比该那样有见识的女人?
人有见识没见识,根基在于信心。这个信心不是自信,而是信靠神。凡是对神有信心的人,都会有见识;对神没有信心的人,有见识可能也是个属世界的见识。
Q8:老师,亚比该嫁拿八为妻,这是她的命?啥人有啥命,那亚比该选择改变命运就不是命的事了吧?
其实,这都不是她安排的。一开始嫁拿八为妻,没有人知道发生了什么事。可能是拿八把她抢来的也说不定。但是,对神有信心的女人通常克夫。如果你问我:什么叫做克夫相?对神有信心就是克夫相。如果这个女人的命定比男人大,她就克夫。然后,神就会恩待这个女人好过那个老公。比如犹大他们家的他玛,这个人对神老有信心了,所以犹大的大儿子、二儿子都被她克死了,这种人厉害。比如说《圣经》里面,约瑟的信心超越了他整个家族,所以成为了他家族的拯救。信心大的,在家族里面就为大。
Q9:老师:米甲跟帕提有了感情,又被大卫接走。米甲又嘲笑大卫,米甲是不是政治工具?
那就不知道了。其实帕提对米甲有感情,但米甲还是喜欢大卫。虽然米甲喜欢大卫,但她不太喜欢大卫没把自己当盘菜,她喜欢自己的老公是一个把自己当盘菜的人。米甲是从哪传承的呢?就是从扫罗那里传承的。扫罗王就觉着自己是盘菜,所以米甲也觉着自己是盘菜,她觉着自己的老公应该有把自己当盘菜的样子。所以就是这么个逻辑,谈不上什么政治工具,这是一个人的见识问题。
Q10:老师,《圣经》上的婚姻是没有道德感的吗?
不知道什么叫道德感。可能有一些人想表达一夫一妻才是道德,一夫多妻就不道德,是这样的吧?不管怎么样,这不是我们讨论的范围。
Q11:老师,妻子对神的信心比丈夫对神的信心大,就是克夫吗?
不知道。比如像亚比该,她老公拿八死了。那怎么就死了呢?也许跟亚比该没关系。克夫这是我说的,其实是不是那么回事还真不一定,这是我稍微总结出这么一个模式。对神有信心总是好事。神一定会为你安排非常美好的未来。
Q12:老师,家里的弟兄姐妹抢家产,我都让给他们,我不要了。但我这么做却没有换回一个好的结果,他们还是在算计我的财产,难道我也要选择不在乎吗?我自己的也要给别人吗?
这些事别问我,你自己做决定。我做的决定你做不了。你也别照着我做的,你认为怎么做妥当就怎么做。
하나, 사람의 품성은 시험을 받아야 한다
- 모든 시험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사람이 왕이 되려면 사람의 품성은 시험을 거쳐야 합니다.
- 사람의 일생에서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지 않은 일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을 마주할 때 사람은 반드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어리석게 행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 모욕에 대한 반응
- 사람의 감정이 안정되어 있는지는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느냐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왕이 되도록 훈련하시는 것은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도록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도록 훈련하셨습니다. 모욕을 당했을 때 감정이 바로 올라온다면 자신을 너무 대단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 대부분의 경우 사람은 자신을 개똥처럼 여기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자존심이 강하지 않게 되고, 모욕도 점점 더 잘 견딜 수 있게 됩니다.
셋, 하나님께서 다윗이 무고한 사람의 피를 흘리지 않도록 막으시다
-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재시험은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을 사용하여 다윗을 권면하고, 그가 무고한 사람의 피를 흘리지 않도록 막으신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 자주 우리를 막으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권면을 들을 줄 배워야 합니다.
넷, 하나님께서 반드시 당신의 원통함을 풀어 주신다
- 하나님께서 나발을 치시자 나발은 죽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원통함을 풀어 주신 것입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으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으십니다.
- 사람은 절대로 스스로 원통함을 풀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당신의 원통함을 풀어 주십니다. 당신이 아브라함이라면 당신을 저주하는 사람은 누구든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다섯, 지혜로운 여인은 보배다
- 아비가일은 하나님께 쓰임받아 다윗을 막았습니다. 그녀의 담력과 지혜는 다윗보다 뛰어났을 것입니다.
- 아비가일이 나발 같은 남편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은, 아비가일이 가정에서도 매우 지혜로운 여인이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 다윗의 집에서 가장 잘 살아간 사람은 아마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아비가일의 아들이었을 것입니다. 아비가일의 가르침을 받아 그 아들도 착실하게 살며 이름을 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섯, 결론
- 다윗의 품성을 향해 자신을 빚어 가며, 감정 지능이 매우 높은 사람이 되십시오!
- 어떤 일이 있어도 왕의 품성을 지니고 시험을 견뎌 내십시오!
핵심 단어
- 왕의 품성
- 하나님의 시험
- 사람의 반응
- 모욕을 마주함
- 감정의 안정
- 정신을 똑바로 차림
- 담력과 지혜
-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김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무엘상 25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의 제목은 “왕의 품성이 다시 시험을 받다”입니다. 사람이 왕이 되기를 원한다면 왕의 품성을 지녀야 합니다. 왕이 되면서 품성이 없다면 정말 목숨이 위태로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든 어떤 나라든 국가의 수장이 왕으로서 지녀야 할 품성은 반드시 시험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의 품성은 시험을 받아야 한다
앞 장에서는 다윗의 품성이 매우 훌륭하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다시 시험하여 그가 과연 어떤 품성을 지녔는지 보십니다. 사실 모든 시험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우리도 자신이 어떤 행실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날마다 여러분의 마음은 성령과 함께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합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의 마음이 과연 어떤 마음인지, 땅콩만 한지 아니면 참깨나 녹두만 한지 보아야 합니다. 사실 여러분을 땅콩이나 참깨, 녹두에 비유하는 것은 이미 여러분을 칭찬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잘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사람 안의 상태는 늘 시험을 받습니다. 성령과 우리의 마음이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왕의 품성을 지녔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로마서 8:16)
사람이라는 존재는 참 재미있습니다. 다윗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앞 장에서 다윗은 사울을 살려 주었는데, 이것만 해도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사울이 다윗의 상관이면서 동시에 장인이었기 때문에 다윗이 그렇게 한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발 같은 사람을 마주할 때는 달랐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갈렙 족속이고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라 나발은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사무엘상 25:3)
지난번에는 하나님께서 사울을 통해 다윗을 시험하셨고, 이번에는 다윗이 다시 나발의 시험을 겪게 됩니다. 나발 때문에 다윗이 왕의 품성을 잃게 될 뻔했습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아비가일을 보내 상황을 수습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사람의 품성은 늘 시험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람을 시험하는데, 사람의 반응이 어떤지 보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시험하자마자 바로 걸려듭니다. 그러면 저는 고개를 돌리고 다섯 손가락으로 눈을 가립니다. 여러분, 소악악으로 유명한 위에윈펑의 만담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 기이한 웃음은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구나!”라는 뜻입니다. 그다음에는 계속 훈련 계획을 세우고, 다시 “문제 풀이”를 시켜서 여러분이 통과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도우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을 돌아보며 우리가 겪은 시험 가운데 몇 번이나 통과하지 못했는지 살펴봅시다. 어떤 사람은 운전면허 시험에 한 번에 합격하고, 어떤 사람은 두세 번 시험을 보며, 어떤 사람은 열 번을 보아도 합격하지 못하고 그 단계에 계속 막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초등학교 1학년을 1년만 다녔는데, 여러분은 5년이나 다녔습니다. 키는 다른 사람보다 한 뼘이나 큰데, 지금 5학년인 아이들 중에는 선생님보다 키가 큰 아이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여러분은 아직도 1학년입니다. 여섯 번이나 시험을 보았지만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일생 동안 자주 시험을 겪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험을 계속 통과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원래 왕이 되어야 하는데 계속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 “노총각”이 되고 맙니다. 사울이라는 관문은 통과했을지 모르지만 나발이라는 관문은 반드시 통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울은 왕이어서 사람들에게 엎드려 “왕이시여, 아버지시여, 저는 개 한 마리이고 벼룩 하나입니다”라고 말하게 했으니 어쩌면 상대하기가 더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발처럼 매우 악하고, 말도 아주 험하게 하는 사람을 만나면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모욕에 대한 반응
나발이 다윗의 소년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사무엘상 25:10-11)
나발은 정말 남이 아픈 곳만 골라 찔렀습니다. 다윗이 바로 그 “주인에게서 도망친 종”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나발의 말은 너무 비열하고 악의적이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입을 통해 다윗을 자극하시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약한 부분을 골라 자극하시며 여러분의 감정 반응이 어떤지 보십니다. 사람의 일생에서 하나님의 다스림 밖에 있는 일은 거의 없으니, 이런 일을 마주할 때 절대로 어리석게 행동하지 마십시오.
나발의 하인 하나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광야에서 우리 주인에게 문안하러 심부름꾼들을 보내었거늘 주인이 그들을 모욕하였나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매우 선대하였고 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하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를 해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가 무엇을 잃은 것도 없었으며 우리가 그들과 함께 양을 칠 동안에 그들이 우리에게 밤낮으로 담이 되었음이라(사무엘상 25:14-16)
알고 보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나발의 종들이 밤낮 양 떼를 지킬 때 그들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누군가 양을 빼앗으러 오거나 도둑이 훔쳐 가거나, 밤중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을 잡아가지 못하도록 지켜 준 것입니다. 그동안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그들의 물건을 하나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이것이 선한 일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들이 양털을 깎아 돈을 벌 때가 되자 사람을 보내 나발을 찾게 했습니다.
다윗이 소년 열 명을 보내며 그 소년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갈멜로 올라가 나발에게 이르러 내 이름으로 그에게 문안하고 이같이 그 부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 네게 양털 깎는 자들이 있다 함을 이제 내가 들었노라 네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으나 우리가 그들을 해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그들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나니 네 소년들에게 물으면 그들이 네게 말하리라 그런즉 내 소년들이 네게 은혜를 입게 하라 우리가 좋은 날에 왔은즉 네 손에 있는 대로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 하라 하니라(사무엘상 25:5-8)
이 말은 다윗이 매우 겸손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다윗이 사람에게 입을 열어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었다는 것은 당시 그의 형편이 상당히 어려워서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음을 뜻합니다. 다윗은 매우 겸손하게 종들을 보내 나발에게 조금 나누어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온통 조롱과 비웃음뿐이었습니다. 이것이 나발이 술을 조금 마시고 일부러 시비를 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사람과 귀신은 자주 뒤섞여 있습니다. 그것이 귀신이 한 말인지 사람의 말인지 정말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어쨌든 이것은 한 번의 시험이었습니다. 모욕을 마주했을 때 여러분의 반응이 과연 어떠한지 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아야 합니다. 저도 가끔 여러분을 모욕합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한번 시험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시험해 보지 않으면 모르지만, 한번 시험해 보면 현재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감정 관리의 수준을 높이고 감정 지능도 높여야 합니다. 조금만 자극해도 무너지면 안 됩니다. 저는 우리 목회자들에게 말합니다. 한번 시험했을 때 아래 사람들이 바로 “이빨을 드러내는” 경우에는 여러분이 조심해야 합니다. 개나 늑대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모습은 무섭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 이것이 시험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앞의 시험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사울을 죽일지 보셨습니다. 만일 다윗이 정말 사울을 죽였다면 다윗은 왕위에 오래 앉아 있지 못했을 것이며, 그의 나라도 견고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이 땅콩이나 참깨, 녹두만큼 작았을 것이기 때문에 왕다운 넓은 마음이라고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첫 번째 사울의 관문은 통과했지만 나발의 관문은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나발의 말이 너무 비열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자기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 하니 각기 칼을 차매 다윗도 자기 칼을 찬지라 다윗을 따르는 자가 사백 명 가량이요 이백 명은 물건 곁에 머물러 있더라(사무엘상 25:13)
이때 다윗은 충동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조금 충동적인 정도가 아니라 칼을 들고 직접 사람을 죽이러 가려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조금 달라고 했다가 받지 못했다고 해서 사람을 죽일 지경까지 이른 것입니다. 그는 그저 화풀이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화가 올라오는 것도 알고, 제 화가 올라오는 것도 압니다. 감정이 올라온 뒤에도 조심해야 합니다. 마음속으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시험하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에게 속한 것을 하나도 잃지 않게 한 것이 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내가 그에게 속한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 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사무엘상 25:21-22)
저도 자주 시험을 겪습니다. 어떤 때는 통과하지만 어떤 때는 무너집니다. 지금처럼 화가 올라올 때 저는 깊이 숨을 쉬고 숫자를 세기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두 손으로 원을 그렸다가 아래로 내리치면 마음이 많이 평온해집니다. 사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런 감정이 있습니다. 다윗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항상 정신을 맑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화가 올라왔다면 대부분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도록 훈련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세련되게 들리지는 않지만 매우 실제적이며, 사실도 그렇습니다.
그 후 다윗은 시험을 만날 때마다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습관을 길렀습니다. 한번은 다윗이 왕위에서 쫓겨나 아들 압살롬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도망하다가 아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습니다. 그 후 길에서 시므이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다윗을 저주했을 뿐 아니라 다윗과 그의 신하들을 공격하려 했습니다. 당시 어떤 사람이 다윗을 위해 시므이를 죽이려 했지만 다윗은 막았습니다.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그는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피를 다 흘리고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으니 여호와께서 그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쭈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하였느냐고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내버려 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가 저주하는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그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리더라(사무엘하 16:5-13)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내가 왕의 품성을 갖도록 훈련하시는 것은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도록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제게 자신은 ‘채’ 씨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는 않았지만, 젊을 때는 사람들이 ‘작은 채’라고 부르고, 나이가 조금 들면 ‘큰 채’라고 부르고, 늙으면 ‘늙은 채’라고 부르니 계속 음식처럼 여겨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이 채 씨인 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면 문제가 생깁니다.
이 장은 감정이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나 하나쯤 없어도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을 안다면 일이 쉬워집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사람이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야 감정이 커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를 도와 함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런 말을 들으면 “큰 요리가 왔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만한전석인 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세우고 싶으면 혼자 가서 세우세요. 저는 여기서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를 세울 때 절대로 사람의 도움을 구하지 마십시오. 우리 가운데 오는 사람은 나를 돕거나 내가 그를 돕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근본적으로 한 접시의 요리가 아니며,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문제가 됩니다. 여러분에게 감정이 자주 올라오는 것은 자신을 한 접시의 요리처럼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장이나 가족이 무슨 말을 조금만 해도 감정이 즉시 올라오고, 얼굴이 금세 어두워지며 화난 표정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자신이 그저 개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중요하게 여길수록 감정이 불안정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제게 “선생님, 선생님의 감정은 어떻게 그렇게 안정적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사실 저도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다만 많은 경우 저 자신을 개똥처럼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밟거나 몇 마디 한다고 해도 그냥 내버려 두면 됩니다. 괜찮습니다. 이것도 매우 정상적인 일이며,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은혜는 이런 일에 그렇게 대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자극을 견디는 정도는 여러분 안에 있는 자존감의 강도와 정비례합니다. 여러분 안에 강한 자존심이 있다면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을 매우 타락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강한 자존심이 있으면 매우 피곤하게 살아갑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자신과 비교하고, 체면을 세우려 하며, 아무 일도 아닌데 늘 경쟁하려 합니다. 한번 경쟁하기 시작하면 온갖 문제가 드러나고 주변 사람들도 함께 괴로워합니다.
사람은 절대로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 말고, 자신을 개똥처럼 여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한번 흘겨보는 것도 정상입니다. 예전에 몇몇 동역자들은 형제자매들에게 존귀한 마음을 갖도록 훈련하기 위해 단체방에 메시지를 보내고 모두가 “확인했습니다”라고 답하게 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런 습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아도 “확인했습니다”라고 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실행해야 할 일은 빨리 실행하면 됩니다.
우리 가운데 한 젊은이가 프로젝트 하나를 조직하면서 저와 자신의 목회 지역장을 새로 만든 단체방에 초대했습니다. 아마 처음으로 단체방의 방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드디어 자신이 주인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느 날 그가 메시지를 보냈는데 아무도 답하지 않자, 저와 자신의 목회 지역장에게 왜 “확인했습니다”라고 답하지 않느냐고 따졌습니다. 그는 감히 그런 요구를 저에게까지 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그렇게 요구한 적도 없는데, 이것은 자신을 너무 대단하게 여긴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답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맡은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솔직히 말해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과제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제가 여러분에게 왜 메시지를 보고도 “확인했습니다”라고 답하지 않느냐, 왜 나를 존중하지 않느냐고 따진다면, 제가 귀신 들렸을 가능성이 매우 크므로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다. 어제까지는 자신을 개똥처럼 여기더니 왜 오늘은 한 접시의 요리가 되었을까요? 귀신에게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정이 따라 올라온 것입니다.
다윗이 모욕을 당했을 때 보인 반응은 너무나 실제적입니다. 우리는 일생 동안 반드시 모욕을 마주하게 됩니다. 최근에 세상을 떠난 장 주석도 매우 존경할 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과거 문화대혁명 때 비판과 투쟁을 당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누군가 그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화장실을 청소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장화를 신고 물통을 들고 걸레를 가져가 화장실을 청소했습니다. 깨끗하게 청소했을 뿐 아니라 매우 기뻐했습니다. 이것이 대단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전혀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이 유신론자든 무신론자든 상관없이 장점이 있다면 우리는 배울 가치가 있습니다. 나중에 그에게 실험실 청소를 시켰을 때도 그는 기쁘게 청소하여 깨끗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높은 수준의 사람입니다.
나중에 중국에서 유행한 “소리 없이 큰돈을 벌자”라는 말도 그가 만들어 낸 것입니다. 중국은 그의 지도 아래 소리 없이 큰돈을 벌었고, 국가 외환보유액은 몇 배나 증가했습니다. 해외 대사관이 폭격을 당했을 때에도 그는 모욕을 참으며 책임을 감당했고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지도자 덩샤오핑이 만든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뼛속부터 모욕을 참고 책임을 감당하는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허세를 부리지 않는 높은 수준의 사람들입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도 똑같이 시험을 겪습니다. 특히 여러분과 나도 하나님의 나라에서 왕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에게 왕으로서의 행실이 있는지는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왕이 되려면 여러분의 품성이 하나님의 시험을 거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시험을 견뎌 내는 사람은 모두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번에 다윗은 시험을 견뎌 내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문제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감정이 올라오자 칼을 들고 나발을 죽이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첫 번째 문제에서 0점을 받은 것을 보시고 다시 기회를 주어 재시험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무고한 사람의 피를 흘리지 않도록 막으시다
여기까지 말했으니, 다윗이 나발에게 무언가를 조금 달라고 했다가 나발이 그를 모욕하는 말을 한마디 했다고 해서 그를 죽이려 한 것이 무슨 이치입니까? 여러분은 제가 왜 늘 고개를 숙이고 걷는지 아십니까? 어릴 때 길을 걸을 때 고개를 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동북 지역에는 아주 유명한 대화가 있었습니다. “뭘 봐?” “너를 보면 어쩔 건데?” 그러고 나면 칼이 날아오고 순식간에 피가 땅에 흘렀습니다. 당시 동북 지역의 치안은 그랬습니다. 그것이 제가 대학에 들어가기 전 마주했던 환경이었고, 그때는 꼬리를 말고 고개를 숙인 채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고개를 숙이고 걷는 습관이 있고, 심지어 등이 조금 굽기까지 했습니다.
다윗은 모욕을 당했을 때 불량배와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무고한 사람의 피를 흘리지 않도록 막으셨습니다. 다윗이 나발을 죽이러 가려 했던 것은 무고한 사람의 피를 흘리려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때 다윗이 두 번째 문제에 어떻게 답하는지 보시며 그를 막으셨습니다. 두 번째 문제에도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다윗은 왕이 될 수 없다는 뜻이었고,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찾으셨을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택하신 것은 왕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충동적으로 행동하려 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막으십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막히고, 어떤 사람은 막히지 않습니다. 목이 곧은 채 끝까지 어둠의 길을 가다가 결국 왕위를 잃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내신 첫 번째 시험지는 다윗이 사울을 죽일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시험을 통과했고 합격했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시험지는 그를 모욕하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다윗이 0점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 시험지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재시험의 기회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재시험에는 재시험 비용을 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때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을 사용하셨습니다. 아비가일은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저는 아비가일의 나이도 그리 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발도 어느 정도 나이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다윗은 아직 젊었습니다. 이것은 본문에 나오는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라는 말에서도 드러납니다. 아비가일이 나발에게 시집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나이가 분명 적지 않았고 지혜가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라면 반드시 그렇게 지혜롭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나발의 하인 하나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광야에서 우리 주인에게 문안하러 심부름꾼들을 보내었거늘 주인이 그들을 모욕하였나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매우 선대하였고 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하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를 해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가 잃은 것도 없었으며 우리가 그들과 함께 양을 칠 동안에 그들이 우리에게 밤낮으로 담이 되었음이라 그런즉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실지니이다 이 일로 말미암아 우리 주인과 그의 온 집에 화가 미칠까 하나이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개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소년들에게 이르되 내 앞서 가라 보라 내가 너희 뒤를 따라가리라 하고 그의 남편 나발에게는 말하지 아니하니라 아비가일이 나귀를 타고 산 밑으로 내려가고 있을 때에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것을 만나 그들을 맞이하니라(사무엘상 25:14-20)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니라 다윗의 발에 엎드려 이르되 내 주여 이 죄악은 나에게 있으니 청하건대 이 여종으로 내 주께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어 주소서(사무엘상 25:23-24)
아비가일의 대단한 점은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얼굴을 땅에 대고 다윗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녀가 앞에서 한 몇 마디도 괜찮았지만, 뒤에 이어지는 말이 정말 감탄스럽습니다.
“내 주여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시는 일을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제 내 주에게 가져온 이 예물을 내 주를 따르는 이 소년들에게 주게 하시고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하신 말씀대로 모든 복을 내 주에게 베푸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복을 베푸실 때에 원하건대 내 여종을 생각하소서”(사무엘상 25:26-30)
이 말 몇 마디가 다윗을 단번에 깨우쳤습니다. 다윗이 나발을 죽였다면 하나님의 시험지에서 합격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왕조차 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설령 왕이 되었다 해도 백성 사이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이 궁정에 있을 때 백성들은 뒤에서 수군거렸고, 다윗의 경험은 모두 사람들이 즐겨 이야기하는 가십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홍콩의 가십 뉴스가 특히 유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길거리 가판대에는 책이 한 무더기 놓여 있고, 온갖 이야기를 하며 어떤 책이든 거리낌 없이 써 냅니다. 그때 길거리 가판대가 있었다면 “다윗이 나발을 죽이다”라는 책이 놓였을 것이고, 표지의 다윗 얼굴은 만화처럼 일그러져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곳은 언론의 자유가 있는 곳이어서, 이런 이야기가 민간에 널리 퍼져 야사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나중에는 크게 팔렸을 수도 있고, 이야기가 점점 더 과장되고 왜곡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이 문밖으로 나서기만 하면 길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보태며 온갖 근거 없는 소문이 하늘을 뒤덮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실시간 검색어와 알림, 유튜브 영상까지 지우느라 바빴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십을 좋아합니다. 다윗이 한 일이 또 꽤나 창피한 일이었으니,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수군거리기만 하면 양심에 가책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왕 노릇을 할 수 없습니다. 왕은커녕 미국에서 의원 선거에 나간다 해도 사생활이 바르지 못하면 모든 것이 신상 털기로 드러나니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다행히 지혜로운 아비가일이 제때 권면했습니다. 다윗은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고 즉시 맑은 정신을 되찾았습니다. 앞의 시험지에서는 0점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만점을 받았습니다. 평균을 내면 간신히 합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 자주 우리를 막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막으실 때 권면을 듣고,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며, 더 이상 자신의 감정적인 반응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간신히 합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분노를 도저히 삼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당신의 원통함을 풀어 주신다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가 깬 후에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말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사무엘상 25:37-38)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원통함을 풀어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가 증명됩니다. 스스로 원통함을 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으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으십니다. 여러분이 왕이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의 원통함을 풀어 주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의 원통함을 풀어 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은 그런 일을 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보지 못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원통함을 풀어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이라면 여러분을 저주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저주하십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이삭이나 야곱이라면 여러분을 저주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저주하시고, 여러분을 축복하는 사람은 여러분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의 원통함을 풀어 주신다는 것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스스로 원통함을 풀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면 스스로 원통함을 풀려고 하지만, 자신을 개똥처럼 여기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원통함을 풀어 주실 뿐 아니라 여러분을 왕의 보좌에까지 올려 주십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보배다
아비가일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의 담력과 지혜는 다윗보다 뛰어났을 것입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쓰임받아 다윗이 무고한 사람의 피를 흘리지 않도록 막았으므로 복이 있었습니다. 아비가일은 나발에게 시집가 나발의 집안 여주인이 되었지만, 나발처럼 악한 남편을 만나면 남편이 다른 사람에게 잘하지 못하니 아비가일에게도 잘할 리 없었습니다. 아비가일은 다윗 앞에서만 지혜로웠던 것이 아니라, 집에서도 나발 같은 남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한 가정이 화목을 유지할 수 있는지는 여인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아비가일은 후에 자신이 매우 지혜로운 여인이라는 것을 다시 보여 주었습니다.
여기서 곁가지로 한 가지 말하겠습니다. 아비가일이 낳은 아들은 다윗의 아들들 가운데 둘째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고 아무도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맏아들 암논은 다윗의 딸을 강간했기 때문에 셋째 아들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셋째 아들은 반역하여 왕위를 빼앗으려 했기 때문에 다윗의 군대 장관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나중에는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비가일의 둘째 아들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비가일의 아들을 안타깝게 여깁니다. 그가 왕이 될 차례였는데 왕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아비가일이라는 어머니가 훌륭했습니다. 그녀는 아이에게 겸손하게 살라고 가르쳤습니다.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 말고, 자신을 냄새나는 두부 한 조각이나 개똥 더미처럼 여기며 화를 자초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다윗의 집에서 평생 가장 잘 살아간 사람은 아비가일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얼마나 많은 재난을 피했는지 모릅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그 자신도 이름을 내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름을 낸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 아들은 어머니에게서 자랐고, 아비가일이 아들을 가르친 방식은 사물에 대한 아비가일의 인식을 보여 줍니다. 아비가일의 성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녀가 가르쳐 낸 아들도 같은 성품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람은 평안하고 무사하게 일생을 살아가는 것이 좋으며, 어떤 일은 모르는 편이 오히려 낫습니다.
얼마 전 저는 어떤 사람이 필사적으로 자신을 “세계적인 명목자”로 만들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쉽게 문제가 생깁니다. 제가 이어받은 것은 아비가일의 이러한 체계입니다. 이름을 내고 싶지 않고, 착실하게 실제적인 일을 조금 하는 것입니다. 손을 그렇게 멀리 뻗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많은 일을 관여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관여하고, 실제적인 일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으면 그 일을 할 뿐입니다. 이름을 내고 싶지 않은 것, 이것이 지혜이고 분별력입니다. 지혜로운 여인이 가르쳐 낸 아이는 지혜로운 아이입니다. 여러분도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은 아비가일을 보배로 여겨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려 했습니다. 아비가일이 나발 같은 남편에서 갑자기 다윗 같은 남편으로 바뀐 것은 그녀에게 복이었습니다. 집안이 멸망할 뻔한 재난을 겪을 상황이 오히려 다윗을 남편으로 맞이하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면 여러분이 저에게 조금 불만을 가질까 염려되지만, 어쨌든 저는 아비가일을 대신해 기뻐하고 싶습니다. 아비가일은 평생 나발과 함께 살 수 없었습니다. 나발은 얼굴에 살이 가득하고 흉악한 모습의 어리석은 사람이었으며, 말도 분별없이 하여 입만 열면 사람들의 미움을 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나면 자매들이 아비가일이 되고 싶어 할까 걱정됩니다. 갑자기 자신의 남편이 나발이 아니라는 것이 조금 아쉽게 느껴지고, 설령 나발처럼 보이는 남편이라 해도 지금 자신의 곁에는 다윗 같은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을 죽여 주시면 다윗을 찾아가 아비가일이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문제가 됩니다. 그렇게 해서는 아비가일이 될 수 없습니다. 아비가일은 그런 일을 구한 적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었고,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절대로 남편을 바꾸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비가일은 남편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남편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아비가일과 같은 모든 지혜를 지녀야 합니다.
다윗의 사환들이 갈멜에 가서 아비가일에게 이르러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을 맞이하여 그의 아내로 삼고자 한다 하니 아비가일이 일어나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며 이르되 내 주의 여종은 내 주의 사환들의 발 씻길 종이라 하리이다(사무엘상 25:40-41)
아비가일은 여기서 자신의 주인의 발이 아니라 주인의 종들의 발을 씻기겠다고 말했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아비가일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사실 뒤의 장들을 보면 다윗의 집안의 많은 일은 아비가일이 처리했고, 아비가일이 낳은 아들도 다윗에게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아비가일의 재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분명 다윗에게 돌아갔을 것입니다.
결론
어떤 일이 있어도 왕의 품성을 지니고 시험을 견뎌 내야 합니다! 우리의 성경공부는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한 이야기를 여러분이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중간에 농담을 조금 넣고 싶지만 매일 농담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내용은 매우 실제적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왕의 품성을 지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