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1. 서론
- 사람이 자신이 가진 것이 자기의 지혜와 노력으로 얻은 것이라 여기고, 그것을 기필코 붙잡으려 한다면 비참해집니다.
- 사람이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따르며, 자신의 왕위를 결코 놓지 않으려고 기필코 붙잡는다면 하나님을 섬길 방법이 없습니다.
2. 본문 말씀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누엘을 건축하고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열왕기상 12:25-31)
3. 기도
4. 본문 배경
-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모두 예루살렘으로 몰려가서 돈을 그곳에 쓰게 되면 세금을 걷지 못하고, 국가 경제가 나빠지며, 경제가 나빠지면 정권이 불안정해질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가지 못하게 하여 자신의 왕권을 견고히 하려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두 금송아지를 만들었으나, 이 어리석은 꾀가 자신을 저주 속으로 몰아넣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 여로보암 집안은 이스라엘의 왕을 겨우 1대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여로보암의 내면이 온통 정치경제학적 논리 체계로 가득 차 있었고, 자신의 왕위를 기필코 붙잡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5. 여로보암의 어리석음 첫 번째: 생각의 논리 체계
- 여로보암의 논리 체계는 이생의 논리 체계이며 돈으로 생각하는 논리 체계로서, 영생의 논리 체계와는 전혀 다른 장부이며 결코 조화될 수 없습니다.
- 영원 안에서의 영광을 추구하면 이생의 잠시 받는 가벼운 환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이 추구하는 목표가 온통 세상의 일뿐이라면 반드시 정치경제학에 동조하게 됩니다.
6. 여로보암의 어리석음 두 번째: 자기가 얻은 것을 기필코 붙잡으려 함
-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왕위와 돈을 포함해 자기 능력으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여로보암이 왕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니 하나님이 가져가시면 가져가시는 것이라 여겼다면, 그의 왕위는 오래 지속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7. 여로보암의 어리석음 세 번째: 민심에 영합함
- 여로보암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민심을 따르는 길을 택했습니다.
- 사람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드리면 이러한저러한 염려가 없어집니다.
8. 여로보암의 어리석음 네 번째: 완고함
- 완고함은 어리석음입니다. 여로보암은 자신의 논리 체계에 꽁꽁 묶여 금송아지를 만든 일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 사람은 반드시 부드러워야 하며, 틀렸으면 인정하고 잘못을 알아 고치는 것이 곧 지혜로움입니다.
9. 결론
- 여로보암은 자신의 지혜를 의지했는데 이것이 곧 어리석음이며, 그는 계속해서 자신을 위해 진노를 쌓다가 결국 자신의 네 가지 어리석음으로 인해 집안이 풍비박산 났습니다.
- 사람은 여로보암의 네 가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를 세워야만 반드시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핵심 단어
- 완고함
- 금송아지를 만듦
- 민심에 영합함
- 잘못을 알고 고침
- 여로보암의 어리석음
- 이생의 논리 체계
- 자기가 얻은 것을 붙잡음
- 자신의 자리를 지킴
- 자신의 지혜를 의지함
1.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나눌 말씀은 제가 꽤 좋아하는 주제인 《여로보암의 어리석음》입니다. 왜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할까요? 최근 제 머릿속에 계속 이런 장면들이 떠올랐는데, 저는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어리석은지 줄곧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에게 왕위를 주셨는데, 그가 금송아지를 만들고 결국 하나님께 침을 당하니, 이것이야말로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며칠 동안 이 여로보암의 어리석음을 연구하는 데 푹 빠졌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것을 별로 연구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지혜로워질까만 연구했는데, 어리석음을 연구하지 않으면 지혜로워지기도 어렵습니다. 어리석음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기가 지혜롭다고 여긴다면 정말 큰일이지요! 최근 제 연구에 약간의 돌파가 생겨서 오늘 논문을 발표하듯 여러분과 그 결과를 나누고자 합니다.
수년 전 저는 운명이라는 것에 호기심이 가득했습니다. 정말 사람의 운명이란 정해져 있는 것일까? 오랫동안 연구하고 또 연구하다가 제 머리가 다 멍해졌습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하든 운명을 바꿀 수 없다면 정말 기가 막힌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재앙을 만나는 것이 정해진 운명이라면 듣기만 해도 답답하지 않습니까. 나중에 보니 모든 것이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면 너무나 절망적이지 않겠습니까? 그때 저는 이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의 재수 없는 운명을 행운의 운명으로 바꾸고, 저주받은 운명을 복된 운명으로 바꿀 수 없을까? 이 주제가 참 좋다 싶어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당시 저는 이런 프로젝트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연구를 시작했는데 어디까지 갔을까요? 절에 가서 사람들과 토론도 해보았지만 토론하고 또 해봐도 별다른 결론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또 교회에도 가보고 여기저기 안 가본 데가 없었습니다. 중간 과정은 생략하겠습니다만, 결국 저는 예수님을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운명을 바꾸실 수 있고, 사람의 생명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좋은 삶을 원하면 좋은 삶을 주시고, 엉망인 삶을 원하면 엉망인 삶을 주시니, 그분이 사람의 생명을 주관하시므로 그분께 나아가면 복된 삶으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아도 그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었습니다.
아십니까? 저는 몇 년 전 중년의 위기로 실직을 겪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40대 후반이나 50세도 채 안 되어 중년의 위기를 맞이하곤 합니다. 왜 위기가 왔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운명을 바꾸었다면서 왜 또 중년의 위기가 왔습니까?”라고 물으실지 모르지만, 중년의 위기를 겪어도 그것 역시 복된 삶입니다. 왜 복된 삶일까요? 저는 스스로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가진 것은 시간뿐이었습니다. 시간밖에 없으니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또 한 번 지혜로운 선택을 내렸습니다. 정말이지 기가 막히게 또 다른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그 직업을 통해 저는 당시 작은 목표 하나를 세웠습니다. 1억이나 10억을 벌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사람들을 지혜롭게 만들겠다는 목표였습니다. 사람들이 나와 같이 예수님께 나아가 복된 삶으로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했더니 사람들은 제게 “기독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제가 “기독교” 자체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별명이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복된 삶이 얼마나 좋은지 아십니까?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알지 못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로보암처럼 큰 이적을 경험하고도 어디가 지혜로운 길인지 모릅니다. 오늘 여러분은 그 운명을 제대로 바꾸셨습니까? 아직 바꾸지 못했으면서 자기 두 손으로 운명을 개척하겠다고 애쓰고 있다면, 제가 한마디 권면하겠습니다. 집어치우십시오! 여러분의 모습을 보십시오, 저보다 지혜롭습니까? 나도 안 되는데 당신이 되겠습니까? 당신은 나보다도 한참 부족한데 내가 안 되는 걸 당신이 해낼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저보다 뛰어날 수도 있겠지요. 저보다 낫다면 어디 한번 열심히 자기 운명을 개척해 보십시오. 부디 여로보암과 같은 운명을 만들어내지 않기만을 바랍니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어리석음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나누는 이 여로보암은 지난 세월 동안 제가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부류의 사람, 곧 멍청이였습니다! 영어로 번역하면 ‘Stupid egg’일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잘 못 알아들을 테니 ‘century egg(피단, 삭힌 오리알)’나 ‘곤달걀(부화 직전의 알)’로 번역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양인들은 닭이 다 부화하기도 전에 알을 먹는 곤달걀은 더더욱 못 먹겠지요. 어쨌든 이 여로보암은 멍청이가 아니면 곤달걀이나 피단 같은 자입니다. 얼마나 멍청해야 이토록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평생 죽어서 묻힐 땅도 없고 집안이 풍비박산 났습니다! 여러분은 묻겠지요. “그가 도대체 뭘 했길래 그렇게 욕을 하십니까?” 그것을 나누려고 오늘 여로보암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나중에 보니 세상에 바보들이 참 많았습니다. 제게 사촌 형이 한 분 있는데, 사촌 형이지만 저희 아버지보다 불과 몇 살 아래였습니다. 당시 그 형이 중년의 위기를 맞아 빚더미에 앉게 되자 저희 아버지가 사람을 통해 일자리를 하나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출근하고 나더니, 자기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준 그 상사와 사사건건 부딪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그 상사를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직 어렸는데 집에 돌아와 “사촌 형은 어떻게 지내요?” 하고 물으니 아버지가 “아휴, 바보 멍청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여러분은 이해가 되십니까?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더니 그 사람을 대적하다니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로보암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고,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교회에서 사역해 왔기 때문에 저를 통해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유산될 뻔한 임산부를 위해 기도해 주었고, 입덧이 심한 산모를 위해 기도해 주었더니 다 나았습니다! 구급차가 와도 탈 필요가 없을 정도로 깨끗이 나았습니다. 다 나아서 아이를 낳고, 일자리를 찾는 등 온갖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사는 것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다 돌보며 폭넓게 섬겼습니다. 제게는 하나님이 계시니 능히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섬겨놓았더니 그 사람들이 패를 지어 저를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사촌 형과 똑같을까, 사촌 형은 여로보암 같고, 너희는 사촌 형 같으니’ 얼마나 속이 상합니까!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저를 대적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유독 좋아하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를 일입니다. 참으로 기이합니다!
사역하다 보면 참으로 서운할 때가 있습니다. 정성껏 섬겨주었더니 돌아와 대적하니, 긁어 부스럼을 만든 꼴이지 않습니까. 세상에 이런 자들이 널렸지만, 지금 우리 교회에는 이런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절반 이상, 거의 4분의 3에 달해서 제가 몹시 놀랐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한 자들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목사님들이 저를 만나면 “류 목사님, 그쪽 교회도 그런 문제가 있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제가 “예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별로 없습니다”라고 하면, 그분은 “아휴, 우리 교회는 온통 그런 사람들뿐입니다”라고 합니다. 저는 제가 참 지혜롭다고 느꼈습니다. 왜일까요? 체로 걸러내기 때문입니다. 탁 치면 배은망덕한 자 하나가 걸러져 나가고, 탁 치면 또 하나가 걸러져 나갑니다. 그 체가 얼마나 강력한지 모릅니다.
많지 않다고는 하지만 최근에 또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저를 통해 수많은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또 어리석게 굴더니, 다행히 스스로 떠났습니다. 제가 쫓아낼 수도 없는데 어떻게 쫓아내겠습니까? 쫓아낼 수가 없습니다. 저는 스스로 떠나는 사람을 제일 좋아합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저는 마귀와 사이가 아주 좋아서 마귀가 교회를 세우는 것을 돕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내가 교회 세우는 걸 도와줄게” 하길래 “네가 어떻게 도울 건데?”라고 물었더니 “이 쓰레기들을 내가 다 치워줄게”라고 합니다. 마귀는 쓰레기 수거 전문입니다. 저는 보물을 거두고 마귀는 쓰레기를 치워가니 얼마나 좋습니까? 집안도 깨끗해집니다. 마귀와 관계가 틀어지면 곤란합니다. 자꾸 집안에 쓰레기를 갖다 놓기 때문입니다. 마귀와 사이가 좋으니 크고 작은 ‘여로보암’들을 다 데려가 줍니다. 마귀가 “내가 얘 데려갔어, 또 한 놈 데려갔다” 하길래 제가 “다음엔 누구 데려갈 건데?” 물으면 “그건 알려줄 수 없지”라고 합니다.
사실 제 마음속에는 다 계산이 서 있습니다. 누가 어떤 사람인지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마귀가 아직 당신을 데려가지 않았다면 저는 하나님을 섬기듯 여러분을 섬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마음이 아프지 않습니까?”라고 묻습니다. 마음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정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위로가 필요하지만, 그 아픈 감정을 억누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 한 마리만 잃어버려도 마음이 아픈 법인데, 하물며 사람인데 말입니다. 정말 슬픕니다. 무엇 때문에 슬플까요? ‘어찌 저리도 어리석을까? 참으로 어리석구나!’ 하며 탄식하게 됩니다. 교회가 가장 힘들 때 저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이들도 있었는데, 나중에 무슨 이유에선지 떠나갔습니다. 부디 그들이 더 많은 은혜를 입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하나님께서 마주하시는 배은망덕한 자들은 제가 겪는 것보다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때부터 지금까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부터 지금까지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마음이 참으로 넓으시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이런 배은망덕한 무리를 셀 수도 없이 많이 마주하셨습니다. 여름철 풍년 때 과일 값이 폭락해 썩어 나가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제가 어릴 적 토마토 한 트럭을 땅바닥에 쏟아부었는데 다 팔지 못해 결국 그 자리에서 썩어버렸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 그 썩어 나가는 과일과 같습니다.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다 사람이 스스로 선택한 운명입니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인생도 풀리지 않습니다.
최근 제 머릿속에 계속해서 몇 가지 장면이 떠오릅니다. 하나는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드는 장면입니다. 왜일까요? 저는 너무나도 이해가 되지 않고 당혹스러웠습니다. 백성들은 아론에게 금과 은을 아낌없이 바쳤고, 그 금을 녹이니 금송아지가 튀어나왔습니다. 틀을 만들지도 않고 주조하지도 않았는데, 금을 녹였다가 식히니 화덕 안에서 금송아지가 나온 것입니다. 믿어지십니까? 엄청난 이적입니다. 하지만 그래 봐야 금송아지일 뿐입니다. 그래서 제가 요즘 헛소리하고 허튼짓하는 것을 송아지(금송아지)에 빗대어 자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아론이야말로 허튼짓의 대가였습니다. 금송아지를 떡하니 만들어놓고는, 그냥 금송아지라고 해도 될 것을 굳이 “이것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하나님이다. 내일은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자”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옵니다! 그가 왜 그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론이 백성들과 함께 이 금송아지를 가지고 허튼짓을 한 바람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습니다! 도대체 그때 무슨 짓을 한 것입니까? 쓸데없는 짓을 하다가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얌전히 잘 살면 어디가 덧납니까? 꼭 허튼짓을 골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런 일들은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해가 되십니까?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만,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제 머리가 나쁜 것일까요? 어리석은 자들의 행동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리석은 사람을 대할 때는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설명이 되지 않지 않습니까? 도대체 얼마나 멍청해야 저럴 수 있을까요? 연구하고 또 연구해 보아도 결국 하나의 결론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운명, 곧 어리석은 자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에게 제 머릿속에 떠오른 이 장면들을 설명해 드리는 것입니다. 크고 작은 헛된 짓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납니다! 그러다 제 머릿속에 또 다른 장면이 떠올랐는데, 바로 여로보암이었습니다. 여로보암 역시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아론보다 한술 더 떴습니다. 아론은 하나를 만들었지만 그는 두 개를 만들어 갑절로 저지른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이 허튼짓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는 아론이 예전에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알고 있었습니다.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그 역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더욱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금송아지를 두 개나 만들다니 죽으려고 환장한 것입니까, 살기 싫어진 것입니까? 세상에는 살기 싫어 안달 난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금송아지를 만들고도 당장 죽지 않자 그는 속으로 ‘나 멀쩡하잖아? 아주 괜찮은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며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수많은 배은망덕한 자들도 “나 지금 잘 살고 있어”라고 말합니다.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당신이 아직 오래 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충분히 오래 살다 보면 허튼짓을 한 자들의 결말, 특히 금송아지를 만든 자들의 비참한 말로를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을 겁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뭣 하러 여러분을 겁주겠습니까?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로보암이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든 것은 어찌 된 일일까요?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 사람 머릿속의 생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해 보니, 부디 여러분 모두가 여로보암과 같은 어리석음을 피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어리석음만 피할 수 있다면 대단한 일이며, 수많은 재앙을 단번에 피해 갈 수 있습니다. 여로보암은 한술 더 떠서 “이것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이다”라고 했습니다. 금송아지가 애굽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니, 앞서 한바탕 사람들이 죽어나갔는데도 말입니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위하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열왕기하 10:29)
기이하지 않습니까? 앞선 자의 뒤를 이어 끊임없이 달려갑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결단을 내렸습니다. 교회 안에서 헛된 짓을 일삼는 자들을 싹 쓸어내 버리기로 말입니다. 교회 안에는 그런 자들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헛된 짓을 조금만 부추기면 ‘아론’이 튀어나오고, 조금만 쑤셔대면 ‘여로보암’이 나옵니다. 여로보암이 그 짓을 한 것도 백성들을 위해서였습니다.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얼마나 좋아합니까? 예루살렘까지 가서 하나님을 예배하려니 얼마나 번거롭습니까? 집 문앞에 금송아지 하나 모셔두고 절하면 얼마나 편합니까! 참으로 탄식이 나옵니다. 오늘날 화인명정신학(华人命定神学)이 성경을 깨닫고 하나님을 아는 것은, 제가 과거 교회들에서 배웠던 수많은 내용과 완전히 다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많은 교회들이 교회를 하나 세워놓고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다”라고 말합니다. 헛된 짓을 하는 자들과 똑같지 않습니까? 그것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까? 교회 안에서 낚시 동호회를 만들어 놀러 다니고, 다단계 제품을 팔고, 보험을 팔고, 중매나 서는 것이 다 헛짓거리 아닙니까? 기가 막힙니다. 이것이 교회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면서 왜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까?
예전에 제가 알던 어떤 목사님이 아주 흥미로운 일을 겪었습니다. 제 말을 오해하지 말고 들으십시오. 그분이 교회를 개척했는데 교인 중에 나이 든 아주머니들이 유독 많았습니다. 여러분이 여자라 할지라도 저는 여러분이 속 좁은 아낙네가 되기를 바라지 않고, 당당하고 대범한 대장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쨌든 그 아주머니들 중 한 명이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병원에 찾아가 심방하고 돌보느라 온갖 애를 쓰며 지극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사람이 암에 걸렸습니다. 묻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교회입니까? 하나님의 교회에서 암 환자가 툭하면 하나 나오고, 또 툭하면 하나 나오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러자 그중 한 아주머니가 저를 찾아와 “언제 제 차례가 될지 모르겠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럼 천천히 기다려 보십시오. 줄 서 있는 것 아닙니까? 언제 차례가 올지 기다려 보십시오. 모여서 남의 집안 흉이나 보고 헛소리나 늘어놓으면서 교회라고 하니, 모이기만 하면 온통 허튼짓투성이요 금송아지나 만들어내는 꼴입니다. 아론과 여로보암이 만든 것은 금송아지라도 되었지, 그들이 빚어낸 것은 누렇고 물렁물렁한 똥 덩어리 같은 것이니 얼마나 냄새가 납니까! 수많은 교회들이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이 하나님이다, 이것이 구원이다”라며 온갖 것을 늘어놓는데 그것이 진짜입니까? 듣기에도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또 어떤 교회들은 할 일 없이 “이곳은 이단이다, 저곳은 이단이다” 하며 자기가 진리인 양 온갖 비방을 일삼습니다. 여러분, 여로보암의 어리석음은 오늘날 이 시대에도 도처에 널려 있으며, 둘러보면 온통 크고 작은 ‘여로보암’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여로보암의 어리석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본문 말씀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누엘을 건축하고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열왕기상 12:25-30)
3. 기도
하나님, 오늘 주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들어가 여로보암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시고, 이 세상이 크고 작은 ‘여로보암’들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여로보암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주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오늘 주의 말씀이 우리 안에 길이요 빛이 되며, 발의 등이 되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를 인도하사 주님을 더욱 깊이 알게 하시고 주의 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에게 지혜와 명철을 주셔서 여로보암의 어리석음에서 완전히 빠져나오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본문 배경
이 본문의 배경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여로보암은 과거 솔로몬 밑에 있던 신하였습니다. 그는 매우 똑똑했습니다. 솔로몬이 그를 똑똑하다고 여길 정도였으니 얼마나 총명했겠습니까? 여로보암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어서 솔로몬을 도와 고속철도, 농업부, 기계부 같은 수많은 국정 과제를 훌륭히 관리했습니다. 솔로몬마저 그를 대단하다고 인정할 정도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한 가지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산당에서 외국에서 데려온 후궁들과 함께 우상을 숭배한 것입니다. 수많은 궁녀와 후궁들을 거느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주다 보니 결국 넋이 나가서 그 여인들을 따라 이방 신들에게 절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몹시 진노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한 선지자를 통해 여로보암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로보암이 지혜로운 줄 아시고 그에게 열 지파를 주어 솔로몬 가문에서 열 지파를 떼어내어 왕이 되게 하셨고, 솔로몬은 본래의 백성인 유다 지파만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어떻게 알았을까요? 틀림없이 여로보암이 솔로몬에게 가서 “하나님이 내게 열 지파를 떼어주셨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듣기에 어처구니가 없지 않습니까? 솔로몬을 끌어내리고 자기가 올라가겠다니 가만히 있겠습니까? 결국 솔로몬이 그를 죽이려 하자 그는 애굽으로 도망쳤습니다. 솔로몬이 죽은 뒤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를 이었고, 여로보암은 애굽에서 돌아왔습니다. 여로보암이 워낙 똑똑하고 그의 세력이 건재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모여 르호보암을 찾아갔으나, 르호보암이 또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르고 맙니다.
그 열 지파가 여로보암을 따라 세운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국’입니다. 사실 나라 전체가 이스라엘이었고, 여로보암이 갈라져 나간 땅은 원래 이스라엘이라 불려서는 안 되었습니다. 본래 다윗과 솔로몬의 나라가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갈라져 나간 뒤 자신의 나라가 이스라엘이며, 자기의 열 지파야말로 정통이고 솔로몬과 다윗의 나라는 유다국이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유다국과 이스라엘국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마치 정통을 이어받은 것처럼 보였지만 곧 심각한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백성들이 모두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몰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관광 수입이 엄청난 데다 제사를 드리려면 제물을 바쳐야 하니, 그 재물이 다 르호보암에게로 들어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계산이 딱 나오니 속이 타들어 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 주민들이 모두 하나님을 예배하러 남한으로 간다면 북한 지도자의 속이 얼마나 타겠습니까? 혹은 남한 백성들이 다 북한으로 예배하러 간다면 골치가 아플 것입니다. ‘돈을 다 저쪽에 가서 쓰면 우리 경제는 어쩌란 말인가?’ 생각할수록 불안해집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백성들이 나를 죽이고 말겠구나! 내 백성들이 다 예루살렘의 백성이 되어 어느 날 나를 죽이고 나라가 다시 르호보암에게 돌아가는 것 아닌가?’ 사실 그 왕위는 하나님이 거저 주신 것이지 자기 지혜로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열 지파를 하나님이 주셨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문득 아론이 떠올랐습니다. ‘아론은 금송아지 하나를 만들었지만 나는 두 개를 만들자!’ 보고 그대로 흉내를 낸 것입니다. ‘아, 기가 막힌 방법이다!’라며 스스로를 치켜세우고 금송아지 아이디어에 자화자찬했습니다. 속으로 ‘내가 금송아지 만들 생각을 다 하다니 얼마나 똑똑한가!’ 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헛짓거리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꾀가 너무나 훌륭하다고 여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다. 옛날에 아론도 금송아지를 만들지 않았느냐? 아론의 후손이라야 제사장이 될 수 있다.”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명분을 내세운 것입니다. 성경에 금송아지가 나옵니까? 나옵니다. 누가 만들었습니까? 아론이 만들었습니다. 참으로 교묘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떤 일을 하든 그 출처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로보암도 명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은 멸망으로 이끄는 명분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열왕기상 12:28)
그는 좋은 생각이라 여겼지만 실상은 썩은 꾀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어리석은 꾀를 좋은 생각인 줄 착각하고 스스로를 재앙 속으로 몰아넣었습니까?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이것저것 만들어냅니다. 이민을 가느라 온갖 고생을 하고, 부패한 관리들은 한탕 챙긴 뒤 어쩔 줄 몰라 처자식을 해외로 보내는 등 난리법석을 떱니다. 사람이 짜낸 수많은 방법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단 하나의 방법만 결코 못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어디에 있든 문제가 없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어디에 있든 문제가 터집니다. 지난 일은 묻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날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남은 생애 동안 온전히 하나님만을 신뢰하십시오, 성도 여러분.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하나는 벧엘에, 하나는 단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고 설득했습니다. 편의점이라도 차린 줄 압니까? 세븐일레븐 편의점을 열어 빨갛고 초록색 간판을 세워두고 “여기 와서 사세요, 집 앞이라 얼마나 편합니까?” 하는 격입니다. 비즈니스 모델도 있고 핵심 기술도 있으며 운영 팀과 관리 시스템까지 갖추어 돈이 쏟아져 들어오니 대단해 보입니다! 여로보암은 당시에 편의점 두 개를 차린 셈입니다. 금이 많으면 집집마다 하나씩 만들어 두지 그랬습니까? 고작 두 개를 만든 것은 관리가 편해서였을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이게 훨씬 편하다”고 하니 백성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예전에는 200킬로미터를 가야 했는데 이제는 50킬로미터만 가면 되니 얼마나 편리합니까! 오늘날 많은 교회들도 편리함만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편리하고 안 하고의 문제입니까?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로보암은 제단에 올라가 대제사장과 일반 제사장의 순번을 정하는 등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그럴듯하게 갖추어 놓았습니다. 그가 제단에 올라섰을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어 재앙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자 여로보암이 손을 내밀며 “저자를 잡아라!”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손을 내미는 순간 그 손이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져 버렸습니다. 미라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말린 고기입니다. 훈제육처럼 매달아 연기로 그을려놓은 색깔입니다. 의과대학에 가서 포르말린에 담긴 표본을 보면 딱 그런 색입니다. 제가 한때 그런 표본들을 보고 포르말린 냄새를 맡고 났더니 학교 식당에서 제육볶음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냄새도 포르말린 같고 고기 색깔도 미라 같아서 도저히 넘어가지 않아 비위를 되돌리는 데 한참 걸렸습니다.
여로보암은 자신의 팔이 말라비틀어진 것을 보고 기겁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람에게 기도를 부탁했고, 기도하자 팔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팔이 회복되었으면 이제 하나님의 두려우심을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계속 붙들었습니다. 왜일까요?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돈을 쓰는 것을 생각하면 속이 뒤집어지고, 백성들이 모두 그곳으로 몰려가면 자기 목숨이 위태로워질까 봐 불안하여 자기 목숨을 스스로 지키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틀림없이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눈앞에서 행한 일을 보고도 몰랐겠습니까? 훗날 그 하나님의 사람도 사자에게 물려 죽었는데, 《열왕기》의 이야기는 참으로 많은 교훈을 줍니다.
저는 예전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일》이라는 제목으로 열왕기상·하 성경공부 책을 상·하권으로 쓴 적이 있습니다. 여로보암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만 골라서 행했으니 어찌 망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에게 권면하건대, 그 누구와 대적할지언정 하나님과는 결코 대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대적하고서 인생이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로보암은 지독하게 완고했습니다. 결국 여로보암의 집안은 이스라엘 왕위를 단 1대밖에 누리지 못하고 다른 가문에 의해 몰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조금 짚어보자면 이렇습니다.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남유다는 다윗 왕의 아들과 손자들로 대를 이어갔습니다. 북이스라엘은 훗날 수도가 사마리아가 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계속해서 반역이 일어났습니다. 악명 높은 이세벨과 아합 왕에 이르기까지 반역이 꼬리를 물다가 결국 나라가 멸망했습니다. 북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반역과 궁중 암투와 암살이며, 제대로 명대로 산 왕이 거의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왕 노릇 안 하면 어떻습니까? 평범한 백성으로 편안히 살면 안 됩니까? 기어이 암살당하는 길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본문의 배경입니다.
5. 여로보암의 어리석음 첫 번째: 생각의 논리 체계
여로보암의 사고 논리 체계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교회 안에 크고 작은 ‘여로보암’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의 논리 체계는 하나님께 속한 우리들의 생각과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묻겠습니다. 여로보암이 직면했던 도전이 과연 위기였을까요?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하고, 돈을 그곳에 쓰고, 십일조와 헌금을 다 예루살렘에 바친다면, 당신이 여로보암 왕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세금은 어떻게 걷겠습니까? 세금이 걷히지 않으면 국가 경제는 어찌 됩니까? 경제가 무너지면 정치가 흔들립니다. 정치경제학의 기본 논리대로 경제가 나빠지면 정치가 불안정해지고, 백성들이 소요를 일으켜 통치자를 몰아내려 할 것입니다. 이 논리는 매우 단순합니다.
이 논리가 맞습니까? 사람의 눈으로 보면 맞습니다. 그러므로 논리 체계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이생의 논리 체계요, 다른 하나는 영생의 논리 체계입니다. 여로보암이 붙든 것은 이생의 논리 체계였으며, 이러한 논리 체계는 사람을 파멸로 이끕니다! 성도 여러분 안에 이생의 논리 체계가 자리 잡고 있다면 생각할 것도 없이 당신은 ‘여로보암’입니다. 이생의 논리 체계와 영생의 논리 체계는 완전히 다른 장부입니다! 우리가 영원 속에서 썩지 아니할 영광을 추구한다면, 사람을 슬프게 하는 일 따위는 지극히 가볍고 잠시 받는 환난에 불과하며 대수로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영원한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이생의 것만을 추구한다면 틀림없이 ‘여로보암’이 될 것입니다. 이 논리 체계는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묻겠습니다. 여러분 안에는 영생의 논리 체계가 있습니까?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가 온통 세상의 일뿐이라면 반드시 정치경제학이라는 논리에 동조하게 되며, 사람은 이 논리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경제가 나빠지고 돈이 다 예루살렘으로 흘러 들어가 세금을 걷지 못하면 도로를 어떻게 놓고 백성의 삶을 어떻게 개선하겠습니까? 십일조 10퍼센트뿐만 아니라 감사 헌물, 출산 헌물 등 여러 헌물을 합치면 평균 15퍼센트가 됩니다. 백성들이 소득의 15퍼센트를 예루살렘에 바쳐버리면 정부는 어떻게 세금을 거둡니까? 북한 주민들이 돈의 15퍼센트를 남한에 가져다 바친다면 지도자 입장에서 어찌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왜 답답할까요? 논리 체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루살렘에 가서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축복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논리 체계입니다. 그러므로 이생을 추구하는 것과 영생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양립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50퍼센트는 영생을, 50퍼센트는 이생을 추구합니다. 그것을 영적 음란이라 부릅니다. 하나님께도 충성하지 않고 세상에도 충성하지 않으니 큰일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돈의 관점으로만 생각하면 반드시 망합니다. 모든 일을 물질의 잣대로 생각하는 것이 곧 이생의 논리 체계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영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입니다. 영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하나님이 내게 이 왕위를 주셨으니,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헌금을 바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흥왕하게 하실 수 있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남아 있습니까? 완전히 사라집니다. 영계의 자원이 세상의 자원보다 훨씬 풍성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이 논리 체계에 대해서는 제가 강해한 마태복음 성경공부 책 《두 나라 두 가지 논리 체계》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논리 체계에 따라 추구하는 바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람들은 온통 세상일에만 매달립니다. 자식을 낳아 노후를 대비하겠다고 합니다. 무슨 노후 대비입니까? 치매에 걸려 아무것도 모르면 노후 대비도 필요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양로원에 가서도 권리를 지켜야 한다고 농담을 합니다만, 제정신이 아닌데 무슨 권리를 지킵니까? 고통도 모를 텐데 권리가 무슨 소용입니까? 아무것도 모르면 권리를 찾을 필요도 없으니 차라리 속 편하지 않습니까? “양로원에서 괴롭힘을 당하면 아들을 불러 권리를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들 하지만, 치매에 걸리면 만사가 끝입니다.
사람이 영적인 세계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큰 화를 당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영적인 안목이 있어 영적인 눈으로 바라본다면 아버지 집에는 재물이 넘쳐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만 하면 여로보암의 운명은 완전히 새로 쓰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야 합니다. 여로보암은 자기가 지혜롭다고 여겨 모든 일을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솔로몬도 나를 똑똑하다고 인정했는데, 내가 솔로몬보다 지혜롭거늘 어찌 이 정치경제학을 모르겠는가?’ 하다가 스스로를 저주 속에 가두어버린 것입니다.
6. 여로보암의 어리석음 두 번째: 자기가 얻은 것을 기필코 붙잡으려 함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얻고 나면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잊어버립니다. 특히 여로보암은 왕위를 얻었을 때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지혜로 얻은 줄 알았습니다. 우리 중에도 하나님이 직장에서 복을 주셔서 계속 승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승진할수록 자기가 똑똑해서 그렇게 된 줄 압니다. “내가 번 돈은 다 내 피땀으로 번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정부를 향해 “내가 번 돈은 다 내 힘으로 번 것”이라고 해도 조사를 당할 판인데, 하물며 하나님을 향해 “내가 다 번 것”이라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열 지파 백성들이 나를 따르는 것은 다 내가 지혜롭고 똑똑해서 나를 따르는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으로 인생은 완전히 끝장납니다!
자신이 얻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안다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반대로 자기가 애써 번 것이라 생각하면 바칠 때 아깝지 않겠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세상의 왕위나 재물 가운데 당신의 지혜로 얻은 것이 얼마나 됩니까?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그 자리에 올랐다고 여긴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여로보암’이며 반드시 재앙이 임할 것입니다.
갑자기 부유해진 수많은 가정들을 보면 본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주신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귀신이 준 것이라면 어떨까요? 순식간에 출세하게 만들어놓고 꼭대기에 올라갔을 때 사다리를 쓱 치워버려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듭니다.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망했는지도 모르는 집안이 많습니다. 어제 한 자매님이 찾아와 가정사를 털어놓았습니다. 아버지가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부자가 되더니, 차 트렁크를 열면 돈다발이 가득 쌓여 있었는데, 나중에는 갑자기 쫄딱 망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도, 왜 망했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다 영계에서 귀신이 조종한 것입니다. 귀신은 늘 그런 식으로 역사합니다.
과거의 최고 부자가 지금은 최악의 빚쟁이로 전락한 모습을 우리는 많이 보았습니다. 바벨탑을 쌓아 올라가다가 한순간에 추락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 자기 능력으로 얻은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기필코 붙잡으려 한다면 비참해집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고 하나님만을 굳게 붙잡으십시오. 억지로 붙들려 애쓰지 마십시오. ‘이 왕위는 어차피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하나님께 드린다. 거두어 가시려면 거두어 가시옵소서’라고 내려놓았다면 그의 왕위는 영원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원리를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제게 목사라는 직분이나 다른 어떤 자리도 붙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목사님은 마치 황제 같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저는 그런 자리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가져갈 테면 누구든 가져가십시오. 하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으니 제 삶이 얼마나 자유롭고 풍성합니까! 이 사역의 길에서 수많은 목회자들이 고통스럽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저는 이 일을 너무나도 즐겁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자리를 지키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따위 자리를 지켜서 무엇하겠습니까? 그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주님만 꼭 붙드는 것입니다. 자기가 얻은 것을 움켜쥐려 하면 반드시 화가 임합니다.
7. 여로보암의 어리석음 세 번째: 민심에 영합함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유다까지 가서 제사드리는 것을 귀찮아한다는 사실을 간파했습니다. 민심이라는 기반이 있고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백성들을 위해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을 열어준 것입니다. “여기 와서 제사를 드리면 얼마나 편리합니까?”라며 두 군데에 금송아지를 차려놓았습니다. 사람들은 애굽에서 인도해 낸 신에게 제사드린다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백성의 뜻에 맞추어 신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민심을 따라 신을 만드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가 대중의 요구에 영합하는 것이 과연 진리입니까? 민심을 따르는 것은 진리가 아니며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섬기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역합니다. 민심이요? 민심 따위가 무슨 상관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중요하지 사람의 뜻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중의 비위를 맞추려고 진리를 왜곡하는 것은 허튼짓이며, 민심을 위해 신을 만들어내는 것은 금송아지를 만드는 짓입니다. 교회는 사람의 뜻을 따르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사람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해야 합니다. 대중의 뜻만 좇는 자들은 결코 잘될 수 없습니다! 진리가 반드시 제 손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진리는 언제나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저는 제 자리를 지키려고 세상의 논리 체계를 따르거나 정치적인 술수를 부리며 여로보암의 길을 걷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그런 잡다한 짓이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들 안에 헛된 짓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저 역시 과거에는 그런 짓을 한 적이 있지만 회개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만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음을 모른다면 얼마나 비극입니까? 제게 묻는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으면 모든 것은 헛짓거리가 되고 온갖 인간적인 수단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대신하게 됩니다.
8. 여로보암의 어리석음 네 번째: 완고함
보십시오, 여로보암은 두 금송아지를 만들었다가 손이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졌고, 다시 회복되는 일을 겪었습니다. 그렇다면 백성들에게 “내가 금송아지를 만든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라고 고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온 나라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정책이 틀렸다고 선언할 수 있는 정치가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정치적 입지가 흔들릴 텐데 이해가 되십니까? 틀렸어도 맞다고 우기며 밀어붙이지, 틀렸다고 인정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틀렸다고 하면 사람들이 “틀린 줄 알았으면서 진작 왜 그랬느냐?”라고 비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자신의 논리 체계에 꽁꽁 묶여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은 반드시 마음이 부드러워야 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일을 그르쳤습니다. 세상 정치 시스템으로 교회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니 실수할 수도 있지요. 저도 연약한 사람이니 틀렸으면 고치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정책을 추진하다가 잘못되었을 때 “내가 틀렸습니다”라고 쉽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말하기 어렵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든 것이 잘못이었다”라고 하면 금세 권좌에서 끌어내려져 발붙일 곳이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틀렸어도 억지로 합리화하며 밀고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완고함이라고 합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완고했던 것과 똑같습니다. 사람이 세상의 논리 체계를 따르고, 자신의 왕위를 결코 놓지 않으려 하며, 사람들의 눈치만 살핀다면 결코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주의해야 합니다.
며칠 전 제 머릿속에 이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자 백성들은 “왜 그렇습니까? 당신만 섬기고 우리는 못 섬긴단 말입니까?”라고 항변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라고 경고했습니다. 대단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질투하시는 분이시기에 제멋대로 함부로 행해서는 안 됩니다. 화인명정신학의 가장 기본적인 핵심 논리 체계는 바로 ‘내가 이것을 잘못했구나, 그렇다면 바른 것은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이러한 태도가 심겨진다면 완고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완고함의 끝은 파멸이며 그것이 곧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 안에서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부드럽게 낮추어야 합니다. ‘틀렸으면 틀린 것이지, 내가 잘못한 게 뭐 그리 대수인가?’ 사람들은 저를 거룩함의 표본으로 여기곤 하지만, 저는 죄인의 표본일 뿐 진리의 표본도 거룩함의 표본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어떤 이가 예수님께 나아와 “선하신 선생님이여”라고 하자,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조차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늘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바르게 고쳐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올바른 것은 무엇인가? 아, 이것이 올바른 것이구나.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라 하는가? 아, 말씀이 이렇게 가르치시는구나. 내가 예전에는 잘못 알았구나’ 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목사님은 5년 전에는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왜 오늘은 다르게 가르치십니까?” 하고 따집니다. 5년 전에는 제 수준이 낮았지만 지금은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논리는 매우 단순합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정치적 굴레에 얽매여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지 않는 한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면 이러한저러한 염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9. 결론
여로보암의 어리석음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습니까? 세상적 논리 체계에 갇힌 데서 왔습니다. 결코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지 마십시오. 자기 지혜를 의지하는 것이 곧 어리석음입니다. 여로보암의 ‘똑똑함’은 실상 어리석음이었으며, 스스로 잘났다고 여겼지만 결국 그 ‘네 가지 어리석음’으로 인해 집안이 풍비박산 났습니다. 왕위를 지켰습니까?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겨우 20년을 유지했을 뿐이지만, 그 20년 동안 하나님의 진노를 끊임없이 쌓다가 결국 멸망을 맞이했습니다. 자기 힘으로 움켜쥐려 애써도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붙잡아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것도, 재물을 지키려는 것도, 민심에 영합하는 것도, 완고하게 고집을 부리는 것도 다 어리석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네 가지 어리석음’에서 완전히 벗어나십시오. 먼저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를 세우면 반드시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다 함께 찬양을 드린 후 오늘 헌금을 정성껏 드리겠습니다. 헌금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면 헌금하지 마십시오. 성도 여러분, 화인명정신학의 논리 체계를 아십니까? 교회를 세우는 데는 돈이나 사람의 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할 때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며, 그분의 영광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됩니다. 그러므로 돈을 바라는 것이 아니며, 드리는 헌금은 마땅한 도리입니다. 헌금은 곧 은혜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길은 결코 가서는 안 됨을 분명히 아시고, 다시는 여로보암의 어리석음에 빠지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합시다. 마음속 논리 체계가 아직 바뀌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읽고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가십시오.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우리가 주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코로나에 걸리는 것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습니까? 통제하지 못합니다. 철저히 방역하고 외출도 안 하며 창문을 꽁꽁 닫고 방 안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걸릴 사람은 다 걸립니다. 코로나는 영적인 것인데 사람이 어찌 막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하노니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마땅한 바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미래를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로보암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과거에 쥐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을 굳게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손을 들고 저와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는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끊어버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로보암의 어리석음을 거절합니다. 오늘 나는 다윗 왕을 본받아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든 어리석은 생각들은 물러갈지어다! 내가 주의 뜻대로 행할 때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선포합니다. 오늘 나는 영원한 영광을 구하며 썩지 아니할 복을 사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오니 주여 나의 헌신을 기쁘게 받아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