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2019年02月27日分享录音
Q1:查经少和祷告少,就凭着信心可以吗?
这个问题问的好,但是我反问你一句话,如果有一个生意能赚一万块,然后你说我不要,我就赚个一千块就行了,好像我们不大愿意赚钱一样,那你说这人是不是有点傻?
今天你说你相信,但是你相信的是什么呢?如果一个人相信这是宝贝,他会少要这宝贝吗?你说这聚宝盆,把一块金子丢进去会出来很多的金子,这丢进去,可是一百倍的回报。那你说我不丢金子,你说我丢进去一分钱,那回来一百倍就是一块钱,那如果你丢进去一百块,那回来就是一万,那如果丢进去一万,那就回来一百万,那我问你,你会投入的很少呢?还是投入的很多呢?我相信你会投入的很多。
所以这个人对神的话没有感觉,查经少祷告少的信心到底是什么信心呢? 他不知道神儿女的名分是何等的宝贵,如果知道了我们就会爱神,如果我们爱神,我们怎么可能不爱神的话呢?读少一点《圣经》,祷告少一点,你以为这是廉价的福音吗?
我们如果信,我们就将自己的性命献上,哪怕你今天献上一点,然后明天再多一点,那你就不会是一个读《圣经》少,祷告少的人,因为我们很需要靠着圣灵不断的治死肉体的恶习。如果你治不死肉体的恶习,肉体的恶习就会反过来治死你,你要不要呢?但是很多人都不在乎。读经少祷告少,光凭着信心不是不可以,但是这样的信心是有问题的,因为不知道什么是宝贝。
Q2:在工作中,总是有种患得患失的感觉,也有想凭着信心去抵挡,也知道这种感觉不是出自于神的,但还是常常会出现,该怎么对付呢?
这个问题不要一下子对付掉,因为一下子你也对付不掉,那我们就一点一点的对付掉,需要怎么办呢?
第一,靠着神的灵不断的在悟性上认识神。就像我们查经一样,就是在不断的认识神。如果你在悟性上不认识神,那你信的是什么呢?盲目的相信,那是没有什么用的。所以今天我们有患得患失的感觉,就是因为有一颗奴才的心,不知道我们的神可以保守你,患得患失就是不信。
第二,要有神儿女的心态。你不相信,神没有办法帮助你,所以你凭着信心去抵挡,你稍微有一点我是神儿女的心态,那你得着的就是神儿女的信心。神要把万物都赐给我们,我们是神的后嗣,如果你这样想的话,那还有什么好患得患失的呢?就是因为不尊贵,像个奴才,觉得这工作很重要,我们自己不重要,就会这样,这种感觉肯定不是出自于神的,而是出自于肉体。
所以治死自己肉体的恶习,实际上就是在对神信心的实践上不断的提升,然后不断的恢复神儿女自由神圣的荣耀。
Q3:有什么办法让我的儿子快点信主吗?
没有办法让你的儿子快点信主,有人会说,大家都为我的儿子祷告,让他快点信主,但是《圣经》当中有这样的教导吗?或许有或许没有,我是没有看见。信主不信主是他自己的选择,唯一的办法就是让他的信不在于人的智慧,只在乎神的大能。
我们讲的道不是靠人智慧委婉的言语,乃是靠着神大能的明证。所以办法就是用圣灵大能的明证让他看见神,但是最后他信还是不信,还是要看他自己的选择。
让你儿子尽快信主,这件事不用那么着急。我给大家举个例子,亚伯拉罕有一个儿子叫以实玛利,一个叫以撒。可他没提过他儿子信还是不信,他该说的时候就会说。翻转自己的家族,最重要的一件事是把神的话传递出去,并且传神大能的福音。神是好的神,信主是极有恩典的。
一个人要是知道这是好事的话,谁不要呢,除非傻瓜蛋不要。所以不要逼着他信主,有的时候加点压力,传个福音也挺好的,因为人总有问题,就把他带到始于信,以致于信,从一点点的信心开始。有些人常常会问别人信不信主,往往得到的是我不信的回答,那就卡住了。但其实不需要这样子,带他经历一下,祷告很快就经历神,经历之后就很容易信了。始于信以至于信,这句话很重要,大家要紧紧抓住。
不是完全信或者完全不信,而是始于信以至于信。带着你的儿子开始尝试信心,就很好了。
Q4:我想翻转在单位的辖制,怎么行才可以翻转?
翻转单位的辖制,其实《圣经》里面没有教导,《圣经》里教你的是治死肉体的恶习。在单位的辖制,不管是人际关系也好,还是人自己的问题也好,还是所有的辖制也好,都是出乎于这几个原因:
第一个原因,就是体贴肉体的原因。体贴肉体和识别善恶,是人最邪恶的东西,这些东西都是害人不浅的,但是我们常常会把问题甩锅给别人,比如甩锅给魔鬼,我们要自己背起来,治死肉体的恶习,治死自己肉体的恶行,是我们基督徒当尽的最重要的责任。
第二个原因就是不信,我一而再,再而三的告诉你,你相信吗?我说你是神的儿女,你完全没有必要担心这个担心那个,但是你就是要担心,也不知道神是大能的神,也不知道神的福音是大有能力的福音,是让人从死里复活的福音,这些屁事在神眼里都是小事情,要知道我们的神凡事都能,所以我们要从这种不信的状态里面走出来,关键不是那些问题,而是你自己。
Q5:信心是个感觉吗,状态好就有信心,状态不好就软弱吗?
信心不是感觉,信心是个选择。不信会创造不好的感觉,信心会创造好的感觉。不是感觉好了就有信心,也不是感觉不好就没有信心。想要好的感觉,就要用信心创造出来,而不是顺着感觉走。有首歌唱,跟着感觉走,跟着感觉走,这就是往死里走了,这样感觉不好的时候越来越多,活的不是很悲哀吗。要知道有信心的人,感觉一定是最好的。这不是我们对自己有信心,而是对神有信心。所以信心不是个感觉。
Q6:我以前以为祷告多了就是宗教味很浓,现在一天不参加祷告就浑身觉得不舒服,一祷告人就精神抖擞。这是不是属灵的认知提高了?
因为祷告的时候,神的灵就运行。神的灵运行在我们身上,我们不是没有感觉的,其实感觉是非常棒的。我们在祷告上的认识是一个小小的台阶,我们还要认识更多的真理。更多认识属灵的真理,就有更多得着,得着了就更多的认识神,认识神就更加有能力,更有能力就更有盼望,更有盼望感觉就更好。
Q7:怎么才能够做到爱人如己呢?
始于信以至于信。如果一个人自私,只爱自己,是一个愚蠢的选择,因为那是与神为敌。如果人体贴肉体,爱自己,爱世界,识别善恶,也是很愚蠢的。这世界上只有两种人:一种叫谨守遵行神的话的人,另外一种叫不谨守遵行神的话。谨守遵行的就必蒙祝福,不谨守遵行的就必受咒诅。
谨守遵行是什么原因呢,不是因为我们靠着肉体去谨守遵行,而是信心。我们相信了,才愿意行。爱人如己是得着恩典,如果那是划算的,你会不做吗?如果是吃亏的,你会做吗?划算的,回报很高的,当然要去做。
Q8:爱人如己的定义是什么?
首先的定义是爱。爱人如己的爱是很有意思的,很多基督徒把体贴肉体叫做爱,其实那不是爱。有一个牧师,他的会友跟他说:牧师,我想吃饺子。他的牧师就给他煮了猪肉馅的饺子端给他。他说:牧师,其实我不想吃猪肉白菜馅饺子,我想吃鲍鱼馅。真是难为他们牧师了,那么穷还想吃鲍鱼。
我讲完这以后,有个姐妹说,这牧师好有爱心啊。我听了以后很难受,因为这个爱是体贴肉体,所以爱人如己的定义是什么。首先这个爱,是属灵的爱,而不是体贴别人的肉体。我想爱人如己是照着神的话,是耶稣基督的爱。我们把人的咒诅除去,把人身上属肉体的东西对付掉,使人进到神的祝福里,这是最棒的爱。
Q9:盼望是还没有看见的吗?怎么会有看见的盼望,这是盼望成真的意思吗?
有很多姐妹喜欢名牌包包,假如我手里有个LV包,然后我说:我盼望我手中有个LV包。这不是很怪吗,已经得着的还需要盼望吗。得着的就不用再盼望了。所以我们在属灵的认识上,得着的不用再盼望,但还有很多不认识的属灵真理啊,我们就盼望更多的认识,我们在一个地方已经很像耶稣了,我们就渴望在其他地方像耶稣。
**但我们若盼望那所不见的,就必忍耐等候。(《罗马书》8:25 )**我们要等候的是活着的时候就得着儿子的名分,而不是等候死了以后有荣耀。我们的神是很实在的,祂是活人的神,我们在活着的时候就得着儿子的名分,身体得赎。
我们在属灵的山峰上不断地攀登,你站在你目前的高度上不知道下一步会怎样,但如果我们盼望下一步,然后再登上下一个台阶,那你就会看到我们所盼望的东西,如此循环,我们就会不断去到更高的层次,这就是竭力追求的路。不要停留在当下你所看见的,以为自己已经得着就满足,我们要知道人活着的关键是在于盼望,人若失去盼望就麻烦了。
昨天有个姐妹跟我说她很郁闷,因为她没有什么可盼望的,她之前所盼望的都得着了。确实如此,如果人所盼望的都得着了,那剩下的就是绝望和失望了。今天无论你站在哪一个层次,只要再树立一个目标,这样人就不至于懒散,在认识基督的过程当中,虽然还没有看见我们已经完全像耶稣,但因为我们身上有神儿女的名分,我们只要还有一点点不像耶稣,(其实我们当中很多人都不像耶稣),我们就继续攀爬,直到得着儿子的名分。
所以我们就开始盼望进到下一个层次,如果你没有下一个层次,那盼望就会变为失望和绝望。上帝造人的时候,祂很清楚人活着的关键要素,就是人非常需要盼望,所以今天我要告诉我们当中绝望的人,没有盼望的人,你不能够再盼望世上的东西,因为世上的东西你盼望完了就是绝望,但是如果我们所盼望的是得着神儿子的名分,那我们就会一步一步更像耶稣基督。
我想,现在的苦楚若比起将来要显于我们的荣耀就不足介意了。受造之物切望等候神的众子显出来。(《罗马书》 8:18-19)
神的众子怎么显出来?有的人在竭力攀登,有的人就放弃了,有的人继续爱世界,有的人因不知神儿子名分的尊贵而不相信自己已得着神儿子的名分,所以最后神的众子显出来。我们这些人总有一天会越来越像耶稣基督,那就叫得着儿子的名分,我们的身体得赎,就算我们叹息劳苦,也是仍然带着得享神儿女自由的荣耀的指望,走的每一步都是因着盼望,因着信心,走的每一步都变得更像耶稣基督。
我们里面的盼望,不是已经得着的意思,所以得着的不是盼望。现在盼望自己还没有得着的,这是很奇妙的一件事。我们基督徒的信仰是一个竭力追求的信仰,《圣经》说,不要以为我已经得着了,我乃是竭力奔跑,要得着耶稣基督,从上天赐下来给我的奖赏。(《腓立比书》3:12)
Q10:得着儿子的名分,乃是身体得赎,我还有点糊涂
像耶稣跟对付肉体,两者是彼此相关的。一个属肉体的人他不可能像耶稣,一个属肉体的人就是还没有得赎。人身上所有的问题跟身体没有得赎有关,所以我想,如果完全像耶稣基督,那你会是什么样的人?
你完全像耶稣基督,等候得着儿子的名分,就像是我们一开始是儿童、奴才,然后慢慢了解神的心意,就成了神的朋友,再然后成为神的儿子,就和神完全合一。所以等候得着儿子的名分,乃是我们的身体得赎,说明什么呢?就是我们的身体完全有一个复活的样子,神复活的能力会在我们生命当中。
假如有一天我生病,这只能证明一件事,就是我还有毛病。圣经什么时候记载耶稣基督生病了?耶稣基督怎么不生病呢?病跟罪紧密相关。所以我们要胜过我们取死的身体。实际上,得着极大的恩典,其中就是包括健康(财务健康、身体健康)。
所以《申命记》中所记载的灾病,其实就是一个咒诅,咒诅从哪来的?就是从违背神的话而来的。什么样的人违背神的话?就是属肉体的人。所以属肉体的人就是与神为仇,就天生的违背神的话,然后身体就很多毛病。
Q11:有一个姐妹说,我的一个不信的朋友问这样一个问题,我不知道该怎么回答。为什么我们说事情成功了要归功于神,这样的想法是不是太幼稚了,动手是我自己动手,承受是我自己承受,为什么要归功在神的身上,祂有帮过我吗?
她是一个不信的人,她应该好好归功于她自己,千万别归功于神。不信的人归功什么神。至于我为什么动手做工很好我归功于神,是我愿意,我相信,我所有的都来自于神。她不相信,她所有的都来自于她自己,活在咒诅当中就活该。
Q12:既是儿女,便是后嗣,就是神的后嗣,和基督同作后嗣。这段话不懂。
其实这段话很有意思,神的就是我的,我的就是神的。说句老实话,我们没有什么东西好给神,神有宇宙万有你能给祂什么呢。所以最后我们把我的给神就是一个说法而已,但是把神的得着,得着神给我的,那就是后嗣,后嗣继承神的产业。
我们是继承神产业的人,如果我们继承神所有的产业,那全是永久地契。和基督同作后嗣,就是继承神所有的好处,所有的东西。既是儿女,就是后嗣,既是神的后嗣,就是继承神产业的人。
Q13:另外一个姐妹问,《圣经》当中有很多例子是拣选整个家庭,然而以利和撒母耳的后裔却违背神,怎么理解神拣选一个家庭这个问题。
拣选一个家庭,有吗,有拣选整个家庭吗。大家要知道《圣经》是怎么说的,从肉身生的,就是肉身;从灵生的,就是灵。(《约翰福音》3:6)
今天我遇到一个传道人,他给我讲了一句话,也是我常说的,耶稣回答那人说:谁是我的母亲?谁是我的弟兄?就伸手指着门徒说:看哪,我的母亲,我的弟兄。凡遵行我天父旨意的人,就是我的弟兄、姐妹和母亲了。(参《马太福音》12:48-50)所以我们今天用肉身来定义这东西很奇怪。
比如说在新加坡,有一群牧师推动家庭第一,我也懂他在推什么,他在跟神作对。所以我想,肉体生的没有什么太大用,连耶稣都说,谁是我的母亲?谁是我的弟兄?遵行我父旨意的才是,其实后来写《雅各书》的雅各,就是耶稣的弟弟,后来从雅各那里出去的人,一直传扬割礼,其实那不是耶稣基督的福音。我想这是一个很奇妙的事。今天弟兄姐妹千万不要用肉身,肉身那东西能成就了什么呢。
我们只有一条路,就是主耶稣为我们开辟的治死肉体的路。我们效法耶稣基督,然后我们就开始不断地像儿子。要知道我们心面的惧怕、争竞、嫉妒、攀比等使我们难受的东西都是属肉体的,而在我们主耶稣基督里是没有这些东西的,祂虽活在肉身之内,但祂却有神儿子的样子,祂本来也就是神的儿子。
我们要确切地知道,我们要与耶稣基督一同得荣耀,我们要彻底弃绝那些与神隔离的,窃取神荣耀的错误神学观念,因为我们的神巴不得与我们一起分享祂的荣耀。
预先所定下的人又召他们来;所召来的人又称他们为义;所称为义的人又叫他们得荣耀。(《罗马书 8:30)
我们每一次的得胜都是荣耀神的名,在治死肉体的过程中我们就越来越像神,有一天你就会得着神儿女那种完全自由的状态。我们要带着这样的盼望往前奔跑,就是每一步得胜,都越来越像神,每一步的得胜、争战,都不停息。
Q14:等候儿女的名分,乃是身体得赎。如果有《申命记》28章里的灾病,那么就是还没有等候到儿女的名分吗?
我们今天在这世上是带着盼望,等侯得着神儿子的名分,指望得着神儿女自由的荣耀,指望和耶稣基督一同受苦,也必和祂一同得荣耀。那荣耀就是得胜,每一次的得胜都会荣耀神的名,但是每一次的得胜都是很辛苦才得来的。大家不要以为我很平安",我很舒服"就挺好,而其实那种``平安",会让人溜溜达达地就到地狱里去啦。
但我们若盼望那所不见的,就必忍耐等候。况且,我们的软弱有圣灵帮助;我们本不晓得当怎样祷告,只是圣灵亲自用说不出来的叹息替我们祷告。鉴察人心的,晓得圣灵的意思,因为圣灵照着神的旨意替圣徒祈求。我们晓得万事都互相效力,叫爱神的人得益处,就是按他旨意被召的人。(《罗马书》 8:25-28 )
我们不要那些所谓的平安、舒服,我们要不断对付肉体,在这过程中,我们会软弱,但神必帮助我们,圣灵必帮助我们,因为我们相信我们是神的儿女。连祷告这件事圣灵都帮助我们,祂是监察人心的神,祂晓得我们的需要。
神爱我们,但你是否认为自己已经得着儿子的名分,你所受的是儿子的心,还是带着惧怕的奴仆的心,是很关键的。我们带着儿子的心,放下所有的惧怕,我们要相信神爱我们,已经给了我们儿子的名分。
我们是否选择爱神是很重要的,是因为爱神一定得着益处,为什么叫爱神的人得益处,爱神就能够领受到神的爱,而不爱神,就领受不到神的爱。有的人说自己的父母不爱他,实际上是他不爱自己的父母,所以自然就领受不到父母的爱。今天我们跟神的关系也一样,如果我们爱神,就能得着来自于神的益处。
因为他预先所知道的人,就预先定下效法他儿子的模样,使他儿子在许多弟兄中作长子。预先所定下的人又召他们来;所召来的人又称他们为义;所称为义的人又叫他们得荣耀。《(罗马书)》8:29-30 )
预先这个词,在这里出现了好几次,是因为神早就知道我们里面会怎样想,所以我们要确实的知道,我们是否愿意相信神去效法祂儿子的模样,这个选择权掌握在我们自己手中。人要想活的很精彩,活出神的荣耀,就要学习走信心的路,我们要相信我们的神是个好的神,而我们自己就是那预先所定下的人,神已经为我们付了赎罪祭,我们已被称为义人,我们就得着神儿女自由的荣耀,神也必帮助我们。
上礼拜在我做分享的时候,好多人被释放。他们被释放是我做的吗?不是。是他们心里开始相信神要释放他们,所以他们就开始得释放。因为人身上具有有神儿女的样子是神的旨意,所以如果你身上只有一点儿神儿女的样子,那你就要渴慕让自己活得越来越像神。我自己就有一个深深的盼望,就是盼望自己越来越像神,能够做耶稣基督所做的事。如果我们有信心,神就照着我们的信心来成就,你信是得着就必得着,今天就告诉我们自己,神必帮助我们,愿神祝福大家。
서론
오늘은 《로마서》 8장의 두 번째 부분을 나누겠습니다. 여러분은 들으면서 자신의 질문을 제기해도 됩니다. 질문을 가지고 배우는 것과 질문 없이 배우는 것은 학습 효과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도 질문을 가지고 배우는 것을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왜 여러분에게 이렇게 한동안 나눌 시간을 마련했을까요? 여러분이 나눔을 통해 질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질문을 가지고 있으면 학습의 효과가 배가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사람은 공부를 잘하고 어떤 사람은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미리 질문을 준비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가르칠 때 그 사람의 질문과 선생님이 가르치는 내용이 맞아떨어지면, 마치 갈고리처럼 단번에 걸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아주 좋은 학습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은 들으면서 질문을 정리해도 됩니다. 마지막에 여러분의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로마서》 8장은 바울이 논증하려는 이 일을 절정으로 끌어올립니다. 저는 《로마서》 8장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는 것이고, 두 번째 부분은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며, 세 번째 부분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육체에서 비롯됩니다
오늘은 두 번째 부분을 나누겠습니다. 본문은 12절부터 30절까지입니다. 앞의 몇 장에서 우리는 죽을 몸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정말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내겠습니까?” 사실 한 사람이 평생 살아가는 동안 겪는 모든 문제는 바로 자기 자신, 곧 자신의 육체입니다.
성경은 성령이 악령과 대립한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성경에는 우리를 매우 놀라게 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 앞에 있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 있는 장면입니다. 이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런 일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 하면 마귀는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사실 성령과 육체가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죽을 몸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논증하는 것은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우리를 해방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택이 매우 중요해집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육신에게 빚진 자로서 육신을 따라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로마서》 8:12-13)
우리가 받은 것은 아들의 마음입니까, 종의 마음입니까?
우리는 반드시 한 가지를 이해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의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을 보아 왔는데,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아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를 훈육한다고 합시다. 자녀에게 아들의 마음이 있으면 훈육을 받은 후 매우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녀에게 종의 마음이 있으면 훈육을 받은 후 반역하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모두 반역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랄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여러분이 아무것도 모를 때 부모님이 대소변을 받아 내며 키워 주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여러분이 자란 후에도 마음속에 종의 마음이 있다면, 이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어릴 때부터 부모를 미워했다면 그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갓 태어났을 때 무슨 미움이 있겠습니까? 왜 부모를 미워하게 됩니까? 여러분 안에 받은 것이 아들의 마음이 아니라 종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육체에게 빚진 자로서 육체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이미 우리를 해방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선하신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면 선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매정한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면 매정한 하나님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적으로 객관적인 일이 아니라, 전적으로 우리 마음속에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과 아주 멉니다. 예를 들어 우리 가운데 어떤 형제자매들은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이것은 그 사람이 자기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이며, 사실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는 깨달음에 있어 무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깨달음에 있어서 무지하면 그 결과로 우리 안의 느낌이 매우 이상해집니다. 우리도 그것이 실제라고 느낄 수 있지만, 이런 느낌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사실 잘못된 관념에서 온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형제자매들은 자신이 마땅히 아들의 마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모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아들로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러분을 아들로 여기시겠습니까? 사실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여기십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신다면 왜 우리를 해방하시겠습니까? 왜 우리의 죄와 저주를 담당하시겠습니까? 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겠습니까? 이런 질문들은 아주 간단하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모든 사람이 그분께로 돌아오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 같지만 또 아닌 것 같아.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분명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핵심은 여러분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믿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는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제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여러분이 받은 것은 아들의 마음입니까, 종의 마음입니까? 우리는 가정에서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종입니까?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우리 안의 생각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곧 우리의 믿음에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실 그것은 내가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논쟁한 내용입니다.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믿어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만일 자신이 계모가 키운 자식이라고 믿고, 하나님이 자신을 벌하거나 저주하려 하신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이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 자기 안에서 인식한 것뿐입니다.
우리는 깨달음에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해방하셨고, 반드시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의 육체를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육체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신학 체계가 매우 많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주제를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죽게 하기로 작정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살기를 작정하셨고, 핵심은 여러분이 살기를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받아들여 그분의 자녀로 삼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자신이 믿지 않는 것을 가리는 체면치레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왜 우리 가운데 이렇게 치유받는 사람이 많습니까? 하나님은 왜 여러분을 치유하고 해방하십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 때문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믿음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본래 뜻은 우리를 해방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이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말해야 합니다. 나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녀다.
믿어야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하나님도 우리에게로 돌이키십니다. 성경에 나타난 우리 하나님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하나님은 뜨거운 얼굴을 차가운 엉덩이에 갖다 대시는 분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차가운 엉덩이를 하나님의 얼굴에 갖다 댑니다. 우리가 얼마나 악합니까!
오늘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구원하셨고, 이미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치유하셨고 해방하셨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까? 이제 하나님의 주권을 자신이 믿지 않는 것을 가리는 체면치레로 삼지 맙시다. 하나님의 본래 뜻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셨고, 우리를 해방하기로 작정하셨으며, 우리를 치유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는 치유받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는 구속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함으로 우리는 부요하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를 위해 모든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누구든지 믿기를 원하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더욱 믿게 되고, 더 많은 은혜를 받아들이며, 더 많은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이고,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됩니다.
성경의 말씀을 듣고 나면 하나님께서 늘 뜨거운 얼굴을 우리의 차가운 엉덩이에 갖다 대시는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나는 암탉과 같아서 늘 날개로 너희 작은 병아리들을 덮어 주려 하지만, 너희가 원하지 않았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를 원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하나님의 주권을 자주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훔치지 말라고 하며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합니다. 왜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고 나의 것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강조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의지하여 우리 몸의 악한 습관을 죽이면 반드시 살게 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로마서》 8:14)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인도하기 원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하나님의 영은 모든 사람을 인도하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 여러분은 따르기를 원합니까? 그래서 저는 매번 자신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나를 인도하시니 나는 반드시 따를 것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로마서》 8:15 )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아빠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치유하셨고, 이미 우리를 구속하셨으며, 이미 우리를 해방하셨다고 믿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성령은 이미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은 이미 모두 하셨습니다. 핵심은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겨자씨만큼 작아도 괜찮습니다. 믿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겨자씨만 한 믿음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십시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태도가 있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모두 나의 것이라면, 여러분에게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고난받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과 분리된 신학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 되는 신학 체계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에 이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형제자매들은 직장에서 상사가 한마디만 해도 “이제 끝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온갖 걱정과 두려움이 찾아오고, 직장을 잃을까 봐 몹시 두려워합니다. 직장을 잃을까 봐 두려워할수록 더 종처럼 살게 되고, 그러면 상사는 여러분을 더 무시하게 됩니다. 아무 일도 없는데 몇 번씩 걷어차기도 하니, 여러분의 삶은 더욱 고통스러워집니다.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녀인데, 직장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겠습니까? 면접을 보러 갈 때에도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존귀한 모습이 있습니다. “내가 이 직장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직장이 나를 필요로 한다. 내가 어느 회사에 있든 그 회사는 복을 받을 것이다.” 우리 안에 아들의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육체를 죽이기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자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는다고 해서 즉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살아 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육신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육신 안에 있는 이상,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령을 의지하여 육체의 악한 습관을 죽이는 것입니다. 육체의 악한 습관을 죽이는 일이 힘들지 않다고 생각합니까? 매우 힘든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또한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함께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육체를 죽이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본문을 읽고 암에 걸리는 것이 육체를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암은 저주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암의 근원은 육체를 따르는 것과 선악을 분별함에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한 사람 한 사람의 형제자매들을 섬긴 후에 정리해 낸 결론입니다. 그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육체를 따르는 것과 선악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암의 근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는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받는 고난은 육체를 죽이는 고난입니다. 육체를 죽이는 일은 매우 쉽지 않습니다. 오늘 성경을 읽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자유의 영광, 곧 더 이상 육체의 지배를 받지 않는 영광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로마서》 8:21 )
주 예수님은 온전하시고 건강하신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른 길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한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는 것, 곧 육체를 죽이는 죽음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육체를 죽이는 길을 열어 주셨으니,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닮아 가기 시작해야 합니다.
육체에 속한 일은 매우 흔합니다. 우리 안의 두려움, 경쟁과 질투, 우리를 괴롭게 하는 모든 것은 육체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는 이런 것들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육신 안에 사셨지만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과 하나님의 영광을 훔치는 것에 관한 잘못된 신학적 관념을 우리는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그분의 영광을 나누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승리할 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육체를 죽이는 과정 속에서 점점 더 하나님을 닮아 가게 되고,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완전한 자유의 상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참조 《로마서》 8:17)
소망을 가지고 계속 앞으로 달려가기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소망을 가지고 앞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어떤 소망입니까? 매번 승리할 때마다 점점 더 하나님을 닮아 가는 소망입니다. 매번의 승리, 매번의 싸움, 매 걸음마다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로마서》 8:24-25)
무엇을 기다리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오늘 앉아서 죽을 날만 기다리다가 죽은 후에 영광을 얻으면 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우리 하나님은 매우 실제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기다리는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산봉우리를 계속 올라갈 때, 여러분이 서 있는 그 높이에서는 위와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음 단계에 올라가기를 소망하며 한 계단 더 오르면, 바라던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우리가 계속 올라갈 때, 한 단계씩 올라갈 때마다 보게 됩니다. 보게 된 것은 더 이상 우리가 소망하는 것이 아니게 되고, 우리는 다시 새롭고 더 높은 단계를 소망하게 됩니다.
한 단계에 이르면 우리는 더 높은 단계를 소망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힘써 추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미 본 것에 머물지 마십시오. 많은 그리스도인은 늘 이렇게 말합니다. “아, 나는 이미 얻었다! 나는 이미 구원받았다!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삶을 잘 살아 내지 못합니다. 오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핵심은 소망에 있습니다. 사람 안에서 소망이 사라지면 큰일입니다.
어제 한 자매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소망이 전혀 없어요.” 자신이 소망하던 것을 모두 얻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소망하던 것을 모두 얻었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절망과 실망뿐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어느 단계에 서 있든지,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과정에서 게으르지 않도록 목표를 세우겠습니까?
비록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과 닮지 않은 모습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얻을 때까지 계속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를 매우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사람에게는 사실 소망이 매우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절망한 사람, 모든 소망이 없는 사람은 세상의 것을 더 이상 소망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정말 소망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소망한 결과는 절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얻는 것이라면,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로마서 8:20)
우리가 스스로 원해서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에 두셨기 때문에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출신을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우리의 뜻이 아니지만, 일단 왔다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필요합니다.
자유의 영광을 누리기를 소망함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로마서》 8:18-19)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로마서》 8:21)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닌지는 결국 드러나게 됩니다. 어떻게 드러납니까? 어떤 사람은 힘써 올라가지만 어떤 사람은 포기합니다. 포기하기로 선택한 사람은 계속 세상을 사랑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얻었다는 것을 믿지 않고 평생 그렇게 살아갑니다. 결국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때, 소망을 가진 사람은 어느 날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아들의 신분을 얻는 것이며, 곧 우리 몸의 속량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탄식하고 수고할지라도 여전히 이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자유의 영광을 얻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소망으로 인한 것이고, 한 걸음 한 걸음이 믿음으로 인한 것이며,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야 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좋아하든 싫어하든,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되고 내일이 지나면 모레가 됩니다. 2018년도 이미 지나갔고 누구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날은 하루하루 지나갑니다. 여러분도 하루를 살고 저도 하루를 삽니다. 이렇게 가도 가는 것이고 저렇게 가도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있습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로마서》 8:22-23)
어떻게 해도 탄식하게 됩니다. 모든 가정에는 저마다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습니다. 말하기 어려운 사정은 말해도 겪어야 하고 말하지 않아도 겪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아들의 신분을 얻기를 소망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자유의 영광을 얻기를 소망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또한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는다는 것을 소망해야 합니다. 그 영광은 승리입니다. 매번의 승리가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지만, 매번의 승리는 매우 힘들게 얻어집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늘 이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 나는 평안해! 나는 괜찮아! 나는 아주 편안해.” 그러다가 지옥으로 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계속해서 육체를 다루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연약함이 있을 때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임을 믿기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6-28)
오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일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자신이 아들의 신분을 얻었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이 받은 것이 아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종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까? 오늘 모든 두려움을 내려놓으십시오. 우리 안에 있는 것은 아들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아들의 신분을 주셨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반드시 유익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듣기에도 매우 이상합니다. 사실은 여러분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들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오늘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유익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로마서》 8:29)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어느 정도의 사람인지 아십니다. 우리 안에서 어떤 생각을 할지도 아시고, 우리가 그분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를 원하는지도 아십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신 사람들을 그분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정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정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예정된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형제자매 여러분, 잘못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미리 여러분을 정하시고 그분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믿는 것입니다. 선택할 권리는 우리의 손에 있습니다.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참조 《로마서》 8:29-30)
사람이 훌륭한 삶을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려면 믿음의 길을 걷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사람이며,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이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속죄의 제사를 치르셨고, 우리를 의인이라고 부르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의지하여 의롭다 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자유의 영광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반드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결론
지난주에 제가 나눔을 할 때, 한쪽에서는 제가 나누고 다른 한쪽에서는 많은 사람이 해방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해방하시기 시작하실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기 때문에 해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더 이상 종의 모습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으로 살기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스러운 모습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 조금만 있고 아직 닮지 않은 모습이 많다면, 계속해서 여러분의 모습이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하십시오.
제 안에는 깊은 소망이 있습니다. 저는 제 소망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을 압니다. 이 소망은 이루기 쉽지 않은 소망입니다. 그 소망은 제가 점점 더 하나님을 닮고,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모든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에 따라 이루어 주십니다. 믿는 것은 받는 것이며 반드시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받는다고 믿고 실제로 받습니다. 만일 제가 받을 것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을 제가 믿지 않는 것을 가리는 체면치레로 삼는다면, 어떻게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부터 우리 자신에게 말하기 시작합시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