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1. 서론
- 내면이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가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며, 그 어떤 것도 내면이 강한 사람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 승리하는 성품은 매우 중요합니다. 승리하는 성품이 있으면 기뻐하게 되고 잘 살아가게 됩니다.
-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기뻐하기 어렵습니다. 얽매임과 낙심은 귀신이며, 사람이 귀신의 영에 순종하면 번민과 낙심의 영을 불러들이고, 하나님의 영에 순종하면 기쁨의 영을 불러들입니다.
- 내면에서 마귀가 뿌리는 거짓말을 이기기 시작하고, 우리 안의 육신에 속한 관념을 이기며, 자신의 관념과 생각을 바꾸면 사람은 매우 쉽게 기뻐하게 됩니다!
2. 본문 말씀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한복음 16:23-24)
3. 기도
우리의 모든 필요가 주님 안에서 만족을 얻는다는 것을 마음에 깊이 새기게 하옵소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니, 이번 생에 무엇을 구하든지 반드시 받을 것입니다. 주님의 본래 뜻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 본문 배경
- 이 세상의 염려를 제하여 버리십시오. 우리의 모든 필요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우리가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는 것을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귀신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빼앗아 간 것이며, 그 원인은 우리가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인은 승리의 관념을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가 승리하여 우리 육신의 정욕과 탐심을 이기도록 예정하셨습니다.
6. 왜 다 받게 되는가?
- 왜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다 받게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든든한 ‘배경’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 승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약속을 가지고 계십니다.
7. 미래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 차다
- 사람이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소망이 직장이나 사업, 혹은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 여부에 세워져 있다면 사람은 결코 기뻐할 수 없습니다!
- 미래를 향해 소망을 품기 시작하십시오. 오직 소망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위에 둘 때에만 기뻐할 수 있으며,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8. 이 모든 것은 너희를 위한 것이다
- ‘이 모든 것’은 제자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 하지 않는다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부모와 자녀, 형제, 자매, 전토, 집을 버리지 않고, 세상의 모든 것을 버려두지 않는다면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9. 더 이상 자기 손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다
- 사람은 왜 기뻐하지 못합니까? 자신의 손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은 에서와 같고, 아말렉 사람과 같습니다.
- 사람은 반드시 축복과 저주의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으면 하늘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반드시 해야만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10. 결론
-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승리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평생을 번민하고 낙심하며 살지 마십시오!
- 하나님께서는 이미 가장 좋은 예비를 당신과 나에게 주셨으니, 이러한 은혜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축복의 씨앗을 뿌려 기쁨의 사람이 되십시오!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전할 이 주제는 정말 좋습니다. 이 주제가 무엇일까요? 바로 ‘승리해야 비로소 기쁩니다!’입니다. 화인명정신학(중국인 사명 신학)은 기쁨의 신학이며, 승리의 신학입니다. 이곳에 오시면 참 기뻐하기 쉽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승리하는 것이 바로 핵심임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이미 다섯 번에 걸쳐 ‘기쁨 시리즈’를 전했고, 오늘은 여섯 번째 강의입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묻습니다. “선생님, 저도 선생님 말씀대로 베풀었는데 왜 기쁘지 않죠?” 제가 말했습니다. “너무 적게 베풀어서 그렇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또 말합니다. “선생님, 저도 말씀하신 대로 창조적으로 일했는데 여전히 기쁘지 않은데요?” 제가 말했습니다. “너무 적게 창조해서 그렇습니다.” 무언가 조금 창조하자마자 곧바로 ‘어라! 왜 기쁨이 없지?’라고 하기 시작합니다. 묻지 않았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묻고 나니 그나마 있던 얼마 안 되는 기쁨마저 사라져 버립니다. “선생님, 저도 관리하고 수고도 했는데 기쁘지가 않아요. 너무 이상해요! 선생님 말씀대로 해도 소용이 없네요.” 오늘 제가 말씀드립니다. 소용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승리하지 못해서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다 전하고 나면 한 가지 작은 걱정이 생깁니다. 어떤 걱정일까요? 다 듣고 나서 ‘나는 승리하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하면서 기쁨을 완전히 다 날려버릴까 봐, 그러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승리는 매우 간단한 일이며 승리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이겨야 할까요? 사실 바로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입니다. 일단 자기 자신을 이기면 많은 일들이 쉽게 풀립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연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매우 학구적인 그런 연구를 좋아합니다. 저는 살아가는 원리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는데, 기쁨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잘 사는 현상과 잘 살지 못하는 현상도 많이 연구했습니다. 그러다 아주 신기한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기뻐하는 것은 참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고, 번민하고 얽매이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열에 여덟아홉은 온통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아이고, 수고와 슬픔이라니, 힘들다!’ 아무 일이나 하나 붙잡아도 반나절을 끙끙 앓을 수 있고, 아무 일이나 하나 가지고도 며칠씩 번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아직 지나가지도 않았는데 다음 일이 또 찾아옵니다.
제가 말씀드리자면, 그런 주문서들이 하나씩 줄줄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번민의 주문서, 낙심의 주문서, 기쁘지 않음의 주문서, 괴로움의 주문서, 두통의 주문서 같은 것들입니다. 그렇게 계속 받아들이다가 제가 경고하건대, 그렇게 계속하다가 암이라도 생기면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것 아닙니까? 너무나 많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확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나누는 말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절대로 할 일 없이 사서 고생하고 번뇌를 찾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저것 찾아 헤매다가 결국 쓸쓸함만 남고, 평생을 번민 속에서 살고, 평생을 낙심 속에서 살게 됩니다! 쓸쓸함이란 말도 칭찬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비극이 아닙니까? 사람이 죽을 때까지 기쁨의 원리를 모른 채 살아간다면 너무나 큰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화인명정신학에 오신 것을 축하합니다. 이제 그 주문을 끊어버리고 더 이상 주문을 받지 마십시오. 주문이 들어와도 받지 마십시오! 이제 기쁨의 주문을 받기 시작하십시오. 사람이 사서 고생하는 일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제가 예를 들자면 끝도 없습니다. 제가 섬기는 사람들이 다 그렇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야기를 하나 풀자면, 한 줌 쥐면 온통 다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이것이 도대체 얼마나 어렵습니까? 단지 마음속의 선택 하나일 뿐입니다.
어제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어린 자매가 제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왜일까요? 기쁘지 않아서입니다. 기쁘지 않다는 소리를 들으니 저는 오히려 기뻤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남이 기쁘지 않다는데 왜 기뻐합니까?”라고 할 것입니다. 제게 주문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로 이 일을 하는 사람이고, 이 주문을 받는 사람입니다. 이 주문을 받고 나니 배달 기사님이 배달 콜을 잡은 것처럼 그렇게 기뻤습니다! 제가 섬김을 마치고 나니 아이가 기뻐하고 관념이 바뀌었습니다. ‘방울을 단 자가 방울을 풀어야 한다’(결자해지)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사실 제가 푸는 방울은 제가 단 것이 아니라 다 남들이 달아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남들이 묶어놓은 그 ‘기쁘지 않음’이라는 방울을 전문적으로 풀어주는 사람입니다. 방울 풀기 전문가입니다!
어떤 분은 “당신이 풀 수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제가 바로 이걸 연구하는 사람 아닙니까? 어제 해결하지 못한 것도 오늘 연구하다 보면 무언가 발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난 수십 년 동안 어릴 때부터 자라면서 매일 이 일을 연구해오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가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왔습니다. 믿지 못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상관없습니다. 어디 한번 덤벼보십시오. 우리가 차린 이 ‘기쁨의 도장’은 남들이 도전하러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도전하러 오십시오. 한번 덤벼서 발을 차 보십시오. 쇠판을 차서 다치지만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발을 차고 나서 기뻐졌다면 제가 축하해 드려야지요! 제대로 발을 차신 것입니다.
이 어린 자매가 무엇 때문에 번민했을까요? 예를 들면,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볼까? 선생님이 질문할 때 나를 지목해 주셨을까? 선생님이 나를 좋아하실까, 안 좋아하실까? 이런 일들이 아주 수두룩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너무 지나치게 신경 씁니다! 남을 신경 쓸 시간이 전혀 없을 정도로 자기를 신경 씁니다. 남들은 당신을 신경 쓸 시간조차 전혀 없습니다. 스스로를 너무 대단한 존재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신경 쓰는 이런 것들이 도대체 미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사실 아주 미미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 아이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한신(韓信)은 건달들의 가랑이 밑을 기어 지나갔지만, 결국 한나라의 개국 대장군이 되었다고요. 그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강했겠느냐고 말해주었습니다.
사람이 어릴 때 겪은 경험은 사실 미래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적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릴 적 경험들이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차라리 당신을 강하게 만들어 준 그런 경험들만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야기 하나 해줄게. 내가 어릴 때 아이들과 축구를 했는데, 한 경기 내내 공 한번 못 차봤어.” 그 말을 듣고 아이가 까르르 웃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누가 나한테 패스를 해준 거야. 다리를 너무 일찍 들어 올렸더니, 다리를 들자마자 공이 가랑이 밑으로 쏙 빠져나가 버렸지 뭐야. 그건 한신의 가랑이 굴욕이 아니라, 축구공의 가랑이 굴욕이었어.”
그 말을 듣고 아이가 웃음을 터뜨렸고, 우리는 꽤 공통분모가 생겼습니다. 아이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도 럭비 할 때 공을 한 번도 못 만져봐요.” 우리는 정말 동병상련이었고, 둘 다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참 재미있지요. 저는 축구를 했고, 그 아이는 럭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어릴 적 축구를 하다가 웃음거리가 되었던 일이, 결국 아이를 위로하는 데 쓰이다니요. 이렇게 나이가 지긋해져서 어린아이를 위로하는 이야깃거리가 되다니 말입니다. 참 좋지 않습니까? 알고 보니 하나님께서 정말 예비해 두신 것이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예비하심이 없었다면 가능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예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어릴 때 그 일로 번민하고 낙심했다면 골치 아팠을 것입니다. 공을 차지 못했어도 여전히 즐겁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그 공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니까요. 공을 위해 산다면 제가 한낱 공놀이에 휘둘리는 멍청이가 아니겠습니까? 즐겁게 살 수도 있고, 번민하며 살 수도 있습니다. 저는 즐거움을 선택했습니다! 나중에 커서 이것을 연구해 보니, ‘와! 이렇게 조그마한 꼬맹이가 어떻게 속이 이렇게 강했을까? 내 내면은 어쩜 이렇게 강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이것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어려서부터 내면이 강한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공을 차지 못했다고 낙심한다면 내면이 강하지 못한 것입니다. 공을 만져보지 못했다고 낙심한다면 내면이 강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때 제 속이 어떠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어린아이였으니까요. 내면이 어느 정도로 강했을까요? 흠! 《아Q정전》을 보셨습니까? 아Q와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흥,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사람마다 공 하나씩 사줄 테다. 너희는 공도 못 만지게 하고, 나는 매일 공을 안고 잘 테다.’ 내면이 강한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성품이 있는 사람을 무너뜨릴 수 없으며, 그 어떤 것도 우리의 강한 내면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애초에 이런 것들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씀드리자면, 저는 어릴 때 아주 신기한 경험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시험을 쳐서 1등을 해도 별로 기쁜 느낌이 없었고, 나중에 10등으로 떨어져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어머니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는데, 정말이지 제게는 훌륭한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나중에 20등으로 떨어져도 아무렇지 않았고, 대학에 붙어도 대수롭지 않았으며, 대학에 떨어졌어도 대수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중에 보니 ‘와! 대체 어떤 아이였길래 이럴까? 이 아이 참 별나네’ 싶었습니다.
어느 날 한 자매님과 나눔을 하면서 제 이야기를 예로 들었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때 노래를 부르면 음정이 다 틀렸어요. 남들이 노래를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벌써 부르고 있고, 남들이 다 불렀는데 나는 아직도 다 못 불렀지요. 그래서 결국 성가대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랬더니 그 자매님이 “오, 그 아이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까요!”라고 하더군요. 제가 말했습니다. “아니요, 상처 안 받았어요.” 정말 내면이 얼마나 강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참으로 강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것이야말로 잘 사는 비결이었습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나중에 목사가 되어서도 찬양을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도 음정이 안 맞습니다. 어릴 때부터 정말 기이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처받지도 않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남들은 다 서서 노래하는데 나 혼자만 쫓겨났으니, 얼마나 창피합니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일이지만, 아무 상관없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이야기하니 다들 웃지 않습니까? 참 귀엽지 않습니까. 어떤 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별로 안 좋아할 수도 있지만, 사실 저는 여러분이 이것을 꼭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나이가 서른, 쉰이 되고 예순이 다 되어가도록 이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도 있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알았습니다. 오늘 가르쳐 드려도 왜 배우지를 못하십니까? 왜 깨닫지를 못하십니까? 그러자 어떤 분이 저를 찾아와서 말합니다. “선생님, 저는 그런 이야기 듣기 싫어요.” 제가 물었습니다. “그럼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까?” “선생님이 어릴 때 참 많이 힘들어하고, 낙심하고, 상처도 많이 받았는데, 흙수저가 인생 역전을 해서 나중에 어떻게 기뻐하게 되었고 어떻게 승리하게 되었는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참 나, 그런 걸 듣고 싶으셨군요. 하지만 듣고 싶어도 그런 건 없습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으니까요. 사실 나이를 먹었으면 정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되지 않습니까?
때로는 어떤 분이 제게 이렇게 묻기도 합니다. “선생님, 자꾸 그런 이야기만 하시니까 제가 너무 위축돼요. 선생님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잖아요. 저는 어릴 때 공부를 못했거든요. 그냥 이런 이야기 좀 해주시면 안 돼요? 어릴 때 공부 못했던 척하시고, 별 볼 일 없었던 척, 밑바닥 중의 밑바닥이었는데 나중에 인생 역전했다고 그렇게 이야기해 주시면 안 돼요? 저희는 그런 걸 듣고 싶단 말이에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 게 없는데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게 도대체 무슨 심보일까요? 자기 핑곗거리를 찾으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하길 좋아하는지 아십니까? 나는 밑바닥 인생을 역전시키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2+3=8이라고 우기던 사람이라도 역전시키는 것, 나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나는 밑바닥 인생을 역전시키는 사람인데, 얼마나 좋습니까! 번민하던 사람을 기쁨으로 바꾸는 것, 얼마나 좋습니까! 이 논리가 맞지요. 그저 인생 역전했다는 무용담만 늘어놓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나중에 깨달은 것이지만, 기쁨이라는 문제는 깊이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핵심을 찾아낸다면 기뻐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 되겠습니까! 수많은 사람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박사과정을 밟는 분이 기쁘지 않다며 저를 찾아옵니다. 제가 그분에게 기쁨을 조금 채워주면, 주유소에서 기름 넣듯이 버티다가 기름이 다 떨어지면 또 찾아옵니다. 제가 기쁨 주유소가 된 것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 시장이 얼마나 큽니까! 시장이 엄청나게 큽니다. 기쁨을 잃은 자들이 제게 와서 기뻐지니, 저는 이 일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나중에 깨달았지만, 기쁨이라는 문제는 깊이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핵심을 찾아낸다면 기뻐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 되겠습니까! 수많은 사람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박사과정을 밟는 분이 기쁘지 않다며 찾아오면, 제가 기쁨을 조금 채워주어 주유소에서 기름 넣듯이 버티게 하고, 기름이 타서 없어지면 또 찾아오니 제가 기쁨 주유소가 된 것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 시장이 얼마나 큽니까! 시장이 아주 큽니다. 기쁨이 없는 자들이 제게 와서 기뻐지니, 저는 이 일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들 이해하셨지요?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 성품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성품은 정말로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 성품을 일컬어 ‘승리하는 성품’이라고 합니다! 승리하는 성품이 있으면 사람은 기뻐하게 됩니다. 잘 살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그것이 없다면 서둘러 장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얼른 챙겨 넣고 끌어모아야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간단합니까. 돈도 들지 않고, 돈 주고 살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품을 제대로 건축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 집에 자녀가 있다면, 절대로 그 학위증이나 학교 시험 성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물론 그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성품입니다. 그래서 화인명정신학에서 사람을 훈련할 때는 바로 성품을 훈련합니다. 한번 억울한 일을 겪게 해보고 얼마나 견뎌내는지를 봅니다. 다 그렇게 훈련합니다. 전문가답게요! 그러니 여러분이 꼭 아셔야 할 것은, 여러분의 가정에 자녀가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양육 체계 전체를 성품에 맞추어 조정하십시오. 성품이 없으면 평생이 비극입니다! 집에 자녀가 없다면 여러분 자신을 성품 있는 사람으로 빚어가십시오. 절대로 헛된 것들을 좇아가지 마십시오. 제가 진심을 다해 뼈를 깎는 심정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 성품이 사람의 평생을 결정하고, 사람의 기쁨의 상태를 결정합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성품이 제대로 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어젯밤 식사를 하면서 제가 사람들을 크게 웃겼는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세요, 어떤 사람은 외계인처럼 생겼잖아요.” 여러분, 누가 외계인처럼 생겼는지 아십니까?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속에 성품이 있습니다. 외모는 참 답답하게 생겨서 보기만 해도 애가 탑니다. 하지만 성품이 참 뚜렷합니다. 아십니까? 오래 보고 있으면 볼수록 참 멋져 보입니다. 오래 볼수록 그 얼굴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릅니다! 볼수록 매력 있다는 것을 느껴보셨습니까? 왜일까요? 뼛속 깊이 배어 있는 그 성품이 그를 볼매(볼수록 매력 있는 사람)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남편을 얻으려면 성품 있는 남자를 얻으십시오. 들으셨지요? 참 재미있습니다. 그 사람이 록스타 옷을 입고 무대에 올라가 노래하는 것을 보면, 겉모습은 보잘것없어 보여도 성품이 대단합니다.
성품이 없는 사람은 설령 칠선녀처럼 예쁘게 생겼다 해도 오래 보면 시각적 피로가 옵니다. 괴롭습니다! 아무 재미가 없습니다. 얼굴은 참 예쁜데 입을 열어 하는 말마다 성품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성품이 없는 사람은 입만 열면 격 없는 말만 쏟아내니 정말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제 어떤 형제가 제게 흉내를 내서 배를 잡고 웃은 적이 있습니다. 그 형제는 흉내를 잘 내는데 저는 잘 못 냅니다. 아주 구수한 촌동네 사투리로 말이지요. 얼굴은 선녀처럼 너무나 예쁜데, 입을 열더니 “울 엄마가 나 시집갈 때 큰 냉장고 사준댔슈” 하는 격입니다. 제가 흉내를 잘 못 내겠네요. 사람은 성품을 가질 줄 알아야 합니다. 얼굴이 예쁘지 않은 것은 괜찮지만, 절대로 성품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성품이 없으면 천페이쓰(Chen Peisi, 중국의 코미디 배우)처럼 생겨서 팔로군 모자를 쓰고 팔로군 군복을 입혀놔도 앞잡이 매국노처럼 보입니다. 그 몰골은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성품이 그러하니 안 되는 것입니다.
승리하면 기뻐지고, 승리하면 그 성품이 빚어집니다. 제가 말씀드립니다. 낙심을 오래 하면 낙심한 얼굴이 되고, 번민을 오래 하면 번민의 얼굴이 됩니다. 세월의 풍파가 얼굴 위로 고스란히 기어오르며, 세월의 흔적은 반드시 목덜미 위로도 기어오릅니다. 사람의 나이를 보려면 절대로 얼굴만 보지 마십시오. 얼굴은 이렇게 저렇게 손을 댈 수 있지만, 목을 보면 나이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세월은 당신의 얼굴에 새겨집니다. 한 자매님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과 동생분은 외모가 참 많이 닮았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지요! 우리 형제는 참 많이 닮았습니다.” 자매님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순간을 보면 동생분의 표정과 목사님의 표정은 완전히 달라요.”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속사람의 성품이 다른데요.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기쁨의 원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승리를 전하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리하는 성품의 사람이 되십시오.
제가 기쁨의 문제를 연구하고, 살아가는 문제를 연구하다 보니 결국에는 영계(영적 세계)의 문제로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낙심의 귀신’이라는 것이 있더군요. 그 귀신이 사람에게 붙으면 아무 일도 없는데 저절로 낙심하게 됩니다. 원래 성격이 조금 까탈스러웠던 사람도 귀신이 붙으면 아주 까다롭고 트집 잡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번민의 귀신이 붙으면 심하게 얽매이고 번민하는 사람이 되고, 다툼의 귀신이 붙으면 매사에 다투려 들며, 시기의 귀신이 붙으면 질투로 가득 차게 됩니다. 참으로 괴로운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러움, 시기, 증오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깨달은 것은, 화인명정신학이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 과정은 모두 귀신을 쫓아내는 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축사(귀신 쫓음)가 없이는 믿음의 길을 계속 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성경에 얼마나 잘 나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귀신을 쫓아내지 않는 복음주의 교단의 복음이 정통 복음인 줄 착각하지만, 그것은 정통이 아니라 변질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통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복음을 전파하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정통 복음입니다. 이 영적 세계에서 영적 전쟁을 치르지 않고 그놈들을 꺾어버리지 않겠습니까? ‘내가 건드리지 않으면 저놈들도 나를 안 건드리겠지’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건드리지 않아도 놈들은 당신을 건드립니다! 귀신이니까요! 우리가 누구를 건드렸다고 일본군이 쳐들어왔겠습니까? 우리가 건드린 적이 없습니다! 연약했기 때문입니다. 뼛속부터 강건하게 일어나 영적 전쟁을 치르고, 이런 것들이 당신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당신 안에 들어오게 해야 하겠습니까? 기쁨에 속한 것들을 당신 안에 들이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압니다. 우리 하나님의 영은 기쁨의 영이시며, 하나님의 영을 모셔야 사람은 기뻐하게 되고, 사람 스스로의 힘으로는 기뻐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님의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 몸에 이런 귀신들이 있었습니다. 번민, 낙심, 다툼, 시기, 온통 이런 것들뿐이었습니다. 뼛속에 이런 것들을 품고 자라나는 것은 정말 치명적입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도 속에 이런 것들을 품고 있는 분이 있다면, 이것을 ‘암에 걸리는 성품’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아직 암에 안 걸렸는데요”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사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계속 가서는 안 되며, 당장 브레이크를 밟아야 합니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차는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리던 탄력 때문에 한동안은 더 갑니다. 브레이크조차 밟지 않는다면 당신을 얼마나 더 먼 파멸로 끌고 가겠습니까?
그러므로 기쁨의 영을 소유해야 합니다. 무엇이 귀신을 부르고, 무엇이 하나님의 영을 부릅니까? 당신이 하나님의 영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영을 부르고, 귀신의 영에 순종하면 귀신의 영을 부릅니다. 귀신의 영에 순종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귀신의 영에 순종하면 귀신과 같은 생각을 품게 되어 귀신을 불러들이고, 하나님의 영에 순종하면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품게 되어 하나님의 영을 불러들입니다. 이것이 제가 연구하여 발견한 큰 비밀입니다. 어떤 분이 댓글로 “한번 시험삼아 해보다가(试一试), 세상을 떠나게 된다(逝世了)!”라고 쓰셨더군요. 앞의 것은 ‘시험삼아 해보다’이고, 뒤의 것은 진짜로 ‘사망’하는 것입니다.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오. 많이 관찰하고 많이 사역해 보면 속으로 감이 옵니다. 사람은 왜 그런 관념들을 가질까요? 자기가 그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고, 이런 것들이 없으면 살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느끼고, 이런 것들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것들을 쥐고 있어도 결국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 관념은 실상 거짓말이며 얽매임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잘 산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전혀 잘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단 귀신을 불러들이고 나면, 귀신을 불러오기는 쉬워도 내보내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주를 믿는 사람은 영적 세계에서 주를 힘입어 승리하면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핵심입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주를 믿는 자에게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주를 믿으면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것이 전혀 없는데 무엇을 잡으려 애씁니까? 이것을 빼앗고 저것을 빼앗으려 왜 다툽니까? 창세기에 참 잘 나와 있지 않습니까! 이삭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았지, 우물을 의지하여 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자기 우물을 빼앗으면 그냥 주어버렸고, 또 다른 우물을 빼앗으면 또 주었습니다. 그는 우물을 의지해 사는 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오늘 누가 여러분의 우물을 빼앗는다면 목숨 걸고 싸우지 않겠습니까?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목숨 걸고 싸우다가 목숨마저 잃습니다. 관념과 생각은 아주 쉽게 바꿀 수 있으며, 바꾸기만 하면 곧바로 기뻐집니다.
나중에 그 아이가 기뻐졌을까요? 기뻐졌습니다. 제가 전문적으로 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 평생 스스로에게 고백하자, 내 평생에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다.’ 어젯밤 설교 원고를 준비하고 있는데, 한 자매님이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자기 회사의 사람들이 사장님과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싸울까요? 회사 주차 자리 때문이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제 권면을 먼저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것은 늘 이러합니다. 다투지도 말고 빼앗지도 말고 소란을 피우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결국 주차 자리를 두고 다투던 사람들은 미국 본사까지 항의를 끌고 갔고, 결국 주차 자리를 받아냈는데, 우리 자매님도 주차 자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주차 자리 하나를 위해 삽니까? 사실 아무런 큰 의미도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좋은 것을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해 두셨습니다.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도대체 무슨 헛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기쁨이 조금 부족하신 것 아닙니까? 모든 것이 부족하지 않은데 기쁨만 부족하다면, 기쁨을 넉넉히 채우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쁨의 기름을 내게 부으사 내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오늘 성도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이기기 시작하십시오. 내면의 거짓말, 마귀가 뿌려놓은 거짓말을 이기시고, 육신에 속한 논리를 이기시며, 우리 안의 온갖 관념들을 이겨내십시오.
예를 들어,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노후의 필요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채워집니다. 직장이나 사업을 주님을 위해 기꺼이 내려놓는다면, 이생에서 백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못 내려놓겠어요”라고 합니다. 못 내려놓겠다고요? 자기 자신을 너무 대단하게 여겨서, 자기가 그 일을 해야만 무언가 된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해서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할 수도 있고, 잘못 건드리면 안 하느니만 못한 법입니다. 조금 바빠지면 주님을 팽개쳐버리니, 평생 갈고닦은 재주라곤 주님을 내팽개치는 재주뿐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데, 어디 두고 보십시오!
그러므로 오늘 성도 여러분은 똑똑히 아셔야 합니다. 절대로 어리석게 굴지 마십시오! 제가 여러분 면전에 대고 “참 미련하십니다”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양육하는 처지라면 모를까요. 하지만 말을 해도 소용이 없으면, 나중에는 미움을 살까 봐 더 이상 말하지 않게 됩니다. 자, 오늘의 본문 말씀을 읽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 16장 23절부터 24절까지입니다. 성경책을 가지고 계십니까? 다 함께 펴서 보시겠습니다.
본문 말씀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한복음 16:23-24)
기도
하나님! 오늘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필요가 주님 안에서 만족을 얻는다는 사실을 마음에 굳게 새기게 하옵소서.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주께서는 주실 것이며,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걷고자 하오니, 우리가 일평생 무엇을 구하든지 반드시 받을 것입니다. 주님의 본래 뜻은 우리가 기쁨을 얻고,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성령께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음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배경
요한복음은 참으로 훌륭한 책입니다! 왜일까요? 요한복음은 대략 사도 바울과 베드로 같은 사람들이 다 순교하여 죽은 뒤, 요한이 아주 오래오래 살아 아흔 살이 넘은 노년에 기록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이 요한복음을 쓰기까지 사역의 여정에서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왜 시행착오를 겪었을까요? 그는 베드로, 야고보 같은 이들과 함께 있었는데 야고보가 첫째요, 베드로가 둘째요, 요한이 셋째 격이었습니다. 요한이 그들과 함께 걷다가 결국 그들이 다 죽고 난 후, 그의 마음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체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인식이 생겨났습니다. 요한이 목양에 대해서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목양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얻은 후, 그가 기록한 요한복음에 묻어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들은 마태복음, 누가복음, 마가복음에는 기록되지 않은 것들입니다. 왜 기록되지 않았을까요? 당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도(道)에 대한 이해가 아직 비교적 얕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 안에서 마태복음, 누가복음, 마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요한복음을 쓸 때에는 나이가 지긋했고,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가 어떠한 교회인지 친히 목격했으며, 목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알게 된 후였기에 이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훗날 이 늙은 요한이 나이가 지긋해져 인생의 여정을 다 지나오면서, 마침내 기쁨이 얼마나 중요한지, 기쁨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과거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들을 떠올리며 그 말씀들을 다시 새롭게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요한복음입니다. 이것은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셨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제가 요한복음 16장을 간략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승천하신 후 어떻게 됩니까?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일하심은 참으로 기묘합니다. 얼마나 기묘한가 하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이 약속하신 성령께서 오시면 세상으로 하여금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스스로 책망하게 하십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는 스스로를 책망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과거에는 다 잘못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할 일 없이 끙끙 앓고 번민하다가 온몸에 병을 얻고는 저를 찾아와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깊게 말하기도 그렇고, 얕게 말하기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은 과거에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부터 제대로 바로잡아야 함을 아셔야 합니다. 어머니와 아들이 원수처럼 지내고, 남편과 아내가 원수처럼 지내는 짓은 그만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가 내 눈에 거슬리고, 내가 네 눈에 거슬린다며, 틈만 나면 서로 못마땅해합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눈도 어두워지고 귀도 먹고 몸의 모든 기능이 고장 나 버립니다.
그렇게 몸이 망가지고 꼬이고 꼬이다가 코로나에 덜컥 걸려 쓸려 가기도 합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다 가는 것은 참 번민스러운 일 아닙니까? 그러므로 스스로를 책망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며, 자신이 잘못 살았음을 스스로 인정해야 합니다. 자기가 잘못 살았으면 “아이고, 제가 잘못 살았습니다”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요, 난 원래 이래요. 난 그냥 번민하며 살 테요”라고 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손을 쓸 수 있겠습니까? 손쓸 방법이 없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과거의 우리는 자기 뜻대로 행하고, 육신의 기호에 따라 자기 생각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깨닫게 하시니, 이것은 실로 대단한 일입니다.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만약 마음이 괴롭다면, 제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의 머릿속이 매우 더러워져 있는 것입니다. 청소해 보지 않으면 모르지만, 청소해 보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얼마나 더럽겠습니까? 속이 더러우면 그것이 밖으로 배어 나와 온갖 더러운 질병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바로 이 일을 행하시며 가장 핵심적인 문제, 즉 우리의 생각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이 일은 또 무엇을 해결해 줍니까? 매우 중요한 문제를 하나 해결해 줍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최소한 돈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밥도 먹어야 하고, 옷도 입어야 하고, 살 집도 있어야지 길바닥을 방황하며 다닐 수는 없지 않습니까? (동북 방언으로 길거리를 쏘다닌다고 하지요.)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날에는 너희가 내게 아무것도 물을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성령께서 너희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면 내 이름으로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이제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이 구절의 배경이 보이십니까? 이 말씀은 바로 기쁨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얼마나 더 원하십니까?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데, 기뻐하지 않고 무얼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부족한 것은 오직 기쁨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기쁨이 부족하다면 얼른 기쁨을 채워 넣으십시오. 기뻐하지 않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암을 부르는 성품이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33)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를 위해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고 있습니다. 이 구절 안에는 매우 흥미로운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주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요한복음 16:26-27)
알고 보니 예수님께서 우리 뒤에서 든든한 뒷배(연줄)가 되어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구하시겠다는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우리에게는 든든한 뒷문이 있고, 그 배경은 매우 막강합니다. 우리의 배경은 너무나 든든합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세상의 모든 염려를 벗어버리라고요. 너희의 모든 필요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을 얻는다고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너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진리를 깨닫게 하실 터인데, 최소한 살아가는 도리는 깨닫게 하실 것 아닙니까? 자, 방금 대략 짚어보았으니 이제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우리가 구하는 것은 다 받게 됩니다. 왜일까요?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구하는 것은 다 받는다’는 이 사실이 정말 진짜입니까, 아닙니까? 나중에 제가 연구해 보았습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가 광주리째, 컨테이너째 응답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교회 안에서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 저는 너무나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구하는 것은 다 받고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라고 분명히 쓰여 있는데, 저는 너무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교회를 세우려면 우리가 구하는 것은 다 받는 바로 그런 교회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실제로 그것을 보고 있으며, 결코 허풍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받지 못할까요? 여러분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주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주셨는데 중간에서 귀신이 빼앗아 갔기 때문이며, 그 원인은 당신이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를 세우면서 매 주일 설교 전에 우리의 비전과 사명을 선포합니다. 그것은 바로 ‘승리하는 정예 군사 교회’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 가운데는 이토록 응답받는 일이 많을까요? 매주 내보내는 간증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저 혼자 사역하면서 겪은 간증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는 이 말씀은 실로 매우 무게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받지 못합니다. 그러고는 “아이고, 하나님 말씀이 틀렸어”라고 합니다. 자기가 승리하지 못했다는 말은 쏙 빼놓고, “그건 이런 뜻이고, 저런 뜻이야”라며 온갖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나중에 보니 저는 도무지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며,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무슨 교파든 간에, 그들은 이 성경 구절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합니다. ‘다 받는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너희가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셨는데, 정작 못 받은 것 같지 않습니까? 못 받는 게 당연하다며 성경 말씀이 이 뜻이 아니라 저 뜻이라며 구차한 해석만 늘어놓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승리하지 못하는 것과 승리하는 것은 누구와의 문제입니까? 첫째는 귀신이고, 둘째는 육신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복음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관념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할 때, 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결코 적지 않게 읽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비록 요한이 예수님을 직접 따랐지만, 야고보와 베드로의 영향을 깊게 받았습니다. 그들이 노사도 요한에게는 맏형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훗날 그들이 다 죽고 바울마저 세상을 떠났을 때, 노사도 요한은 깊은 고뇌에 빠졌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이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가?’ 그러다 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가져다가 자세히 읽어보았고, 마침내 ‘승리’라는 관념을 확립하게 된 것입니다.
승리의 관념이 어디서 왔느냐고 제게 물으신다면 사도 바울에게서 왔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집대성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요한이 정리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읽어보시면 각 교회에 편지를 보내며 “이기는 자는 이러이러할 것이요, 이기는 자는 어떠할 것이요, 이기는 자는 어떠할 것이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바로 이 이유 때문입니다. 승리하지 못한다면 자업자득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당신이 승리하도록 예정해 두셨는데도 승리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업자득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신 말씀은 참으로 기가 막히게 좋습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믿습니다. 아직 받지 못한 분이 있다면 먼저 승리하는 법부터 배우십시오. 무엇을 이겨야 합니까? 먼저 자기 육신의 정욕과 탐심을 이기십시오. 우리는 육신의 정욕과 탐심을 의지해 아등바등 싸우고 빼앗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미 더 좋은 것이 예비되어 우리를 만족케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주 예수님은 우리의 배경이시다
왜 구하는 것을 다 받게 됩니까? 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든든한 연줄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저곳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시니, 우리는 하늘 조정에 아는 분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조정에 사람이 있어야 벼슬하기도 쉬운 법입니다. 조정에서 나를 위해 말 한마디 거들어주는 이가 있다면 만사가 형통합니다. 누가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가서 헛소리를 늘어놓든,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니 배경이 얼마나 든든합니까.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배경이시니, 제가 묻건대 이 배경이 얼마나 막강합니까?
그런데 받지 못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받지 못하겠습니까? 무조건 받게 됩니다. 왜입니까?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기 때문입니다. 답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을 다 받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여섯째로, 우리에게는 하늘에 연줄이 있고, 주 예수님이 우리의 든든한 뒷배이며 배경이십니다. 하늘에서 우리를 든든히 받쳐주는 배경이 계시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기쁩니다. 당연히 응답받고, 당연히 기뻐하게 됩니다. 훗날 제가 화인명정신학을 세워가는 전 과정은 실상 이 승리의 길을 실천해 온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승리의 관념은 화인명정신학에서 결코 떼어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어떤 관계인지 아셔야 합니다. 문제는 당신과 주님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을까 봐 그것이 문제입니다. 당신은 그분을 안다고 하지만 그분이 당신을 모른다고 하시면 큰일 아닙니까?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므로 이제 믿음을 가지십시오. 화인명정신학에서, 승리의 길을 실천하고 주 예수님의 약속을 이루어가는 여정 가운데서, 우리는 참으로 풍성한 은혜를 누려왔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화인명정신학은 은사주의(오순절파)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은사주의보다 더 은사주의답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럼 복음주의입니까?” “복음주의보다 더 복음주의답습니다.” 제 말의 뜻은, 복음주의가 성경을 중시한다면 우리는 그들보다 성경을 훨씬 더 중시한다는 뜻입니다. 은사주의가 기적을 행한다면, 우리는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은 기적을 행합니다. 우리 가운데서는 거의 대부분 치유를 받습니다. 왜일까요? 승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며,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이기셨다는 이 말씀은 너무나 훌륭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라.” 세상의 어려움은 여러분과 그리 큰 상관이 없습니다. 내 안에 평안이 있고, 내 안에 기쁨이 있으며, 내 안에 이 모든 공급이 다 들어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참으로 아름다운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 이토록 놀라운 약속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 차 있다
저는 지금 왜 기뻐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승리해야만 기뻐할 수 있음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구하는 것을 다 받게 되는데 우리가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기쁩니다. 구하는 것을 왜 받게 됩니까? 하늘에 우리의 든든한 배경이 계시기 때문 아닙니까? 그리고 말씀드리지만, 사람이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소망이 학위에 걸려 있고, 소망이 학교에 걸려 있으며, 소망이 선생님이 나를 좋아할까 말까에 걸려 있고, 소망이 사업에 걸려 있으며, 소망이 직장에 걸려 있다면 결코 기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소망을 예수 그리스도께 둘 때에만 우리의 미래는 소망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니, 우리의 미래는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며 갈수록 더욱 좋아질 것입니다.
비록 미래가 점점 더 좋아진다 해도 우리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의 것들을 좇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을 좇습니다. 미래를 향해 소망을 품기 시작하면 죽음조차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으니, 오늘 우리가 이 육신을 입고 살다가 훗날 언젠가 세상을 떠난다 해도, 주를 믿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요 살아서 주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르신이라면, 노후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어제 한 자매님이 제게 물어왔습니다. 국유기업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이 있는데, 그곳에 들어가려면 자리를 예약해야 하고 먼저 10만 위안의 예약금을 낸 뒤 매달 7천 위안씩 내야 한다더군요. 어떠냐고 묻길래 제가 말했습니다. “그거 사기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애초에 그런 데 있지 않습니다. 무슨 노후 대비입니까? 우리는 노후를 보낼 필요가 없고 청춘을 유지하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영원히 늙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사람이 5천 년을 살 수 있다면 아흔 살도 청춘이고, 일흔 살도 너무나 젊은 나이인데, 하물며 쉰 살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번민과 낙심 외에 무엇이 남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더 이상 세상의 것들에 소망을 두지 마십시오. 당신이 어린아이든, 청년이든, 어른이든, 소망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위에 두십시오. 당신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반에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아이들이 몇 있었습니다. 얼굴도 똘망똘망하고 눈치도 아주 빠른 아이들이었습니다. 저 같은 아이는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묵묵히 숨은 사람으로 지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다 자란 뒤에 보니, 선생님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던 그 아이들이 커서 그리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저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던 한 동창은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했었는데, 커서 감옥에 가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그 무엇을 의지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묵묵히 주 예수님을 신뢰합시다. 그러면 아무런 좋은 것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비위 맞추며 아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의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께서 다 주실 것이라고요. 무엇이 더 부족합니까? 오늘 하나님께 간구하여 기쁨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더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기쁨의 기름이 우리에게 부어지고, 기쁨의 영이 우리를 가득 채우며, 미래를 향한 소망으로 충만하게 해달라고 구합시다. 열 살 때부터 이 소망을 품고 스무 살까지 살고, 스무 살부터 이 소망을 품고 서른 살까지 살며, 그렇게 끊임없이 소망을 품고 칠팔십 세까지 살아가면서 세상의 소망 없는 자처럼 살지 맙시다.
이 모든 말씀은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다
이 모든 말씀은 다 ‘너희’에게 주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너희’가 누구인지 알아들으셨습니까? ‘너희’는 곧 우리이며,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희’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모든 것은 제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당신이 제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결코 승리할 수 없으며, 제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왜 수많은 교회가 이러한 약속을 받아 누리지 못할까요? 왜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할까요? 그들이 가르치는 것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간혹 전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예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똑똑히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 버려두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버려둘 용의가 있습니까? 버려둘 마음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고, 제자가 될 수 없다면 승리할 수 없으며, 승리할 수 없다면 기뻐할 수 없고, 기뻐할 수 없다면 그저 그렇게 살아갈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는데 어찌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들의 소망은 병원에 있고, 병원에서 꽂아놓은 호스에 달려 있으니, 호스나 몇 개 더 꽂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저를 찾아와서 “선생님, 그 사람 호스가 좀 더 잘 작동하게 기도해 주실 수 있나요?”라고 합니다. 제가 볼 때는 그런 기도는 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제가 기도한다면 차라리 호스를 뽑아버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어떤 이는 “그게 무슨 말버릇입니까?”라고 하겠지만, 그것이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까? 날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분주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면서 버려두지 않고서 어찌 얻을 수 있겠습니까? 명심하십시오. 버리지 않으면 얻지 못합니다. 오늘 당신은 버려둘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기꺼이 버려둘 때 당신은 성령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당신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진리 가운데 가장 기초적인 진리는 바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위해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전토와 집을 버려둘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성도 여러분은 이 습관을 들이기 시작하십시오. 누가 당신의 기쁨을 빼앗아 갔습니까? 아마 남편일 것입니다. 어쩌면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자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이 마음 깊은 곳에서 결단을 내리고 끊어낸다면, 그 누구도 당신 안의 기쁨을 더 이상 빼앗을 수 없으며, 당신은 승리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제자는 반드시 버려두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고작 어떤 한 여자를 위해 살기 위함입니까? 어떤 한 남자를 위해 살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아이 하나를 위해 살기 위함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인생의 여정 중에 만나게 된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기 위해 세상에 왔습니다. 그런데 왜 기뻐하지 못합니까? 자신의 두 손만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자기 손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라
여러분이 자신의 손만을 의지하려 한다면, 번민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수가 없으며 반드시 번민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것은 저주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간다면 그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두 손을 의지해 산다면, 그것은 에서의 후손인 아말렉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의 손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내려놓으십시오, 내려놓으세요”라고 하면, 여러분은 “못 내려놓겠어요”라고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정말로 내려놓아야 할 날이 올 것입니다. 내려놓기 싫어도 억지로 내려놓게 될 텐데, 참으로 우스운 일 아닙니까.
제가 어떤 분들에게 왜 내려놓지 못하느냐고 자주 묻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이 프로젝트가 너무 중요하거든요”라고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사람이 내려놓았습니다. 왜 내려놓았을까요? 암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암에 걸리고 나니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입니까? 나중에 제가 조금 모진 말을 했는데, 저도 심한 말인 줄 알면서 말했습니다. “만약 당신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어떡할 겁니까?” 그가 대답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당연히 가봐야지요.” 그러면 결국 내려놓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이 무겁고 어느 쪽이 가벼운지 그 경중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 손을 의지하면, 내가 하는 이 일들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한다면,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늘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지혜롭고 똑똑한 길입니다. 만약 오늘 여러분이 이것저것 바쁘다며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댄다면, 장차 시간이 아주 많아질 때가 올 것입니다. 관 속에는 시간이 아주 널려 있습니다. 반드시 축복과 저주의 법칙을 아셔야 합니다. 내가 무언가를 손수 붙들고 있어야만 지탱된다고 생각한다면, 제가 말씀드리건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죽어도 지구는 여전히 돕니다. 천하의 위대한 영도자라 할지라도 그가 죽는다고 지구가 멈추지 않는데, 하물며 우리 같은 작은 인물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우리가 무언가를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많은 일들을 하지 않아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습니다. 주님을 위해 무엇이든 내려놓아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습니다. 한때 직장을 잃을 뻔한 위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교회를 개척한 상태였고 사역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런 사역, 저런 사역에, 귀신이 잘 안 나가도 끝까지 쫓아내야 했습니다. 다 시간을 잡아먹는 일들이었지만 그래도 쫓아내야 했습니다. 그때는 ‘마귀보다 1분만 더 버티자’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영적 지각이 아직 온전히 열리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지금은 지각이 열려서 여전히 1분 더 버티는 싸움을 하지만 효율이 훨씬 높아졌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즉각 축사가 되었겠습니까? 몇 달씩 걸렸고, 한 달 만에 쫓아내도 감지덕지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눈앞에서 직장을 잃을 위기 속에서도 저는 사역을 단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건 당신이니까 그렇지, 나는 못 해요”라고 말합니다. 당신이 못 하겠다면 하나님의 긍휼을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하늘이 무너졌습니까?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하늘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고, 우리 하나님의 보좌도 변함없이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전히 땅을 당신의 발등상으로 삼으시고 하늘을 당신의 보좌로 삼으시며, 온 우주 만물을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저를 붙들어 주셨기에 오늘날까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교회를 세울 때는 말할 수 없이 고생스러웠지만, 하나님을 의지했기에 단 한 번도 쓰러진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러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곧 축복이요,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 곧 저주이기 때문입니다. 이 법칙을 뼛속 깊이 깨달았는데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결론
여러분,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승리하지 못한 상태임을 아셔야 합니다. 만약 승리하지 못했다면 오늘 모질게 마음을 먹고 승리하십시오! 평생을 쓸쓸함과 괴로움과 낙심 속에 살다 가지 마십시오. 이번 생에서 기쁨은 참으로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가장 아름다운 것을 우리에게 예비해 주셨는데, 여러분은 받으시겠습니까, 거절하시겠습니까? 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당신과 나에게 예비해 주셨는데 우리가 이 은혜를 가볍게 여긴다면, 그 얼마나 큰 저주를 받아 마땅하겠습니까? 여러분 모두가 기쁨을 얻어 기쁨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기쁘지 않은 짐들을 짊어진 채 날마다 저주의 씨앗을 뿌리지 마십시오. 그 저주의 씨앗이 자라나면 당신이 삼키지 않고 누가 삼키겠습니까? 더 이상 저주의 씨앗을 뿌려서는 안 됩니다.
오늘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축복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하십시오. 하나님을 더욱 깊이 경험하기를 갈망하고,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기쁨의 기름을 더 많이 경험하십시오. 슬픔 대신 희락의 기름을 부으시고, 근심의 영 대신 찬송의 옷을 입히실 것입니다. 오늘은 기쁜 날입니다. 제가 조금 무거운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쁜 날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로 돌이키십시오. 사람의 한평생은 그리 길지 않으니, 이 짧은 일생을 하늘로부터 임하는 기쁨으로 가득 채우며 살아가십시오. 아멘!
찬양 한 곡을 부르고 오늘 헌금을 준비하겠습니다. 만약 헌금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신다면 헌금하지 마십시오. 오늘 부를 찬양은 새로 창작된 곡입니다. 제목은 ‘하나님이 나로 모든 것을 이기게 하시네’인데, 어쩜 이렇게 때맞추어 제가 오늘 전한 내용과 딱 들어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산이 아무리 높고 길이 아무리 험해도,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으면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힘입고 여러분의 작은 믿음으로도 큰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질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광대하신지 아셔야 합니다. 오늘 담대하게 일어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십시오! 약속을 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적 전쟁으로 들어가야 하므로, 하나님을 알아가며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 시간 저와 함께 손을 들고 기도합시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니, 오늘 나는 반드시 기쁨의 사람이 될 것이며, 괴로운 감정과 번민의 감정은 물러갈지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늘 하나님의 진리에 순종하겠노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에 속한 모든 논리를 완전히 끊어버리노라! 육신에 속한 모든 논리를 완전히 거절하노라! 오늘 내가 사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니, 마귀야 너는 내 안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며, 오늘 이후로 내 안의 기쁨을 더 이상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니, 나는 기필코 승리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힘입어 승리하는 자가 될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원수를 사로잡으리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내가 다 취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을 내가 다 얻으리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니, 나는 하나님의 승리하는 백성이라!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내 삶에 온전히 이루어질지어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