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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생의 도 시리즈 (2) -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상속받으리이까?

2026-01-11 1,535 永生之道系列

《答疑解惑》

서론

이것은 영생의 도 시리즈의 두 번째 강의로, 주제는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상속받으리이까”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예수님께서 영생의 도를 전하시는 데는 자격이 있으십니다. 그분은 하늘에서, 영원으로부터 이 세상에 오셔서 성육신하시고 사람의 모양을 취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슨 자격으로 영생의 도를 전하겠습니까? 여러분은 “맞아,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영생의 도를 전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실제로 하늘에 가본 적도 없고, 지옥에 가본 적도 없어서 그곳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말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왜 영생의 도를 전할 수 있을까요? 저는 지극히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영생의 소망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절대적인 비극이라는 사실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영생의 소망이 없다면 그것은 절대적인 비극입니다.

사실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하늘에 가본 적이 없지만, 그들은 사람이 사는 것이 헛되고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브라함이 한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롯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의 집에는 돈이 많아서 이전에 의사를 불러 “치료해 주시오, 돈이 얼마가 들든 상관없소”라고 말했지만,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형제가 죽는 것을 보며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사람은 이 일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은 살아가다가 자녀를 낳고, 그렇게 살다가 결국 죽습니다. 여러분에게 장담컨대, 서두르지 않아도 그날은 반드시 옵니다. 여러분은 “새해 명절에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이것이 바로 진실입니다! 사람의 일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고 싶어 하지만, 연장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주 희귀한 병에 걸렸는데 의학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의 사장은 수천억, 수조의 자산을 가진 대기업가였는데, 사장이 “내가 돈을 대주겠다”며 그에게 10억 위안을 투자해 주었습니다. 그는 병을 앓으면서 그 10억 위안으로 그 질병을 연구했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소용없었습니다. 연구해 내지도 못했고 고치지도 못했습니다.

사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영이라면, 우리의 영생의 소망은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영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의 영이 육신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영도 우리와 함께 육신 안에 거하시는 것, 이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죽은 뒤에야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하는 것은 살아 있을 때 이미 영생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세상에서 영생의 소망이 없다면 정말 너무나 비참하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바로 그 산증인입니다. 주 예수님을 알지 못했더라면, 저는 오늘날 이미 이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없었을 것입니다. 살아서 무엇 하겠습니까? 저는 도대체 왜 사는지 줄곧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여러분도 스스로에게 “살아서 무엇 하나?” 하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너무 지치고 힘들지 않습니까?

사실 저는 꽤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성적이 늘 최상위권이었고 우등생이었습니다. 대학 때도 마찬가지였고, 이후에 대학원에 진학하고 일자리도 얻었으며, 다 잘 풀렸습니다. 제가 인생을 엉망으로 비참하게 살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저는 ‘살아서 무엇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주 예수님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이것이 참으로 좋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님이 “선생님처럼 똑똑한 분이 주님을 믿지 않고 남을 해치는 데 쓰였다면 정말 무서웠을 거예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선생님 손에 당했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정말 그런 ‘지혜’가 없으며,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정말 안 됩니다.

저는 영생의 소망 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오늘날까지 살게 되었으니 정말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이번에 양력 1월 1일이 지난 지 얼마 안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1월 며칠에 서른여덟 살 된 한 남자가, 위로는 부모님이 계시고 아래로는 처자식이 있는데, 차를 대교 도로 위에 세워두고 사람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의 휴대전화, 지갑, 신분증은 모두 차 안에 있었는데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디로 갔을까요? 다리에서 뛰어내렸을 확률이 높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는 게 무의미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왜 무의미했을까요? 직장에서 스트레스가 심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내의 굳은 얼굴을 보아야 하니, 그 기분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저에게 영생의 소망이 없었더라면 저 역시 거의 비슷한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고달프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삶 속의 이러한 고난들은 제 안에 있던 이생의 소망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오늘날 제가 추구하는 것은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이며, 그것이 훨씬 더 좋은 일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저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멀쩡히 살아 있던 사람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아프지만, 제 생각에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해방이었을 것입니다.

어젯밤, 한 자매님의 어머니가 저에게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아이가 떠났다고, 오후 4시가 넘어 숨을 거두고 아이가 떠났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섬기던 사람이었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서너 달을 섬기다 보니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 정이 들었습니다. 제 마음은 아주 여려서, 개 한 마리를 키우다 그 개가 아파도 눈물이 날 지경인데, 하물며 사람인데 어떻겠습니까. 마음이 워낙 여려서 눈물도 잘 흘립니다. 마음이 참 먹먹하면서도, 이번 섬김을 통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찌 되었든 형제자매 여러분, 아십니까? 우리의 치유와 축사 사역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한 가지 문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바로 죽을 때가 이르렀다는 사실입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리 뛰어나셔도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후 영원히 살게 하실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날 나사로도 남아 있지 않고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니 죽을 때가 이르는 일은 우리가 참으로 통제할 수 없습니다. 죽기 직전의 그 시간은 더욱 무력합니다.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기도해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그 통증과 괴로움 때문에 짧은 시간 간격으로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자매님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자매님,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따님이 마침내 세상의 수고를 그치고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안에서 유가족을 위로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으니, 우리 모두 영원한 소망을 품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기를 원합니다.”

영생!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위로입니다! 영생이 없다면, 우리가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 안에서 살아가며 “자매님, 몸조리 잘하시고 슬픔을 거두세요” 같은 말을 해본들 사실 별 소용이 없습니다. 참으로 마음 깊이 탄식하게 됩니다. 영생의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절대적인 비극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아셔야 합니다! 영생의 소망이 없다면 우리의 생각은 수퇘지, 암퇘지, 그리고 새끼 돼지 떼와 같을 뿐입니다. 그저 떡을 먹고 배부르기 위해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언젠가 스스로 마침표를 찍게 되는 것입니다!

돼지는 마침표를 찍고 나면 홍샤오러우(돼지고기 조림)가 되어 식탁에 오르며 마지막 위대한 공헌을 합니다. 사람은 어떻습니까? 마침표를 찍고 나도 마지막 공헌 같은 것은 없습니다. 기름 좀 쓰고, 전기 좀 쓰고, 일손 좀 들여서 재로 태워질 뿐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까? 중화권 사명 신학은 이런 질문을 참 좋아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약 거창한 도리만 잔뜩 늘어놓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면, 다 듣고 나서도 멍해질 뿐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야 영생을 상속받을 수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사용했던 본문은, 예수님께서 “내가 곧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는 수많은 영생의 도를 말씀하신 내용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사람들은 멍해졌고, 많은 사람이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사실 알아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 것입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와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 무리는 돼지 머리를 하고 있어서 마음속에 오직 떡을 먹고 배부르고자 하는 생각뿐이었으니, 수퇘지, 암퇘지, 그리고 새끼 돼지 떼와 같았습니다. 영생이 무슨 상관이며,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이 무슨 말인가? “이 말씀은 어렵도다!” 하며 많은 사람이 떠나갔습니다!

모두가 떠났습니까? 아닙니다! 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부유하고 명품 옷을 입고 있었는데 온몸이 명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무릎을 ‘탁’ 꿇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억울한 일이라도 있느냐? 나는 재판관이 아니니 억울한 일이 있으면 관청에 가서 호소하거라” 하실 법한데, 이 청년은 “주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의 도를 상속받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세상에! 예수님께서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녹아내리는 듯하셨을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이 다 떠나갔는데, 뜻밖에도 내 영생의 도를 듣고자 하는 청년이 한 명 찾아왔으니 말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예수님은 참으로 흥미로우십니다. 대뜸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계명을 잘 지켜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살인하지 말고, 불 지르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거짓 증언하지 말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 등입니다. 이 청년은 제가 보기에 참 훌륭합니다. 어릴 때부터 자라면서 집안을 걱정시키지 않고,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일도 잘하며, 집안에 걱정을 끼치지 않는 매우 착한 아이였습니다. 때릴 필요도, 꾸짖을 필요도 없이 그저 참 착한 아이였습니다.

청년은 “선생님이여, 이 모든 것을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쉬운 것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아이의 이름이 마가입니다. 바로 《마가복음》을 쓴 그 마가입니다. 참 좋은 아이지요! 어떤 이들은 그가 매우 뛰어난 부잣집 2세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명문대를 졸업하고 가업을 물려받았을 텐데, 늘 스스로에게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고 물었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 사람은 참 뜻있게 살았습니다! 삶에 소망은 없고 돈은 많으니 마음이 허공에 붕 뜬 채 허전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살아오면서 그런 느낌이 있었습니다. 언제 그 마음이 내려앉았을까요? 주님을 믿고 나서 비로소 가라앉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마음이 늘 공중에 매달려 숨도 절반밖에 쉴 수 없다면 얼마나 기괴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숨을 깊이 들이쉬지 못하고, 마음이 허공에 뜬 채 숨이 차지 않아 “아이고, 하나님!” 하며 마음속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이 마가도 저와 같은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오시자 그는 “주여,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의 도를 상속받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바로 계명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다 지켰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2학년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초등학교를 마친 셈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초등학교 과정을 마쳤으니, 중학교 과정은 어떻습니까? 중학교 과정도 잘 마쳤으니 이제 영적인 중학교로 가봅시다. 바로 네 집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이 과목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재산을 다 팔아버리면 내 조상님들을 어떻게 뵙겠습니까? 대대로 물려받은 가업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마가가 어느 정도까지 주님을 추구했는지 아십니까? 주 예수님께서 팔리시던 그 밤, 바로 마가의 집 거실에서 계셨는데, 그곳을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부릅니다. 마가의 집은 그 성에서 유일하거나 몇 안 되는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의 집 위층 다락방에 가셔서 거기서 최후의 만찬을 드셨습니다. 〈최후의 만찬〉 그림을 보면 그 커다란 식탁만 봐도 부잣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부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셨고, 바로 그 마가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드셨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그래서 이 마가는 근심하며 떠나갔지만, 그의 영생의 소망은 결코 꺼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베드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제가 베드로를 험하게 말하고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분에게는 영생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 하시자 그는 즉시 따랐습니다. 영생의 소망이 없다면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를 수 있겠습니까? 버려둘 수 없습니다. 훗날 이 마가는 베드로의 비서가 되었습니다. 마가는 명문대를 졸업했기에 베드로의 비서로 일했습니다. 《마가복음》은 마가가 기록한 것으로, 베드로의 설교를 바탕으로 노트를 정리하여 《마가복음》으로 쓴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야기입니다. 《마가복음》에서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근심하며 떠나갔다고 기록했습니다. 그것이 어찌 단순한 근심이겠습니까? 그것은 돈이었고, 엄청난 돈이었으며, 그 마가의 다락방 건물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훗날 이 베드로는 영생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베드로가 천국에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틀림없이 천국에 있으며 분명히 주 예수님 곁에 있습니다. 비록 사역을 매끄럽게 잘 해내지 못했을지라도 영생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영생의 소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습니까?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비록 형편없을지라도 영생의 소망이 있다면, 소망 하나가 백 가지 허물을 덮어주니 그 역시 좋은 일입니다.

이 마가, 바로 이 마가가 근심하며 떠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몇 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가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제자들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까? 성공하게 하기 위함입니까?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있는 여러분의 소망을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함이며, 이것이 바로 주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러 오셨습니까? 고난받으시고,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조롱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무엇을 하시려는 것입니까? 우리에게 영생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만약 의사가 10만 위안을 내면 1년을 더 살게 해줄 수 있다고 한다면 하시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할 것입니다. 10만 위안을 써서 1년을 더 살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모든 재물을 다 바쳐서 1년도 아니고, 100년도 아니고, 1,000년도 아닌 영원무궁토록 살게 해주신다면, 전부 쏟아붓겠습니까? 저는 쏟아붓겠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 재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왜 버립니까? 그런 것들은 영원 안으로 가져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루신 것은 영생의 도이며, 우리에게 영원으로 통하는 길,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하십니까? 저는 원합니다. 저는 당연히 원합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그저 살다가 죽어버리면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소망을 얻었습니다. 제가 주님을 믿은 첫날부터 처음에는 그저 살아서 떡을 먹고 배부르기 위함이었지만, 살아가면서 이 떡으로는 나를 배불릴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살아가면서 점차 영생을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영생을 갈망했기에 주님을 위해 점점 더 헌신하고자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저는 참으로 값진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제 돈을 빼앗아 간다면, 제 손에 있는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돈은 가져가십시오. 내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제 안에 계시니, 나중에 저는 제가 돈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왜 돈을 사랑해야 합니까? 돈을 사랑하는 어리석은 자들이여, 여러분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없겠습니까? 여러분이 영생의 소망을 가진 사람이 된다면 어찌 가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가치 없다 해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값진 존재로 만들어 주실 터인데, 이것은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나중에 저는 제가 돈보다 훨씬 가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여러분은 돈보다 값집니다! 믿으십니까? 믿지 않는다면 망합니다. 돈이 여러분 자신보다 가치 있다고 여긴다면 여러분이 얼마나 비천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눈에 돈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여러분은 분명히 소중한 존재입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나는 소중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눈에 여러분도 소중한 존재이지만, 돈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돈은 노잣돈(종이돈)과 같습니다. 영생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많은 사람이 이생의 일로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어떤 자매님이 참 특이했습니다. 남편과 이혼한 지 아주 오래되었는데, 나중에 전남편이 다른 사람과 재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멘붕이 와서 무너져 내렸습니다. 저는 속으로 ‘도대체 왜 무너지는가? 무엇 때문에 무너지는가?’ 생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아이가 자기가 낳은 아이와 재산을 나누어 갖게 될까 봐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 생각을 들어보십시오. 스스로 화를 돋우며 왜 굳이 그렇게 자신을 비참하게 만듭니까? 이생을 위해서입니다. 영생의 소망 없이 이생만을 위해 산다면 극도로 참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대퇴골두 괴사증에 걸리고, 어떤 사람은 암에 걸리며, 어떤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는 등 온갖 병에 걸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소망이 이생에 있기 때문입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상속받을 수 있겠습니까?

본문 말씀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계명은 네가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가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마가복음》 10:17-30)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주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주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 안에 영생의 소망의 불을 지펴주셔서, 이 세상에서의 날들을 영원한 소망을 의지하여 달려가게 하옵소서. 게으른 자도 불타오르게 하시고, 지친 자도 주님께로부터 다시금 힘을 얻어 강건하게 앞으로 달려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를 재물을 의지하는 마음에서 건져내 주시고; 하나님! 버리지 못하는 마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두가 주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영생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배경

사실 이전 몇 장에서는 오병이어와 칠병이어로 사천 명,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이 나옵니다. 여기에는 어떤 셈법도 필요 없습니다. 떡이 몇 개든 상관없으며, 떡 두세 개든 한 개든 상관없습니다. 사실 그 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여 살리실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떡을 만들어 내시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무엇을 하러 예수님을 찾아왔을까요? 떡을 얻으려고 온 먹보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보셨습니다. ‘아, 너희가 떡을 찾는구나.’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앞서 행하신 것은 일종의 마케팅이었고, 마케팅 뒤에 알맹이를 내놓으신 것입니다. 사실 앞선 마케팅은 떡을 먹고 배부르게 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오게 만들기 위한 미끼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진짜 알맹이를 내놓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영생의 양식이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 그러자 많은 사람이 알아듣지 못했고, 알아듣지 못해 떠나갔습니다. 이들이 떠난 후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줄어들지 않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계속 길을 가시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이 사람은 돼지 머리가 아니었고 떡을 먹고 배부르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집에는 떡이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청년의 집에는 떡이 수북이 쌓여 있어서 무엇을 먹고 싶든 다 있었습니다. 고기 파이든 피자든, 부추 전병이든 고기전이든 없는 떡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집에는 온갖 떡이 넘쳐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거저 주시는 떡을 보며 우르르 몰려드는 바보들과는 달랐습니다. 우리 집 떡이 예수님이 만드신 떡보다 훨씬 훌륭하고, 먹고 싶은 떡은 우리 집에 다 있으며, 우리 집은 돈이 아주 많다는 것입니다. 돈이 워낙 많았으니, 마가라는 이 청년의 인생은 참 괜찮았습니다. 평생을 마가처럼 살 수 있다면 돈도 있고 영생도 있으니 참 좋을 것입니다.

이 청년은 가업을 경영하기 시작했는데 아주 잘 경영했습니다. 청년 사업가로서 매우 훌륭하게 경영했습니다. 게다가 경영하는 과정에서 참으로 똑똑했습니다. 이 청년은 정말 똑똑해서 누구나 부러워했습니다. 보십시오, 어떤 부자들은 자식을 키워놓고 절망합니다. 부잣집 2세랍시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돈만 쓸 줄 아는 바보 같은 자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가의 아버지는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마가의 아버지가 키운 이 마가는, 아버지가 사업을 온전히 아들에게 넘겨주자 아들이 가업을 이어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업을 날로 번창시켰습니다. 그 당시에 주식 시장이 있었다면 상장 기업의 대표였을 것이며, 젊고 유능했습니다.

마가는 어릴 때부터 속을 썩이지 않았고, 공부도 잘했으며, 일도 확실하게 처리하여 그야말로 인간의 모범이었으니 누가 보아도 부러워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그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탁’ 꿇었습니다. 그분께 영생의 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온몸에 명품을 두르고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그는 외모도 출중했습니다. 제 생각에 마가는 다윗을 닮아 아주 훤칠하고 준수하며 우아했을 것입니다. 한눈에 보아도 교양 있고 잘생기고 훤칠한 청년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 앞에 나아왔을 때, 예수님께서 채 반응하기도 전에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상속받으리이까?”

예수님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마음이 녹아내리는 듯하셨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토록 똑똑한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분명 수재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셨고, 각별히 사랑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 앞에 나아와 “주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는다면 예수님께서 틀림없이 여러분을 지극히 사랑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아이는 보배구나, 내가 이 아이를 잘 지켜야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어릴 때부터 복이 있고, 어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잘 안 풀리고 머리도 잘 돌아가지 않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머리는 제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영생의 소망 없이 오직 이생의 소망만 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돈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세상을 사랑하여 모든 소망을 이 세상에 두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 한 기업가가 있는데, 돈을 벌어 무엇을 합니까? 그들은 영생의 소망이 없으니 첩을 두고 셋째 부인, 넷째 부인을 둡니다. 싱가포르 맞은편에 말레이시아가 있는데, 말레이시아의 ‘포레스트 시티’라는 곳은 싱가포르 사람이라면 다 압니다. 포레스트 시티에는 중국 부자들의 내연녀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첩들의 마을이라 불리며, 그들에게 집을 다 마련해 주었습니다. 본처와 가족들을 보면 답답하니 그곳으로 휴가를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돈이 생기면 이런 짓이나 합니다. 그러나 마가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고, 마가에게는 영생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재물이 얼마나 부패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재물은 매우 부패한 것입니다.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과 롯을 아실 것입니다. 롯의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주 일찍 죽었습니다. 제 생각에 롯에게는 자기 아버지의 그림자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롯의 아버지는 돈을 너무 사랑하다가 제명에 죽지 못했습니다. 롯 역시 돈을 몹시 사랑했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아브라함은 돈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 차이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아내 사라 역시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롯은 돈을 사랑했고, 그의 아내 역시 돈을 사랑했습니다. 참으로 흥미롭지 않습니까? 사람이 어떤 소망을 품고 삽니까? 사실 그렇게 사는 것은 너무나 고달픈 일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청년에게 명하셨습니다. “네 집의 재산을 다 팔고, 네 사업을 다 팔아라. 다 판 후에 와서 나를 따르라.” 이 대가는 다소 컸기에 어린 마가는 멍해졌고, 즉시 자신의 근본적인 약점을 찔렸다고 느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마가의 가치관이 그렇게 크게 바뀌었습니까?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때 그는 비록 영생을 구하고 있었지만, ‘내 돈은 건드리지 마시고 내 사업은 건드리지 마십시오’라는 상태였습니다. 마가는 자신이 근심하며 떠나갔다고 묘사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 마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훗날 마가는 끊임없이 주님을 구하며 바울을 따라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마가는 버렸습니까, 안 버렸습니까? 다 버렸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의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 버렸는데, 가난해졌습니까? 가난해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버리는 것은 버리는 것이고 가난해지는 것은 가난해지는 것이니, 마가는 버렸으나 가난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참으로 훌륭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백 배를 받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훗날 마가는 무엇을 얻었습니까? 백 배를 얻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마가가 무엇을 알았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영생을 보았습니까? 못 보았습니다. 이삭과 야곱이 영생을 보았습니까? 못 보았습니다. 마가가 영생이 무엇인지 알았습니까? 몰랐습니다. 그가 무엇을 알았겠습니까?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생에 소망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이생에 소망을 두지 않게 되면 영원한 소망을 구하게 됩니다.

이렇게 구하니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가 나중에 다소 미숙하게 행동하고 사역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지라도 중심은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영원한 영광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러므로 마가는 훗날 “현세에 백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으리라”는 이 말씀이 실제로 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집과 형제, 자매, 어머니, 자식, 전토 등 훗날 마가의 가업이 얼마나 컸는지 기록한 이는 없지만, 어쨌든 그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사람을 얻는 것이 낫습니까, 물고기를 낚는 것이 낫습니까? 당연히 사람이 값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질 것이요,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조롱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생의 도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결코 육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존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육체에 의존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육체를 의지해 산다면 돼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가면 육체를 그다지 개의치 않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듯이,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부릅니다.

그 후 예수님의 두 제자가 “예수님, 장차 영광을 얻으실 때 우리 둘을 잊지 마시고 하나는 주의 좌편에, 하나는 주의 우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라고 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이 청년들이 참 기특하구나. 내가 영광 중에 있을 때 하나는 좌편에, 하나는 우편에 앉기를 원하니 그 소망은 참 좋구나’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둘에게 주신 명령은 무엇이었습니까?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아야 한다.” 알아들으셨습니까?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은 육체를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실 수 있습니까? 마실 수 있든 없든 마셔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나이다” 하니 “너희도 받으리라” 하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영생을 위해 영생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 핵심입니다. 인생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대가를 치르고자 하십니까? 주 예수님, 인자가 온 것은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자신을 주어 우리를 멸망에서 건져내시기 위함이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훗날 맹인이 보게 되었습니다. 맹인이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 구원을 이루러 오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맹인은 곧바로 보게 되었고 예수님을 소리쳐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보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자신을 제물로 바치기로 결단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처럼, 우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주셔서 우리로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자가 걷고, 맹인이 보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얻고,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표적과 기사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신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친히 대가를 치르셨고, 매우 값비싼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대가를 치를 용의가 있습니까? 영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진정으로 알고 계십니까? 만약 주 예수님께서 어느 날 여러분에게 “나를 위해 죽을 수 있느냐? 네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의 길을 따르겠느냐?”라고 물으신다면, 절대로 집에 돌아가 고민하지 마시고 즉시 “주여, 내가 따르겠습니다, 원합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 알아들으셨습니까? 좋습니다, 이것이 본문의 배경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1):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

첫째,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매우 간단한 요구입니다. 만약 이것마저 너무 어렵다고 느낀다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 살인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여러분 한번 말씀해 보십시오. 도둑질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거짓 증언으로 남을 해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왜 거짓 증언으로 남을 해칩니까? 다 세상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세상의 유익을 하늘의 유익으로 바꾼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안에 영생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생의 소망이 있고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어떤 이들은 “선생님, 저는 왜 절제가 안 될까요?”라고 말할까요? 그것은 여러분이 지각으로 이것이 얼마나 좋은지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늘 육신을 위하는 것들이 좋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2): 모든 것을 팔라

둘째,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인데, 이것은 다소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가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셨습니까? 너는 여전히 재물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재물을 의지한다면 절반쯤 롯과 같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온전한 롯은 아닐지라도, 재물을 의지하는 자의 결말은 비참합니다.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비참합니다. 모든 것을 판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영생이 당신 집의 돈보다 훨씬 값지다는 뜻입니다! 알아들으시겠습니까? 영생이 값집니까, 당신 집의 돈이 값집니까? 아브라함의 형제이자 롯의 아버지는 돈을 쓰고도 1년을 더 살지 못하고 일찍 죽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당신의 돈으로는 아무것도 살 수 없으며, 육신의 생명을 15분 연장하는 것조차 살 수 없습니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이 세상의 뉴스를 보며 한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돈으로는 아무것도 살 수 없으며,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진정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정말이지 절대로 돈을 더 이상 사랑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모든 것을 팔아버리면 나는 어떻게 살아갑니까?”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주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영생 안에서 살게 하실 수 있다면, 이생에서도 살게 하지 못하시겠습니까? 이생에서 백 배를 얻게 하지 못하시겠습니까? 하실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하실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우리 가운데 많은 형제자매가 실제로 연봉이 오르고 승진했습니다. 전 세계 경제가 극도로 혼란스러운 오늘날에도 연봉이 오르고 승진할 수 있다니, 우리 주 예수님이 얼마나 대단하신지 느껴지지 않습니까? 주 예수님이 곧 돈입니다. 주 예수님은 돈보다 훨씬 값지고, 돈보다 훨씬 쓰임새가 좋습니다. 이생의 물질 문제뿐 아니라 영생의 문제까지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반드시 재물을 멸시하라고 명하십니다.

얼마 전 제가 사역할 때 마음이 참으로 고통스러웠던 일이 있었습니다. 한 자매님이 암에 걸렸습니다. 그녀는 이혼한 후 전남편에게서 수백만 위안에 달하는 거액의 돈을 받았습니다. 수백만 위안에서 십일조를 내려면 수십만 위안이라는 큰 액수가 되는데, 그녀는 그것을 도무지 내놓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내놓지 않으니 그 돈은 진멸될 물건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이 돈 속에 파묻혀 죽어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돈 속에서 죽어간 것입니다. 나중에 그녀가 암에 걸렸을 때, 우리는 그녀를 데리고 기도하면서 제가 격려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헌금을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녀가 그 돈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고백하기만 해도 유익했을 것입니다. 헌금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 후 우리는 이 자매님을 데리고 기도했고, 실제로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효과가 나타날 때마다 여전히 재물을 의지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습니다. 대략 마가가 겪었던 단계와 비슷했습니다. 언제쯤 우리는 재물이 아무 쓸모없다는 것을 온전히 간파할 수 있을까요? 사실 재물은 별 쓸모가 없습니다. 저 또한 재물을 멸시하는 사람이 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돈에 크게 연연하지 않습니다. 제 하늘 아버지의 집에는 엄청난 재물이 있으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양육 시스템에 투자하며,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데 매우 대범하게 손을 씁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돈이 부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이 교훈을 점차 배워가야 합니다. 이것은 다소 어렵습니다. 돈이 너무 많으면 근심하며 돌아설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만,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을 돈처럼 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몇몇 동역자들이 저에게 “선생님, 이 돈들을 좀 보십시오”라고 말하기에 제가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내가 이깟 돈 좀 손해 본다고 해서 무슨 대수입니까? 나는 돈보다 값진 존재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왜 하나님을 사랑하겠습니까? 내가 돈보다 값진데 왜 돈을 사랑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이 논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까? 저는 돈보다 훨씬 값집니다. 저는 나의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저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단순한 진리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3): 예수님을 따르라

셋째,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가에게 아주 좋은 방안을 제시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둘째는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사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것을 굳이 요구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팔아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합니까? 주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가치 없는 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참으로 값진 분이십니다. 이 마가는 훗날 돈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그는 평생 돈이 부족하지 않았고 줄곧 부유했습니다. 제 생각에 그는 가진 모든 것을 팔았을 것입니다. 팔았을까요? 틀림없이 팔았을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과적으로 돈이 훨씬 더 많아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현세에 백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은 것 아닙니까!

여러분이 돈이 자신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순서가 잘못된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좀 더 지혜로워질 수 없겠습니까? 여러분이 돈보다 값진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못할까요?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돈이 자신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얼마짜리냐고 물으면 가치가 없다고 합니다. 돼지도 고깃값으로 근당 10여 위안은 받는데, 당신은 근당 10여 위안도 받지 못한다면 큰일 날 일 아닙니까.

무엇을 할 것인가 (4): 모든 것을 버리라

넷째, 모든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훌륭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부모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을 알아들으시겠습니까? 바로 모든 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다소 어렵습니다. 계산을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이 계산을 해본다면 이것이 얼마나 남는 장사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바보는 계산을 할 줄 모릅니다. 우리 가운데 회계사도 계시는데, 이 계산이 됩니까? 모든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 친구 중에 그리스도인이 있었는데, 병 치료를 위해 엄청난 돈을 썼습니다. 의사는 말도 잘하고 약도 잘 팔았습니다. 의사는 최고의 영업 사원입니다. “이 약을 쓰면 1년을 더 살 수 있는데 원하십니까?” “얼마입니까?” “10만 위안입니다.” “하겠습니다!” 1년의 가치가 10만 위안입니다. 그렇다면 1,000년의 가치는 얼마이겠습니까? 1,000년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이 과학, 저 과학, 이 기술, 저 기술을 통해 150세까지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값진지 생각하며 엄청난 돈을 쏟아붓습니다. 많은 돈을 써서 150세까지 살고자 합니다.

요즘 과학이 발달하여 예전에는 장기 이식을 할 때 부품 하나가 고장 나면 교체했습니다. 지금은 장기 이식 시장에서 장기가 아주 잘 팔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많은 사람이 생명을 연장하여 몇 년 더 살고 싶어 하기에 얼마의 돈이든 기꺼이 쓰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영생입니다! 1만 년은 어떻습니까? 10만 년은 어떻습니까? 수억만 년은 어떻습니까? 영원무궁토록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를 위해 대가를 치르시겠습니까? 투자하시겠습니까? 150세를 위해서도 투자하는데, 1,500세에는 투자하지 않겠습니까? 15,000세에는 투자하지 않겠습니까? 10만 년, 15만 년에는 투자하지 않겠습니까?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은 결코 비싸지 않으며,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저는 기꺼이 하겠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함께하며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이 세상에서 영생의 소망을 품고 나의 모든 대가를 치르겠습니다! 그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무엇을 버렸습니까? 혈육의 정을 버렸습니다. 무엇을 버렸습니까? 재물을 버렸습니다. 제 평생은 오직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제가 세운 사명 신학입니다. 제가 세운 이 사명 신학은 사실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죽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이토록 단순한 진리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십시오! 사람이 지혜롭다면 이것이 비할 데 없이 좋은 것임을 누구나 알 것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5): 주의 잔을 마시고 주의 세례를 받으라

다섯째, 주의 잔을 마시고 주의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한 번에 끝까지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지금 계명을 지키는 단계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괜찮습니다. 영생의 소망을 품고 앞으로 달려가십시오. 주의 잔을 마시고 주의 세례를 받는 단계에 이르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주의 좌편에 앉기를 구할 것인지, 아니면 우편에 앉기를 구할 것인지 추구하게 됩니다. 주의 잔을 마시고 주의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어느 정도까지 본받는 것입니까?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자리까지 본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말하는 것은 다소 장담하는 것일 수 있으나, 실제로 우리 차례가 닥치는 그날에는 여러분의 신앙의 깊이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의 것들에 불과합니다. 주의 잔을 마시고 주의 세례를 받는 것은 생명을 하나님께 바쳐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하십니까? 육신이 무익하다면 육신은 가져가라고 하십시오.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가며, 장차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육신도 부활할 것이니 비할 데 없이 좋은 일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셨습니까?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모든 것을 팔고, 예수님을 따르며, 모든 것을 버리고, 주의 잔을 마시며 주의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듣고 보면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해 가는 과정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초등학교요, 모든 것을 파는 것은 중학교에 불과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대학교요,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은 직업적 성장이요, 주의 잔을 마시고 주의 세례를 받는 것은 리더의 자리에 오르고 경영진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영원 속에서 주 예수님과 함께 이 땅의 만물을 다스리게 되니 얼마나 아름다운 선택이며 진정한 승진입니까!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너무나 괴로운 것은 세상에 소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의 현재 소망은 직장을 구하는 것이거나, 떡을 먹고 배부르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공급해 주시겠지만, 그것은 매우 낮은 차원의 소망입니다. 이제 마음에 감동이 되시는 분은 손을 들고 저와 함께 기도합시다.

주 예수님, 저는 이 영생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영생을 상속받는 이 길을 걷기 원합니다. 하나님, 주께서 이미 제게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행하기를 원합니다. 제가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주의 임재를 드러내고 주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하나님, 나의 하나님, 주 예수님, 나 자신을 주께 드리오니 이 제단 위에 번제물로 바치나이다. 주의 성령의 불로 태우사 향기로운 번제물이 되어 온전히 주께 드려지게 하옵소서.

주님, 제 자신이 장차 어떻게 될지 다 알지 못하나, 제 심령 깊은 곳에서 주의 잔을 마시고 주의 세례를 받기를 원합니다. 주의 영광 안에서 주의 곁에, 주의 좌우편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세상에 속한 소망에서 건져주옵소서. 하나님, 우리 안의 세상에 속하고 육신에 속한 것들을 완전히 무너뜨려 주시고, 허물고 끊임없이 허물어 주옵소서. 우리의 평생이 주님만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 자신을 거룩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오니, 이러한 우리의 헌신은 마땅한 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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